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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삐딱삐딱Cool~HoT~!!]]></title>
<description><![CDATA[그냥저냥]]></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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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삐딱삐딱Cool~H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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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유방과 제갈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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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방이 마침내 항우에 앞서 함양으로 들어가 자영의 항복을 받아냈을 때, 유방은 진의 가혹한 법령 아래 신음하던 백성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약법삼장을 세웠었다.&lt;br&gt;&lt;br&gt;&amp;quot;이제 부로들께 세 가지 법령만을 약조하건대, 사람을 죽이는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 자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자는 그 죄에 따라 처벌할 것입니다[與父老約, 法三章耳; 殺人者死, 傷人及盜抵罪].&amp;quot;&lt;br&gt;&lt;br&gt;그러나 마찬가지로 유비가 촉으로 들어가 그곳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제갈량은 오히려 법을 더 엄히 하여 다스리고 있었다.&amp;nbsp;심지어 법이 너무 엄하고 급하며, 백성들을 가혹하게 다룬다고 원성이 자자하여 법정이 약법삼장의 고사를 들어 반박하고 나섰을 정도였다. 그러자 제갈량은 이에 이디 대답하고 있었다.&lt;br&gt;&lt;br&gt;&amp;quot;그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오. 진은 무도하고 정치가 가혹해 백성들이 원망하니 필부의 함성에 천하가 무너져내릴 지경이었고, 고조가 이로 인하여 널리 구제할 수 있었소. 유장은 어리석고&amp;nbsp;유약하여 유언 이래 누대에 걸쳐 은혜를 베풂으로써&amp;nbsp;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서로&amp;nbsp;아첨하려고만 하니,&amp;nbsp;덕정이 이루어지지도 못하면서&amp;nbsp;위엄과 형벌도&amp;nbsp;엄숙하지 못했소. 촉 땅 인사들이&amp;nbsp;권세를 마음대로 휘둘러&amp;nbsp;스스로 방자하게 되자 군신의 도리 또한 쇠퇴하고 말았소.&amp;nbsp;지위로써 총애하니 지위가 극에 다다르면 얕보게 되고, 은혜로써 순종시키니 은혜가 고갈되면 교만해지오. 오늘날의 폐단이 실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오. 이제 내가 법으로 위엄을 세울 것이니 법이 행해지면 은혜로움을 알 것이고, 작위에 한도를 둘 것이니 작위가 더해지면 영예로움을 알 것이오. 영과 은이 아울러 다스려지면 위 아래에 절도가 있게 되니, 다스림의 요체는 바로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오.&amp;quot;&lt;br&gt;&lt;br&gt;관용이라는 것이 그렇다. 엄격함이라는 것이 그렇다. 관용이 필요한 것은 엄격함이 있기 때문이다. 엄격함이 있기에 그로부터 관용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엄격함이 필요한 것은 관용이 넘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관용하기에 질서도 없고 규준도 없고 모두 제각각이라, 그러다 보면 그런 혼란 가운데 홀로 이익을 보는 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관용에 기대는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들을 위해서라도 엄격함은 필요하다.&lt;br&gt;&lt;br&gt;말하자면 중용이다. 중용이란 둘 가운데 어느 한 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둘 사이의 어딘가에 있기는 하겠지만 그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만일 그것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중용이 아니라 둘에 더한 또 하나의 극단이 될 것이다.&lt;br&gt;&lt;br&gt;물이 넘치면 덜어야 하고, 물이 모자르면 채워야 한다. 상식이다. 밥을 짓는데 물이 모자르면 더 채워야 하고, 물이 넘치면 따라내야 밥이 설익거나 질어지지 않는다. 모자르고 넘치는 그 사이 어느 한 고정된 지점이 아닌, 모자르고 넘친 만큼 그때그때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사실 그래서 내가 중용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인데,&lt;br&gt;&lt;br&gt;그러나 세상살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 인간이란 원래 그렇다. 인간은 항상 넘치거나 모자른다. 딱 맞아떨어지는 법이 없다. 넘치거나 모자르기에 그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다. 그게 법이고 윤리고 규범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너무 경직되어 있으면 역시 넘치거나 모자르기 쉽다. 유방이 법을 간략히 한 것도 그래서고, 제갈량이 법을 엄격히 한 것도 그래서다.&lt;br&gt;&lt;br&gt;법이 너무 엄하면 사람이 비굴해진다. 법이 너무 약하면 사람이 방종해진다. 비굴과 방종은 같은 뜻이다. 결국은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니. 법에만 기대려 하거나, 아니면 주위를 살피지 못하고 자신마저 잃어버리거나. 그래서 법에만 너무 의존하여 비굴해지면 법으로부터 떨어져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하고, 주위를 살피지 못하여 자신을 잃어버린 경우라면 강제로라도 그 자리에 꿇어 앉혀 자기가 어디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거기에서 관용도 나오고 엄격함도 나오는 것이다.&lt;br&gt;&lt;br&gt;개나소나 관용인데 관용을 하나 더한다고 그게 관용일 게 무언가. 모두가 관용인데 또 관용해야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관용을 빙자한 강제일 뿐이다. 그렇다고 조금의 여지도 없이 엄격하기만 하다면 엄격함에 갇혀 인간은 - 사회는 활력을 잃어버린다. 인간이란 오류도 저지르기에 인간인데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게 항상 일정하기만 하라면 인간은 본모습을 잃고, 그같은 엄격함에 기대어 엄격함으로부터 벗어난 소수만이 자유로운 채 썩어버리게 된다. 원래 엄격한 사회일수록 속은 더 썩게 되어 있다. 물론 지나친 관용도 그 사회를 썩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지만.&lt;br&gt;&lt;br&gt;전자는 너무 나태하고, 후자는 너무 경직되고, 전자는 너무 풀어지고, 후자는 너무 조여지고, 그러나 결론은 하나다. 흩어진 물은 땅에 스밀 뿐이고, 고여 있는 물은 썩을 뿐이다. 물길이 있어야 물은 흐르고, 고여 있지 않아야 물은 깨끗하다. &lt;br&gt;&lt;br&gt;너무 풀어지면 조여줄 필요가 있고, 너무 경직되면 풀어줄 필요도 있고, 물이 땅에 흩어져 스민다면 물길을 내어 모아줄 필요가 있고, 너무 모여 흐르지 않는다면 길을 내어 흩어줄 필요도 있고,&lt;br&gt;&lt;br&gt;그러나 기왕에 관용했으니 계속해 관용하자는 건 또 무언가. 기왕에 엄격했으니 계속해서 엄격하자. 기왕에 그랬으니 계속 그러자. 그래서 지금 이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일까? 항상 그 모양이라?&lt;br&gt;&lt;br&gt;마치 유방이 함양에 들어가서 진의 법이 엄격했으니 나의 법도 엄격하라, 제갈량이 파촉에 들어가 유방이 관대했으니 나도 관대하라, 온고지신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닐 텐데 말이다. 온고지신이란 과거로부터 지혜를 얻는 것이지 과거를 답습하는 게 아니다.&lt;br&gt;&lt;br&gt;각주구검이라는 게 그런 뜻이다. 물은 흐른다. 배도 물을 따라 흘러간다. 그런데 뱃머리에서 칼을 떨어뜨렸으니 그 자리에 표시하고서는 강물에 뛰어든다. 이 아니 어리석은가.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었는데.&lt;br&gt;&lt;br&gt;어쩌면 내가 이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들 엄격할 때 관용하라 하고, 남들 관용할 때 엄격하라 하고, 아마 내가 이상한 것일 게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그러는 것이다. 엄격하기에 관용이 필요하고 관용하기에 엄격함이 필요하므로.&lt;br&gt;&lt;br&gt;아무튼 참 하는 소리들을 보면 속이 부글거려서. 무엇이 더 중하고 무엇이 더 가벼운가. 어디에 더 우선을 두어야 하고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상식일 것인 데도. 뭐... 그런 게 세상살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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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8 Feb 2010 23:59:57 +0900</pubDate>
    <category><![CDATA[역사적 잡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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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소통의 유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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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산울림의 김창완씨가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lt;br&gt;&lt;br&gt;&amp;quot;음악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작곡가로부터 유리된다.&amp;quot;&lt;br&gt;&lt;br&gt;간단히 이 블로그만도 그렇다. 글을 쓰는 건 나다. 나의 의지에 의해 쓰인다. 그러나 나의 의지에 의해 읽히는가?&lt;br&gt;&lt;br&gt;가끔 리플을 먼저 읽고 본문을 보면 그렇게 새로울 수가 없다. 내가 이런 글을 썼었구나... 당황한다. 내가 이런 글을 썼었는가. 그리고 또 놀란다. 내가 원래는 이런 글을 썼었구나. 리플과 본문에서 전혀 다른 두 개의 글을, 리플이 많으면 그만큼 많은 또다른 글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lt;br&gt;&lt;br&gt;무엇인가? 읽는 이의 의지라는 것이다. &lt;br&gt;&lt;br&gt;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사람은 이유가 있어 판단하지 않는다. 판단하고 나서 이유를 찾는다. 까닭이 있어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결론을 내리고 나니 까닭이 생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판단하고 싶은대로 판단하고, 믿고 싶은대로 믿고, 단지 그 이유를 나중에야 찾아 더할 뿐. 의지다.&lt;br&gt;&lt;br&gt;즉 글을 읽는 순간 읽는 사람 자신에게 의지가 생긴다. 그것은 읽는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글을 쓴 당사자와는 별개의. 그리고 글은 그에 의해 읽혀지고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반응도 그로부터 비롯된다. 과연 그것은 나의 글인가.&lt;br&gt;&lt;br&gt;글만이 아니다. 말도 그렇다. 말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러나 말을 듣는 것도 그러한가. 결국에 듣는 것도 다른 누군가다. 그리고 말이란 역시 그의 의지에 의해 들려지고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아무도 듣지 않고 이해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말이란 얼마나 공허한가. 그 어떤 의지도 더해지지 않은 채 그저 내뱉어진 말이란 스치고 지나는 바람만도 못한 존재인 것이다.&lt;br&gt;&lt;br&gt;항상 거기서 문제가 일어난다. 말을 하는 당사자는 자기가 말을 한 사실만 기억한다. 말을 듣는 사람도 자기가 말을 들었다는 것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말을 한 자기 의지와 그것을 들은 자기 의지에 대해서. 그러나 그것이 항상 반드시 일치하는가. 그것이 아니기에.&lt;br&gt;&lt;br&gt;차라리 아예 서로 다른 말을 하고 다른 말을 들었으면 문제는 되지 않는다. 어차피 얽힐 일도 없으므로. 그러나 서로 다른 의지로 하나의 말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게 문제다. 한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두고 A라 이야기하고, 다른 한 사람은&amp;nbsp;역시 같은 이야기를 V라 이야기하고, 다툼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lt;br&gt;&lt;br&gt;그래서 오히려 친한 사이일수록 더 잘 싸우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이에 싸우기란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싸움은 서로 어느 정도 알 때 일어난다.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이해한다고 생각할 때 싸움은 더 크게 일어난다. 그리고 진짜 친한 사이라면 그 한 번의 싸움으로 영영 갈라설 수도 있다. 왜? 상대도 나와 같다고 생각하니까.&lt;br&gt;&lt;br&gt;즉 나는 A라고 말했다. 그러면 상대도 당연히 A라고 들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 역시 B라 듣고서는 B라 말했을 것이라 믿는다. 같은 말인데 서로 달리 말하고 듣고 그것을 당연히 상대도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괴리가 결국에는 오해를 낳고, 오해가 갈등을 낳고, 갈등이 분쟁을 낳는 것이다. &lt;br&gt;&lt;br&gt;가장 좋은 방법은 따라서 놓아주는 것이다. 지금 이 블로그에서 내가 하는 것처럼. 내가 무어라 하든 어차피 오해하는 건 당연하다. 내가 쓰는 의지와 그것을 읽는 의지가 다르니 오해는 당연한 거고 따라서 그것을 가지고 무어라 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가까운 사이라면 오해를 바로잡아주겠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서로 생긴대로 살면 그 뿐. 나는 내 의지대로 쓰고, 그들은 자기 의지대로 읽고 판단하고 리플을 달거나 하고. 그건 나랑은 상관없는 것이다.&lt;br&gt;&lt;br&gt;그래서 또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그것이다.&lt;br&gt;&lt;br&gt;&amp;quot;냅둬. 그렇게 살다 죽게.&amp;quot;&lt;br&gt;&lt;br&gt;내가 거기에 더 이상 관여할 이유가 없으니까. 어느 정도 나와 관계가 있고 하면 의리로라도 몇 마디 하겠지만 그것을 듣고 말고는 상대의 의지라는 것이다. 그것까지는 내가 어쩔 수 없고 내가 가진 의리 만큼 충고하고 설득하고 그래서 안되면 마는 거다. 그래서 더 잘되면 좋은 것이고, 그래서 망해도 자기 할 바인 것이고.&lt;br&gt;&lt;br&gt;조금 더 극단적으로 내가 어떤 충고를 했고 그것을 들어서 잘되었다고 그것이 내 덕이라는 생각도 잘 않는다. 물론 조금이야 하겠지만, 결국 내가 어떤 말을 했든 그것을 듣고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한 것은 그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의 덕일까. 바로 자신의 덕이다. 자신의 능력이고 역량인 것이고. 말은 이미 내뱉어진 순간 나와 유리되니까.&lt;br&gt;&lt;br&gt;더 정확히는 상대를 나로부터 유리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상대가 내가 말하는대로 듣고, 내가 듣는대로 말한다 생각하는가. 상대의 의지를 나와 동일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상대의 의지를 내 말이 그러하듯 나의 의지 아래 두려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또 기대가 나오고 배신감이 나오고 오해가 나오고 갈등이 나오고.&lt;br&gt;&lt;br&gt;따라서 어차피 상대는 나와 다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다 전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말이더라도 상대가 그것을 하고 듣는 의지가 나와는 다르다고. 그러니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고.&lt;br&gt;&lt;br&gt;서로 다르다 전제하고 엇갈리는 것은 오해가 아니다. 서로 다름을 알고 인정하는 것은 또한 이해다. 서로 다를 수밖에 없이에 엇갈릴 수밖에 없음은 또한 서로에 대한 납득이고 수용이기도 하다.&lt;br&gt;&lt;br&gt;&amp;quot;우리는 서로 어차피 다르다.&amp;quot;&lt;br&gt;&lt;br&gt;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소통이 시작된다. 서로 다름을 알기에 그 차이를 메우려 들고, 서로 같지 않음을 알기에 그 거리를 줄이려 들고, 그런 가운데 이해는 깊어지고 동질감도 생기게 되고, &lt;br&gt;&lt;br&gt;물론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했다 섣부른 믿음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영원한 타인이라.&lt;br&gt;&lt;br&gt;서로가 서로로부터 유리되었을 때 소통은 이루어진다. 말을 유리시키고, 행동을 유리시키고, 상대를 유리시킬 때, 비로소 소통은 시작될 수 있다. 알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모르기 때문이라. 그게 안되기에 항상 싸움은 끊이지 않는 것이고.&lt;br&gt;&lt;br&gt;물론 아직까지는 말 뿐이다. 인간이 그리 성숙하지는 못해서. 별 것 아닌 일로도 발끈발끈. 그나마 좀 나아진 게 요즘이다. 리플 가지고 신경질부리거나 짜증내거나 하는 일 많이 줄었지 않은가. 리플접대도 줄었지만. 나와 유리시키기 시작한 것이라.&lt;br&gt;&lt;br&gt;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소통이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라.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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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7 Feb 2010 23:43:20 +0900</pubDate>
    <category><![CDATA[진한 넋두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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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왕권강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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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그리 왕이라면 질색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왕에 대해 어떤 환상 같은 것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이를테면 백성을 끔찍이 아끼고 나라의 장래를 밤잠을 설쳐가며 걱정하는 인자하고 현명한 군주 같은?&lt;br&gt;&lt;br&gt;그래서 아마 왕권에 대해 그리 관심이 많은 것일 게다. 조선의 서인 - 이후의 노론이 왕권을 침범하려드는 것이 그리 보기 안 좋은 것일 게고. 그런 신하들에 맞서 왕권을 지키지 못한 왕들을 조롱하는 것이기도 할 테고.&lt;br&gt;&lt;br&gt;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왕이란 또한 또 하나의 정치의 주체이기도 했다. 이해의 주체이며 욕망의 주체이기도 하다는 말이다.&lt;br&gt;&lt;br&gt;뭔 말이냐면 구한말 고종은 대한제국의 재정과는 유리된 별도의 개인금고인 내탕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대한제국의 재정보다도 더 풍부했는데, 결국 벼슬 팔고 뭣 팔아 챙긴 돈이었다. 그리고 고종은 그것을 자신의 권력을 위해 사용했었다.&lt;br&gt;&lt;br&gt;연산군만 하더라도 그렇다. 강력한 왕권으로 세종은 정말 정치를 잘했지만 연산군은 그 왕권을 가지고 자기 욕망을 채우는데만 쓰고 있었다. 아니 연산군만일까? 차라리 연산군 정도만 되어도 중국에 가면 범용한 군주 정도로 여겨진다. 가정, 정통, 만력, 천계의 명나라 4대 암군은 말할 것 없고, 정덕제를 비롯 왕권이 절대적이라 할 정도로 강력했던 명나라 황제 가운데 제대로 된 인간이 드물 정도였다. 청 또한 사정이 조금 낫다고 하지만 강희, 옹정, 건륭의 세 현군을 지나고 나면 역시나 크게 다르지 않고.&lt;br&gt;&lt;br&gt;유럽은 어떨까. 어찌되었거나 절대왕정의 시대를 열었던 루이14세가 기껏 한 일이라고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지어 사치를 일삼고, 괜한 전쟁에 국고를 소모하느라 나라를 빚더미 위에 앉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결국 손자인 루이16세 때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는 빌미가 되었다. 러시아혁명의 빌미를 마련해준 니콜라이 2세는 어떨까.&lt;br&gt;&lt;br&gt;왕이 권력이 강하고 안정되면 하는 짓이란 두 가지다. 여자 잡아들이고 해서 흥청거리고 놀거나, 아니면 괜히 남아도는 힘 주체 못하고 여기저기 전쟁하느라 집적거리느라. 아, 청의 건륭제도 그런 식으로 대외원정에 몰두하다 그나마 강희와 옹정이 쌓아 놓은 청의 부를 거의 소진하고 있었다. 건륭 이후의 황제들에게 탓을 돌리기에는 건륭이 재위해 있는 동안 저지른 짓거리들이 만만치 않았다. &lt;br&gt;&lt;br&gt;그래서 유럽에서도 시민혁명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역성혁명이. 이유는 하나,&lt;br&gt;&lt;br&gt;&amp;quot;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amp;quot;&lt;br&gt;&lt;br&gt;왕이니까 멋대로 하는 건 좋은데 그러기에는 너무 무능하고 제멋대로인데다 무엇보다 나의 이익을 침해한다. 그래서 부르주아들이 왕에 대항해 일어난 것이 프랑스대혁명이었고, 프롤레타리아트가 황제의 권력과 유착한 자본권력에 대항해 일어난 것이 바로 러시아혁명이었다. 이 역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가 기존의 기득권에 대해 자기 이익을 지키려, 그리고 주장하려 행동에 나선 경우였다. 내 이익은 내가 알아서 지키겠다.&lt;br&gt;&lt;br&gt;조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산군의 예에서 보듯 왕권이 강하면 사대부의 권한을 침범하기 쉽다. 그것은 사대부들이 결코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사대부들이 힘으로, 그리고 명분으로 왕권을 억압하여 자신의 권한을 지키려 한 것이었다. 문제가 될까?&lt;br&gt;&lt;br&gt;유럽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영국의 존 왕으로 하여금 마그나카르타에 서명토록 한 것은 영국의 대귀족과 대상인들이었다. 목적은 바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 말했듯 시민혁명이라는 것도 부르주아지들의 기존의 왕과 귀족에 대한 자기권리 찾기에서 시작되었었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유럽의 근대란 부르주아지에 의한 근대였다.&lt;br&gt;&lt;br&gt;19세기 유럽의 역사를 보면 참 비참하다. 가난한 농민이나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하던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란 전혀 없었다. 19세기의 자유주의란 부르주아지들에 의한 자유주의였고, 부르주아지들이 착취할 자유를 위한 자유주의였다. 원래 그러자고 부르주아지들은 시민혁명을 일으켜 자신들이 주체로 나섰던 것이었고, 그를 위해서 민주주의라는 것도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초기의 민주주의 선거란 소수의 일정한 세금을 낼 수 있는 자본가에 의해서만 투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든 정책도 그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심지어 동인도회사의 경우는 독자적인 군대까지 보유하고 있었을 정도였다.&lt;br&gt;&lt;br&gt;그래서 사회주의가 나타난 것이었다. 사회주의가 나타나고 러시아에서 마침내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고, 메이데이도 그래서 일어난 것이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살지 못하겠다, 그동안 부르주아지에 눌려지내던 프롤레타리아들이 자기 이익을 지키고 실현하고자 단결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현대사회다. 노동자들도 자기 권리를 인정받는. 즉 그러한 권리 또한, 아니 당장 우리나라에서만도 전태일이 없었고, 70년대 80년대 구속당하고 고문당해가며 노동운동에 헌신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이나마 노동자의 권리란 보호될 수 있었을까. &lt;br&gt;&lt;br&gt;조선의 경우도 조선말 동학 등의 평등사상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학이 그리 순식간에 조선의 농민들에게로 침투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조선의 사회구조와 그 모순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안을 동학에서 찾았던 것이었다. 천주교 역시 같은 이유로 하층민과 여성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고. 각지에서 민란이 끊이지 않는 당시 상황에서 동학혁명이란 이미 필연이었다 할 수 있었다. 사대부에 의한 조선의 한계라 할 것이다.&lt;br&gt;&lt;br&gt;즉 사대부라서 더 수탈하고 착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대부라서 더 국정이 엉망이었던 것도 아니었고. 어차피 왕권이 강해서 왕이 독단을 부렸어도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사대부들은 다수이기에 그 가운데 서로 이해도 다르고 그에 대한 조정도 필요하고 했지만, 왕이란 혼자이기에 더욱 독단적이기 쉬우니. 왕이 수탈하나, 사대부가 수탈하나, 그나마 사대부란 서로 눈치라도 보더라는 건데.&lt;br&gt;&lt;br&gt;그런데도 왕에 대한 어떤 환상은 조선의 문제를 왕권이 약해서라 말한다. 왕권을 약화시킨 사대부들을 비난하고. 그러나 사대부 역시 정치에 있어 하나의 이해주체에 불과한데. 왕 또한 마찬가지로 하나의 이해주체에 불과하고. 누군가 나서서 견제하지 않으면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려 드는. 그나마 왕이나 사대부나 서로 눈치를 보느라 조선이 600년을 이어졌달까.&lt;br&gt;&lt;br&gt;문제라면 그 다음 단계가 너무 늦었다는 것인데... 사대부의 체제를 혁파하고 그 이하 계층이 주체로 나서는. 그러나 그러기에는 또 조선의 신분제도가 너무 느슨했던 터라. 아무튼 누구나 기회만 잘 잡으면 양반이 될 수 있었다. 굳이 사대부에 의한 체제를 혁파하지 않고서도 능력껏 양반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니 차라리 양반이 되려 할 밖에. 그나마라도 안 될 때는 결국 조선에서도 서학이며 동학이며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겠지만.&lt;br&gt;&lt;br&gt;인간이 탐욕스러운 건 본능이다. 견제받지 않는 힘이란 항상 탐욕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대민주주의란 그래서 다양한 이해주체와 다양한 계급과 계층이 서로 견제하며 공존하는 체제다. 민주주의란 그래서 항상 욕망을 전제한다. 내가 욕망하는 만큼 상대도 욕망하고, 상대가 욕망하는 만큼 나도 욕망한다. 그것이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는 그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현명하고 인자한 절대자에 대한 환상이란 바로 그런 민주주의에 대한&amp;nbsp;반역과 같은 것일 테고.&lt;br&gt;&lt;br&gt;아무튼 흥미롭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승만의 실정에 대해 이야기하니 당시를 사셨던 할머니께서 그러시더라.&lt;br&gt;&lt;br&gt;&amp;quot;이박사는 잘하려 하는데 아랫사람이 잘못해서...&amp;quot;&lt;br&gt;&lt;br&gt;왕조가 타도되고 벌써 한 세기가 지나감에도 여전히 왕에 대한 환상은 여전한 거라. 일제강점기 텐노의 탓일까? 아니면 스스로 왕이고자 했던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영향일까? 재미있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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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6 Feb 2010 23:44:26 +0900</pubDate>
    <category><![CDATA[역사적 잡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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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흰색에 대한 선호...]]></title>
    <description>
        최소한 고려시대까지 한반도인에게 흰색에 대한 선호는 없어 보인다. 벽화나 각종 회화등을 보더라도 화려하고 다양한 빛깔의 옷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그것을 오히려 조선시대 이전이 더 잘살았다는 근거로 삼는 사람들도 있는데...&lt;br&gt;&lt;br&gt;그러나 사실 조선시대 그려진 풍속화 등을 보더라도 당시 사람들이 결코 하얀 옷만 입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 찍힌 사진들에도 물들인 것이 분명한 옷들이 하층민 사이에서도 보인다. 왜?&lt;br&gt;&lt;br&gt;여기서 오해가 첫째 흰색은 매우 사치스런 색이라는 거다. 흰색으로 천을 짜기 위해서는 표백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하얗게 표백된 옷감을 때가 타지 않게 관리하자면 보통 손이 가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그래서 빨래는 당연히 삶아서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삶고 두드려 빨고 그것을 다시 풀을 먹여 다리고. &lt;br&gt;&lt;br&gt;반면 제주도의 갈옷과 같은 경우는 그리 비싸지 않은 감물로 물을 들여 때도 덜 타고 관리하기에도 좋다.&amp;nbsp;두 번 째 오해, 염색은 비싸다. 지금처럼 물빠질 것을 걱정할 것도 아니고 천연염료라는 것도 얼마든지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라고 돈이 많아서 염색한 옷을 입었을까. 관리하기 좋다고 천연염료로 물을 들여 입곤 했던 것이다. &lt;br&gt;&lt;br&gt;그러면 어쩌다 한반도인 - 특히 조선인에 대해 백의민족이라며 흰 옷만 즐겨 입은 것처럼 전해지게 되었을까.&lt;br&gt;&lt;br&gt;결국 몽골의 지배의 영향이었다. 원래 몽골인들은 흰색을 매우 성스러운 색으로 숭앙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대에 이르러 송대의 청자는 몽골인들의 취향에 맞는 백자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려에도 전해져, 마침 성리학의 영향으로 소박하고 정갈한 삶을 추구하던 사대부의 취향과도 맞아떨어져 조선시대에도 백자가 유행하게 되었었다. 오죽하면 백자를 만들 기술이 부족하니 겉모양만이라도 하얗게 만들려 분청사기까지 만들었겠는가. &lt;br&gt;&lt;br&gt;흰 옷을 즐겨입게 된 것도 이로부터였다. 딱 이미지가 있다. 선비라 하면 문사건에 학창의를 걸치고 근엄하게 앉아 시를 읊조리고... 여기서 학창의가 마치 학의 날개처럼 흰 바탕에 검은 테두리가 진 장포를 말한다. 평소에는 어떤 옷을 입든 선비로서의 지조를 보이고자 할 때는 당연히 흰 옷을 입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흰 빛이란 그 자체로 화사해 보이니 그것이 백성들에게까지 전해져 깨끗하게 삶아 빨고 풀까지 먹인 흰 옷이란 어떤 미학이 되었던 것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여성들의 옷 가운데는 흰 옷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아마 남아 있는 풍속화나 사진들을 보더라도 여성의 옷 가운데는 물들인 것이 더 많으리라.&lt;br&gt;&lt;br&gt;그러나 아무리 흰 옷을 좋아한다고 밭에서 일하고 하면 흰 옷이 흰옷이기가 쉽지 않다. 흙먼지가 앉고, 때에 절고, 땀에 절고, 그렇다고 옷을 매일 갈아입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아예 찌들어버리고, 하긴 그렇기 때문에 흰 옷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닿지 않는 흰 빛이란 가장 원초적인 색일 터이니.&lt;br&gt;&lt;br&gt;즉 두 가지 오해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첫째는 조선인들은 흰옷 말고도 물들인 옷도 많이 입었다는 것과, 둘째는 흰옷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값싸다거나 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lt;br&gt;&lt;br&gt;오히려 조선인들이 흰옷을 선호한 것은 정신적인 부분이 강했다. 몽골의 영향과 성리학적인 이상이 기층민중에게까지 침투하는 과정에서 흰색에 대한 선호까지 함께 받아들여진 때문이었다. 흰색이 의미하는 어떤 상징적인 부분들이.&lt;br&gt;&lt;br&gt;평화를 사랑하고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성리학 자체가 전쟁이나 침략과는 거리가 머니. 유교적인 세계관이라는 게 현상유지가 강하다. 그래서 정복전쟁을 해도 정벌을 한다고 말한다. 죄를 지었으니 그 죄를 벌한다. 그게 천자의 전쟁이라. &lt;br&gt;&lt;br&gt;그러나 땅을 갈아 먹고 살면서 전쟁을 바라는 민족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전쟁도 평화를 명분으로 일어나고 하는 것인데. 하여튼 근대가 저지른 최악의 짓거리가 저따위 도덕적 가치부여라. 뭐가 옳고, 뭐가 그르고...&lt;br&gt;&lt;br&gt;아무튼 내가 지금도 흰 옷을 꺼려하는 이유 그대로, 흰 색이란 참 성가신 색이라는 거다. 내기도 쉽지 않고, 관리하기도 쉽지 않고, 그것을 단지 가난해서라... 이 또한 무모하지 않은가. 그런 것이다. 별 것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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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4 Feb 2010 01:25:17 +0900</pubDate>
    <category><![CDATA[역사적 잡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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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병법삼심육계] 제 25계 투량환주...]]></title>
    <description>
        &lt;p&gt;頻更其陳 抽其勁旅 待其自敗 而後乘之 曳其輪也&lt;br&gt;그 진을 자주 바꾸어 그 강한 군을 피곤케 하며, 적이 스스로 피폐해지기를 기다려 이후 그것을 노리라. 역의 미제괘에 &amp;#39;그 바퀴를 끌어라&amp;#39;라 하였다.&lt;br&gt;&lt;br&gt;미제未濟는 불을 뜻하는 리괘가 위에 있고, 물을 뜻하는 감괘가 아래에 있는 괘다. 얼핏 불과 물이란 어울려 보이지 않는 조합이지만, 그러나 양인 불이 위에 있고 음인 물이 아래에 있으니 아직은 서로 침범하는 바가 없다. &lt;br&gt;&lt;br&gt;여우가 꼬리를 적시는 것은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영리한 여우는 꼬리를 들어 물을 건너면서도 꼬리를 적시지 않는다. 그대로라면 자칫 불은 물에 꺼지고, 물은 불에 증발할 테지만 바로 상황을 주도한다면 불은 불대로 타고 물은 물대로 흐르리라. 그대로 나아가면 불리하지만 큰 강을 건너면 유리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다.&lt;br&gt;&lt;br&gt;즉 역에서 미제괘가 나오면 당장에 결과를 봐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안 좋다. 반면 조금 시간을 두고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음을 뜻한다.&lt;br&gt;&lt;br&gt;전략에서 말하는 미제괘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주어진 상황에 순응만 해서는 그닥 이로운 바가 없다. 그러나 상황을 주도적으로 변화시키려 한다면 - 즉 큰 물을 건너는 용기와 지혜로써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간다면 이롭다. 그리고 전략에서 능동적이라 함은 손자가 말하는 詭道也, 즉 속임수를 말한다.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약함으로 강함을 가리고, 강함으로 약함을 가리는, 투량환주는 이 가운데서도 거짓으로서 진실을 가리는 계략이다.&lt;br&gt;&lt;br&gt;&lt;br&gt;진의 시황제는 다섯번째 순수 도중 평원진에서 죽기까지 아직 태자를 세우지 않고 있었다. 맏아들 부소는 성품이 어질고 진중하며 지혜로워 태자감으로 적당했지만, 그러나 시황제는 그를 아직 문약하다 보아 단련시킨다며 쫓아보내듯 변경의 몽염에게로 보내 놓은 터였다. 그리고 궁에는 환관 조고의 편애 아래 둘째아들 호해가 그저 먹고 놀기만 하며 썩어가고 있었다.&lt;br&gt;&lt;br&gt;아니 시황제는 그보다 여불위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육국을 멸망시키고 전국을 통일한 자신의 역량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자수성가형 인물들이 그러하듯 오로지 자기만이 진의 치세를 이어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불로장생에 대해 그리 관심이 많았었고 보면, 그래서 시황제에게 맏아들 부소란 아직 부족한 아들일 뿐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왕위에 올라 진의 천하를 안정시키리라...&lt;br&gt;&lt;br&gt;그래서 원래는 순수를 시작한 것이었다. 아직 진의 천하를 받아들이지 않는 육국의 백성들에게 진과 시황제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그래서 더욱 거창하게, 더 떠들썩하게,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심지어 육국의 잔당 가운데 도전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해보라는 듯이. 장량과 창해역사 창힐의 고사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lt;br&gt;&lt;br&gt;그러나 평원진에서 갑작스레 병을 얻어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 대단하던 시황제도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제 드디어 비로소 자기가 죽은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신임하던 승상 이사를 불러 유언했다.&lt;br&gt;&lt;br&gt;&amp;quot;내가 죽거든 부소를 불러 왕위를 잇도록 하라.&amp;quot;&lt;br&gt;&lt;br&gt;그러나 미처 부소를 태자로 삼아 왕위를 잇게 하겠다는 유지가 부소가 있던 변방으로 떠나기 전 시황제는 그만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더구나 자신의 죽음이 알려지면 자칫 불만세력들이 일어나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며 함양으로 돌아가기까지 자신의 죽음을 함구할 것을 명령하고 있었다. 그 틈을 노려 환관 조고가 이사에게 접근했다.&lt;br&gt;&lt;br&gt;원래 부소는 탐욕스러운 환관 조고를 혐오했고, 몽염은 기회주의적인 이사의 처신을 경멸했었다. 둘 다 조고와 이사와는 어울릴 수 없는 사이였고, 그렇다고 그것을 놓아두기에는 조고와 이사 모두 누리고 있는 바가 적지 않았다.&lt;br&gt;&lt;br&gt;&amp;quot;만일 이대로 태자에게 왕위를 잇게 하면 승상과 저 모두에게 큰 화가 돌아올 것입니다. 아직 태자가 폐하의 붕어를 알지 못하니 이번 기회에 태자를 죽이고 이왕자로 하여금 황제의 자리를 잇게 하느니만 못합니다.&lt;br&gt;&lt;br&gt;조고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사는 한비자를 천거해 불러들이고서는 그를 질투하여 죄를 씌워 죽였을 정도로 도량이 좁은 이였다. 시황제를 도와 전국을 통일을 내정에서 뒷받침한 역량은 가히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같은 위협과 유혹을 견디기엔 위인이 탐욕스럽고 또 중심도 없었다. 이사는 금새 조고의 설득에 넘어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lt;br&gt;&lt;br&gt;&amp;quot;좋소! 그렇게 합시다.&amp;quot;&lt;br&gt;&lt;br&gt;결국 부소는 먼 변방에서 부왕의 죽음조차 알지 못하고, 부왕의 뜻과는 전혀 상반된 조고와 이사가 꾸며 보낸 명령을 믿고 울며 독약을 먹고 자살했으니, 이로써 조고는 단 한 사람의 병사도 동원하지 않고서도 몽염의 30만 대군의 보호 아래 있던 부소를 죽이고 호해를 황제의 자리에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호해가 황제가 되고서는 몽염을 죽이는 것은 어떤 구실을 만들어 붙이느냐 하는 간단한 일에 불과했다.&lt;br&gt;&lt;br&gt;대들보를 훔치고, 기둥을 빼내고, 대들보는 지붕을 받치는 것이고, 기둥은 집을 지탱하는 것이다. 그것을 훔치고&amp;nbsp;빼내는 것이 어디 쉽겠냐만, 만일 그럴 수만 있담면 집을 허물고 바꾸는 것은 마음대로일 것이다. 황제의 천하에서 황제의 명령을 훔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뜻대로 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울 것이다.&lt;br&gt;&lt;br&gt;&lt;br&gt;강희제의 뒤를 이어 청의 황제의 자리에 오른 옹정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었다. 옹정제는 한 마디로 한량이었다. 젊어서 주색잡기를 탐닉하며 무뢰한들과 어울려 떠돌던 옹정제는 따라서 강건하던 황제 강희제의 신뢰를 잃고 있었다. 장차 강희제의 뒤를 이을 황위계승경쟁에서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lt;br&gt;&lt;br&gt;아니나 다를까 강희제가 늙어 병이 드니 강희제는 옹정의 동생인 14번째 아들 윤제에게 왕위를 물려주마고 유서를 남기고 있었다. 옹정제도 그것을 알았다. 마음이 다급해진 옹정제는 무뢰한 시절부터 함께 어울리던 13태보라 불리우던 측근의 검객들에게 이 일을 상의했다. 어찌할 것인가. &lt;br&gt;&lt;br&gt;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lt;br&gt;&lt;br&gt;&amp;quot;유서를 훔쳐 꾸민다.&amp;quot;&lt;br&gt;&lt;br&gt;마치 무협소설의 한 장면처럼 13태보는 몰래 유서가 보관되어 있던 곳으로 숨어들어가 마침내 유서를 훔쳐내어 그것을 조작하는 데 성공했다. 14황자의 14十四 가운데 十자를 于자로 변조하여 엉뚱하게 4황자에게 황위를 물려준다는 내용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심복들로 하여금 강희제의 거처 주위를 에워싸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혼자서 안으로 들어갔다.&lt;br&gt;&lt;br&gt;병이 위독해져서 신하들을 불러모으려던 강희제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오로지 옹정제만이 자신의 주위를 지키고 있자 순간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 역시 음모를 꾸며 도르곤 이하 많은 권신들을 제거하곤 했던 철혈의 황제였던 것이다. 강희제는 분노하여 들고 있던 염주를 내던지며 마지막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정해진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lt;br&gt;&lt;br&gt;강희제가 숨이 다한 것을 확인한 옹정제는 침착하게 강희제가 집어던진 염주를 집어들고는 신하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강희제가 던진 염주를 증거삼아 자신이 조작한 유서를 신하들에게 보였다. 이미 거짓과 진실이 뒤바뀐 상황에 신하들은 사실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고, 결국 옹정제는 강희제의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할 수 있었다. &lt;br&gt;&lt;br&gt;&lt;br&gt;야전에서의 투량환주는 성동격서나 암도진창과 함께 쓰인다. 예를 들어 2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전역이 그랬다. 영국과 프랑스는 마지노선과 아르덴숲을 믿고 이번에도 1차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벨기에방면이 독일군의 주공일 것이라 지레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군은 그러한 판단에 충실히 응해 조공인 B집단군으로 하여금 마치 주공인 양 공세적인 작전을 수행토록 했다. &lt;br&gt;&lt;br&gt;그러나 정작 독일군의 주공은 벨기에방면의 B집단군이 아니었다. 바로 아르덴숲을 돌파하는 A집단군이었다. A집단군과 보다 남쪽에서 우회하여 접근한 C집단군이 뫼즈강을 건넜을 때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후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당시까지도 프랑스군 지휘부가 제대로만 대처했다면 독일군의 주력을 뫼즈강에서 포착, 연합군이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기까지 독일군을 견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런 독일군의 등장에 프랑스군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이내 독일군은 뫼즈강을 도하아여 연합군의 후방을 종단, 벨기에방면에 있던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을 고립시키는데 성공했다. 결코 우세하다 할 수 없는 전력이었음에도 연합군으로 하여금 주공방향을 오판케 함으로써 완벽하게 빈집털이에 성공한 것이었다.&lt;br&gt;&lt;br&gt;노르망디에서는 독일군이 도리어 당한 경우였다. 당시 독일군 내부에서는 연합군의 상륙지점이 노르망디나 칼레냐를 두고 한참 다투고 있었다. 예상상륙지점에 주력을 배치하여 적을 조기에 격퇴할 것인가, 아니면 후방에 주력을 두어 어디에 상륙할 것인가를 보고 그에 대응하여 기동방어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였다. 여기에 연합군은 독일군이 정확한 판단을 못하도록 다양한 수단으로 기만전을 펼치고 있었다. 영국내 이미 일망타진된 스파이조직을 이용 허위정보를 흘리거나, 칼레에 대한 오판을 유도하기 위한 기만상륙이 그것이었다. 결국 독일군은 상륙지점이 어디인가를 판단하지 못한 채 연합군이 정작 노르망디에 상륙하고서도 한동안 허둥대야 했었다. 역시 상륙지점을 오판케 하는 기만의 성공이었다.&lt;br&gt;&lt;br&gt;&lt;br&gt;세 황제의 전투로 유명한 아우슈터리츠도 그런 예였다.&amp;nbsp;빈을 조기에 점령함으로써 오스트리아 - 러시아 동맹군에 교전을 강요한 나폴레옹은 이번에는 프라첸고지를 동맹군에 허용함으로써 우익에 집중하려는 프랑스군의 의도를 일부러 노출시켰다. 마침 우익은 빈으로의 퇴로이기도 했기에 동맹군의 공격을 우익으로 집중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물론 그 무렵 빈에서는 다부가&amp;nbsp;우익을 지원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던 터였다.&lt;br&gt;&lt;br&gt;프랑스군의 우익을 공격하느라 약화된 중앙은 슐트의 보병대가 돌파하여 프라첸고지를 점령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슐트에 의해 점령된 프라첸고지를 탈환하려는 시도는 베르나토트가 이끄는 중앙의 예비대로 하여금 격퇴할 것이었다. 프랑스군 좌익과 중앙에 의해 분리된 동맹군의 우익을 구축하고, 다시 슐트로 하여금 프랑스군 우익을 공격하고 있던 동맹군 좌익의 배후를 돌아 포위토록 하고. 병력에서는 8만 대 7만으로 동맹군이 우위였지만, 다부의 지원을 받은 프랑스군 우익의 끈질긴 저항에 머뭇거리는 사이 도리어 각개격파당하여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나폴레옹군의 피해는 전사 9000명. 동맹군의 피해는 전사 15000명에 포로 11000명. 압도적인 승리였다.&lt;br&gt;&lt;br&gt;&lt;br&gt;하지만 역시 투량환주가 가장 흔히 쓰이는 예는 바로 사기일 것이다. 봉이 김선달이 하던 짓이 그것이다. 대동강물을 물장수들을 끌어들여 마치 자기 것인 것처럼, 또 서울의 어느 대감을 골탕먹일 때는 저수지에 불과한 것을 비옥한 논인 것처럼, 그리고는 사기를 당한 대감이 그를 잡아들이려 하자 물에 빠져 죽은 것처럼 하고는 쌍동이 동생이 되어 나타나 한 번 더 속이고 있었다.&lt;br&gt;&lt;br&gt;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기껏 투자자를 모은다고 광고를 하더니만 다음날 찾아가 보니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다단계가 돈이 될 거라고 들이미는 서류며 자료들은 모두 업체측에 유리한 것들만 선별한 것이다. 남의 땅을 마치 자기 땅처럼 팔아치우기도 하고, 생판 남인데도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친인척이 되어 투자자를 모으고, 자기가 세운 사업체가 아님에도 자기 사업체인 것처럼 돌아다니며 홍보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그것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lt;br&gt;&lt;br&gt;한신이 여후에게 죽은 것도 그런 방법에 의해서였다. 유방에 의해 장안으로 불려와 억류되어 있던 한신은 불만을 품고 진희와 함께 유방에 반역할 것을 모의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그만 여후에게 포착당하고 말았다. 여후는 진평과 더불어 진희의 반란을 진압하려 유방이 떠난 사이 한신이 내응하기 전에&amp;nbsp;잡을 꾀를 내었다.&lt;br&gt;&lt;br&gt;&amp;quot;진회의 반란이 이미 진압되었고 황제가 돌아오고 있다.&amp;quot;&lt;br&gt;&lt;br&gt;갑작스레 들려오는 소문에 한신은 그만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인 다른 정보수단이 없었던 한신으로서는 그 말을 달리 의심하거나 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낙심한 한신은 진평의 유인에 말려들었고, 마침내 여후에게 유인되어 체포되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진희의 반란이 진압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였으니 제대로 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lt;br&gt;&lt;br&gt;물론 황제의 자리를 둘러싼 조고와 옹정제의 예에서 보듯 이같은 투량환주가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이 바로 정치다. 왕을 훔치고, 왕명을 훔치고, 혹은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진실을 거짓으로 가리고,&lt;br&gt;&lt;br&gt;특히 현대에 이르러 미디어가 발달함에 따라 그같은 수단들은 더욱 위력을 발하게 되었다. 괴벨스가 가장 흔하게 쓰던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하나의 사실을 백 개의 사실로 만들고, 심지어 하나의 거짓으로 다시 백 개의 진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미디어는 가능케 했다. 반복된 노출과 선별된 전달은 사람들을 오판하게 하기에 충분했으니.&lt;br&gt;&lt;br&gt;당장 4대강만 하더라도 그렇다. 본질은 대운하에서 바뀌지 않았다. 강을 인위적으로 파헤침으로써 생기는 환경파괴, 그리고 막대한 예상낭비, 더불어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건설사와 토지소유주 등의 주체들. 그러나 단지 4대강이라 이름이 바뀌면서 4대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 편승할 수 있었다. 더불어 전혀 상관없는 곳의 사진이나 동영상, 그리고 약간의 취사선택과 손질이 가해진 데이터는 그 정당성을 확인해주고 있었고. 더구나 그것을 언론이 뒤에서 뒷받침해주고 있었다.&lt;br&gt;&lt;br&gt;광우병의 경우도 그렇다. 광우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광우병에 걸리면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와 언론은 그것을 교묘하게 확률로 대체했다. 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몇 퍼센트이며 그것은 교통사고보다도 낮다. 지금도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그리 노력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데,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새 광우병의 위험성 자체보다는 그 발병확률을 보게 되었다. 저 정도면 내가 걸릴 일은 없겠구나...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그것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은 깡그리 잊은 채.&lt;br&gt;&lt;br&gt;여자친구를 집에 초대하려면 일단 집청소를 할 필요가 있다. 평소 않더라도 청소도 하고, 여기저기 하지도 않던 집안꾸미기도 하고, 할 수 있으면 대들보도 바꾸고, 기둥도 바꾸고, 흔히 하는 말 있잖은가.&lt;br&gt;&lt;br&gt;&amp;quot;결혼하기 전에는 뭔 말을 못합니까.&amp;quot;&lt;br&gt;&lt;br&gt;상황이 불리하다고 낙심하고 마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의지가 있다면 현명한 사람은 차라리 거짓으로 꾸며서라도 불리함을 넘어서려 한다. 돈을 쓰든, 인맥을 동원하든, 다른 수단을 통해서든, 중요한 것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고, 그를 위해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바꾸는 것이다. 때로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선을 넘어서며 후환이 있기도 하지만, 또 그런 거짓이 용인되는 세계에서는 거기에 넘어가는 자체가 오히려 잘못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거짓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는 거짓말은 당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것이다.&lt;br&gt;&lt;br&gt;어쩌면 병법삼십육계 가운데 가장&amp;nbsp;더러운 제 25계 투량환주다.&amp;nbsp;뒤탈만 아니면 썩은&amp;nbsp;만큼 효과는 확실하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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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3 Feb 2010 21:48:37 +0900</pubDate>
    <category><![CDATA[병법]]></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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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돈 없어서 건물 못 올리는 일은 없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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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건물 올리고 나면 돈이 생긴다.&lt;br&gt;&lt;br&gt;이건 정치계의 오랜 관행 가운데 하나다.&lt;br&gt;&lt;br&gt;일단 깎고 파고 올리면 돈이 들어온다. 괜히 정치인들이 토목과 건축에 목숨거는 게 아니다.&lt;br&gt;&lt;br&gt;물론 예산이야 나가지. 그러나 그것이 자기 돈은 아니지 않은가. 내 돈과 남의 돈은 구분할 줄 아는 상식은 있어야 하는 거다.&lt;br&gt;&lt;br&gt;물론 투표할 때도 그것을 전제할 수 있어야겠지만. 그러나 과연 그런가...&lt;br&gt;&lt;br&gt;나는 건물 올리는 데 들어간 예산보다 그로 인해 쌓인 다른 돈이 더 궁금하다. 어떨까?&lt;br&gt;&lt;br&gt;그래도 민의로 당선된 사람이다. 너무 욕하지 말자. 국민의 뜻이다.&lt;br&gt;&lt;br&gt;나는 대한민국 국민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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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2 Feb 2010 16:25:49 +0900</pubDate>
    <category><![CDATA[잘난맛에 칼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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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국에서 좌파가 힘든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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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는 자각에서 시작된다.&lt;br&gt;&lt;br&gt;&amp;quot;나는 부자유하다.&amp;quot;&lt;br&gt;&lt;br&gt;그로부터 자유를 추구한다.&lt;br&gt;&lt;br&gt;&amp;quot;나는 부당한 억압을 강요당하고 있다.&amp;quot;&lt;br&gt;&lt;br&gt;그로부터 해방을 추구하게 된다.&lt;br&gt;&lt;br&gt;노동운동 역시 마찬가지다.&lt;br&gt;&lt;br&gt;&amp;quot;나는 노동자로서 부당하게 내 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amp;quot;&lt;br&gt;&lt;br&gt;그래서 노동운동이 있다.&lt;br&gt;&lt;br&gt;&amp;quot;여성이기에 나는 사회적으로 불평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amp;quot;&lt;br&gt;&lt;br&gt;여기에서 여성주의가 나온다.&lt;br&gt;&lt;br&gt;즉 좌파라는 것이 한국사회에서 자리를 잡자면 먼저 그 전제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 바로 계급이다.&lt;br&gt;&lt;br&gt;나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충분한 자산을 소유하지 못함으로써 자본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중요한 생산수단과 자본을 소유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소외되고&amp;nbsp;누려야 할 것들을 제대로&amp;nbsp;누리지 못하고 있다.&lt;br&gt;&lt;br&gt;바로 그런 전제에서 복지라는 것도 나오는 것이다. 최소한의 누려야 할 것들에 대해서라도 사회적으로 채워주고자. 사회가 - 국가가 나서서 그런 부분에 대해 강제로 채워줄 수 있도록 하고자.&lt;br&gt;&lt;br&gt;문제는 한국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평등의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정하지 못한다.&lt;br&gt;&lt;br&gt;&amp;quot;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amp;quot;&lt;br&gt;&lt;br&gt;즉 아무리 가난해도 한 방에 왕도 할 수 있고 정승도 할 수 있다. 아무리 없이 살고 가난해도 어떻게 잘만 하면 나도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다. &lt;br&gt;&lt;br&gt;한 마디로 저들과 나는 다르지 않다. 저들과 나는 같다.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다.&amp;nbsp;그런데 저들과 사회적으로 계급에 의해 나뉘어진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내가 저들에 비해 사회적으로&amp;nbsp;열등하고 열악한&amp;nbsp;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lt;br&gt;&lt;br&gt;그래서다. 그래서 좌파에서 사회주의적인 어떤 정책을 내놓았을 때 도리어 그 수혜대상일 무산계급에서 먼저 반발이 일어나는 것은.&lt;br&gt;&lt;br&gt;사회주의가 추구하는 복지정책의 전제는 그것이다. 언젠가도 말한,&lt;br&gt;&lt;br&gt;&amp;quot;가난하게라도 최소한은 누리고 살게 해주자.&amp;quot;&lt;br&gt;&lt;br&gt;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다.&lt;br&gt;&lt;br&gt;&amp;quot;내가 왜 가난해?&amp;quot;&lt;br&gt;&lt;br&gt;나아가,&lt;br&gt;&lt;br&gt;&amp;quot;나더러 평생 가난하라는 거야?&amp;quot;&lt;br&gt;&lt;br&gt;그리고 심지어는,&lt;br&gt;&lt;br&gt;&amp;quot;왜 내가 부자가 될 가능성을 틀어막으려는 거야?&amp;quot;&lt;br&gt;&lt;br&gt;마치 그것과 같다. 아마 들어보았을 것이다. 계란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가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던 처녀가 그만 실수로 계란을 떨어뜨려 깨뜨리자 그리 소리치더라는 것을.&lt;br&gt;&lt;br&gt;&amp;quot;아이구 내 집! 우리 기와집!&amp;quot;&lt;br&gt;&lt;br&gt;설마 계란 팔아서 집을 사기야 하겠냐만 시장에 가는 사이 처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란을 판 돈으로 집을 살 계획까지 다 세워진 것이다. 그래서 이미 그 집은 내 집 같고.&lt;br&gt;&lt;br&gt;즉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다. 모두가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 더 높은 곳에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처럼 자신도 어깨에 힘을 주고 으스대며 살고 싶다. 그런데 사회주의적인 정책들이란 그것에 대해 견제하고 감시하자는 것이다. 달가울까.&lt;br&gt;&lt;br&gt;아니 더 나아가 그런 것까지도 필요 없고 계급 이야기만 하면 정말 난리도 아니다.&lt;br&gt;&lt;br&gt;&amp;quot;그럼 내가 저들만 못하다는 거냐?&amp;quot;&lt;br&gt;&lt;br&gt;물론 현실에서 한참 못하다. 돈이 있나 권력이 있나. 애들 가르치는 것도, 평소에 내리는 생활수준이나 문화수준도 그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자기 존재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lt;br&gt;&lt;br&gt;&amp;quot;세상에 더 낫고 못하고가 어디 있는가.&amp;quot;&lt;br&gt;&lt;br&gt;그래서 내려지는 결론,&lt;br&gt;&lt;br&gt;&amp;quot;계급은 없다. 국민만 있을 뿐이다.&amp;quot;&lt;br&gt;&lt;br&gt;어디서 들어본 이야기인데... 내가 2차세계대전사를 참 좋아해서 말이다. 1차세계대전에서 2차세계대전에 이르는... 아니 나는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을 하나의 전쟁으로 놓고 본다. 그건 일정한 방향을 그리며 이루어진 일련의 행위들이었다.&lt;br&gt;&lt;br&gt;아무튼 그래서다. 사회주의적인 어떤 복지정책을 추구하자면 먼저 자신이 무산계급임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적인 보호와 배려가 필요한 계급에 속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그에 맞는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야 하노라.&lt;br&gt;&lt;br&gt;노동자이기에 노동자로서의 이익을 스스로 추구한다. 노동자이기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스스로 찾고 스스로 지키고 스스로 누린다. 그러나 과연 누가 노동자이고 싶어하느냐는 거다.&lt;br&gt;&lt;br&gt;&amp;quot;기회만 되면 당장 그만두고 장사라도 한다.&amp;quot;&lt;br&gt;&lt;br&gt;혹은,&lt;br&gt;&lt;br&gt;&amp;quot;내 자식은 절대 이런 일 안 시킨다.&amp;quot;&lt;br&gt;&lt;br&gt;그래서 교육열도 이렇게 뜨거운 건데,&lt;br&gt;&lt;br&gt;물론 좋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과연 모두가 유산계급이 될 수 있을까. 모두가 턱으로 명령을 내리는 위치에 오를 수 있을까. 만일 그러지 못한다면. 아니 분명 그러지 못할 터인데도.&lt;br&gt;&lt;br&gt;조선후기가 그랬다. 조선후기 돈이 조금이라도 있는 양인들은 죄다 양반을 샀다. 중인으로서, 혹은 상민으로서 양반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양반에 편입됨으로써 부당하고 불평등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그래서 현실은? 결국 양반 안에서도 층이 나뉘어지고 그 가운데서 또 차별을 받을 뿐이었다.&lt;br&gt;&lt;br&gt;반면 유럽에서는 스스로 시민임을 자각한 이들이 귀족들의 권위를 깨뜨리고 시민사회를 열었었다. 노동자임을 자각한 이들이 파업을 벌이고 피의 투쟁을 벌여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고 있었다. &lt;br&gt;&lt;br&gt;어쩌면 그런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럽은 신분제가 엄격했다. 어지간해서는 평민이 귀족이 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반면 조선은 신분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해서, 일단 양인이면 과거를 볼 수 있었고, 과거에 합격하면 양반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과거에 합격하는 것은 항상 유산계급이자 유한계급인 양반들이었고, 그 가운데 관직에 나설 수 있는 것은 문벌이 좋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조선의 양인들에게 굳이 양인라는 굴레에 갇히고자 하지 않게 만든 것이었다.&lt;br&gt;&lt;br&gt;지금도 마찬가지다. 너는 무산계급이다, 그러나 그게 싫은 거다. 자기도 유산계급이 되고 싶은 거다. 번듯하게 사업이라도 하나 제대로 성공해서 보란듯이 성공해 나도 유산계급이 되겠노라. 지배당하는 위치에서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서겠노라.&lt;br&gt;&lt;br&gt;그런데 무산계급을 위한다는 복지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까.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최소한의 삶을 누리면서 여전히 없이 살게라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달갑게 들릴까.&lt;br&gt;&lt;br&gt;원래 야바위에 전재산을 때려넣는 이유는 옆에서 돈을 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돈을 따는 사람이 있을 때 마치 그 돈이 내 돈 같아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저만큼 따야.&lt;br&gt;&lt;br&gt;결국은 나와 남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저들과 나는 다른 존재임을 알아야 할 텐데. 무엇보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망상이 아직은 현실이 아님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할 텐데.&lt;br&gt;&lt;br&gt;그러나 한국사람들은 부자유에 대한 자각조차 없다는 것이다. 부자유하게 하는 강요나 역압에 대해서도 그래서 그리 관대할 수 있는 것이다. 불평등이나 부당함, 부조리에 대한 자각은 더욱. 그런데 하물며.&lt;br&gt;&lt;br&gt;한국좌파는 사실상 조봉암의 죽음으로 끝났다고 보면 된다. 현재의 좌파란 단지 군사독재에 대한 반발로서 성립된 경우이며, 그 정신적 뿌리마저 군사독재에 근거해 있다. 심지어 개혁과 민주주의를 마라는 이들조차도.&lt;br&gt;&lt;br&gt;한국에서 좌파가 자리잡기 힘든 이유다. 일단 좌파가 자리잡으려면 그에 대한 전제에 대해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으니.&lt;br&gt;&lt;br&gt;진보의 전제는 자각이다. 자각 없이는 진보도 없다. 그런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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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1 Feb 2010 22:52:01 +0900</pubDate>
    <category><![CDATA[진한 넋두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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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슬슬 거품이 빠지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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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원래 이 블로그 가치가 방문자수 1천 명이 안 된다. 한 600명?&lt;br&gt;&lt;br&gt;그동안 너무 많았다. 조금 속이 쓰리기는 하지만.&lt;br&gt;&lt;br&gt;아무튼 조금 더 편하게 힘빼고 쓸 수 있겠다.&lt;br&gt;&lt;br&gt;좋은 현상이다. 만세!&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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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31 Jan 2010 21:57:06 +0900</pubDate>
    <category><![CDATA[객적은 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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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어떤 상대성이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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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시공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상대성이론의 핵심이겠지. 맞나? 물리학 쪽으로는 마지막 읽은 것이 10년이 넘어가서.&lt;br&gt;&lt;br&gt;모두에게 시간과 공간은 같지 않다. 특히 에너지는 시간과 공간을 왜곡시킨다. &lt;br&gt;&lt;br&gt;마찬가지로 사회현상에도 같은 이론을 적용할 수 있겠다. 모든 인간에게 시간과 공간은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lt;br&gt;&lt;br&gt;예를 들어 지금 내 컴퓨터가 베니스3000이다. 몇 번 업그레이드를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결론은 귀찮아서. 요즘은 게임도 잘 않다 보니 그냥 이놈으로도 적당히 무리없이 쓸 수 있다. 내가 직접 부품을 사다 조립해 써야 하는데 그게 영 성가신데다, 그러고 나면 또 윈도우며 드라이버며 어플이며 다시 다 깔아야 하니. 한 마디로 귀찮아서...&lt;br&gt;&lt;br&gt;그런데 이게 참 요즘 들어 굉장히 성가시다. 뭐라도 보고 싶은 동영상 있어 찾아 보려면 죄다 고용량고화질. 아예 인터넷조차도 플래시에 뭐에 무거워 버벅대기가 일쑤다. 진짜 컴퓨터 갈아야 할까?&lt;br&gt;&lt;br&gt;그런데 나보다 더한 사양의 컴퓨터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예전 역시나 귀찮아서 펜3 800을 5년을 쓰고 났더니 베니스3000으로 업그레이드하니까 다른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 그런데 아직도 펜3급 컴퓨터를 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아예 그조차도 없는 집도 또 적지 않고. 그런 사람들은 어떨까.&lt;br&gt;&lt;br&gt;일단 게임에서도 그런 사람들의 경우 아무래도 몇 년 정도 지난 옛날 게임을 해야 할 것이다. 최신 온라인게임은 꿈도 못 꾼다. 동영상도 요즘은 잘 구하기도 힘든 저화질로 봐야할 테고, 인터넷도 속도가 느려 항상 답답해 해야 할 테고, 아무튼 컴퓨터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시간은 그만큼 느리게 간다 할 수 있을 것이다.&lt;br&gt;&lt;br&gt;나 예전에도 그랬었다. 워낙 집안이 어려워서, 또 살던 동네도 그랬던 터라, 연탄보일러라는 걸 80년대 거의 후반에야 처음 접했었다. 그 전까지는 그냥 연탄아궁이에 구들이었다. 아랫복은 절절 끓지만 웃목은 찬 바람이 도는. 물론 연탄보일러도 말이 보일러지 방 저 끝쪽으로 가면 물이 식어 서늘했다. 그래도 얼마나 좋았던가.&lt;br&gt;&lt;br&gt;석유곤로를 90년대까지 썼다. 90년인가 그 무렵에 처음 우리집에도 냉장고라는 것이 생겼을 것이다. 전화기는 내가 중학교 들어가고 나서. 그런데 정작 전화기가 생겼는데 전화를 걸 곳이 없었다. 생전 전화라는 걸 해 봤어야지. 미닫이식 문이 달린 흑백텔레비전이라는 것도 아마 중학교 때까지 보고 있었고, 그게 다리도 달려 있었다. 아마 그때를 아십니까 같은 프로그램에서나 지금은 볼 수 있을 것이다. 건전지 14개인가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 진공관도 쓰이지 않았을까 지금은 의심한다 - 내가 어디서 줏어다 고쳐서 쓰던 카세트라디오에,&lt;br&gt;&lt;br&gt;내가 고전을 많이 읽게 된 이유도 사실 책 살 돈이 없어서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주로 빌려 읽었는데, 워낙 학교 도서관이라는 곳이 그렇다 보니 죄다 고전들 뿐이었다. 헤밍웨이, 헷세, 모파상, 도일, 클라크, 공자, 장자, 노자, 루소, 아마 80년대 말인가 걸리버여행기 완역판이 나왔다고 했을 때 내가 당황스러워했던 것이 이미 60년대에 완역판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세로쓰게 된 그 버전으로 읽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사고방식이 이리 고루한 모양인데,&lt;br&gt;&lt;br&gt;하긴 그러고 보면 그런 것이 아직 현실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연탄을 때고, 여전히 곤로에 밥을 지어 먹고, 여전히 낡은 텔레비전에, 낡은 라디오에, 컴퓨터도 없이, 또 냉장고도 없이, 그런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그저 최소한의 삶만을 영위하는 사람들.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이들. 나야 이미 조금 느리더라도 시간과 함께 가고 있다 하더라도.&lt;br&gt;&lt;br&gt;자본주의다. 시간을 따라가려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음반을 사서 들으려 해도 돈이 있어야 하고, 새로 나온 영화를 극장에 가서 보려 해도 돈이 있어야 하고 - 어려서는 그래서 거의 명절 쯤 해서 텔레비전에서 해주면 그때서나 보았다. - 그림을 보려 해도, 무용을 보려 해도, 뮤지컬을 보려 해도 돈이 있어야 한다.&lt;br&gt;&lt;br&gt;최신 핸드폰에서는 이런 기능도 되더라... 돈이 있어야지. 최신 컴퓨터는 이 정도 성능이더라. 돈이 있어야 한다니까. 인터넷에서 이런 것도 가능하더라. 역시 돈이 있어야 한다. 요즘 학계에서 유행하는 최신이론이 무엇인가... 역시 책 사 볼 돈은 있어야.&lt;br&gt;&lt;br&gt;돈이 없으면 결국 시간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질 뿐이다. 대학 들어가서야 컴퓨터를 처음 본 탓에 남들 다 컴퓨터로 리포트 쓸 때 혼자서 손으로 깨작거려야 했던 것처럼. 컴퓨터로도 한 번 써봤는데 독수리 타법이라는 게 손으로 쓰는 것보다 느리더라. 남들 케텔 이야기하는데 그게 뭔지... BBS 어쩌고 하는데 그건 또 뭔지... &lt;br&gt;&lt;br&gt;그런데도 또 그런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컴퓨터가 필수가 되어 버린 시대에 컴퓨터조차 없는 아이가, 혹은 컴퓨터가 있어도 어지간한 최신 어플과는 상관이 없는 아이가, 더 나은 컴퓨터로 더 빠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아이와.&lt;br&gt;&lt;br&gt;10년 전의 컴퓨터와 바로 지금 나온 따끈따끈한 컴퓨터와, 그것은 개인이 획득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속도를 비유적으로 말해준다 하겠다. 마치 도시에 비해 한참 시간이 늦게 가는 것처럼 보이는 농어촌처럼. &lt;br&gt;&lt;br&gt;하긴 시간이 자본에 의해서만 결정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공간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변화란 항상 중심부에서 먼저 일어난다. 그리고 주변부로 확산되어간다. 따라서 주변부는 항상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느리다. 농어촌이 지금도 세계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남는 것은 그래서다. 공간은 도시와 도시를 잇고 다시 도시와 주위 촌락을 잇고 개인들에게로 이어지다 보니.&lt;br&gt;&lt;br&gt;그래서 조선시대 경상도 선비들을 보리문동이라 비웃고 했던 것이었다. 서울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데 관로가 막히다 보니 서울과의 소통이 끊긴 경상도 선비들은 항상 옛날 방식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같은 고루함과 완고함을 비웃어 문동 - 글을 배우는 아이라 했고, 이것이 경상도에서 많이 먹던 보리와 만나면서 보리문디. 그나마 요즘은 오히려 미디어의 발달로 그러한 문화적인 격차는 많이 줄어든 편이다. 단지 경제적인 격차가. 주변부는 또한 경제적으로도 열악하기 쉬운 때문이다.&lt;br&gt;&lt;br&gt;과연 이런 문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그러나 사실 이미 대안은 나와 있었다. 19세기 공리주의자들은 개인이 보다 행복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공공교육과 국가가 지원하는 각종 문화시설과 행사들과,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김대중 정부 당시 국민PC라는 것도 한계는 있었지만 취지는 좋았다. 모든 국민이 최소한 컴퓨터 한 대는 가질 수 있도록 하자. &lt;br&gt;&lt;br&gt;사실 복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모두가 같은 시공간에 있도록 하는 것. 시간과 공간의 괴리 없이 같은 시공간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모두에게 최신의 첨단의 생활을 영위토록 하는 것은 무리더라도 최소한 정보의 접근과 획득에 있어서만큼은 동일한 시공간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정보의 질과 양 모두에서.&lt;br&gt;&lt;br&gt;참고로 예전 어느 게임업체에서 시장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각 지역의 경제수준과 컴퓨터의 사양, 인터넷 환경, 그리고 주로 즐기는 게임... 결론은 경제수준과 컴퓨터사양과 즐기는 게임의 종류는 비례했었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지역에서는 3D게임이 주류였고,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캐주얼게임이 주류였고, 아마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테지만. &lt;br&gt;&lt;br&gt;아마도 이런 것이 고기를 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것일 텐데, 그러나 요즘엔 영어라는 장벽이 또 새로 생겨서. 영어를 어려서부터 잘 할 수 있는 환경의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와...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를 과연 모국어처럼 쓸 수 있는 경우가 과연 그렇게 많을까.&lt;br&gt;&lt;br&gt;빠르게 바뀌어가는 현대 속에서 과연 어떻게 모두가 같은 시간에 머물 수 있는가... 시간의 격차가 자칫 사회적 괴리로 이어지지는 않는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일 테지만, 그러나...&lt;br&gt;&lt;br&gt;&amp;quot;취직 못하면 기술 배우라!&amp;quot;&lt;br&gt;&lt;br&gt;흠...&lt;br&gt;&lt;br&gt;결과의 평등은 안되도 기회의 평등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술을 배울 땐 배우더라도.&lt;br&gt;&lt;br&gt;요즘은 농사를 지어도 뭐라도 알아야 잘 짓는다. 그런 시대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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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31 Jan 2010 22:40:04 +0900</pubDate>
    <category><![CDATA[진한 넋두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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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길창덕 선생님이 가셨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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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고우영, 신영식, 이재학, 박봉성, 그밖에 이름조차 없이 사라져간 이가 몇이던가. 봄비를 불렀던 한국 최고의 소울 보컬 박인수씨도 행려병자가 되어 뉴스지면에 한 줄 기사도 없이 가셨단다.&lt;br&gt;&lt;br&gt;길창덕... 지금도 기억한다. 꺼벙이, 고집새, 쭉쟁이, 신판보물섬, 재동이, 순악질여사 등등등...&lt;br&gt;&lt;br&gt;길창덕 선생님의 만화는 말 그대로 순수였다. 보일러보다는 연탕아궁이가 더 어울리는, 아파트보다는 슬레이트 지붕이 더 친숙한, 가스렌지보다는 석유곤로가 더 생각나는 그런 빛바랜 순수. 개구지고 악동스럽지만 그러나 착하고 순진하던 아이들. 짓궂지만 악하지 않고 그저 말썽꾸러기에 순수하던 그런 아이들.&lt;br&gt;&lt;br&gt;폭력이 당연하던 시대에도 선생님의 만화에는 폭력이란 없었다. 증오와 원망이 가득하던 때에도 선생님의 만화에는 모나지도 넘치지도 않는 웃음 뿐이었다. 어느새 나도 같이 선생님처럼 해맑아지는.&lt;br&gt;&lt;br&gt;오히려 나이들어 읽으며 더 좋았었다. 나이 들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더 순수해질 수 있었다. 나보다 한참 연배인 선생님께서 그 나이 되도록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그래서 만화가란 직업을 동경했더랬다. 지금은 명랑만화란 자체가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lt;br&gt;&lt;br&gt;어쩌면 명랑만화야 말로 만화의 본령이 아닐까.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명랑했던 만화가 길창덕 선생님의 만화였다. 윤승운, 신문수, 신전식, 박수동, 윤준환, 지승운, 모두 각자 자기만의 작품세계가 있던 작가분들이셨지만 그 가운데 유독 길창덕 선생님의 순수가 빛났다. 오히려 만화적인 재미는 떨어지지만 그래서 마치 물처럼 담담하게 번져나가는 것 같은. 물론 누가 더 낫다는 건 아니다. 저분들 모두 내가 존경하는 작가분들이니. &lt;br&gt;&lt;br&gt;그런 순수가... 나이 들어 더 그립고 사랑스럽던 순수한 이야기들이...&lt;br&gt;&lt;br&gt;그러나 어느새 선생님께 받은 것들이 그리 많더란다. 많고 넘쳐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만큼. 시간은 흘렀고 선생님도 늙었고, 어느새 망각 속에 선생님을 떠나보내게 되었다.&lt;br&gt;&lt;br&gt;1910년 1월 10생. 향년 81세.&lt;br&gt;&lt;br&gt;더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은데.&lt;br&gt;&lt;br&gt;나는 결코 그분을 잊지 못하리라. 선생님으로 인해 꾸었던 그 꿈들과 함께.&lt;br&gt;&lt;br&gt;안녕히...&lt;br&gt;&lt;br&gt;평안하시라...&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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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30 Jan 2010 23:52:44 +0900</pubDate>
    <category><![CDATA[잡다구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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