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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교회]]></title>
<description><![CDATA[새언약의 진리가 있는 산벗의 블로그 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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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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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수건규례] 예배 때 여자들이 수건을 쓰는 것이 성경적인가, 아닌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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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98 align=center border=0&gt;&lt;TBODY&gt;&lt;TR bgColor=#ffffff&gt;&lt;TD class=menu width=630&gt;예배 때 여자들이 수건을 쓰는 것이 성경적인가, 쓰지 않는 것이 성경적인가?&lt;BR&gt;&lt;BR&gt;1.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이유&lt;BR&gt;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신교에서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lt;BR&gt;&lt;BR&gt;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천주교회의 예배 형식을 따르는 게 아니냐고 따지기도 합니다. 이는 천주교에서 미사를 할 때, 여자 신도들이 ‘미사포’라고 하는 수건을 쓰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배 시에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쓰는 수건 규례는 천주교의 가르침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여자 성도들의 머리 수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lt;BR&gt;&lt;BR&gt;(1)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여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씁니다&lt;BR&gt;여자 성도들이 예배드릴 때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수건 문제 설명에 앞서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임을 천명하였습니다. &lt;BR&gt;&lt;BR&gt;고린도전서 11:1~2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lt;BR&gt;&lt;BR&gt;바울이 가르치는 모든 내용이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을 본 받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대체 어떤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서두에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신을 본받는 자 되라고 강조하는 것일까요? 3절부터의 내용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lt;BR&gt;&lt;BR&gt;고전 11:3~5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lt;BR&gt;&lt;BR&gt;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기도할 때 여자는 머리를 가리고 남자는 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기도할 때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여자가 수건을 쓰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마치 머리를 밀어버린 것 같은 부끄러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lt;BR&gt;&lt;BR&gt;“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고전 11:6~10)는 바울의 부연 설명을 볼 때 여자들이 수건을 써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lt;BR&gt;&lt;BR&gt;(2) 창조의 섭리를 볼 때, 여자 성도들은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 &lt;BR&gt;사도 바울은 창조의 이치를 통해서 보더라도 여자 성도들이 수건을 써야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lt;BR&gt;&lt;BR&gt;고전 11:7~10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lt;BR&gt;&lt;BR&gt;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하와보다 먼저 지으신 것과 그리고 아담을 돕게 하기 위해 하와를 지으신 것이 하나님의 크신 섭리임을 말하고 그러므로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말고 여자는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사실을 하늘의 천사들이 보고 있으니 여자는 권세 아래 있는 표로 수건을 그 머리에 두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공동번역, 현대인의성경, 현대어성경 참조). &lt;BR&gt;&lt;BR&gt;(3) 사람에게 주신 본성을 볼 때도 여자들은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lt;BR&gt;바울은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고전 11장 13절)라고 묻습니다.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바울이나 당시 초대 교회의 입장에서는 전혀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인간의 본성을 들어 수건 규례를 설명하였습니다. &lt;BR&gt;&lt;BR&gt;고전 11:14~16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lt;BR&gt;&lt;BR&gt;바울은 남자의 머리가 길면 자신에게 욕이 되고 반대로 여자는 머리가 길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는 본성을 통해 하나님께서 남자에게는 머리를 가리지 않으려는 본성을, 여자에게는 머리를 가리려는 본성을 주셨음을 말하고 이러한 본성을 통해 볼 때도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말아야 하고 여자는 머리를 가려야 함을 역설한 것입니다. &lt;BR&gt;이와 같은 확실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으려 변론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수건을 쓰지 않는 규례는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참고로 다른 번역본들을 보겠습니다. &lt;BR&gt;&lt;BR&gt;현대어성경 고린도전서 11:13~16 “여러분은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공중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혹시 여자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가리려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남자는 긴 머리를 수치로 여기지만 여자는 긴 머리를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공중 앞에 예언하거나 기도할 때 반드시 머리를 가리십시오. 이것은 모든 교회의 일치된 의견입니다.”&lt;BR&gt;&lt;BR&gt;현대인의성경 고전 11:13~16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여러분은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만일 남자가 긴 머리를 하고 다니면 그것이 자기에게 수치가 된다는 것을 본성이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자의 긴 머리는 자기에게 자랑이 됩니다. 그것은 여자의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어떤 사람이 이 일에 대하여 문제를 삼는다 하여도 우리에게와 하나님의 교회에는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기도하거나 말씀을 전하는 그런 관습이 없습니다.”&lt;BR&gt;&lt;BR&gt;본문 내용 중 “우리에게와 하나님의 교회에는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기도하거나 말씀을 전하는 그런 관습이 없습니다.”라고 한 말씀은 초대교회의 예배 규범을 설명한 것으로, 당시 고린도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교회의 여자 성도들이 수건으로 머리를 가리고 예배 드렸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lt;BR&gt;&lt;BR&gt;(4) 성경 소제목에 나타난 여자의 머리수건&lt;BR&gt;여러 성경 번역본 중에는 본문의 중심되는 내용을 발췌하여 소제목을 붙인 경우가 있는데 고린도전서 11장에 기록된 여자들의 수건 규례에 대해서 소제목을 붙인 번역본들을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lt;BR&gt;공동번역성경 - 여자가 머리를 가리워야 하는 이유&lt;BR&gt;현대어성경 -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lt;BR&gt;개역개정판 - 여자가 머리를 가리는 것&lt;BR&gt;표준새번역 - 여자가 머리에 쓰는 너울&lt;BR&gt;TEV(Today English Version) - Covering the Head in Worship (예배 때 머리를 가리는 것)&lt;BR&gt;&lt;BR&gt;고린도전서 11:1~16까지의 내용은 소제목에 표현된 바와 같이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의 교회라면 성경의 가르침대로 여자 성도들은 예배드릴 때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백성의 본분이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과 같은 신앙 안에 거한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lt;BR&gt;&lt;BR&gt;2.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lt;BR&gt;가끔 카톨릭 사제들이 머리에 모자를 쓰는 것도 성경적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남자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이제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므로 다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lt;BR&gt;&lt;BR&gt;그러나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않아야 하고 여자는 머리를 가려야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점입니다. &lt;/TD&gt;&lt;TD width=34&gt;&amp;nbsp;&lt;/TD&gt;&lt;/TR&gt;&lt;TR bgColor=#ffffff&gt;&lt;TD colSpan=3 height=25&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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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9 Aug 2005 15:11:47 +0900</pubDate>
    <category><![CDATA[전도대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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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유월절] 고전 11장의 “주의 만찬” 이 유월절 만찬이 아니라는 주장의 반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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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FONT color=#737373&gt;고전 11장의 “주의 만찬” 이 유월절 만찬이 아니라는 주장의 반론 &lt;BR&gt;&lt;BR&gt;유월절을 무조건 반대하려는 사람들이 초대교회에 사도들이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만들어 낸 실소를 금치 못할 변명 중의 하나가 고전 11장 23절을 내용을 통해 ‘성경말씀에는 주의 만찬이라고 했지 유월절 만찬이라 되어있지 않았다’ 라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 마다 ’ 라는 성경 절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는 성만찬 예식을 아무 때나 해도 된다 ’ 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위 주장이 얼마나 비성경적인 주장인지 간단히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lt;BR&gt;&lt;BR&gt;고전 11: 23-27 의 내용 &lt;BR&gt;&lt;BR&gt;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lt;BR&gt;&lt;BR&gt;사도 바울이 고전 11장에 언급한 위 성경 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위 내용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과 포도주로 세우신 새 언약에 대한 것이며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에서 등장하고 있는 떡과 포도주를 떡과 포도주라 하지 않고 ‘이 떡’ ‘이 포도주’ 라 구체적으로 지목하여 표현한 것은 아무 날에 먹고 마시는 떡, 포도주가 아니라 바로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먹고 마셨던 새 언약으로 규정하신 특정 시간의 예식을 가리킨 증거이다. &lt;BR&gt;&lt;BR&gt;그러면‘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이’언제인가? 그 날은 다름아닌 유월절이다. &lt;BR&gt;&lt;BR&gt;&lt;BR&gt;눅 22:7의 내용 &lt;BR&gt;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 내가 고난 받기 전에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라 ..... 잔도 이와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lt;BR&gt;&lt;BR&gt;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은 유월절(성력 1월 14일 저녁)이다. 예수님은 그 날 만찬의 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살과 피로 언약하셨기에,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를 가리켜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다고 까지 강조하셨다. 분명히 말하지만 고전 11장의 ‘주의 만찬’은 예수께서 잡히시던 유월절 밤에 있었던 성만찬이다. &lt;BR&gt;&lt;BR&gt;그러므로 고전 11장에 ‘유월절’ 이란 단어가 없다고 해서 ‘주의 만찬’은 유월절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행하는 성찬식이란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인 유월절을 작정하고 훼방하려는 훼방꾼들의 조잡한 변명에 불과하다고밖에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다 하겠다. &lt;/FONT&gt;&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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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9 Aug 2005 15:11: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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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유월절] 초대교회가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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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98 align=center border=0&gt;&lt;TBODY&gt;&lt;TR bgColor=#ffffff&gt;&lt;TD class=menu width=630&gt;초대교회가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lt;BR&gt;&lt;BR&gt;&lt;BR&gt;신약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서 구원을 논하는 사람들 중에 아주 용감한 무리들이 있다. 아예 유월절 자체를 초대교회에서 지킨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에 대한 논리의 골자는 ‘신약시대 교인들이 유월절을 지켰다면 신약성경에 한 번이라도 유월절을 지키라는 명령이 있어야 하는데 그와 같은 기록이 없다’ 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도 없는 주장으로 이단들이나 하는 주장이라고 떠들어대곤 한다. 과연 이 말이 맞는 말일까?&lt;BR&gt;&lt;BR&gt;먼저 신약시대에 유월절 지킨 기록이나 지키라 명령하신 기록이 없다는 말부터가 엉터리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신 장면이 4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고, 초대 교회 사도들도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켰음을 성경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lt;BR&gt;&lt;BR&gt;마26장 17절에서 28절의 기록을 보면, &lt;BR&gt;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고 계심을 알 수 있다.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를 ‘내(예수)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라고 명시되어 있다. &lt;BR&gt;막14장 12절에서 25절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는 장면이 나와 있고, &lt;BR&gt;눅22장 7절에서 20절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을 지키시면서 ‘내(예수)가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라고 명시되어 있다.&lt;BR&gt;&lt;BR&gt;또한 &lt;BR&gt;고전5장 7절에서도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유월절)을 지키되...’ 하며 유월절을 지키고 있음을 성경기록을 통해 알려주고 있고, &lt;BR&gt;고전 11장 23절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께서 잡히시던 밤(유월절 밤)에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 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는 기록에도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유월절을 지키고 있음 확인할 수 있다.&lt;BR&gt;&lt;BR&gt;허두(虛頭)에 언급한대로 엉터리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위 제시한 성경구절에 ‘지키라’ 는 말이 어디 있는가? 하는 논리인가 본대, 답변하기도 유치하지만 위 구절들을 읽어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과 함께 지키셨고, 초대교회에도 사도들이 유월절 지키는 장면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키라’는 단어가 없다고 유월절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는 주장은 한마디로 목불식정(目不識丁)이라 하겠다.&lt;/TD&gt;&lt;TD width=34&gt;&amp;nbsp;&lt;/TD&gt;&lt;/TR&gt;&lt;TR bgColor=#ffffff&gt;&lt;TD colSpan=3 height=25&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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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9 Aug 2005 15:08:4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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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유월절] 사도들이 지키던 유월절이 325년에 폐지된 경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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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98 align=center border=0&gt;&lt;TBODY&gt;&lt;TR bgColor=#ffffff&gt;&lt;TD class=menu width=630&gt;사도들이 지키던 유월절이 325년에 폐지된 경위&lt;BR&gt;&lt;BR&gt;오늘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예수님께서 피로 세우신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기독교인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하시며 유월절을 새 언약으로 제정해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lt;BR&gt;&lt;BR&gt;그렇게 된 배경에는 325년 니케아에 개최된 종교회의가 있습니다. 교회사 및 세계사에 있어서 하나의 큰 획을 그은 니케아 회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재로 소집되었으며 당시로서는 처음 있는 세계적 종교 회의였습니다. 니케아 회의에서 유월절이 폐지되기까지의 경위를 성경과 교회사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lt;BR&gt;&lt;BR&gt;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맨 먼저 세워진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로, 복음 전파의 본산이며 모든 교회의 총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 의해 멸망한 후 사도들은 여러 이방 지역으로 흩어져 전도활동을 하였고,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세계의 수도 로마에 위치한 로마 교회의 주장이 점차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lt;BR&gt;&lt;BR&gt;로마 교회는 초기에 노예 등 하층민 신자가 주류를 형성했으나 점차 중류층이 입교하고 나중에는 귀족들까지 입교하게 되자 인근 교회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lt;BR&gt;&lt;BR&gt;150년경부터 로마 교회는 곁길로 나가기 시작하여 유월절을 거부하고 유월절 다음의 일요일(부활절)에 성찬식을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성력 1월 14일 저녁(목요일)에 유월절 성만찬을 하시고 다음날인 15일(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하셨습니다. &lt;BR&gt;&lt;BR&gt;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유언에 따라 1월 14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키고, 다음날인 15일에는 무교절을 지켜 금식하고, 또 무교절 후 일요일에는 부활절을 지켰습니다(사도행전 20:6∼7 참조). 그러나 로마 교회에서는 서로 다른 절기인 유월절과 부활절을 한 절기로 생각하고서 부활하신 일요일에 유월절 성만찬을 거행하는 풍습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lt;BR&gt;&lt;BR&gt;1차 유월절 논쟁&lt;BR&gt;로마 교회의 새로운 전통은 예수님 때로부터 1월 14일 저녁에 유월절 성만찬을 행해오던 타 지역 교회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55년경에는 로마 교회 지도자인 아니케터스와 서머나 교회 감독이던 폴리갑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사도 요한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폴리갑은 자신이 여러 사도들과 함께 매년 유월절을 지켜왔다고 하며 유월절이 예수님 때로부터 내려온 전승임을 강조하였습니다. &lt;BR&gt;&lt;BR&gt;2차 유월절 논쟁&lt;BR&gt;이후 197년경, 유월절 논쟁은 다시 촉발되었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 감독(오늘날의 교황)이었던 빅터는 유월절 성만찬을 1월 14일 저녁에 하지 말고 유월절 다음의 첫 일요일에 하라는 ‘도미닉의 규칙’을 여러 교회에 강요하여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서방 교회들은 로마 교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으나 사도시대로부터 유월절 성만찬을 1월 14일에 기념해 온 아시아 교회들은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lt;BR&gt;&lt;BR&gt;에베소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내 아시아 교회들을 지도했던 사도 빌립, 사도 요한, 그리고 여러 순교자들이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켰음을 말하고,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승을 따라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며, 유월절을 지켜야 함을 강한 논조로 설명하였습니다(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제5권 제24장 ‘아시아 교회들의 분쟁’ 참고). 빅터는 아시아 교회들을 비정통으로 몰아 파문하려 하였지만 여러 교회 지도자들의 만류로 파문 조치를 취소해야만 했습니다. &lt;BR&gt;&lt;BR&gt;니케아 회의에서 유월절 폐지&lt;BR&gt;그러나 이 분쟁의 불씨는 4세기에 다시 점화되었습니다. 4세기, 사단은 결국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재한 니케아 회의를 통해서 생명의 진리를 없애버렸습니다. 325년 5∼6월 니케아 지방에서 열린 이 종교회의에서는 로마 교회의 주장대로 유월절을 폐지시키고 부활절만을 지키기로 결정하였으며, 부활절 날짜는 춘분 후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로 정했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을 폐지시켜 버렸기 때문에 성경에 정해진 날짜(무교절 후 첫 일요일)대로 부활절을 지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lt;BR&gt;&lt;BR&gt;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던 교회들은 이후 로마 교회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간주되어 박해를 당했습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은 사막이나 산중, 동굴에 숨어서 유월절을 지켜야 했습니다. &amp;lt;교회사 초대편&amp;gt;(283쪽)에는 “콘스탄틴 대왕의 힘으로 교회에 평화가 찾아온 후로 교회의 수준이 갑자기 저하된 것을 한탄하여 광야의 금욕 생활에 나간 사람들이 허다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lt;BR&gt;&lt;BR&gt;이렇게 새 언약 유월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예언대로 사단이 하나님의 때와 법을 바꾸고 일시적인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다니엘 7:25). 이후로도 사단의 세력은 성경에 없는 교리와 우상을 교회 안에 하나씩 끌어들였습니다.&lt;/TD&gt;&lt;TD width=34&gt;&amp;nbsp;&lt;/TD&gt;&lt;/TR&gt;&lt;TR bgColor=#ffffff&gt;&lt;TD colSpan=3 height=25&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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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9 Aug 2005 15:08:17 +0900</pubDate>
    <category><![CDATA[전도대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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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유월절]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성경적인가, 지키지 않는 것이 성경적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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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98 align=center border=0&gt;&lt;TBODY&gt;&lt;TR bgColor=#ffffff&gt;&lt;TD class=menu width=630&gt;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성경적인가, 지키지 않는 것이 성경적인가?&lt;BR&gt;&lt;BR&gt;‘유월절’ 하면 조금은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의 성경적 표현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유월절을 생소하게 여기는 이유는 카톨릭과 개신교 대부분 교단들이 유월절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lt;BR&gt;&lt;BR&gt;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성도들에게 유월절은 참으로 중요한 예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밤인 유월절에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떡과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피로 인쳐 주시고 새 언약을 세워주셨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키며 이날 성찬식을 행했습니다. &lt;BR&gt;&lt;BR&gt;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에서는 왜 유월절을 지키지 않을까요? 이는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유월절을 폐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먼저 성경에 기록된 유월절에 대해 살펴본 후에 성경의 가르침인 유월절을 비판하는 자들의 주장과 그 거짓됨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lt;BR&gt;1. 유월절의 유래 &lt;BR&gt;유월절은 구약 모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출애굽하던 때에 처음 제정된 절기입니다. 야곱 때에 애굽으로 이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가 되어 400여년 동안 심한 고초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고 바로(애굽의 통치자; 파라오)에게 나아가 그들을 놓아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바로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중에 열 번째 재앙이 애굽의 장자를 멸하는 재앙이었습니다. &lt;BR&gt;&lt;BR&gt;하나님께서는 열 번째 재앙을 내리는 날을 (성력) 1월 14일로 정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날 저녁 1년 된 양을 잡아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고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날 밤에 애굽에 재앙이 내리니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죽었습니다.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위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 그리고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다 죽었지만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재앙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유월절 양의 피가 표적이 되어 재앙을 내리는 사자가 그 집을 넘어 지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lt;BR&gt;&lt;BR&gt;유월절의 유월(逾越)은 ‘넘어 건너간다’는 뜻으로 재앙이 넘어간다는 말입니다(출 12:5~ 14). 유월절로 인해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게 되었습니다(출 12:29~32). 역사적인 ‘출(出)애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신 여호와의 권능을 기억하기 위하여 매년 1월 14일 저녁에 일년 된 어린양을 잡아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신 16:1~3). &lt;BR&gt;&lt;BR&gt;2. 유월절 양의 실체는 누구인가? &lt;BR&gt;그런데 어떤 이들은 “왜 구약의 절기인 유월절을 신약시대인 오늘날에 굳이 지켜야 하는가?”라며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lt;BR&gt;&lt;BR&gt;신약시대의 성도들은 구약의 유월절이 아닌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킵니다. 성경은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히 10:1) 하였습니다. 과연 구약은 신약에 이루어질 것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인데 구약의 유월절은 모형이고 신약의 유월절이 실물입니다. &lt;BR&gt;&lt;BR&gt;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고전 5:7~8)라고 하였습니다. 구약 유월절 양의 참형상은 신약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lt;BR&gt;&lt;BR&gt;원래 유월절 양은 “흠 없고 1년 된 수컷”(출 12:5)이고 “그 뼈를 하나도 꺾지 않고”(출 12:46, 민 9:12) 잡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양인 예수께서 십자가에 희생당하실 때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으셨습니다. &lt;BR&gt;&lt;BR&gt;기록되기를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2~34) 하였고,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요 19:36)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신 것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lt;BR&gt;&lt;BR&gt;그래서 사도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유월절 양이라 하였고(고전 5:7),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벧전 1:19)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유월절 양이 흠 없는 어린양이었던 것도 신약의 흠 없고 점 없는 순결한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를 표상한 것입니다. &lt;BR&gt;&lt;BR&gt;그러므로 이제는 유월절 양의 실체이신 그리스도와 새 언약 유월절의 관계를 깊이 연구함으로써 유월절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깨달아야 합니다. &lt;BR&gt;&lt;BR&gt;3. 죄악에서 해방시키신 유월절 양 그리스도 &lt;BR&gt;예수께서 유월절 양의 실체가 되셨다면 유월절 양으로서 예수께서 이루신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lt;BR&gt;&lt;BR&gt;구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 되었던 애굽에서 해방 받아 나온 역사는 모형이고 신약시대에 죄로 인해 사망의 종 되었던 하나님 백성들이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는 것이 실물입니다. &lt;BR&gt;&lt;BR&gt;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18~21) 하셨습니다. &lt;BR&gt;&lt;BR&gt;이 말씀은 예수께서 죄악의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주려고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하셨습니다(요 8:31~36).&lt;BR&gt;&lt;BR&gt;이렇듯 성경은 애굽의 포로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월절 양을 통해 해방시켰던 구약 역사를 그림자로 하여, 죄악의 포로된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의 피로 해방시키는 참 형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lt;BR&gt;&lt;BR&gt;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lt;BR&gt;&lt;BR&gt;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유월절)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lt;BR&gt;&lt;BR&gt;유월절의 중요한 의미는 애굽에서 해방된 구약의 역사가 아니라, 예수께서 흠 없고 점 없는 유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셨고 그 희생의 피로 인해 죄악의 종노릇하던 우리가 해방을 받은 신약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곧 유월절의 참형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lt;BR&gt;&lt;BR&gt;고린도전서 5:7~8 “우리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유월절)을 지키되…”&lt;BR&gt;&lt;BR&gt;바울이 지키라 한 유월절이 구약의 유월절이겠습니까, 신약의 유월절이겠습니까? 본문에 분명히 “우리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하였으니 신약의 유월절을 가리킨 것이 분명합니다. &lt;BR&gt;&lt;BR&gt;신약시대의 성도들이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죄에서 종노릇하던 우리들을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그의 권능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lt;BR&gt;&lt;BR&gt;4. 새 언약 유월절은 어떻게 지키는가?&lt;BR&gt;그럼 신약의 유월절은 어떻게 지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일까요? 예수께서는 유월절인 1월 14일에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마 26:17~ 18) 하셨습니다. &lt;BR&gt;&lt;BR&gt;그리고 저녁 때 즉 유월절 먹을 때에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포도주가 든 잔을 가지고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하셨습니다. &lt;BR&gt;&lt;BR&gt;예수께서는 당신의 살을 상징하는 떡, 그리고 당신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제물로 하여 지키는 유월절을 본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유월절은 예수께서 본보여주신 대로 성력 1월 14일 저녁에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는 떡과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로 성만찬을 하는 것입니다. &lt;BR&gt;그런데 예수님의 살과 피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기에 당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유월절에 먹고 마시라고 하셨을까요? &lt;BR&gt;&lt;BR&gt;요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lt;BR&gt;&lt;BR&gt;신약의 유월절은 유월절 양의 실체로서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백성들에게 죄 사함 즉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 절기입니다. 죄의 포로가 되어 사망만을 기다리는 당신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살리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제정해 주신 절기이니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는 영혼들은 마땅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 언약 유월절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lt;BR&gt;&lt;BR&gt;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 22:14~15) 하셨고 또 “이 잔(유월절의 포도주)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하셨습니다. &lt;BR&gt;&lt;BR&gt;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오히려 그 가르침을 부정한다면 어찌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신약시대의 유월절은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해 주신 규례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피로 제정된 새 언약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킴으로써 우리를 죄악에서 해방시키신 유월절 양 그리스도의 권능을 기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lt;BR&gt;&lt;BR&gt;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하셨습니다. 천국을 소망하고 영생 얻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새 언약 유월절을 지켜야 합니다. &lt;/TD&gt;&lt;TD width=34&gt;&amp;nbsp;&lt;/TD&gt;&lt;/TR&gt;&lt;TR bgColor=#ffffff&gt;&lt;TD colSpan=3 height=25&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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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9 Aug 2005 15:07:22 +0900</pubDate>
    <category><![CDATA[전도대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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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안식일] 초대교회가 일요일에 예배하고 연보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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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개신교에서는 로마 카톨릭이 교회의 권위로 성경에 없는 일요일에 예배하는 것을 정하였고, 그것을 프로테스탄트 (개신교) 가 그대로 받아드린 것이라는 천주교의 설명과 달리 개신교가 일요일에 예배하는 것은 카톨릭에서 바꾼 것을 그대로 받아드린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당시부터 일요일에 예배하였기 때문에 일요일 예배 준수의 사도들의 신앙을 그대로 전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로 고전16장 2절의 내용을 들어 설명하고 있고 대다수 개신교회 신도들은 위 구절이 일요일 예배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이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 구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lt;BR&gt;&lt;BR&gt;고전16장 2절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lt;BR&gt;&lt;BR&gt;과연 위 구절이 일요일에 예배한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내용을 잘 보면, ‘매 주일 첫 날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오히려 일요일 예배에 연보한 것이며 초대교회 당시 바울(위 글의 저자)을 포함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대인의 안식일(토요일)예배에서 일요일 예배로 옮겨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해석이라 하겠다.&lt;BR&gt;&lt;BR&gt;우선, 천주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공동번역 성서를 보면, 고전16장 2절의 말씀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특별헌금에 대한 내용’ 이라고 소제목이 붙어 있다. 다시 말하면 한 주(週)마다 드리는 정규 예배를 통한 연보(헌금)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재정난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한 특별헌금 모금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로 알린 것으로 사도 바울은 특별헌금 모금에 관한 은혜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lt;BR&gt;&lt;BR&gt;성구의 내용을 조금 자세히 설명을 해보면, &lt;BR&gt;&lt;BR&gt;‘매주일 첫날 너희 각 사람이 이(利)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라’ 는 말씀은 매 주 첫날 즉 일요일에 일을 하여 얻은 이익금(수익)을 특별헌금 몫으로 떼어 저축하여 두라는 말씀이며 이 내용을 통해 사도 바울이 복음 전도를 하고 다녔던 초대 교회에는 오히려 매주의 첫 날,일요일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날이 아닌 생계를 위한 일하는 날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으로 오히려 일요일은 초대교회 당시 예배의 날이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lt;BR&gt;&lt;BR&gt;‘내가 갈 때에 연보하게 하지 말라’ 라는 말씀은 사도 바울이 모금된 특별헌금을 인수하러 고린도 교회에 도착했을 때 교인들이 허둥지둥 특별헌금(연보)을 준비하는 은혜롭지 못한 상황이 되지 않길 바라는 표현인 것이다. &lt;BR&gt;&lt;BR&gt;결론적으로 말하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매 주일 첫 날, 즉 일요일에 노동을 통해 얻은 이익금을 재정난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교회의 특별헌금으로 은혜롭게 저축하여 두고 있으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도착하여 준비된 연보를 은혜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말씀이지 결단코 초대교회 당시 일요일에 예배하고 연보한 것이 아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안식일 토요일 예배의 구절은 일부로 다 피해버리고 일요일이라는 용어 즉 첫 날 이란 표현이 신약성서에 등장한 몇 구절마다 어떻게 하면 일요일에 예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개신교의 억지스런 성경 해석에 실소를 금지 못하겠다.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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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9 Aug 2005 14:57:48 +0900</pubDate>
    <category><![CDATA[전도대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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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안식일] 로마 미트라교의 제일이었던 일요일이 기독교에 유입된 유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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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FONT color=#737373&gt;로마 미트라교(태양신교)의 제일이었던 일요일(Sunday)이 기독교에 유입된 유래&lt;BR&gt;&lt;BR&gt;성경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많은 기독교에서는 일요일에 예배하고 있을까요? 이는 2세기경에 로마교회(천주교)가 로마 태양신교의 제일인 일요일(Sunday)을 예배일로 받아들였으며 A.D. 321년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일요일에 쉬게 하는 일요일 휴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로마 태양신교의 제일(祭日)이던 일요일이 기독교의 예배일로 바뀌게 된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lt;BR&gt;&lt;BR&gt;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부흥하던 기독교는 유대에서 가까운 소아시아 지역으로, 이어서 마케도니아와 로마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로마 종교와의 마찰이었습니다. 로마는 국교가 다신교라 대체적으로 모든 종교에 대해 관대하였지만 몇몇 황제는 자신을 신(神)으로 숭배할 것을 명하여 유일신앙인 유대교나 기독교와 마찰을 빚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lt;BR&gt;&lt;BR&gt;그리고 어떤 경우는 기독교에 대한 몰이해―예를 들면 성찬식을 오해하여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바라봄―와 여러 신을 섬기던 그들의 관점에서 오직 예수님만을 신으로 섬기는 고집스럽고 편협한 종교라는 시각이 기독교에 핍박을 가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lt;BR&gt;&lt;BR&gt;네로, 도미티아누스, 하드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등 폭군들로부터 핍박을 받을 때 로마의 기독교도들은 카타콤(지하 분묘)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는 등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았지만, 핍박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왔을 때에는 로마의 종교와 어울리려 하고 좀더 편안한 신앙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급기야는 하나님의 계명도 소홀히 여기게 되고 이방 종교의 축제에 참석하고 그들의 축제일을 받아들이기도 하였는데 그 한 예가 일요일 예배입니다. &lt;BR&gt;&lt;BR&gt;일요일은 로마 미트라교(태양신교)의 태양 숭배일(Sunday)이었습니다. 미트라교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파생된 종교로 기원전 1세기경에 로마에 들어왔습니다. 태양신 미트라는 ‘정복 불가능한 신’ 또는 ‘불멸의 젊은 신’으로 묘사되어 주로 군인 층에서 열렬히 신봉하였는데 이후 귀족과 황실에서 받아들여 제국과 황제의 수호신으로 격상되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에 전파되었을 무렵에는 이 미트라교가 로마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가 되어 있었습니다. &lt;BR&gt;&lt;BR&gt;로마 교회는 2세기부터 미트라교의 ‘태양 숭배일’인 일요일을 받아들임으로써, 기독교를 유대교와 동일시하는 로마인들의 의혹의 눈초리를 피하고자 했습니다. 로마 황실은 유대교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제국의 여러 식민지 중에서 가장 통치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유대인들이 로마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lt;BR&gt;&lt;BR&gt;그런데 유대인들의 안식일과 기독교인들의 안식일은 동일한 일곱째 날이었고, 이로 인해 로마인들의 관점으로는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이러한 오해를 면하기 위해 로마 교회의 신자들은 결국 유대교의 안식일과 다른, 미트라교의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을 기독교의 성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lt;BR&gt;&lt;BR&gt;이렇게 해서 2세기경에 로마 미트라교의 태양숭배일이 로마 교회의 예배일로 둔갑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교회사 101쪽, ‘제2기 사도 후 시대(100-313년)’, 이건사 발행, 송낙원 지음 &lt;BR&gt;“예배의 시기로는 주(週) 예배로서 안식일 예배가 이 시기까지 계속되었으나, 말기에 점차로 주의 첫날 즉 일요일로 대용케 되었다.”&lt;BR&gt;&lt;BR&gt;2세기경에 일요일 예배를 받아들인 것은 로마 교회와 그 영향력 아래 있는 일부 교회였지 모든 교회가 이를 용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들은 미트라교의 태양신 숭배일을 2세기부터 예배일로 받아들였지만 동방 교회들은 321년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이 내려질 때까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lt;BR&gt;&lt;BR&gt;교회사 145쪽, 세종문화사 발행, 김의환 박사 감수 &lt;BR&gt;“콘스탄틴 대제는 처음으로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 정무와 사법의 일을 쉬게 하고 이어서 이날에는 군대의 조련, 공연물의 관람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의 제도를 그대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동방에 있어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서 지켰다.” &lt;BR&gt;&lt;BR&gt;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기독교는 대전환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고 점차 기독교를 옹호하는 정책을 펼쳐나갔습니다. &lt;BR&gt;&lt;BR&gt;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우대했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라는 로마 종교계의 최고 제사장 직위를 소유했으며 그가 가장 좋아했던 불멸의 태양신 미트라와 그리스도를 동일한 신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순수한 기독교인이 아니라, 정치적인 입장에서 제국 전체를 하나로 묶어줄 종교로 기독교를 택했던 것입니다. &lt;BR&gt;&lt;BR&gt;이러한 사상을 가진 황제가 321년 3월 7일 내린 법령이,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Sunday)에 쉬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교회사 핸드북」144쪽, 생명의 말씀사 발행). &lt;BR&gt;&lt;BR&gt;황제의 칙령 속에 나타난 ‘존엄한 태양의 날’이라는 표현을 볼 때, 일요일 휴업령은 로마의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미트라교도들을 배려한 칙령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미트라교도들도 이 칙령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일요일 휴일 제도와 일요일 예배의 유래가 되었습니다.&lt;BR&gt;&lt;BR&gt;교회사 초대편 193쪽, 1981년 10월 대한기독교서회 발행&lt;BR&gt;“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진 것은 321년에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규정한 법령을 내린 것이다. 이 법령은 주의 날을 이교의 제전일(祭典日)과 동등한 수준의 절기로 인정한 것이며, 일요일은 일을 중지하는 것으로 그 특색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 날은 어떠한 그리스도교적인 명칭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만 단순히 참된 경일(慶日)이라고만 불리웠는데 여기에 대하여 이교도들이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lt;BR&gt;&lt;BR&gt;321년의 일요일 휴업령은 로마 교회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로마 교회와 그 영향력 아래 있었던 일부 교회들만이 이교도들의 제일인 일요일 예배를 따랐지만 일요일 휴업령은 제국의 모든 신민이 일요일에 쉬도록 강제함으로써 안식일을 준수해오던 동방의 교회들까지 로마 태양신교에 굴복케 하였습니다. &lt;BR&gt;&lt;BR&gt;과거 황제들의 기독교 박해가 기독교를 더욱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우대 정책은 오히려 기독교를 이방 종교와 혼합하여 변질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lt;BR&gt;&lt;BR&gt;현재 카톨릭과 개신교에서는 성경의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이교도의 제일이었던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lt;/FONT&gt;&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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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2 Aug 2005 20:26:43 +0900</pubDate>
    <category><![CDATA[전도대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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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안식일] 요일 제도의 기원은 언제부터일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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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요일 제도의 기원은 언제부터일까 &lt;BR&gt;&lt;BR&gt;오늘날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 토요일로 구분되는 요일 제도는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lt;BR&gt;한 주간을 7일로 나누어 생활한 기원은 성경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신 창세기의 기록이 그 기원입니다. &lt;BR&gt;&lt;BR&gt;기원전 7세기경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사람들은 매월 7일, 14일, 21일, 28일에 쉬는 주(週) 7일 제도를 시행하였는데 현재와 같이 일요일이니, 월요일이니 하는 요일명이 붙게 된 동기는 로마 콘스탄틴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입니다. 그는 수백 년 전에 로마의 시이저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을 보완하여 7일이 기본이 되는 주(週) 제도의 개념을 도입하고 태양신의 날(Sunday)을 첫째 날로 정하여 휴일로 선포하였습니다.&lt;BR&gt;&lt;BR&gt;콘스탄틴 황제는 기독교의 주 7일 제도와 로마의 일곱 행성 신들의 이름을 혼합시켜 요일명을 정하였습니다. 일곱 행성 신들은 ‘토성의 신, 목성의 신, 화성의 신, 태양의 신, 금성의 신, 수성의 신, 달의 신’등이었는데 이는 일곱 개의 행성이 지구를 돌며 시간을 다스린다고 믿은 점성가들의 사상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지동설(地動說)이 아직 세상에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점성가들은 천동설(天動說) 사상 속에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lt;BR&gt;&lt;BR&gt;점성가들은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운행한다고 생각한 토성으로부터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그리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구를 돌고 있다고 생각한 달 등 일곱 별의 신(神)이 시간을 다스린다고 생각하였습니다.&lt;BR&gt;&lt;BR&gt;또한 그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각 별의 신들이 시간들을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점괘를 내는데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토성의 날’의 첫 시간은 토성의 신(神)이 다스린다고 생각하고 다음 시간은 순서에 따라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의 신(神)이 순서대로 다스린다고 생각하였고, 여덟 번째 시간은 다시 토성의 신, 목성의 신, … . &lt;BR&gt;&lt;BR&gt;이렇게 해서 토성의 날 24시간이 모두 지나면 다음 날의 첫 시간은 순서에 따라 태양의 신이, … 마지막 시간은 수성의 신이 다스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lt;BR&gt;&lt;BR&gt;&lt;BR&gt;&lt;BR&gt;위의 도표와 같이 진행하여 매 날의 첫 시간을 주관하는 신의 이름을 붙여, ‘달의 신이 다스리는 날’, ‘화성의 신이 다스리는 날’, ‘수성의 신이 다스리는 날’, … ‘금성의 신이 다스리는 날’ 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lt;BR&gt;&lt;BR&gt;그러니까 그들이 정한 순서대로 볼 때, ‘수성 신(神)의 날’ 다음은 ‘목성 신(神)의 날’이 되었으며 다음 날은 ‘금성 신(神)의 날’이 되었습니다. 일곱 별의 신들은 늘 교대로 각 날들을 차례로 주관하는 것으로 믿어졌습니다. 이러한 고대 점성가들의 사상이 로마의 점성가들에까지 이어져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요일제도를 제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lt;BR&gt;&lt;BR&gt;콘스탄틴은 유대력에 기초한 기독교의 ‘주 7일 제도’를 로마의 달력에 접목시키며 기독교의 첫째 날을 로마인들의 태양신의 날(Sunday;일요일)로 부르게 하고 그 날을 휴일로 정하는 법령을 선포하였습니다(주후 321년 3월 7일). &lt;BR&gt;&lt;BR&gt;이렇게 하여 태양신을 숭배하는 미트라교도들을 배려하였습니다. 그리고 순서에 따라 둘째 날은 월요일, 셋째 날은 화요일, 넷째 날은 수요일, 다섯째 날은 목요일, 여섯째 날은 금요일, 그리고 일곱째 날은 토요일로 부르게 한 것입니다.&lt;BR&gt;&lt;BR&gt;정리해 보자면 태양신의 날인 일요일을 한 주간의 첫날로 정한 ‘칠요일 제도’는,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의 주 7일 제도를 기본 골격으로 하여 각 날에다 로마의 일곱 행성신의 이름을 붙여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 토요일로 부르게 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한 주의 첫째 날을 일요일로 부르기로 하고 일곱째 날을 토요일로 부르게 한 것입니다.&lt;BR&gt;&lt;BR&gt;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중에 일을 쉬는 날이 일요일이어서 일요일을 일곱째 날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일요일은 한 주의 첫째 날이요, 일곱째 날은 토요일입니다.&lt;BR&gt;&lt;BR&gt;요일 제도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유는 요일 제도 그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히 지키라’ 명하신 제 칠일 안식일이 지금의 요일 제도 속에서 어떤 요일인가를 정확히 알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그 일곱째 날이 지금의 요일 제도로는 토요일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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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9 Aug 2005 15:09:4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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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안식일] 성경의 안식일은 무슨 요일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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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FONT color=#737373&gt;성경의 안식일은 무슨 요일인가? &lt;BR&gt;&lt;BR&gt;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되는 날 안식(安息)하신 일을 기념하기 위한 ‘창조주의 기념일’로써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lt;BR&gt;&lt;BR&gt;창세기 2:1~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lt;BR&gt;&lt;BR&gt;안식일 준수가 성문화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인 모세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 되었던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실 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시며 십계명 중에 넷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명하셨습니다.&lt;BR&gt;&lt;BR&gt;출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lt;BR&gt;&lt;BR&gt;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lt;BR&gt;그런데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일곱 째 날 안식일은 지금의 요일 제도상 무슨 요일에 해당할까요? &lt;BR&gt;살아가다 보면 극히 기초적이고 일반적인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을 말입니다. &lt;BR&gt;&lt;BR&gt;‘주(週)의 일곱 째 날은 무슨 요일인가?’ 하는 내용도 그 중 한 가지입니다. 우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을 하고 나서 일요일에 쉽니다. 학교와 직장,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그러하다보니 월요일을 주(週)의 첫날로 생각하고 일요일을 일곱째 날로 단정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의 세계를 조금만 생각해보면 모순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lt;BR&gt;&lt;BR&gt;◆ 달력 - 달력에 기재된 요일을 보면 한 주의 첫째 날은 일요일이며 일곱째 날은 토요일입니다.&lt;BR&gt;&lt;BR&gt;◆ 주말 - ‘주말(週末)은 무슨 요일인가?’ 라고 질문하면 ’토요일‘이라고 답합니다. 토요일이 한 주의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주의 시작인 첫째 날은 당연히 일요일입니다. &lt;BR&gt;&lt;BR&gt;◆ 국어사전 - 국어사전을 찾아보더라도 일요일은 ‘칠요일의 첫째 날’로 되어 있고, 토요일은 ‘칠요일의 하나. 일요일로부터 일곱째 날, 주말(週末)’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lt;BR&gt;&lt;BR&gt;◆ 천주교 교리책 &lt;BR&gt;― 일요일 예배를 맨 처음 도입했던 카톨릭(천주교)의 교리책 ‘교부들의 신앙’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lt;BR&gt;&lt;BR&gt;교부들의 신앙 108쪽, 가톨릭 출판사 발행, 기본스 추기경 지음&lt;BR&gt;“실상 성서에는 (천주교의) 신조 전부가 들어 있지도 않고 거기에서 신자가 준수해야 할 세부 조목 전부를 찾아낼 수도 없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의 예를 보자. 이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의 하나이지만 성서에서는 그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성서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은 아니다.” &lt;BR&gt;&lt;BR&gt;역시 카톨릭(천주교)의 교리책 ‘억만인의 신앙’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lt;BR&gt;&lt;BR&gt;억만인의 신앙 200쪽, 가톨릭 출판사 발행, 존 오브라이언 신부 지음&lt;BR&gt;“나는 성서를 창세기 첫 장부터 묵시록 끝 장까지 다 읽어보았지만 주일(일요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구절은 발견하지 못했다. 성서에 기록되어 있기는, 한 주일의 첫날인 일요일을 지키라 하지 않고 마지막 날인 토요일을 지키라고 되어 있다.” &lt;BR&gt;&lt;BR&gt;◆ 성경 - 일곱째 날 안식일이 토요일이라는 가장 확실히 증명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록한 대목에서 안식일이 토요일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lt;BR&gt;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에 부활절을 지키는데 이는 예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을 가리켜 성경에는 ‘안식 후 첫날’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lt;BR&gt;막 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lt;BR&gt;&lt;BR&gt;이 부분을 공동번역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lt;BR&gt;&lt;BR&gt;마르코 16:9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lt;BR&gt;&lt;BR&gt;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이이며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토요일) 다음날인 일요일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이 아닙니다. &lt;/FON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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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9 Aug 2005 15:12: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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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교회 - 십자가 숭배는 우상숭배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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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48 border=0&gt;&lt;TBODY&gt;&lt;TR height=80&gt;&lt;TD width=400 height=80&gt;&lt;FONT size=4&gt;&lt;B&gt;십자가 숭배는 우상숭배 &lt;/B&gt;&lt;/FONT&gt;&lt;/TD&gt;&lt;TD height=80&gt;&lt;/TD&gt;&lt;/TR&gt;&lt;TR&gt;&lt;TD colSpan=2&gt;밤중에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면 높이 솟아 붉은 네온사인을 발하는 십자가가 많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게 된다. &lt;BR&gt;&lt;BR&gt;철탑을 높게 세우고 그 위에 십자가를 세워 밤이면 현란한 빛을 발하게 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교회들이 이를 아깝게 여기지 않고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십자가가 있어야만 정통 기독교라는 사상과 그 십자가 형상을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발원한 것이라 여겨진다.&lt;BR&gt;&lt;DIV&gt;옛날에는 서양 귀신인 드라큘라가 나타나면 십자가를 내밀어 쫓아낸다는 미신이 널리 퍼져 있었다. &lt;BR&gt;&lt;BR&gt;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십자가를 악귀를 쫓는 부적이나 호신용으로 생각하여 집안에 두거나 승용차 앞유리에 걸어두기도 하고, 목걸이나 귀걸이를 하기도 한다.&lt;BR&gt;&lt;/DIV&gt;&lt;DIV&gt;어떤 이들은 앞 뒤 가리지 않고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이단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한다.&lt;BR&gt;&lt;BR&gt;&lt;IMG height=411 hspace=10 src=&quot;http://www.melchizedek.co.kr/dic1/19ho/images/doseo_cho_19_1.gif&quot; width=198 align=left vspace=10 border=0&gt;이번 호에서는 십자가 숭배가 과연 성서적인지 비성서적인지, 십자가가 어떤 종교들에서 숭배되고 있었는지, 그리고 십자가와 십계명 가운데 ‘무슨 우상이든지 섬기지 말라’는 둘째 계명과의 관계에 대해 정리해 보고, 교회사에서 드러난 십자가 숭배의 역사와, 그에 대한 사도들의 사상과 초대교회 진리를 알아보도록 하겠다.&lt;BR&gt;&lt;/DIV&gt;&lt;DIV&gt;첫째, 십자가 숭배가 비성서적이라는 면부터 지적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교회 내부에 부착하기 시작한 것이 주후 431년경이며, 교회 꼭대기에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 주후 586년경부터이기 때문이다.&lt;BR&gt;&lt;BR&gt;신약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이 주후 100년 이전에 기록되었으므로 성경 기록이 완료된 지 300여 년이 지난 후에 교회 내에 유입된 십자가와 십자가 숭배는 당연히 비성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lt;BR&gt;&lt;BR&gt;다음으로 기독교 내에 유입되기 이전에 십자가는 어떤 종교의 숭배 대상물이었을까 살펴보자. 십자가는 비교적 여러 지역, 여러 종교에서 숭배의 대상물로 삼고 있었다. &lt;BR&gt;&lt;BR&gt;고대 바벨로니아에서는 태양신으로 섬겼던 담무스(Tammuz)의 첫 글자 T자를 십자가로 형상화하여 경배하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T자 모양의 타우 십자가와 앵크 십자가를 종교 의식에 사용하였다.&lt;BR&gt;&lt;BR&gt;고대 중국이나 인도 등지에서도 종교적인 목적으로 십자가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에스파니아인들이 배를 타고 지금의 멕시코 지역에 상륙했을 때 그들은 멕시코의 이교 사원에 세워진 십자가 형상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그만큼 십자가는 기독교 이전부터 많은 지역에서 이교(異敎)의 상징물로서 존재하였던 것이다. &lt;BR&gt;&lt;BR&gt;반면, 성경 어느 곳에서도 십자가 형상을 만들어 세우라거나 그 앞에 경배 드리라거나 십자가가 보호해 준다거나 재앙을 막아준다는 기록이 없다.&lt;BR&gt;&lt;BR&gt;셋째로, 십자가 숭배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신 두 번째 계명을 어기는 악한 행위이다. 두 번째 계명은 다음과 같다.&lt;BR&gt;&lt;BR&gt;&lt;FONT color=#3333b3&gt;출 20장 4∼5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lt;BR&gt;&lt;/FONT&gt;&lt;/DIV&gt;&lt;DIV&gt;어떤 형상이든지 경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어쩌면, 하늘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쫓겨 내려온 인생들이기에 육안으로 보이지 아니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신심(信心)이 빨리 일어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lt;BR&gt;&lt;BR&gt;그리하여 악한 자가 인간들 앞에 유혹을 베풀어 눈앞에 어떤 우상을 만들어 두고 그 우상에다 의미를 부여하여 그 우상에다 마음을 두게 하면 쉽사리 신심이 일어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만큼은 악신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기 위해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사랑의 계명을 주신 것이다.&lt;BR&gt;&lt;BR&gt;진정한 믿음은 육안으로 보이는 어떤 우상도 의지하지 않고 육안으로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따르면서 하나님의 도를 실천하는 믿음이다.&lt;BR&gt;&lt;BR&gt;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모두 다 각각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그 앞에 경배하는 행위를 보더라도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하여 있음을 알 수 있다.&lt;BR&gt;&lt;BR&gt;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권능을 쉬이 잊어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며 우상 숭배에 빠졌던 적이 많았던 것처럼,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 백성이라 하는 자들의 우상 숭배 행위는 존재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위는 우상 숭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이라고 합리화하였었다.&lt;BR&gt;&lt;BR&gt;율법서인 신명기에는 우상 숭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lt;BR&gt;&lt;BR&gt;&lt;FONT color=#3333b3&gt;신 27장 15절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lt;BR&gt;&lt;/FONT&gt;&lt;BR&gt;십자가는 기독교가 이교화되는 과정에서 들어온 부산물이다. 기독교가 이교화되어가자 양심적인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세속화되는 교회를 떠나 산 속으로, 동굴로, 사막으로 피하여 신앙을 지켜나갔다. &lt;BR&gt;&lt;BR&gt;반면, 세속화된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교도들을 더 많이 전도하기 위해 이교도들의 사상과 상징물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lt;BR&gt;&lt;BR&gt;이방 여신을 섬기고 숭배하던 자들이 교회에 와서 적응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섬기도록 하였다(A.D. 431년). &lt;BR&gt;&lt;BR&gt;십자가 형상 앞에서 자신들의 신에게 경배하던 개종자들을 위해서 십자가 형상을 교회 내에 유입하였다. 여러 신들을 섬기다가 개종한 신자들을 위해서 교회 내에서 유명했던 신자들을 높여 ‘성인’이라 하고 그들에게 기도하도록 하였다.&lt;BR&gt;&lt;BR&gt;이교도에서 개종한 신자들을 위해 도입했던 이교도의 사상이나 상징물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 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모든 신자들이 동일한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교회의 십자가나 마리아 상, 성인 상들은 기독교가 세속화되는 과정에서 유입된 타 종교의 유물들인 것이다.&lt;BR&gt;&lt;BR&gt;교회사를 살펴보면 콘스탄틴 황제의 개입 이후 세속화된 로마 교회(카톨릭)에서 십자가 등의 우상을 교회 내에 들여온 뒤로 하나님께서 명하셨던 십계명까지 바꾸어서 자신들의 죄악을 가리려고 한 역사가 있었다.&lt;BR&gt;&lt;BR&gt;성서에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교도들의 태양 숭배 신앙에서 빌어온 일요일을 지키고 있었고,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성서의 가르침에 반하여 만들어 섬기는 십자가와 각종 성인 상들이 있었으니, 이에 대해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지 않고서는 신자들의 의문점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lt;BR&gt;&lt;BR&gt;그래서 5세기에 이르러 당시 교권을 잡고 있던 로마 카톨릭에서는 십계명을 새롭게 분류한다는 명목 하에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두 번째 계명을 없애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제 4계명을 ‘주일을 지키라’로 고치며 세 번째로 끌어올렸다.&lt;BR&gt;&lt;BR&gt;열 가지 계명 가운데 두 번째 계명을 없앴기에 어디에선가 한 가지를 더 만들어서 열을 채워야 했으므로 그들은 열 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었다. 열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하신 말씀이었다. 그들은 이를 ‘남의 아내를 원하지 말고’와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로 나누어 아홉째와 열 번째 계명을 삼았다.&lt;BR&gt;&lt;BR&gt;본문 내용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는 계명 속에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등 이웃의 소유가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도 카톨릭의 십계명에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둘째 계명이 없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신 넷째 계명 대신 셋째 계명으로 ‘주일을 지키라’가 자리잡고 있으며, 열번째 계명은 제 9계명과 제 10계명으로 나뉘어져 신자들에게 암송되고 있다. &lt;BR&gt;&lt;BR&gt;‘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없애고, 안식일 계명을 바꾸고, 열 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 진실을 은폐하려는 그들의 소위가 사람을 현혹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기만할 수는 없을 것이다.&lt;BR&gt;&lt;BR&gt;루터가 종교 개혁을 시작하여 카톨릭으로부터 탈퇴했을 때 그는 십자가가 우상이라 하여 세우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종교 개혁이 이루어졌다 해서 오랫동안 십자가를 숭배해 왔고 십자가를 구원의 표인 양 여겨왔던 사람들이 십자가상을 버리기란 쉽지 않았다. &lt;BR&gt;&lt;BR&gt;세월이 흐르고 종교 개혁의 열기가 조금씩 수그러들자 개신교도들은 십자가상을 다시 만들어 세우기 시작하였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lt;BR&gt;&lt;BR&gt;80년대 중반, 한국 개신교의 목회자들이 ‘십자가 우상’ 논쟁을 벌여 기독교 관련 신문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었다. 그때 십자가 숭배가 우상 숭배라고 주장하는 목회자들은 성경에 십자가상을 숭배하라고 가르치는 내용이 없다는 것, 십자가 숭배가 이교도의 영향을 받은 데 기인한다는 점, 루터도 십자가를 우상이라고 배격했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이 논쟁을 전후로 해서 개신교의 일부가 교회 내부의 십자가를 철거하는 일이 있었다.&lt;BR&gt;&lt;BR&gt;최근에도 필자는 십자가를 세우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개신교인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교회 내부의 십자가를 우상이라 하여 없앤 교회들이 꼭대기에 세워둔 십자가는 없애지 못하고 있다. “어찌하여 교회 꼭대기의 뾰족탑 위에 있는 십자가는 그냥 두십니까?” 라는 질문을 하면 그들은 여간 난처해하지 않는다. &lt;BR&gt;&lt;BR&gt;대부분 ‘이곳이 교회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는 궁색한 이유를 대기는 하지만 그 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그들이 사람들을 의식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교회 꼭대기나 외부 벽면에 십자가가 없으면 ‘이단’이라고 손가락질 받게 될까봐 십자가를 완전히 없애지 못하는 것이 속내인 것이다.&lt;BR&gt;&lt;BR&gt;수년 전에 어느 개신교의 목회자가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이제부터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었다 한다. 그 결과 교회의 직분자들부터 숙덕거리기 시작하더니 대부분 다른 교회로 옮겨가 버리고 목회자 가정을 비롯한 몇몇 신자만이 남게 되어 다시 크리스마스를 지키겠다고 선포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lt;BR&gt;&lt;BR&gt;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신앙, 성경을 중심으로 한 신앙을 갖지 못하면 주위의 시각을 더 의식하고 하나님 아닌 사람들의 판단에 마음이 끌리게 마련이다.&lt;BR&gt;&lt;BR&gt;성경 가운데 우상숭배에 대한 가르침은 실상 신약시대에 와서 더 확대되고 강화되었다. 유형의 우상뿐만 아니라 무형의 우상에 대해서도 많이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하였고 또한 우상 숭배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기록하였다.&lt;BR&gt;&lt;BR&gt;&lt;FONT color=#3333b3&gt;고전 10장 14절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lt;BR&gt;&lt;BR&gt;갈 5장 19∼21절 “육체의 일은 …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lt;BR&gt;&lt;BR&gt;엡 5장 5절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lt;BR&gt;&lt;BR&gt;계 21장 8절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lt;BR&gt;&lt;BR&gt;계 22장 15절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lt;BR&gt;&lt;/FONT&gt;&lt;BR&gt;지금도 온 천하를 꾀면서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악한 신은 마귀이다.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는 결코 안 된다. 온 천하가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인지 마귀의 꼬임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lt;BR&gt;&lt;BR&gt;사회의 통념이나 전통이 하나님의 가르침과 상반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이 하나님 자녀들의 도리이다.&lt;BR&gt;&lt;BR&gt;사도들의 사상 가운데서 십자가상을 세워야 한다거나 십자가를 숭배해야 한다는 사상은 존재한 적이 없다. 초대교회가 가졌던 진리 가운데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라거나 악신을 쫓아내 주는 부적의 역할을 한다는 가르침 또한 존재한 적이 없다. &lt;BR&gt;&lt;BR&gt;초대교회 성도들이나 사도들은 우상 숭배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하였다. 계명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자는 그 계명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기 때문이다.&lt;BR&gt;&lt;BR&gt;“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장 30절) 하신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lt;BR&gt;&lt;/DIV&gt;&lt;DIV&gt;&lt;FONT color=#3333b3&gt;계 21장 8절 “ …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lt;BR&gt;&lt;/FONT&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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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7 Jul 2005 23:42:1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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