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rss version="2.0">
<channel>
<title><![CDATA[pks13693094의 블로그]]></title>
<description><![CDATA[pks13693094의 블로그 입니다.]]></description>
<link>http://kr.blog.yahoo.com/pks13693094</link>
<language>ko</language>
<image>
    <title><![CDATA[pks13693094의 블로그]]></title>
    <url>http://img.yahoo.co.kr/blog/manage/banner_img01.gif</url>
    <description><![CDATA[pks13693094의 블로그 입니다.]]></description>
    <link>http://kr.blog.yahoo.com/pks13693094</link>
</image>
<item>
    <title><![CDATA[청와대 살림으로 본 ‘그때 그 시절’]]></title>
    <description>
        &lt;h3&gt;&lt;font style=&quot;FONT-SIZE:9pt;&quot;&gt;박정희·김영삼 말사료·트리오 비용까지 기재 &lt;br&gt;전두환·노태우 전기·수도료도 정보비로 처리&lt;/font&gt;&lt;/h3&gt;&lt;!--replace1--&gt;&lt;!--replace2--&gt;“내 별명이 왕소금이다. 대통령실 살림살이는 마른 수건을 짠다는 각오로 하고 있다.”&lt;br&gt;&lt;br&gt;지난 12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한 답변이다. 정부가 편성한 2010년 대통령실 예산은 경호처 예산을 포함해 1536억원. 총예산(291조8000억원)의 0.05%다. 대통령실 예산에는 시대가 담겨 있다. &lt;br&gt;&lt;br&gt;역대 대통령의 철학과 행보가 녹아 있다.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1974~2010년도 대통령실 예산안을 들여다봤다. 74년 9억2528만원(경호실 포함)이던 청와대 예산은 36년 만에 약 166배 늘었다.&lt;br&gt;&lt;br&gt;&lt;center&gt;&lt;!--img_tag_s--&gt;&lt;img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911/htm_2009111804220220002010-001.GIF&quot;&gt;&lt;!--img_tag_e--&gt;&lt;/center&gt;&lt;br&gt;◆박정희 정부=빛바랜 재생지 위에 손으로 직접 표를 그리고 숫자를 적어 넣은 예산안엔 권위주의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다. 74년 경호실을 제외한 대통령실 예산은 5억733만원. 이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1년 급여는 381만원이었다. &lt;br&gt;&lt;br&gt;하지만 대통령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다른 돈이 꽤 됐다. 판공비가 연 800만원이고, 지금의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에 해당하는 정보비 총액 3624만원 중 3000만원도 대통령 몫이었다. 급여를 포함하면 대통령실 전체 예산의 8.2% 정도가 대통령 재량이었다. 74년 청와대는 연 4회에 걸친 ‘존영(尊影·대통령의 사진)’ 촬영·인화 등에 696만원을 썼다. &lt;br&gt;&lt;br&gt;주요 공공기관마다 걸어 놓던 대통령 사진을 계절에 따라 바꾸는 데 쓴 셈이다. 예산 내역은 ‘전동타자기 2대X25만원’ ‘나프킹(냅킨의 일본식 표현) 200매X100원’ 등으로 상세히 적었다. ‘동물사료비’ 항목에선 ‘공작새 5마리, 말 3필’ 등 경내에서 키우는 동물의 수까지 알 수 있다.&lt;br&gt;&lt;br&gt;◆전두환·노태우 정부=전두환 정부 때 국회에 제출하는 대통령실 예산안의 항목은 극단적으로 단순화됐다. 83년도 예산안 설명서엔 ‘인건비’ ‘사업비’ 등의 추상적인 항목에 총액만 적었다. 대통령의 급여도 알 수 없다. 노태우 정부에선 조금 개선돼 직급별 급여 등이 공개됐다. 하지만 건물 유지관리비와 전기·수도요금 등을 영수증이 필요 없는 ‘정보비’에 포함시켜 총액만 적어 냈다.&lt;br&gt;&lt;br&gt;◆김영삼 정부=구입한 청소용품의 종류와 개수까지 적었다. ‘트리오 1000원X120병X12개월=144만원’ 식이다. 지나치게 포괄적이었던 ‘정보비’에 포함됐던 상당 부분을 공개한 뒤 남는 것만 ‘특수활동비’로 묶었다. 홍인길 당시 총무수석은 17일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첫 조치가 청와대 예산 투명화였다”고 말했다. 예산 항목에 ‘여론조사비’(95년 4억8600만원)와 소프트웨어 구입비(895만원)가 들어간 것도 전에 없던 변화다.&lt;br&gt;&lt;br&gt;◆김대중 정부=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의 흔적이 묻어났다. 2000년엔 청와대에도 명예퇴직이 도입됐다. 3급 3명과 기능직 3명을 명예퇴직시키는 데 1억5000만원이 들었다. 같은 해 기업의 연봉제 도입 붐을 타고 대통령 급여가 연봉제로 전환됐다. 2001년엔 대통령 억대 연봉 시대가 열렸다.&lt;br&gt;&lt;br&gt;◆노무현 정부=탄핵 소용돌이 속에 진행된 ‘여민관’ 신축 때문에 청와대 예산이 정치 쟁점이 됐다. 2004년도 예산안에 39억7403만원을 반영하자 한나라당은 “이삿짐을 싸야 할 마당에 새 건물을 짓느냐”고 비판했다. 온라인 보고 및 결재 시스템인 ‘e지원’ 도입 예산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경 썼던 항목이다.&lt;br&gt;&lt;br&gt;◆이명박 정부=지난해 예산을 2007년에 비해 무려 21.7% 깎았다. ‘작은 청와대’를 표방한 데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2010년도에는 올해보다 9.6% 늘렸다. 대통령의 행보와 직결되는 업무지원비가 58억원 늘었다. 직무수행경비가 전년보다 709.2% 늘어난 데다 특수활동비(22.6%)와 업무추진비(35.1%)도 늘었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 행사 증가’와 ‘직제 개편’을 원인으로 들었다.&lt;br&gt;&lt;br&gt;&lt;br&gt;임장혁·권호·허진 기자&lt;!-- s : 아티클 하단 섹션 바로가기 링크 추가 --&gt;  &lt;!-- e : 아티클 하단 섹션 바로가기 링크 추가 --&gt;&lt;!-- s : 작성날짜 --&gt;&lt;div class=&quot;articleDate&quot;&gt;&lt;div id=&quot;reporter&quot;&gt;&lt;div style=&quot;PADDING-RIGHT:0px;PADDING-LEFT:0px;PADDING-BOTTOM:0px;PADDING-TOP:5px;&quot;&gt;&amp;nbsp;&lt;/div&gt;&lt;/div&gt;&lt;/div&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5</link>
    <guid>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5</guid>
    <pubDate>Wed, 18 Nov 2009 09:30:28 +0900</pubDate>
    <category><![CDATA[대표폴더]]></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정승 집 강아지]]></title>
    <description>
        &lt;table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267&quot; align=&quot;right&quot; border=&quot;0&quot;&gt;&lt;tbody&gt;&lt;tr&gt;&lt;td width=&quot;92&quot;&gt;&lt;/td&gt;&lt;td align=&quot;middle&quot;&gt;&lt;img class=&quot;blb&quot;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911/htm_2009111200153510001010-001.JPG&quot; width=&quot;130&quot; border=&quot;0&quo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키가 아주 작았던 안자(晏子)에게는 훤칠한 체격의 차몰이꾼이 있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운전기사다. 지혜의 대명사로 존경을 받고 있는 제(齊)나라 재상 안자의 수레를 몬다는 이유로 이 남자는 꽤 폼을 잡았는가 보다. 늘 신이 나 있었고, 자랑스레 우쭐거리는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lt;br&gt;&lt;br&gt;하루는 그 아내가 남편의 모습을 문틈 새로 바라봤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그에게 아내는 “헤어지자”고 요구했다. 이유를 묻는 남편에게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재상은 차분히 앉아 있는데 높은 데 걸터앉아 의기양양하게 수레를 모는 당신 모습을 보고 천박하다는 인상을 감출 수 없었다.”&lt;br&gt;&lt;br&gt;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일화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고서 제 모습이 호랑이가 없는 틈을 타서 우쭐댔던 여우, 즉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경우에 닿아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어 그는 자신의 잘못을 다스린다. 자세가 달라진 차부(車夫)를 보고서 그 이유를 알게 된 안자가 그 점을 높이 평가해 벼슬 자리를 줬다는 게 후문이다.&lt;br&gt;&lt;br&gt;정승 집에서 키우는 개가 죽으면 그날의 그 집은 문전성시다. 정승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라의 온 벼슬아치들이 조문을 오기 때문이다. 정승이 죽으면 상황은 그 반대다. 권력자인 정승이 죽고 없으니 찾아오는 이는 거꾸로 드문 법이다. &lt;br&gt;&lt;br&gt;‘정승 집 개’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그래서 많다. 안자의 차부가 독립적인 인격을 이루지 못하고 늘 재상의 권력에 기대 잘난 척을 일삼았던 경우나, ‘정승 집 개’의 권력논리를 체득한 사람들이 당대의 권력자에게 빌붙어 몸종 노릇을 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속은 텅 빈 강정이다.&lt;br&gt;&lt;br&gt;친박근혜 계열의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이 화제다. ‘보스’의 뜻과는 반대로 세종시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다. 호가호위의 단물에 빠져 독자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차부와 실력자의 애완동물 처지를 벗어던졌다. &lt;br&gt;&lt;br&gt;어딘가에 치우쳐 무리를 짓는 편당(偏黨)의 모습은 한국 정치의 일상적 풍경이다. 그럼에도 수도 기능을 이전한다는 중차대한 세종시 문제를 두고 파벌 수장의 견해에 파묻혀 열린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친박계 의원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딱하다. 그들의 가슴에 달린 금배지가 아깝다. 요즘 금값도 치솟는다는데. &lt;br&gt;&lt;br&gt;&lt;br&gt;유광종 논설위원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4</link>
    <guid>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4</guid>
    <pubDate>Wed, 18 Nov 2009 09:06:02 +0900</pubDate>
    <category><![CDATA[일반폴더]]></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시인과 과학자]]></title>
    <description>
        김춘수 시인의 ‘꽃’은 이렇게 시작한다.&lt;br&gt;&lt;br&gt;&lt;br&gt;“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lt;br&gt;&lt;br&gt;그는 다만&lt;br&gt;&lt;br&gt;몸짓에 지나지 않았다&lt;br&gt;&lt;br&gt;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lt;br&gt;&lt;br&gt;그는 나에게로 와서&lt;br&gt;&lt;br&gt;꽃이 되었다.”&lt;br&gt;&lt;br&gt;붉은 얼굴을 한 화성은 늘 강렬한 몸짓으로 지구인에게 다가왔다.&lt;br&gt;&lt;br&gt;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가 자신의 작은 망원경에 나타난 화성의 어두운 줄무늬들을 보고 ‘카날리(canali)’란 이름을 붙여준 게 1877년이었다. &lt;br&gt;&lt;br&gt;해협, 경로, 또는 그리스 건축에 수직으로 파 넣은 장식용 홈들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카날리’가 영어권에서 ‘canals’로 번역되면서, 화성은 지적 존재가 구축한 ‘운하’라는 이름의 ‘꽃’으로 피어났다. &lt;br&gt;&lt;br&gt;한편 미국의 퍼시벨 로웰이 직경 60㎝의 굴절 망원경을 자비로 구입하여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에 로웰천문대를 설립한 게 1890년이었다. 로웰 식의 꽃맞이 사업이었다.&lt;br&gt;&lt;br&gt;화성의 줄무늬 모습과 극관의 면적이 계절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로웰은, 줄무늬가 극관에서 녹아내리는 물을 적도 사막 지대로 수송해 주는 거대한 용수로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lt;br&gt;&lt;br&gt;로웰의 주장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도전한다. 그는 극지방의 물이 적도를 향해 오는 동안에 증발해 버리거나 땅에 완전히 스며들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lt;br&gt;&lt;br&gt;로웰은 준외교관 신분으로 조선에 근무한 특이한 경력의 인물이다. 그의 묘비명을 보면 인류의 평화를 희원하던 이상주의자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월리스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발견한 인물이다. &lt;br&gt;&lt;br&gt;평화를 꿈꾸던 로웰의 ‘꽃’을 엔지니어 출신의 월리스가 ‘짓밟았지만’ 대중은 로웰의 편이었다. 그래서 로웰의 꽃맞이 행사는 매리너, 바이킹, 패스파인더,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등의 화려한 탐사계획으로 줄기차게 이어질 수 있었다.&lt;br&gt;&lt;br&gt;스키아파렐리의 카날리는 1965년 매리너 4호가 보여준 매리너 대협곡의 전조였다. 한때 물이 넘쳐났을 수로의 흔적들도 화성 도처에서 알아볼 수 있다. 로웰이 ‘카날’이란 이름으로 불러주었을 때 화성은 ‘수로’라는 이름의 꽃으로 답을 했다. &lt;br&gt;&lt;br&gt;계절에 따라 녹고 얼기를 반복한다고 로웰이 믿었던 극관은 물 얼음이 아니라 주로 이산화탄소 성분의 드라이아이스가 차지한다. &lt;br&gt;&lt;br&gt;화성 북반구에 여름이 오면 극관의 드라이아이스는 이산화탄소 기체로 승화하여 남반구로 내려가 남극관에 다시 얼어붙는다. 한편 형성 초기에 풍부했던 물의 일부는 얼음으로 지하 영구 동토 층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월리스의 손도 들어줘야 한다.&lt;br&gt;&lt;br&gt;지구인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화성은 자기 나름의 꽃으로 답을 해온 셈이다. 시인의 ‘이름 부르기’는 과학자의 ‘모형 세우기’와 같다. 과학에서는 모형을 설정하여 침묵하는 자연의 입을 열게 한다. 그러므로 과학 하기란 인간과 자연이 벌이는 이름 부르기다.&lt;br&gt;&lt;br&gt;&lt;br&gt;홍승수 서울대 명예교수·물리천문학부&lt;!-- s : 아티클 하단 섹션 바로가기 링크 추가 --&gt;  &lt;!-- e : 아티클 하단 섹션 바로가기 링크 추가 --&gt;&lt;!-- s : 작성날짜 --&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3</link>
    <guid>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3</guid>
    <pubDate>Wed, 18 Nov 2009 09:03:46 +0900</pubDate>
    <category><![CDATA[일반폴더]]></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비싼 사회적 대가 치른 ‘김종필·오히라 비밀메모’]]></title>
    <description>
        &lt;table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267&quot; align=&quot;right&quot; border=&quot;0&quot;&gt;&lt;tbody&gt;&lt;tr&gt;&lt;td width=&quot;15&quot;&gt;&lt;/td&gt;&lt;td&gt;&lt;img class=&quot;blb&quot;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911/htm_2009111300214910001010-001.JPG&quot; width=&quot;250&quot; border=&quot;0&quot;&gt;&lt;/td&gt;&lt;/tr&gt;&lt;tr&gt;&lt;td width=&quot;15&quot;&gt;&lt;/td&gt;&lt;td class=&quot;pt_8 rgray01&quot; style=&quot;WIDTH:252px;LINE-HEIGHT:15px;&quot;&gt;2005년 1월 17일 외교통상부가 공개한 김종필·오히라 메모..&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e--&gt;1962년 11월 12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일본 외상 오히라와 만나 소위 ‘청구권 자금’의 규모에 대해 합의하고 양국 수뇌부에 건의할 것을 결정하고, 이를 내용으로 하는 김종필·오히라 메모가 작성되었다.&lt;br&gt;&lt;br&gt; 이른 시일 내에 한·일협정을 마무리 짓기 위해 가장 중요한 논쟁점이었던 청구권 자금의 액수를 밀실에서 합의했던 것이다.&lt;br&gt;&lt;br&gt;김종필 부장은 회담 직후 “합의한 사실은 없고 쟁점에 대해 토의를 한 사실만 있다”고 밝혔다. &lt;br&gt;&lt;br&gt;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무상 3억 달러, 유상차관 2억5000만 달러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도했지만, 한국 정부는 최종 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합의를 극비에 부치며 한·일회담 수석대표에게도 알리지 않는다는 내용의 훈령을 12월 1일 내려보냈다.&lt;br&gt;&lt;br&gt;64년 초 야당과 학생들이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밀실에서 졸속으로 처리한다는 비판을 제기하자, 정부는 동년 3월 31일 중앙청 회의실에서 11개 대학의 학생대표들에게 김종필과 오히라가 합의한 내용을 공개했다. &lt;br&gt;&lt;br&gt;그러나 당시 공개된 것도 합의 내용은 없고 한국 측과 일본 측이 제시한 액수만을 담고 있었다. 미국대사관에서 박정희 정부가 한·일협정 반대운동으로 인해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메모 내용이 공개되었지만, 모든 내용이 공개되지 않음으로 인해 의혹이 더 커졌고, 이는 결국 6·3 사태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lt;br&gt;&lt;br&gt;2005년 1월 한국 정부는 베일에 싸여 있었던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전격 공개했다. 무상 3억 달러, 유상차관 2억 달러로 합의하고 수뇌부에 건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64년 정부가 공개할 때는 없던 것이었다. &lt;br&gt;&lt;br&gt;메모의 내용이 62년 10월 17일과 11월 4, 8일에 박정희 의장이 지시한 것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관련 문서는 공개됐지만 논란이 되었던 것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lt;br&gt;&lt;br&gt;김종필·오히라 메모에 근거한 한·일협정은 45년 이전 한·일 간의 협약, 개인에 대한 피해 보상, 독도 문제 등 기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지금까지도 한·일관계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lt;br&gt;&lt;br&gt;더 중요한 교훈은 국가적인 대사를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음으로 인해 광범위한 대중적 저항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lt;br&gt;&lt;br&gt;한·일협정 이후에도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의 문제로 인한 대북송금 특검, 한·미 간 쇠고기 협상 문제로 인한 2008년 촛불 시위 등은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일깨워주고 있다.&lt;br&gt;&lt;br&gt;&lt;br&gt;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2</link>
    <guid>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2</guid>
    <pubDate>Wed, 18 Nov 2009 09:01:17 +0900</pubDate>
    <category><![CDATA[일반폴더]]></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한국호랑이]]></title>
    <description>
        &lt;table height=&quot;129&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267&quot; align=&quot;right&quot; border=&quot;0&quot;&gt;&lt;tbody&gt;&lt;tr&gt;&lt;td width=&quot;15&quot;&gt;&lt;/td&gt;&lt;td align=&quot;middle&quot;&gt;&lt;img class=&quot;blb&quot;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911/htm_2009111300171310001010-001.JPG&quot; width=&quot;130&quot; border=&quot;0&quo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조선 순조 24년(1824년) 6월이었다. 함경도 안변 관아에서 군관으로 일하는 김광재의 집에 사나운 호랑이가 들어왔다. 호랑이가 김광재를 물고 나가려 하자 예순이 넘은 그의 아내 조(趙)씨가 남편의 몸을 붙잡고는 놓지 않았다. &lt;br&gt;&lt;br&gt;아내는 ‘남편 대신 나를 물고 가라’며 스스로 호랑이 주둥이 앞에 몸을 던졌다. 호랑이는 남편 대신 아내를 물고 가버렸다. 함경감사가 이 같은 사실을 조정에 알렸고 예조에서는 조씨를 위해 열녀문을 세웠다.&lt;br&gt;&lt;br&gt;영조 때는 호랑이 피해가 더 심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영조 10년(1734년) 여름·가을 호랑이로 인해 14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 봄에도 강원 영동지방에서 40여 명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영조 28년(1752년)에는 호랑이가 서울 도성 안은 물론 경복궁 뒤뜰에까지 들어왔다.&lt;br&gt;&lt;br&gt;공포의 대상이었던 한국호랑이도 일제 강점기 때 대대적인 사냥이 벌어지면서 사라졌다. 1922년 경북 대덕산에서 사살된 것이 남한의 마지막 호랑이였다. 북한에서는 북부 고산지대에 남아있다고 하지만 10마리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lt;br&gt;&lt;br&gt;호랑이는 세계적으로도 위기에 처해 있다. 호랑이의 8개 아종(亞種) 중 카스피호랑이·발리호랑이·자바호랑이는 20세기에 멸종됐다. 남중국호랑이도 83년 이후 관찰되지 않고 있다. 인도호랑이(벵골호랑이)와 인도차이나호랑이가 약 1500마리씩, 수마트라호랑이가 400~500마리 정도 남아 있을 뿐이다.&lt;br&gt;&lt;br&gt;시베리아호랑이(아무르호랑이)라고 불리는 한국호랑이는 러시아의 야생에서 약 500마리, 동물원에서 400여 마리가 남아 있다고 한다. 중국의 동물원에는 900여 마리가 있지만 야생에는 20마리 정도에 불과하다.&lt;br&gt;&lt;br&gt;환경부는 지난달 말 한·러 환경협력회의 때 러시아에 한국호랑이 세 마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과천 서울동물원을 비롯해 국내 동물원에도 미국·중국 등에서 들여와서 번식한 한국호랑이가 20마리 이상 있지만 대부분 사촌, 육촌 관계다. 근친교배가 거듭되면서 백내장·시력저하 같은 유전병을 가진 호랑이도 흔하다.&lt;br&gt;&lt;br&gt;한때 황우석 교수가 한국호랑이 복제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성공했다 해도 호랑이들이 똑같은 유전자만 갖고 있다면 ‘살아있는 박제’에 불과하다. 건강한 한국호랑이를 유지하려면 끊어진 생태계를 잇는 게 먼저다. 그게 힘들면 유전자를 교환할 수 있는 국제협력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lt;br&gt;&lt;br&gt;강찬수 환경전문기자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1</link>
    <guid>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1</guid>
    <pubDate>Wed, 18 Nov 2009 08:58:26 +0900</pubDate>
    <category><![CDATA[일반폴더]]></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타면자건’에서 배워라]]></title>
    <description>
        #누군가 당신에게 다짜고짜로 침을 뱉는 굴욕을 선사했다면 어찌할 건가. 아마도 이런 반응들 가운데 한두 가지를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lt;br /&gt; 첫째, 어이없어 쳐다본다. &lt;br /&gt; 둘째, 욕을 하며 화낸다. &lt;br /&gt; 셋째, 분에 겨워 한 대 때린다. &lt;br /&gt; 넷째, 발끈해서 나도 뱉는다. &lt;br /&gt; 다섯째, 아무 말 없이 침만 닦아낸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십팔사략(十八史略)』이 가르쳐주는 대응방법은 사뭇 다르다. “얼굴의 침이 마르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침 타(唾), 낯 면(面), 스스로 자(自), 마를 건(乾). 즉 ‘타면자건(唾面自乾)’이다! &lt;br /&gt; 누군가가 내 얼굴에다 침을 뱉었을 때 이것을 곧장 닦아버리면 침 뱉은 사람의 분이 풀리긴커녕 더욱 화가 나서 싸움이 더 크게 번지기 쉬우니 차라리 상대가 뱉은 침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내버려두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중국 당(唐)나라 시절, 서슬퍼런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신하 중에 누사덕(婁師德)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는 처지였다. 그런데 하루는 그의 아우가 대주자사(代州刺史)라는 자리에 임명돼 부임하려고 할 때 누사덕은 그를 불러 이렇게 당부하며 물었다. &lt;br /&gt; &lt;br /&gt; “너와 내가 황제의 총애를 받아 다같이 출세하니 주위의 시기와 음해가 있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그런 시기와 시샘, 그리고 음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하면 된다고 생각하느냐?” &lt;br /&gt; &lt;br /&gt; 그러자 아우가 이렇게 답했다. “비록 남이 제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결코 기분 나빠하거나 화내지 않고 잠자코 닦아내겠습니다. 매사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응대해 결코 형님에게 걱정이나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아우의 이런 대답을 듣고 누사덕은 반색하긴커녕 더욱 걱정어린 낯빛으로 타이르듯 말했다. “내가 염려하던 바가 바로 그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네게 침을 뱉는다면 그것은 네게 뭔가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침을 닦아버린다면 그것이 되레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되어 그는 틀림없이 더 크게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사실 침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마르게 되는 것이니, 그런 때는 침을 닦아낼 것이 아니라 그냥 마르도록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다.”&lt;br /&gt; &lt;br /&gt; #언젠가, 언론인 조갑제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필생의 어록에서 뽑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말을 그대로 책 이름으로 해서 박정희 일대기를 펴내자, 진중권씨가 그 특유의 이죽거림을 담아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하고 응수했던 기억이 있다. &lt;br /&gt; &lt;br /&gt; 사실 요즘 우리 사회는 온 천지가 서로 내뱉은 침 투성이다. 최근에도 이른바 ‘친일인명사전’을 둘러싼 공방전 속에 서로 내뱉은 침이 지천이다. 하지만 이제 정말이지 침은 그만 뱉자. 그리고 누군가 뱉은 침이 얼굴에 묻었거든 굳이 애써 닦아내지도 말자.&lt;br /&gt; &lt;br /&gt;  설사 흔적이 남을지라도 말이다. 누사덕의 ‘타면자건’ 고사에서처럼 그냥 마를 때까지 내버려두자. 그래야 이 지겨운 논란이 끝나지 않을까 싶다.&lt;br /&gt; &lt;br /&gt; #내년이면 경술국치(庚戌國恥) 100년이다. 그뿐 아니라 1950년 한국전쟁 60주년이고, 60년 4·19 민주시민혁명 50주년이며,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다. 뭔가 매듭짓고 한 차원 높게 승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해가 코앞이다. &lt;br /&gt; &lt;br /&gt;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서로 침 뱉기 바쁜 가운데 논란과 공방만 일삼으니 솔직히 부끄럽다 못해 절망감마저 든다. 한편으론 아직도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과거사가 부끄럽고 또 한편으론 그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로 나아가는 데 질척거리는 것이 안타깝다.&lt;br /&gt; &lt;br /&gt; 나라를 다시 찾은 지 65년이 돼 가건만 아직도 우리는 친일을 했다, 안 했다는 일차원적 논란만 계속하고 있다. 이젠 정말이지 한 차원 높은 미래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lt;br /&gt; &lt;br /&gt; &lt;br /&gt; 정진홍 논설위원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0</link>
    <guid>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0</guid>
    <pubDate>Wed, 18 Nov 2009 08:56:04 +0900</pubDate>
    <category><![CDATA[대표폴더]]></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숭고한 불복종]]></title>
    <description>
        &lt;table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267&quot; align=&quot;right&quot; border=&quot;0&quot;&gt;&lt;tbody&gt;&lt;tr&gt;&lt;td width=&quot;15&quot;&gt;&lt;/td&gt;&lt;td align=&quot;middle&quot;&gt;&lt;img class=&quot;blb&quot;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911/htm_2009111400401910001010-001.JPG&quot; width=&quot;130&quot; border=&quot;0&quo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1944년 8월 9일, 독일의 디트리히 폰 콜티츠(Von Choltitz) 중장은 파리 점령군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2개월 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이 시시각각 파리로 진격하고 있는 상황. 히틀러는 그에게 거듭 “절대 파리를 온전한 채로 내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lt;br&gt;&lt;br&gt;그러나 폰 콜티츠는 이 명령을 묵살한 끝에 8월 25일 1만7000명의 휘하 장병과 함께 연합군에 항복했다. 히틀러는 폰 콜티츠의 항복 소식에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Brennt Paris)?”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연합군의 파리 수복 과정을 영화화한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6년 작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하다.&lt;br&gt;&lt;br&gt;폰 콜티츠는 회고록에서 “후세에 ‘파리를 파괴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전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감지한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온전한 파리를 보게 된 것은 폰 콜티츠의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lt;br&gt;&lt;br&gt;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떤 군대도 상명하복을 철칙으로 삼지 않은 적은 없다. 대한민국 군 형법 44조도 ‘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자’에게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엄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lt;br&gt;&lt;br&gt;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양심에 따른 명령 불복종으로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 14일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는 6·25 당시 유엔군의 폭격 명령을 거부, 국보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의 추모제가 열렸다. 그는 항명을 추궁하는 상부에 해인사의 가치를 조목조목 설명해 ‘귀하와 같은 장교를 둔 건 대한민국의 행운’이라는 찬사를 얻어내기도 했다.&lt;br&gt;&lt;br&gt;그 외에도 비슷한 시기 “태우는 건 하루면 족하지만 다시 세우려면 천 년도 부족하다”며 구례 화엄사를 소각령으로부터 지킨 차일혁 총경, 오대산 상원사를 태우려는 국군 장교에게 “그럼 나도 함께 태우라”고 맞선 방한암 선사의 이야기도 감동을 전한다. 물론 그 뜻을 받아들여 법당 문짝만 뜯어 태우고 떠난 이름 모를 국군 장교를 빠뜨릴 수 없다.&lt;br&gt;&lt;br&gt;위화도 회군 이후 수많은 장군이 사리 사욕에 의한 하극상으로 역사를 더럽히기도 했지만, 이렇듯 숭고한 불복종의 기록은 인간이 명령대로 단순 복종하는 기계와 어떻게 다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lt;br&gt;&lt;br&gt;송원섭 JES 콘텐트본부장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59</link>
    <guid>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59</guid>
    <pubDate>Wed, 18 Nov 2009 08:52:51 +0900</pubDate>
    <category><![CDATA[일반폴더]]></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종 플루와 네트워크 기사]]></title>
    <description>
        흔히 “세상 좁다”는 말을 한다. 1967년 미국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 교수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주에 사는 사람을 무작위로 160명 선정했다. 이들에게 우편물을 보내 친구 또는 지인(知人)을 통해 동부에 사는 어느 특정인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lt;br /&gt; &lt;br /&gt; 우편물을 전달받은 사람은 자신의 지인 중에서 그 특정인을 알 만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실험 결과 평균 6번 정도를 거치면 특정인에게 우편물이 최종 배달됐다. 이를 ‘작은 세상 실험(Small World Experiment)’이라고 부른다. &lt;br /&gt; &lt;br /&gt; 흥미로운 점은 특정인에게 우편물을 최종 전달한 사람들이 생각처럼 다양하지 않고 소수의 몇 명이라는 점이다. 이 몇 명이 결정적인 매개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소수의 마당발이 사회적 의사소통에서 핵심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허브 역할을 하는 마당발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실험이었다. &lt;br /&gt; &lt;br /&gt; 74년 미국 사회과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당시 사람들의 구직 방법을 조사했다. 56%가 개인적인 소개를 통해 직장을 구했는데 그중 17%만이 잘 아는 친구를 통해 구했고, 83%는 평소 잘 만나지 않는 그저 아는 사이인 지인을 통해 구했다는 것이다. 이를 그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lt;br /&gt; &lt;br /&gt; 구하기 어려운 직장을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가 필요한데 내가 잘 아는 친구들은 내가 아는 정보와 유사한 정보를 갖고 있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발상을 얻고자 한다면 나와 행동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이를 ‘약한 고리의 강한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이라고 불렀다. 이 사례는 새로운 연구를 위해 다른 분야의 지식을 활용한 융합연구가 필요한 이유를 말해 준다. &lt;br /&gt; &lt;br /&gt; 두 가지 연구 사례는 사회 네트워크 구성에서 마당발과 같은 강한 유대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약한 유대 관계도 중요함을 방증해 준다. &lt;br /&gt; &lt;br /&gt; 전 세계가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 확산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바이러스의 정체 등 미생물학적 정보가 알려져 있는 것에 비해 바이러스 전파 경로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lt;br /&gt; &lt;br /&gt; 감염된 사람의 기침이나 재채기 등을 통해 바이러스가 직접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거나, 공기 중 떠다니던 미세 침방울 등이 흡입되거나, 손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진 수준이다. 전파 경로를 명확히 알면 효과적인 예방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lt;br /&gt; &lt;br /&gt; 최근 네트워크 이론 물리학자들이 바이러스 전파를 효율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감염 경로에서 주요 매개 역할을 하는 마당발이 있으므로 마당발의 기능을 차단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으로 백신이 부족할 때 마당발에게 우선적으로 투여해 감염 경로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을 수학과 물리학적 모델링으로 제시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두 가지 사례에서 본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마당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약한 유대 관계’의 역할도 중요하다. 자주 또는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감염이 되는 ‘약한 유대 관계’의 경우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lt;br /&gt; &lt;br /&gt; 무심코 만지는 사무실 서류, 택배 물건, 버스·지하철 손잡이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인체 밖으로 나온 바이러스는 천이나 종이 표면에 묻으면 몇 시간, 플라스틱 같은 매끈한 표면에서는 1~2일, 화폐에 묻으면 며칠 이상 살아남기도 한다. 신종 플루는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지만 손을 통해 호흡기로 감염되는 경우를 차단하기 위해 손을 씻어야 하는 이유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마당발의 차단과 함께 ‘약한 유대 관계’를 함께 차단하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게 신종 플루 위기 극복 방안이 된다. 또한 이런 복잡계의 문제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등 모든 분야의 지혜를 함께 모을 때 슬기롭게 극복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lt;br /&gt; &lt;br /&gt; 중앙 선데이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58</link>
    <guid>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58</guid>
    <pubDate>Wed, 18 Nov 2009 08:51:16 +0900</pubDate>
    <category><![CDATA[일반폴더]]></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희소금속]]></title>
    <description>
        &lt;table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267&quot; align=&quot;right&quot; border=&quot;0&quot;&gt;&lt;tbody&gt;&lt;tr&gt;&lt;td width=&quot;15&quot;&gt;&lt;/td&gt;&lt;td align=&quot;middle&quot;&gt;&lt;img class=&quot;blb&quot;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911/htm_2009111603013610001010-001.JPG&quot; width=&quot;130&quot; border=&quot;0&quo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콩고의 고릴라는 왜 휴대전화를 싫어할까. 수수께끼를 풀 힌트는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에서 생산되는 콜탄이라는 광물에 있다. 콜탄에선 탄탈륨이 나오고, 휴대전화에는 전류 흐름을 제어하는 탄탈륨 소재 부품이 들어간다. &lt;br&gt;&lt;br&gt;휴대전화를 많이 만들수록 탄탈륨 소비도 덩달아 늘어난다. 문제는 탄탈륨이라는 게 생산량이 매우 적고, 생산 지역이 편중된 ‘희소(희유)금속’이라는 것이다. 콩고 동부에 콜탄이 매장돼 있는 게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고릴라 서식지를 불태우고 땅속을 파헤쳤다.&lt;br&gt;&lt;br&gt;탄탈륨 부품은 전자기기에 거의 다 들어간다. 콩고와 주변 8개국이 뒤엉킨 ‘아프리카판 세계대전’은 종종 ‘플레이스테이션(PS) 전쟁’으로 불린다. 2000년 봄 게임기 PS2를 선보인 소니는 그해 크리스마스 때 제품 공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lt;br&gt;&lt;br&gt;탄탈륨 부족 때문이었다. 파운드(약 454g)당 50달러를 밑돌던 탄탈륨 값은 2001년 초 275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런저런 구실로 내전에 개입했던 외국군대는 돈이 되는 콜탄에 눈독을 들이고 콩고를 떠나지 않으려 했다. 게임기의 인기가 아프리카 오지의 전쟁을 부추긴 셈이다.&lt;br&gt;&lt;br&gt;전략물자인 희소금속은 첩보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티타늄이 그랬다.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은 SR-71이라는 초음속 정찰기를 개발하면서 기체 소재를 티타늄으로 정했다. 음속 3배로 비행할 때 표면에 발생하는 고열을 견뎌낼 금속이기 때문이다. &lt;br&gt;&lt;br&gt;그러나 순도가 낮은 미국산은 쓸 수 없었다. 결국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을 받아 품질이 좋은 적국 소련의 티타늄을 대량 구입해 썼다. 이러한 티타늄의 쓰임새는 소련 과학자의 공식을 빌려 스텔스기를 개발했다는 사실과 함께 ‘바보 소련’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냉전 시대 최고의 기밀이었다.&lt;br&gt;&lt;br&gt;중국은 ‘산업 비타민’으로 각광받는 희소금속의 무기화를 일찌감치 예고했다. 1992년 개혁·개방 설계사 덩샤오핑은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큰소리쳤다. 중국은 최근 희토류를 포함한 희소금속을 전략 물질로 규정해 수출을 엄격히 통제한다.&lt;br&gt;&lt;br&gt;‘바보 나라’가 사라지면서 30여 종의 희소금속은 자원무기로 변하고 있다. 대책 마련이 시급한데도 한국에는 정확한 수요와 공급 통계조차 없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확보·비축·재활용 등 3단계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희소해서 더욱 참신한 희소금속 대책을 기대한다. &lt;br&gt;&lt;br&gt;&lt;br&gt;허귀식 경제부문 차장 &lt;br&gt;&lt;br&gt;&lt;br&gt;&lt;dt&gt;&lt;img alt=&quot;22 &amp;#x00613f;&amp;#x00bb12;&amp;#x00c94c;&amp;#x00f9cf;?: ?&amp;#x00afaa;&amp;#x00ae49;&amp;#x00745c;?Tantalum:Ta)&quot; src=&quot;http://branch.mke.go.kr/images/information/inf_mine22Title.gif&quot;&gt; &lt;/dt&gt;&lt;dd&gt;&lt;a href=&quot;http://branch.mke.go.kr/information/aboutMine.jsp&quot;&gt;&lt;/a&gt;&amp;nbsp;&lt;/dd&gt;&lt;div id=&quot;mineTable&quot;&gt;&lt;table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border=&quot;0&quot;&gt;&lt;caption&gt;&lt;img alt=&quot;(&amp;#x005a9b;&amp;#x80;) &amp;#x00613f;&amp;#x00bb12;&amp;#x00af4d;??&amp;#x0091ab;&amp;#x00b085;&amp;#x00ca9f;&quot; src=&quot;http://branch.mke.go.kr/images/information/inf_txt04.gif&quot;&gt;&lt;br&gt;&lt;/caption&gt;    &lt;thead&gt;&lt;tr&gt; &lt;td&gt;&lt;img alt=&quot;&amp;#x008b70;&amp;#x00acd7;&amp;#x00af66;&quot; src=&quot;http://branch.mke.go.kr/images/information/inf_txt02.gif&quot;&gt;&lt;/td&gt;&lt;td&gt;&lt;img alt=&quot;&amp;#x00936e;&amp;#x00afa7;&amp;#x00d02c;&quot; src=&quot;http://branch.mke.go.kr/images/information/inf_txt03.gif&quot;&gt;&lt;/td&gt;&lt;/tr&gt;&lt;/thead&gt;&lt;tbody&gt;&lt;tr&gt; 탄탈라이트(Tantalite) &lt;td&gt;(Fe,Mn)(Ta,Cb)₂O6&lt;/td&gt;&lt;td&gt;콜롬바이트와 공출&lt;/td&gt;&lt;/tr&gt;&lt;tr&gt; 마이크로라이트(Microlite) &lt;td&gt;Ca₂Ta₂07&lt;/td&gt;&lt;td&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 id=&quot;mineContent&quot;&gt;&lt;dl&gt;&lt;dt&gt;&lt;img alt=&quot;(?? ?&amp;#x002478;&amp;#x00b8c4;&quot; src=&quot;http://branch.mke.go.kr/images/information/inf_txt05.gif&quot;&gt; &lt;dd&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branch.mke.go.kr/images/information/inf_mine22Img1.gif&quot;&gt; &lt;/dd&gt;&lt;/dt&gt;&lt;dl&gt;&lt;dt&gt;&lt;img alt=&quot;(?? &amp;#x00613f;&amp;#x00bb10;&amp;#x00042a;???&amp;#x00bc40;&amp;#x00af66;&quot; src=&quot;http://branch.mke.go.kr/images/information/inf_txt06.gif&quot;&gt; &lt;dd&gt;(1) 물리적 특성 &lt;dd&gt;&lt;ul&gt;&lt;li&gt;경도 : 5.5~7 &lt;li&gt;비중 : 5.35~7.8 &lt;li&gt;결정계 :사방, 정방 &lt;li&gt;색 : 철, 갈흑, 갈색, 흑색 형상: 판상 혹색 주상의 결정 &lt;li&gt;Nb를 항상 함유하여 Nb의 존재가 확인되면 탄.탈움도 존재한다. &lt;/li&gt;&lt;/ul&gt;&lt;dd&gt;(2) 화학적 특성 &lt;dd&gt;&lt;ul&gt;&lt;li&gt;바이오부산 많은것 : 콜롬바이트 (비중5.5~6.4) &lt;li&gt;탈탄산이 많은것 : 탄타라이트 (비중6.5~7.9) &lt;/li&gt;&lt;/ul&gt;&lt;/dd&gt;&lt;/dd&gt;&lt;dl&gt;&lt;dt&gt;&lt;img alt=&quot;(?? ?&amp;#x00acd7;&amp;#x00d167; ?&amp;#x00acf9;&amp;#x00ae6d;&quot; src=&quot;http://branch.mke.go.kr/images/information/inf_txt07.gif&quot;&gt; &lt;dd&gt;(1) 광상 &lt;dd&gt;&lt;ul&gt;&lt;li&gt;페그마타이트 광상&lt;br&gt;- 지화학적으로 결합력이 강한 탄탈륨과 니오비움은 항시 수반하여 산출 &lt;li&gt;풍화 잔류광상&lt;br&gt;- 탄탈륨과 콜롬비음은 페그마타이트나 화강암속에 산재된 부산광물로 포함. &lt;li&gt;석광상 또는 사광상 산출&lt;br&gt;- 비중이 큰것의 탈탄산 함유량 많으며 Nb,Ta 광물이 있으면 이트륨 우란 함유 &lt;/li&gt;&lt;/ul&gt;&lt;dd&gt;(2) 수반광물 &lt;dd&gt;&lt;ul&gt;&lt;li&gt;니오붐, 이트룸, 우란석, 저어콘, 제노타임, 모나자이트, 철, 망간, 중석, 금홍석, 데아니트스피넬, 실리버나이트, 강옥, 펴규소나이트, 유세나이트, 자연금, 트리플라이트, 비스무타이트, 녹주석, 황옥 &lt;/li&gt;&lt;/ul&gt;&lt;/dd&gt;&lt;/dd&gt;&lt;dl&gt;&lt;dt&gt;&lt;img alt=&quot;(&amp;#x00f9cd;? &amp;#x004e8c;&amp;#x00c1f1;&amp;#x00c282;?&amp;#x00acd7;?&quot; src=&quot;http://branch.mke.go.kr/images/information/inf_txt08.gif&quot;&gt; &lt;dd&gt;(1) 국내 : 충남 천안(사금지), 전북 김제(사금지), 강원 철원, 충북 단양, 전북 무주 &lt;dd&gt;(2) 국외 : 호주, 브라질, 캐나다 등 &lt;/dd&gt;&lt;/dd&gt;&lt;/dt&gt;&lt;/dl&gt;&lt;/dl&gt;&lt;/dl&gt;&lt;/dl&gt;&lt;/div&gt;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57</link>
    <guid>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57</guid>
    <pubDate>Wed, 18 Nov 2009 08:46:30 +0900</pubDate>
    <category><![CDATA[대표폴더]]></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진리를 … 영원히 사랑한다”]]></title>
    <description>
        중세의 유명한 한 성인(聖人)의 이야기다. &lt;br /&gt; &lt;br /&gt; 어린 시절 늦잠을 잔 성인이 학교에 급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lt;br /&gt; 그때 한 어른이 “너는 어디를 뛰어가니?”라고 물었다. &lt;br /&gt; 성인은 “학교에 늦어서 뛰어갑니다”라고 대답했다. &lt;br /&gt; &lt;br /&gt; “그러면 학교에선 무엇을 하니?” &lt;br /&gt; “공부를 열심히 하지요.” &lt;br /&gt; “공부를 하고 난 다음에는?” &lt;br /&gt; “졸업을 하지요.” &lt;br /&gt; “졸업을 하고 난 다음에는?” &lt;br /&gt; &lt;br /&gt; “그다음엔 좋은 직장을 갖지요.” &lt;br /&gt; “그럼 다음엔 무엇을 하지?” &lt;br /&gt;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갖게 되지요.” &lt;br /&gt; “그리고 그 다음엔 무엇을 하니?” &lt;br /&gt; “아이들 교육도 시키고 결혼도 시키고….” &lt;br /&gt; “그 다음엔?” &lt;br /&gt; “직장에서 은퇴해서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지요.” &lt;br /&gt; “그다음엔?” &lt;br /&gt; “흠, 그 다음엔… 죽게 되겠지요.” &lt;br /&gt; “그러면 지금 너는 죽으려고 열심히 뛰어가는구나.” &lt;br /&gt; &lt;br /&gt; 성인은 그 말씀에 인생의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래서 그는 세속적 야망을 버리고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다.&lt;br /&gt; &lt;br /&gt;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또 어디로 흘러가는가? 인생이란 과연 무엇일까?” &lt;br /&gt; &lt;br /&gt; 이 질문들은 결코 유명한 철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경쟁하듯 치열한 삶을 살다가도 낙엽을 밟는 늦가을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꼭 해야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어디서도 속 시원한 정답을 들을 수는 없다. &lt;br /&gt; &lt;br /&gt; 그래서 이 궁극적인 질문들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항상 살면서 이 문제를 물어야 하고 그 해답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사람들은 보통 인생의 목적을 성공, 보람, 즐거움에 둔다. 어떤 이는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고 높은 자리에 앉는 것 혹은 명예와 명성을 얻는 것을 인생의 목적이요, 성공이라 생각한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부와 명예, 출세가 반드시 인생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부와 명예와 상관없이 자기의 삶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lt;br /&gt; &lt;br /&gt;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의 초라한 간이역에서 폐렴으로 객사하기까지 치열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lt;br /&gt; &lt;br /&gt; 그는 오직 ‘선에 대한 끝없는 희구’에 인생의 진면목과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톨스토이가 노년에 약 15년간 심혈을 기울여 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이러한 인생에 대한 고민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lt;br /&gt; &lt;br /&gt; 그는 모든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바탕으로, 오직 진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임종을 맞아 그가 남긴 유언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였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현대인들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가끔 가던 걸음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우리 인생에는 아주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완료형의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질문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계속 성장하고 변화해 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허영엽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description>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56</link>
    <guid>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56</guid>
    <pubDate>Wed, 18 Nov 2009 08:41:51 +0900</pubDate>
    <category><![CDATA[대표폴더]]></category>
</item>
</channel>
</rss>
<!-- rss1.blog.kr3.yahoo.com uncompressed/chunked Sat Nov 21 22:43:24 KST 20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