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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LEO의 세상살이]]></title>
<description><![CDATA[ leo의 블로그 입니다. leo는 남태우의 한글 이니셜(LEO)입니다. 신문사를 다니는 직장인이구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인간입니다.]]></description>
<link>http://kr.blog.yahoo.com/leobusan</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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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LEO의 세상살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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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leo의 블로그 입니다. leo는 남태우의 한글 이니셜(LEO)입니다. 신문사를 다니는 직장인이구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인간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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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우리도 이젠 야구할 수 있어요]]></title>
    <description>
        &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2pt;&quot;&gt;　그들은 야구를 너무나 사랑한다. 열정은 뜨거워 넘칠 지경이다.하지만 지금까지 야구에서 소외돼 있었다. 온몸으로 그라운드에서 뛰는 쾌감을 맛보고 싶어도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lt;br&gt;&lt;br&gt;　마침내 그들에게 길이 열렸다. 글러브를 끼고 공을 던지며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게 됐다. 손끝에 전해지는 타격의 짜릿함을 즐기고 날렵한 몸놀림으로 상대를 아웃시키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게 됐다.&lt;br&gt;&lt;br&gt;　&amp;quot;우리도 이젠 당당한 부산 갈매기예요.&amp;quot; &lt;br&gt;&lt;br&gt;　부산, 경남, 울산, 경북 등 영남권을 통틀어 첫 농아인 야구팀이 20일 탄생했다. 이날 오후 부산 수영구 부산가톨릭농아인복지회 강당에서 농아인 야구팀 &amp;#39;부산 데프 자이언츠&amp;#39; 창단식이 열렸다. 단장은 이형복, 감독은 김호성씨며 코치는 프로야구 LG 트윈스 출신의 박선규씨. &lt;br&gt;&lt;br&gt;　데프 자이언츠의 탄생은 이 단장과 김 감독이 &amp;quot;부산에도 농아인 야구단을 만들어보자&amp;quot;고 뜻을 모은 데서 시작했다. 평소 농아인들이 야구를 하고 싶어하면서도 여러가지 여건 탓에 기회를 잡지 못하던 것을 안타까워 했던 것이다. 이들은 김 감독의 초등 동창인 박 코치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박 코치가 이를 선뜻 받아들여 창단에까지 이르렀다.&lt;br&gt;&lt;br&gt;　데프 자이언츠 선수는 20~40대 농아인 13명으로 구성됐다. 창단에 앞서 지난 1월부터 금정구 남산동의 한 실내야구장에서 매주 일요일 기본기 연습을 해 왔다. 아직 경력이 짧아 기량은 많이 떨어진다는 게 박 코치의 설명이다.&lt;br&gt;&lt;br&gt;　겨우 팀을 만들기는 했지만 데프 자이언츠는 여러가지 면에서 어려움에 시달린다. 먼저 선수들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탓에 장비 구입에 애를 먹고 있다. 박 코치는 &amp;quot;겨우 개인 글러브를 마련한 정도다. 배트나 포수 장비 등은 돈이 없어 아직 구하지 못했다&amp;quot;고 안타까워했다. 월 1만원에 불과한 선수 회비로는 장비 구입은 꿈도 꿀 수 없다.&lt;br&gt; &lt;br&gt;　그나마 유니폼은 회사에 다니는 박 코치가 개인 돈을 털어 마련했고 훈련을 마친 뒤 식사비 등도 박 코치가 사비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최근 한 사회인야구리그 홈페이지에 농아인 야구 팀 창단 소식을 알리고 지원을 호소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lt;br&gt; &lt;br&gt;　데프 자이언츠는 내달 열리는 전국농아인야구대회에 첫 출전할 계획이다. &amp;quot;앞으로 해마다 전국대회에 5~6차례 정도 나갈 생각이다. 출전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 벌써부터 걱정&amp;quot;이라고 안타까워했다.&lt;br&gt; &lt;br&gt;　박 코치와 데프 자이언츠는 내년부터는 사회인야구리그에 가입해 비장애인들과 시합을 갖는 게 꿈이다. &amp;quot;경기를 하다 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벽을 허물고 서로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날갯짓을 시작하는 데프 자이언츠를 사랑해주기를 바랍니다.&amp;quot; &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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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3 Mar 2010 15:04:24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 쓴 기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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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네팔 어린이들이 스키를 즐길 수 있었으면]]></title>
    <description>
        &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　&amp;quot;네팔에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을 세워 어린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싶어요.&amp;quot;&lt;br&gt;&lt;br&gt;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40대 네팔인이 제21회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크로스컨트리 15km 프리스타일 종목에 출전해 눈길을 끌었다．&lt;br&gt;&lt;img border=&quot;0&quot; hspace=&quot;7&quot; alt=&quot;&quot; vspace=&quot;7&quot; align=&quot;left&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b3/c8/leobusan/folder/11/img_11_1536_0?1266305463.jpg&quot; width=&quot;220&quot; height=&quot;439&quot;&gt;&lt;br&gt;　화제의 인물은 이번 대회에 네팔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참가한 다치히리 세르파(41)씨．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개막식 때 네팔 기수로 국기를 들고 입장한 그는 16일 오전 휘슬러 올림픽 파크에서 펼쳐진 크로스컨트리 15km 경기에 출전해 44분26초5의 기록으로 92위를 차지했다．&lt;br&gt;&lt;br&gt;　에베레스트 산 아래 마을 솔루품부에서 태어난 셰르파는 당초 크로스컨트리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눈만 보고 자란 그였지만 네팔에는 크로스컨트리라는 경기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당연히 경기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양과 소를 키우는 농부였으며 그는 불교사원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셰르파는 &amp;quot;외국인들은 `네팔은 눈 덮인 산이 많아서 스키장도 많을 것’이라고 오해한다&amp;quot;면서 &amp;quot;하지만 네팔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amp;quot;며 웃었다．&lt;br&gt;&lt;br&gt;　그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연결하는 코스에서 열리는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는 산악 마라토너로 알려지면서 크로스컨트리에 입문하게 됐다． 그가 울트라마라톤에서 우승하자 네팔올림픽위원회가 그에게 크로스컨트리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는 것．&lt;br&gt;&lt;br&gt;　그 이전까지 스키 장비를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는 그는 &amp;quot;마라톤을 한 게 많은 도움이 된다． 166km를 한 번도 쉬지않고 달린 적도 있다． 15km는 너무 짧다&amp;quot;면서 &amp;quot;스키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 기술은 떨어진다&amp;quot;고 아쉬워했다．&lt;br&gt;&lt;br&gt;　셰르파는 앞으로 인생의 목표가 한가지라고 밝혔다． &amp;quot;언젠가 네팔에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을 만들 수 있다면 무척 행복할 거예요.&amp;quot;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에서 어린이들이 스키를 즐기는 모습을 그는 꿈꾸고 있다．&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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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6 Feb 2010 16:31:03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 쓴 기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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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축구선수가 될 뻔했던 명사들]]></title>
    <description>
        &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amp;nbsp;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가수 로드 스튜어트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피， 배우 션 코너리， 그리고 철학자 알베르 카뮈． &lt;br&gt;&lt;br&gt;　세계적으로 각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이들에게 특이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프로 축구선수가 될뻔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인터넷 축구전문사이트 골닷컴(Goal．com)은 &amp;#39;유명축구스타가 될 수도 있었던 유명인 10명&amp;#39;을 선정해 소개했다．&lt;br&gt;&lt;br&gt;　본명이 카롤 조제프 보틸라였던 바오로 2세 교황은 고향인 폴란드 바도비스 등에서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는 교황이 된 뒤에서 축구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못했다． 2001년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시티의 골키퍼 세이 기븐이 결혼했을 때 축복을 내려주기도 했다．&lt;br&gt;&lt;br&gt;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이탈리아 모데나의 주니어 팀에서 골키퍼로 뛰었고 시니어팀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성악가의 길을 걷기 전에 축구 티칭스쿨에 등록해주기까지 했다． &lt;br&gt;&lt;br&gt;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로스 블랑코스 유소년팀에서 활동했다． 그는 차사고로 부상을 당해 프로선수가 될 기회를 놓쳤다． 로드 스튜어트는 축구선수로 제법 인정을 얻어 브렌포드 10대 팀에 입단했다． 그러나 가수 되기가 축구선수보다 쉽다고 생각해 직업을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한다．&lt;br&gt;&lt;br&gt;　부조리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어릴 때 레이싱 유니버시타이르 알제로이스에서 골키퍼로 뛰었다． 그러나 오랜 결핵으로 결국 운동선수의 꿈을 접고 말았다． &lt;br&gt;&lt;br&gt;　이밖에 자동차경주 포뮬러원의 챔피언인 앨런 프로스트， 체스 세계챔피언 시먼 애그데스테인， 가수 니키 바이런 등도 어릴 때， 혹은 청년 시절에 프로축구선수가 될 희망을 키웠던 사람들이었다．&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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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6 Feb 2010 16:27:10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 쓴 기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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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옛날에는 부산진시장 상인은 다 부자라 했죠]]></title>
    <description>
        &lt;font style=&quot;FONT-SIZE:12pt;FONT-FAMILY:굴림체;&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FONT-FAMILY:바탕;&quot;&gt;　&amp;quot;옛날에는 부산진시장에서 장사한다면 다 부자라고 생각했죠.&amp;quot;&lt;br&gt;&lt;br&gt;　부산 동구 범일동 부산진시장 1층에서 38년째 포목을 취급하는 &amp;#39;고령상회&amp;#39; 현기환(63) 사장이 껄껄 웃으며 말한다. &amp;quot;옛 한일방직 등 유명한 섬유업체 창업주들이 다 부산진시장에서 돈을 벌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amp;quot; 화려했던 1970년대 부산진시장의 전성기를 회상하는 현 사장의 눈가에 아련한 추억이 흘러간다.&lt;br&gt;&lt;img height=&quot;390&quot; alt=&quot;&quot; hspace=&quot;7&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b3/c8/leobusan/folder/11/img_11_1533_0?1262215875.jpg&quot; width=&quot;282&quot; align=&quot;left&quot; vspace=&quot;7&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fon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　경북 고령군 개진면 출신으로 협성고를 나온 현 사장은 지난 1971년 결혼하고 바로 부산에 내려온 뒤운동화 및 작업복 원단 판매업을 시작했다. &amp;quot;대구에 살며 신발 원단업을 하던 외삼촌이 저보고 부산에 가서 대리점을 해보라더군요. 그때 친구가 &amp;#39;나중에 천천히 갚으라&amp;#39;며 당시 돈으로 100만원을 그냥 도와줬습니다. 지금 화폐 가치로 따지면 5천만원 이상은 될 겁니다.&amp;quot;&lt;br&gt;&lt;br&gt;　월세 2천500만원 지하 셋방에 신혼살림을 차린 현 사장은 부산진시장 한쪽 구석에 월세 5천원을 주고 가게를 얻었다. 그때 처음 장사를 시작한 자리가 지금도 장사를 하고 있는 곳이다. 친척이 사장이던 한 신발회사에 납품권을 얻은 덕분에 장사가 잘 돼 친구에게 빌린 돈을 5년만에 모두 갚았다. &amp;quot;그때 친구의 은혜는 평생 잊을 수 없어요. 다만 사냥을 좋아하던 그가 세상을 벌써 떠나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게 아쉬울 뿐입니다.&amp;quot;&lt;br&gt;&lt;br&gt;　1970년대 후반은 그야말로 눈부실 정도로 장사가 잘 된 전성기였다고 한다. &amp;quot;정말 바빴어요. 옷을 만들기만 하면 다 수출이 되던 시절이어서 원단 공급하느라 눈코뜰 사이가 없었습니다.&amp;quot;&lt;br&gt;&lt;br&gt;　모두에게 힘들었던 IMF 외환위기도 그다지 어렵지않게 넘어갔다. 남들은 다 괴롭다고 울상이었지만 그는 그다지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lt;br&gt;&lt;br&gt;　하지만 1990년대부터 힘든 일이 시작됐다. 첫 시련은 1990년대 초 친구에게 3억원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친구가 달아나는 바람에 그대로 뒤집어쓴 사건이었다. &amp;quot;다른 친구들이 무이자로 자금을 빌려줘서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amp;quot;&lt;br&gt;&lt;br&gt;　여기에 1990년대 후반 이후 크게 변한 국내외 경제 상황이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값싼 원단 앞에 상대적으로 비싼 국내 원단은 맥을 못 췄다. &amp;quot;여기에 대기업이 기성복 시장을 완전 장악한 것도 큰 일입니다. 맞춤 양복점이나 양장점의 장사가 안 되니 원단을 공급하는 우리 같은 업체들도 괴롭죠.&amp;quot; 브랜드 제품만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호도 현 사장 같은 재래시장 상인들을 힘들게 한다.&lt;br&gt;&lt;br&gt;　과거에 현 사장 등 부산진시장 포목 상점들은 도매를 위주로 했다고 한다. 양복점 등이 장사가 잘 돼 원단을 사갈 때면 보통 50~60마 이상을 구입했지만 지금은 다섯마 이상을 사가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매출은 전성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lt;br&gt;&lt;br&gt;　힘든 상황이지만 현 사장은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1980년에는 범죄예방위원회 동구 위원장을 맡아 6년 동안 활동하기도 했다. &amp;quot;그때 도움을 줬던 청소년들이 50여명 정도 됩니다. 그중에서 지금도 가끔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죠.&amp;quot;&lt;br&gt;&lt;br&gt;　그는 또 부산진시장 &amp;#39;하포목부&amp;#39; 상점 주인들끼리 &amp;#39;십시일반&amp;#39; 정신을 구현하자며 선종회를 만들어 15년째 불우이웃돕기 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 현재 살고 있는 동구 좌천1동 발전애향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lt;br&gt;&lt;br&gt;　&amp;quot;앞으로 5~10년이 고비일 것 같습니다. 부산진시장의 영업 형태도 이 기간 중에 많이 바뀔 것 같구요. 저야 평생 일해온 자리인 만큼 앞으로도 계속 고령상회를 지켜나갈 겁니다.&amp;quot; &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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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31 Dec 2009 08:31:15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 쓴 기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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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가출청소년에서 매출 200억 사장으로]]></title>
    <description>
        &lt;font style=&quot;FONT-SIZE:12pt;FONT-FAMILY:굴림체;&quot;&gt;&lt;strong&gt;　홀어머니 속을 썩이던 가출 청소년에서 야구 코치로, 그리고 한해 매출 200억원을 올리는 &amp;#39;큰 회사&amp;#39; 대표까지. 이만하면 &amp;#39;인생 역전&amp;#39;도 어지간히 극적인 대역전이 아니다.&lt;br&gt;&lt;br&gt;　김영섭 ㈜경신공영(경남 김해시 진례) 대표이사가 맨 주먹으로 일군 &amp;#39;자수성가&amp;#39; 줄거리다. 김 대표는 고교 때 백혈병으로 부친을 잃었다. 한창 사춘기 시절에 겪은 집안의 우환은 그를 집 밖으로 방황하게 만들었다. &amp;quot;어머니가 시장에서 배추장사를 해서 우리를 키웠어요. 철없는 아들은 그 괴로움도 모르고 가가출하거나 사고만 쳤죠.&amp;quot;&lt;br&gt;&lt;br&gt;　학교를 졸업한 그는 1981년 우연히 동생이 야구선수로 활약하던 부산공고 야구부 코치가 됐다. 학교 다닐 때 야구 선수 생활을 한 적도 아닌 그로서는 놀라운 변신이었다. 기숙사에서 &amp;#39;동생&amp;#39;같은 선수들과 같이 먹고 자면서 야구만 생각했다. 한국체대에서 코치 생활에 필요한 지도자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lt;br&gt;&lt;br&gt;&lt;img style=&quot;WIDTH:328px;HEIGHT:434px;&quot; height=&quot;434&quot; alt=&quot;&quot; hspace=&quot;7&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b3/c8/leobusan/folder/11/img_11_1532_0?1261375307.jpg&quot; width=&quot;328&quot; align=&quot;left&quot; vspace=&quot;7&quot; border=&quot;0&quot;&gt;　감독이 사퇴하면서 그도 코치 자리를 그만 뒀다. 그리고 사업가로 변신을 시도했다. 1991년 맨 처음에 손을 댄 분야는 &amp;#39;쓰레기 투입구&amp;#39; 제작이었다. &amp;quot;옛날 아파트에는 각 집마다 쓰레기를 버리면 아래로 떨어져 모이게끔 하든 투입구가 있었죠. 대개 철판으로 만들었지만 저는 폴리에틸론 재질의 투입구를 만들어 의장특허와 실용신안특허를 냈습니다.&amp;quot; &lt;br&gt;&amp;nbsp;하지만 불과 2년 뒤에 정부가 쓰레기 분리수거 사업을 위해 법령을 개정하면서 그의 첫 사업은 완벽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lt;br&gt; &lt;br&gt;　쓴 맛을 경험한 김 대표는 친척이 운영하던 창호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아파트나 주택에 알루미늄 섀시를 만들어 납품하는 회사였다. 3년 정도 근무하면서 영업과 기술을 배웠다. 나름대로 자신감을 얻어 1998년에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이때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성공을 위한 기회였다. &amp;quot;다른 업체들이 부도를 내고 문을 닫을 때 우리는 수주 물량이 넘쳐 밤샘해서 일할 정도였습니다. 3년 동안 정말 열심히 쉬지 않고 일했어요.&amp;quot;&lt;br&gt;&lt;br&gt;　당시만 해도 알루미늄 섀시가 대세였다. 그러나 그는 섀시의 흐름이 PVC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한 대기업의 대리점을 차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생각대로 아파트 섀시는 모두 PVC로 바뀌었다. 회사를 처음 차렸던 첫해 매출은 고작 3~4억이었다. 올해 매출은 200여억원으로 그는 예상한다.&lt;br&gt; &lt;br&gt;　그는 지난 10여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면서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다고 한다. 공사 물량도 내년분까지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회사가 탄탄하게 굴러가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lt;br&gt;　&amp;quot;한마디로 신뢰죠. 우리 회사는 애프터서비스에 철저히 신경을 씁니다. 애프터서비스 팀 인원만 10명입니다.&amp;quot;&lt;br&gt; &lt;br&gt;　김 대표는 섀시 하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아파트 입주민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섀시에서 물이 새서 시공사에 연락해보지만 전화를 받지도 않을뿐더러 겨우 통화가 돼도 기술자는 올 생각도 않는다는 것.&lt;br&gt;&lt;br&gt;　&amp;quot;사실 아무리 완벽하게 공사를 했다고 해도 하자가 발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때 애프터서비스를 얼마나 성실하게 하느냐가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amp;quot;&lt;br&gt;&lt;br&gt;　김 대표는 회사가 탄탄한 반석 위에 올라서자 다양한 방법으로 봉사활동에 나섰다. 국제라이온스협회 355-A지구 지역 부총재로 활동하고 있고, 한국자유총연맹 남구 지부장 등도 맡고 있다. 매년 봉사활동에 사용하는 돈만 1억원을 넘는다.&lt;br&gt;&lt;br&gt;　&amp;quot;지금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회사를 이렇게까지 성장시켰습니다. 앞으로는 도움을 받은 만큼 베풀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주변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amp;quot;&lt;br&gt;&lt;/strong&gt;&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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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1 Dec 2009 15:01:47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 쓴 기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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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김치 한  포기만 더 담가보세요]]></title>
    <description>
        &lt;font style=&quot;FONT-SIZE:12pt;FONT-FAMILY:굴림체;&quot;&gt;&lt;strong&gt;　&amp;quot;우리가 어떻게 살았습니까. &amp;#39;우리 집 김장김치 맛 한번 보세요&amp;#39;하며 훈훈한 정을 나누지 않았나요. 김장할 때 한 포기만 더 해서 어려운 이웃과 나누면 어떨까요.&amp;quot;&lt;br&gt;&lt;br&gt;&lt;img height=&quot;438&quot; alt=&quot;&quot; hspace=&quot;7&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b3/c8/leobusan/folder/11/img_11_1531_0?1261374946.jpg&quot; width=&quot;314&quot; align=&quot;right&quot; vspace=&quot;7&quot; border=&quot;0&quot;&gt;&lt;br&gt;　올해 겨울 대한민국 부산이 훈훈해지기를 바라는 남구종합사회복지관 선기영(26) 사회복지사의 바람이다. 남구 우암동에 위치한 남구종합사회복지관은 오는&amp;nbsp;12월 31일까지 &amp;#39;한 포기만 더&amp;#39; 운동을 벌인다.&lt;br&gt; &lt;br&gt;　이 운동은 김장을 하는 가정에서 김치 한 포기씩만 덜어 인근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등과 나눠 먹는 캠페인이다. 각 가정은 김장을 할 때 한 포기만 덜어낸 뒤 복지관에 전화를 하면 된다. 복지관에서는 김치를 담을 통을 가져다준다. 해당 가정에서는 김치를 통에 담아 인근 불우이웃에 직접 갖다주거나 복지관에 배달을 부탁하면 된다.&lt;br&gt; &lt;br&gt;　&amp;#39;한 포기만 더&amp;#39; 운동은 지난 2003년 대구 성서종합사회복지관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이후 푸른복지사무소에서 전국적으로 확대시켰고, 부산에서는 남구복지관 외에 만덕종합사회복지관, 반석종합사회복지관, 영진종합사회복지관이 함께한다.&lt;br&gt;&lt;br&gt;　&amp;quot;지난해에는 20여 가정에서 도와줘 어려운 이웃 20여 가정에 김장김치를 나눠줬어요. 올해는 40가정이 참여해 200포기 정도를 나눠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amp;quot;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출신으로 지난 2006년부터 이 운동을 담당해온 선씨의 설명이다.&lt;br&gt; &lt;br&gt;　&amp;#39;한 포기만 더&amp;#39;는 단순히 김치 한 포기를 나눠 먹는 데 그치는 운동이 아니다. 선씨는 &amp;quot;지역 주민들이 같은 지역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동참해 함께 살아가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취지를 포함하고 있다&amp;quot;고 말한다.&lt;br&gt;&lt;br&gt;　선씨는 &amp;#39;한 포기만 더&amp;#39; 운동이 아직 홍보 부족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양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질적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성과들이 많이 생겼다고 밝혔다.&lt;br&gt;&lt;br&gt;　다음은 선씨가 소개한 가슴 따뜻한 좋은 사례. 우암동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한 여성이 김치 나누기에 참여했다. &amp;quot;원래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지만 학원이 늦게 끝나는 탓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amp;quot; 그는 &amp;#39;한 포기만 더&amp;#39; 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시간만 나면 복지관에 찾아와 쌀 등을 후원했다. 또 노인부부 세대를 소개받아 수시로 방문하는 등 지원하기도 한다. 여기에 최근부터는 복지관에서 기체조 강사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lt;br&gt;&lt;br&gt;　&amp;#39;한 포기만 더&amp;#39; 운동에 대해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선씨에 따르면 이전에는 독거노인 등에게 김치를 사서 전달했다. 지난해 &amp;#39;한 포기만 더&amp;#39; 김장김치를 배달하고 한달 뒤 노인들을 찾아가 물어봤더니 김치가 너무 맛있고 &amp;#39;굴까지 들어있어서&amp;#39; 너무 좋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lt;br&gt;&lt;br&gt;　&amp;quot;내가 만들어 나눠 먹은 김장김치 한 포기가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살맛나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기분좋아요. 올해는 &amp;#39;한 포기만 더&amp;#39; 김치가 넘쳐나서 집집마다 사랑의 웃음으로 환해지기를 기대합니다.&amp;quot;&lt;/strong&gt;&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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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1 Dec 2009 14:55:47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 쓴 기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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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40년 동안 유리 만지며 살아왔어요]]></title>
    <description>
        &lt;font style=&quot;FONT-SIZE:12pt;FONT-FAMILY:굴림체;&quot;&gt;&lt;strong&gt;&lt;img hspace=&quot;5&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b3/c8/leobusan/folder/11/img_11_1528_0?1260939607.jpg&quot; vspace=&quot;5&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br&gt;　욕심을 내지 않았다. 여러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넘으려고 한 적은 없다. 일만 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걸었다. 힘든 때도 있었지만 성실과 끈기 하나로 버텼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지만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lt;br&gt;&lt;br&gt;　부산 동구 좌천1동에서 협성유리제경사를 운영하는 정한성(57) 사장의 인생살이다. 그는 40년 동안 유리를 만지며 살아왔다. 17살 때 유리 가장자리를 사포(沙布)로 매끈하게 가는 일부터 시작했다. 일을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amp;#39;뼈가 쑤신다&amp;#39;며 지금도 하루종일 공장에서 유리와 씨름한다. 가구점 등에서 테이블, 책상 등에 올리는 유리를 주문받아 제작하는 게 그의 일이다. &lt;br&gt;&lt;br&gt;　경남 합천 초계면 출신인 정 사장은 지난 1969년 부산에 왔다. 4남1녀 가운데 장남이었던 그로서는 한시바삐 돈을 벌지 않을 수 없었다. &amp;quot;고향 사람 소개로 당시 중구 부평동에 있는 유리업체에서 처음 일자리를 얻었죠. 주인집에서 먹고 자면서 한달 월급으로 2천원을 받았습니다.&amp;quot;&lt;br&gt;&lt;br&gt;　다른 고향 친구들은 직종을 바꾸며 일자리를 수시로 옮겨다녔지만 그는 꿋꿋하게 유리가공 한자리만 지켰다.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던 정 사장은 지난 1980년 12월 현재 자리에서 공장을 열었다. 알뜰하게 모은 돈 3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전세 200만원에 월세 8만원을 주기로 했고， 기계 구입비로 100만원이 들었다.&lt;br&gt; &lt;br&gt;　&amp;quot;당시만 해도 다른 지역에 유리공장이 그다지 많지 않았어요. 일거리가 많았죠.&amp;quot; 정 사장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아침 8시부터 밤 늦게까지 열심히 일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일요일도 가리지 않고 즉각 고객 요구를 들어줬다. 이같은 성실성을 인정받아 단골이 늘어났고 사업은 꾸준히 성장했다. 지금은 시골에 있던 동생들이 올라와 다른 직원 2명까지 해서 모두 5명이 함께 일한다.&lt;br&gt;&lt;br&gt;　1996년에는 대당 7천만원을 넘는 이탈리아산 유리가공 기계를 들여왔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 2년만에 빚을 모두 갚았다． &lt;br&gt;&lt;br&gt;　정말 &amp;#39;죽도록&amp;#39;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에게도 고비는 없지 않았다. 기계값을 다 갚을 무렵인 10년전 IMF 외환위기 때 1억여원 넘어 부도를 맞았다고 한다. &amp;quot;받을 돈은 못 받고 줄 돈은 줘야 했죠. 그때 돈을 받지 못한 어음을 아직도 갖고 있어요.&amp;quot;&lt;br&gt;&lt;br&gt;　유리공장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그를 힘들게 한다. 또 최근 수입 원자재 값이 오른 것도 어려운 점이다.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경쟁 탓에 인상은 꿈도 못 꾼다.&lt;br&gt;&lt;br&gt;　어지간한 사업체를 운영하면 각종 단체에 가입해 명함을 만드는 게 일반적인 세태다. 하지만 정 사장은 &amp;#39;어쩔 수 없이&amp;#39; 좌천1동 자치위원회에 가입한 것을 빼고는 단체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일은 동생이나 직원들에게 맡기고 인생을 좀 즐기면서 살라고 말한다.&lt;br&gt; &lt;br&gt;　&amp;quot;일하던 사람이 놀면 병 나요. 저는 공장에서 일하는 게 즐겁고, 일도 바빠요. 다른 데 신경쓸 겨를이 어디 있겠어요.&amp;quot;&lt;br&gt;&lt;br&gt;　정 사장은 얼마 전 아들 결혼식을 치렀다. 큰 일을 하고 보니 사람 사는 게 잠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amp;quot;보잘것 없지만 제 삶을 돌이켜볼 때 후회는 안해요. 열심히 살았고, 작지만 제 일을 하고 있잖아요. 나이가 많이 들면 고향에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는 더 열심히 일해야죠.&amp;quot;&lt;/strong&gt;&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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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6 Dec 2009 14:00:07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 쓴 기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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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방과후학교 락(樂) 밴드]]></title>
    <description>
        &lt;font style=&quot;FONT-SIZE:12pt;FONT-FAMILY:굴림체;&quot;&gt;&lt;strong&gt;　&amp;quot;드럼을 두들기다 보면 가슴에 꽉 차 있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고 속이 시원해져요. 앞으로 연이어 열릴 공연에서 멋진 솜씨를 보여주고 싶어요.&amp;quot;&lt;br&gt;&lt;br&gt;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반송초등 김석환(11)군이 드럼 이야기를 꺼내자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는다. 옆에 있던 김다현(반송초등·10)양이 한마디 거든다. &amp;quot;꼭 배우고 싶었던 드럼을 할 수 있어 너무 즐거워요. 악기를 배워 진짜 좋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돼 더 기뻐요.&amp;quot;&lt;br&gt;&lt;br&gt;　두 어린이는 해운대구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든솔학교에서 운영하는 &amp;#39;락(樂) 밴드&amp;#39;에서 악기를 배우고 있다. 락 밴드는 보건복지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주최하는 소외계층 아동·청소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하나로 운영된다. &lt;br&gt;&lt;br&gt;　지난 7월 창단한 락 밴드에는 든솔학교에서 공부하는 초등학교 4~6학년 어린이 17명이 참가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드럼, 기타, 베이스기타, 보컬 등 제각각 좋아하는 분야를 배우고 있다. 이들은 매일 학교수업을 마친 뒤 반송 3동 &amp;#39;지앤지 실용음악학원(원장 권태준·38)&amp;#39;에 가서 지도를 받는다.&lt;br&gt;&lt;br&gt;　락 밴드는 창단 3개월만인 지난달 해운대의 한 축제에 참가해 공연을 펼쳐 큰 박수를 받았다. 든솔학교 박영미 교사는 &amp;quot;청중들이 &amp;#39;어린이들이 저렇게 잘 할 줄 몰랐다&amp;#39;며 다들 놀라와 했다&amp;quot;고 당시 반응을 소개했다.&lt;br&gt;&lt;br&gt;&lt;img hspace=&quot;5&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b3/c8/leobusan/folder/11/img_11_1527_0?1260939303.jpg&quot; vspace=&quot;5&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br&gt;　락 밴드는 앞으로 중요한 3개 공연을 앞두고 있다. 28일에는 부산청소년활동진흥센터에서 열리는 발표회에 참가해 다른 지역 7개팀들과 실력을 겨룬다. 다른 팀들은 모두 국악, 연극 팀이어서 밴드는 이들이 유일하다. 락 밴드는 또 내달 5일에는 지앤지 실용음악학원이 주최하는 사랑의 나눔 콘서트에 출연한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은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할 예정이다. 이들은 또 내달 12일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발표회에 부산대표로 올라가 기량을 과시하게 된다. 성탄절 다음날에는 든솔학교 학예발표회 때 친구들 앞에서 악기를 연주할 계획이다.&lt;br&gt;&lt;br&gt;　부산예술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권 원장은 &amp;quot;초등학생 락 밴드는 전국적으로도 드물다&amp;quot;면서 &amp;quot;처음에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나 걱정이 많았지만 뜻밖에 초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따라와 생각보다 기량이 많이 늘었다&amp;quot;고 말했다. 그는 &amp;quot;개인 기량으로 보면 뛰어나다고 할 수 없지만 팀워크가 좋아 밴드의 연주실력이 만만치 않다&amp;quot;고 자랑했다.&lt;br&gt;&lt;br&gt;　권 원장의 설명처럼 일부 어린이들은 처음에 악기를 배우는 데 너무 힘들어했다고 한다. 기타를 선택한 아이들은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기도 했으며 무거운 기타를 드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악기를 다루는 요령이 생겨 지금은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을 한다.&lt;br&gt; &lt;br&gt;　박 교사는 &amp;quot;원래 1주일에 1명이 2~3번 정도 연습하면 되지만 어떤 아이들은 매일 와서 악기를 연습하기도 한다&amp;quot;면서 &amp;quot;정서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일부 아이들은 음악을 하면서 안정을 되찾고 사회성을 배우기도 했다&amp;quot;고 말했다. 부모들도 &amp;quot;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amp;quot;며 반긴다고 한다.&lt;br&gt;&lt;br&gt;　소외계층 아동·청소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12월까지만 운영하는 한시적 사업이다. 내년에도 계속할지 여부는 아직 미정이다. 따라서 어린이들이 락 밴드에서 내년에도 계속 음악을 배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lt;br&gt; &lt;br&gt;　박 교사는 &amp;quot;기타 2개는 예산으로 구입했지만 다른 악기와 강사료 등은 구할 방법이 없다&amp;quot;면서 &amp;quot;내년에도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이 즐겁게 음악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amp;quot;고 안타까워했다.&lt;/strong&gt;&lt;/font&gt;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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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6 Dec 2009 13:55:03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 쓴 기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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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베트남, 악몽에서 인생의 전부로]]></title>
    <description>
        &lt;font style=&quot;FONT-SIZE:12pt;FONT-FAMILY:굴림체;&quot;&gt;&lt;strong&gt;　&amp;quot;과거 베트남은 잊고 싶었던 악몽의 땅이었지만 지금은 잊을 수 없는 제 인생의 전부죠.&amp;quot;&lt;br&gt; &lt;br&gt;　지난 1993년부터 부산외국어대 베트남어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던 안희완(75·베트남경제연구소 소장) 교수가 껄껄 웃으며 말한다. 그는 베트남과 특이한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베트남전쟁 때 외교관 생활을 하다 전쟁이 끝난 뒤 탈출에 실패해 붙잡히는 바람에 현지에서 5년간 교도소 생활을 했다. 이후 베트남으로 돌아가 한국-베트남 교류 활성화에 일생을 몸바쳐 베트남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lt;br&gt;&lt;br&gt;&lt;img height=&quot;300&quot; alt=&quot;&quot; hspace=&quot;6&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b3/c8/leobusan/folder/11/img_11_1526_0?1260756402.jpg&quot; width=&quot;332&quot; align=&quot;right&quot; vspace=&quot;6&quot; border=&quot;0&quot;&gt;&lt;br&gt;　지난 19일 부산 남구 우암동 부산외대에서 안 교수를 만났다. 이날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하루였다. 16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쳐왔던 정든 강단을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안 교수는 매주 열차를 타고 내려와 강의를 했지만 이날 고별강연을 끝으로 부산외대에서 퇴임했다. 그의 마지막 강연에는 대학 관계자들은 물론 베트남어학과 학생 50여명이 몰려 오랜 세월 동안 부산외대를 지켜온 은사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lt;br&gt;&lt;br&gt;　안 교수는 황해도 연백이 고향이다. 남북이 갈라진 직후 가족이 모두 남쪽으로 내려왔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충북 공주 계룡산 인근으로 피란을 갔다. &amp;quot;할아버지가 혹시 전쟁이 나면 계룡산 인근으로 피란을 가라고 했어요. 거기에 가면 전쟁에도 안전하다고 정감록에 쓰여있다고요. 그 덕분인지 우리 가족은 전쟁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죠.&amp;quot;&lt;br&gt;&lt;br&gt;　그가 베트남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65년. 베트남전쟁에 파병을 준비하고 있던 정부가 당시 일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베트남어를 배우도록 했다. 그는 여기에 포함돼 1년 동안 매일 8시간씩 당시 주한베트남대사관 직원으로부터 베트남어를 지도받았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베트남어를 접한 &amp;#39;1세대&amp;#39;인 셈이다. 그는 2년 뒤 주베트남한국대사관에 영사로 파견돼 근무하면서 사이공사범대 야간학과에서 공부를 했다. 귀국한 그는 다시 라오스대사관을 거쳐 1975년 3월부터 베트남대사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lt;br&gt;&lt;br&gt;　불과 한달 뒤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전쟁이 끝났지만 안 교수는 베트남에서 탈출하지 못해 베트콩에 붙잡히고 말았다. 재판도 없이 감옥에 갇힌 그는 5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하루 두끼 식사의 배고픔과 언제 처형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협박 섞인 조사를 받기도 했다.&lt;br&gt;&lt;br&gt;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석방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때 양국 정부의 물밑 협상이 진행됐다. 1979년 말 한국에 돌아갈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amp;quot;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바람에 협상이 연기돼 석방이 미뤄지는 바람에 결국 이듬해 4월에야 고국의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습니다.&amp;quot;&lt;br&gt;&lt;br&gt;　어떻게 보면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도 않았을 듯 했던 베트남. 안 교수는 그러나 다시 베트남에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를 시작했다． 1989년에는 베트남경제연구소를 개설했다.&lt;br&gt; &lt;br&gt;　한국-베트남 외교관계가 재개되기 2년 전이던 1990년 그는 베트남을 방문했다. &amp;quot;정부에 베트남 방문 신청을 했더니 &amp;#39;5년간 수감됐던 사람의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amp;#39;며 허락을 해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베트남 외무장관에게 &amp;#39;베트남을 연구해 양국 경제협력에 기여하고 싶다&amp;#39;는 편지를 썼죠. 결국 초청장을 받아내 베트남을 갈 수 있었습니다.&amp;quot;&lt;br&gt;&lt;br&gt;　안 교수는 이후 베트남의 외국투자법 등을 분석해 국내 기업에 배포하는 등 양국 경제관계 회복에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3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amp;#39;한국기업들이 베트남 경제를 보다 잘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 기여했다&amp;#39;는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기도 했다. &amp;quot;베트남에서 5년간 수감생활했던 제가 베트남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해요.&amp;quot;&lt;br&gt;&lt;br&gt;　부산외대에 베트남어과가 생긴 것은 1991년의 일이다. 안 교수는 2년 뒤부터 강의를 맡았으니 이 학과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본 셈이다. 그가 가르친 많은 제자들이 지금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기업을 위해 일하고 있다.&lt;br&gt;&lt;br&gt;　&amp;quot;처음에는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다녔죠. KTX가 등장하면 그만둘 때라고 생각했는데 퇴임 시기가 늦어졌네요. 앞으로도 특강이나 여러 행사를 위해 부산을 자주 찾을 겁니다.&amp;quot;&lt;/strong&gt;&lt;/font&gt;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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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4 Dec 2009 11:06:42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 쓴 기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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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39;양심의 꽃&#39;으로 재기한 방기수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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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FONT-FAMILY:굴림체;&quot;&gt;&lt;strong&gt;&lt;img height=&quot;321&quot; alt=&quot;&quot; hspace=&quot;5&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b3/c8/leobusan/folder/11/img_11_1525_0?1258953690.jpg&quot; width=&quot;392&quot; align=&quot;left&quot; vspace=&quot;5&quot; border=&quot;0&quot;&gt;&lt;br&gt;&amp;nbsp;국제라이온스3660(부산)지구 현대라이온스클럽의 방기수(49) 회장. &lt;br&gt;&amp;nbsp;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부산상공회의소 뒷편에 자리잡은 나리꽃화원의 사장이다. &lt;br&gt;&amp;nbsp;올해로 화원을 운영한지 20년이 다 돼 간다.&lt;br&gt;&lt;br&gt;　화원 안은 각종 나무와 꽃, 난에서 풍겨나오는 냄새로 가득하다. 이 향기는 단순한 화초의 &amp;#39;아름다움&amp;#39;이 아니다. 방 회장이 살아왔고 현재 걷고 있는 인생의 길에서 솟아나오는 &amp;#39;삶의 냄새&amp;#39;라고 할 수 있다.&lt;br&gt;&lt;br&gt;　시골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온 방 사장은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했다. 겨우 기반을 다지나 싶었을 때 사업을 하다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그때 그가 재기를 위해 새롭게 시작한 일이 화원이었다. &amp;quot;사촌 형이 국선에 입선할 정도로 서예를 잘 했어요. 저도 어깨너머로 글쓰기를 배웠죠.&amp;quot;&lt;br&gt;&lt;br&gt;　방 회장은 꽃이나 난을 배달할 때 문구를 붙이는 모습에서 착안해 자신의 특기인 서예 솜씨를 살려 화원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생전 처음 시작한 화원 일은 힘들었다. &amp;quot;초기에는 업무를 잘 모르니까 배달 기사들이 &amp;#39;장난&amp;#39;을 치기도 하더군요.&amp;quot; 그는 중앙시장 꽃상가에 들어가 여러가지 일을 배워가며 화원 일을 익혀 나갔다.&lt;br&gt; &lt;br&gt;　꽃집을 오래 하다보니 웃지못할 일도 적지 않았다. &amp;#39;근조&amp;#39;라고 글을 써야 할 리본에 아무런 생각없이 &amp;#39;축하&amp;#39;라고 문구를 적어보내 심하게 항의를 받기도 했다. 상갓집에 &amp;#39;축 발전&amp;#39;이라고 적힌 화환을 배달한 적도 있다고 한다. &amp;quot;10년 전 쯤입니다. 너무 바빠 하루에 배달할 양이 정말 많았어요. 기사가 실수로 예식장과 개업집에 갈 화환을 바꿔 전달해 난리가 난 적도 있습니다.&amp;quot;&lt;br&gt;&lt;br&gt;　화원을 운영하면서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방 회장이 화원을 처음 할 때 10만원 하던 &amp;#39;3단 화환&amp;#39; 가격이 지금은 오히려 7~8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amp;quot;일부 업체들이 한번 사용한 화환을 다시 수거해 꽃을 재활용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싸죠. 소비자들은 그것도 모르고 가격만 따지는 겁니다.&amp;quot;&lt;br&gt; &lt;br&gt;　하지만 방 회장은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한다. &amp;quot;3단 화환이 얼마냐고 묻는 전화가 와요. 10만원이라고 하면 아무 말도 그냥 끊어버려요. 설명도 하지 못하지만 어쩌겠어요.&amp;quot; 그는 성실과 신뢰로 화원을 지켜왔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 점을 인정받아 단골도 적지 않다고 한다.&lt;br&gt; &lt;br&gt;　화원에 파묻혀 살던 방 회장은 지난 1996년 아는 사람의 소개로 현대라이온스클럽에 가입했다. 1~3부회장을 거쳐 지난 7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amp;quot;우리 클럽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어요. 이런 때 회장을 맡아 어깨가 무겁기만 합니다.&amp;quot;&lt;br&gt;&lt;br&gt;　방 회장은 큰 사업체를 운영해 여유자금이 많은 &amp;#39;사장님&amp;#39;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봉사단체인 현대라이온스클럽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amp;quot;동구 지역의 한 초등학교와 1학교1클럽 자매결연을 맺어 지원하고 있습니다. 독거노인 등 불우이웃 돕기 활동도 다양하게 벌이고 있고요.&amp;quot; 그는 역시 봉사단체인 남구팔각회와 골든벨부산클럽에서도 오래 전부터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lt;br&gt;&lt;br&gt;　&amp;quot;회장을 맡아 일을 하니 가게를 자주 비우게 돼 애로가 적지 않죠. 그래도 다른 회원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재미로 어려움을 잊어요. 기회가 더 주어지고 능력이 된다면 봉사활동을 더 넓혀나가고 싶습니다.&amp;quot; &lt;/strong&gt;&lt;/fon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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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Nov 2009 14:21:31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 쓴 기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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