<?xml version="1.0" encoding="UTF-8" ?>
<rss version="2.0">
<channel>
<title><![CDATA[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title>
<description><![CDATA[영화비평 매거진 &#39;네오이마주(http://neoimages.co.kr)&#39;의 편집스탭 우디79의 블로그입니다. 영화를 읽는 너른 시선을 공유하고 싶습니다.]]></description>
<link>http://kr.blog.yahoo.com/woodyh79</link>
<language>ko</language>
<image>
    <title><![CDATA[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title>
    <url>http://img.yahoo.co.kr/blog/manage/banner_img01.gif</url>
    <description><![CDATA[영화비평 매거진 &#39;네오이마주(http://neoimages.co.kr)&#39;의 편집스탭 우디79의 블로그입니다. 영화를 읽는 너른 시선을 공유하고 싶습니다.]]></description>
    <link>http://kr.blog.yahoo.com/woodyh79</link>
</image>
<item>
    <title><![CDATA[부산 바다만큼, 빛나던 영화들]]></title>
    <description>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7_0?1255788004.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27&quot; width=&quot;510&quot;/&gt;&lt;/div&gt;&lt;p&gt;강연하&lt;br /&gt;&lt;br /&gt;부산에 온 지 4일째가 되어 가는데, 매일 세 편의 영화씩을 챙겨 보느라 미처 글로 정리할 시간을 내지 못하였다. 햇살을 머금은 바다가 반짝이고 어두운 밤바다 위의 오징어 배들도 반짝이는 부산, 열심히 즐겁게 보고 있는 영화들도 흥분하리만치 반짝이는 영화들이 많다. 어제는 처음으로 하루 네 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네 편 다 형식의 새로움과 가슴이 움직이는 장면들을 발견할 수 있어 놀랐다. &lt;br /&gt;&lt;br /&gt;김정(김소영) 감독의 &lt;경&gt; 과 정성일 감독의 &lt;카페 느와르&gt;를 쓰기에는 내게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당장 쓰고 싶어지는 영화는 지난 5월 전주영화제에서 발견한 감독 라야 마틴의 &lt;인디펜던시아&gt;와 로카르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lt;탬버린, 드럼&gt;이었다. 다음 영화까지 남은 한 시간, 짧게나마 정리하고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lt;br /&gt;&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7_3?1255788004.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35&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br /&gt;&lt;strong&gt;&lt;인디펜던시아&gt;&lt;/strong&gt; &lt;br /&gt;&lt;br /&gt;근원을 알 수 없는 총탄의 굉음이 들리는 가운데 어머니와 아들은 숲 속으로 도망친다. 아들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려 살아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해 이야기하며 두려워한다. 때때로 숲은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이상기후를 보이는데, 감독은 이 폭풍우를 마치 세상의 종말처럼 음산하고 폭발적으로 연출해 낸다. 그 비바람의 강도가 너무나 거세고 그 분위기를 표현해 내는데 많은 쇼트들을 할애하기 때문에, 이건 뭔가 다른 거대한 현상의 은유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어린 아들은 잠시 사라졌다가 집에 돌아와서 금빛 머리와 빛나는 몸을 가진 무서운 남자들을 보았다고 말한다. 마지막 대 폭풍이 불어 닥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어갈 때, 드디어 관객의 눈앞에 노란 머리의 백인 군인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어린 아들이 도망치자 그에게 총을 쏜다. 흑백으로 진행되던 영화는 아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리자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끝이 난다. &lt;br /&gt;&lt;br /&gt;이제 우리는 저 폭풍우가 무엇을 은유하는지 알 수 있다. 라야 마틴은 영화 중간, 필리핀이라는 국가를 설명하는 오래된 뉴스릴 필름을 모방하여 삽입한다. 필리핀이라는 커다란 숲은 적에 의해 어두운 강점기를 겪었다. 필리핀의 영 제너레이션 (Young Generation) 라야 마틴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그 시대를 기억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 태도가 그를 진정한 영 제너레이션으로 우뚝 서게 한다. &lt;br /&gt;&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7_4?1255788004.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35&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p&gt;&lt;br /&gt;&lt;strong&gt;&lt;탬버린, 드럼&gt;&lt;br /&gt;&lt;br /&gt;&lt;/strong&gt;이 영화를 일컬어 ‘가난한 어른들의 초상’ 이라 부르고 싶다. 경제적으로 너무도 궁핍한 90년대의 러시아에서 중년여성 카티야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살아간다. 냉소적인 면모의 그녀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때때로 도서관의 책들을 훔쳐 기차역의 사람들에게 내다 팔고 그 돈으로 빵과 감자를 사는 것. 어느 날 그녀에게 우연처럼 ‘또 다른 가난한 어른’인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들은 사랑을 나누고 카티야의 집에서 함께 지낸다. 하지만 남자는 카티야의 비밀을 알고 난 후 그녀를 떠난다. &lt;br /&gt;&lt;br /&gt;줄거리 나열로는 이 영화의 매력과 성취에 대해 반도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가난한 어른들은 시종일관 속내를 털어놓기 보다는 매사에 냉소적이다. 이 냉소는 비판적으로 날이 선 냉소가 아니라, 오랜 세월이 그들에게 새겨놓은 체념에 가깝다. 감독은 문어체적이고 앞뒤 문맥이 잘 맞지 않는 대사들을 인물들에게 부여하는데, 때때로 그것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직접적으로 그들의 고통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동시에 이 영화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이루어 낸다. 영화는 잔인하다. 현실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더 이상 갈 곳 없는 이 중년의 어른들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묘하게 연극적인 프레임이 인물들의 뒷모습을 따라 길게 트래킹할 때, 그들의 뒷모습은 고독하며 불안하다. 무엇보다, ‘변명하지 않는’ 카티야의 모습들이 한없이 내 마음을 울린다. &lt;/p&gt;&lt;p&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p&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woodyh79/487</link>
    <guid>http://kr.blog.yahoo.com/woodyh79/487</guid>
    <pubDate>Sat, 17 Oct 2009 23:00:04 +0900</pubDate>
    <category><![CDATA[필진 리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PIFF, 시간에 관한 짧은 기억]]></title>
    <description>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8_0?1255788005.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78&quot; width=&quot;514&quot; style=&quot;cursor:pointer;&quot;/&gt;&lt;/div&gt;&lt;div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양석중&lt;br /&gt;&lt;/div&gt;&lt;p&gt;&lt;br /&gt;금요일, 하루 업무를 마치고 KTX를 타고 부랴부랴 부산엘 내려갔다. 부산에 내려서는 이미 한 밤중이었다. 부산역에는 기념 삼아 사진 촬영을 하는, 아마도 부산 국제 영화제를 보기 위해 내려온 듯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로 이동했다. 서울의 지하철 보다 조금 폭이 좁은 편이라 자리에 앉으면 건너편의 사람의 무릎이 닿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해운대 바닷가를 서성이다가 숙소로 들어갔다. &lt;br /&gt;&lt;br /&gt;이번 부산 국제 영화제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딱 한 작품 때문이었다. 바로 정성일 감독의 &lt;카페 느와르&gt;를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프레스 카드로 아침 일찍 티켓을 구해야하는데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이미 온라인으론 예매가 끝난 상황이고, 현장에도 얼마나 티켓이 남아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영화는 못 보아도 &lt;카페 느와르&gt; 만큼은 꼭 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내려왔지만, 볼 수 있을지 어떨지도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결론 부터 이야기하자면 ‘기어코’ &lt;카페 느와르&gt;를 볼 수 있었다. &lt;br /&gt;&lt;br /&gt;이번 부산에서 본 영화는 순서대로, &lt;경&gt;, &lt;낙원은 서쪽이다&gt;, &lt;카페 느와르&gt;, &lt;익사일&gt; 이다. 뭐랄까 굉장히 불균질한 컬렉션인 것 같다. 사실 영화제를 여기저기 쫒아다니면서 영화를 챙겨 보는 성격은 아니다. 지금 꼭 보지 못하면 안된다. 이런 종류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 오히려 그것에 억눌린 기분 그 자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성격 탓인 것 같다. 그저 게으른 것일지도 모르고. &lt;br /&gt;&lt;br /&gt;김 정 감독의 &lt;경 Viewfinder&gt;은 영화평론가인 김소영 교수의 장편 데뷔작이다. 집을 나간 (혹은 독립하기 위해 집을 떠난) 동생을 찾아 나서는 여자의 이야기를 축으로, 낡은 휴게소를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낸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보게되는 상징 같은 것들은 굉장히 직접적으로 드러난 채로 제시가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언니의 이름은 전경이고, 동생의 이름은 후경이다. 휴게소에서 전전하는 남자의 이름은 창(window)이다. 남자는 자신을 디지털 퇴마사, 또는 디지털 탐정으로 소개한다. 누구든, 무엇이든 인터넷을 통해 찾을 수 있다고 한다. &lt;br /&gt;&lt;br /&gt;개인적으로 모든 영화는 탐정영화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장르로서의 탐정이 아닌 행동과 결과로서의 탐정영화 말이다. 거의 모든 영화의 내러티브는 상실로 시작되고 그 상실을 수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거나 그 수복의 결과를 제시한다. &lt;경&gt; 역시 동생을 찾아 길을 떠나는 언니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사실 이러한 탐색의 과정은 이 영화의 맥거핀에 가깝다. &lt;경&gt;이 보여주려는 것은 언니가 기어코 동생을 찾아 내고 서로의 관계를 수복했다. 는 결론이 아니다. &lt;경&gt;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일종의 시간의 퇴적층 같은 것들이다. &lt;경&gt;에서 ‘중첩’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중요하다. 과거와 현재, 실재와 환영, 이 모든 것들이 남강이라는 오래되고 낡은 휴게소를 동심원처럼 떠도는 인물들을 통해 보여진다. &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8_1?1255788005.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42&quot; width=&quot;514&quot; style=&quot;cursor:pointer;&quot;/&gt;&lt;/div&gt;&lt;br /&gt;&lt;br /&gt;코스타 가브라스의 &lt;낙원은 서쪽이다&gt;는 로드무비 형식의 블랙 코미디다. 정치적으로 첨예한 소재들을 다루어 왔던 노장 감독의 신작 치고는 어쩌면 말랑말랑한 영화일 수 있겠지만, 국내에 코스타 가브라스의 이름을 알려준 의 기묘한 유머를 생각한다면, 그다지 낯선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마치 채플린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영어는 못하고, 불어를 아주 조금 알고 있는 주인공은 대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 혹은 못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을 걸지만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유머는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다.&lt;br /&gt;&lt;br /&gt;이 영화에서 남들에게 통용되는 언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적당한 옷을 입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 영화의 처음에 밀입국자들은 신분증을 모두 찢어서 바다에 버린다. 미래를 위해 지금의 자신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거나 지워버리는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파라다이스 리조트의 누드 비치로 떠밀려 살아난 엘리야스는 계속해서 옷을 갈아입음으로써 자신을 위장한다. 리조트 직원의 옷을 갈아입고 직원 행세를 하고, 그에게 호감을 느낀 여자가 사다준 옷을 입고 리조트의 손님행세를 한다. 목적지인 파리까지 가능동안 엘리야스가 갈아 입는 옷은 일종의 여권 Passport처럼 기능한다. 그러나 어디까지 옷은 그저 몸 위에 걸쳐질 뿐이다. 옷은 사람의 본질을 바꾸어주지는 못했다. 샹젤리제 거리에 선 엘리야스에게 마술은 이루어졌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8_2?1255788005.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78&quot; width=&quot;514&quot; style=&quot;cursor:pointer;&quot;/&gt;&lt;/div&gt;&lt;br /&gt;&lt;카페 느와르&gt;는 개인적으로 작은, 그러나 충만한 위로 같은 영화였다. 이 영화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쓰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짧게 언급할 것이지만, 고다르의 &lt;국외자들&gt;의 카페 댄스 장면을 차용한 것이 분명한 정유미의 춤 장면 하나 때문이라도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의 쾌감이 마치 혈관에 천천히 차오르는 것 같은 정유미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를 기다렸던 시간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다. &lt;br /&gt;&lt;br /&gt;두기봉 감독의 &lt;익사일&gt;은 국내 개봉했을 때 너무 작은 상영관에서 거의 끝물에 봐서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였다. 이번 PIFF에서는 CGV 스타리움 관에서 상영하다고 해서 보았는데, 결과적으론 그다지 만족 스럽지 못했다. 화면 크기만 키우고 정작 영사기의 세팅은 제대로 되지 않아서 화면 밝기가 고르지 않았다. 사실 그런 얼룩 같은 느낌이 묘하게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를 닮은 이 영화의 분위기에 약간의 플러스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만 놓고 보자면 두 번 세 번 지치지 않고 다시 볼 수 있을 정도로 역시! 였다. &lt;br /&gt;&lt;br /&gt;두기봉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총을 마치 칼처럼 사용한다. 오우삼이 춤을 추듯 총격을 묘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lt;이퀄리브리엄&gt;의 건카타 처럼 요란한 액션은 아니다. 인물들은 마치 총알을 ‘찔러넣듯’ 발사하는데,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액션은 특히 &lt;익사일&gt;처럼 어두운 공간이 많이 나오는 영화에서는 누가 누구를 겨냥하고 맞추었는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마지막 호텔에서의 총격전에서 인물들은 거대한 하나의 절멸을 향해 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속 대사로 미루어 보건데, 홍콩 반환 이전의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lt;익사일&gt;은 그저 철지난 소재를 끌어들인 회고조의 영화라기 보다는, 이미 홍콩 반환 이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어디선가 잠자고 있다가 발견 된 것같은 느낌을 준다. 그만큼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생생하게 말이다. &lt;br /&gt;&lt;br /&gt;위에도 적었지만 이번 PIFF에 참석 했던 이유는 정성일 감독의 &lt;카페 느와르&gt; 단 한 작품 때문이었다. 분명히 상영시간과 대중적인 부분 때문에 개봉은 불확실한 부분이고, 그렇다고 해서 영화제나 특별전 형식으로는 언제 볼 수 있을지 어려운 상황이었고, 물론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볼 수 있었겠지만, 정말 따끈따끈한 그 대로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영화를 봤다. 뭐 이런식의 등수놀이는 거의 무의미 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질 않았다. &lt;br /&gt;&lt;br /&gt;2001년인가 2002년인가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의 &lt;사무라이 픽션&gt;이 PIFF에서 공개 되었을 때, 그것도 출장 길에 시간이 남아 본 것 빼고는 이번이 정식으로 참가한 것은 처음이다. 그저 시간이 맞아 &lt;사무라이 픽션&gt;을 보고선 턱이빠져 달아날 정도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PIFF에는 막상 내려가 정말 ‘별처럼 많은’ 영화목록들을 보니 그 예전에 교보문고를 처음 찾았던 중학생 꼬마의 설레임이 다시 살아났다. 밥벌이의 압박만 아니라면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영화제를 즐기고 싶었다. 영화라는 것이 시간 속에서의 작은 탈주라고 한다면, 영화제는 그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탈주행위다. 그러고보니 이번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은 ‘탈주’라는 주제로 엮어 볼 수 있을 법한 영화들이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 그러한 공간과 시간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lt;br /&gt;&lt;br /&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woodyh79/488</link>
    <guid>http://kr.blog.yahoo.com/woodyh79/488</guid>
    <pubDate>Sat, 17 Oct 2009 23:00:05 +0900</pubDate>
    <category><![CDATA[필진 리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계몽영화]가 계몽하는 것]]></title>
    <description>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3_1?125578440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22&quot; width=&quot;510&quot;/&gt;&lt;/div&gt;&lt;div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div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백건영&lt;br /&gt;&lt;/div&gt;&lt;br /&gt;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수확이라면, 타릭 살레 감독의 &lt;메트로피아&gt;와 박동훈 감독의 &lt;계몽영화&gt;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매표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달뜬 표정과 취소 표라도 얻어 볼 요량으로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이들의 절망마저 훈장처럼 빛을 발하던 &lt;카페느와르&gt;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선택한 영화가 &lt;계몽영화&gt;라면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 이는 올 부산에 걸린 355편의 영화를 다 볼 수 없을 바에야 볼 수 있을 만한 영화를 찍어서 집중 공략하는 게 심신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고, 당연히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게 선택한 &lt;계몽영화&gt;, 아이의 조기유학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살다 아버지의 임종에 즈음하여 귀국한 딸과 죽음 직전의 아버지가 서로의 기억 속 시간을 불러내고 과거를 소환하며 펼쳐지는 &lt;계몽영화&gt;는 절대로 실망스러우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연” 영화는 만족스러웠다. &lt;br /&gt;&lt;br /&gt;2005년 단편 &lt;전쟁영화&gt;를 만든 바 있는 박동훈 감독은 &lt;계몽영화&gt;의 가족 삼대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담아낸다. 그것은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 위에 쌓아올린 중산층이라는 신기루인 동시에 우리가 해결해야할 숙제이다. 영화는 친일을 한 할아버지 정길만과 군사독재시절 낮은 포복으로 살면서 또 다른 독재자의 형상으로 군림했던 아버지 정학송과 이로 인해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딸 정태선, 이렇게 삼대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이들 가족사를 관류하는 한국사회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와 질곡의 과거사를 조심스레 진단하고 내보인다. 인물들의 플래시백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크게 세 개로 나뉘는데, 친일을 통해 입지를 다지고 부를 축재하는 할아버지의 시대, “마당에서 북한산 족두리 봉이 보이는 서교동 양옥집에” 살며 군사독재정권 하에서도 재산을 보존하고 가부장을 드높이는 아버지의 시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딸의 오늘과 가족의 초상이 그것이다. &lt;br /&gt;&lt;br /&gt;영화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미봉에 그쳤을 때, 어두운 과거가 청산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어디선가 누군가에게로 전이되어 또 다른 상처를 입히거나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감독은 친일행위와 군사독재와 조기유학열풍으로 상징되는 인물들의 과거사를 코믹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애처로운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는데, 이때 정학송의 집안은 한국사회의 알레고리에 다름 아니다. &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3_2?125578440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21&quot; width=&quot;220&quot;/&gt;&lt;/div&gt;&lt;br /&gt;&lt;br /&gt;언제부터인가 ‘계몽’이라는 단어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 혹은 군사독재정권이 내세운 깃발의 다른 이름으로 인식되어왔다. 이 영화를 보기 전 궁금했던 점 역시 단편에서 ‘포복절도할 만한 유머감각을 보여준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계몽할 것인가’였다. 사실 다방과 고궁으로 이어지는 정학송과 박유정의 데이트 장면에서 멈춘 &lt;전쟁영화&gt;는 코믹한 전반부와 사이렌 소리에 공포에 떠는 둘의 모습으로 전쟁이 남긴 내상을 보여준 후반부의 균형이 조화로웠음에도, 할 말을 다 못하고 헤어지는 연인의 모습처럼 아쉬웠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lt;계몽영화&gt;에는 주인공 격인 정학송과 정태선 외에도 정학송의 사위라는 히든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태선의 남편 성호를 처가의 그늘 아래서 살아가는 무기력하고 저항할 수 없는 소시민의 모습으로 그려내면서, 진실로 우리사회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되묻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의 뿌리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를, 그것이 낳은 비극적 가족사를 치유하기 위해서 아픈 과거 속으로 돌아가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하되, 그것을 타자화·대상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 &lt;계몽영화&gt;가 우리에게 ‘계몽’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lt;br /&gt;&lt;br /&gt;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품고 살아간다는 점, 어느 쪽을 드러내느냐에 따라서 선과 악이 갈리고 교양과 천박이 나뉘며 독재와 민주의 갈림길에 선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영화 속 인물을 통해 열린 결말까지 만들어냈다는 점, &lt;계몽영화&gt;를 칭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차마 제 민족을 수탈하지 못할 여린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목숨을 살려준 친구를 밀고한 할아버지를, 카라얀과 클래식을 탐닉하며 교양을 한껏 내세우지만 폭압적 가부장에 다름 아니었던 아버지의 삶을, 그런 아버지에게 “사과를 받아내고 싶었”을 만큼의 상처를 입었음에도 같은 상처를 강아지와 남편에게 안겼던 딸을, 그리고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단지 남의 집안일로 가볍게 넘길 수 있을까? &lt;br /&gt;&lt;br /&gt;난 체 잰 체 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다하는 잘 만든 영화란 이런 것이다. “라면 위에 티파니 반지가 있는” 유머러스한 대사와 “그 어른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없었을 것”이라던 자조어린 시선과, 이제는 “당신 집안사람들, 참 웃겨”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엄마는 아빠와 조금 더 있다가 갈께”라며 화해와 자기치유의 첫 손길을 내미는 따스함이 어우러진 &lt;계몽영화&gt;에 나는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lt;계몽영화&gt;가 ‘개봉영화’가 되어 더 많은 사람과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lt;br /&gt;&lt;/div&gt;&lt;br /&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woodyh79/483</link>
    <guid>http://kr.blog.yahoo.com/woodyh79/483</guid>
    <pubDate>Sat, 17 Oct 2009 22:00:06 +0900</pubDate>
    <category><![CDATA[필진 리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부산 바다만큼, 빛나던 영화들]]></title>
    <description>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4_1?125578440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27&quot; width=&quot;510&quot;/&gt;&lt;/div&gt;&lt;p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강연하&lt;br /&gt;&lt;/p&gt;&lt;p&gt;부산에 온 지 4일째가 되어 가는데, 매일 세 편의 영화씩을 챙겨 보느라 미처 글로 정리할 시간을 내지 못하였다. 햇살을 머금은 바다가 반짝이고 어두운 밤바다 위의 오징어 배들도 반짝이는 부산, 열심히 즐겁게 보고 있는 영화들도 흥분하리만치 반짝이는 영화들이 많다. 어제는 처음으로 하루 네 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네 편 다 형식의 새로움과 가슴이 움직이는 장면들을 발견할 수 있어 놀랐다. &lt;br /&gt;&lt;br /&gt;김정(김소영) 감독의 &lt;경&gt; 과 정성일 감독의 &lt;카페 느와르&gt;를 쓰기에는 내게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당장 쓰고 싶어지는 영화는 지난 5월 전주영화제에서 발견한 감독 라야 마틴의 &lt;인디펜던시아&gt;와 로카르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lt;탬버린, 드럼&gt;이었다. 다음 영화까지 남은 한 시간, 짧게나마 정리하고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lt;br /&gt;&lt;br /&gt;&lt;/p&gt;&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1.tistory.com/image/22/tistory/2009/10/17/21/38/4ad9baab7669e&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gt;&lt;/div&gt;&lt;br /&gt;&lt;br /&gt;&lt;strong&gt;&lt;인디펜던시아&gt;&lt;/strong&gt; &lt;br /&gt;&lt;br /&gt;근원을 알 수 없는 총탄의 굉음이 들리는 가운데 어머니와 아들은 숲 속으로 도망친다. 아들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려 살아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해 이야기하며 두려워한다. 때때로 숲은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이상기후를 보이는데, 감독은 이 폭풍우를 마치 세상의 종말처럼 음산하고 폭발적으로 연출해 낸다. 그 비바람의 강도가 너무나 거세고 그 분위기를 표현해 내는데 많은 쇼트들을 할애하기 때문에, 이건 뭔가 다른 거대한 현상의 은유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어린 아들은 잠시 사라졌다가 집에 돌아와서 금빛 머리와 빛나는 몸을 가진 무서운 남자들을 보았다고 말한다. 마지막 대 폭풍이 불어 닥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어갈 때, 드디어 관객의 눈앞에 노란 머리의 백인 군인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어린 아들이 도망치자 그에게 총을 쏜다. 흑백으로 진행되던 영화는 아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리자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끝이 난다. &lt;br /&gt;&lt;br /&gt;이제 우리는 저 폭풍우가 무엇을 은유하는지 알 수 있다. 라야 마틴은 영화 중간, 필리핀이라는 국가를 설명하는 오래된 뉴스릴 필름을 모방하여 삽입한다. 필리핀이라는 커다란 숲은 적에 의해 어두운 강점기를 겪었다. 필리핀의 영 제너레이션 (Young Generation) 라야 마틴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그 시대를 기억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 태도가 그를 진정한 영 제너레이션으로 우뚝 서게 한다. &lt;br /&gt;&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2.tistory.com/image/33/tistory/2009/10/17/21/38/4ad9baddb462c&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gt;&lt;/div&gt;&lt;p&gt;&lt;br /&gt;&lt;strong&gt;&lt;탬버린, 드럼&gt;&lt;br /&gt;&lt;br /&gt;&lt;/strong&gt;이 영화를 일컬어 ‘가난한 어른들의 초상’ 이라 부르고 싶다. 경제적으로 너무도 궁핍한 90년대의 러시아에서 중년여성 카티야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살아간다. 냉소적인 면모의 그녀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때때로 도서관의 책들을 훔쳐 기차역의 사람들에게 내다 팔고 그 돈으로 빵과 감자를 사는 것. 어느 날 그녀에게 우연처럼 ‘또 다른 가난한 어른’인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들은 사랑을 나누고 카티야의 집에서 함께 지낸다. 하지만 남자는 카티야의 비밀을 알고 난 후 그녀를 떠난다. &lt;br /&gt;&lt;br /&gt;줄거리 나열로는 이 영화의 매력과 성취에 대해 반도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가난한 어른들은 시종일관 속내를 털어놓기 보다는 매사에 냉소적이다. 이 냉소는 비판적으로 날이 선 냉소가 아니라, 오랜 세월이 그들에게 새겨놓은 체념에 가깝다. 감독은 문어체적이고 앞뒤 문맥이 잘 맞지 않는 대사들을 인물들에게 부여하는데, 때때로 그것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직접적으로 그들의 고통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동시에 이 영화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이루어 낸다. 영화는 잔인하다. 현실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더 이상 갈 곳 없는 이 중년의 어른들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묘하게 연극적인 프레임이 인물들의 뒷모습을 따라 길게 트래킹할 때, 그들의 뒷모습은 고독하며 불안하다. 무엇보다, ‘변명하지 않는’ 카티야의 모습들이 한없이 내 마음을 울린다. &lt;br /&gt;&lt;br /&gt;&lt;/p&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woodyh79/484</link>
    <guid>http://kr.blog.yahoo.com/woodyh79/484</guid>
    <pubDate>Sat, 17 Oct 2009 22:00:06 +0900</pubDate>
    <category><![CDATA[필진 리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부산에서 만난 네 편의 한국 영화]]></title>
    <description>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5_0?125578440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34&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div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lt;br /&gt;박흥기&lt;br /&gt;&lt;/div&gt;&lt;p&gt;&lt;br /&gt;이번 부산에 와서 많은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이를 추려본다면, 한 가지 공통점으로 이 영화들을 묶어 볼 수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하반기에 우리와 만나게 될 중요한 한국 영화란 범주로 나는 이 영화들을 선택하였다. 따라서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이 영화의 감독들이 분명히 한국 영화의 자장 안에서 이루어내야 할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사전 기대와 이 영화들을 보고 난 후, 이들이 이루어낸 것과 그렇지 못한 것 그리고 이외의 것들을 간단하게나마 소회하려고 한다. 영화를 자유롭게 보아오고 사유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영화인들을 만나는 스케줄이 많아졌다는 핑계로 영화에 관한 글을 도외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으로서 이 네 편의 영화를 한데 묶어서 자세히 비평하려는 시도 자체가 도리어 무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기에 대체로 프리뷰 형태로 간단하게나마 기술하려고 한다.&lt;br /&gt;&lt;br /&gt;&lt;strong&gt;첫 번째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lt;/strong&gt;&lt;br /&gt;&lt;br /&gt;장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진을 기대한다. 장진의 영화보다는 장진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장진은 희미하다. 장진은 장진으로 남지 않고, 영화 캐릭터를 대신 내세웠다. 영화는 대통령이기에 앞서 한 정치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감독은 결코 정치적이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 영화야 말로 정치적으로 가장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정치는 영화적인 소재보다는 현실적인 오락의 소재로 유희된다. 정치 혐오증은 이런 정치를 현실의 유희적인 오락거리로 남기기 위한 반향이고, 투표율이 떨어지는 현실은 이런 행위에 대한 일종의 보복이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가 재밌다. 하지만 고로 이 영화는 대중적인 영화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중은 정치를 영화적인 오락거리로 환원시키기를 꺼려한다. 그것은 현실에 갇혀 비웃음거리의 일환으로 남아 있기를 강력하게 소망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대중들은 정치에서 멀어지는 희열을 느낀다. 영화가 그것을 가깝게 이어붙이면 붙일수록 대중들은 극렬한 혐오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 정치인에 대한 혐오가 아닌 정치에 대한 혐오감에 빠진 자신에 대한 혐오이기 때문이다.&lt;br /&gt;&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5_1?1255784407.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78&quot; width=&quot;514&quot; style=&quot;cursor:pointer;&quot;/&gt;&lt;/div&gt;&lt;br /&gt;&lt;strong&gt;두 번째 영화 [카페 느와르]&lt;/strong&gt;&lt;br /&gt;&lt;br /&gt;이번엔 정성일이다. 두 시간 칠 십 팔 분짜리 영화를 관람하는 일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것이 데뷔작이라면 그 걱정이 배가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정성일의 영화가 불편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기우는 첫 장면에서 바로 아주 부드럽게 녹아버렸다. 영화의 시작은 무거운 기운이 감돌지만, 화면의 비추어진 이미지만큼은 경쾌하다. 이것은 &lt;극장전&gt;이다. 화면의 장면은 바뀌고, 다시 다른 영화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렇게 시간은 두 시간 칠 십 팔 분을 지나쳤다. 영화는 끝도 없이 기존의 영화들을 콜라주 한다. 이것은 몽타주가 아니다. 정성일은 이를 분명히 콜라주 했다. 어떻게 보면 이건 그의 화법과 닮아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결국 정성일은 영화를 찍지 못하였다. 그는 영화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 이게 실망은 아니다. 내 가슴 한쪽에는 안도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정성일의 글은 여전히 매력적이다.&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5_2?1255784407.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30&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br /&gt;&lt;br /&gt;&lt;strong&gt;세 번째 영화 [파주]&lt;br /&gt;&lt;br /&gt;&lt;/strong&gt;개인적으로 올 한 해 가장 중요한 한국 영화가 될 확률이 높다고 본다. 7년의 기다림을 무색하게 만드는 성장이다. 그녀에게 성장이란 표현이 어색하다면, 완성으로 고쳐 쓰자.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스스럼없이 자유스럽게 드나들던 그녀의 연출 화법은 이제 인간 외면의 공간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 영화의 제목이 &lt;파주&gt;인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장소적 특히 도시의 공간을 인간 내면에 접목시키는 방식을 그 어느 누구보다 탁월하게 제시하는 능력을 갖췄다. 도시 공간적인 내러티브와 인간 내면의 붕괴를 심리적으로 교차하는 흐름은 이 영화가 가지는 백미이며, 이제까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방식임이 분명하다. 도시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담론. 하지만 이보다 더 이상 뛰어 날 수 없는 영화적 완성도. 박찬옥은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의 위치로 당당히 한발자국을 내딛었다.&lt;br /&gt;&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5_3?1255784407.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197&quot; width=&quot;220&quot;/&gt;&lt;/div&gt;&lt;br /&gt;&lt;br /&gt;&lt;strong&gt;네 번째 영화 [작은 연못]&lt;/strong&gt;&lt;br /&gt;&lt;br /&gt;나는 솔직히 노근리 사건에 대하여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다시 조명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lt;작은 연못&gt;에는 다소 회의적이다. 이 영화의 문제 제기 방법이나 영화의 윤리성을 탓하는 것도 아니다. 과연 이 영화의 시점은 누구의 것인지 묻고 싶다. 이 영화는 피해자들의 관점인가? 아니면 가해자들의 관점인가?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관점이 가지는 영화의 감상법 자체가 틀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황 재현의 노림수에 빠져 이 둘을 혼동하고 있다. 시점숏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따지는게 아니다. 영화는 단순한 상황 재현극이 아니다. 그런 것은 이미 TV드라마에 넘쳐나고 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woodyh79/485</link>
    <guid>http://kr.blog.yahoo.com/woodyh79/485</guid>
    <pubDate>Sat, 17 Oct 2009 22:00:07 +0900</pubDate>
    <category><![CDATA[필진 리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부산에서 부치는 잡담 하나]]></title>
    <description>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6_0?1255784407.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87&quot; width=&quot;510&quot;/&gt;&lt;/div&gt;&lt;div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강민영&lt;br /&gt;&lt;/div&gt;&lt;p&gt;&lt;br /&gt;부산국제영화제의 피크였던 지난 주말 저녁, 나는 뒤늦게야 부산에 도착했다. 돈 좀 아껴보겠다고 탔던 버스는 장장 6시간을 달려 새벽 세 시경 해운대 앞바다에 나를 뱉어놓았고, 북적거리는 해운대를 뒤지고 뒤져 겨우 찾아낸 숙소에 거의 뻗다시피 누워버렸다. 애초에 사람 많은 주말을 피하고, 사람 없는 평일을 이용해 보고 싶은 영화는 다 보자는 심상으로 내려왔던 부산이기에 그런 수고쯤은 참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는 모두 평일에 몰려 있었고, 어떤 영화들은 상영 일정이 두 세 번씩 겹쳐 잡혀있기도 했다. 표를 하나도 구하지 못해 게스트/프레스 스크리닝으로만 영화를 봐야했던 일요일을 보내고,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적한 평일이 찾아왔다.&lt;br /&gt;&lt;br /&gt;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영화로 인해 보상받으면 다시 의기충전 으쌰으쌰 할 수 있는 것이 영화제의 묘미지만, 부산에 내려와 몇 편의 영화들을 보았던 지난 주말은 나에게 거의 수련의 나날이었다. 내려오기 전부터 좋지 않았던 몸 상태는 제쳐두고, 내가 선택했던 영화들이 나를 힘 빠지고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부산에 내려온 첫 날 상영작이었던 &lt;심볼&gt;, &lt;킥 오프&gt;, &lt;안녕 할아버지&gt;는 모두 비등비등하게(그중 압권은 &lt;심볼&gt;이었지만) 지루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탈진할 수준이었던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날 다시 몇 편의 영화들을 봤다. 영화제에 가게 되면 으레 정말 궁금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봉 예정인 한국영화들은 보지 않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한국영화 몇 편에 관한 솔깃한 소식이 들려와도 귀를 닫고 참아냈다. 내가 두 손 모아 기대하고 기대했던 상영은 모조리 화요일에 몰려 있었기에 지루하고 복잡스러웠던 상영 일정을 모두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6_1?1255784407.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89&quot; width=&quot;510&quot;/&gt;&lt;/div&gt;&lt;br /&gt;&lt;br /&gt;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부산에서의 사흘째 아침, 그러니까 바로 13일인 '오늘'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 예매해둔 상영 시간표를 보니 마음이 절로 흐뭇해졌다. 첫 상영인 고란 파스칼리에비치의 &lt;허니문&gt;에 이어 미카엘 하네케의 &lt;하얀 리본&gt;, 그리고 라야 마틴의 &lt;인디펜던시아&gt;, 마지막은 차이밍량의 새 영화 &lt;페이스&gt;로 짜여 져 있는 더 할 수 없이 아름다운 시간표.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첫 영화를 보고, 미카엘 하네케의 맹신자인 나를 영화제 훨씬 전부터 설레게 만들었던 하네케의 신작 &lt;하얀 리본&gt;을 보고 난 후, 오후 다섯 시에 있을 다음 상영을 기다리며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애초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인지, 생각보다 하네케의 영화는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것 또한 하네케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 불과한 것일까. 조금씩 엄습해오는 공포감과 광기에 대한 묘사는 탁월했지만, 결말로 갈수록 그 불안한 기운이 폭발적인 작용을 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lt;br /&gt;&lt;br /&gt;&lt;하얀 리본&gt;을 졸지 않고 보기 위해 거의 세 시간동안 트리플 에스프레소를 손에 들고 홀짝 거렸던 탓일까, 윗배 아랫배 할 것 없이 찾아오는 복통에 얼굴이 일그러지지만, 정신만은 말짱하다. '부산에 내려가서 &lt;하얀 리본&gt;을 보지 못하면 해운대 앞바다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리'라 생각했던 영화를 말끔하게 해치워서인지,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하지만 아직 정신을 놓아버릴 수는 없다. 라야 마틴에 이어, 내가 하네케에게 느끼는 맹목적 사랑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애정을 과시하는 감독인 차이밍량의 신작이 마지막 상영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오늘은 이래저래 심심한 영화들에 치였던 그간 일정에 대한 보상과 같은 날이다. &lt;br /&gt;&lt;br /&gt;&lt;br /&gt;&lt;br /&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woodyh79/486</link>
    <guid>http://kr.blog.yahoo.com/woodyh79/486</guid>
    <pubDate>Sat, 17 Oct 2009 22:00:07 +0900</pubDate>
    <category><![CDATA[필진 리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다큐멘터리 쇼케이스 in PIFF]]></title>
    <description>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1_0?125566920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35&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div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박정애&lt;/div&gt;&lt;br /&gt;&lt;strong&gt;[버진]&lt;/strong&gt;&lt;p&gt;&lt;br /&gt;&lt;버진&gt;은 이슬람 문화 아래 여성의 ‘순결’ 즉, 처녀성을 이란 사회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여성의 처녀성에 대해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다뤄왔던 담론을 ‘처녀 증명서’라는 법적인 문제로 까지 명시해 놓은 이란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방면으로 접근하였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의 처녀성을 가지로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지만, 그 보다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왜 여성에게만 순결을 강요하느냐 일 것이다. 여성의 순결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여성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남성도 포함되어야 마땅한 일인데도 말이다. 성경험이라는 것이 남,여가 함께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성경험이 없다면 부끄러운 일이고, 여성이 성경험이 없다면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라는 게 현실 사회의 풍조이다. 그러면서 남성들은 왜 여성의 처녀성을 그렇게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까. 남성들의 욕망은 당연한 것이고, 여성이 욕망을 가지면 부정한 것인가. 이란의 현실은 우리의 현실보다 더 가혹해, 법률로써 정해놓고 여자가 처녀가 아닐 때 마땅히 이혼이 가능할 정도다. 즉 ‘처녀성’의 법적 권리가 남성에게 있는 것이다. 여성은 항상 남성의 전리품인양 여겨져서는 안 된다. 똑같은 인간, 그러기에 욕망 또한 똑같은 것이다. 아무리 그 사회의 관습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현재에 와서는 인습에 가깝다.&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1_1?125566920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33&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br /&gt;&lt;br /&gt;&lt;strong&gt;[명주바람]&lt;/strong&gt;&lt;p&gt;&lt;br /&gt;나이 칠순이 다되어서 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이 있다. 그간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 형제의 그늘에 가려서, 엄마라는 이유로 자식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던 할머니들이 농번기엔 밭과 들에서 일을 하고, 농한기엔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는 한글을 배우고, 영어를 배운다. 그런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그간의 세월을 살아낸 통찰력 또한 느껴진다. 영화는 할머니들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내러티브 위주의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형식에 맞춰 감정의 진폭이 예상가능하다. 또, 자식들에게 헌신해 백그라운드로 밀려나 있던 할머니들을 조명함으로써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하나 이미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발언을 하며 충실하게 삶을 살아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인공’이라는 단어는 한 템포 뒤에 온 말인 듯하다.&lt;br /&gt;&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1_2?125566920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35&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p&gt;&lt;strong&gt;&lt;br /&gt;[Inter view]&lt;/strong&gt;&lt;/p&gt;&lt;p&gt;다큐멘터리의 장르를 넘어서 영화의 포괄적인 시선의 문제를 사유하게끔 하는 영화로, 특히 다큐멘터리에서 찍는 자, 찍히는 자, 보는 자의 트리오 구성을 명확히 드러나게 한다. 이들은 모두 서로에게 타자이며, 타자의 존재로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영화는 내러티브 위주의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비선형적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내전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네팔의 포악한 모습과 한국 현대 가정의 회색빛 모습을 반 스토리텔링으로 말하고 있다. 두 개의 상반되면서도 연관성이 없는 이미지들은 이분법적 사고의 기호들을 내포하고 있고, 인터뷰를 하는 찍는 자는 이제 카메라에 찍혀 관객 앞에 나타나게 될 찍히는 자에게 찍는 자를 보지 말고, 보는 자를 볼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찍혀진 정면 숏은 섬뜩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시도로 느껴지는데, 이러한 시도들이 궁극적으로는 ‘소통’을 말하는 듯하다.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와 그럼으로써 ‘시선’의 문제에 대해 충분히 사유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바닥에 놓인 카메라와 카메라를 찍고 있는 감독의 그림자가 보이는 엔딩 신에서, 이내 감독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카메라의 그림자만이 남는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마지막까지 힘 있게 끌고 나간, ‘소통’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p&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woodyh79/481</link>
    <guid>http://kr.blog.yahoo.com/woodyh79/481</guid>
    <pubDate>Fri, 16 Oct 2009 14:00:06 +0900</pubDate>
    <category><![CDATA[필진 리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부산에서 본 몇 편의 영화]]></title>
    <description>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2_0?125566920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35&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p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백건영&lt;br /&gt;&lt;br /&gt;&lt;/p&gt;&lt;div style=&quot;TEXT-ALIGN:left;&quot;&gt;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부산을 다녀왔다. 예년과는 달리 영화를 챙겨보자고 다짐했고 대체로 계획대로 되었다. 당초 꼭 보고 싶었던 몇 편의 영화들, 이를테면 &lt;채식주의자&gt; &lt;특별시사람들&gt; &lt;파주&gt;는 인연이 아닌 듯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괜찮은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제가 아니면 경험해보기 힘든 일이다. 서울서부터 작심했던 박동훈 감독의 &lt;계몽영화&gt;는 “과연” 유쾌하면서도 진중함까지 갖춘 영화였다. &lt;계몽영화&gt;를 제외하고 리뷰랄 것도 없이 세 편의 간략한 느낌을 적는다.&lt;br /&gt;&lt;br /&gt;&lt;strong&gt;[우물] 우메쉬 비나약 쿨카르니 감독&lt;br /&gt;&lt;br /&gt;&lt;/strong&gt;우메쉬 비나약 쿨카르니. 이름을 외우기도 쉽지 않은 이 낯선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된 건 순전히 &lt;우물&gt;이라는 제목이 갖는 상징성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부산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문인 뉴-커런츠 출품작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영화는 이모의 결혼식에 모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큰 축으로 삼아 삶과 죽음을 통해 꽤나 철학적인 주제를 탐색한다. 이를테면 숨바꼭질이라는 놀이를 통해 감독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당연히 그렇다고 믿어온 고정관념을 넘어설 때 다른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우물은 관습화된 생각을 가둬두는 장소이면서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거쳐야하는 관문인 셈인데, 이 영화를 사촌 ‘나차켓’의 죽음 앞에서 방황하던 ‘사미르’의 성장담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많은 인도 영화가 그렇듯이 영화 전반을 수놓으면서 이따금 지루해질 법한 시간마다 터져주는 높은 영역의 소리와 느슨해진 관람자의 마음을 팽팽하게 당기는 음악은 인상적이다. 쿨카르니 감독은 인도인의 추레한 생활상과 장쾌한 자연 풍광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삶 그 이상의 것을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가 살면서 보아온 것들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영화 &lt;우물&gt;, 양치기 노인의 말대로, 가슴으로 찾는 다면 보이지 않는 것도 쉽사리 찾을 수 있을까? &lt;p&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2_1?125566920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35&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br /&gt;&lt;strong&gt;[메트로피아] 타릭 살레 감독&lt;br /&gt;&lt;br /&gt;&lt;/strong&gt;상영일 아침까지도 이 영화 대신 다른 영화에 눈길을 주면서 발권창구를 기웃거렸더랬다. 만약 다른 영화를 보았다면, (물론 그 영화도 좋았을지 모르겠으나) 정말로 후회할 뻔 했다. 타릭 살레 감독의 &lt;메트로피아&gt;는 그렇게 이번 부산행을 보상해주고도 남을 만한 영화였다. 3D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이 멋진 작품은 2024년 지하철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남은 유럽을 무대로 음모와 배신과 감시체계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회사원의 하루 남짓한 이야기를 통해, 기술발전이 가져온 디스토피아를 그려냄과 동시에 잔잔한 위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에서 재탄생한 친근하고 사실적인 캐릭터와 촘촘한 플롯과 장르영화의 문법이 조화롭게 펼쳐짐으로써 극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데는, 빈센트 갈로와 줄리엣 루이스의 목소리도 한 몫 한다. 그러니까 (대단치 않다고 여겼던) 애니메이션에서의 목소리 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것이 사실적 재현과 세밀한 캐릭터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리하여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lt;메트로피아&gt;가 단적으로 증명해보였다는 것. SF필름느와르와 할리우드 가족드라마를 뒤덮는 북구유럽의 우울한 정조를 두루 맛보기에 이만한 텍스트도 드물 것이다. 어둡고 무거운 화면 위에 에로티시즘과 인간미를 그지없이 우아하게 그려내면서 따뜻한 결말로 이끄는 감독 타릭 살레가 진정 궁금하다.&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9/img_9_482_2?1255669207.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35&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br /&gt;&lt;strong&gt;[난 몰라요]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lt;br /&gt;&lt;br /&gt;&lt;/strong&gt;고바야시 마사히로의 &lt;난 몰라요&gt;는 &lt;아무도 모른다&gt;의 청소년 버전에 다름 아니다. 영화의 전반부가 가난에 내몰린 소년 카와이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엄마의 죽음 이후를 다루는 후반부는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소년의 선택과 결정을 극단적으로 던져놓으면서 사회적 책임과 성인들의 도덕적 책무를 묻는다. 컵라면과 빵을 허겁지겁 먹는 카와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면발을 단숨에 넘기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배고픔이 무엇인지, 삶에 대한 안간힘이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도 있을 터. 감독이 심연에서 끊임없이 길어 올리는 비극적 장면 앞에서, ‘삶을 위무하는 리얼리즘’ 따위의 수사는 사치스러울 따름이다. 영화제가 아니라면 도저히 만나기 힘든 영화지만,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언덕을 오르는 카와이를 롱 테이크로 잡은 엔딩에서 만나는 ‘재생의 공기’야 말로 &lt;난 몰라요&gt;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일 것이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div&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woodyh79/482</link>
    <guid>http://kr.blog.yahoo.com/woodyh79/482</guid>
    <pubDate>Fri, 16 Oct 2009 14:00:07 +0900</pubDate>
    <category><![CDATA[필진 리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다]]></title>
    <description>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d/59/woodyh79/folder/14/img_14_480_0?1254870004.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69&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div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백건영&lt;br /&gt;&lt;/div&gt;&lt;p&gt;2분 45초, 2분 28초, 2분 4초, 1분 35초. 이 숫자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를 모토로 하는 올림픽 기록이 아니다. 역대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개막작들이 예매 시작부터 매진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첫 한국영화 개막작은 1999년 4회 때 선보인 이창동 감독의 &lt;박하사탕&gt;이었지만, 그 시절엔 온라인 예매가 없었고 그 이듬해부터 시작된 온라인 예매는 30분대에 매진이 됐다. 2004년에서야 4분 54초 만에 개막작이 완전 매진 돼 화제였는데, 이젠 1분 30초대를 유지하는 분위기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의 매진시간이 얼마나 단축되는가는, 올림픽 기록갱신만큼이나 화제가 될 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 그만큼 영화제의 예매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구축됐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영화광의 가슴을 도리질할까? &lt;br /&gt;&lt;br /&gt;&lt;img height=&quot;208&quot; alt=&quot;&quot; hspace=&quot;18&quot; src=&quot;http://neoimages.co.kr/img/photos/000/000/006/675.jpg&quot; width=&quot;220&quot; align=&quot;right&quot; vspace=&quot;12&quot;&gt;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만큼 힘든 노동도 드물다. 표구하기가 귀성전쟁을 방불케 하다 보니 일반인은 물론이고 아이디카드 소지자에게도 쉽사리 입장을 허락하는 법이 없다는 것. 그렇다 해도 영화를 안 보고 영화제를 이야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여배우 뒤태만 쫓아다니지 말고 영화를 보라는 얘기다. 트란 안홍의 신작도 정성일 평론가의 감독 데뷔작도 또 놀라운 몇몇 기대작도 궁금하고 가슴 설렐 테지만, 목표했던 작품이 아니어도 실망하긴 이르다. 무엇을 보던 기본은 할 것이라는 믿음만 있다면 한결 마음이 편할 터. 내 경우가 그랬다. 근래만 해도 이명세의 &lt;엠&gt;을 놓친 대신 본 &lt;말도둑&gt;과 &lt;집결호&gt;를 대신한 &lt;웨이터&gt;는 아쉬움을 보상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음 비우고 나와 인연이 되는 영화를 찾으러 간다. &lt;br /&gt;&lt;br /&gt;부산영화제는 영화인들의 총동문회 격이다. 그러니까 평소 공사다망을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이들이라도 해운대 바닷가를 거닐다보면 어디서건 반갑게 조우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남발한 술 약속과 공수표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 올해는 누구와 어떤 이야기로 밤을 지새울지 기대감이 한껏 부푼다. 그렇다고 두주불사하다가는 인사불성을 못 면한다. 낮에는 영화에 빠져들고 밤이 오면 술과 사람과 바다에 취하는 수순을 몇날 며칠 밟다보면 몸은 쇠진하고 간은 부어오르니 스스로 컨디션조절을 할 일이다. 영화제에서 버티는 첫 번째 덕목이 체력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lt;br /&gt;&lt;br /&gt;무엇보다 올해 부산영화제가 남다른 것은, 영화제를 침몰시키려 그토록 발버둥친 일부 보수 원로영화인들의 분탕질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외연을 확대하면서도 질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프로그램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lt;오래된 정원&gt; 속 윤희의 말처럼 “의젓하고” 든든하며 다행스럽다. 한편으로 영화제 기간 중 보수 원로영화인들이 ‘영화기관 부산이전 반대 투쟁’의 일환으로 산발적인 시위계획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상놈은 나이가 벼슬’이라고 했던가. 노추(老醜)와 노탐(老貪)이 쌍쌍파티를 벌인다면 딱 이 꼴일 게다. 설사 시위를 벌인다고 해도 일부 몰지각한 매체들이 호떡집에 불난 듯이 앞 다투어 설레발만 치지 않는다면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에 불과할 것인즉, 이래저래 이번 영화제는 영화와 해운대 풍광 말고도 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날 듯싶다. &lt;br /&gt;&lt;br /&gt;매진이 되던 말든,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든 말든, 누구는 술에 허우적거리다 밤바다에 입수하건 말건, 또 어떤 이는 머리띠에 피켓을 들건 말건, 영화를 사랑하는 자 일단 부산으로 향할 일이다. 어차피 부산역에 터미널에 공항에 내리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와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일들이 동시다발로 펼쳐질 것이니 영화 같은 한 때,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다.&lt;/p&gt;&lt;br /&gt;&lt;br /&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woodyh79/480</link>
    <guid>http://kr.blog.yahoo.com/woodyh79/480</guid>
    <pubDate>Wed, 07 Oct 2009 08:00:04 +0900</pubDate>
    <category><![CDATA[필진 칼럼]]></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영화가 주는 위로, "It&#39;s not your fault"]]></title>
    <description>
        &lt;p&gt;&lt;em&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2.tistory.com/image/32/tistory/2009/10/06/14/52/4acadb34750cc&quot; width=&quot;510&quot; height=&quot;271&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gt;&lt;/div&gt;&lt;br /&gt;&lt;/em&gt;&lt;div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박정애&lt;br /&gt;&lt;/div&gt;&lt;br /&gt;&lt;p&gt;&lt;em&gt;'It's not your fault.'&lt;/em&gt;&lt;/p&gt;&lt;p&gt;&lt;br /&gt;이것이 &lt;굿 윌 헌팅&gt;(1998)이란 영화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했던 말이 아닐까. 이 말을 하기 위해 영화는 두 시간을 달려온 듯 싶다. 열아홉 살에 처음 이 영화를 브라운관을 통해 본 날 울음을 끝내 참지 못했던 내가 생각난다. &lt;br /&gt;&lt;br /&gt;크든 작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제 때 치유하지 못하면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는데, 그 상처라는 것이 마음 속에 상주해있어 늘 아픈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순간에 튀어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쳐 대처하지 못하고 아파한다. 사람이란 좋지 않은것 보다는 좋은 것을 보려고 하기에 기쁨보다는 아픔을 묻어둔다. 자신이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 보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을 가장 밑바닥에 감추는데, 종국에 가서는 그 상처들은 드러나고야 만다. &lt;br /&gt;&lt;br /&gt;여기 숀(로빈 윌리엄스)과 윌(매트 데이먼)이 있다. '반응하는 것은 관계하는 것이다'라고 사진작가 김아타가 그랬던가. 숀과 윌을 보면 이 말이 생각난다.램보(스텔란 스타스가드)가 처음 숀에게 윌의 상담을 부탁할 때 숀과 윌이 보스턴 남부 출신의 동향이라 말하며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음을 피력하고 거기에 숀은 동질감은 아닐지라도 유대감을 느낀 것 같다. &lt;br /&gt;&lt;br /&gt;숀은 아내를 잃은 아픔을, 윌은 세번의 파양과 양부의 폭력을, 그래서 상처받을까봐 먼저 상대에게 상처를 줘버리는 공격성을 지니고 있다. 숀과 윌의 첫만남 때, 윌은 숀이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숀의 감정을 아무렇지 않게 난도질해가며 상처를 낸다. 그런 윌의 방어기제를 숀이 알아본 것일까. 두번째 상담을 받는 날 숀은 윌을 데리고 백조가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얘기한다. ‘네가 아무리 잘난 척 떠들어대봐야 내 눈에 너는 상처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철부지겁쟁이로 밖에 보이지 않아', ‘너는 누구니’, '네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니' 라고 묻는 숀에게 그동안 거침없이 말하던 윌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처가 있는 사람을 알아보기 마련이다. 이미 자신이 겪은 일을 다른 이가 겪고 있다면 그것을 그냥 쉽게 보아 넘겨지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윌의 상처에 숀이 반응하는 순간이었다.&lt;br /&gt;&lt;br /&gt;매주 목요일 오후4시. 숀과 윌은 그렇게 상담을 시작한다.의사와 환자간에 신뢰를 구축하는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다소 방어적인 윌은 침묵으로 진료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숀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가벼이 넘긴다. 사실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데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얼마나 많은 신뢰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느냐일 것이다. 윌의 말에 진심으로 귀기울여주고, 숀의 권위없는 진솔한 마음이 결국 서로를 믿게 하고 발전적 관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지 않았나 싶다.&lt;br /&gt;&lt;br /&gt;숀과 윌의 상담이 끝나갈 무렵 윌은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윌 스스로도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지만 상처라는 것은 스스로 나는 것이 아니기에, 치유 또한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it's not your fault' 숀이 윌의 상처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연 순간, 윌은 안다고, 알았다고 말하지만 진심으로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숀이 그 말을 계속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Not your fault’. 상처와 상처가 반응하는 순간 윌은 끝내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며 숀을 안고 운다. 아마도 윌은 숀이 말해주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울지 못해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기도 한다. 같은 상처를 겪었던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친밀하고, 둘 사이는 이전의 관계와는 다른 관계가 된다. 영혼을 울리는 상대와의 만남. 아마 숀과 윌은 그런 상대를 만난 듯 하다. 진정한 소울메이트를 찾아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순간이었다.&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center;clear: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0.tistory.com/image/4/tistory/2009/10/06/14/53/4acadb542bdda&quot; width=&quot;510&quot; height=&quot;270&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gt;&lt;/div&gt;&lt;br /&gt;다른 좋은 신들도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lt;굿 윌 헌팅&gt;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엔딩 신이었다. 영화의 메인 OST가 흘로 나오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윌이 생일 선물로 친구들이 선물해준 차를 타고 (아마도 스카일라가 있는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이겠지만) 길을 떠나는 모습을 윌의 차가 점점 멀어져 사라질 때까지 롱 테이크로 보여준다. 구스 반 산트 Gus Van Sant 감독이 윌에 대해 끝까지 배려했다고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는데, 누군가의 여정을 그렇게 지켜본다는 것은 아마도 그 사람이 잘 돼가고 있다거나, 잘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lt;br /&gt;&lt;br /&gt;십 여년전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라며 외쳐대던 어느 CF광고가 생각난다.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만난 열 아홉 살 때나 글을 쓰려 다시 본 스물 세살에나 숀이 윌에게 던졌던 '니가 정말 원하는게 뭐니' 라는 질문에 나는 아직 대답을 하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려면 나를 아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숀이 윌에게 질문을 했듯이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Who you are?', 'What do you wanna do?' 아직까지도 내가 이 영화를 즐겨보는 까닭이기도 한데, 한 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가 때로는 사람이 주는 위로보다 더 가치 있을 때까 있다. 이 영화에서 그 시절, 그리고 지금도 참 많이 위로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주는 위로란 이런게 아닐까.&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woodyh79/479</link>
    <guid>http://kr.blog.yahoo.com/woodyh79/479</guid>
    <pubDate>Tue, 06 Oct 2009 15:00:07 +0900</pubDate>
    <category><![CDATA[필진 리뷰]]></category>
</item>
</channel>
</rss>
<!-- rss1.blog.kr3.yahoo.com uncompressed/chunked Sun Nov  8 03:36:37 KST 20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