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rss version="2.0"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channel>
<title><![CDATA[^(^  하늘은 맑고 푸르다 ^)^]]></title>
<description><![CDATA[취미삼아  글을 머리에서 마음에 넣고 손으로 정성들여 쓰려고 노력하는 중년의 사내입니다]]></description>
<link>http://kr.blog.yahoo.com/ppis4988</link>
<language>ko</language>
<image>
    <title><![CDATA[^(^  하늘은 맑고 푸르다 ^)^]]></title>
    <url>http://img.yahoo.co.kr/blog/manage/banner_img01.gif</url>
    <description><![CDATA[취미삼아  글을 머리에서 마음에 넣고 손으로 정성들여 쓰려고 노력하는 중년의 사내입니다]]></description>
    <link>http://kr.blog.yahoo.com/ppis4988</link>
</image>
<item>
    <title><![CDATA[파랑새]]></title>
    <description>
        &lt;p align=&quot;center&quot;&gt;&lt;br&gt;&lt;/p&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p&gt;&lt;img hspace=&quot;5&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f/3d/c000990/folder/289/img_289_21548_5?1217509632.jpg&quot; vspace=&quot;5&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img hspace=&quot;5&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f/3d/c000990/folder/289/img_289_21548_1?1217509632.jpg&quot; vspace=&quot;5&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img hspace=&quot;5&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f/3d/c000990/folder/289/img_289_21548_4?1217509632.jpg&quot; vspace=&quot;5&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img hspace=&quot;5&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f/3d/c000990/folder/289/img_289_21548_2?1217509632.jpg&quot; vspace=&quot;5&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img hspace=&quot;5&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f/3d/c000990/folder/289/img_289_21548_0?1217509632.jpg&quot; vspace=&quot;5&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img hspace=&quot;5&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f/3d/c000990/folder/289/img_289_21548_3?1217509632.jpg&quot; vspace=&quot;5&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strong&gt;파랑새 [broad-billed roller]&lt;/strong&gt;&lt;/font&gt; &lt;a href=&quot;http://kr.blog.yahoo.com/c000990&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amp;#x00af43;&amp;#x00c1a1;&amp;#x00c77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f/3d/c000990/home/imgnick?1265151382&quot; align=&quot;absMiddle&quot; border=&quot;0&quot;&gt;&lt;/a&gt;사진/글/꽃송이님&lt;br&gt;&lt;br&gt;파랑새목 파랑새과의 조류. &lt;br&gt;&amp;nbsp;&lt;br&gt;학명&amp;nbsp; Eurystomus orientalis &lt;br&gt;분류&amp;nbsp; 파랑새목 파랑새과 &lt;br&gt;생활방식&amp;nbsp; 나무 위 생활 &lt;br&gt;크기&amp;nbsp; 몸길이 29.5cm &lt;br&gt;색&amp;nbsp; 청록색 &lt;br&gt;생식&amp;nbsp; 1회에 3~5개의 알을 낳음 &lt;br&gt;서식장소&amp;nbsp; 도시 공원이나 농경지 부근, 낮은 산지 숲 &lt;br&gt;&amp;nbsp;&lt;br&gt;몸길이 29.5cm이다. 몸은 선명한 청록색이며 머리와 꽁지는 검은색을 띤다. 첫째날개깃 중앙에 창백한 코발트색 무늬(날 때는 흰색으로 보인다)가 있다. 부리와 다리는 산호색을 띤 붉은색이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여름새이다. 주로 큰 고목이 드문드문 있는 침엽수림이나 혼효림 또는 공원이나 농경지 부근에서 살며 나무구멍에 둥지를 틀고 번식한다. 부리가 단단해서 전주에 구멍을 뚫고 둥지를 틀기도 한다.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데, 나무꼭대기 가까이 앉아 있다가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는다. &lt;/p&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br&gt;&lt;/p&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p&gt;날 때는 날개의 흰색무늬가 아주 선명하게 눈에 띈다. 5월 경에 찾아온 새는 초기에 둥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격렬하게 싸운다. 5월 하순에서 7월 상순에 걸쳐 3∼5개의 알을 낳는다. 매일 1개씩 낳아 22∼23일 동안 알을 품고, 새끼는 약 20일 동안 암수가 함께 기른다. 먹이는 딱정벌레·매미·나비 등을 즐겨 먹는다. 인도·일본·보르네오섬·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북부의 번식 집단은 겨울에는 열대지방으로 이동하며 남부의 번식 집단은 텃새이다.&lt;br&gt;&lt;/p&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파랑새&lt;br&gt;&lt;br&gt;&lt;br&gt;언제나 늘 그 자리에&lt;br&gt;있어주세요&lt;br&gt;&lt;br&gt;가신다는 말씀은 &lt;br&gt;하지마세요&lt;br&gt;&lt;br&gt;님이 안계시면&lt;br&gt;이곳은 &lt;br&gt;재미가 없잖아요&lt;br&gt;&lt;br&gt;요리조리 옮기시면&lt;br&gt;설레이는 소식전하는&lt;br&gt;파랑새&lt;br&gt;&lt;br&gt;오늘은 아니오시나 &lt;br&gt;기다리면&lt;br&gt;어느새&lt;br&gt;다녀가셨네&lt;br&gt;&lt;br&gt;님은 행복을 전하는 파랑새&lt;br&gt;나는 나는 파랑새를 기다리는 외로운 철새&lt;br&gt;&lt;br&gt;&lt;br&gt;&lt;br&gt;작/루시드나나&lt;a href=&quot;http://kr.blog.yahoo.com/emporiummt@ymail.co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amp;#x00b8e8;&amp;#x00c2dc;&amp;#x00b4dc;&amp;#x00b098;&amp;#x00b098;&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c6/6f/emporiummt@ymail.com/home/imgnick?1265151526&quot; align=&quot;absMiddle&quot; border=&quot;0&quot;&gt;&lt;/a&gt;&lt;br&gt;&lt;br&gt;&lt;br&gt;&lt;/p&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pis4988/29196</link>
    <guid>http://kr.blog.yahoo.com/ppis4988/29196</guid>
    <pubDate>Wed, 03 Feb 2010 15:07:24 +0900</pubDate>
    <category><![CDATA[사랑방 친구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역사의 뒤안길]]></title>
    <description>
        &lt;p align=&quot;center&quot;&gt;&lt;a href=&quot;&quot;&gt;&lt;img alt=&quot;&amp;#x00c6d0;&amp;#x00bcf8; &amp;#x00d06c;&amp;#x00ae30;&amp;#x00c758; &amp;#x00c0ac;&amp;#x00c9c4;&amp;#x00c744; &amp;#x00bcf4;&amp;#x00b824;&amp;#x00ba74; &amp;#x00d074;&amp;#x00b9ad;&amp;#x00d558;&amp;#x00c138;&amp;#x00c694;&quot; hspace=&quot;5&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f/3d/c000990/folder/307/img_307_26968_2?1257041786.jpg&quot; width=&quot;756&quot; vspace=&quot;5&quot; border=&quot;0&quot;&gt;&lt;/a&gt;&lt;br&gt;&lt;br&gt;역사의 뒤안길&lt;br&gt;&lt;br&gt;&lt;br&gt;보고&lt;br&gt;듣고&lt;br&gt;배운다&lt;br&gt;경험하지 않았던&lt;br&gt;역사의 뒤안길&lt;br&gt;&lt;br&gt;읽고 &lt;br&gt;쓰고 &lt;br&gt;느낀다&lt;br&gt;뒤엉킨 역사의 굴레&lt;br&gt;역사의 모순&lt;br&gt;&lt;br&gt;어제의 악당이&lt;br&gt;오늘의 영광된 자로&lt;br&gt;둔갑하는 &lt;br&gt;역사의 늪&lt;br&gt;&lt;br&gt;과거의 처형자가&lt;br&gt;현세의 성인으로&lt;br&gt;추앙받는&lt;br&gt;역사의 덫&lt;br&gt;&lt;br&gt;오늘은&amp;nbsp; 옳다고해도&lt;br&gt;현실은&amp;nbsp; 인정한다해도&lt;br&gt;내일은&amp;nbsp; 둔갑시키리라&lt;br&gt;역사가 말하리라!&lt;br&gt;&lt;br&gt;&lt;br&gt;&lt;br&gt;작/루시드나나&amp;nbsp; 사진/달리아/&lt;a href=&quot;http://kr.blog.yahoo.com/c000990&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amp;#x00af43;&amp;#x00c1a1;&amp;#x00c77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f/3d/c000990/home/imgnick?1264853027&quot; align=&quot;absMiddle&quot; border=&quot;0&quot;&gt;&lt;/a&gt;&lt;br&gt;&lt;br&gt;&lt;br&gt;달리아/꽃말은 ‘정열·불안정과 변덕’이다.&amp;nbsp; &lt;br&gt;뒤안길/ 집들의 뒤쪽으로 나 있는 길. . 다른 것에 가려서 관심을 끌지 못하는 쓸쓸한 생활이나 처지&lt;br&gt;&lt;br&gt;영어 한 마디/인생의 뒤안길 the backwaters of life&amp;nbsp; 샛길.&lt;!-- //일한 --&gt; &lt;/p&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pis4988/29187</link>
    <guid>http://kr.blog.yahoo.com/ppis4988/29187</guid>
    <pubDate>Sun, 31 Jan 2010 02:32:17 +0900</pubDate>
    <category><![CDATA[사랑방 친구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5] 국운은 기울어도 무역은 살아나다]]></title>
    <description>
        &lt;h3&gt;1909. 8. 29~1910. 8. 29&lt;/h3&gt;20세기 초 강원도 홍천군의 상인 송화선(宋化善)이 남긴 장기(掌記·상품거래 명세서) 당시의 농촌 상거래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150점이 남아 있는 장기는 1910년부터 5년간 주변 상인과의 상품 거래 내역을 꼼꼼히 적었는데, 면포·면사·수건·석유·담배·일본 거울·안경 등 수입제품에 관한 기록도 있었다.&lt;br&gt;&lt;br&gt;개항 전 조선의 엘리트들은 중국의 책자와 약재 등 몇 가지 품목을 제외하고는 무역이 필요 없다고 여겼으나, 개항 후에는 인식이 바뀌었다.&lt;br&gt;&lt;br&gt;&amp;quot;새로운 세계질서는 춘추전국시대보다 치열하게 쟁패하는 대전국(大戰國)시대와 같으며, 그 속에서 나라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부국강병책을 추구해야 하며, 부강하기 위해서는 통상을 도모해야 한다.&amp;quot;&lt;br&gt;&lt;br&gt;1881년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42&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 name=&quot;focus_link&quot;&gt;일본&lt;/a&gt; 시찰단의 일원으로 다녀온 어윤중(魚允中)의 말이다. 그 결과 조선은 무역 발전을 국가 정책으로 채택한다. 19세기 말 무역은 쌀·콩 등 곡물을 수출하고, 공산품을 수입하는 구조였다. 일본인 마쓰다 고조(松田行藏)는 개항된 지 10년 만인 1877년 항구를 통해 들어온 면포 등 수입품이 내륙 도처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는 보고서를 남겼다. 경상북도 예천군 맛질에 사는 박씨가의 가계출납부를 보면 수입품의 전파시기를 알 수 있는데, 면포는 1877년, 면사는 1879년, 성냥은 1891년, 석유는 1893년부터 농촌 시장에 유통되었다.&lt;br&gt;&lt;br&gt;&lt;div class=&quot;center_img&quot;&gt;&lt;dl style=&quot;WIDTH:480px;&quot;&gt;&lt;dd&gt;&lt;img id=&quot;artImg1&quot; height=&quot;479&quot;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10/01/2009100101127_0.jpg&quot; width=&quot;480&quot;&gt; &lt;dt&gt;&lt;span&gt;▲&lt;/span&gt; 개항된 지 10년 만인 1877년 항구 (사진 위·군산항) ,20세기 초 강원도 홍천군의 상인 송화선(宋化善)이 남긴 장기(掌記·상품거래 명세서)(사진 아래). &lt;/dt&gt;&lt;/dd&gt;&lt;p&gt;한강을 배로 여행한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의 눈에도 1894년경 조선의 무역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amp;quot;소금을 비롯한 거의 모든 상품과 외국 물품이 해안으로부터 한강을 타고 올라와 각 포구에서 보부상 등 행상에게 건네지면, 상인들은 봇짐이나 지게, 소, 말 등으로 이를 내륙 장터로 날랐다. 농부의 가장 중요한 지출은 좋은 의복용으로 외국산 면제품을 사는 것이다&amp;quot;라고 기록했다.&lt;br&gt;&lt;br&gt;무역 확대는 산업생산에 영향을 미쳤다. 1894년 일본영사관 보고에 의하면, &amp;#39;조선농민도 그 잉여 미곡을 비싸게 방매할 수 있고 도리어 그 수입품을 싸게 살 수 있는 이익을 알자마자, 종래 한집안 식구의 굶주림을 채움으로써 족하다고 하는 자도 잉여를 얻기를 바라고, 내버려두어 돌보지 않던 논두둑도 잇따라 개발되기에 이르렀다&amp;#39;고 한다. 또한 값싼 수입직물을 구매하면서 가내 직물업이 급격히 위축되고, 도시 직물공장이 출현했다.&lt;br&gt;&lt;br&gt;개항 직전(1876년) 조선의 무역액은 300여만엔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 정도였으나, 1911년에는 1억엔을 넘어 GDP의 20%에 달한다. 무역의 급증은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조선시대 경제성장률은 다른 전근대국가와 비슷한 연평균 0.2% 정도였다가 개항기에는 1%를 넘어섰다. 장기간 하락 추세이던 논의 단위 면적당 쌀수확량도 1890년대부터 증가 추세로 바뀌었다. 개항 후 무역의 증가는 근대적 기술·제도 도입과 더불어 개항기뿐만 아니라 20세기 경제성장의 토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lt;/p&gt;&lt;br&gt;&lt;/dl&gt;&lt;/div&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pis4988/29185</link>
    <guid>http://kr.blog.yahoo.com/ppis4988/29185</guid>
    <pubDate>Sat, 30 Jan 2010 15:28:26 +0900</pubDate>
    <category><![CDATA[100년전 조선]]></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4] &#39;쥣통(痛)&#39; 혹은 &#39;호열자(虎列刺)&#39;]]></title>
    <description>
        &lt;h3&gt;1909. 8. 29~1910. 8. 29&lt;/h3&gt;콜레라는 19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이었다. 어디든 느닷없이 다가가 삽시간에 온 마을을 휩쓸어 버렸다. 높은 전염률과 치사율에 비해 예방과 치료방법이 없어서 인류의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콜레라가 처음 침입했을 때는 괴질(怪疾)이라 불렀다. 그러다 차차 &amp;#39;쥣통&amp;#39;이라 했다. 또한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것과 같은 고통을 준다는 뜻으로 호열자(虎列刺)라 불렀다.&lt;br&gt;&lt;br&gt;&amp;#39;호열자는 본래 한국에서 쥣통(痛)이라 칭하던 괴질이니, 이 병에 걸리면 완연히 쥐 같은 물건이 사지(四肢)로 올라오고 내려가는 것 같으며, 운신도 임의로 못하고 뼈만 남아 죽는 고로 쥣통이라 하였다. 이 병이 한 집에 들어가면 한 집의 사람이 거의 다 죽고, 이 고을에서 저 고을로 칡덩굴같이 뻗어 가며 일거에 일어난 불과 같이 퍼져간다.&amp;#39;(대한매일신보 1909.9.24. 논설 &amp;#39;감회를 기록함&amp;#39;)&lt;br&gt;&lt;br&gt;정치적으로 암울하기만 하던 1909년 7월 말 부산과 청주에서 처음 콜레라 환자가 나타난다. 이어 8월 중순 인천·신의주로 번지고, 9월 초순에는 서울까지 올라온다. 통감부 외사과 직원, 친위대 군인, 광무학교 학생, 창덕궁 인부,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42&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 name=&quot;focus_link&quot;&gt;일본&lt;/a&gt;인 순사, 일본인 관광객 등 너나 할 것 없이 차례로 쓰러졌다. 그해 9월 26일까지 전국에서 872명의 환자가 발생해 503명이 숨졌다.&lt;br&gt;&lt;br&gt;&lt;div class=&quot;center_img&quot;&gt;&lt;dl style=&quot;WIDTH:480px;&quot;&gt;&lt;dd&gt;&lt;img id=&quot;artImg1&quot; height=&quot;607&quot;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09/30/2009093001640_0.jpg&quot; width=&quot;480&quot;&gt; &lt;dt&gt;&lt;span&gt;▲&lt;/span&gt; 일본 순사와 헌병들은 호구조사를 하는 모습〈큰 사진·1920년 콜레라 창궐 시 호구조사모습〉,대한제국 정부와 의학교가 보급한 &amp;#39;호열자예방주의서&amp;#39;〈작은 사진〉. &lt;/dt&gt;&lt;/dd&gt;&lt;/dl&gt;&lt;p&gt;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관청 업무시간은 단축되고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다. 각종 토목공사도 중단되었고 시장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콜레라를 피해 고향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기차역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 와중에 매국노들의 처신이 빈축을 샀다.&lt;br&gt;&lt;br&gt;&amp;#39;총리대신 이완용은 거액을 들여 새 집을 매입했는데 괴질이 무서워 이사를 미루었고,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였다더라.&amp;#39;(대한매일신보 1909.10.1)&lt;br&gt;&lt;br&gt;&amp;#39;내부대신 박제순은 괴질을 피하기 위해 손님을 받지 않았는데, 일본인인 경우는 즉시 만난다더라.&amp;#39;(대한매일신보 1909.10.5)&lt;br&gt;&lt;br&gt;불행 중 다행으로 10월 들어 환자는 크게 줄었고, 12월경 콜레라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관공서와 학교, 시장도 제 모습을 되찾았다. 1910년 1월 집계 결과, 1909년 7~12월 콜레라 감염자는 1514명, 그중 사망자는 1262명이었다. 이 피해는 1886·1895년 두 차례 괴질로 수만명이 숨진 것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통감부의 강압적 방역이 한몫을 했다. 일본 순사와 헌병들은 호구조사, 환자격리, 통행차단 조치를 취하고 이를 어기면 구류와 벌금형에 처했다.&lt;br&gt;&lt;br&gt;희생자가 적었던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인의 높아진 위생의식이다. 대한제국 정부와 의학교는 &amp;#39;호열자예방주의서&amp;#39;를 보급하는 등 보건위생사업을 펼쳤고 개화 지식인들과 김익남, 유병필, 김필순 등 의사들도 국민계몽에 팔을 걷어붙였다. &amp;#39;호열자&amp;#39; 극복의 숨은 공로자들이었다. &lt;/p&gt;&lt;br&gt;&lt;/div&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pis4988/29184</link>
    <guid>http://kr.blog.yahoo.com/ppis4988/29184</guid>
    <pubDate>Sat, 30 Jan 2010 15:28:47 +0900</pubDate>
    <category><![CDATA[100년전 조선]]></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3] 동경유학생 야구단]]></title>
    <description>
        &lt;h3&gt;1909.8.29~1910.8.29&lt;br&gt;&lt;/h3&gt;&amp;#39;무쇠 골격 될 저육(猪肉·젓가락처럼 마른) 소년남자야 애국의 정신을 분발하여라 / 다다랐네 다다랐네 우리나라에 소년의 활동 시대 다다랐네 / (후렴) 만인대적(萬人對敵) 연습하여 후일 전공 세우세 / 절세영웅 대업(大業)이 우리 목적 아닌가.&amp;#39;&lt;br&gt;&lt;br&gt;&amp;#39;황성신문&amp;#39; 1909년 7월 22일자에 실린 운동가 &amp;#39;소년남자&amp;#39;의 첫 소절이다. 동경(東京)유학생 야구단은 당일 옛 훈련원 연병장에서 치러진 서양인 선교사들과의 경기에서 이 노래를 응원가로 불렀다. 1909년 1월 대한흥학회를 결성한 동경유학생들은 여름방학 기간 모국방문단을 조직해 농촌계몽, 학예, 체육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와세다대 재학생 윤기현을 단장으로 25명의 유학생으로 구성된 야구단의 시범경기도 그중 하나였다.&lt;br&gt;&lt;br&gt;&lt;div class=&quot;center_img&quot;&gt;&lt;dl style=&quot;WIDTH:480px;&quot;&gt;&lt;dd&gt;&lt;img id=&quot;artImg1&quot; height=&quot;290&quot;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09/29/2009092901715_0.jpg&quot; width=&quot;480&quot;&gt; &lt;dt&gt;&lt;span&gt;▲&lt;/span&gt; 1910년 2월 26일 황성YMCA와 한성학교의 경기장면. &lt;/dt&gt;&lt;/dd&gt;&lt;/dl&gt;&lt;p&gt;한국 최초의 야구단은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Phillip L. Gillett)가 창단한 황성YMCA 야구단이다. 베잠방이 차림에 짚신을 신고 경기를 치렀고, 글러브가 부족해 외야수들은 맨손에 헝겊을 감고 수비에 나섰다. 배트가 없어 절구공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 선수도 있었다. 비록 장비는 허술했지만, 도입 직후부터 야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막대기로 공을 치는 격구(擊毬), 상대방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며 겨루는 석전(石戰) 등 전통놀이가 있어 이질감이 덜했던 것도 야구 인기에 한몫을 했다. 황성YMCA에 이어 덕어(德語·독일어)학교, 영어학교, 관립중학교, 휘문의숙 등에서도 잇따라 야구단이 창단되었다.&lt;br&gt;&lt;br&gt;동경유학생 야구단의 시범경기에 쏠린 사회의 관심은 지대했다. 그들은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region/regionView.jsp?id=142&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 name=&quot;focus_link&quot;&gt;도쿄&lt;/a&gt;에서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42&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 name=&quot;focus_link&quot;&gt;일본&lt;/a&gt; 학생과 청국(淸國) 유학생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적이 있는 강팀이었다. &amp;#39;황성신문&amp;#39; 7월 25일자는 &amp;#39;기호학회(畿湖學會)에서 오찬을 제공하고 사회 신사와 학생, 서양 남녀가 성대히 회집하여 오륙백 인에 달한지라 운동의 경기는 아국 학생이 19점이요 서양 선교사가 9점이라 승부에서 이긴 아국 학생들은 운동가를 제창하고 만세를 삼창했다&amp;#39;고 보도했다.&lt;br&gt;&lt;br&gt;군부(軍部)가 폐지되고, 사법권이 일본에 이양되는 등 온통 암울한 소식뿐이던 시기, 동경유학생 야구단의 승전보는 오랜만에 접하는 상쾌한 소식이었다. 동경유학생 야구단은 개성·평양·선천·안악·철산 등 서북지방을 순회하며 시범경기를 펼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lt;br&gt;&lt;br&gt;그후 1910년 2월 26일 황성YMCA와 한성학교의 경기가 벌어지는 등 야구 열기는 고조되었다. 동경유학생 야구단은 1937년까지 10차례 고국을 방문해 선진 야구 기술을 전파했다. 동경제대 박석윤, 와세다대 서상국 등은 자교(自校) 야구부에서 에이스 투수로 활약할 정도로 능력이 출중했다.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View.jsp?id=426&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 name=&quot;focus_link&quot;&gt;선동열&lt;/a&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View.jsp?id=2328&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 name=&quot;focus_link&quot;&gt;임창용&lt;/a&gt; 등이 일본에 진출하기 80여년 전 이들은 일본 야구계를 휘저었다. 1921년 제6차 동경유학생 야구단원 일부는 경기에 앞서 시국 강연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구류의 처벌을 받기도 했다. 야구는 또 하나의 애국운동 수단이었다.&amp;nbsp;&lt;br&gt;&lt;br&gt;&lt;/p&gt;&lt;div id=&quot;Adjust&quot;&gt;&lt;font color=&quot;#1948a4&quot;&gt;&lt;b&gt;♣ 바로잡습니다&lt;/b&gt;&lt;/font&gt;&lt;br&gt;▲9월 30일자 A29면 &amp;#39;제국의 황혼&amp;#39;[23] &amp;#39;동경유학생 야구단&amp;#39; 기사에서 &amp;#39;황성신문&amp;#39; 1909년 7월 22일자 &amp;#39;소년남자가&amp;#39;를 인용한 &amp;#39;무쇠 골격 될 저육(猪肉)…&amp;#39; 부분은 &amp;#39;무쇠 골격 돌 근육…&amp;#39;이 정확한 가사로 판단되기에 바로잡습니다. 당시 황성신문에는 본지가 인용한 대로 실려있으나, 1909년 7월 24일자 대한매일신보의 &amp;#39;소년남자가&amp;#39; 가사는 &amp;#39;무쇠골격 돌 근육…&amp;#39;으로 되어 있고, 또 식민지시대 학생들이 즐겨 부른 &amp;#39;소년행진가&amp;#39;도 &amp;#39;돌 근육&amp;#39;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황성신문의 보도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됩니다.&lt;/div&gt;&lt;br&gt;&lt;div&gt;&amp;nbsp;&lt;/div&gt;&lt;br&gt;&lt;div&gt;&amp;nbsp;&lt;/div&gt;&lt;/div&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pis4988/29183</link>
    <guid>http://kr.blog.yahoo.com/ppis4988/29183</guid>
    <pubDate>Sat, 30 Jan 2010 15:26:05 +0900</pubDate>
    <category><![CDATA[100년전 조선]]></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2] &#39;순종은 온전치 못했다더라&#39;]]></title>
    <description>
        &lt;h3&gt;1909. 8. 29~1910. 8. 29&lt;/h3&gt;순종은 늘 &amp;#39;심신이 온전치 못하다더라&amp;#39;는 소문에 시달렸다. 어머니 명성황후가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42&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 name=&quot;focus_link&quot;&gt;일본&lt;/a&gt;인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을미사변(1895년)은 그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lt;br&gt;&lt;br&gt;&amp;#39;을미사변 당일 왕태자는 일본 자객의 칼에 맞아 기절했다. 그날 이후 왕태자는 넋이 나간 듯 건청궁을 맴돌았고, 어마마마를 부르다가 혼절하곤 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열국 외교관은 왕태자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본국에 보고했다.&amp;#39;(이민원 &amp;#39;한국의 황제&amp;#39;)&lt;br&gt;&lt;br&gt;민간에서는 순종이 세자 때부터 &amp;#39;성(性) 불구자&amp;#39;였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황현(黃玹)의 &amp;#39;매천야록(梅泉野錄)&amp;#39;은 이렇게 전한다.&lt;br&gt;&lt;br&gt;&amp;quot;세자가 장성했으나 음경이 오이처럼 드리워져 발기되는 때가 없었다. 하루는 명성황후가 계집종을 시켜 세자에게 성교하는 것을 가르쳐주게 하고 자신은 문밖에서 큰 소리로 &amp;#39;되느냐, 안 되느냐?&amp;#39; 하고 물었으나 계집종은 &amp;#39;안 됩니다&amp;#39;라고 했다. 명성황후는 가슴을 치며 자리를 일어섰다.&amp;quot;&lt;br&gt;&lt;br&gt;김홍륙(金鴻陸) 독다(毒茶)사건(1898년)도 순종의 몸을 크게 상하게 했다. 김홍륙은 고종의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30&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 name=&quot;focus_link&quot;&gt;러시아&lt;/a&gt;어 통역이었으나 거액을 착복한 사실이 드러나 유배형을 받았다. 매천야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lt;br&gt;&lt;br&gt;&amp;quot;김홍륙은 이에 원한을 품고 어전에서 음식을 담당하던 김종화를 매수해 고종이 마시는 커피에 독약을 타도록 사주했다. 평소 커피를 즐겨 마셨던 고종은 한번 마시고 토해냈지만, 맛을 구분하지 못하던 황태자는 맛을 보다가 복통과 어지럼증으로 쓰러졌다.&amp;quot;&lt;br&gt;&lt;br&gt;&lt;div class=&quot;center_img&quot;&gt;&lt;dl style=&quot;WIDTH:480px;&quot;&gt;&lt;dd&gt;&lt;img id=&quot;artImg1&quot; height=&quot;245&quot; alt=&quot;&quot; src=&quot;&quot; width=&quot;480&quot;&gt; &lt;dt&gt;&lt;span&gt;▲&lt;/span&gt; 1918년 덕수궁 석조전에서 영친왕, 순종, 고종, 순정효황후, 덕혜옹주(왼쪽부터)가 함께 한 모습./서울대 박물관 제공 &lt;/dt&gt;&lt;/dd&gt;&lt;/dl&gt;&lt;p&gt;순종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기록도 있다. 1907년부터 13년간 궁내부에서 일한 일본인 곤도 시로스케(權藤四郞介)는 1926는 펴낸 &amp;#39;대한제국황실비사&amp;#39;에서 &amp;quot;순종은 자애로운 인정을 지녔으며, 주변인물의 이름과 가족의 일까지 잘 알았으며, 연회석상에서 누구와도 흥미로운 얘기를 나누었다… 명석한 두뇌와 기억력은 참으로 경이로웠다&amp;quot;고 썼다. 순종은 보학(譜學·족보연구학)과 전통의례에도 뛰어났다는 것이다.&lt;br&gt;&lt;br&gt;이를 보면 순종이 사리판단을 못하거나 대인기피증 같은 정신적 장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순종은 경쟁과 살벌함을 싫어했다고 한다.&lt;br&gt;&lt;br&gt;&amp;#39;&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region/regionView.jsp?id=142&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 name=&quot;focus_link&quot;&gt;도쿄&lt;/a&gt;에서 스모를 관람하실 때 전하는 선수들이 거대한 몸을 날리며 장관을 연출하는 모습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으시며, 시종에게 &amp;#39;패한 자가 너무 안되었구나. 모래흙투성이가 되어 필시 고통스러울 거야&amp;#39;라고 말씀하셨다.&amp;#39;(대한제국황실비사)&lt;br&gt;&lt;br&gt;그렇지만 그는 국난을 헤쳐나가기엔 너무 유약했다. 일본에 저항하지 못하고 &amp;#39;왕가의 보전&amp;#39;에만 집착하던 순종은 심장병으로 1926년 4월 25일 눈을 감았다. 한국국민당 기관지 &amp;#39;한민&amp;#39;은 &amp;#39;책임으로는 이조 5백년의 최대 죄인이요, 인간으로는 일개 가련한 처지였다&amp;#39;고 평했다. 순종 국장(國葬) 때 연희·보성 학생들이 &amp;#39;6·10 만세운동&amp;#39;을 일으켰다. 이 땅에 &amp;#39;왕권의 궤적(軌跡)&amp;#39;이 사라지자 &amp;#39;민권의 궤적&amp;#39;이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issue.chosun.com/2009/serial/empire/index.html&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gt;[특집] 제국의 황혼 &amp;#39;100년전 우리는&amp;#39;&lt;/a&gt;&lt;/strong&gt;&lt;br&gt;&lt;a href=&quot;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3/21/2009032100172.html&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gt;&lt;strong&gt;아편전쟁 이후… 일본은 긴장했고, 조선은 낙관했다&lt;/strong&gt;&lt;/a&gt; &lt;br&gt;&lt;a href=&quot;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2/08/2006020856008.html&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gt;&lt;strong&gt;발기부전 절반이 심리적 원인 &lt;/strong&gt;&lt;/a&gt;&lt;/div&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pis4988/29182</link>
    <guid>http://kr.blog.yahoo.com/ppis4988/29182</guid>
    <pubDate>Sat, 30 Jan 2010 15:25:16 +0900</pubDate>
    <category><![CDATA[100년전 조선]]></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1] 국민 눈에 보이지 않는 융희황제.]]></title>
    <description>
        &lt;h3&gt;1909. 8. 29~1910. 8. 29&lt;/h3&gt;&amp;#39;그저께 오전 11시반 돈화문 앞에서 대황제 폐하 즉위 제2회 기념예식 경축을 하는데 각 사회단체 및 각급학교 생도 등은 나란히 정렬하여 만세를 외치고 경축가를 합창하고, 고아원 생도들은 군악을 연주한 후 오후 1시 행사를 마쳤는데, 각 학교가 방학 중이어서 몇개 학교에서만 생도를 모집해 경축하였다더라.&amp;#39;&lt;br&gt;&lt;br&gt;황성신문(皇城新聞)은 1909년 8월 29일자에 이런 기사를 실었다. 대한제국 제2대 황제인 순종(1874~ 1926)의 즉위 2주년 기념식을 보도한 글이다. 융희(隆熙)황제 순종은 2년 전 8월 27일 아버지 고종으로부터 직무를 물려받았다. 이 기사는 신문 2면 셋째 단 &amp;#39;잡보(雜報)&amp;#39; 난에 들어있다. 첫째 단은 &amp;#39;논설(論說)&amp;#39;, 둘째 단은 &amp;#39;통감부인(夫人) 도한(渡韓)&amp;#39; 기사가 차지하고 있는데, &amp;#39;일본인 통감이 병이 나 그 부인이 병간호를 위해 곧 내한한다더라&amp;#39;는 내용이다. 통감 부인의 방한 소식이 조선 황제 기념식보다 크게 취급된 것을 알 수 있다.&lt;br&gt;&lt;br&gt;당시 황성신문은 박은식·장지연 등 민족진영 인사들이 모두 떠나 맥이 빠진 상황이었다. 그런 신문이 통감부의 검열을 의식해 &amp;#39;알아서 기사를 배치&amp;#39;한 결과이겠지만, 그 밑바탕에는 대한제국 황제를 우습게 여기는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42&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follow&quot; name=&quot;focus_link&quot;&gt;일본&lt;/a&gt;인의 시각이 깔려 있다.&lt;br&gt;&lt;br&gt;&lt;div class=&quot;center_img&quot;&gt;&lt;dl style=&quot;WIDTH:480px;&quot;&gt;&lt;dd&gt;&lt;img id=&quot;artImg1&quot; height=&quot;580&quot;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09/25/2009092501616_0.jpg&quot; width=&quot;480&quot;&gt; &lt;dt&gt;&lt;span&gt;▲&lt;/span&gt; 황성신문(皇城新聞)은 1909년 8월 29일자에 이런 기사를 실었다. 대한제국 제2대 황제인 순종(1874~ 1926)〈사진 오른쪽〉의 즉위 2주년 기념식을 보도한 글이다. 융희(隆熙)황제 순종은 2년 전 8월 27일 아버지 고종〈사진 왼쪽〉으로부터 직무를 물려받았다. &lt;/dt&gt;&lt;/dd&gt;&lt;/dl&gt;&lt;p&gt;그런데 순종은 일본에 의해서만 무시당한 것이 아니었다. &amp;#39;방학 중이어서 몇개 학교에서만 생도를 모집했다&amp;#39;는 내용처럼, 자기 백성에게도 푸대접을 받았고, 심지어 문무백관들로부터도 &amp;#39;서명(署名)문안&amp;#39;을 받는 데 그쳤다.&lt;br&gt;&lt;br&gt;순종은 즉위 때부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이를 보도한 대한매일신보는 1면에는 관련소식을 싣지 않고 2면 &amp;#39;잡보&amp;#39; 난에 &amp;#39;그저께 대황제 폐하께서 즉위의식과 진하식을 행례하시난데…연미복이 없는 이는 입참치 못하였다더라&amp;#39;라고만 했다(1907.8.29). 황제 즉위식 보도치고는 너무나 짧다. 반면 광무(光武) 황제 고종의 즉위식 때 독립신문 1면은 감격적인 논설로 전면을 채웠다.&lt;br&gt;&lt;br&gt;&amp;#39;광무 원년 10월 12일은 조선 역사에 제일 빛나고 영화로운 날이 될지라. 지난 몇천 년 동안 중국의 속국 대접을 받은 때가 많더니, 하나님이 도우사 조선을 자주독립국으로 만드샤, 조선인민이 어찌 감격한 생각이 아니 나리요.&amp;#39;(독립신문 1897.10.14)&lt;br&gt;&lt;br&gt;순종은 즉위 석 달 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돈독한 부자(父子)관계를 떼어놓음으로써 &amp;#39;막후 실력자&amp;#39; 고종이 순종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일본의 전략이었다. 창덕궁에 갇힌 순종이 하는 일이라곤, 일어나서 식사하고 산책하다가 외부인사를 접견한 뒤 선물이나 나눠주는 역할이었다. 이 무렵 순종에 관한 보도 중 &amp;#39;경비·선물 하사&amp;#39; 내용이 많은 까닭이다.&lt;br&gt;&lt;br&gt;&amp;#39;대황제 폐하께옵서 남순하실 때 배종하였던 한국관리들을 3등으로 나누어, 1등에게는 금시계, 2등에게는 은시계, 3등에게는 동시계를 반급하신다더라.&amp;#39;(대한매일신보 1909.9.2)&lt;br&gt;&lt;br&gt;민족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같던 시기, 국가 지도자는 이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lt;/p&gt;&lt;/div&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pis4988/29181</link>
    <guid>http://kr.blog.yahoo.com/ppis4988/29181</guid>
    <pubDate>Sat, 30 Jan 2010 15:24:11 +0900</pubDate>
    <category><![CDATA[100년전 조선]]></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잘못된 학습고치기]]></title>
    <description>
        &lt;table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509&quot; border=&quot;0&quot;&gt;&lt;tbody&gt;&lt;tr style=&quot;PADDING-RIGHT:0px;PADDING-LEFT:0px;PADDING-BOTTOM:10px;PADDING-TOP:0px;&quot;&gt;&lt;td&gt;&lt;div class=&quot;wiki&quot;&gt;잘못된 학습고치기 &lt;br&gt;&lt;/div&gt;&lt;br&gt;&lt;div class=&quot;wiki&quot;&gt;새는 생존을 위해 &lt;br&gt;형제,자매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lt;br&gt;쪼는 버릇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 &lt;br&gt;버릇처럼 쪼는 것으로 사려되며 &lt;br&gt;어미의 방치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lt;br&gt;떨어져 죽은 것으로 넘어가는 것이며, &lt;br&gt;&lt;/div&gt;&lt;br&gt;&lt;div class=&quot;wiki&quot;&gt;새는 새끼를 돌보는 것을 자기 목숨처럼 &lt;br&gt;하는 것으로 보아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lt;br&gt;쪼는 버릇의 습성으로 무의식적인 &lt;br&gt;행동으로 보아야합니다. &lt;br&gt;&lt;/div&gt;&lt;br&gt;&lt;div class=&quot;wiki&quot;&gt;인류최초학설-루시드나나&lt;br&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pis4988/29177</link>
    <guid>http://kr.blog.yahoo.com/ppis4988/29177</guid>
    <pubDate>Sat, 30 Jan 2010 02:20:52 +0900</pubDate>
    <category><![CDATA[사랑방 친구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날개하늘나리]]></title>
    <description>
        &lt;p align=&quot;center&quot;&gt;&lt;a href=&quot;&quot;&gt;&lt;img id=&quot;at_img0&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f/3d/c000990/folder/42/img_42_11139_0?1182593070.jpg&quot; width=&quot;560&quot; border=&quot;1&quot;&gt;&lt;/a&gt;&lt;br&gt;&lt;br&gt;&lt;br&gt;&lt;br&gt;영혼의 사랑이 되어..&lt;br&gt;&lt;br&gt;&lt;br&gt;&lt;br&gt;사라져가는 그리움이던가&lt;br&gt;살아가는 삶의 의미던가&lt;br&gt;&lt;br&gt;대신할 것이 없네&lt;br&gt;러브를 부르는 하트가&lt;br&gt;&lt;br&gt;내게는 없네&lt;br&gt;당신에게는 있소&lt;br&gt;&lt;br&gt;이별 후 찾는 사랑이 &lt;br&gt;애절한 것은 &lt;br&gt;&lt;br&gt;못다한 사랑 때문이리라&lt;br&gt;왜? 사랑하는 이는 데려가고&lt;br&gt;&lt;br&gt;구차한 삶의 &lt;br&gt;넋두리만 남기오&lt;br&gt;&lt;br&gt;이별&amp;nbsp;후 떠난 이라면 잊으련만&lt;br&gt;수줍어 사랑한단 말도 못하던 이를&lt;a href=&quot;&quot;&gt;&lt;/a&gt;&lt;br&gt;&lt;br&gt;사별 후 찾는 사랑이&lt;br&gt;통곡이 되는 것을&lt;br&gt;&lt;br&gt;당신은 아시오&lt;br&gt;이별이 대지에 호소한다면&lt;br&gt;&lt;br&gt;당신은 아시오&lt;br&gt;사별은 하늘에 통곡한다는&lt;br&gt;&lt;br&gt;것을...&lt;br&gt;&lt;br&gt;&lt;br&gt;&lt;br&gt;루시드나나작/영혼의 사랑이 되어버린 님/사진/날개하늘나리&lt;a href=&quot;http://kr.blog.yahoo.com/c000990&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amp;#x00af43;&amp;#x00c1a1;&amp;#x00c77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f/3d/c000990/home/imgnick?1264619727&quot; align=&quot;absMiddle&quot; border=&quot;0&quot;&gt;&lt;/a&gt;&lt;br&gt;&lt;/p&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pis4988/29173</link>
    <guid>http://kr.blog.yahoo.com/ppis4988/29173</guid>
    <pubDate>Thu, 28 Jan 2010 05:54:50 +0900</pubDate>
    <category><![CDATA[사랑방 친구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새월아 / 정현자 (낭송 고은하)]]></title>
    <description>
        &lt;div&gt;&lt;p&gt;&lt;p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lt;img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none;FLOAT:none;&quot; hspace=&quot;1&quot; src=&quot;http://cfile265.uf.daum.net/image/205C2B0D4B57F4D37724D9&quot; width=&quot;482&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gt;&lt;/p&gt;&lt;p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새월아 / 정현자 (낭송 고은하) &lt;/p&gt;&lt;embed allowscriptaccess=&quot;never&quot;  src=&quot;http://eunhasori.com/poem2/jhj.mp3&quot; hidden=&quot;true&quot; type=&quot;audio/mpeg&quot; showstatusbar=&quot;true&quot; loop=&quot;-1&quot; volume=&quot;0&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A:link {text-decoration:none;}A:visited {text-decoration:none;}A:active {text-decoration:none;}&lt;/style&gt;&lt;!-- --&gt;&lt;!-- end clix_content --&gt;&lt;/embed&gt;&lt;table class=&quot;clearTable&quot;&gt;&lt;tbody&gt;&lt;tr&gt;&lt;td&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 end bbs_contents --&gt;&lt;!-- 이전 첨부파일 영역 --&gt;&lt;!-- 이전 첨부파일 영역 end --&gt;&lt;!-- 새로운 첨부파일 영역 --&gt;&lt;/div&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pis4988/29171</link>
    <guid>http://kr.blog.yahoo.com/ppis4988/29171</guid>
    <pubDate>Wed, 27 Jan 2010 21:07:09 +0900</pubDate>
    <category><![CDATA[편지지,영상시]]></category>
</item>
</channel>
</rss>
<!-- rss2.blog.kr3.yahoo.com uncompressed/chunked Wed Feb 10 12:07:15 KST 20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