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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홍가맨(Hongaman)의 자유세계]]></title>
<description><![CDATA[홍가맨의 자유세계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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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홍가맨(Hongaman)의 자유세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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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교회에 대한 추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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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 초부터인가 내가 머무르는 오피스텔 입구에 나보다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 두 그루나 버티고 있다. 어림잡아도 백 개는 넘어가는 꼬마 전구들의 집합이 밤마다 번쩍번쩍하는 모습은 휘황찬란하다. 나는 구주의 삶도 죽음도 알지 못하고 구주 어머니의 처녀성도 이해하지 못한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외칠 까닭이 없으니 크리스마스는 그저 공휴일이다. 저 요사스런 휘황함은 관리비로 유지되고, 휘황함을 유지하는 관리비가 결국 내 주머니에서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떠올릴 적마다 피가 말라갈 뿐이다. &lt;br /&gt; &lt;br /&gt; 전철 안에서 종교의 자유를 만끽하는 분들은 내게 회개를 명령하고 주님을 믿으라 권고해왔다. 언제 한 번 내가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는지, 무엇을 깨우치고 뉘우쳐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 교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토요일이면 청년부 목사님이 교회에 나와 연애질을 하려는 사람은 음욕을 품은 자이니 돌로 쳐죽여야 한다고 외쳐대고, 일요일이면 장년부 목사님이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친지가 죽었을 때 우는 것은 쪼잔한 인간의 근성이라고 읊어대던 기괴한 곳으로 기억한다. 나보다 먼저 교회를 다닌 아이들은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만난 경험을 교환하곤 하던데, 나는 예수님의 무성한 수염 한 올도 보지 못 한 채 교회를 그만두고 말았다. 정나미가 떨어졌던 탓이다. &lt;br /&gt; &lt;br /&gt;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 한달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발인 날은 공교롭게도 주일이었다. 얼치기 크리스찬인 나는 위패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대신 무릎 꿇고 절을 했고, 고인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음을 기뻐하는 대신 사자死者와 다시 만날 수 없음이 슬퍼 울었다. 할아버지는 자식이 없었고, 상주 없는 장례식은 스산하고 썰렁했다. &lt;br /&gt; &lt;br /&gt;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었다던 예수님의 고마운 존재를 모르던 나의 회개와 교화를 돕던 청년부 조장 누나가 있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고, 고등학교 때는 예수를 만나기까기 했다는 독실한 신자였다. 작은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느라 지난 주 교회에 오지 못했다는 나의 말에 그 누나가 물었다. “작은 할아버지는 교회에 다니셨니?”. 우리 집안은 휴거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 뿐이다. 증조할머니 때부터 사과 하나 먹었다고 아담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낸 하나님을 쪼잔하다 비웃어온 내력이 있었다. 작은 할아버지라고 구원 받을 인간상일 리 만무했다. 아니요, 라고 짧게 끊어 대답하자 사랑과 자비가 충만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누나답게 연민에 가득차 속삭였다. &lt;br /&gt; &lt;br /&gt;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파. 교회에 다니시던 분이 돌아가셨으면 아 이제 주님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가셨구나, 고단한 몸은 버리고 편한 곳에서 쉬시겠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텐데…” &lt;br /&gt; &lt;br /&gt; 이 말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의 간접 화법일 뿐이다. 남에게 딱히 죄라는 걸 지어본 적 없는 사람이 죽어서 편치 못하게 되는 까닭을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사후세계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 천당으로 승천하고 지옥으로 추락하는 원리는 무엇인지 죽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이 세상에는 이 세상의 윤리가 있고, 사람이면 누구나 인지상정을 품고 있다는 것은 안다. 갓 상을 치르고 돌아온 사람에게 고인은 지옥에 떨어졌느니 하는 소리를 짖어대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이 할 짓이 못 됐다. 나는 주님을 믿는다는 사람의 냉철함이 무서웠고 교리에 따라 사는 사람의 비인간성이 두려웠다. 세례 받고 살아온 자와 세례 받지 않고 살아온 자 사이에는 넓고 깊은 골이 가로막고 있음을 깨닫고 교회에 다시는 나가지 아니했다. &lt;br /&gt; &lt;br /&gt; 나는 사람이고 싶다. 구원이 있다면 구원도 받고 싶고, 천당이 있다면 천당도 가고 싶지만 존재도 불확실한 것들을 위해 인간성을 바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인간된 도리와 감정에 충실히 살다 죽고 싶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국민의 칠할은 구주를 반길 이유가 없는데, 곳곳에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란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짧았던 교회 생활을 떠올리고 불만에 찬 표정을 짓는다. 구원 받을 사람이 보기에는 구원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lt;br /&gt; &lt;br /&gt; 2004년 12월 21일, 홍가맨(劉洪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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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8 Jan 2007 23:31:59 +0900</pubDate>
    <category><![CDATA[세상살이(수상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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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블라드 3세 &#39;드라큘라&#39;의 일화]]></title>
    <description>
        어느날 외국인 상인이 블라드 3세의 영지 티르고비스테를 방문했다. 왈라키아 공국인들의 정직함을 들어 알고 있던 그 상인은 보물로 가득 찬 짐차를 길가에 세워둔 채 다른 곳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짐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온 그는 160 다카트가 없어진 것을 알고 경악했다. 이 사실을 들은 블라드 공작은 분실금을 찾아줄 것을 약속하고는, 도시에 포고령을 내렸다. 도둑과 돈을 찾아내지 못하면 도시는 잿더미가 될 것이라고. 그날 밤 공작은 은밀히 탕전에서 161 다카트를 내어 상인의 짐차에 넣어두도록 명령했다. 다음 날 짐차에 보관해둔 금액을 세어보던 상인은 잃어버렸던 돈보다 1 다카트 더 많은 돈이 들어있음을 발견하고는 공작에게 보고했다. 한편 잡혀온 도둑을 책형에 처하도록 명령한 공작은 상인에게 말한다. 만일 1 다카트가 더 들어있었음을 알리지 않았더라면, 자네도 저 자와 같이 책형에 쳐해졌을 것이라고. &lt;br /&gt; &lt;br /&gt; -블라드 3세 ‘드라큘라’의 일화 중. &lt;br /&gt; &lt;br /&gt; 어제 아침 백원짜리 네 개와 오십원 짜리 두 개를 들고 편의점에 신문을 사러 갔다가, 백원짜리 네 개와 오십원짜리 하나만을 내고 신문을 들고왔다. 편의점 아가씨가 블라드 공작의 후예가 아니기를 기도할 뿐이다. &lt;br /&gt; &lt;br /&gt; 2004년 12월 16일, 홍가맨(劉洪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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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6 Dec 2004 20:19:58 +0900</pubDate>
    <category><![CDATA[세상산책(단문/잡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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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뉴스 추적을 보고 : 무엇을 위한 영어 조기교육인가]]></title>
    <description>
        온 나라가 영어와 고투 중인가보다. 영어를 못하면 졸업을 못하고 영어를 못하면 자격증을 못 따며 영어를 못하면 취직도 못한다는 소리가 떠돈다. ‘천재교육’ ‘영재교육’이 ‘조기교육’과 혼용되던 시절 유아원-유치원-학습지-주산,영어학원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무수한 천재와 영재 후보들이 요즘은 TOEIC, TOEFL에 매진하며,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미취학 아동들마저 영어와의 초전을 치루고 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보인다. &lt;br /&gt; &lt;br /&gt; 영어가 중1 때 처음으로 배우던 과목이던 시절, 국민학생 때 이미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던 세대가 자라나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영어를 배우는 세상이 되었건만 소위 ‘한국식 영어교육’에 대한 비판은 한결같다. 영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고도 외국인과는 간단한 의사 소통조차 못한다는 거다. 영어 조기 교육이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는 듯하다. ‘살’이 아닌 ‘개월’로 나이를 세는 아이를 둔 부모들마저 영어 교육 문제를 고민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식 영어교육의 허점도, 영어 조기 교육도 결국에는 같은 동전의 앞뒷면일 뿐이다. 발음지상주의가 낳은 이란성 쌍둥이다.&lt;br /&gt; &lt;br /&gt; 영어를 잘 한다의 은어는 혀를 잘 굴린다이다. 각종 영어 입문서의 한국어 발음기호를 보노라면 두 표현 사이의 관계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How are you’를 ‘하우 아-ㄹ 유’라고 배우기 시작하는 우리들은 ‘Water’를 ‘워러’로 읽고, ‘Computer’를 ‘컴퓨러’로 읽지 않으면 외국인과의 의사 소통이 불가능 하리라고 여긴다. 뭐라고 발음해야 할지 모를 ‘-ㄹ’라는 기호 때문에 ‘Father’를 ‘파덜’에, ‘Brother’는 ‘브라덜’에 가깝게 발음하고 있으니 온 국민이 호부호형조차 제대로 못하는 홍길동 신세다. &lt;br /&gt; &lt;br /&gt; 처음 영국계 국제학교에 입학했을 때, 내게 Hangman은 지옥과도 같은 게임이었다. 미국 백인들의 발음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탄생한 ‘-ㄹ’ 때문이었다. 내가 ‘아-ㄹ’을 말할 때 선생님이 칠판에 옮겨적는 글자는 ‘R’이 아닌 ‘L’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Water’도 ‘워터’라고 읽는 영국인들은 ‘R’도 ‘아아’에 가깝게 발음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몇 년 뒤 미국인들과 Hangman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네들에게 ‘아아’라고 해도 ‘R’로 알아듣는 사실을 발견했다. ‘파더’ ‘브라더’ 역시 ‘Father’ ‘Brother’로 알아들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lt;br /&gt; &lt;br /&gt; 전 국민이 동시 통역사가 되기를 바라고, 전 국민이 미국 연예계 진출을 도모하지 않는 영어로 말하다와 혀를 굴린다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표현이다. Pork와 Fork, Sea와 She, Bail과 Veil, Thank와 Sank의 차이만 알면 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외국 친구를 사귀고, 외국인 사업 파트너와 토의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굳이 Rob와 Lob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거나, Zero를 멋들어지게 지어로우라고 할 줄 알아야만 대화가 되는 게 아니다. &lt;br /&gt; &lt;br /&gt; 한국인인 우리가 굳이 미국 백인들과 똑같은 억양과 발음을 습득해야 할 필요는 없다. Cash Flow를 ‘카스 플로’라고 읽는 중국인도 해외 명문대 교수까지 지낸다. 어학은 결국 어휘와의 싸움이다. 7년 가까이 유학한 사람도 따라하기 힘든 본토 발음을 흉내내려는 시간에, 머릿속에 든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 암기하는 게 실전에 더 큰 도움이 된다. 머리에 든 것만큼만 말하고, 전달할 수 있어도 청산유수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웠던 내 사촌들도 ‘된장’ 발음은 발음대로, 영어로 말하는 데 대한 두려움은 두려움대로 안은 채 성인이 되었다. 발음지상주의가 근절되지 않는 한 지금 영어를 배우고 있는 미취학 아동들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조기교육은 한국인들의 영어 공포증에 대한 해법이 될 수가 없다. 영어 입문서에 ‘-ㄹ’라는 발음 기호가 사라질 때, 일선 교사들이 숫자 0을 ‘Zero’ 대신 ‘오’라고 읽는 지혜를 가르칠 때, 그렇게 배운 학생들이 인도식 발음을 듣고 비웃기보다는 인도식 발음이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될 때 해법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lt;br /&gt; &lt;br /&gt; 2004년 12월 15일, 홍가맨(劉洪一).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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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7 Oct 2006 07:41:24 +0900</pubDate>
    <category><![CDATA[세상읽기(에세이/칼럼)]]></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어느 용렬한 블로거의 세설細說]]></title>
    <description>
        어느 부위에 타력을 받던 키보드는 똑같은 소리를 낸다. 글자키와 스페이스바와 쉬프트의 차이는 모양과 크기와 기능의 차이이다. 어느 이름없는 블로거가 새 글을 작성할 때 서로 다른 글쇠의 조합은 같은 소리를 내뿜으며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낸다. 뭇 글쇠의 왕은 백스페이스다. 백스페이스는 다른 글쇠와 똑같은 소리를 내뿜으며, 혼자의 힘으로 다른 글쇠의 조합이 만들어낸 문장을 잠식해들어간다. 백스페이스가 움직이기전 울렸던 소리만큼 오래도록 백스페이스가 달각거릴 때 화면에 남는 것은 하얀 백지뿐이다. 용렬한 블로거가 한나절을 써낸 문단 하나가 무無로 돌아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초秒 단위로 센다. 펜으로 써낸 글이 버려질 때는 종과 횡의 획이 잡다하게 그어진 파지가 남는다. 글쇠와 글쇠의 조합이 만들어낸 글이 버림받을 때 남는 것은 글자 수에 비례해 반복되는 달각거림뿐이다. 글쇠를 부리던 자의 머리에서 태어나, 손을 통해 활자화된 사고는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 블로그 업데이트 일자 사이의 긴 공백은 버림받은 디지털 문자를 포식하고 자라난다. 한 번의 달각거림으로 태어난 활자는 한 번의 달각거림으로 죽을 운명이다. 화면을 채운 활자들이 탄생의 소리와 똑같은 죽음의 소리를 내며 죽어갈 때도, 죽음의 소리와 같은 재탄생의 소리를 내며 블로그에 오를 적에도 글쇠를 부리는 자의 눈과 머리에는 피로가 쌓인다. 읽음은 적고 배움은 짧은 범용한 인간에게 적어낼 말을 생각해내기란 언제나 난산이고 난항인 탓이다. 초등학생 그림 일기 쓰듯 몇월 몇일 날이 맑았다고 적어내는 일조차도 힘에 부친다. &lt;br /&gt; &lt;br /&gt; 날마다 무언가를 써내는 모든 이들이여, 이리 나와 시기와 찬탄과 경외를 받으라.&lt;br /&gt; &lt;br /&gt; 2004년 12월 14일, 홍가맨(劉洪一).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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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Dec 2004 02:21:38 +0900</pubDate>
    <category><![CDATA[세상산책(단문/잡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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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경범죄처벌법도 폐지하자]]></title>
    <description>
        ‘Roh’public of Korea의 국민 노릇 해먹기 참으로 힘들다. 정부는 정체도 불분명한 외국계 투기 펀드에 주요 은행 하나를 매각했는데도 여당은 유독 언론사에만 투명한 경영을 요구하고 나서더니, 요즘은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로 연일 촌극을 벌이고 있다. 여당 대표가 폐지안 연내 처리를 유보한다고 공언한 지 이틀만에 정치생명을 걸고 국보법 조기 폐지에 매진하겠다고 나섰다. 여기다 날치기 상정의 법적유효성 공방까지 더하면 뭐가 어찌 돌아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lt;br /&gt; &lt;br /&gt; 이 국보법 폐지란 게, 날치기를 계기로 사자死者들과의 영적 접촉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분들과 그 동료들이 추진하는 ‘개혁’인 만큼 범인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국보법의 적용은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국민의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제1조에 명시되어 있는 마당에,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라는 소리부터가 공허하게 들린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악용, 남용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때는 병역법도 집시법도 정권 유지의 도구로 이용되던 시절이었다. &lt;br /&gt; &lt;br /&gt; 사법부의 법률 해석과 적용도 사회의 발전과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하기 마련이다. 술에 취해 ‘김일성 만세’를 외친 취객, 작품 상단에는 흥겹게 잔치하는 모습, 하단에는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그린 화가가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는 촌극이 재연될 가능성이 김정일이 자유시장경제를 전면 수용할 확률보다 낮음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공영방송에서 적기가까지 방송하는 마당에 무슨 확대 해석과 악용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 ‘최초로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 ‘최초로 민의를 반영한 국회’와 사법부는 태생적으로 달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소리인가. &lt;br /&gt; &lt;br /&gt; 과거 악,남용의 근거가 되었던 애매모호한 조항들도 좀 더 구체적이고 한정적인 정의를 내리도록 개정을 하면 해결될 문제다. 단지 야당 의원들뿐 아니라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는 국민들 중 대다수도 시대적 변화에 맞도록 국보법을 개정하는 일에는 찬성 의견을 보내고 있다. 현 정부와 여당이 ‘개혁’, ‘상식’만큼이나 좋아하는 단어가 ‘효율’이라고 알고 있다. 반대 여론을 묵살하고 변칙적인 수단을 동원하면서까지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쪽과, 국민 다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국보법의 문제점을 개정하는 쪽, 어느 방향이 더 ‘효율’적인지는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lt;br /&gt; &lt;br /&gt; 건국 이래 최초로 단재, 백범 선생과 영적 교감을 가졌다는 분들과 그 동료들이 기어코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겠다면 사실 경범죄처벌법도 폐지하는 게 순리에 맞는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온 악법 중 경범죄처벌법만큼 지독한 놈도 없다. 이 법은 암울한 군사독재 시절도 아닌 ‘평화의 나무 김대중’, ‘최초로 우리들 손으로 뽑은’ 노무현 대통령 치하에서마저 누드퍼포먼스를 ‘불안감조성’, ‘과다노출’ 행위로 폄하하고, 대중 교통 내에서의 포교활동을 ‘인근소란’이라며 탄압하여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악용되었다.&lt;br /&gt; &lt;br /&gt; 특히 이 법의 1조 35항은 ‘여러 사람이 다니는 곳에서의 위험한 사고의 발생을 막을 의무가 있는 사람이 등불을 켜놓지 아니하거나 그밖의 예방조치를 게을리 한 사람’은 ‘공중통로 안전관리소홀’ 죄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불명확성의 극치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밖의 예방조치’란 대목은 뚜렷한 기준없이 법집행자의 자의적 해석에 모든 걸 맡기고 있는 탓이다. 또한 같은 법의 46항 ‘비밀 춤 교습 및 장소제공’은 제목만 보아도 시대착오적 독소조항이 아닐 수 없다. &lt;br /&gt; &lt;br /&gt; 헌재가 국가보안법 합헌 판결을 내린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날치기까지 해가며 국보법 폐지를 강행하려는 여당의 모습은, 보수 진영 일각의 주장대로 다른 저의를 품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렇지 아니하다면 여당이 경범죄처벌법의 철폐 혹은 대체입법을 역시 추진할 계획이 있는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악법이 폐지되는 그날이 올 때까지는, 날치기 이후 단재 선생과 백범 선생의 환청을 들었다는 사람들의 친지 여러분은 1조 31항을 정기적으로 숙독하는 게 좋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31. [정신병자 감호소홀] 위험한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정신병자를 돌볼 의무가 있는 사람이 그를 제대로 돌보지 아니하여 집 밖이나 감호시설 밖으로 나돌아다니게 한 사람.”&lt;br /&gt; &lt;br /&gt; 2004년 12월 9일, 홍가맨(劉洪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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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Dec 2004 06:27:27 +0900</pubDate>
    <category><![CDATA[세상읽기(에세이/칼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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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소설도 짝퉁이 있다]]></title>
    <description>
        몇해 전 경제는 어렵고 서민들은 죽지 못해 사는 판국에 영부인은 해외 순방 시 명품 옷을 차려입었다고 비난의 화살이 빗발친 적이 있었다. 당시 청와대측에선 ‘세계의 패션 흐름을 주도하는 한국 패션계가’로 시작되는, 결론적으로는 영부인이 입었던 것은 진짜처럼 보이는 국산 ‘짝퉁’이었다고 점잖게 말하는 해명을 내놓았다. 정치계에서도 인터넷 상에서도 전문가의 견해까지 동원해가며 영부인 옷이 과연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논쟁을 벌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던 모습이 기억난다. 청와대측 해명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런 논쟁을 가능케 하고, 그간의 TV나 신문 보도에 따르면 외국인들도 국산 모조 명품을 구입해갈 정도라니 대한민국 명품 모조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lt;br /&gt; &lt;br /&gt; 인터넷이 보급되고 TV 드라마의 인물 설정과 큰 줄거리가 개별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공개되면서 서점 역사소설 코너에는 인기 사극 원작 소설의 짝퉁이 범람하고 있다. 사료를 바탕으로 원작자가 창조하거나 채택한 인물 구도와 설정, 상황 전개 등을 그대로 가져오다시피한, 드라마 방영 시작 뒤 얼마 되지않아 쏟아져 나오는 책들 말이다. 얼마 전 서점에서 본 짝퉁 영웅시대는 이제 짝퉁 출판계도 패션계처럼 득도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보증한다. 주인공 이름이 ‘천태산’에서 ‘경천동’으로 바뀌고 주인공 후계자의 장례식이 사십구재로 바뀌었다 뿐이지, 후계자의 죽음에서 창업주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전개가 옆에 놓여있던 이환경 씨의 진품 영웅시대와 똑같았다. 무임승차에 중독된 듯한 출판사들의 기획력 부재도 문제지만 과연 이런 짝퉁 소설의 판매량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표절로 처벌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지 실속없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lt;br /&gt; &lt;br /&gt; 2004년 12월 6일, 홍가맨(劉洪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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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liberalkorea/116634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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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6 Dec 2004 16:28:03 +0900</pubDate>
    <category><![CDATA[세상산책(단문/잡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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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세계 명문대 순위는 엿장수 마음대로다?]]></title>
    <description>
        여럿이 어울리고 경쟁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서로의 높고 낮음을 비교하려는 본능이 심어져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경도와 위도의 조합 위에도 어느 정도의 서열 문화는 존재할 것이다. 군사문화의 잔재 탓인지 초등학교에서도 회장, 반장에다 온갖 부장과 분단장, 심지어는 대등한 관계로 협동해야할 조별 과제에서도 조장부터 뽑고 보는 우리 나라의 서열문화는 그 중에서도 심하다고 해야할 수준을 벗어나 지독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흔히들 가진 건 ‘똥자원’밖에 없는 대한민국이 오늘 날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하는 우리네 교육열이 이 지독한 서열 문화와 뒤섞인 혼합물이 바로 대학 랭킹에 대한 집착이다. 졸업 이후의 커리어에 비공식 대학 서열이 휘두르는 영향력 탓에 개인의 적성이나 희망은 잠시 접어두고, 일년간 문제집 푸는 기계가 되었다가 대입시험 성적이 허용하는 세평이 가장 좋은 대학의 입학이 가능한 과를 가려 들어갔던 게 학생이거나 학생이었던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이다.&lt;br /&gt; &lt;br /&gt; 이런 우리에게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들어가기 힘들다는 SKY 대학들이 어디선가 누군가가 산출해낸 세계대학랭킹에서는 매번 100위권 밖이라는 아이러니는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서울대 망국론이 불거져나올 때마다 단골로 인용되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교육열까지 뽑는 나라의 명문대들이 하나도 세계 100대 대학에 들지 못한다는 게 사실일까. 이 세계 대학 랭킹이란 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lt;br /&gt; &lt;br /&gt; 필자는 평범한 대한의 건아라 무슨 랭킹이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귀가 쫑긋해지고 흥미가 동한다. 세계 명문대 순위에는 남보다 더 민감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자조한다. 그런데 사실 어떤 대학 랭킹이건 A양과 B군의 스캔들 기사처럼 보면 실망스럽고 안 보면 찜찜한 물건이다. 최소한 150년 정도는 되는 전통에 재벌기업 정도의 예산을 자랑하는 일부 팔방미인형 대학들을 제외하고는 선정 기관이나 기준에 따라 그 순위가 천차만별인 게, 좀 과장하면 스포츠 신문에서 창조해낸 아시아 득점왕 혹은 홈런왕 랭킹과 다를 바 없다. &lt;br /&gt; &lt;br /&gt; US News &amp; World Report가 발표한 미국 종합대학 순위에서는 각각 21위 17위를 차지한 UC 버클리와 브라운 대학교은 더 타임즈의 세계 명문대 순위에서는 2위와 61위를 차지하면서 서열이 완전히 역전됐다. 아이비리그 소속 대학인 브라운은 상해교통대가 발표한 랭킹에서는 그보다도 21단계 더 떨어진 82위에 랭크되었다. 불과 삼사 년 전 아시아위크에서 선정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명문대 순위에서 서울대가 3-4위 하던 당시 5-6위에 머물던 싱가폴 국립대는 올해 더 타임즈 세계 대학 순위에서 서울대는 100위 밖에 랭크되는 동안 18위를 차지했다. &lt;br /&gt; &lt;br /&gt; 재밌는 점은 위와 같은 경우는 그나마 애교로 봐줄 수 있다는 것이다. 상해교통대학교 순위에서 100위 내에 들지 못한 호주의 NSW 대학교와 시드니 대학교는 불과 두세 달 뒤에 발표된 더 타임즈 랭킹에서는 보무도 당당히 세계 40대 대학 중 하나로 격상되었다. 세계 명문대 순위란 게 피파 랭킹 정도의 신뢰성만 있었어도 가능할 법한 이야기인가. 이쯤 되면 세계 명문대 순위란 건 엿장수가 끊어내는 엿가락 길이와 다를 바 없다고 할 만한다. &lt;br /&gt; &lt;br /&gt; 한 나라의 대학 순위를 선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마당에, 사실 실례를 떠나 상식적인 선에서 판단해보아도 세계 대학 순위란 건 넌센스에 불과하다. 세계 대학생 수학 능력 시험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 한 학생들의 성취도를 순위에 반영하기란 불가능하니 교수진의 경력이나 학교 시설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어디 보통 일인가. 용비어천가와 아더왕 전설의 가치가 비교 불가능하듯, 이공계 중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라도 연구 결과의 국제적 비교가 가능한 학문은 흔치 않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lt;br /&gt; &lt;br /&gt; 선정 기준에 따라 순위가 들쭉날쭉하는 데서 알 수 있듯 한국 어느 단체에서 우리 나라 대학에 유리한 기준으로 순위를 선정한다면 한국의 명문대들도 충분히 세계 100위권 안에 들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교수 대 학생 비율이나 도서관 장수, 학생 일인당 학업에 소비하는 시간 같은 개별 수치라면 모를까, 누군가가 선정한 세계 명문대 순위에서 한국의 명문대가 100위에도 못 든 다는 건 조소할 일도 분개할 일도, 초라하다 생각할 일도 못된다. 그런데도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신문에서 한 면 가득히 세계대학 순위를 ‘심층취재’씩이나 하는 모습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lt;br /&gt; &lt;br /&gt; 2004년 12월 5일, 홍가맨(劉洪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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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2 Feb 2007 18:38:35 +0900</pubDate>
    <category><![CDATA[세상읽기(에세이/칼럼)]]></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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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12세 이상만?] 너희가 Chamchi를 아느냐]]></title>
    <description>
        처음 외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내 별호는 본명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성호’였다. 성호는 내가 입학하기 직전 내가 다니게 된 중학교에서 공부하다 전학간 한국 녀석이었다는데, 학교에서 몇 안 되는 한국인이었던 그 친구의 이름은 한국인 전입생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통용되고 있었다. 우리가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 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듯, 외국인들도 우리말 욕에 상당한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내가 코리언이라는 인적사항을 밝히자 마자 주위의 모든 녀석들이 개XX를 필두로 성호에게 전수받은 쌍기역과 쌍시옷의 현란한 춤사위를 토해냈는데, 본국에서도 듣도 못한 온갖 기상천외한 단어의 조합에 찬탄을 금할 길 없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연장된 수명은 지금껏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사는 원동력이 되었다. &lt;br /&gt; &lt;br /&gt; 일인 이상의 등장인물을 포함하는 제법 긴 문장까지 유창하게 발음하던 무리 중 한 놈이 뜬금없이 Chamchi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아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인간 같은 소리인가. 사실 그 당시 나는 신문 기사는 무조건 진실이라 믿었고, 불과 얼마 전 고질라라는 영화에 한국 참치 캔이 등장해 막대한 홍보 효과가 예상된다는 보도를 봤던 터라, 녀석이 국산 참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치라는 단어를 배운 줄로만 알았다. 별 뜻없이 그렇노라고 대답하자 주위의 모든 녀석들이 자지러졌다. 처음 질문을 던졌던 녀석이 다시 물어왔다, 참치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느냐고. 그런데 이상한 일이, 실제로는 볼 기회가 없고 사진으로만 봤으며 가게에서 포장해 파는 거라면 본 적이 있노라는 대답이 뭐 그리 재미난지 녀석들이 껄껄대며 웃는 것이였다. 나는 내 영어 발음이 이상해 그런 줄로만 알고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lt;br /&gt; &lt;br /&gt; 영어에 능숙하지 못해 마음에 맞는 친구를 사귀기 힘들었던 탓에 입학 처음 몇 주간 점심 시간이면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외국 백과사전에는 한국의 유명인사들에 대해 무어라 소개를 해 놓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곤 했는데 어느날 데이비드 용기 초라는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누굴까 하고 프로필을 읽어보니 조용기 목사였다. 순간 나는 Chamchi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녀석들이 왜 그리도 Chamchi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어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조’용기 목사의 영문 성명은 David Yong-gi ‘Cho’였었다. 아멘.&lt;br /&gt; &lt;br /&gt; 2004년 12월 5일, 홍가맨(劉洪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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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Dec 2004 09:56:18 +0900</pubDate>
    <category><![CDATA[세상산책(단문/잡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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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내가 야후 블로거로 남은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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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시 방학이다. 내가 고작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사이 시간은 지난 방학의 끝에서 이번 방학의 시작으로 내달았다. 시간의 흐름과 자기계발의 페이스가 항상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절감하고 낭패감을 어금니로 곱씹는다. 짝짓기에 실패한 철새도 때가되면 남쪽 바다를 찾아온다. 지난 주 나는 첫눈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lt;br /&gt; &lt;br /&gt; 자취하는 동안 훌쭉해진 뱃속에 영양분을 공급하다보니 아사 직전에 놓인 블로그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방학 한 달 정도 블로깅 흉내를 낸 뒤 과제와 시험에 치여 사느라 방치해 놓은 기간이 그 네배는 되는 듯하다. 호주에 있는 동안은 전화선 모뎀으로 접속하는 탓에 블로그 방문도 한없는 인내심을 요하는 고행과 다를 바 없었다. 방명록에 어느 분이 남기신 주인은 언제 돌아오냐는 꾸짖음을 보고 씁쓸하게 웃어본다. &lt;br /&gt; &lt;br /&gt; 재미도 있고 글 쓰는 연습도 되니 소일거리로는 블로깅 만한 게 없는 듯하다. 블로깅을 재개하기로 결심하자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기왕에 새로 시작하는 거 다른 블로그를 이용하는 건 어떨까하는 유혹이 손길을 뻗쳤다. 잠시나마 야후 블로거 생활을 하는 동안 타 블로그 싸이트의 간단한 주소나, 답글이 줄줄이 달리는 게시물을 보고는 부러움을 느꼈던 탓이다. 오늘 오전 내내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새 집 지을 터를 둘러보았다. &lt;br /&gt; &lt;br /&gt; 디지털 세상의 택지를 살피면서도 내 의식은 아날로그적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합리적 판단을 위해서는 편견과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지만 어제와 오늘, 지난 일과 이번 일이 연결된 삶을 사는 인간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터와 저 터를 비교하며 무의식 중에 자리잡은 선입견이라는 놈의 지독함을 알게됐다. 블로그란 적어도 야후 블로그 같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곳도 성에 차지 않았다. &lt;br /&gt; &lt;br /&gt; 어떤 싸이트는 멋진 스킨을 제공하고 이용자들간의 답글 교환이 활성화되어 있었으나 야후처럼 방명록이나 게시물 목록을 표시할 수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어느 곳은 방명록과 목록 표시 기능은 제공했으나 야후와 같이 다양한 스킨을 제공하지 않았고, 또 다른 곳은 야후와 여러 면에서 비슷했으나 블로그를 꾸미는 과정이 복잡하게 느껴졌다. 야후 블로그를 척도로 삼다 보니 ‘어디에선 야후보다 낫지만 다른 데선 뒤쳐진다. 결국 야후만한 데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몇 달 전 이글루스에서 블로깅을 시작했다면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지만 주소가 너무 기니 야후 블로그는 별볼일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게 분명하다. &lt;br /&gt; &lt;br /&gt; 블로그 서비스간의 비교,분석 글도 살펴보고 이용자 수, 클릭 수 등을 담은 데이터도 찾아보았으나 어떡하랴. 선입견이 판단에 관여하는 것을 막는 일은, 이것과 저것 사이의 이음줄을 타고 살아가는 아날로그적 인간에게는 감당키 힘든 과제인 것을. 그런 고로- 나는 야후 블로그가 제일 쓸 만하다는 결론을 안고 계속해서 야후 블로거로 남고자 하고, 시답잖은 세설을 담아 오랜만에 새 게시물을 올려본다.&lt;br /&gt; &lt;br /&gt; 2004년 12월 1일, 홍가맨(劉洪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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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6 Jul 2005 11:07:54 +0900</pubDate>
    <category><![CDATA[세상살이(수상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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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신민들은 엘리자베스 여왕 폐하의 대소변에 만전을 기하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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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태어나 입으로는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다니나 실제로 정치인을 만나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십년 넘게 살도록 다녀본 정부 관련 기관은 동사무소, 구청, 병무청이 고작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목요일 저녁은 개인적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이국 땅 호주에서, 뉴사우스웨일즈 주 상원의장이 연 다과회에 다녀온 것이다. &lt;br /&gt; &lt;br /&gt; 메레디스 버그만 의장은 솔직히 말해 이름도, 얼굴도 어제 처음 본 인물이다. 주 이름이 붙은 대학에 다니면서도 주의회에는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이다. 사전 정보도 없고, 몇 마디 나눠 볼 기회도 없었으니 버그만 박사에 대한 평이나 감상을 적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의장실 화장실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lt;br /&gt; &lt;br /&gt; 함께 간 선배들이나 의장의 보좌관들, 그리고 의장 자신이 이구동성으로 내뱉은 한 마디는 화장실에 들어가 소리를 질러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소리를 크게 질러도 밖에서는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어째서일까? 궁금증이 커져가는 가운데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몇 해 전 엘리자베스 영국 연방 여왕의 방문을 기해 화장실을 완전 방음 처리했다고 한다. 대영제국의 여왕 폐하께서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 보는 소리를 밖에서 듣는, 불충하면서도 불경한 대역죄를 짓지 않기 위한 방지책이었던 것이다. 아아, 그날 무관무직의 서생 유홍일이는 폐하를 위해 설계된 화장실에 들어가 용변을 보고 손도 씻었으니 이보다 큰 가문의 영광이 어디 있으랴. &lt;br /&gt; &lt;br /&gt; 여왕이나 나나 똑같은 사람이고, 먹으면 싸는 게 신의 섭리일진데 여왕이 낳은 아들은 왕자가 되듯 여왕의 배설음(?)은 무형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왕실의 일원 대접을 받나보다. 폐하의 화장실이라 내 물건마저 주눅 들어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인지, 출생이란 제비뽑기에서 대박을 건져낸 사람이 누리는 특권에 대한 반골의식이 발동한 탓인지 기분이 영 찜찜했다. 2차를 위해 옮겨간 술집에서, 나는 화장실부터 찾았다. 방광이 한결 가벼워지는 가운데 누군가가 변기를 안고 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lt;br /&gt; &lt;br /&gt; 2004년 8월 14일, 홍가맨(劉洪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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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6 Dec 2004 01:35:27 +0900</pubDate>
    <category><![CDATA[세상산책(단문/잡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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