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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삐딱삐딱Cool~HoT~!!]]></title>
<description><![CDATA[그냥저냥]]></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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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삐딱삐딱Cool~H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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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애국심과 애국주의... 주의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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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박찬호를 좋아한다. 야구를 잘해서도 그가 메이저리거여서도 아니다. 한결같이 자신의 목표에 도전하는 오롯한 그 의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애국심도 한 몫 한다.&lt;br&gt;&lt;br&gt;올 초였을 것이다. 불안한 현재의 입지로 인해 더 이상 WBC 국가대표 소집에 응할 수 없다고 기자회견을 할 때 그가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보면서 한 구석이 먹먹해 져 온 사람은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다. 그 전에도 아직 팀에서의 입지가 불안하고, 장차 불이익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박찬호는 솔선해 국가대표 소집에 응했고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대표팀을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lt;br&gt;&lt;br&gt;애국심이란 국가라고 하는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해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것이다. 바라고 위한다는 것이다. 내가 속한 집단인데, 그것은 또한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한데 어찌 기분이 나쁠 수 있을까?&lt;br&gt;&lt;br&gt;박찬호만이 아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나라의 이름을 알리고, 나라의 명예를 드높이고, 나라에 실제 도움이 되고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의 희생을. 노력을.&lt;br&gt;&lt;br&gt;그러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누군가 나더러,&lt;br&gt;&lt;br&gt;&amp;quot;너는 애국심이 부족해!&amp;quot;&lt;br&gt;&amp;quot;애국심을 가져!&amp;quot;&lt;br&gt;&amp;quot;애국해!&amp;quot;&lt;br&gt;&lt;br&gt;이따위 소리를 늘어놓는다면 꽤나 기분이 싸해질 것이다. 그보다 먼저 고개가 틀어지고 입에서 막말이 나온다.&lt;br&gt;&lt;br&gt;&amp;quot;그래서?&amp;quot;&lt;br&gt;&lt;br&gt;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를 떠나서 만일 그러한 요구에 내가 응하지 않겠다면 어쩌겠는가? 때리겠는가? 아니면 내쫓겠는가? 설마 죽일까?&lt;br&gt;&lt;br&gt;하긴 설마도 아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애국심을 이유로 그런 것들이 수도 없이 저질러지고 있었으니. 나라를 위해 죽이고, 나라를 위해 고문하고, 나라를 위해 강간하고, 나라를 위해 폭행하고, 나라를 위해 내쫓고...&lt;br&gt;&lt;br&gt;불과 몇 달 전에도 있었다.&amp;nbsp;한 아이돌그룹의 리더가 무려 4년 전 생소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겪은 위화감이나 부대끼던 어려움들을 조금 거칠게 표현했다는 이유로 아예 연예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몰아세워 쫓아내고 있었다. 4년도 더 전에 남긴 몇 마디가 한 연예인으로 하여금 더 이상 연예인으로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lt;br&gt;&lt;br&gt;그래서 묻는 것이다.&lt;br&gt;&lt;br&gt;&amp;quot;내가 애국심을 갖지 않으면 때릴 거야?&amp;quot;&lt;br&gt;&lt;br&gt;여기서 갈린다.&lt;br&gt;&lt;br&gt;&amp;quot;때릴 거야!&amp;quot;&lt;br&gt;&lt;br&gt;이게 애국주의,&lt;br&gt;&lt;br&gt;&amp;quot;아니면 할 수 없고...&amp;quot;&lt;br&gt;&lt;br&gt;이게 그냥 애국심.&lt;br&gt;&lt;br&gt;사실 탈민족주의 운운하는 인사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다.&lt;br&gt;&lt;br&gt;애국심과 애국주의는 다르다. 애국심은 오롯한 자기 자신의 양심에 기준한 자기 선택이며 실천이다. 반면 애국주의는 자기 양심에 기준하는 것은 같은데 타인에게 그 선택과 실천을 강요하는 것이다.&lt;br&gt;&lt;br&gt;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lt;br&gt;&lt;br&gt;&amp;quot;에잇! 이대로 간다면 일본은 저들에게 유린될 것이다. 이 한 몸 바쳐서!&amp;quot;&lt;br&gt;&lt;br&gt;이것은 그래도 정상적인 애국심이다.&lt;br&gt;&lt;br&gt;&amp;quot;일본을 위해서, 천황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라! 살아서 돌아오지 마라!&amp;quot;&lt;br&gt;&lt;br&gt;같은 카미카제더라도 초반 파일럿이 자기 판단에 의해 몸통공격 - 다이아다리를 가한 것은 순전한 개인의 애국심에 의한 것이었다.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그리고 본토에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해 이 한 몸 기꺼이 희생한다...&lt;br&gt;&lt;br&gt;그러나 후자는 다르다. 겉으로야 자원의 성격을 띄웠지만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라...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라... 그것이 진정한 남자의 길이다. 군인의 길이다. 그래서 자원하지 않으면 은연중 따돌리고, 무시하고, 그래서 떠밀리듯 전투기에 몸을 싣고 자살공격에 나서게 만들고...&lt;br&gt;&lt;br&gt;물론 군인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의 성격상, 승리를 위해서라도 명령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분명 있다. 예를 들어 퇴각을 해야하는데 추격해 오는 적군의 기세가 심상치 않을 경우 일부는 남아 주력이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도록 지연전을 펼치는 것과 같은 경우들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한 가지 원칙은 있는데,&lt;br&gt;&lt;br&gt;&amp;quot;아군이 여기까지 퇴각하는 동안, 즉 앞으로 24시간 동안 현 진지를 고수하며 지연전을 수행하고 이후는 자유판단에 맡긴다. 퇴각하거나 아니면 항복하거나. 무운을 빈다.&amp;quot;&lt;br&gt;&lt;br&gt;퇴각하는 아군의 후미를 확보한다고 거기서 죽으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요한 시간 만큼만 적을 저지하고 만일 가능하다면 역시 같이 퇴각하고,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그 자리에서 항복할 수 있다. 임무는 아군이 퇴각할 수 있도록 적을 저지함으로써 시간을 버는 것이지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이 아니니까.&lt;br&gt;&lt;br&gt;같은 맥락이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전체 아군을 위해 희생하는 것... 그 역시 군인의 임무다. 그러나 그 임무란 그 전략적 전술적 필요성에 한정한다. 그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임무를 완성하고 나면 그 다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마찬가지로 상식인 것이다. &lt;br&gt;&lt;br&gt;그런데도 임무와는 상관없이 상황이 그러하니 죽으라? 살아돌아오지 마라? 그게 애국주의라는 것이다. 실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미국이야 실종자 하나하나에 대해서까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추적해 유해라도 찾으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국군 포로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은 지가 수십년이다. 한국전쟁에서도 그랬고 베트남 전쟁에서도 그랬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한국군 포로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나? &lt;br&gt;&lt;br&gt;항복하는 것이 수치스럽고. 그러니까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어야 하고. 항복했다는 사실만으로 배신자 취급을 하고. 그래서 떠밀리듯 죽어야 함을 알면서도 그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lt;br&gt;&lt;br&gt;그러나 왜 죽어야 하는가? 왜 그런 무의미한 죽음으로 내몰려야 하는가?&lt;br&gt;&lt;br&gt;물론 그럼에도 스스로 죽음을 각오하며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 존경스럽다. 그러나 그것을 강요당하는 입장은 어떨까?&lt;br&gt;&lt;br&gt;민간인의 경우는 더 그렇다. 앞서 박찬호 선수의 예를 들었지만, 박찬호 선수의 경우처럼 팀내 자기 입지도 불안하고, 대표소집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불이익이 큰 경우, 사실 국가대표소집에 불응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자기 선수생활을 위해서, 그리고 당연한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 먼저 자신의 현실과 입장을 최우선으로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여러 사정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소집에 응해 최선을 다한다면 아름답겠지만. 비난받아야 하는가?&lt;br&gt;&lt;br&gt;아니 비단 애국심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선은 어떨까? 누군가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를 위해 헌납한다. 평생 모은 재산의 일부를 - 하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을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기부한다. 아름답다. 그러나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러라 강요하는 것은?&lt;br&gt;&lt;br&gt;개인재산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것이다. 자기가 모은 것이고 자기가 쓰려는 것이다. 그것을 과연 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까닭이 있을까? 그래서 않겠다면? 홍길동이나 로빈훗이 되어 그것을 털자고? 아니 그렇게 욕하고 비난하고 강요해서 억지로 기부를 이끌어낸다면 그것이 도적질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lt;br&gt;&lt;br&gt;자선이란 말 그대로 자기가 내켜서 하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누가 하란다고 해서가 아니다. 누가 하란다고 한다면 그건 자선이라기보다는 강탈이다. 내 돈인데 남이 내놓으라 한다고 내놓으니 그게 강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구나 그렇게 하란다고 아예 외면하고 듣지 않으면 또 어쩌려는가? 굳이 자선을 위해 재산을 내놓지 않겠다고 한다면? 때리겠는가?&lt;br&gt;&lt;br&gt;내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이 그래서다. 사회주의 국가라면 모를까, 아니면 전제군주에게 모든 권리가 있던 왕조국가라면 모를까,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재산은 오롯한 개인의 것이다. 누가 뭐랄 수도 없고, 누가 뭐랄 것도 없다. 그것을 어떻게 쓰든 개인의 자유다. 사회에 도움이 되라고 내놓든, 아니면 개인 하렘을 만들기 위해 쓰든, 딱히 사회적으로 해가 되지 않는 이상에는 무어라 할 수 없는 것이다.&lt;br&gt;&lt;br&gt;차라리 세금을 더 걷던가. 국가가 개입해 돈이 더 많은 만큼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그것으로 합법적, 공식적으로 사회적인 평등을 위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옳다. 딱 이 만큼의 재산을 가진 사람은 그 재산에 대한 사회의 기여도 - 곧 비용이 얼마이므로 그 만큼을 세금으로 거두어 사회유지를 위해 쓴다, 개인에 강요할 수 있는 강제란 여기까지이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어쩌든 아예 신경 쓸 것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노블리스 오블리제 운운하며 당연한 권리에 대해서까지 강요하고 나서니.&lt;br&gt;&lt;br&gt;이게 주의라는 것이다. 물론 주의가 반드시 그런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지향해야 할 바, 혹은 집단이, 사회가 지향해야 할 어떤 가치로써 주의는 한 개인, 혹은 한 사회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혹은 무정부주의이거나 사회민주주의이거나 전제주의이거나... 결국은 개인이 나아갈 바, 사회가 나아갈 바, 그로써 어떠한 일관성을 갖고 그로부터 앞으로 해야 할 바를 그려보고...&lt;br&gt;&lt;br&gt;그러나 그런 것을 넘어 그것이 한 개인에 대한 강요가 될 때, 혹은 집단 속의 무수한 개인에 대해 강제가 될 때,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럴 생각이 없다는데 그러라는 것은? 전혀 동의할 생각이 없는데 억지로 그러라는 것은? 그에 따른 불이익이 가해지고. 심지어 죽고, 다치고, 빼앗기고, 너무나 당연한 권리에 대해서까지도 침해당하는 것은?&lt;br&gt;&lt;br&gt;주의가 오늘에 와서 비판받는 이유도 그래서다. 너무 많았으니까. 그런 예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미국인에 의해 자행된 원주민 학살이라든가,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 당장 우리나라에서만도 보도연맹 사건이나 거창학살, 제주학살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자행되었다. 심지어 그 희생자의 유가족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모이자 아예 그 무덤을 파헤쳐 유해마저 흩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래도 당당했다.&lt;br&gt;&lt;br&gt;&amp;quot;빨갱이는 때려잡아야 하니까!&amp;quot;&lt;br&gt;&lt;br&gt;나라를 위해서, 자유주의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본주의를 위해서, 그래서 죽는 것도 당연하다...&lt;br&gt;&lt;br&gt;어떤 사람들은 그런다. 단지 몰라서 그에 분노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amp;nbsp;직접 보았었다. 광주의 참상을 보고서도, 제주도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해 알게 되어서도, 숱한 학살과 그로 인한 희생자들에 대해 알려주어도 그리 말하는 사람들을.&lt;br&gt;&lt;br&gt;&amp;quot;나라를 위해서!&amp;quot;&lt;br&gt;&lt;br&gt;그게 문제라는 거다. 굳이 나라를 위한다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 그렇다면 지금 당장도 내가 애국심이 없고, 나라를 위할 생각이 없다면, 나라를 위해 나를 죽일 텐가?&lt;br&gt;&lt;br&gt;이것은 중요하다. 과연 내가 애국심을 갖는 것은 이 나라가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어서인가? 아니면 죽기 싫어서인가? 내가 애국심을 갖고 하는 것이 이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해서인가 아니면 애국심이라는 빌미로 죽는 것이 두려워서인가? 재외동포들도 박재범처럼 내쫓기기 싫으니 억지로라도 애국심을 갖는 시늉을 보여야 할까? 그것이 애국심인가?&lt;br&gt;&lt;br&gt;애국심이란 말했듯 자발적인 의지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고 스스로 그것이 옳다 추구하는 것이다. 누구로부터도 강요받지 않는. 누구로부터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그래서 애국심 아니겠는가?&lt;br&gt;&lt;br&gt;그런데 애국심이 없다면? 애국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또한 개인의 선택이다. 생각해 보니 굳이 애국할 이유가 없다는데 누가 뭐라겠는가? 구일본제국의 제국주의적인 정책이 싫어서 구일본제국 정부를 비판하고, 천황을 비판하고, 도리어 조선의 독립운동가들과 연대하려 했던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을 우리가 애국심을 이유로 비판할 수 없듯 말이다.&lt;br&gt;&lt;br&gt;그러나 식민지 조선에서 보통의 인민들이 애국하지 않고 애족하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비난한다. 애국애족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에 항거하지 않고 독립투사가 되지 않았다고. 그러니 다 같은 친일이라고.&lt;br&gt;&lt;br&gt;애국주의의 또다른 폐해가 이것이다. 모두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변별이 사라지는 것이다. &lt;br&gt;&lt;br&gt;어떻게 제국주의의 침략에 앞잡이가 되어 식민지의 인민을 약탈하는데 앞장서고 협력한 것이 단순히 지배에 순응한 것과 같이 취급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식민지의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여 소모하도록 협력한 것들에 대해서까지 단순히 애국심이라는 이유로 같은 것으로 치부한다. 하긴 애국심을 이유로 사람도 죽이는데. 아니 이제는 당시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협력한 것조차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는가?&lt;br&gt;&lt;br&gt;모두가 애국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굳이 애국심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다. 애국심을 강요받을 이유도, 애국심을 이유로 비난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양심, 즉 애국심 또한 개인의 양심에 의한 것일 터다. 그래야 하니까. 그래야 한다고 믿으니까. 따라서 그에 대한 판단도 양심에 의해 내려져야 할 것이다. 과거 나치 독일의 군인과 관료들이 애국과 애족을 이유로 저질렀던 많은 행위들이 범죄로써 지금에 이르러까지 단죄되고 있는 것처럼.&lt;br&gt;&lt;br&gt;양심이라는 것이다. 애국심 이전에 양심이며, 애국심 또한 양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심이란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며,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평가 또한 양심에 비추어 이루어져야 한다. 애국심이어서가 아니라. 애국심이어야 해서가 아니라.&lt;br&gt;&lt;br&gt;분명 애국심은 존경받을만한 가치다. 그러나 애국심이라고 모두 옳은가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더불어 애국심이란 타인에 강요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혼자서 애국하는 것이야 상관없겠지만 남더러 애국하라 강요하며 위해를 끼칠 것은 더욱 아니다. 내가 애국심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면서 애국주의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다.&lt;br&gt;&lt;br&gt;민족주의도 마찬가지다. 민족이야 얼마나 훌륭한 가치인가? 우리고, 우리다. 우리이기에 우리다. 단, 그러나 애국주의가 그러하듯 민족 역시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을 수만 있다면. 민족 역시 양심이라는 것이다. &lt;br&gt;&lt;br&gt;자신이 옳다고 모두가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거다. 자기가 옳다고 모두에게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amp;nbsp;옳다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타인이 옳기를 바랄 때 자신은 어긋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항상. 주의를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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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Nov 2009 23:40:11 +0900</pubDate>
    <category><![CDATA[역사와 철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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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팔극권의 시조 오종吳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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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오종은 자를 홍성이라 하며, 원래 하북성 창현 맹촌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용력과 지혜가 출중하여 사람들 가운데 두드러졌었는데, 마침내 뜻한 바 있어 책을 버리고 무술을 배우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단련하기를 여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밤을 낮삼아 용맹정진하니 그 기세가 자못 놀라운 바가 있었다고 한다.&lt;br&gt;&lt;br&gt;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들일을 마치고 밤늦게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데 난데 없이 도사 하나가 나타나 그에게&amp;nbsp;무술을 겨루어 볼 것을 청해오는 것이었다.(일설에는 승려라고도 한다.) &lt;br&gt;&lt;br&gt;마침 오종 역시 나름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던 터였다. 그래서 떠돌이 도사쯤이야 우습게 보고 겨루기에 응했는데, 웬걸? 그의 눈앞에는 놀라운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겨루기를 마치고 그의 앞에서 다시 시연해 보여주는 도사의 권법은 그가 이제까지 보도 듣도 못한,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세계였다.&lt;br&gt;&lt;br&gt;오종은 더이상&amp;nbsp;망설이지 않았다.&amp;nbsp;바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도사에게 예를 올리며 가르침을 청했다.&lt;br&gt;&lt;br&gt;&amp;quot;불초한 오종이 도사님께 감히 배움을 청합니다.&amp;quot;&lt;br&gt;&lt;br&gt;다행히 마침 도사도 달리 할 일이 없었는지 오종의 청을 받아들여 무려 10년을 그의 집에 머물며 그에게 권법을 가르쳐주게 되었다. 파자권 - 즉 지금의 팔극권이었다. &lt;br&gt;&lt;br&gt;그렇게 10년이 하루같이 흐르고 어느날 도사는 오종을 불러 말했다.&lt;br&gt;&lt;br&gt;&amp;quot;이제 내가 아는 바를 모두 전했으니 나는 이만 떠나도록 하겠다.&amp;quot;&lt;br&gt;&lt;br&gt;그것은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10년을 하루같이 무술을 배운 스승인데 이제 떠나야 한다니. &lt;br&gt;&lt;br&gt;그러나 10년은 긴 시간이었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라 마침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안 오종은 탄식으로 도사를 배웅했다.&lt;br&gt;&lt;br&gt;&amp;quot;10년 공부로 제가 배운 것은 너무나 크고 훌륭한 것들이었습니다. 이제 떠나시면 언제 다시 뵈올 지 모르니 다만 스승님의 함자를 모르는 것이 한입니다.&amp;quot;&lt;br&gt;&lt;br&gt;그러나 도사는 오종에게 이같이 대답했다.&lt;br&gt;&lt;br&gt;&amp;quot;무릇 라癩자를 아는 자는 모두 나의 무리이리라.&amp;quot;&lt;br&gt;&lt;br&gt;그렇게 도사가 떠나고 2년 뒤, 도사의 소식도 끊긴 지도 한참을 지나 다시 한 사내가 오종을 찾아와 무술을 거룰 것을 청해왔다. 겨루기에 응해 그 수법을 살펴보니 바로 스승 라癩의 기법들이었다. &lt;br&gt;&lt;br&gt;오종은 반가움에 사내에게 누구인가 물었다.&lt;br&gt;&lt;br&gt;&amp;quot;나는 벽癖자이니라.&amp;quot;&lt;br&gt;&lt;br&gt;그러나 사내의 대답은 이 짧은 한 마디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러기 위해 그를 찾은 양&amp;nbsp;오종에게 팔극비결 한 권을 전하고는 라가 미처 전하지 못했던 대창술의 기술을 가르쳤다.&lt;br&gt;&lt;br&gt;오종이 대창술까지 다 익히자 벽이라는 이름의 사내는 이번에는 오종을 이끌고 강호를&amp;nbsp;떠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운하를 타고 강남으로 내려갔다. 강남의 여러 지방을 돌며 무술가를 만나 겨루기를 여러 차례, 항주의 어느 절에서는 소림무술의 달인이라는 주지를 꺾고 그로부터 금표를 선물로 받기도 했었는데, 그리고 다시 절북에서 북경으로 나아가 거기서 명성을 떨칠 큰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바로 강희제의 11자이자 당대의 고수로 이름높았던 윤제와 겨루게 된 것이었다.&lt;br&gt;&lt;br&gt;처음 윤제는 오종의 추레한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시골의 이름없는 무술가라 업수이 여기며 적선하듯 시합을 받아주게 되었다.&lt;br&gt;&lt;br&gt;아마 이랬겠지?&lt;br&gt;&lt;br&gt;&amp;quot;대인께 배움을 청합니다.&amp;quot;&lt;br&gt;&amp;quot;허허... 나의 창은 무겁고 둔하네.&amp;quot;&lt;br&gt;&amp;quot;저의 목숨은&amp;nbsp;깃털처럼 가벼워 바람에 날려 사라져도 그 뿐입니다.&amp;quot;&lt;br&gt;&amp;quot;후회하지 않겠나?&amp;quot;&lt;br&gt;&amp;quot;대인의 높으신 실력을 견식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읍할 따름입니다.&amp;quot;&lt;br&gt;&amp;quot;사람이 되었구만. 좋네. 내 잠시 가르침을 내림세.&amp;quot;&lt;br&gt;&amp;quot;감사합니다!&amp;quot;&lt;br&gt;&lt;br&gt;물론 상상이다. 내가 그 시대 살았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자세히 기록에 남은 것도 없다. &lt;br&gt;&lt;br&gt;아무튼 당시라고 무술시합하다가 사람 죽고 죽이고 하는 일이 허용될 리 만무하니 둘이 시합을 벌인 것은 수라고 부르는 대나무 끝에 천을 감아 만든 연습용 창이었다. 그 끝에 횟가루를 묻히고 서로의 몸에 남은 횟가루의 흔적으로 승패를 가늠하는 것이었는데, 수호전을 보면 청면수 양지가 유배지에서 관리인 양중서에게 발탁되는 과정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lt;br&gt;&lt;br&gt;&amp;quot;사술이다!&amp;quot;&lt;br&gt;&lt;br&gt;그러나 시합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끝나고 말았다. 어어 하는 사이, 심지어 눈썹에 흰 횟가루가 묻어 있는 상태에서도 윤제는 그같은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lt;br&gt;&lt;br&gt;속임수라 여기고 다시&amp;nbsp;겨루고 몇 번을 다시 겨루어도,&amp;nbsp;나중에는 아예 횟가루를 밀가루풀로 바꾸어 겨루었음에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윤제는 눈썹에 묻은 밀가루풀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lt;br&gt;&lt;br&gt;그제서야 윤제는 눈앞의 이 추레한 촌뜨기가 자기와는 비교도 안되는 고수임을 알았다.&lt;br&gt;&lt;br&gt;&amp;quot;제가 눈이 어두워 태산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amp;quot;&lt;br&gt;&lt;br&gt;윤제는 자세를 가다금고 얼른 오종을 윗자리로 모셨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언제 거만했느냐 싶게&amp;nbsp;공손히 배움을 청했다.&lt;br&gt;&lt;br&gt;&amp;quot;부디 이 불초한 제자의 눈을 틔워 주십시오.&amp;quot;&lt;br&gt;&lt;br&gt;이로부터 오종에게 한 가지 별호가 붙었으니 신창神槍. 북경무술계의 새로운 바람 신창 오종의 등장이었다.&lt;br&gt;&lt;br&gt;이후 오종은 북경에 머물며 많은 제자를 거두어 가르쳤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머니가 늙자 봉양하고자 낙향하게 되었으니 고향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이들이 백 리 밖에서까지 몰려들어 그 가운데 입신한 이만 15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북성 창현 맹촌의 팔극권의 시작이었다. 오종의 기법은 딸인 오영이 물려받아&amp;nbsp;다시 이대종, 장극명 등에게로 이어졌다.&lt;br&gt;&lt;br&gt;&lt;br&gt;참고로 오종이 윤제와 시합한 시점을 오종이 30대를 넘긴 시점이라고 보았을 때(라에게서 배운 것이 10년, 라로부터 벽이 찾아오기까지가 2년,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시점을 10대 후반으로 잡아도 강남을 여행한 시간까지 계산하면 최소로 잡아 30대 중반이 된다.) 오종의 출생년도는 순치말에서 강희초 사이인 1660년 전후해서일 텐데, 이미 명 가정연간에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에 파자권곤이라는 팔극권의 옛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윤제와 시합한 시점이 1700년 언저리라고 보았을 때 거의 200년의 시간차이가 나는 셈이다.&lt;br&gt;&lt;br&gt;더구나 벽이 찾아와 건낸 책의 제목이 팔극비결이라는 것도 그렇다. 전에도 말한 바 있듯 팔극권의 원래 이름은 파자권으로 팔극권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에 들어서다. 즉 당시까지는 팔극권이 아닌 파자권이었고, 따라서 팔극비결이라는 책음 있을 수도 없고, 있더라도 다른 제목이었어야 했다. 이 역시 문제.&lt;br&gt;&lt;br&gt;다만 이야기가 사실이라 가정했을 때 팔극권의 원류는 아마도 백련교나 홍문 등의 비밀결사가 아니었던가 싶다. 일단 파자권이라는 권법이 이전부터 있었고, 하북성 창현 맹촌에서는 오종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때, 아마도 라라는 도사나 벽이라는 사내는 백련교나 홍문 같은&amp;nbsp;비밀결사의 일원이 아니었을까. 라癩와 같은 불길한 이름을 암호처럼 말하는 것도 그렇고, 무술을 전하면서도 신분을 철저히 숨기는 점, 그리고 무려 10년을 은거하듯 오종의 집에 머물며 무술을 전한 것도 그렇다. 무언가로부터 몸을 숨길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원래 무술가 가운데는 비밀결사에 몸담는 경우가 많았으니.&lt;br&gt;&lt;br&gt;아니 그보다는 오종 자신이 그같은 비밀결사의 일원이었을수도 있겠다. 오종이 굳이 강남을 여행한 것이나, 북경으로 가 유력자들과 교류한 것이나, 라나 벽과 같은 이름들은 그와 관계된 것이 아니었을까? 라가 오종의 집에 머물며 무술을 가르친 것도, 벽이 그를 데리고 강남이며 하북을 여행한 것도. 아닐까?&lt;br&gt;&lt;br&gt;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아닐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지만... 워낙 중국무술이라는 게 처음 무뢰한들 사이에서 전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문인들에게까지 전해지면서 그들에 의해 포장된 부분이 많으니. 팔극권도 그런 게 아닐까... 물론 추측이다. 정확한 사실은 당사자들만이 알겠지. 그냥 이런 게 있다는 것 뿐. 일단은 그렇다. 일단은.&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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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Nov 2009 12:10:36 +0900</pubDate>
    <category><![CDATA[무림비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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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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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도 한 말이지만,&lt;br&gt;&lt;br&gt;가장 좋은 것은 보다 나아지는 것이다.&lt;br&gt;&lt;br&gt;그보다 안 좋은 것은 보다 나빠지는 것이다.&lt;br&gt;&lt;br&gt;그럼 가장 최악은?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 것이다.&lt;br&gt;&lt;br&gt;나아지면야 당연히 좋다. 그러나 나빠지면? 그러면 나중에 더 나아지도록 하면 된다.&lt;br&gt;&lt;br&gt;채우는 것은 비우는 것부터 시작한다. 술자리에서 술을 받으려면 먼저 잔을 비워야 하듯 말이다.&lt;br&gt;&lt;br&gt;모르면 배우면 된다. 그러면 모른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는가? &lt;br&gt;&lt;br&gt;잘못 알고 있다면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면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 아는가?&lt;br&gt;&lt;br&gt;부족함을 알면 그것을 채우면 된다. 그러면 부족함은 또 어찌 알 수 있는가?&lt;br&gt;&lt;br&gt;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면 그대로 모르고 지나가고 마는 거다.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면 평생 그대로 잘못 알고 지낼 뿐이다. 부족함을 모르는데 어찌 채울 수 있을까? 채우려 할 수 있을까?&lt;br&gt;&lt;br&gt;차라리 나빠질 수 있으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도 그런 의미다. 나빠지면 더 좋아지려 할 테니까. 나빠지면 뭐가 문제인지 알려 할 것이고, 그것을 바로잡을 것이고, 장차 더 나아질 수 있을 테니까.&lt;br&gt;&lt;br&gt;그조차도 없다면? 단지 언제고 닥칠 실패를 나중으로 - 어쩌면 더 큰 실패로 미뤄두었을 뿐이다.&lt;br&gt;&lt;br&gt;어린아이가 빨리 배우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이 수다스럽기 때문이다. 뭐가 그리 궁금한 건 많고, 알고 싶은 건 많은지... 모른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족함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고 솔직하게 듣는다. 그것이 아이들이 빨리 배우고 빨리 자란다는 이유다.&lt;br&gt;&lt;br&gt;조금 더 수다스러울 수 있기를. 조금 더 무모할 수 있기를.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내딛을 수 있기를.&lt;br&gt;&lt;br&gt;그러나 또 이 사회의 현실을 알기에 아이들에게 그리 말하지는 못하겠다. 패자에게 잔혹한 사회. 실패자에게 더 가혹한 사회. 한 번 쓰러지면 짓밟고 짓밟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실패를 두려워해야 하는 사회다. 무지를, 오류를, 부족함을 두려워하고 감추어야 하는 사회다.&lt;br&gt;&lt;br&gt;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말한다.&lt;br&gt;&lt;br&gt;&amp;quot;넌 그런 것도 모르니?&amp;quot;&lt;br&gt;&lt;br&gt;아이들은 그 순간부터 침묵을 배우게 된다. 마치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부끄러움을 알고 몸을 가리기 시작했듯 아이들도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와 부족함을 부끄러워하며 그것을 감추기 시작하는 것이다.&amp;nbsp;아이가 아니게 되는 순간이다.&lt;br&gt;&lt;br&gt;그렇게 사람들은 침묵을 배우고 자신을 감추는 것을 배운다. 감추다 감추다 그것을 지키려 난폭해지고 잔인해지고...&lt;br&gt;&lt;br&gt;&amp;quot;넌 그런 것도 모르니?&amp;quot;&lt;br&gt;&lt;br&gt;어느새 그 말을 배워 써먹기 시작하고...&lt;br&gt;&lt;br&gt;바다 위에 보트를 띄워놓고 가만히 있으면 어느 샌가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이 흘러가듯 시간은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중간은 간다는 말은 그 시간 속에 어느샌가 멀리 떠밀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게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중간이기 위해서는 항상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오리가 물에 떠 있기 위해 쉴 새 없이 발을 젓듯 그렇게 떠들고 부딪히고 좌절하고...&lt;br&gt;&lt;br&gt;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게 아니다. 당장은 중간이더라도 그것은 멈추어 선 중간이다. 세상에 멈추어 있는 것은 없다. 모두가 움직이는데 홀로 멈추어 중간이라는 것은 곧 도태를 뜻한다.&lt;br&gt;&lt;br&gt;침묵을 강요하는 사회란...&lt;br&gt;&lt;br&gt;중요한 것은 먼저 부족함을 아는 것이다. 모자름을 아는 것이다. 어리석음을 아는 것이다. 무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것들을 채우고 메꾸어 일어서 나아가는 것이다. 침묵이 아니라.&lt;br&gt;&lt;br&gt;&amp;quot;모르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amp;quot;&lt;br&gt;&lt;br&gt;하긴 그 또한 꿈일까? 가만히 있어도 현상은 유지되는.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도 인간의 특권일 테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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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4 Nov 2009 07:50:34 +0900</pubDate>
    <category><![CDATA[역사와 철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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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윤계상 논란을 보면서...]]></title>
    <description>
        &lt;p&gt;이럴 것 같았다. 윤계상의 인터뷰내용을 처음 보았을 때 처음 떠올린 것이 그것이었다.&lt;br&gt;&lt;br&gt;&amp;quot;피라니아들이 떡밥을 물겠구나!&amp;quot;&lt;br&gt;&lt;br&gt;아니나 다를까...&lt;br&gt;&lt;br&gt;그러나 예상했음에도 나를 더욱 황당하게 화나게 만드는 반응들이 있었으니,&lt;br&gt;&lt;br&gt;&amp;quot;모르면 입닥쳐!&amp;quot;&lt;br&gt;&amp;quot;배부른 줄 알아야지...&amp;quot;&lt;br&gt;&lt;br&gt;몇몇은 나도 아는 자칭 좌파고, 몇몇은 좌파까지도 당당히 비판하는 고결한 민주개혁계열이었다. 윤계상의 인터뷰 내용이 얼핏 이해가 되었달까?&lt;br&gt;&lt;br&gt;먼저 전자인,&lt;br&gt;&lt;br&gt;&amp;quot;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한 게 문제다!&amp;quot;&lt;br&gt;&amp;quot;모르면 말을 말았어야 한다!&amp;quot;&lt;br&gt;&lt;br&gt;묻는다. 과연 모든 사안에 있어 한 점 흠결 없이 오롯한 사실만을, 진실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대학교수? 아니면 저명한 언론인? 학자? 아니면 자칭 논객들? &lt;br&gt;&lt;br&gt;자칭 진보입네 개혁입네 하는 인간들 쓴 글을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오류들이 있던가? 오죽하면 내가 그런 말까지 한다.&lt;br&gt;&lt;br&gt;&amp;quot;한국진보는 무식해!&amp;quot;&lt;br&gt;&lt;br&gt;그러나 그럼에도 문제가 안되는 것은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lt;br&gt;&lt;br&gt;당연하지 않은가? 진보입네 개혁입네 지식인이고 논객이라 하더라도 각자 자기 전문분야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전문분야를 넘어서면 결국 그들도 보통사람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지식만 가진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자신의 전문분야를 제외하고 아예 말도 꺼내지 말라고?&lt;br&gt;&lt;br&gt;이건 민주주의의 기본에 대한 것이다. 당장 더 많은 보통 사람들이 그들만큼도 알지 못한다. 아예 모르거나, 잘못 알거나, 알아도 부실하거나... 그렇다고 그런 것들에 대해 자기 의견을 피력조차 할 수 없을까?&lt;br&gt;&lt;br&gt;&amp;quot;국회의원도 잘 모르는 것을 국민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여론조사는 무의미합니다.&amp;quot;&lt;br&gt;&lt;br&gt;어떤가? 과연 이 말이 옳게 들리는가?&lt;br&gt;&lt;br&gt;같은 거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잘못 알고 있으면 바로잡으면 된다. 어떻게 배우는가? 어떻게 바로잡는가? 먼저 듣고, 그리고 먼저 말하고, 먼저 말하고 나서 듣고...&lt;br&gt;&lt;br&gt;표현하지 않는데 어찌 아는가? 내가 모르고 있는지 잘못 알고 있는지. 대화가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소통이란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다. 오류투성이이고 모든 것이 서툴고 미욱함에도.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잘못 알고 있으면 또 그대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떠들고 소통하며 조금씩 바로잡아 나가는 것이다. 그게 공동체다.&lt;br&gt;&lt;br&gt;그래서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드는 것이다. 아무리 학교도 못 다니고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불학무식일지라도 스스로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아는 바를, 주장하고 싶은 바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간과하고 지나쳤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기도 하고, 혹시라도 잘못 알고 있거나 하면 바로잡기도 하고, 바로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두가 그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에.&lt;br&gt;&lt;br&gt;논객입네, 지식인입네, 같다. 그들이라고 별다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이 자기 주장을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은 그들이 많이 알아서가 아니다. 남들보다 생각이 깊고 풍부해서도 아니다. 별다른 존재여서가 아니라 단지 이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써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자기 주장을 말하고, 그런데 그 가운데 알고 보니 남들보다 많이 알고, 더 많이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게 논객이다. &lt;br&gt;&lt;br&gt;옳아서가 아니다. 오류가 없어서가 아니다. 무수한 이 사회를 이루는 개인 가운데 나중에 보니 그런 사람들도 있더라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들 역시 여러 오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지식과 생각과 주장을 당당히 펼 수 있는 것이고.&lt;br&gt;&lt;br&gt;그런데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함부로 떠드는가? 비슷한 게 있다.&lt;br&gt;&lt;br&gt;&amp;quot;어린 녀석이 어딜 감히!&amp;quot;&lt;br&gt;&lt;br&gt;나이 지긋한 어르신께 자칫 말대답이라도 할라치면 돌아오는 대답이다. 그 차이는?&lt;br&gt;&lt;br&gt;당장 작년 촛불시위 때도 그랬었다. 미디어법에 대해서도 그랬었다. 대운하도. 4대강도.&lt;br&gt;&lt;br&gt;&amp;quot;국민들이 잘못된 정보로 인해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amp;quot;&lt;br&gt;&amp;quot;단지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 잘못 알고 저러는 것이다.&amp;quot;&lt;br&gt;&lt;br&gt;과연 그 차이는?&lt;br&gt;&lt;br&gt;&lt;br&gt;여기에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이,&lt;br&gt;&lt;br&gt;&amp;quot;스타 아이돌 출신이라 받은 혜택이 있는데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한다!&amp;quot;&lt;br&gt;&lt;br&gt;이 비슷한 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적 있다.&lt;br&gt;&lt;br&gt;여객기 기장들이 파업을 하니까 그런 소리들이 들려왔었다.&lt;br&gt;&lt;br&gt;&amp;quot;고액연봉을 받는 주제에 배부르다!&amp;quot;&lt;br&gt;&lt;br&gt;대기업 노조가 파업을 하니까 역시 그런 소리가 들렸었다.&lt;br&gt;&lt;br&gt;&amp;quot;중소기업 노동자를 생각해라! 배부른 짓거리다!&amp;quot;&lt;br&gt;&lt;br&gt;중소기업 노동자들이 파업하니까 또 그런 소리가 들렸었다.&lt;br&gt;&lt;br&gt;&amp;quot;비정규직 노동자를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다!&amp;quot;&lt;br&gt;&lt;br&gt;이번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했다.&lt;br&gt;&lt;br&gt;&amp;quot;실업자를 생각해라! 차라리 다 잘라버리고 실업자들 취직이나 시켜라!&amp;quot;&lt;br&gt;&lt;br&gt;같은 논리대로라면 어렵사리&amp;nbsp;배역 하나&amp;nbsp;따낸 어떤 배우들도 자신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해서는 안되겠네?&lt;br&gt;&lt;br&gt;&amp;quot;그나마 당신들은 배역이라도 얻었지, 세상엔 배역 하나 따내지 못해 배우가 부업이 된 사람도 수두룩하다.&amp;quot;&lt;br&gt;&lt;br&gt;재벌기업 회장이더라도 다 자기 나름의 사정은 있는 거다. 대학교수고, 국회의원이고, 대통령이고, 하다못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힌 흉악범도 자기 나름의 사정은 있고 고충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어떠하니 말하지 말까?&lt;br&gt;&lt;br&gt;앞서 말했다.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여기에는 그 신분이나 계급, 현재 처한 상황에 따른 터부가 있어서는 안된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흉악범일지라도, 당장 이 사회를 위협하던 스파이거나 적군 포로일지라도 인간으로서 당연히 자기 입장을, 생각을, 주장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름의 어려움을, 고충을, 고민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lt;br&gt;&lt;br&gt;단, 그건 있다. 말한다고 다 들어주는 건 아니라는 것. 즉 말이야 하는 사람의 자유더라도 그것을 들어주는 것도 듣는 사람의 자유라는 것이다. 그럴만 하면 들어주는 것이고, 아니면 무시하는 것이고. 그만한 사정이 있다 인정하면 그것을 들어주는 것이고, 영 개소리 헛소리다 싶으면 한 번 면박도 주고 하는 것이고.&lt;br&gt;&lt;br&gt;배부른 소리 한다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정황이 있으니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당신이 납득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 사정을 들어주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러면서 보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사실을 보고 분석하고 들려주고...&lt;br&gt;&lt;br&gt;그러라고 배우는 것 아닌가? 그러라고 글도 쓰고 말도 하고 논리적으로 쓰고 말하도록 훈련받는 것 아니던가? 스스로 모르면 아예 말을 말라 할 정도라면 당연히 그것이 기본일 것이다.&lt;br&gt;&lt;br&gt;그런데 하는 소리가,&lt;br&gt;&lt;br&gt;&amp;quot;배부른 소리 하고 앉았네, 닥쳐!&amp;quot;&lt;br&gt;&lt;br&gt;나나 내 주위에서는 그런 소리 한다. 왜? 그렇게 장황하게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충분한 지식이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마찬가지로 윤계상과 같이 잘 알지도 훈련도 되지 않은 무식한 사람들이니까. 같이 놀려고?&lt;br&gt;&lt;br&gt;&lt;br&gt;웃기는 건 이따위 소리를 하는 인간들이 평소 진보입네 개혁입네 근엄떨던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어째? 서민이 어떻고 소외받는 계층이 어째? &lt;br&gt;&lt;br&gt;내가 윤계상의 말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한 것도 그런 점들 때문이다. 나 역시 말했듯 경험한 바 있으니까. 자칭 진보, 자칭 개혁들의 그 허위의식을. 보통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고약한 우월의식과 특권의식을.&lt;br&gt;&lt;br&gt;&amp;quot;어리석은 대중의 하나에 불과하니 신경쓸 필요 없습니다.&amp;quot;&lt;br&gt;&amp;quot;그래봐야 대중은 어리석으니까요. 무시하세요.&amp;quot;&lt;br&gt;&lt;br&gt;나는 그런 말이 자칭 좌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 굉장히 놀랐었다. 그러나 이내 알게 되었다. 그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인식이라는 것을. 이번 윤계상의 경우처럼.&lt;br&gt;&lt;br&gt;묻는다. 과연 윤계상이 배우가 아니었다면 저런 소리들을 들었을까? 윤계상이 대학도 나오고 그래도 먹물티도 나는 배우였다면 저렇게까지 모욕적인 소리들을 들어야 했을까? 연예인 가운데서도 가장 천시되는 아이돌 -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수도, 배우도, 뭣도 아닌 보이는 게 전부인 그런 부류라는 것이 과연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은 것일까?&lt;br&gt;&lt;br&gt;참 슬픈 현실이다. 저따위 인간들이 진보입네 한다는 것이. 개혁입네 한다는 것이. 저 입으로 관용을 말하고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것이. 자유를 말하고 인권을 말하고.&lt;br&gt;&lt;br&gt;물론 전부는 아니다. 전부였다면 나는 애저녁에 그쪽 인사들을 포기했을 것이다. 말했듯 누구나 오류는 저지르고, 단지 그 오류를 제하고 나면 나름 쓸만한 사람들이다. 그 오류가 때로 사람 속 뒤집어지게 만들 뿐.&lt;br&gt;&lt;br&gt;돌이켜 보기를 바란다. 과연 자신을 그리 어떤 오류도 잘못도 없이 완전무결한가? 나는 과연 나의 생각이나 주장을, 나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특별한가?&lt;br&gt;&lt;br&gt;모를 수도 있다. 실수할 수도 있다. 그 잘못을 지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그 모든 말과 주장을 원천적으로 막고 부정할만한 이유가 되는가? 더구나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까지 한 것을 그렇게까지.&lt;br&gt;&lt;br&gt;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너무 뻔한 반응들이라 하겠다. 뼈다귀 던져주면 물고 헥헥거리고... 붕어마냥 어제 한 일도 잊고 다시 헥헥거리고... 그게 또 네티즌이라는 거겠지만. 인간이라는 것일 테고. 하여튼.&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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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3 Nov 2009 22:54:53 +0900</pubDate>
    <category><![CDATA[잘난맛에 칼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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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관용이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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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관용이란 한 마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일 것이다. 나는 옳은가? 나는 바른가? 나는 잘못되지 않았는가?&lt;br&gt;&lt;br&gt;지금 내가 하는 말이 과연 진정으로 옳고 그릇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회의가 나와 다른 주장에 대해 관용하게 만드는 것이다.&lt;br&gt;&lt;br&gt;이성이란 의심하는 것이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오롯한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lt;br&gt;&lt;br&gt;단,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lt;br&gt;&lt;br&gt;세상에 가장 두려운 것이 내가 옳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못나고 어리석고 부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내가 혹시 불필요한 존재가 아닐까...&lt;br&gt;&lt;br&gt;그래서 사람들은 또한 의심이 들기에 더 완고해지기도 한다.&lt;br&gt;&lt;br&gt;틀린 걸 안다. 분명 그것지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안다. 아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amp;nbsp;그러나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인정하는 순간 마치 자기가 진 것 같고, 도태된 것 같고, 도태될 것 같고, 그래서 아예 다른 가능성을 말살해 버린다.&lt;br&gt;&lt;br&gt;&amp;quot;어딜 감히!&amp;quot;&lt;br&gt;&lt;br&gt;그것은 자신에 대한 보호본능이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나는 어리석지 않아! 나는 무능하지 않아! 나는 못나지 않아!&lt;br&gt;&lt;br&gt;그러나 그 자체가 사실 못난 것이다. 지금 부족하면 채우면 되는 것 아닌가? 지금 모자르면 그만큼 채워 놓으면 그만이다. &lt;br&gt;&lt;br&gt;어려서 고아가 되어 매부에게 얹혀 살던 여몽은 제대로 배우지 못해 손책을 따라다니며 여러 싸움에서 공을 세워 장군의 지위에까지 올랐지만 학식이 부족하여 그 이상으로는 오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에 그를 안타까이 여긴 손권이 권하여,&lt;br&gt;&lt;br&gt;&amp;quot;공자께서도 책을 가까이 하라 하셨고, 광무제도 전장에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소. 이제부터라도 공부에 힘을 씀이 어떠하오?&amp;quot;&lt;br&gt;&lt;br&gt;마침내 몇 년이 지나 노숙이 그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에는 당대의 재사인 노숙마저 놀라게 할 정도가 되었다.&lt;br&gt;&lt;br&gt;&amp;quot;자네는 이제 오나라의 그 여몽이 아니로구먼非復吳下阿蒙.”&lt;br&gt;&amp;quot;사람을 사흘 만나지 않고 있으면 바로 눈을 바로 뜨고 상대를 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세士別三日 卽更刮目相對.”&lt;br&gt;&lt;br&gt;유명한 괄목상대의 고사다.&lt;br&gt;&lt;br&gt;과연 여몽이 그래도 장군이라고, 공이 있다고 배움을 소홀히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히려 자신을 무시한다 윽박지르려고만 들었다면? 자신의 공과 지위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불만만 품고 있었다면?&lt;br&gt;&lt;br&gt;현재에 만족하고 말 사람이었다면 손권이 그를 그리 중히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유와 노숙의 뒤를 이어 오의 도독이 되고 마침내 양양의 관우를 잡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그릇이 되었기 때문이었다.&lt;br&gt;&lt;br&gt;한계를 먼저 인정하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한계가 아니게 된다...&lt;br&gt;스스로 부족함을 먼저 인정하고 나면 부족함은 곧 가능성이 된다...&lt;br&gt;&lt;br&gt;사실 쉬운 게 아니다. 살다 보니 깨닫게 되는 것이 그것이지만 그러나 머리로 안다고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쉽다면 세상이 이리 어지러울까?&lt;br&gt;&lt;br&gt;그래서 항상 후회되는 것이 그것이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만 있었다면. 나의 어리석음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내가 못난 것을 오기를 부리지 말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lt;br&gt;&lt;br&gt;물론 그렇다고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여기서 전제는 나 또한 이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일 터이니. &lt;br&gt;&lt;br&gt;내가 무조건 옳다는 믿음은 버리는 것이 좋다. 내가 무조건 맞다는, 내가 남들보다 낫다는 근거없는 확신도 버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래도 결코 버려서는 안되는 것, 그것은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나의 가능성, 나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lt;br&gt;&lt;br&gt;사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관용도 가능한 것이다. 관용이란 더 나아질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여유이기도 할 것이니.&lt;br&gt;&lt;br&gt;어찌 보면 역설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있기에 의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자기 자신에 대해 거침없이, 거의 무한정으로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의심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의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까지도 끊임없이 탐욕할 수 있는 것이다. &lt;br&gt;&lt;br&gt;하긴 믿음이 없는데 어찌 의심할 수 있을까? 의처증도 아내라고 하는 믿음이 전제되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의심부터 할 수 있을까?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과연 의심이란 가능할까? 다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의심이 또한 그에 대한 침해일 수도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 뿐이다.&lt;br&gt;&lt;br&gt;먼저 의심하라,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lt;br&gt;&lt;br&gt;&amp;quot;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amp;quot;&lt;br&gt;&lt;br&gt;생각이란 곧 의심이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또 의심했을 때 남는 것은 의심하고 있는 자신이라. 그러나 그 의심하고 있는 자신마저도 의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관용이다.&lt;br&gt;&lt;br&gt;뭐 말로만 그렇고 사실 나도 못하는 것이다. 역시나 나 또한 컴플렉스 덩어리라 내가 못나고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그리 힘들다. 의심하기에는 자아가 확고하지 못해서. 그래서 발전이 없다. 항상 그 자리. 세상에 말로 떠드는 만큼만 행동할 수 있다면 뭔들 힘들까?&amp;nbsp;&lt;br&gt;&lt;br&gt;남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기를. 그러나 그 전에 자신을 믿기를. 자신의 눈을, 귀를, 머리를, 가슴을, 그리고 가능성을.&lt;br&gt;&lt;br&gt;자신의 부족함을 아는데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용납 못할 일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데 다른 사람의 어리석음을 용납 못할 일이 어디있을까? 다른 사람의 오류도, 다른 사람의 잘못도, 나 또한 오류이며 잘못될 수 있는 것을. 그러나 버려서는 안되는 것, 그럼에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 희망. 믿음.&lt;br&gt;&lt;br&gt;관용이란 그런 것일 게다. 먼저 자신을 알고 그를 통해 남을 알고 그리고 믿는. 특히 자기를 믿고 의심할 수 있는.&amp;nbsp;아마도.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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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3 Nov 2009 00:11:43 +0900</pubDate>
    <category><![CDATA[역사와 철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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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자살도 권리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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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오래전부터 느껴오던 것이었다.&lt;br&gt;&lt;br&gt;&amp;quot;나에게는 정의감이란 없구나...&amp;quot;&lt;br&gt;&lt;br&gt;정의감이란 옳은 것을 옳다고 여기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신념이고 의지다. 이 가운데 특히 의지다.&lt;br&gt;&lt;br&gt;이것이 옳다. 모두가 그래야 한다. 이것이 바르다. 역시 모두가 그래야 한다. 혼자만 옳고, 혼자만 바르고... 그런 건 없다. 그런 경우더라도 결국은 모두가 함께 옳고 함께 바르기를 바라게 된다.&lt;br&gt;&lt;br&gt;그런데 내게는 그런 게 없다. &lt;br&gt;&lt;br&gt;&amp;quot;냅둬, 그렇게 살다 죽게...&amp;quot;&lt;br&gt;&lt;br&gt;내 입버릇이다. &lt;br&gt;&lt;br&gt;물론 바로 앞에서 어린 녀석들이 노인네 폭행하고 하면 나라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가끔 무모한 짓도 하다가 꽤 곤란한 경우를 당하기도 했는데,&lt;br&gt;&lt;br&gt;그러나 그것을 정의감이라 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고 남들도 그러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lt;br&gt;&lt;br&gt;&amp;quot;그러거나 말거나...&amp;quot;&lt;br&gt;&lt;br&gt;어쩌겠는가? 싫다는데. 마음에 안든다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는데. &lt;br&gt;&lt;br&gt;설득이란 환상이다. 세상에 설득처럼 힘든 일은 없다. 아예 불가능하다. 스물 이전이라면 어떻게든 권위의 힘을 빌어서라도 설득이 가능하지만 스물 넘어서고 나면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더구나 나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말을 잘하나? 생각을 논리있게 하나? 뻑하면 화내고, 흥분해서는 어버버버거리고... 그렇다고 내가 설득되는 것도 아니고.&lt;br&gt;&lt;br&gt;아예 설득이 불가능하다면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래서 친구와 만나서도 서로 의견이 충돌하면 그런다.&lt;br&gt;&lt;br&gt;&amp;quot;그만하자. 더 이야기해서 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감정만 상해.&amp;quot;&lt;br&gt;&lt;br&gt;그대로다.&lt;br&gt;&lt;br&gt;&amp;quot;자살도 권리다.&amp;quot;&lt;br&gt;&lt;br&gt;이 말에는 한 마디가 더 따라붙는다.&lt;br&gt;&lt;br&gt;&amp;quot;죽는 걸 보는 건 괴롭지만 그렇게 죽겠다는 데 어쩌겠느냐?&amp;quot;&lt;br&gt;&lt;br&gt;그렇지 않은가? 옆에서 죽겠다 난리치면 당장 말리게 된다. 당사자의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내가 보기 불편하니까. 아프고, 슬프고, 화나고, 짜증나고... 그러나 그래도 죽겠다면 또 어쩔 수 없는 거다. 죽겠다고 해서 죽었는데 그 다음에 내가 어쩌겠는가?&lt;br&gt;&lt;br&gt;아마 내가 별 더러운 꼴, 어이없는 꼴을 많이 보고 살아와서 그런지 모르겠다. 즉 내 삶에서 인간의 부조리와 모순이란 인간의 일상적인 본성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부정할 필요도 없고, 굳이 그것을 바로잡을 필요도 없는. 아니면 좋지만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크게 문제는 아닌.&lt;br&gt;&lt;br&gt;그래서 의외로 고루하기 이를 데 없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일탈에 대해 꽤 관대한 편이기도 하다. 혼외정사라든가, 미성년자의 성행위라든가, 심지어 성매매에 대해서까지도. 단, 다른 사람에게&amp;nbsp;- 즉 내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대개는 작기 알아서 할 바라 넘어간다. 사람이 넓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런 것까지도 인간의 본성이라 인정하는 때문이다. 범죄만 아니면 된다.&lt;br&gt;&lt;br&gt;그래서 아마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블로그에서 그렇게 과격하게 주장을 하면서도 내가 항상 전제하는 것이 있다. 옳다가 아니라 좋다, 틀렸다가 아니라 싫다, 그르다가 아니라 마음에 안 든다,&lt;br&gt;&lt;br&gt;솔직히 그게 옳은지 내가 어떻게 아는가? 그게 틀렸는지 또 내가 어떻게 알고? 내가 신인가? 내가 전지전능한 존재인가? 내가 읽고, 혹은 주워들은 것들 역시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어찌 아는가? 다만 당장의 내가 보고 듣고 판단하기에 그것이 더 옳아 보이고, 그것이 더 그른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옳다, 그르다, 정확히는 좋다, 싫다 이야기할 뿐이다. 설사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 또한 나로서는 할 수 없는.&lt;br&gt;&lt;br&gt;인간은 모두가 독립적인 존재다. 어떤 인간도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설득이든 조언이든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스스로가 할 바고.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듯 어차피 다른 사람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바로 알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하는 조언이나 충고는 또 얼마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겠는가? 얼마나 적확하며 얼마나 올바른 것이겠는가?&lt;br&gt;&lt;br&gt;결국에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스스로 보고 듣고 스스로의 뇌로 판단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오롯한 자신의 권리다. 권리 이전의 존재다. 그것을 누가 감히 뭐라 어찌할 수 있을까?&lt;br&gt;&lt;br&gt;그래서 그냥 좋은 거다. 그래서 그냥 싫은 거다. 옳고 그름은 상대가 판단할 몫이다. 그것이 얼마나 옳고 얼마나 그른가는 상대가 알아서 스스로 판단하여 결론을 내릴 일이다. 나는 그 한 근거를, 그 판단에 도움이 될만한 한 근거를 제공하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상도 아닌 그것에 불과하다. 죽는 것이야 자기 마음이더라도.&lt;br&gt;&lt;br&gt;물론 그런 건 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쿨할 수는 없다. 당장에 그가 어떻게 되면 내가 아픈데. 그가 어떻게 잘못되면 내가 그리 슬플 건데. 어찌 알아서 판단하라 내버려둘 수 있을까? 결국에 타인이니까. 남이니까.&lt;br&gt;&lt;br&gt;하긴 당장 사랑하더라도 어느 순간 남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게 사람이다. 아무리 깊이 사랑하더라도 결국에는 서로 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옳은 것이 아닌 좋은 것일 수밖에 없다. 그른 것이 아닌 마음에 안 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상대가 곧 내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lt;br&gt;&lt;br&gt;아무튼 그래서 자살도 권리라는 것이다. 죽는 것이야 자기 선택하기 나름, 그러나 나는 그것이 싫어 무어라도 한 마디 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이 받아들여지거나 무시당하거나 그 다음은 알아서 할 바다.&lt;br&gt;&lt;br&gt;사람이 하는 착각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다른 사람을 내가 어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옳게 가르치고 바르게 이끌고... 남도 나처럼, 다른 사람도 내 뜻대로... 그것만 아니었어도 세상은 이보다는 몇 배 더 평화로웠으련만. &lt;br&gt;&lt;br&gt;&amp;quot;왜 나는 이런데 넌 그래?&amp;quot;&lt;br&gt;&lt;br&gt;이 한 마디야 말로 모든 싸움의 발단이 아닐까?&lt;br&gt;&lt;br&gt;다르다는 것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르다고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조금만 게을러지고 무책임해지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lt;br&gt;&lt;br&gt;&amp;quot;자살도 권리다.&amp;quot;&lt;br&gt;&lt;br&gt;자살을 막고자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기를. 항상.&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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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1 Nov 2009 22:49:54 +0900</pubDate>
    <category><![CDATA[역사와 철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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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그놈이 그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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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우연히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다른 건 제끼고,&lt;br&gt;&lt;br&gt;&amp;quot;이데올로기의 차이가 10이라면 정당의 차이는 5, 후보자의 차이는 1~2더라. 정치란 결국 이익싸움이 아닌가?&amp;quot;&lt;br&gt;&lt;br&gt;확실히 정치에 관심이 없는 세대라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lt;br&gt;&lt;br&gt;당연하다. 사람에게는 기표와 기의가 있다. 일본어로 혼네와 타테마에. 우리말로 속내와 겉치레.&lt;br&gt;&lt;br&gt;당장 소개팅을 나갔다. 친한 친구가 소개시켜준 자리다. 친한 친구와도 가까운 사이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든다. 어쩔까?&lt;br&gt;&lt;br&gt;&amp;quot;씨발! 메주덩어리 같으니! 꺼져!&amp;quot;&lt;br&gt;&lt;br&gt;설마...&lt;br&gt;&lt;br&gt;그래서 적당히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이 있는 거고, 또 그것을 알아듣고 알아서 물러나는 에티켓도 있는 것이고.&lt;br&gt;&lt;br&gt;겉으로 드러난 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겉으로야 다른 사람들 눈도 있고 하니 자기를 최대한 숨긴다. 숨긴다고 그것이 전부라 여긴다면 딱 사기당하기 좋은 인간이라 하겠다. 사기꾼이 그런 건 기가 막히게 하거든.&lt;br&gt;&lt;br&gt;어차피 대중이 바라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세부적으로는 각자 다를지 몰라도 집단이 되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란 한정되어 있고, 따라서 그를 만족시킬 수 있는 수단도 한정된다.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식품의 맛이 고만고만한 것은 그래서다. 프랜차이즈 식당의 음식맛이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아이돌의 음악이 딱 고만한 달콤함과 짭짤함과 기름진 맛을 갖는 거도 그래서다. 그래야 대중에 보다 어필할 수 있을 테니까.&lt;br&gt;&lt;br&gt;정치도 다르지 않다. 결국에 표를 얻자면 대중에 호소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그들이 바라는 바를 쫓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때로 자신의 속내마저 숨겨가며. 정당도 그렇고, 개인은 더 그렇고.&lt;br&gt;&lt;br&gt;즉 공약이란 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의 속내라기보다는 대중에 영합하기 위한 겉치레다. 그래서 공약公約은 바로 공약空約이 되어 버리곤 한다. 어차피 지킬 생각도, 의지도, 능력도 없었으니 당연할 밖에.&lt;br&gt;&lt;br&gt;그래서 보다 입체적으로 후보자를 살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가 그동안 해 온 말들이나, 보인 행적들, 예를 들어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정작 그와 가까운 인사 가운데&amp;nbsp;대학 재단이나 학장등의&amp;nbsp;관련인사들이 많다면 어떨까? 과연 그런 것까지 감안하더라도 후보자의 차이는 그렇게 적을까?&lt;br&gt;&lt;br&gt;물론 그건 있다. 지난 대선의 경우 원래 한나라당에서 출마했어야 했을 인사 두 명이 추가로 출마했다. 이인제도 나왔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러면 셋 되겠고. 정동영, 이회창, 이인제, 여기에 이명박까지. 이러면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긴 하겠다. 그러나 또 그럴 때는 정당을 보는 거다. 소속정당을 보면 장차 개인이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그것을 떠받치거나 견제할 환경이 눈에 보일 테니까. 이 역시 마찬가지.&lt;br&gt;&lt;br&gt;다단계도 그냥 하는 이야기만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는 돈벌이 수단이다. 세상에 들어서만 좋은 게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래서 이면을 입체적으로 보는 게 필요한 거고.&lt;br&gt;&lt;br&gt;아무튼 그런 부분까지 제대로 살피지 않고 지레 판단한다는 자체가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는 방증이라 하겠다.&lt;br&gt;&lt;br&gt;&amp;quot;어차피 그놈이 그놈&amp;quot;&lt;br&gt;&lt;br&gt;그대로.&lt;br&gt;&lt;br&gt;뭐 내 입장에서 찍는 놈이나 찍히는 놈이나 그놈이 그놈이기는 하지만. 별로. 귀찮다. 이제는. 다.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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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1 Nov 2009 00:55:51 +0900</pubDate>
    <category><![CDATA[잘난맛에 칼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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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만일 이순신이 지금 나타난다면...?]]></title>
    <description>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전쟁이 났다. 그래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한 뛰어난 지휘관이 나타나 전세를 역전시키고 승리를 일구었다. 과연 나는 그 영웅에 대해 어찌 대하겠는가?&lt;br&gt;&lt;br&gt;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답은 바로 나왔으니까. 아마 나의 다른 블로그를 본 사람이라면 그 답을 짐작하리라.&lt;br&gt;&lt;br&gt;바로 안티가 된다. 물론 생각없이 쫓아다니며 욕질하는 그런 안티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이미 나이도 그렇고 체력도 딸린다. 다만 그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쓰고 감시하고 바로 비판하는 그런 적극적인 비판자로서의 안티다. 왜? 영웅이니까.&lt;br&gt;&lt;br&gt;전에도 밝힌 바 있지만 나는 무척 보수적이고 고루하다. 현재의 질서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그것을 벗어나거나 부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자칭보수들을 싫어하는 것도 바로 지금 우리가 일구어 놓은 것들 -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고 훼손하고 부수려 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반역인 거다. 어찌 그런 것을 그냥 보아 넘길까?&lt;br&gt;&lt;br&gt;영웅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영웅이란 한 개인이되 또한 역사다. 한 개인의 힘으로 역사를 움직일 수 있기에 영웅이다. 물론 한 개인의 힘으로써만은 아니다. 그 영웅을 중심으로 한 대중의 힘에 의해서다.&lt;br&gt;&lt;br&gt;영웅이란 곧 카리스마다. 카리스마란 위임이며 의존이다. 자신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를 내맡기고, 그에게 기대고 싶은 것.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따르고 싶은 것. 원숭이 무리에서 우두머리 원숭이를 쫓는 원숭이들을 떠올려 보면 되겠다.&lt;br&gt;&lt;br&gt;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 사실 나도 머리로만 알았지 그게 그렇게 심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2003년 노무현 전대통령을 지지하는 모사이트에서 놀다가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lt;br&gt;&lt;br&gt;어제까지 이라크 전쟁을 함께 반대하며 반전시위에도 나가고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노무현이 파병을 결정하는 순간 파병반대론자들은 평화주의자가 되고,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상주의자가 되어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새만금 때도 새만금 간척지에 함께 반대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반대론자들을 두고서는 몽상가라 욕하고 있다. 무얼까?&lt;br&gt;&lt;br&gt;FTA에 반대하다가도 노무현이 한다면 바로 찬성한다. 의료민영화, 수도민영화, 노무현이 한다고 하니까 좋다며 논리를 만들어내고 찬성한다. 하다못해 4대 개혁입법에 대해서도 노무현이 철회를 주장했을 때 그를 지지하고 있었다. 한나라당을 그렇게 비난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예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구국의 결단이라며 추앙한다. &lt;br&gt;&lt;br&gt;어느 순간 그 사이트를 보며 느꼈던 오싹한 혐오감과 공포는 바로 그래서였다. 이건 뭔가 미쳤다? 오로지 한 인물에 대해 좋게 쓰거나 나쁘게 쓰는 것으로 언론의 가치를 판단하며 주저없이 쓰레기라 매도한다. 한겨레가 한걸레가 되고, 오마이가 좆마이가 되고, 경향이 똥향이 된 것이 바로 그들에 의해서였다. 이건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lt;br&gt;&lt;br&gt;하긴 그렇다고&amp;nbsp;지난 정부만 가지고 그러기도 뭣한 것이 이번 정부서도 그렇게 국방강화를 주장하던 인간들이 공군기지 하나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는 건설계획을 대통령이 추진한다는 이유로 지지하고 나서고 있다. 심지어 그 공항이 이제는 전혀 쓸모가 없단다. 차라리 공항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정부에서는 글로벌호크를 들여오지 못한 것이 정권 탓이라더니, 이번 정부에서는 글로벌호크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하니 그게 뭔 소용이냔다.&lt;br&gt;&lt;br&gt;그런 것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과거 황우석 사건과 디워 사태였었다. 언론이 의혹이 있으면 추적해 밝히고 비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잘못된 근거에 의한 잘못된 결론이라 할지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고 논리가 있다면 그러한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예 언론사를 매장시키려 하고 있었다. 황우석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불매운동에 서명운동에 아주 박살늘 내려 하고 있었다.&lt;br&gt;&lt;br&gt;디워도 그렇다. 평론가가 영화를 보고 뭐라 말도 못하는가? 정성일씨였던가? 한 영화평론가도 그랬다. 영화평론가의 평도 결국은 한 개인의 평가에 불과하다. 참조할 뿐 절대적이지는 않다. 다만 보다 전문적으로 보고 전문적으로 판단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비판했다. 자기가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고 연출이기에.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영화평론가들에 테러를 가했다. 비판하면 욕하고, 비난하면 달려들어 물어뜯고... &lt;br&gt;&lt;br&gt;&amp;quot;비판할 가치가 있는 영화라서가 아니라...&amp;quot;&lt;br&gt;&lt;br&gt;이 말은 어느새,&lt;br&gt;&lt;br&gt;&amp;quot;비판할만한 가치가 없는 영화여서...&amp;quot;&lt;br&gt;&lt;br&gt;이렇게 바뀌어 더욱 비난받는 이유가 되었었고. &lt;br&gt;&lt;br&gt;왜? 결국 같은 거다. 의존한다는 것은 자신을 내맡긴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책임, 의무, 권리 같은 것 이외에도 도덕과 윤리, 가치라고 하는 것도 포함된다. 즉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이 바로 그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lt;br&gt;&lt;br&gt;간단히 종교를 떠올려보자. 신실한 종교인이 그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 불교건 기독교건 이슬람교건 하다못해 무속이더라도 상관없다. 항상 그 판단의 기준은 자신의 신이다. 그래서 신의 이름으로 온갖 학살과 강간과 약탈과 파괴가 저질러지고 정당화되기도 했던 것이다.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이다. &lt;br&gt;&lt;br&gt;영웅이란 그 신을 대신한 존재다. 아니 벌써 영웅은 신이다. 당장 같은 우상이라는 뜻의 단어를 쓰는 아이돌의 팬덤을 보더라도 그렇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피해자를 비난한다. 단지 같이 어울렸다는 이유만으로 한 개인을 테러하여 마침내 자살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래도 정당하다. 뮤지션이 표절을 하고, 어디 가서 술마시고 사고를 치고, 심지어 범죄를 저질렀어도 무조건 옳다. 왜? 말했잖은가? 그는 우상이니까. 신이니까. 영웅이니까.&lt;br&gt;&lt;br&gt;물론 영웅이 항상 문제가 되느냐면 그것은 아니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서양문명의 우월한 부분 가운데 하나인데 - 예를 들어 남북전쟁의 영웅 셔먼, 그냥 평범한 시민으로 생을 마쳤다. 역시 남북전쟁의 영웅이었던 그랜트 역시 대통령까지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해가며 개인적인 이익이나 욕망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2차세계대전 당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끌었던 처칠은 전쟁이 끝나자 현실적인 다른 이유로 선거에서 낙선하고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었다. 드골 역시 2차세계대전 당시 자유프랑스군을 이끌고 프랑스를 승전국의 대열에 서게 한 영웅이었지만 프랑스 시민들이 물러나라 했을 때 기꺼이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통일을 주도했던 가리발디 역시 통일된 이탈리아에서 권력을 쥐기보다는 야인으로 물러나 평범한 한 이탈리아인으로 죽기를 선택했었다.&lt;br&gt;&lt;br&gt;그런 전통들. 영웅이라 할지라도 한 개인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사회가 지키고자 하는 보편의 가치와 보편의 질서라고 하는, 그래서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고 하는. 동아시아에도 있었다. 전장에서는 영웅이었으되 물러나니 평범한 선비라, 공을 내세우지 않고 뜻을 이루고 나서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미덕이기도 했었다.&lt;br&gt;&lt;br&gt;단, 그것이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는 가만히 있으려 해도 주위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당을 건국한 고조 이연을 부추긴 것은 아들 이세민과 그의 측근들이었다. 송을 건국한 조광윤은 후주의 절도사로서 전장에서 다른 절도사들의 추대를 받아 어린 황제를 몰아내고 송을 건국하고 있었다. 이셩계 또한 변방의 야인으로써 전쟁영웅으로 떠올라 신진사대부의 추대를 받아 조선왕조를 연 경우이고. 메이지 초기의 세이난 전쟁 역시 사이고 다카모리를 떠받들어 자신들의 뜻을 추구하려 했던 사쓰마의 사무라이들이 일으킨 반란이었다.&lt;br&gt;&lt;br&gt;물론 말했듯 그랜트나 아이젠하워와 같이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존중하는 안에서 절차를 밟아 야심을 이루는 경우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왕조를 바꾼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중대한 도전이며 혁명이었다. 특히 왕조와 많은 이해를 공유하는 기득권의 입장에서 그것은 이익을 넘어 존립과도 관계된 중대한 사건일 터였다. 그런 사건이 바로 그러한 영웅과 그 추종자에 의해 지금 당장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lt;br&gt;&lt;br&gt;기우라 하겠지만 지금 당장도 그런다. 쿠데타도 경제만 살리면 정당하단다. 먹고 살게만 해주면 쿠데타든 반란이든 상관없단다. 오히려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고 추앙한다. 다시 그런 영웅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lt;br&gt;&lt;br&gt;황우석의 경우도 그렇다. 논문이야 조작했든 어쨌든 그의 연구가 국익에 도움만 되면 된다는 것 아니던가? 디워의 경우도 영화의 수준이야 어찌되었든 헐리우드에 대항할 수 있는 특수효과라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만족해 버리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극단적으로 어느 선거에서 한 지지자가 한 그 한 마디가 있다.&lt;br&gt;&lt;br&gt;&amp;quot;그분이 다 해주실 거야.&amp;quot;&lt;br&gt;&lt;br&gt;경제만 살릴 수 있으면 뭔 짓을 해도 된다는 그것. 먹고 살게만 해주면 뭘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는 바로 그것.&lt;br&gt;&lt;br&gt;영웅이 있다. 영웅이 나타나 말한다.&lt;br&gt;&lt;br&gt;&amp;quot;경제를 살리겠다.&amp;quot;&lt;br&gt;&lt;br&gt;그리고 경제를 진짜로 살린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lt;br&gt;&lt;br&gt;&amp;quot;나 왕 되고 싶어.&amp;quot;&lt;br&gt;&lt;br&gt;그럴 때 과연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lt;br&gt;&lt;br&gt;&amp;quot;독재도 하고 인권도 탄압했지만 경제를 살렸으니 영웅이다.&amp;quot;&lt;br&gt;&amp;quot;잘 살게 해주었는데 독재니 인권탄압이니 무슨 상관인가?&amp;quot;&lt;br&gt;&lt;br&gt;그런 국민들이?&lt;br&gt;&lt;br&gt;즉 유럽이나 미국에서처럼 사회적인 저변이 튼튼해서 영웅이란 한 개인에 불과하다면 전혀 상관없다. 영웅이란 한 개인에 불과하고 자연인으로서 단지 그 실력과 실적으로 인해 뜻한 바를 이루려 한다면 그것도 문제는 안된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려 할 때, 과연 그러한 시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충분히 그것을 막아낼 능력이 되는가? 아니 그런 의지가 있는가?&lt;br&gt;&lt;br&gt;아니 그보다 그런 영웅의 존재에 대해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하는 무수한 개이인의 존재야 말로 그러한 의지가 되고 능력이 되는 것이다. 영웅이라 해서 영웅임으로 해서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그것이 이 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질서와 가치를 침해하지 못해도록, &lt;br&gt;&lt;br&gt;그래서 이순신이라도 예외없이 나는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할 것이다. 이순신이기 때문에 더욱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할 것이다. 그를 존경하더라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이 사회에 끼칠 영향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비판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필요하다면 그를 죽이려 들 것이다.&lt;br&gt;&lt;br&gt;&amp;quot;아무리 영웅이더라도 내게는 지금 이 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의 질서와 가치가 더 소중하니까.&amp;quot;&lt;br&gt;&lt;br&gt;왕조를 위해 이순신을 죽이려 했던 선조처럼. 그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왕위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왕조와 그의 주위에 자신을 떠받들고 있는 지배계급의 이익과 그를 위한 기존의 질서일 테니까. &lt;br&gt;&lt;br&gt;말하자면 영웅무용론이다. 영웅이 나타나는 자체가 그만큼 현실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절박함은 영웅의 쓰임이 끝나고도 그를 필요로 하게 되며, 때로 그러한 필요가 기존의 질서와 가치와 충돌하게 된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나타날 리 없는 것이 영웅이면서 또한 정상적인 사회의 질서와 가치를 해칠 수 있는 존재가 영웅인 것이다. 차라리 나타나지 않았으면...&lt;br&gt;&lt;br&gt;지금도 어느 특정한 개인을 추종하며 그에 모든 것을 내맡긴 채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본다. 도덕도 윤리도, 법도 가치도, 인간의 당연한 상식조차도 무시한 채, 오히려 그런 것들에 경멸과 멸시를 보내는 이들을. 해악이다. 이 사회의.&lt;br&gt;&lt;br&gt;내가 영웅에 대해 결코 관대해 질 수 없는 이유다. 아니 영웅이기에 더욱 관용적일 수 없는 이유다. 이순신이라 할지라도. 그런 영웅이기에. 그런 영웅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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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31 Oct 2009 23:47:10 +0900</pubDate>
    <category><![CDATA[역사적 잡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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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반성과 후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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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반성과 후회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반성을 하고 후회를 하기도 하고, 후회를 하고서 반성을 하기도 하고, 후회와 반성을 함께 하기도 하지만 둘이 결코 같지는 않다.&lt;br&gt;&lt;br&gt;간단히 이렇게 생각해 보면 되겠다. 어느 강간범이 있다. 강간을 하고 피해자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과연 그 강간범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lt;br&gt;&lt;br&gt;아마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생각이 그것일 것이다.&lt;br&gt;&lt;br&gt;&amp;quot;아,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amp;quot;&lt;br&gt;&lt;br&gt;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약간의 - 아니 상당한 차이가 있다.&lt;br&gt;&lt;br&gt;대부분의 경우가,&lt;br&gt;&lt;br&gt;&amp;quot;거기서 내가 왜 증거를 남겼지?&amp;quot;&lt;br&gt;&amp;quot;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려야 했을까?&amp;quot;&lt;br&gt;&amp;quot;아예 차라리 죽여버렸으면 좋을 것을...&amp;quot;&lt;br&gt;&lt;br&gt;도둑질하다 잡혀들어가서도 그렇다.&lt;br&gt;&lt;br&gt;&amp;quot;거기서 왜 눈치없이 그렇게 행동했을까?&amp;quot;&lt;br&gt;&amp;quot;시간을 잘못 선택했어.&amp;quot;&lt;br&gt;&amp;quot;차라리 불을 지르는 게 나았을까?&lt;br&gt;&lt;br&gt;그리고 아주 소수의 경우만 이런 생각을 한다.&lt;br&gt;&lt;br&gt;&amp;quot;그래서는 안되었는데!&amp;quot;&lt;br&gt;&amp;quot;내가 죽일 놈이야!&amp;quot;&lt;br&gt;&amp;quot;어떻게 내가 그런 끔찍한 짓을...&amp;quot;&lt;br&gt;&lt;br&gt;전자가 후회, 후자가 반성이다. 물론 엄밀하지는 않다. 단지 개념을 구분해 쓰다 보니 그냥 그렇게 정의해 쓰는 것일 뿐.&lt;br&gt;&lt;br&gt;항상 그렇다. 사람은 어떤 행위를 하고 나면 그 행위를 돌아보며 나름의 평가를 내리게 된다. 잘했는가, 혹은 잘못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항상 현재의 자신이다. 지금이 좋으면 잘한 거고, 지금이 나쁘면 못한 거고.&lt;br&gt;&lt;br&gt;그러나 어떤 사람들 - 극히 소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현재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보편적인 가치에 따라 보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판단하기도 한다. 그것이 옳은 일이었는가, 아니면 바른 행동이었는가...&lt;br&gt;&lt;br&gt;정의하자면 후회한 현실로부터의 도피다. 현재가 고통스러울수록, 현재가 불만스러울수록, 그래서 더 나은 기회가 있겠거니 생각할수록 사람은 그리로 생각을 확장한다. 그리고 그리로 도망간다.&lt;br&gt;&lt;br&gt;&amp;quot;차라리 그리 할 것을...&amp;quot;&lt;br&gt;&lt;br&gt;단지 현재의 고통이나 어려움, 불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lt;br&gt;&lt;br&gt;반성은&amp;nbsp;그에 비해 보다 객관화된 자기에게서 출발한다.&amp;nbsp;인간으로서 당연히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과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고, 그리고 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바른 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 나아가 스스로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에서 나온다.&lt;br&gt;&lt;br&gt;&amp;quot;뭘 그런 일로...&amp;quot;&lt;br&gt;&lt;br&gt;주위에서 아무리 위로해도,&lt;br&gt;&lt;br&gt;&amp;quot;내가 괴로우니까...&amp;quot;&lt;br&gt;&lt;br&gt;어쩌면 그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자아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옳고 싶고, 바르고 싶고, 누구보다 떳떳하고 싶고,&amp;nbsp;가장 고귀한 긍지이며 가장 완고한 자존심일 것이다. 그래서 주위와는 상관없이, 상황이나 여건과는 상관없이 생각한다.&lt;br&gt;&lt;br&gt;&amp;quot;과연 나는 옳았는가?&amp;quot;&lt;br&gt;&amp;quot;과연 나의 행동에는 잘못이 없었는가?&amp;quot;&lt;br&gt;&amp;quot;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가?&lt;br&gt;&lt;br&gt;자기로부터 시작해서 자기로부터 완성되는 철저히 자기완결적인 자아. 그래서 오히려 항상 달려들고, 항상 덤벼들고, 항상 싸우며, 항상 피투성이에 진흙투성이다. 누구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써 완성되는 자기와의 투쟁인 때문이다.&lt;br&gt;&lt;br&gt;그래서&amp;nbsp;후회와 반성에 따른 다음 행동도 서로 차이가 나게 된다. 누구나 한 번은 경험했을 학창시절의 예다.&amp;nbsp;&lt;br&gt;&lt;br&gt;시험을 봤다. 성적이 안좋다. 부모님께 성적표를 가져다 드렸더니 그러신다.&lt;br&gt;&lt;br&gt;&amp;quot;이 자식! 좀 맞자!&amp;quot;&lt;br&gt;&lt;br&gt;눈물이 찡하도록 두들겨 맞고 나서 아이들은 생각하게 된다.&lt;br&gt;&lt;br&gt;&amp;quot;존나 아프구나!&amp;quot;&lt;br&gt;&lt;br&gt;그리고는 시험성적이 안나오거나 하면 아예 성적표를 숨기거나, 심지어 성적표를 위조하기도 하고, 극단적인 경우 맞기 싫어 가출하거나 자살하는 경우마저 나온다. 이때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은 단순하다.&lt;br&gt;&lt;br&gt;&amp;quot;맞기 싫다!&amp;quot;&lt;br&gt;&amp;quot;욕먹기 싫다!&amp;quot;&lt;br&gt;&lt;br&gt;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lt;br&gt;&lt;br&gt;일단 맞았다. 아프다. 그러나 맞으면서 부모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다.&lt;br&gt;&lt;br&gt;&amp;quot;너를 위해 공부하라는 거야. 너를 위해서야.&amp;quot;&lt;br&gt;&lt;br&gt;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마침내 그것이 사실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굳이 아이에게 매를 들 필요따위는 없다.&lt;br&gt;&lt;br&gt;&amp;quot;아, 여기 이걸 왜 틀렸을까?&amp;quot;&lt;br&gt;&amp;quot;점수가 이게 뭐야? 에잇! 다음에는 더 잘 해야겠다!&amp;quot;&lt;br&gt;&lt;br&gt;그동안 공부가 그리 하기 싫고 귀찮기만 하던 것이 오히려 스스로 당연하게 즐겨 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 작은 고민과 갈등과 그리고 깨달음으로 인해.&lt;br&gt;&lt;br&gt;엄벌주의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는 것도 그래서다. 장자가 이미 2천 년도 더 전에 갈파했듯, 벌이 엄하면 사람은 벌을 회피하는데만 신경을 곤두세우게 될 테니까.&lt;br&gt;&lt;br&gt;위의 성적표에 대해서도 그렇다. 시험성적이 나왔는데 아버지 왈,&lt;br&gt;&lt;br&gt;&amp;quot;한 개 틀릴 때마다 열 대씩이다!&amp;quot;&lt;br&gt;&lt;br&gt;그런데 시험성적표에 쓰여진 틀린 갯수가 무려 20개... 다음 시험에서 20개가 10개가 되고, 다시 5개가 되도록 노력할 생각보다는 당장 맞게 될 200대의 매에 모든 신경이 가게 된다. 말이 200대지... 결국 생각한다.&lt;br&gt;&lt;br&gt;&amp;quot;에잇, 차라리!&amp;quot;&lt;br&gt;&lt;br&gt;거기까지 가면 어린 마음에 뭔 짓을 할 지 모르게 되는 거다. 가출을 할 수도 있고, 더 큰 사고를 칠 수도 있고...&lt;br&gt;&lt;br&gt;도둑질을 하고 났더니 징역이 10년... 주인이 나타났다. 들켰다. 어쩔까?&lt;br&gt;&lt;br&gt;살인을 하면 무조건 사형이다. 그런데 살인현장을 들켰다. 어차피 한 사람 죽이나 두 사람 죽이나 같다. 한 사람 죽이나 열 사람 죽이나 죽는 건 마찬가지다. 어쩔까?&lt;br&gt;&lt;br&gt;고타마 싯달타가 고행할 때 40일을 넘게 단식하며&amp;nbsp;깨달음을 구했지만 그러나 오히려 번뇌가 끓고 몸만 상할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소녀가 내민 염소젖을 들이켰을 때 주위의 동료들은 타락했다며 떠났지만 그는 마침내&amp;nbsp;그토록 바라던&amp;nbsp;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었다. &lt;br&gt;&lt;br&gt;물론 아무리 그래도 지은 죄가 있는데,&lt;br&gt;&lt;br&gt;&amp;quot;반성하세요!&amp;quot;&lt;br&gt;&lt;br&gt;이건 아니다. &lt;br&gt;&lt;br&gt;말했듯 애들 성적 안나왔는데 야단도 안치고 그냥 좋게좋게만 넘어가면 결국 다시는 않게 된다. 스스로 깨달아 실천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인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란 스스로 깨달아 실천하기엔 너무 미욱하고 어리석은 존재이기에 그를 위한 계기가 필요하다. 적당한 비판과 고통과 그리고 반성의 시간과...&lt;br&gt;&lt;br&gt;다만 그 고통과 그 고통의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크거나 길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반성하기에도 너무 커서 지레 질려버리고 나면 반성도 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회피할 생각부터 할 테니까.&lt;br&gt;&lt;br&gt;매를 아끼지 않고 엄하게 기르려 하는데 도리어 아이가 비뚤어지는 것은 그래서다. 하여튼 사소한 일에까지 매를 들고 벌을 주고 하다 보니 지레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매를 회피하려던 마지막 시도까지 포기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매를 드나 마나... 정 견디기 힘들면 아예 집을 나가버리기도 하고.&lt;br&gt;&lt;br&gt;사회적으로도 그렇다. 과거 그렇게 형벌이 엄하던 시대에도 범죄는 여전히 존재했었다. 아니 더 흉폭했었다. 공권력에 의해 체포되어 처벌받거나 하면 자칫 죽을 수도 있으니 그만큼 더 잔인해져야 했고 흉폭해져야 했었다. &lt;br&gt;&lt;br&gt;처벌이 엄하다고 범죄가 사라질 것이라는 건 인간이 갖는 가장 큰 착각 가운데 하나다. 어차피 인간이 범죄를 저지를 때는 첫째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거나, 둘째 그런 것따위 생각할 여지도 없는 상황에 그런 범죄를 저지른다. 즉 형벌따위는 애시당초 범죄를 저지르는데 중대한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일단 저지른 범죄에 대해 정상참작의 사유라든가, 아니면 가중처벌의 사유라든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나름 머리좋은 놈들은 신경쓰기도 한다. 그러나 살인을 저지르면 징역이 얼마라더라... 그것 무서워서 죽일 것 못 죽이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lt;br&gt;&lt;br&gt;더구나 형벌이 너무 엄하고 그로 인해 그 고통이 지나치게 커지면 원망하는 마음만 생기지 반성따위와는 아예 담을 쌓기 쉽다. 아이 원래 인간이란 반성을 잘 하지 않는다. 스스로 반성하는 법이란 거의 없다. 다만 그렇더라도 빵 한 조각 훔치고 10년 살라고 하면 내가 잘못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10년을 살게 하느냐는 원망과 증오만이 자라나게 된다. 어울려 노는 무리들이 또 그런 무리들이고 보니 그 원망과 증오는 사회로 나와 다시 범죄에 발을 담그는 원인이 된다. 처라리 반성하도록 하느니만 못하다. &lt;br&gt;&lt;br&gt;아니 물론 인간은 그다지 반성에 익숙한 동물이 아니다.&lt;br&gt;&lt;br&gt;&amp;quot;아, 내가 그때 진짜 잘못했다...&amp;quot;&lt;br&gt;&lt;br&gt;현재의 상황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회피하고자 해서가 아니라, 그 행위 자체에 대해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판단하고 평가를 내린다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인간사회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lt;br&gt;&lt;br&gt;그러나 반성이란 또한 인간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기에 어떠한 계기만 주어진다면 또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부모와 선생님의 타이름이라든가, 일상에서의 경험에 의한 깨달음이라든가, 책이나 각종 미디어를 통해 얻어지는 지식과 간접적인 체험들이라든가... 교화라는 건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lt;br&gt;&lt;br&gt;원망만 키우는 일이 없도록 관대하게, 그러나 그 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도록 엄격하게, 그러면서도 그를 통해 자신의 죄를 알고 그것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lt;br&gt;&lt;br&gt;물론 이상이기는 한데... 현실에서 그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일단 인간이란 자체가 말했듯 반성과는 또 어울리지 않기에 그런다고 진짜 반성한다는 보장이 없다. 진정 죄의 무게를 모르는 이들은 사람을 죽이고서도 단 하루 유치장에 가두는 것조차 억울하다며 원망을 품을 것이고. 그럼에도 그것이 이상이라는 것을 각인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lt;br&gt;&lt;br&gt;아무튼,&lt;br&gt;&lt;br&gt;&amp;quot;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amp;quot;&lt;br&gt;&lt;br&gt;탄식하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 왜는 어디서?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냐? 아니면 현실과 직시하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냐?&lt;br&gt;&lt;br&gt;자신을 객관적으로 되돌아 보는 것,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낱낱이 살피는 것, 가장 두려운 일이며 가장 꺼려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반성인데. 과연... 후회는 쉬워도 반성은 그래서 어려운 법이다.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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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Oct 2009 20:40:39 +0900</pubDate>
    <category><![CDATA[역사와 철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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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부정부패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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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누구나 한국의 양반관료들에 대해서는 그 부정과 비리에 대해 비판한다. 그러나 일본의 사무라이를 비판하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지배집단으로 추앙하는 좌파마저 있을 정도다. 왜?&lt;br&gt;&lt;br&gt;간단하다. 사무라이 - 특히 다이묘에게 영지란 자기 소유였다. 자기 땅이었다. 즉 거기서 얼마의 세금을 걷든 정당한 권리의 행사다. 아주 자비로워서 5할의 세금을 걷든, 아니면 조금 씀씀이가 커서 7할의 세금을 걷든 그것은 정당한 권리의 행사이지 굳이 그것을 부정이니 비리니 하지 않는다.&lt;br&gt;&lt;br&gt;반대로 조선의 양반관료들은 말 그대로 관료집단이었다. 나라로부터 녹봉을 받고, 일단 거둔 세금은 나라의 창고에 귀속시킨 다음 그 가운데 정해진 만큼의 급료를 받으면 되었다. 따라서 그 이상은 주어진 권한 이상의 부정이 될 수밖에 없다. 한 해 20석의 쌀을 녹봉으로 받도록 되어 있는데, 천 석 거둔 세금 가운데 100석 빼돌리고, 다시 뒤로 200석 이권을 댓가로 받아먹고... &lt;br&gt;&lt;br&gt;당장 싱가포르만 해도 중요한 돈되는 건 특정 집단 - 거의 혈족이 다 독점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다. 비판도 없고 견제도 없다. 그렇게 되어 있다. 과연 그런데 부정이니 비리니 저지를 까닭이 있을까?&lt;br&gt;&lt;br&gt;부정과 부패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 국가의 모든 자원과 자산을 특정 집단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자기 것 가지고 자기가 마음대로 한다는데 누가 뭐랄까? 아마 한국인이 가장 바라는 바이겠지만.&lt;br&gt;&lt;br&gt;만일 그게 힘들다면 다른 방법이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언론에서 부정과 부패에 대해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뭐 받아 쳐먹어도 보도도 않고, 유력한 정치인이 얼마나 받아 챙겨도 아예 취재조차 하지 않고, 그러면 그러겠지.&lt;br&gt;&lt;br&gt;&amp;quot;아, 정말 깨끗한 대통령이셔...&amp;quot;&lt;br&gt;&amp;quot;정말 부패 없는 청렴한 사회야...&amp;quot;&lt;br&gt;&lt;br&gt;어느 쪽이든 결국 자살은 자기 권리라. 죽거나 말거나. &lt;br&gt;&lt;br&gt;물 깨끗이 하겠다고 하천 바닥을 있는대로 준설하고... 그러나 물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그 더러워 보이는 모래와 자갈과 물풀과 물벌레들과 각종 생물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모두 다 치워버리고서야 물만 썩을 뿐.&lt;br&gt;&lt;br&gt;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도저히 쓰지 못할 물이 되어 버린다. 상식을 가지고 산다면...&lt;br&gt;&lt;br&gt;아무튼 에도시대 일본의 봉건체제마저 찬양하는 좌파가 있다는 생각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조선이 밉기로. 하긴 이 블로그 답글만 봐도 전혀 이상하다거나 하지는 않다. 좌파인지 우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인간들 수두룩하니. 뭐...&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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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9 Oct 2009 16:45:54 +0900</pubDate>
    <category><![CDATA[잡다구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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