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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하늘 소망! 보이지 않는 믿음의 눈.]]></title>
<description><![CDATA[kimjinki_kr의 블로그 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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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하늘 소망! 보이지 않는 믿음의 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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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quot;우리나라 CEO 80% 강박관념으로 정신 건강 해쳐&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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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quot;d&quot;&gt;&lt;span class=&quot;d1&quot;&gt;[한국일보] 2009년 12월 06일(일) 오후 10:59&lt;/span&gt;&amp;nbsp;&lt;br&gt; &lt;/div&gt;&lt;div id=&quot;content&quot; class=&quot;c&quot;&gt;&lt;img style=&quot;MARGIN:5px;CURSOR:hand;&quot; title=&quot;&amp;#x00d074;&amp;#x00b9ad;&amp;#x00d558;&amp;#x00c2dc;&amp;#x00ba74; &amp;#x00c6d0;&amp;#x00bcf8;&amp;#x00d06c;&amp;#x00ae30; &amp;#x00c774;&amp;#x00bbf8;&amp;#x00c9c0;&amp;#x00b97c; &amp;#x00bcf4;&amp;#x00c2e4; &amp;#x00c218; &amp;#x00c788;&amp;#x00c2b5;&amp;#x00b2c8;&amp;#x00b2e4;.&quot; hspace=&quot;10&quot; align=&quot;left&quot; src=&quot;http://l.yimg.com/go/news/picture/2009/7/20091206/2009120622591356707_230032_1.jpg&quot; height=&quot;363&quot;&gt;&lt;br&gt;&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C1%A4%C7%FD%BD%C5&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정혜신&lt;/font&gt;&lt;/a&gt; 마인드프리즘 대표, 기업임원 400명 심리 분석&lt;br&gt;우리나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 5명 가운데 4명은 &amp;#39;개선 콤플렉스&amp;#39;를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lt;br&gt;&lt;br&gt;정신건강 컨설팅 기업 마인드프리즘(대표 정혜신 정신과전문의ㆍ46ㆍ사진)은 지난 4년간 CEO를 비롯 기업 임원 400여명의 심층 심리 분석 결과, 이중 80%가 무조건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강박 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6일 밝혔다.&lt;br&gt;&lt;br&gt;개선 콤플렉스란 각 개인 고유의 심리적 색깔이나 특성과는 상관없이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을 통해서 조직과 업무가 요구하는 특성을 갖추기 위해서 애 쓰는 것을 일컫는 말. 왼손잡이의 정신적 갈등이 대표적.&lt;br&gt;&lt;br&gt;우리나라 임원들은 왼손잡이로 태어난 경우에도 오른손잡이로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스스로 정신을 학대하고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임원들이 대부분 심리적으로는 양손잡이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lt;br&gt;&lt;br&gt;특히 이런 개선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는 임원들은 자신의 심리적 강점보단 반대편에 사로잡혀 그것을 단점으로 규정한 뒤 언제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관련 서적 등을 대량 탐독하는 경향이 있다고 정 대표는 분석했다.&lt;br&gt;&lt;br&gt;이 때문에 개선 콤플렉스는 사회적으로 자기발전이 이뤄진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역기능이 훨씬 많다. 정 대표는 &amp;quot;겉으로는 완벽해 보일 수 있지만 타고난 특성에 반하는 요소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은 정신 에너지의 소모량이 클 수 밖에 없다&amp;quot;며&amp;quot;이런 심리적인 양손잡이로 살며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기대하긴 힘들다&amp;quot;고 말했다.&lt;br&gt;&lt;br&gt;&lt;br&gt;이런 CEO나 임원들은 또 자신의 스트레스를 지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인내심이 크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장점이 될 수 있겠지만 개인 삶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만큼 자기 몸에 대한 스트레스 민감도가 떨어지고 이에 따라 자기 보호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지적이다.&lt;br&gt;&lt;br&gt;정 대표는 &amp;quot;자리가 사람을 만들 듯 강박적 사람이 임원이 되는 게 아니라 임원이라는 자리가 강박을 만드는 것&amp;quot;이라며 &amp;quot;CEO와 임원의 의사 결정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바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젠 임원이 개선 콤플렉스에서 탈피, 자기 자신을 올바로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기업이 나서야 할 때&amp;quot;라고 주장했다.&lt;br&gt;&lt;br&gt;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정 대표는 &amp;#39;마음과마음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D%C5%B0%E6%C1%A4%BD%C5%B0%FA&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신경정신과&lt;/font&gt;&lt;/a&gt;&amp;#39; 원장을 거쳐 2004년 마인드프리즘을 설립, 일대일 상담 및 심리치유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lt;br&gt;&lt;br&gt;박일근기자 ikpark@hk.co.kr&lt;br&gt;&lt;br&gt;&lt;br&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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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7 Dec 2009 00:05:16 +0900</pubDate>
    <category><![CDATA[진실, 비극과 희극]]></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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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나운몽 목사의 용문산운동 약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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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96%&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TOP:24px;&quot; class=&quot;txt_pagebo&quot; align=&quot;left&quot;&gt;나운몽 목사의 용문산운동 약사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96%&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TOP:13px;&quot;&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100%&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TOP:3px;&quot; class=&quot;txt_page111&quot; bgColor=&quot;#f1f1f1&quot; height=&quot;19&quot; vAlign=&quot;center&quot; width=&quot;79%&quot; align=&quot;left&quot;&gt;&lt;span style=&quot;PADDING-TOP:3px;&quot; class=&quot;txt_page111&quot;&gt;&amp;nbsp;&amp;nbsp; 2009-11-27 10:20:02 &lt;/span&gt;&lt;/td&gt;&lt;td style=&quot;PADDING-TOP:3px;&quot; class=&quot;txt_page111&quot; bgColor=&quot;#f1f1f1&quot; vAlign=&quot;center&quot; width=&quot;21%&quot; align=&quot;right&quot;&gt;&amp;nbsp;&amp;nbsp;&lt;!-- 조회수 : 69 --&gt;&amp;nbsp;&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100%&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TOP:15px;&quot; align=&quot;left&quot;&gt;&lt;!-- // align=&amp;#39;&amp;lt; !--   ---&gt;left&amp;lt; ! - - --&amp;gt;&lt;!--  width=&amp;#39;&amp;#39;  --&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4&quot; cellPadding=&quot;3&quot; align=&quot;center&quot;&gt;&lt;tbody&gt;&lt;tr&gt;&lt;td align=&quot;middle&quot;&gt;&lt;a&gt;&lt;img style=&quot;BORDER-BOTTOM:#cccccc 1pt solid;BORDER-LEFT:#cccccc 1pt solid;BORDER-TOP:#cccccc 1pt solid;BORDER-RIGHT:#cccccc 1pt solid;&quot; src=&quot;http://www.gospeltimes.co.kr//_data/thumb_view_1259284802.jpg&quot;&gt;&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r&gt;&lt;td style=&quot;PADDING-TOP:28px;&quot; id=&quot;neWsBody&quot; class=&quot;p&quot; align=&quot;left&quot;&gt;&lt;p&gt;&amp;nbsp;&lt;/p&gt;&lt;p&gt;&lt;strong&gt;초창기와 역사적 상황&lt;br&gt;&lt;/strong&gt;&lt;/p&gt;&lt;p&gt;역사의 변천과정과 기독교의 구원관을, 용문산운동이 지속적으로 지향해 온 이른바 ‘성경과 현실’이라는 압축된 개념에 접목시켜 일반의 현재적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구원을 지속적으로 행사해 나가는 실천운동으로서 자리잡아 왔던 것이다. &lt;br&gt;따라서 용문산운동이 주도해간 성령운동은 신앙부흥의 차원만이 아닌 역사의 주체로서의 복음의 영향력을 인지하므로써 구국 신앙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용문산운동은 그 발단 초기부터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lt;br&gt;용문산운동의 시근인 애향숙의 개숙이, 일제하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속에서 주어진 국가와 생존 그리고 신앙의 상관관계에 대한 절박한 요구에 응답하며 이루어졌고 ‘사랑향 건설’이라는 실천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lt;br&gt;그러나 용문산운동은 기성교단의 장벽에 부딪혀 힘겨운 점을 안아야 하기도 했다. 그것은 용문산운동이 복음의 현재성과 역동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함으로써 복음의 현재적 해석이 가능했으며 이로써 당시 생소했던 성령운동을 주도하며 대중속 깊속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데 대한 반발과 몰이해의 당연한 귀걸이라 할 수 있겠다. &lt;br&gt;용문산운동이 한국기독교의 기성 조직 속에서 자라나지 아니하고 평신도속에 강한 응집력을 갖고 직접 평신도 신앙부흥운동으로 이어진 점, 용문산운동이 특성에서 기이한 ‘한국복음화, 구국기도’ 등의 새로운 이슈나 성경해석상의 문제들이 고착된 기존인식에서 볼 때 생소하였던 점 등도 그 이유라 하겠다. &lt;br&gt;그러나 훗날의 인식의 변환을 예고하며 뻗어나간 용문산운동은 기성 교단의 아성을 일탈하므로써, 자유로운 진지추구와 신앙혁명의 길을 헤쳐 나울 수 있었던 것은 용문산운동의 특성으로 대변되는 일이기도 하다. &lt;br&gt;용문산운동이 교리적 차원의 논란의 범주를 넘어선 순수복음주의 노선을 견지해 오므로써 초교파운동으로의 전개가 가능하였으며 복음의 현재적 조명에 의한 실천운동으로 뿌리내림으로써 기독교의 토착화라는 신학적 문제에 독보적 위치를 점하게 된 점 등도 간파해서는 아니될 것이다.&lt;br&gt;&lt;br&gt;&lt;strong&gt;&lt;font size=&quot;4&quot;&gt;일정시대의 애향숙의 첫 개혁&lt;/font&gt;&lt;/strong&gt;&lt;/p&gt;&lt;p&gt;&amp;nbsp;&lt;/p&gt;&lt;p&gt;&lt;strong&gt;1) 애향숙의 창설과 의의&lt;br&gt;&lt;/strong&gt;&lt;/p&gt;&lt;p&gt;애향숙의 탄생은 1940년 6월 13일에 이루어졌다. 경상북도 금릉군 어모면에 위치한 용문산(현 용문산)중턱의 ‘도치랑’이라는 마을에서, 당시 식민치하에서 지식인이 갖던 울분과 자조의 뒤안에 입산(1940,5,7)해 있던 27세의 나운몽 목사에 의해 개숙되었다. 도치랑 마을 한칸 방에서 나운몽 목사를 중심해 열세명의 청년이 모여 참 공부의 의미를 공부하는 것으로부터 이 모임은 시작되었다. 당시 이 모임을 도의자수회 라고 하였다. &lt;br&gt;특히 그는 어떠한 운동도 탁상공론이나 이상론에 그치지 않고 현실속에서 체험으로 시작하는 운동이어야함을 강조하고 당시 국민의 7할을 차지하던 농민의 높은 문맹률과, 일체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농민들이 땀 흘려 일한 대가를 맛보지 못하고 나농화 하는 현실의 절박한 요구속으로 뛰어듦으로 애향숙은 그 처걸음을 내딛었던 것이다. &lt;br&gt;애향숙은 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1. 하나님 공경함이 절대적 조건이며 2.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3. 일생토록 흙과 친하며 4.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며 5.종신토록 배우는 자세를 가진다는 다섯 개의 항목을 세우고 1.신념확고 2.성의발휘 3.진실수행 4. 의리견수 5. 용기전진의 다섯 개의 조항으로 애향숙의 숙정신과 숙훈으로 이어오고 있다. 한편 애향숙은 일제하에서 창설된 이후 그 때문에 두 차례의 좌초를 겪게 된다. &lt;br&gt;첫 번은 나운몽 목사가 모임의 성격을 눈치챈 일경에 쫓겨 만주망명길에 오르므로 중단되었다가 1942년 12월1일 재개되었고 두 번째는 재개된지 6개월 만인 1943년 6월1일 나운몽 목사가 일경에 체포됨으로써 다시 일단의 막을 내려야 했다. &lt;br&gt;당시 이모임이 계몽운동의 성격을 상하게 띠었고 신사참배문제로 일제의 표적이 되던 기독교의 전도회임이 일경에 알려지자 용납될 리 만무하였기 때문이다. &lt;br&gt;나운몽 목사는 이때 난생 처음 옥중 생활을 겸험하고 당시 김천 황금동장로교회 송창근 목사(신학박사, 6·25때 남북)의 신원보증으로 석방되자 또다시 몸을 숨겨야 했다. &lt;br&gt;1944년 소위 대동아전쟁의 막바지이던 해 그는 만주 북안성 수화현에서 만척의 공사장 직영 농장의 농장장으로 있기도 하며 외유하다가 1945년 2월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다. 33세의 나이로 장로장립을 받으므로 1979년 목사 안수를 받기까지 장로의 직분으로 있으면서 성령역사를 일으키게 된다. 농민성보사가 한창 발전을 거듭하고 있을 1947년초 나운몽 목사는 돌연 용문산 입산을 하게 된다. &lt;br&gt;그는 회고록에서 당시 입산을 결행하게 된 동기를 ‘내 생태구조가 이 시대에 적응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정계, 사회, 교계사업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가 갈등을 일으킬 뿐 세상이 싫어 졌다.’고 술회하고 있다. 서울 생활상에 회의를 느끼던 때 입산을 재촉한 또 하나의 결기가 마련되었다. &lt;br&gt;당시 교계는 해방 후 후유증이 되살아나 왜정 때의 교역자 비행 진상 조사위원단이 구성되고 이 조사위원으로 피택되자 신앙적 양심에 갈등을 일으켜 기도의 필요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lt;br&gt;나운몽 목사는 다시 찾은 신앙의 고향 용문산에서 기도와 성경에 몰입하면서 진정한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 &lt;br&gt;이때의 용문산행이 현재적 의미의 애향숙 재건과 나운몽 목사와 가족이 아주 용문산에서 신앙과 삶의 전부를 의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lt;br&gt;&lt;a style=&quot;CURSOR:pointer;&quot;&gt;&lt;img border=&quot;0&quot; hspace=&quot;5&quot; vspace=&quot;5&quot; src=&quot;http://www.gospeltimes.co.kr/_data/img/1259284405.jpg&quot;&gt;&lt;/a&gt;&lt;/p&gt;&lt;p&gt;&lt;strong&gt;2) 애향숙의 재건과 7주년 기념성회&lt;/strong&gt;&lt;/p&gt;&lt;p&gt;&amp;nbsp;&lt;/p&gt;&lt;p&gt;1947년 4월5일 용문산중 초막집에서 애향숙은 숙생 다섯명과 함께 새로운 탄생을 고했다. 신앙부흥운동을 통한 사랑나라 건설이야말로 가장 큰 민족적 과제며 살길임을 믿으며 다시 시작된 애향숙은 바로 오늘날 용문산운동의 시근이 되었다. 현재 용문산기도원 기념물1호로 보존되어 있는 토실 세칸의 초막 집에서 자고 공부하고 나가 건설하고 전도하며 재건 애향숙은 용문산 성령운동의 모체로 커갔다. 재건 애향숙은 용문산 인근에 고등공민학교를 개설하여 전도와 교육의 장을 넓혀 나갔다. &lt;br&gt;용문산을 중심하여 각 30리 밖에 남쪽으로는 아천에 고등동민학교와 아천교회(금릉군)를, 동쪽 옥산에 고등공민학교(상주군), 서쪽 매곡에도 고등공민학교와 매곡교회(영동군)를 세웠다. 한편 그는 계몽운동가로, 독실한 신앙인으로 인근에 이름이 알려지자 각처에서 부흥사로 초대되어 인근각처에 농촌부흥회를 인도하기도 하고 면, 군의 계몽강연을 맡기도 했다. 재건된 그해 8월15일을 기해 광복 2주년과 입산 7주년 기념성회를 초교파적으로 열기로 하고 나운몽 목사가 농민성보사 운영시 교분이 있었던 장로교, 감리교신학교, 한국신학교, 서울신학교, 중앙신학교 등 당시 5대 신학교장을 강사로 초청했다. 이중 장로교신학교장 박형룡 박사와 감리교신학교장 방훈 목사를 비롯한 강사가 참여한 가운데 8백 명 가량의 기적적 인파가 모인 한국초유의 산상집회를 갖게 되었다. &lt;br&gt;이 이후부터 용문산은 초교파적 신앙부흥운동의 기지로서 면모를 드러내며 세상에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2년에는 한상동 목사, 박윤선 박사 등을 강사로 한 고려측과 교역자 수양회가 약 7백 명이 모인 가운데 용문산에서 열리기도 했다.&lt;br&gt;&amp;nbsp;&lt;br&gt;&lt;strong&gt;3) 심령수련회와 일동일교회운동의 시발&lt;br&gt;&lt;a style=&quot;CURSOR:pointer;&quot;&gt;&lt;img border=&quot;0&quot; hspace=&quot;5&quot; vspace=&quot;5&quot; src=&quot;http://www.gospeltimes.co.kr/_data/img/1259284437.jpg&quot;&gt;&lt;/a&gt;&lt;br&gt;&lt;/strong&gt;7주년 기념성회가 열린 이듬해인 1948년 4월1일, 용문산 심령수련회가 첫 번째로 개최됐다. 제1기 수련생은 불과 10명이었으나 그해 말까지의 장기수련에 들어가는 사명자들로서 수련생에 따라서는 몇 년씩도 몸담고 수련을 계속하기도 했다. &lt;br&gt;동년 8월 1일부터 열린 제2기 수련회는 수련생이 32명이 늘어났다. 수련기간 중에는 한손에 하나님 말씀 들고 한손에 건설의 괭이 들자는 ‘숙정신’을 살려 하루 한 두 시간씩 꼭꼭 일을 했다. &lt;br&gt;이렇게 해서 숙생과 수련생들은 기와를 굽고 재목을 날라 당시 예배당을 비롯하여 수련관, 공동식당, 숙사, 특별기도실 등 일곱여채의 기와집을 지었다. 한편, ‘교회 없는 동리마다 교회를 세워 한국을 복음화시키는 초석이 되게 한다’는 목표 아래 시작된 것이 오늘날까지 계속돼 오는 일동일교회운동이다. 한 건물에도 몇 교회씩 들어 앉아 상점과도 같이 교인 쟁탈전을 벌이는 작금의 대도시의 교회 밀집화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일이었다. &lt;br&gt;&lt;br&gt;&lt;strong&gt;&lt;font size=&quot;4&quot;&gt;성신불과 그 봉화&lt;/font&gt;&lt;/strong&gt;&lt;/p&gt;&lt;p&gt;&lt;strong&gt;1) 새 역사의 아침&lt;br&gt;&lt;/strong&gt;&lt;br&gt;3종의 교안과 전국부흥전도의 시발&lt;br&gt;6·25전쟁이 휩쓸고 간 조국엔 쓰라린 상흔만이 남았다. 국토분단과 민족분열, 동족상간의 민족적 비애를 안은 조국의 앞날을 위해 용문산은 성령역사의 본산지로 무장되어가고 있었다. 1952년 봄, 전도훈련에 물두하고 있던 당시에 나운몽 목사는 성신의 인도로 3일만에 3백여 성경구절을 관주한 3종의 교안을 마련한다. &lt;br&gt;즉 1. 우리가 받아야 할 성령과 은사 2. 우리가 가져야 할 사상과 주의 3.우리가 알아야 할 시대와 섭리의 3종의 교안을 주측으로 성령운동이 시발된 것이다. 당시 용문산 10평 강당에서 3종의 교안을 번갈아 강론하며 하루 4차례씩 집회를 가졌다. 이때 일어난 성령의 불길이 대구, 부산, 서울로 번져 전국을 휩쓸게 되었다. &lt;br&gt;전국적인 부흥전도집회는 대구 애양교회(당시 예장 경북노회장 박병훈 목사)를 선두로 포문을 열었다. 성신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면서 대구에서만 2개월 이상을 10개 교회에서 집회가 계속헤서 열렸다. 우리가 받아야 할 성령과 은사라는 교안은 10만부 이상이 나갔지만 계속해서 모자랐다. 강사가 모여든 인파를 뚫지 못하여 어깨위로 네발걸음을 하여 강단에 오르는 등 집회마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lt;/p&gt;&lt;p&gt;2) 고등성령학교와 기드온신학교의 개교 &lt;/p&gt;&lt;p&gt;1955년 10월, 은혜를 말씀으로 정돈하자는 목적으로 3년제의 용문산 고등성경학교가 설립되었다. 중졸 이상 (1970년 이후)이면 입학할 수 있고 국교 졸업자는 예과에서 1년과정을 마치면 진급할 수 있게 했다. 실력에 따라 편입이나 진급도 가능하다. 주된 수업방법은 주어진 연구문제에 의해 답안을 작성하며 신약적 성경을 통달하도록 돼 있다. 통신교육제도도 두어 성경과가 있었다. 과외활동을 위해 농예반, 미술반, 수예반, 문예반 등도 두었다. 1967년 까지는 남녀 분반으로 함께 공부하다가 이전부터 남녀 두 성경학교로 갈라졌다. &lt;br&gt;1964년까지 250명, 1969년까지 521명, 1979년까지 남자 641명 여자 559명 총 1,2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여 대부분이 복음전선에 뛰어들었다. 다음해 1월에 가졌던 전국순회전도 이후 용문산에서 23기 수련회가 열리자 전국에서 사명감에 불타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신학교의개교가 가속화되었다. 1956년 4월 20일, 고등성경학교와 기드온신학교 입학생 300여명이 함께 개교예배를 드리므로 선지생도 양성을 목적한 기드온신학교가 개교하였다.&lt;br&gt;&lt;/p&gt;&lt;p&gt;&lt;strong&gt;3) 용문산기도원과 심령수련회&lt;br&gt;&lt;a style=&quot;CURSOR:pointer;&quot;&gt;&lt;img border=&quot;0&quot; hspace=&quot;5&quot; vspace=&quot;5&quot; src=&quot;http://www.gospeltimes.co.kr/_data/img/1259284486.jpg&quot;&gt;&lt;/a&gt;&lt;/strong&gt;&lt;/p&gt;&lt;p&gt;&lt;strong&gt;(1) 기도원의 형성&lt;br&gt;&lt;/strong&gt;한국교계 최초의 기도원이 된 용문사기도원의 ‘기도원’이란 명칭은 누가 임의로 지은 명칭이 아니었다. 1950년대 초부터 용문산 수련회에 참석하거나 기도하기 위해 입산한 성도들의 입에서 불려지기 시작한 것이 자연이 기도원이라는 명칭으로 정착된 것이다. &lt;br&gt;또 이 산은 애초에 용문산이라는 무명산이었는데 성도들이 몰려와 회개하고 성신을 받아 하산하게 되자 1954년부터 어떠한 죄인이든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용서함 받지 못할 자 없다는 뜻의 용문산 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이다. &lt;br&gt;상주자들이 늘어나자 기술자들도 살게 되었고, 매점, 하숙집, 이발소 등의 편리시설도 생겼다. 방대한 용문산 가족이 형성되자 이들을 치리할 목적으로 장로를 선출하였다. 1956년 6월 10일 박만출, 이진규, 지용성씨 등 3인이 증경 감리사 조용구 목사의 주례로 장로장립을 받았다. 상주자들의 출신교파나 출신지역은 각기 달랐다. &lt;br&gt;용문산운동이 애초의 출발점부터 교파색을 벗어나 신앙부흥운동으로 실천화된 탓으로 입주자들 역시 각 교파를 망라하고 있었다. &lt;br&gt;자연히 성령 안에서 하나되는 모형이 형성된 것이다. 1967년 10월 입주자들의 신앙생리에 따라 촌마다 각 교파 교회를 세우고 각 촌의 목양활동을 위해 각 교파 출신 목사를 초빙했다. 또 교회마다 장로 한사람씩을 안수하여 교회의 틀을 굳혔다. 이때 형성된 각 교회와 당직자는 다음과 같다. 애향촌:감리교 최재성 목사, 이세화 장로. 소망촌: 장로교 김태호 목사, 임승근 장로. 믿음촌:성결교 이범중 목사, 장학균 장로. 중앙촌: 침례교 조광열 목사, 정창우 장로 등이다. &lt;br&gt;&lt;/p&gt;&lt;p&gt;&lt;strong&gt;(2) 심령 수련회 상황&lt;br&gt;&lt;/strong&gt;&lt;a style=&quot;CURSOR:pointer;&quot;&gt;&lt;img border=&quot;0&quot; hspace=&quot;5&quot; vspace=&quot;5&quot; src=&quot;http://www.gospeltimes.co.kr/_data/img/1259284513.jpg&quot;&gt;&lt;/a&gt;&lt;br&gt;용문산 집회는 그리스도의 참된 사역자로, 성도로 연성받는다는 의미에서 심령수련회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10일간의 산중 집회기간이 모두 수련회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10일간의 산중 집회기간이 모두 수련기간으로써 매 집회시간만을 위주로 하는 일반 부흥회와는 다른 성격이다. 특히 8월에 열리는 집회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됨을 기념해 지켰던 유월절기의 의미를 계승,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하나님께 감사해 민족적으로 지키는 절기라는 뜻의 ‘한민족 유월절성회’로 지키고 있다. &lt;/p&gt;&lt;p&gt;사실상 심령 수련회는 입산 도중부터 시작된다. 당시 용문산에서는 입산자들의 편의를 위해 추풍령과 김천, 두원에 연락소를 운영했다. 특히 8월의 한민족 유월절성회가 되면 철도국에서는 용문산행 성도들에게 기차 할인권을 발부했고 김천역에서는 용문산 손님들에 대한 특별 안내방송을 했다. 경찰서에 트럭운행 허가를 얻어 김천 트럭을 총동원하다시피 해서 성도들을 운송했다. 입산하는 성도들의 우렁찬 찬송소리는 역 광장에서부터 거리를 매우고 도착시까지 연이어졌다. &lt;br&gt;오전 10시 부터는 나운몽 목사 인도의 낮공부 시간이 있다. 시대의 변천과 함께 강론의 요지도 점차 변해왔다. 50년대 초반엔 전국적으로 파급되는 성신역사와 수반해 성신론을 주로 공부했다. &lt;br&gt;50년대 후반에 성경 해석상의 문제가 자주 강론되었고 60년대 전반기엔 말세론 문제가 거론되었다. 그는 말세를, 종전의 시간적 개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시작과 맞닿는 분기점이라는 의미로 다루었다. 60년대 후반기엔 천국론을 주로 다루었다. &lt;br&gt;고래의 샤머니즘이 성경적으로 비판, 해석, 규명되기도 했다. 이러한 성경공부는 감정적, 기복적 신앙을 막고 ‘성경바로 알고 바로 믿자’는 운동으로 계속돼온 용문산운동의 중요한 부분이다. &lt;/p&gt;&lt;p&gt;&lt;strong&gt;(3)전국 교역자 구국 산상기도회&lt;/strong&gt;&lt;/p&gt;&lt;p&gt;&lt;a style=&quot;CURSOR:pointer;&quot;&gt;&lt;img border=&quot;0&quot; hspace=&quot;5&quot; vspace=&quot;5&quot; src=&quot;http://www.gospeltimes.co.kr/_data/img/1259287233.jpg&quot;&gt;&lt;/a&gt;&lt;br&gt;1961년 8월의 제45기 수련회는 용문산 3X7주년 기념성회로 열렸다. 바로 직후인 8월31일부터 용문산 원내 성도들을 위한 산상 특별기도회가 제46기 수련회로 용문산 사사봉 정상에서 열렸다. 외부혁신보다 자가혁신과 사명의식 고취를 통해 이 땅의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내는 전초기지로서의 자세를 가다듬자는 취지로 그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어 가진 수련회였다. 이 집회에 참석한 목사들의 건의로 전국 교역자 기도회의 필요성이 주창되어 그 실현을 보게 되었다. &lt;br&gt;동 집회는 한국교계의 구국적 사명에 대한 각성의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 용문산운동이 평신도에 의해 일어나 평신도 속에 파급되 나가면서 교권 세력 및 목사들의 반발을 사는 원인이 되기도 했으나 이러한 종래의 인습을 불식하는 교역자를 향한 최초의 변신의 요구로서 평가된다. &lt;br&gt;이는 초교파운동으로 계속되던 용문산이란 모체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교역자 수양회가 용뮨산기도원에서 계속 열렸으며 지역별, 교과별, 소규모 교역자 기도회도 계속 가졌다. 1974년에도 용문산운동의 구국기도운동체인 한국기독교 구국기도연맹 주최로 전국 교역자 구국기도대회(5. 27~31)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lt;br&gt;&lt;/p&gt;&lt;p&gt;&lt;font size=&quot;4&quot;&gt;4) 박해의 와중으로&lt;/font&gt; &lt;br&gt;&lt;/p&gt;&lt;p&gt;&lt;strong&gt;(1) 이단사이비의 싹&lt;/strong&gt;&lt;br&gt;용문산의 초창기인 1952년 봄부터 이미 이단 사이비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당시 장로교는 해방 이후 신사참배문제로 고신파가 갈라졌고 6·25를 전후하여 성경관의 차이 등으로 기장파가 갈라져 세 파로 형성되어 있었다. &lt;br&gt;부산의 고려파는 진리 수호를 위해 투쟁한다는 의미에서 군대용어같은 ‘진영’이라는 말을 사용해 고려진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들이 진영단합을 위해 용문산에서 전국적 집회를 열었는데 진영의 지역적 한계로 경상도 지방을 중심해 산상에 이례적인 700여명이 모여들었다. &lt;br&gt;당시 강사는 한상동 목사와 박윤선 박사였다. 박윤선 박사는 로마서강해 중에 ‘오순절 다락방에서 일어난 성령역사는 단회적인 역사일 뿐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과 ‘믿을 때에 이미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lt;br&gt;마지막 날은 용문산기도원 주최로 한시간을 갖기로 하여 명향식 선생의 사회로 나운몽 장로가 강사로 나섰다. 그는 첫 머리부터 한국 교회의 부패상을 때리기 시작했다. &lt;br&gt;‘일본 이세벨을 용납하고도 회개할 줄 모르더니 6·25의 화를 부르고 아직도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는 교권주의자들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더해 간다’고 역설하고 ‘한국 교회는 속히 회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나운몽 목사는 “회개만 하면 오순절 다락방에 역사한 성령은 지금도 역사합니다. 지금당장 이 자리에도 성령의 불이 떨어집니다”고 외쳤다. 순식간에 장내가 성령역사로 뒤집어졌다. &lt;br&gt;사람들이 뛰고 ‘주여, 할렐루야’ 소리와 놀라는 고함소리가 섞이고 방언들이 터져 나왔다. 도중에 설교는 중단되고 통성기도로 그 분위기를 지탱해야 했다. 주최측 강사들과 각 교회 목사들은 장내의 성도들을 불러내기 시작했다. 집회는 중도에서 폐회되었다.&lt;br&gt;다음날 새벽기도회 시간에 단상에 선 한상동 목사는 ‘어제밤의 일은 성경무식에서 비롯된 마귀의 역사’였다고 규정하였다. 그날 교역자들은 교인들을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 데리고 내려갔다. 그러나 은혜를 사모한 교인들 200여명이 추풍령역에서 하나둘 빠져 나와 다시 입산하였고 이로써 예정에 없던 용문산 주최의 집회가 새로 시작되었다. &lt;br&gt;그때부터 고려측 장로교인들의 용문산 왕래가 빈번하여 졌으나 한편으로 박해의 예고 시점이 되기도 했다. 그후 한번은 고려신학교 졸업생들이 졸업기도를 위해 용문산에 들어와 10일 예정으로 유숙하다가, 원내 어린이들이 소꿉장난을 하며 ‘주여 삼천만을 구원하소서.’ 하고 어른들을 흉내내는 기도를 목격하고 택자구원설에 위배되는 이단성 발견 운운하며 중도 하산한 일도 있었다. 교리적 견해 차이가 이단으로 호도되기 일쑤인 당시 한국 교회 풍토에서 성령역사의 온상으로 자라나던 용문산은 애초부터 충돌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lt;/p&gt;&lt;p&gt;&lt;strong&gt;(2) 전도의 걸림돌&lt;br&gt;&lt;/strong&gt;&lt;a style=&quot;CURSOR:pointer;&quot;&gt;&lt;img border=&quot;0&quot; hspace=&quot;5&quot; vspace=&quot;5&quot; src=&quot;http://www.gospeltimes.co.kr/_data/img/1259284552.jpg&quot;&gt;&lt;/a&gt;&lt;br&gt;용문산으로부터 일어난 성신역사가 1952년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1954년 8월에 용문산에서 양7주년 기념성회가 이례적으로 열리게 되자 이때부터 교계의 박해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1954년 3월, 예장 경북노회는 당시 나 장로문제로 임시노회를 열고 조사위원단을 구성했다. &lt;br&gt;김삼대 목사등 3인의 조사위원은 그해 8월의 양7주년 기념성회에 참석, 이단판정을 위한 교리적 근거를 찾았으나 이에 실패, 경남노회의 김인서 목사와 담합하여 진실을 가장하기 위해 나운몽 목사와의 일문일답식으로 작성한 허위보고서를 그해 9월의 55회 정기노회에 제출하였다(2년 후 김삼대 고백) 명목은 보고서였으니 이단에 대한 교리적 근거의 제시 없이 허위로 조작된 인신공격과 집회광경 등을 책잡는데 불과했다. &lt;br&gt;용문산운동에 대한 최초의 조사보고가 이루어진 일로 55회 노회는 가장 유명한 노회가 되었고 이때의 조사보고서는 이후 박해자들이 줄곧 인용해온 근거자료가 되었다.&lt;br&gt;기념성회가 있은지 얼마 후 기독공보에서도 공격을 해왔다. ‘애향숙에 단’이라는 제하의 첫면 중톱으로 게재된 기사 역시 김삼대씨의 허위보고서에 의해 있지도 않은 악담과 성도들의 용문산 출입을 금지한다는 포고령과 같은 형식을 취한 것이었다. &lt;br&gt;양7주년 기념성회 이후부터 시작된 박해운동은 각 노회나 총회에서 조사단을 구성하는 정도에 머문 것이었으나 혹자에 의해서는 이단으로 매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선적 조치로 지파 교인들을 단속하는 한편 이단규정을 위해 각 교파의 노회나 총회에서 파견된 조사단들은 집회마다 따라붙었고 심지어 용문산에 들어와 상주하는 일까지 있었으나 결국 교리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폭발적인 기세로 일어나는 용문산의 성신운동으로 인해 피해의식을 느낀 박해자들은 우선적으로 용문산 출입 성도들을 막기 위해 인신공격과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lt;br&gt;1953년 5월말경 나운몽 목사는 대구에서 기독교부흥협회를 운영하던 바브 라이스선교사의 특별강사 초빙으로 미국의 짤비스 박사, 한국의 김치선 박사 등과 함께 대구 첫 신상집회였던 주암산집회를 인도하였다. 당시 나운몽 목사의 설교중에 ‘예수의 십자가’라는 제하의 설교에서 “과거 예수는 길노릇하시고 현재 예수는 진리노릇하시고 미래의 예수는 생명이 되신다”고 한 말이 이단성을 지적해 내려고 경북노회에서 보낸 조사위원들의 시비 거리가 되었고 그들의 주최측에 대한 압력과 ‘이번만 물러나 달라’는 나운몽 목사에게의 조건부 제안으로 인해 그는 집회도중 물러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시비가 된 이 말은 그 후 노회 심의에서 옳다는 판정이 났으므로 거론의 여지가 없어지고 말았다. &lt;br&gt;이 일이 있은지 얼마 후 경북노회측은 나운몽 장로에게 장로회 장로가 되라는 교섭을 해왔다. 당시 노회장 담임교회였던 대구 애양교회의 장로로 부임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일은 경북노회의 두 가지 방침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나 장로의 운동이 한국 교회를 삼킬 것 같은 기세여서 만일 나 장로가 교파를 만든다면 장로교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 이라는 전체적인 견해로 인해 세워진 방침이었다. &lt;br&gt;그 1안은 나 장로를 장로교 장로로 포섭해 보자는 것이었고 제2안으로는 포섭이 안 되는 경우 나 장로의 약점을 잡아내서 때려 없애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1977년, 김삼대 목사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결국 나운몽 장로는 여러차례의 권면을 받았으나 “장로교의 택자구원설보다는 감리교의 만인구원설이 내 신앙의 뿌리요 내 전도의 힘이 되었다”는 이유로 거절하였고 이로 인해 핍박은 가세되었다. &lt;br&gt;1955년 조작 허위보고서 작성의 주동이 됐던 김삼대 목사는 1977년 5월, 크리스챤신문에 사과성문을 발표하고 “1955년 경북노회에 제출한 나운몽 장로에 대한 조사보고서는 허위로 조작된 것이므로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천명하였다. 그는 나운몽 목사에게 스스로 찾아와 회개한 자리에서 “교계의 부패에서 온 사건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사실은 복음신문 77년 5월 29일자에 보도되었다.&lt;br&gt;&lt;/p&gt;&lt;p&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trong&gt;&lt;font size=&quot;4&quot;&gt;나운몽 장로 조사보고에 관한&lt;br&gt;&amp;nbsp;&amp;nbsp;&amp;nbsp; 성&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명&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서&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p&gt;&lt;p&gt;서기 １９５４년 ３월 １５일 부터 모인 대한 예수교 장로회 경북노회(제５４회)에서 선발된 용문산 기도원장 나운몽 장로 조사위원회가(조사위원 본인포함３인) 조사하여 보고된 보고문에 의하여 당시 신문사가 이를 보도한것은 세상이 주지한 바이다.&lt;br&gt;１０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후 두번 반이나 변했을 ２３년이 지난 금일에 이르러 몇몇 인사들이 상기 보고문을 근거하여 나운몽 장로를 비판하다가 명예훼손죄로 사직당국에 ６명이 입건 되어 현재 심리중에 있음을 교계가 모두 다 알고 있는 줄 본인은 사료하는 바이다. 그러던중 피소인들은 본인을 유일한 산 증인이라 하여 증언을 요구 한바 있다. 본인은 차제에 부득히 본인의 입장과 문제의 보고문에 관한 해명을 전국 교회지도자 및 전국 교우들에게 아래와 같이 성명하는 바이다.&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strong&gt; 一본인의 입장에 관하여&lt;br&gt;&lt;/strong&gt;본인은 일찌기 경북 노회장(증경회장)과 총회임원의 위치에서 교회와 기관 및 노회 총회를 위하여 봉사해 오던중 대한 예수교장로회 제４４회 총회가 대전 중앙교회에서 회집되어 참석 했다. 동 총회는 ５일간을 경기노회 총대문제로 기도하고 싸우고 찬송부르다 또 싸우고 정회 하였다가 속회하여 또 싸우다가 결국 총회장은 수라장이 되고 불행히도 총회는 분열되어 연동 총회와 승동 총회가 합법이건 불법이건 생기게 되었다.&lt;br&gt;이 양 총회에서 각기 총회수습위원을 선정하였다. 동 총회 수습 위원회가 １９６０년 １월 １５일 당시 종로２가 기독교서회 회의실에서 모였으나 이것마저 결렬됨에 따라 본인은 총회통합을 원하는 인사는 충무로교회로 회집하자는 폭탄선언을 하고 동 선언서에 동의한 목사(선교사 포함)들이 충무로교회(당시 방병덕 목사시무)에 모여 통합총회 발기위원회를 구성하였고 동년 １월 ２３일 통합총회 발기위원회는 발전적 해체하고 통합총회 추진위원회라 개칭하여 본인은 본회의 사무장으로 내외사무를 전담하여 대망의 통합총회를 １９６０년２월 １７일에 탄생시킨 후 본인의 소속 대한 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경북노회를 회집케 하여 통합총회 탄생경위를 보고한 후 동 노회에서 대구 서문교회 당회장으로 선택되어 이에 순종? 본인은 대구 서문교회 당회장으로 갔다가 오물세례 운운사건에 접하여 이에 충격 받은 본인은 모든 문제를 재고하기에 이렀다. 본인은 대전에서 분열전과 같은 통합을 원하며 정든 동역자와 제자들을 뿌리치고 통합총회를 발기하고 추진 하였는데 전체 통합의 결실을 보지못하고 당시 통합총회파 승동총회와(１９６０년 １２월 ３일 합동총회가 됨) 중립파? 호헌파? 등등으로 총회가 ４분 ５열 되어 이에 책임지고 전국적으로 ２０여명 정도 엄선하여 교계에서 물러나고 온건한 지도자들로 하여금 총회를 수습한 후 일선에서 물러난 본인을 다시 부르지 않겠느냐는 판단아래 본인은 정든 대구 장로회신학교 학감직(현 영남 신학교)을 사임했다. 그후 사업상으로 가정적으로 ２중 ３중 실패를 거듭한 후 금일에 재기를 위하여 뛰어 다니며 생활은 친구목사님들의 후원으로 하고 있는데 즉 본인 자신의 일도 감당치 못하는 형편에 옛날과 같이 타인의 일을 보러 다닐 능력이 전무함을 이해 하시와 나운몽 장로에게 피소된 분들을 위해 증언해 드리지 못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trong&gt;二 나운몽 장로 조사 보고에 관한 경위와 해명&lt;br&gt;&lt;/strong&gt;본인은 대한 에수교 장로회 경북노회에서 선택된 위원３인중 １원으로서 당시 본인의 식견으로는 조국 광복전후 우후죽순처럼 신흥종교 그룹들이 일어나 예의 주시하여 왔다. 즉 평양 이×도 목사파(평양시 하수구리９０번지) 대구 제일교회 이만×파? 경북 청송 박동×파(시온파)? 경남 재건파(최덕자 여전도사 이강록 집사)출옥파? 대구 최×원 목사파? 대구 최×출 목사파(자치파목사)피신파? 주주파 피피파 등등? 당시 본인은 수년간 입산수양한 경험을 토대로 신흥종파에 예리 한 비판을 가하기에 명수로 손꼽히어 때마침 경북 노회에서 나운몽 장로 조사위원으로 선정되어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다.&lt;br&gt;첫째 나운몽 장로에 대하여 경북 경찰국 사찰과(현 정보과) 박×× 경위 이×× 경사에게 구속 운운함을 알게 됐다. (그러나 얼마후 나운몽 장로는 무죄로 석방 되었다)&lt;br&gt;둘째 나운몽 장로는 감리교회 장로라는 말을 듣고 당시 대구 역전 감리교 향촌교회 윤×× 목사에게 경북 노회장 명의로 공문을 작성하여 본인이 직접 가지고 가서 전하였던바 윤×× 목사의 회답이 애매 하였다. 당시 윤×덕 목사가 감리교 모교회 소속 장로라는 확언만 했더라도 조사는 이에 끝났을 것이다.&lt;br&gt;셋째 본인은 조사위원 ２명과 함께 용문산 집회 수련회에 참석했다. 전국 각지에서 수천명이 모인 동 수련회에서 나운몽 장로의 설교를 ３회나 메모해 보았으나 잘못된 점을 전혀 발견치 못했다. 그러나 교통이 매우 불편한 용문산 골짝까지 수천의 성도가 운집하는 것을 보아 장차 나운몽 장로가 교파를 만든다면 장로교는 물론 기성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동요되어 교회 분열을 초래 할 것을 염려했다. 때마침 나운몽 장로 동향인인(사실 그가 동향인인지 또는 그의 말이 진실인지 그것은 ３８선이 막혀 나운몽 장로의 고향 맹중리에 가서 확인 할 길 없어 확인을 못했다. 또한 그의 신상도 자세히 파악치 못하고 그의 말만 일방적으로 들은것은 실수였지만 나운몽 장로에게 확인해 볼양으로 그의 말을 메모했다.)&lt;br&gt;나운몽 장로의 개인 신상에 관한 제보를 가져왔기에 메모하여 즉시 나운몽 장로 거실로 찾아가서 동향인(&amp;nbsp; )으로부터 입수한 제보를 하나하나 확인하려고 했지만 나운몽 장로는 우리의 질문에 답변은 커녕 버럭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면서 좥왜 감리교 장로를 장로교에서 조사하느냐 당장 나가라좦고 고함을 쳐 여하한 답도 듣지 못하고 그 자리를 나왔다. (일문 일답은 못했다.) 당시 본인은 좥목사 대접을 그렇게 할 수 있느냐좦고 괘씸한 생각도 있었으나 수천명을 상대하여 설교함에 고달픈 점을 생각하고 더 이상 나운몽 장로를 찾아가지 않았다. 동향인(&amp;nbsp; )이란 사람의 말만 듣고 그것을 그대로 보고 할 수 있느냐는 함께 간 조사위원의 말도 있었으나 본인이 고집하여 노회에 보고 하자는데 합의? 동향인(&amp;nbsp; )의 불확실한 제보에 의한것을(나운몽 장로와 일문일답한 것처럼 꾸며서) 경북노회에 보고 했는 바 이 보고문을 그대로 신문사가 보도하게 된것이다.&lt;br&gt;그 후 세월이 흘러 그 많은 신흥종교 그룹이 모두 무너지고 그 후에 생긴 통일교파와 전도관파는 기성교회와 제휴나 유대가 전혀 없지만 용문산 나운몽 장로는 감리교 장로로서 건전하게 선교하여 한국교회 부흥에 크게 이바지 함은 물론 많은 제자를 배출하여 금일에 이르렀으니 실패만 거듭한 본인의 처지에서 볼때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나운몽 장로를 ２３년전 교파를 만들지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본인이 정체도 모르는 동향인(&amp;nbsp; )이라는 말만 듣고 그 보고문을 내고 특히 그 보고 문제로 ２３년이 지난 금일에까지 시비가 되었다 하니 진실로 유감이 아닐 수 없어 그 경위를 해명하는 바이다.&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strong&gt; 三 전국교회 자도자들과 교우들에게&lt;/strong&gt;&lt;br&gt;대한 예수교 장로회 헌법상 재판국에서 재판 과정을 거쳐 판결문을 회의에 보고 채택 함으로 유죄가 확정되는 것이나 문제의 나운몽 장로 조사 사건은 우리 장로회 소속이 아니니 재판국에 회부할 성질도 아니었고 그때 우리 조사위원들이 노회에 보고한것이 그대로 효력이 발생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의 보고서 이후 ２３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나운몽 장로는 계속 감리교 장로로서 활약하고 있으니 만큼 그 보고문이 효력이 있다고 본인은 간주 할 수가 없는 것이다.&lt;br&gt;그 이유는 본인이 경북노회에서 보고한지가 ２３년전이고 보고 내용의 범법행위란 것은 해방전 즉 ４０년전 일이니 만일 그 동향인의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４０년전 하나님께 부름받아 회개하고 금일 교계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은즉 기독교 성경은 범죄자가 회개하고 큰 역사를 담당한 이들로 바울사도? 다윗왕? 삼손? 베드로 같은 성웅들이 허다 하기 때문이다.&lt;br&gt;그런데 ２３년전 본인이 낸 보고문을 인용 나운몽 장로에게 피소된 이들이 본인에게 증언을 요청하니 본인은 苦笑를 금할길이 없다. 본인 보고 언제는 나운몽 장로를 제일 반대 하던자가 지금은 지지 한다고 욕할 사람이 혹 있을지 모르나 본인은 현재 낙오가 되어 있지만 누구 못지 않게 교계를 예의주시 하고 있다.&lt;br&gt;보라? 근래 우리 기성 교파에서도 과거 형집행 까지 받았던 성직자들이 교계에 큰 몫을 일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운몽 장로건은 ４０년전 일이요 노회에 보고된지 ２３년이 지난 것을 새삼스레 지금에 와서 그 내용을 갖고 상대를 공격 한다는 것은 복음전도에 방해요 국민총화를 해치는 행위라 사료된다. 그 이유로는 우리 대한 예수교 장로회 헌법에는 목사 자격란에 무흠 ７년, 장로 자격란에 무흠 ５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 법에 준하여 보더라도 나운몽 장로에 대한 건은 무효라 사료되며 그 보고서를 가지고 나운몽 장로를 일평생 정죄 구실을 삼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신이 아니라고 본인은 사료된다. 세상법에도 형을 받은자가 ７년이 지나면 검찰에 복권신청을 하여 복권을 받는 법인데 소위 회개하면 주홍같은 붉은 죄도 백설같이 깨끗이 사함 받는다고 가르치는 목사요? 교수요? 박사들이 ４０년전 일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는것 자체가 비 기독교적 처사라고 사료된다. 특히 본인이 경북노회에 보고한 것은 그 시효가 지났다고 본다. 본인이 그간 경북노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면 이에 대해 해제원을 제출 하였을 것이다. 이에 그 조사보고문은 무효임을 선언하면서 이 성명을 발표하는 바이다. &lt;br&gt;끝으로 본인은 현재 낙오가 되어 있으나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분열 전에도 총회임원의 한 사람이었고 분열 후에도 당시 승동 총회임원의 한 사람으로 피선 되었으며 통합 총회에서도 임원의 한 사람으로 피선 되었고 특히 통합 총회 발기위원회 통합 총회 추진위원회 사무장으로 일을 했으며 그 모든 장부 및 회록을 본인이 소장하고 있으므로 한국교회 근대사, 혹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 분열사, 특히 교계 부조리를 고발 하는것 등을 집필중이니 이것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지도편달 있으시길 바라고 전국 교회와 지도자 제위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１９７７년 ５월&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일&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제５４회 경북노회&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나&amp;nbsp; 운&amp;nbsp; 몽&amp;nbsp; 장로&amp;nbsp; 조사위원&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amp;nbsp;&amp;nbsp; 金&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三&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大&lt;br&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100%&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TOP:3px;&quot; class=&quot;txt_page111&quot; height=&quot;21&quot; align=&quot;right&quot;&gt;도연승기자 / doys75@naver.com / &lt;a href=&quot;http://www.gospeltimes.co.kr/?var=news_search&amp;amp;f_id=doys75&quot;&gt;다른 기사보기&lt;/a&gt;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100%&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TOP:3px;&quot; class=&quot;txt_page111&quot; bgColor=&quot;#f1f1f1&quot; height=&quot;21&quot; align=&quot;right&quot;&gt;복음신문(http://www.gospeltime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amp;nbsp;&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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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0 Nov 2009 00:41:37 +0900</pubDate>
    <category><![CDATA[하나님, 나의 하나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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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가야금과 함께한 60년을 회고하다 - 국악인 황병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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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3-05&amp;nbsp;&lt;img border=&quot;0&quot; align=&quot;absMiddle&quot; src=&quot;http://image.yes24.com/images/chyes_new/00_Top/i_dot.gif&quot; width=&quot;1&quot; height=&quot;1&quot;&gt;&lt;font color=&quot;#418bd8&quot;&gt;조회수&lt;/font&gt; : 1,593&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210&quot; align=&quot;right&quot;&gt;&lt;tbody&gt;&lt;tr&gt;&lt;td background=&quot;http://image.yes24.com/images/chyes_new/03_BookMedia/re_bg_mail_right_01.gif&quot;&gt;&lt;div style=&quot;MARGIN-TOP:6px;MARGIN-LEFT:32px;&quot;&gt;글 / 류화선&lt;a href=&quot;mailto:yukineco@gmail.com&quot;&gt;&lt;font color=&quot;#6699cc&quot;&gt;yukineco@gmail.com&lt;/font&gt;&lt;/a&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내용상단 타이틀 부분 / 끝 --&gt;&lt;span id=&quot;lblMedia&quot;&gt;&lt;/span&gt;&lt;!-- 여백 / 시작 --&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100%&quot; background=&quot;http://image.yes24.com/images/chyes_new/03_BookMedia/re_title_top_bg_02.gif&quot; height=&quot;11&quot;&gt;&lt;tbody&gt;&lt;tr&gt;&lt;td&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여백 / 끝 --&gt;&lt;!-- 인터뷰 센터 내용 / 시작 --&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32&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100%&quot;&gt;&lt;tbody&gt;&lt;tr&gt;&lt;td class=&quot;txt150&quot; vAlign=&quot;top&quot;&gt;&lt;span id=&quot;lblPoint&quot;&gt;&lt;/span&gt;&lt;div&gt;&lt;span id=&quot;lblContent&quot;&gt;어떤 이의 생애, 그가 삶에서 이룩한 성취를 언어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할 때가 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 중에 그런 이가 있다. ‘하이파이 리뷰’에서 ‘그의 음악은 하이 스피드 시대의 현대인에게 정신적인 해독제와 같다.’는 평을 받은 황병기의 음악과 그의 삶이 그러하다. 그의 음악들은 ‘뛰어나다’ 혹은 ‘아름답다’라는 말로 묘사될 수 없다. 그의 음악은 신에게 사랑받는, 선택받은 극소수의 인간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예술적 경지다. 그의 음악은 70년대에도 충분히ㅡ오히려 과할 정도로ㅡ새로웠고 지금도 여전히 새로우면서 어떤 의미론 고전적이다.&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3293751&quot; target=&quot;new&quot;&gt;&lt;img border=&quot;0&quot; hspace=&quot;8&quot; align=&quot;right&quot; src=&quot;http://image.yes24.com/momo/TopCate70/MidCate10/6996067.jpg&quot;&gt;&lt;/a&gt; 북아현동 언덕에 있는 하얀 3층 집이 황병기가 사는 곳이다. 문 앞에서 그를 만났다.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첫인상은 예인(藝人)이라기보다는 은퇴한 노교수 같은 풍모였다. 생각해보면 거의 반생을 교단에 선 그이니, 그에게서 교수의 풍모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lt;br&gt;&lt;br&gt;그의 안내를 받아 2층 거실로 향했다. 넓은 유리창을 통해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스카이라운지 부럽지 않은 전망이라고 말을 걸었더니, ‘이곳의 매력은 침묵이다. 특히, 밤이면 절간보다 더 고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lt;br&gt;&lt;br&gt;&lt;b&gt;연세대에선 어떤 강의를 하고 계신지요.&lt;/b&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743b3b&quot;&gt;‘국악의 이해’라고 학부생들을 위한 교양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lt;/font&gt;&lt;br&gt;&lt;br&gt;&lt;b&gt;강의 반응은 어떤가요?&lt;/b&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743b3b&quot;&gt;요즘은 강의 평가라는 게 있어서요. 학기가 끝나면 학생들의 평가를 받습니다.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교수들 중에서 중간 이상을 못하면 강의를 그만둘 생각입니다. 학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강의를 할 이유가 없지요.&lt;br&gt;&lt;br&gt;저는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해요.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는 것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요. 제 인생을 돌이켜봐도 인생의 절정기가 대학생이었어요. 대학 시절은 준비기간이 아니라 인생의 클라이맥스요, 제일 행복한 순간이지요.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즐거운 것처럼 강의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lt;/font&gt;&lt;br&gt;&lt;br&gt;&lt;b&gt;요즘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lt;/b&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743b3b&quot;&gt;학생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다들 너무 채우려고만 노력하고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제대로 살지 않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는 과거와 미래에서 옵니다. 사람들은 현재를 걱정하지 않지요. 그런데 사람은 현재를 산단 말이에요.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가버린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허깨비’에 불과해요. 현재에는 과거와 미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삶을 괴롭게 하는 건 욕심입니다. 너무 치열하고 악착같은 사람이 근심 걱정이 많지요. 제가 대학생 때 우연히 서점에서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38345&quot; target=&quot;new&quot;&gt;『채근담』&lt;/a&gt;을 읽었습니다. 아직도 그 구절을 외고 있어요. &lt;br&gt;&lt;br&gt;&lt;font color=&quot;#006699&quot;&gt;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오매 바람이 지나고 나면 대는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매 기러기가 가고 나면 연못은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따라서 군자는 일이 생겨야 비로소 마음에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느니라.&lt;/font&gt;&lt;br&gt;&lt;br&gt;저는 기질적으로도 그렇고, 받아온 교육도 그렇고 뭐든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승부를 보고, 뭔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지독하게 몰두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이 구절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지요. 비우고, 버리고, 잊고,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이 글귀는 제 인생의 지침이 되었습니다.&lt;br&gt;&lt;br&gt;제가 참 아끼는 책이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1517540&quot; target=&quot;new&quot;&gt;『논어』&lt;/a&gt;인데,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1517540&quot; target=&quot;new&quot;&gt;『논어』&lt;/a&gt;의 첫 구절에 인생에 대해 너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어요. 배우고,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 제 칠십 평생 이것처럼 명쾌하게 행복한 인생을 논한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또, 배우고 때때로 익히라고 하잖아요. 열심히 하라는 게 아니라 쉬엄쉬엄, 때때로. 얼마나 좋습니까.(웃음)&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1517540&quot; target=&quot;new&quot;&gt;『논어』&lt;/a&gt;는 ‘위대한 것은 평범하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1476925&quot; target=&quot;new&quot;&gt;『맹자』&lt;/a&gt;만 해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어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하는 어조지요. 그에 비해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1517540&quot; target=&quot;new&quot;&gt;『논어』&lt;/a&gt;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첫 구절만 봐도 ‘아니한가’ 하면서 상대방에게 의견을 구하는 겁니다. 굉장히 민주적이죠.&lt;/font&gt;&lt;br&gt;&lt;br&gt;&lt;b&gt;&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3293751&quot; target=&quot;new&quot;&gt;『오동 천년, 탄금 60년』&lt;/a&gt;에 실린 선생님 사진을 보면 젊었을 때는 예인(藝人) 느낌이 물씬 나는데, 나이가 드실수록 학자 같은 느낌이 듭니다.&lt;/b&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743b3b&quot;&gt;어떤 기자가 백남준 씨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를 물었을 때 ‘나는 학자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백남준 씨가 ‘선비’라는 말을 ‘학자’로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먹을수록 저도 선비를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어렸을 때 제 별명이 ‘영감’이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사람들이 ‘점점 아이 같아진다.’고 말해요.(웃음) 돌이켜보면, 저는 아웃사이더였던 것 같아요. 작곡하는 사람, 음악 하는 사람이 어떠하다고 하는 틀에 갇히지 않았으니까요. 일반적인 상식의 틀에 절대 들어가지 않아요.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늘 그렇게 됩니다.&lt;/font&gt;&lt;br&gt;&lt;br&gt;&lt;b&gt;가야금과의 만남을 ‘숙명’이라 표현하셨는데요.&lt;/b&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743b3b&quot;&gt;운명이 아니라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좋아서 했어요. 그것으로 유명해질 생각도 없었고, 밥벌이를 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고. 정말 가야금이 좋았어요. 왜 하필 가야금이었을까, 그건 알 수 없지요. 내가 가야금을 선택한 게 아니라 가야금이 나를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법학 공부를 했으니 법률 계통의 일을 할 수도 있었겠고, 사업에 흥미가 있었으니 사업을 할 수도 있었어요. 영화나 출판계에서도 일했지만 서른여덟에 이대 교수직을 제의받고 결국 가야금에 전념하겠다고 마음을 굳혔어요.&lt;/font&gt;&lt;br&gt;&lt;br&gt;&lt;b&gt;어찌 보면 평생 좋아하는 가야금만 하셨으니 무척 즐거우셨을 것 같습니다만.&lt;/b&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743b3b&quot;&gt;이게 참 이상해요. 사람들은 나를 보고 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라 그러거든. 근데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나는 재미있는 게 싫어요. 재미없는 게 좋아요. 나는 일체 잡기를 하지 않습니다. 오락거리도 없어요. 운동도 하지 않고, 소설도ㅡ특히 재미있다고 소문난 작품은ㅡ거의 읽지 않습니다. 내 인생에 ‘재미’나 ‘오락’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야금을 켜고 곡을 만들 때 느끼는 감정은 ‘즐겁다’라고 표현하긴 적절치 않은 듯하고…….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38345&quot; target=&quot;new&quot;&gt;『채근담』&lt;/a&gt;의 구절처럼 감정을 내 안에 담아 두진 않습니다. 그저 빈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지요.&lt;/font&gt;&lt;br&gt;&lt;br&gt;&lt;b&gt;1974년, 이대 교수직을 수락하신 그해가 가야금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해인 듯한데요.&lt;/b&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743b3b&quot;&gt;그해, 가야금은 제 전부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해예요. 1974년은. 프로가 되어 가야금으로 먹고살겠다고 결심했으니까요. 서른일곱까지는 이것이 좋아서 음악을 했지만, 서른여덟부터는 음악을 밥벌이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그것이 밥벌이냐 아니냐 입니다. 예를 들어, 추사 김정희의 그림이 아무리 멋지더라도 그건 아마추어의 그림입니다. 그에 비해 김홍도의 그림은 프로의 그림이죠. 그것이 그의 직업이었으니까요. 즐거워서 하는 것과 직업으로 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lt;/font&gt;&lt;br&gt;&lt;br&gt;&lt;b&gt;프로로서 살겠다는 생각이 음악에도 반영되었을까요?&lt;/b&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743b3b&quot;&gt;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변했지만 음악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67&quot; target=&quot;new&quot;&gt;&amp;lt;침향무&amp;gt;&lt;/a&gt;에서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592624&quot; target=&quot;new&quot;&gt;&amp;lt;달하 노피곰&amp;gt;&lt;/a&gt;까지 다섯 장의 앨범이 있는데,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67&quot; target=&quot;new&quot;&gt;&amp;lt;침향무&amp;gt;&lt;/a&gt;는 1974년도 앨범이고,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592624&quot; target=&quot;new&quot;&gt;&amp;lt;달하 노피곰&amp;gt;&lt;/a&gt;은 1997년에 발매된 앨범입니다. 그런데 그 앨범들 사이에서 어떠한 변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내 음악은 어떤 의미에서 70년대에 이미 완성된 상태였을지도 모릅니다. ‘성장’이라는 게 내 음악엔 없었던 듯하네요.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67&quot; target=&quot;new&quot;&gt;&amp;lt;침향무&amp;gt;&lt;/a&gt;뾽 올해로 나온 지 31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국악 앨범에서도 그렇고 전체 앨범 중에서 이 정도로 장수한 앨범은 아마 찾기 힘든 겁니다. 저는 절대 베스트셀러 음반이나 히트송은 못 만듭니다. 그러나, 제 음악은 항상 팬이 있어요. 그 수가 소수지만 꾸준히 제 음악을 찾아 듣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제 음악을 듣는 사람 중에서 클래식 음악 팬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국악 팬들은 제 음악을 잘 안 들어요. 서양 음악을 많이 듣는 분들이 ‘클래식 듣다가 선생님 음악을 들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습니다.’라고 해요. 옛날에는 음악 감상실이라고 있었는데, 여기선 거의 서양 음악만 틀어요. 그런 데서 제 음반을 틀곤 했답니다.&lt;/font&gt;&lt;br&gt;&lt;br&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5&quot; align=&quot;left&quot;&gt;&lt;tbody&gt;&lt;tr&gt;&lt;td&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5&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40&quot;&gt;&lt;tbody&gt;&lt;tr&gt;&lt;td&gt;&lt;img border=&quot;0&quot; src=&quot;http://image.yes24.com/images/chyes/interview/main_media/20090305/01.jpg&quot;&gt;&lt;/td&gt;&lt;/tr&gt;&lt;tr&gt;&lt;td align=&quot;middle&quot;&gt;&lt;font color=&quot;#006666&quot; size=&quot;2&quo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gt;왜 사람들이 선생님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하시나요.&lt;/b&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743b3b&quot;&gt;글쎄요. 나는 청자(聽者)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공연을 하러 가거나 강연을 하러 가도 청중이 몇 명이 있든, 아니 한 명이 없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람이 있으면 공연을 하면 되고, 없으면 집으로 돌아오면 되니까. 솔직히 공개 연주는 별로 안 하고 싶어요. 내 방에서 문 닫고 연주해도 되는데 왜 밖에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연주를 하나, 하는 마음이 든 적도 있어요.&lt;br&gt;&lt;br&gt;내가 국악인이니까, 사람들이 ‘요즘 국악이 홀대받는 현실이 서운하지 않느냐’고 많이 묻는데 저는 솔직히 하나도 안 서운합니다. 나는 내 음악을 보배롭게 생각합니다. 그 보배를 굳이 여러 사람들이 가질 필요는 없는 거죠. 듣고 느낀다면 그걸로 족하고, 듣지 않는다면 그만입니다. 나는 이제까지 사람들에게 ‘내 음악을 들어달라’고 부탁 내지 구걸한 적이 없습니다. 연주하는 데 청중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내가 사람들을 찾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를 찾더군요.&lt;br&gt;&lt;br&gt;음악을 연주하면서 좀 색다르게 감동했던 적은 있어요. 제가 북한 방문 민간인 1호예요. 1990년에 평양에서 연주를 했는데, 아, 내 가야금 소리가 이 높고 높은 분단의 장벽을 뚫어주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음악 하는 사람으로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lt;br&gt;&lt;br&gt;내 음악에는 여백이 많아요. 그리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건 침묵이지요. 이 두 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 음악에 끌리는 건 아닐까요. 음악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침묵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잘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제 음악에 대한 평가는 ‘하이파이 리뷰’의 ‘하이스피드 시대의 현대인에게 정신적인 해독제와 같다.’입니다. 그리고 ‘신비로운 동양의 수채화’라고 평한 뉴욕타임스의 글도 생각이 나네요.&lt;br&gt;&lt;br&gt;저는 제 음악을 오락이나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음악을 만들 때나 들을 때나 언제나 진지하게 집중해서 음악 자체에만 몰두하지요. 나에겐 배경음악이란 없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뭘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해요. 굉장히 공을 들여서 음악을 감상합니다. MP3와 인터넷을 통해 음악을 소비하는 요즘 세대와는 상당히 다르지요.&lt;/font&gt;&lt;br&gt;&lt;br&gt;&lt;b&gt;지금 세대는 황병기라고 하면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72&quot; target=&quot;new&quot;&gt;「미궁」&lt;/a&gt;을 떠올리는데요. 선생님께는 어떤 의미가 있는 곡인지 궁금합니다.&lt;/b&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743b3b&quot;&gt;음. 특별히 의미를 찾는다면 내가 만든 음악 중에 제일 유명한데 제일 안 팔렸다는 것?(웃음)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72&quot; target=&quot;new&quot;&gt;「미궁」&lt;/a&gt;은 젊은 사람들이 특히 많이 듣는 것 같습니다. 들어본 사람들은 다들 굉장히 소름 끼치고 두렵다고 하더군요. &lt;/font&gt;&lt;br&gt;&lt;br&gt;&lt;b&gt;개인적으로 저는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72&quot; target=&quot;new&quot;&gt;「미궁」&lt;/a&gt;을 듣고, 죽음에의 공포를 떠올렸습니다.&lt;/b&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743b3b&quot;&gt;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요. 군대에 갔더니 한밤중에 담력 훈련을 시킨다고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72&quot; target=&quot;new&quot;&gt;「미궁」&lt;/a&gt;을 틀어줬다고 하더군요. 직접 경험한 사람에게 들은 말이에요. 인터넷을 통해 이상한 소문도 많이 돌았지요.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72&quot; target=&quot;new&quot;&gt;「미궁」&lt;/a&gt;을 듣고 죽은 사람이 있다더라, 300명이 죽었더라, 뭐 이런 소문. 그래서 제 홈페이지에 아예 ‘미궁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라는 글을 따로 올렸습니다.&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72&quot; target=&quot;new&quot;&gt;「미궁」&lt;/a&gt;은 굉장히 이질적인 소리들로 문명 이전의 인간의 소리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72&quot; target=&quot;new&quot;&gt;「미궁」&lt;/a&gt;은 1975년에 창작했는데, 지금 들어도 낯설고 전위적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계속 이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72&quot; target=&quot;new&quot;&gt;「미궁」&lt;/a&gt;에서 뭔가를 찾아내는 것 같아요. 이 음악은 &lt;a href=&quot;http://ticket.yes24.com/Home/Perf/PerfDetailInfo.aspx?IdPerf=534&quot; target=&quot;new&quot;&gt;&amp;lt;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amp;gt;&lt;/a&gt;에 삽입되었고, 지금 모바일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제의도 들어왔어요. 황병기 하면 다들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72&quot; target=&quot;new&quot;&gt;「미궁」&lt;/a&gt;을 떠올리는데 사실 제 음악 중에 제일 많이 팔리고, 사랑받은 음악은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067&quot; target=&quot;new&quot;&gt;「침향무」&lt;/a&gt;입니다. 그다음이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592624&quot; target=&quot;new&quot;&gt;&amp;lt;달하 노피곰&amp;gt;&lt;/a&gt;에 수록된 곡들이지요.&lt;/font&gt;&lt;br&gt;&lt;br&gt;&lt;b&gt;일흔이 넘으셨는데 꾸준히 연주회를 여신다고 들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으신가요.&lt;/b&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743b3b&quot;&gt;서양 예술과 달리 동양 예술은 표현하는 데 있어 육체적인 부분이 적은 편입니다. 서양 음악은 테크닉을 표현하기 위해 힘이 필요하지요. 육체적인 음악입니다. 그에 비해 동양 음악은 테크닉보다는 정신적인 이해가 더 필요한 편이지요. 아무래도 동양적인 것은 정적이고 정신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춤을 봐도, 서양의 발레 무용수는 일찍 은퇴하지만, 우리의 전통춤인 승무는 환갑이 넘어도 출 수 있지요.&lt;br&gt;&lt;br&gt;아직 순발력이 괜찮은 편이라 연주하는 데 힘들진 않습니다. 외국 연주 여행도 다니고, 국내 공연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대전 카이스트에 내려가 연주회를 할 예정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연주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lt;/font&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yes24.com/corner/Book/beautifullibrary/BeautifulLibrary_sub135.aspx&quot; target=&quot;new&quot;&gt;&lt;b&gt;☞ [아름다운 서재]국악인 황병기 님이 추천하는 책&lt;/b&gt;&lt;/a&gt;&lt;br&gt;&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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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9 Nov 2009 22:53:48 +0900</pubDate>
    <category><![CDATA[그대, 노래하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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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성공하고 싶다면 칼퇴근 하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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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quot;d&quot;&gt;&lt;span class=&quot;d1&quot;&gt;[머니투데이] 2009년 11월 28일(토) 오전 08:42&lt;/span&gt; &lt;br&gt;&lt;br&gt;[머니투데이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1%E8%BF%EB%BC%B7&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김용섭&lt;/font&gt;&lt;/a&gt;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2030성공습관]기업문화와 창의력]업무를 다 끝내고도 퇴근시간 넘겨서까지 자리에 앉아 있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이런 경험 없는 직장인이 없을 것이다.&lt;br&gt;&lt;br&gt;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직장문화에선 눈치 보는 야근은 여전하다. 할일 없이 앉아있다고 책보거나 음악 듣는 것은 절대 해선 안될 눈치 없는 짓이다. 퇴근하자니 눈치 보이고, 할일 없이 앉아있자니 좀이 쑤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문화가 우리에게 있다. 비효율과 비상식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lt;br&gt;&lt;br&gt;눈치 보는 야근에 버금갈 것이 과도한 업무로 인한 상시적 야근이다. 며칠만 일하고 마는 거라면 야근해도 상관없다. 매일 일해야 하는 사람에게 야근은 독약과 같다. 직장생활은 마라톤 같은 것이다. 하루 무리해서 달리면 다음날 지장이 생기기 마련이고, 전체 페이스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 아주 급할 때 가끔 야근해야 야근의 효과도 생기는 것이거늘.&lt;br&gt;&lt;br&gt;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퇴근시간 개념이 사라졌다. 저녁까지 회사에서 먹는 게 당연시 되었고, 심지어 야식도 자주 먹게 된다. 상시적 야근은 자연스럽게 근로시간 연장으로 이어지지만 그렇다고 월급이 더 오르는 건 아니다.&lt;br&gt;&lt;br&gt;대개 회사의 규정으로는 주 5일 근무에 오후 6시(혹은 7시) 퇴근이라지만 실제로 그것을 늘 지켜내는 직장인은 드물다. 아주 강심장이거나 아니면 아주 능력이 탁월한 직장인이 아니고선 말이다. 직장인들에게 퇴근시간은 지키지 못할 약속 같은 것이다.&lt;br&gt;&lt;br&gt;칼퇴근, 직장인들에겐 참 서글픈 말이다. 출근과 퇴근 시간이 명확히 정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직장인들은 출근시간은 칼처럼 지키지만 퇴근 시간은 고무줄인 게 현실이다. 늦게 퇴근했다고 다음날 출근시간 늦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늦게 퇴근한다고 야근수당을 챙겨주는 곳도 별로 없다. 그나마 야근도 아니고 칼퇴근도 아닌 어중간한 퇴근은 야근수당을 거론하기도 불가능하다.&lt;br&gt;&lt;br&gt;칼퇴근이 얼마나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2%DE%C0%CC%BE%FA%C0%B8%B8%E9&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꿈이었으면&lt;/font&gt;&lt;/a&gt; 직장인 밴드 중에 &amp;#39;칼퇴근 밴드&amp;#39; 라는 곳이 있을 정도고, 칼퇴근을 다룬 패러디나 ucc도 넘쳐난다. 직장인이 사표 쓰고 싶은 사유 중 &amp;#39;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반복 야근&amp;#39;은 상위에 랭크될 정도이고, 야근이 일상화된 기업문화, 상시 눈치 보는 야근이 만연하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으로 갈수록 야근빈도는 더 높다.&lt;br&gt;&lt;br&gt;경제위기가 오면서 직장인들의 직장문화는 더 살벌해졌다. 야근이 더 늘었다. 최근의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C3%EB%BE%F7%C1%A4%BA%B8&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취업정보&lt;/font&gt;&lt;/a&gt;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야근시간이 길어졌다는 비율이 35%에 이르렀다고 한다. 가뜩이나 야근이 많았는데 최근 들어 더 많아진 셈이다. 주말에 일하는 비율도 따라서 늘었다. 구조조정을 해서 인력은 줄었지만 업무는 줄지 않았기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업무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상시적 야근은 가혹하고도 슬픈 현실이다.&lt;br&gt;&lt;br&gt;출근시간에 늦거나, 어떤 사유로 못나오게 되면 그에 따른 패널티를 받는다. 그렇다고 퇴근시간 지나서 야근을 했다거나 주말에도 나왔다고해서 수당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근무시간을 내가 어길땐 문제삼고, 회사가 어길땐 넘어간다. 말이 안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직장문화에선 말이 된다. 상식에 어긋나는 것은 늘 불만이 되기 마련이고, 불만이 누적되면 직장인의 사기 저하가 되고, 이는 결국 기업의 생산성 감소로 이어진다. 잘못된 직장문화를 방치하면 직원뿐아니라 기업도 손해보는 것이다.&lt;br&gt;&lt;br&gt;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amp;#39;칼퇴근 꿈&amp;#39;은 요원하다. 매일 칼퇴근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러면 적어도 꼭 해야 할 일이 남아있을 때 외에 일 없이 눈치 보며 하는 야근만큼은 사라지게 하자. 이건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 회사로서도 직장인 본인으로서도 눈치 보는 야근으로 자리 앉아있는건 득 없는 시간낭비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영자들도 생각을 같이 한다.&lt;br&gt;&lt;br&gt;&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C7%CF%C0%CC%B4%D0%BD%BA&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하이닉스&lt;/font&gt;&lt;/a&gt;는 매월 둘째주와 넷째주 수요일은 정시 퇴근해 가족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라며 &amp;#39;하이닉스데이&amp;#39;를 만들기까지 했다. 야근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기업에선 특별히 정시퇴근하는 날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지켜져야할 정시 퇴근이 날을 만들어야할 만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칼퇴근을 포기하지 마라. 칼퇴근은 직장인의 경쟁력과도 관련되고, 기업의 성공과도 관련되기 때문이다.&lt;br&gt;&lt;br&gt;칼퇴근에 거부감 가진 사장이나 상사는 어리석은 거다. 당장 코앞의 이익에 진짜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야근을 지속하다간 쓰러지기 마련이다. 과로사는 남의 일이 아니다. 잦은 야근에 시달리고 업무스트레스를 받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언제 닥칠지 모를 일이다. 잦은 야근은 집중력도 떨어뜨리고 업무효율을 저하시킨다.&lt;br&gt;&lt;br&gt;기업 경영은 하루이틀 하고 말게 아니다. 매일매일 전쟁치루듯 목숨 걸고 일하던 시대는 갔고, 그렇게 한다고 경쟁에서 이기는 시대도 갔다. 창의적인 접근이 기회를 만들어내는 시대다.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고, 장기적으로 유지를 해야하는 것이 경영이다. 그런 점에서 칼퇴근 문화는 사장들이 앞장서서 만들어야 한다. 집중해서 근무시간에 일 다 처리하게 하고, 칼퇴근하고 재충전해서 다음날에 100% 에너지를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lt;br&gt;&lt;br&gt;창조경영을 강조하는 기업이라면 더더욱 칼퇴근을 늘려야 한다. 말로만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하면서 매일 야근에 시달리며 눈앞에 닥친 과도한 업무량을 소화해내야 하는 환경이라면 결코 창의력과 상상력은 생겨날 수 없다.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일해봐’, ‘참신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봐’ 하는 주문은 아무데서나 통하는게 아닌 것이다.&lt;br&gt;&lt;br&gt;주문은 할 수 있어도, 그에 따른 창의력과 상상력이 나오려면 조직에서의 공식적인 배려와 제도가 정착되어져야만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자발성과 충성심에만 기대한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창조경영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고,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다.&lt;br&gt;&lt;br&gt;인재경영을 강조하는 기업이나 자기계발을 위해 무언가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도 정시 퇴근은 필수다. 직원의 자기계발에 비용을 대주진 못할망정 그들의 자기계발 할 시간도 배려하지 않는 것은 곤란하다. 직원의 자기계발은 결국 회사의 인적자원의 가치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lt;br&gt;&lt;br&gt;매일 야근하는 직원들은 새로운 자기계발이나 미래에 대한 투자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금세 도태되는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직원 개인이나 기업 모두에게 손실이다. 오늘 당장 우리 스스로의 칼퇴근을 허하자!&lt;br&gt;&lt;br&gt;[관련기사]&lt;br&gt;☞ 비즈니스 라이팅, 이렇게 하면 향상된다&lt;br&gt;☞ 연봉협상에서 큰소리 치는 방법&lt;br&gt;☞ 당신도 실속없이 바쁜 직장인?&lt;br&gt;☞ CEO가 되고 싶으면 □□□를 갖춰라&lt;br&gt;☞ 잡스ㆍ게이츠ㆍ&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E%C8%C3%B6%BC%F6&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안철수&lt;/font&gt;&lt;/a&gt;의 공통점&lt;br&gt;&lt;br&gt;모바일로 보는 머니투데이 &amp;quot;5200 누르고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NATE&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NATE&lt;/font&gt;&lt;/a&gt;/magicⓝ/ez-i&amp;quot;&lt;br&gt;김용섭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lt;br&gt;&amp;lt;저작권자 ⓒ &amp;#39;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amp;#39; 머니투데이&amp;gt;&lt;br&gt;김용섭(기자) &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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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8 Nov 2009 14:14:06 +0900</pubDate>
    <category><![CDATA[내일 그리고 희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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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39;장군의 손녀&#39; 김을동 &quot;MB정부, 친일인사 너무해&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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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quot;d&quot;&gt;&lt;span class=&quot;d1&quot;&gt;[노컷뉴스] 2009년 07월 20일(월) 오후 01:35&lt;br&gt;&lt;/span&gt; &lt;/div&gt;&lt;div id=&quot;content&quot; class=&quot;c&quot;&gt;&lt;b&gt;현병철,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E%C8%BA%B4%B8%B8&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안병만&lt;/font&gt;&lt;/a&gt;,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C0%CC%B0%C7%B9%AB&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이건무&lt;/font&gt;&lt;/a&gt; &amp;#39;친일파 거물 후손&amp;#39; 의혹 제기&lt;/b&gt;&lt;br&gt;&lt;br&gt;&lt;b&gt;[CBS정치부 이재준 기자]&lt;/b&gt;&lt;br&gt;&lt;div style=&quot;LINE-HEIGHT:150%;FONT-SIZE:100%;&quot; align=&quot;center&quot;&gt;&lt;img style=&quot;MARGIN:5px 0px;CURSOR:　hand;&quot; title=&quot;&amp;#x00d074;&amp;#x00b9ad;&amp;#x00d558;&amp;#x00c2dc;&amp;#x00ba74; &amp;#x00c6d0;&amp;#x00bcf8;&amp;#x00d06c;&amp;#x00ae30; &amp;#x00c774;&amp;#x00bbf8;&amp;#x00c9c0;&amp;#x00b97c; &amp;#x00bcf4;&amp;#x00c2e4; &amp;#x00c218; &amp;#x00c788;&amp;#x00c2b5;&amp;#x00b2c8;&amp;#x00b2e4;.&quot; vspace=&quot;5&quot; src=&quot;http://img.news.yahoo.co.kr/picture/2009/70/20090720/2009072013355147670_134019_0.jpg&quot;&gt;&lt;/div&gt;&lt;br&gt;&lt;br&gt;백야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1%E8%C1%C2%C1%F8&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김좌진&lt;/font&gt;&lt;/a&gt; 장군의 손녀로도 유명한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C4%A3%B9%DA%BF%AC%B4%EB&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친박연대&lt;/font&gt;&lt;/a&gt;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1%E8%C0%BB%B5%BF&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김을동&lt;/font&gt;&lt;/a&gt; 의원이 20일 현 정부의 &amp;#39;친일 후손 인사&amp;#39;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lt;br&gt;&lt;br&gt;이날 공식 임명장을 받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비롯, 안병만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1%B3%C0%B0%B0%FA%C7%D0%B1%E2%BC%FA%BA%CE+%C0%E5%B0%FC&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교육과학기술부 장관&lt;/font&gt;&lt;/a&gt;과 이건무 문화재청장 등이 모두 &amp;#39;친일 거물의 후손&amp;#39;이란 의혹을 제기한 것.&lt;br&gt;&lt;br&gt;김을동 의원은 이날 개인 성명을 내어 &amp;quot;친일파 후손이 활개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도 되는 것인지, 현 정부의 역사인식 부재에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amp;quot;고 성토했다.&lt;br&gt;&lt;br&gt;김 의원은 특히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해 &amp;quot;그의 종증조부는 &amp;#39;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amp;#39;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amp;#39;친일파 708인 명단&amp;#39;에 올라있는 친일 경력자의 후손&amp;quot;이라고 지적했다.&lt;br&gt;&lt;br&gt;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현 위원장의 종증조부가 갖고 있던, 시가 10억원의 땅 3만 2천㎡를 국가에 귀속시킨 점으로 볼 때 이미 명백한 &amp;#39;반민족 행위자&amp;#39;임이 드러났다는 것.&lt;br&gt;&lt;br&gt;김 의원은 또 안병만 교육 장관에 대해서도 &amp;quot;그 부친이 식민지시대 순사와 순사부장을 지낸 분&amp;quot;이라며 &amp;quot;어찌 그 직계후손이 백년대계를 이끌어갈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1%B3%C0%B0%BA%CE&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교육부&lt;/font&gt;&lt;/a&gt;의 수장이어야 하느냐&amp;quot;고 반문했다.&lt;br&gt;&lt;br&gt;이건무 문화재청장에 대해서도 &amp;quot;그 조부가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C0%CC%BF%CF%BF%EB&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이완용&lt;/font&gt;&lt;/a&gt;이 고문으로 있던 &amp;#39;조선사편수회&amp;#39;에서 활동했던 거물 사학자의 후손&amp;quot;이라며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lt;br&gt;&lt;br&gt;김을동 의원은 &amp;quot;이젠 세상이 달라졌으니 이해하고 용인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정부는 한참 착각하고 있는 것&amp;quot;이라며 &amp;quot;국민들은 친일후손 인사들이 요직에 오르는 걸 결코 바라지 않는다&amp;quot;고 지적했다.&lt;br&gt;&lt;br&gt;그러면서 &amp;quot;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민족의식 고취와 애국심, 국가의 정체성과 올바른 역사관, 올곧은 정의감은 누가 어떻게 심어줄지 걱정이 앞선다&amp;quot;고 우려했다.&lt;br&gt;&lt;br&gt;김 의원은 또 &amp;quot;친일적 인물의 후손은 마땅히 정부기관의 요직에 임명해선 안된다&amp;quot;며 &amp;quot;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독립 애국 선열에 대한 도리가 아니기 때문&amp;quot;이라고 강조했다.&lt;br&gt;zzlee@cbs.co.kr&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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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0 Jul 2009 20:59:14 +0900</pubDate>
    <category><![CDATA[이런저런 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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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강도에 살해된 부부의 장애입양아 13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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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quot;d&quot;&gt;&lt;span class=&quot;d1&quot;&gt;[서울신문] 2009년 07월 20일(월) 오후 04:30&lt;/span&gt; &lt;br&gt;&lt;br&gt;[서울신문]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C7%C3%B7%CE%B8%AE%B4%D9&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플로리다&lt;/font&gt;&lt;/a&gt;주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C6%E6%BB%E7%C4%DD%B6%F3&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펜사콜라&lt;/font&gt;&lt;/a&gt; 근처의 뷸라란 곳에 살고 있던 버드(66)와 멜라니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A%F4%B8%B5%BD%BA&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빌링스&lt;/font&gt;&lt;/a&gt;(43) 부부는 집안에 든 강도들에게 총격을 받아 처참하게 살해됐다.&lt;br&gt;&lt;br&gt;이들 부부는 13명의 입양아를 집에서 키우고 있었다.모두 자폐증,다운증후군과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로 누군가의 보살핌이 절실히 필요한 아이들이었다.강도가 든 그 시간,9명의 입양아가 집안에 함께 있었다.&lt;br&gt;&lt;br&gt;딸 애슐리 마컴(26)이 부모가 살해된 그 집에 이사 들어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겠다고 다짐했다고 abc 뉴스가 현지 펜사콜라 뉴스 저널을 인용,19일 보도했다.그는 “우리 아빠는 매우 깨끗한 기업인이다.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계속 일했다.”면서 자신이 아이들을 돌보았으면 하는 것이 평소 엄마의 바람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lt;br&gt;&lt;br&gt;전날에는 13명의 입양아뿐만 아니라 마컴 등 장성한 형제자매와 이모 등 모두 20명의 일가가 비극적인 참사 이후 처음으로 집에 들어가 대청소를 실시했다.새로 보안장치를 달고 자물쇠와 문도 새로 달았다.카페트도 새로 깔았다.&lt;br&gt;&lt;br&gt;빌링스 부부는 17일 안장됐다.&lt;br&gt;&lt;br&gt;사건 뒤 열흘이 지나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특히 남편 버드가 1990년대 스트립 클럽을 경영했던 전력에 이어 두 번째 아내 신디 리브와 함께 출생 기록을 조작해 2100달러를 받고 신생아를 빼돌리려 한 혐의로 체포돼 2년의 보호관찰 명령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lt;br&gt;&lt;br&gt;1993년 두 번째 결혼이 실패한 뒤 그의 재산은 한달 수입 1190달러에 100달러의 현금 포함,달랑 1400달러인 것으로 신고했다.그리고 그 뒤 4개월 만에 멜라니와 세 번째 결혼했다.&lt;br&gt;&lt;br&gt;이 때부터 입양이 시작됐다.지난 2005년 이들 가족의 얘기를 대서특필한 펜사콜라 뉴스 저널에 따르면 멜라니의 둘째 딸이 자폐증과 뇌성마비로 고통받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나이에 입양아들을 거둔다고 알려졌다.&lt;br&gt;&lt;br&gt;이들 대가족이 머무르던 집은 70만달러짜리였다.땡전 한푼 없던 버드가 갑자기 재산을 불려 이 집에서 여러 명을 고용해 자녀들을 돌볼 수 있게 된 데 이렇다할 명확한 설명이 없다고 AP통신은 지적했다.&lt;br&gt;&lt;br&gt;지금까지 강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이들은 7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다.경찰은 장애 입양아들의 약물 처방전과 가족 서류,약간의 보석류가 들어있던 금고를 노린 강도 행각으로 일단 보고 있다.&lt;br&gt;&lt;br&gt;하지만 남편 휴즈를 꾀어 범행에 끌어들여 강탈한 금고를 자신의 집 뒷마당에 파묻게 한 파멜라 위긴스(47)가 주택도 여러 채 보유하고 있고 요트도 소유할 정도의 재산가로 알려져 범행 동기에 의문을 더하고 있다.현지 경찰 역시 정황상 살인이 강도들의 주된 동기가 아니라 마약 거래가 틀어졌을 때 살인극 같은 냄새를 짙게 풍긴다고 의심하고 있다.&lt;br&gt;&lt;br&gt;천사표 부부의 선행에 추악한 마약 범죄의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지 않을지 미국 언론은 지금 긴장하고 있다.&lt;br&gt;&lt;br&gt;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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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0 Jul 2009 20:48:28 +0900</pubDate>
    <category><![CDATA[세상사 새옹지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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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동영상] 대한문 盧 분향소 파손 놓고 保·革 갈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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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quot;d&quot;&gt;&lt;span class=&quot;d1&quot;&gt;[서울신문] 2009년 06월 24일(수) 오후 02:30&lt;/span&gt;&lt;br&gt;&lt;img style=&quot;MARGIN:5px 0px;CURSOR:　hand;&quot; title=&quot;&amp;#x00d074;&amp;#x00b9ad;&amp;#x00d558;&amp;#x00c2dc;&amp;#x00ba74; &amp;#x00c6d0;&amp;#x00bcf8;&amp;#x00d06c;&amp;#x00ae30; &amp;#x00c774;&amp;#x00bbf8;&amp;#x00c9c0;&amp;#x00b97c; &amp;#x00bcf4;&amp;#x00c2e4; &amp;#x00c218; &amp;#x00c788;&amp;#x00c2b5;&amp;#x00b2c8;&amp;#x00b2e4;.&quot; hspace=&quot;10&quot; src=&quot;http://img.news.yahoo.co.kr/picture/2009/h2/20090624/20090624143025921h2_143025_0.jpg&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div id=&quot;content&quot; class=&quot;c&quot;&gt;[서울신문 나우뉴스TV]&lt;br&gt;&lt;br&gt;24일 새벽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 자리잡은 고(故)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3%EB%B9%AB%C7%F6+%C0%FC+%B4%EB%C5%EB%B7%C9&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노무현 전 대통령&lt;/font&gt;&lt;/a&gt;의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A%D0%C7%E2%BC%D2&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분향소&lt;/font&gt;&lt;/a&gt;가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에 의해 파손됐다.특히 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가 자신들이 벌인 일이라고 주장하자 그동안 이곳 시민 분향소를 지켜온 이들은 “만행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라고 밝혀 양쪽의 충돌이 우려된다.&lt;br&gt;&lt;br&gt;&lt;embed allowscriptaccess=&quot;never&quot;  height=&quot;345&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width=&quot;400&quot; src=&quot;http://play.tagstory.com/player/TS00@V000333325&quot;&gt;&lt;/embed&gt; &lt;br&gt;&lt;br&gt;&lt;br&gt;●시민들 “물리적 수단 동원해서라도 분향소 지킬 것” &lt;br&gt;&lt;br&gt;분향소를 운영하는 시민들은 이날 오전 대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벽에 일어난 분향소 침탈 작전은 경찰과 용역깡패,보수단체의 치밀한 사전계획 하에 이뤄진 합동작전이었다.”고 주장했다.&lt;br&gt;&lt;br&gt;이들은 “새벽 5시42분쯤 검은색 복장을 한 50여명의 용역들이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1%A4%C8%AD%B9%AE&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광화문&lt;/font&gt;&lt;/a&gt; 쪽에서 미니버스 3대를 타고 천막 뒤편에 내려 분향소를 침탈했다.”면서 “이들은 삽시간에 자원봉사자들을 밀어내고 천막을 부쉈다.”고 설명했다.1분 뒤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보수단체 회원 100여명이 가세해 모든 천막과 집기를 부순 뒤 영정을 가지고 차를 타고 사라졌다고 시민들은 주장했다.&lt;br&gt;&lt;br&gt;특히 이들은 “시민분향소를 사이에 두고 불과 30m 거리 양쪽에 수십명의 경찰이 배치돼 있었지만 아무런 저지를 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범죄방조이며 직무유기”라고 비난했다.&lt;br&gt;&lt;br&gt;시민들은 몇시간 뒤 국민행동본부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C%AD%C1%A4%B0%A9&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서정갑&lt;/font&gt;&lt;/a&gt; 본부장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3%EB+%C0%FC+%B4%EB%C5%EB%B7%C9&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노 전 대통령&lt;/font&gt;&lt;/a&gt;의 영정이 자신들의 사무실에 있다고 밝힌 것을 놓고 “만행을 저지르고도 마치 전리품을 획득했다는 듯 기자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후안무치”라고 비난한 뒤 “어떻게 저들을 같은 국민,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lt;br&gt;&lt;br&gt;이들은 앞으로는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 분향소 침탈을 허용하지 않겠다면서 분향소 주위에 상주하고 있는 경찰도 철수하라고 요구했다.&lt;br&gt;&lt;br&gt;●국민행동본부 “경찰이 못한 일 우리가 한 것” &lt;br&gt;&lt;br&gt;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은 “국민행동본부 소속 애국기동단 요원 20명과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0%ED%BF%B1%C1%A6+%C0%FC%BF%EC%C8%B8&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고엽제 전우회&lt;/font&gt;&lt;/a&gt; 회원 30명이 분향소를 치웠다.”며 “노 전 대통령 영정은 훼손하지 않고 따로 보관하고 있으며 오후 2시쯤 경찰에 넘길 예정”이라고 말했다.&lt;br&gt;&lt;br&gt;그는 “서울 한복판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진 불온한 세력들이 시민분향소를 빌미로 무법천지를 만들고 있다.”며 “정부가 철거 집행을 할 수 없다면 국민이 나서 법 집행을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lt;br&gt;&lt;br&gt;서 본부장은 분향소를 파손한 사람들을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하겠다는 경찰 방침에 대해 “불법 시설물을 치운 것이라 잘못이 없다.”고 반박한 뒤 “오히려 해당 시설물을 놔둔 경찰이 직무 유기를 했다.”고 비난했다.&lt;br&gt;&lt;br&gt;●경찰 신원 확인 뒤 재물손괴 혐의 입건 방침 &lt;br&gt;&lt;br&gt;한편 경찰은 대한문 주변 폐쇄회로(CC) TV 등을 분석해 분향소를 부순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한 뒤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lt;br&gt;&lt;br&gt;경찰은 분향소 파손을 방관했다는 시민들의 주장에 “이른 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경비 인력들이 행동에 혼란을 겪었을 수도 있다.”고 해명하면서 “그 부분도 조사해 경위를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lt;br&gt;&lt;br&gt;이곳 분향소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달 23일부터 운영됐으며,일부 보수단체들은 끊임없이 철거를 요구해 왔다.분향소를 운영하는 시민들은 파손된 시설을 고쳐 노 전 대통령 49재가 열리는 다음달 10일까지 조문객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lt;br&gt;&lt;br&gt;하지만 오전 11시 현재,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친 채 천막 설치를 막고 있어 시민들과 경찰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lt;br&gt;&lt;br&gt;글 /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lt;br&gt;&lt;br&gt;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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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5 Jun 2009 00:28:06 +0900</pubDate>
    <category><![CDATA[진실, 비극과 희극]]></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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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故 강희남 목사의 유서…&#39;파장&#39; 예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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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quot;d&quot;&gt;&lt;span class=&quot;d1&quot;&gt;[뉴시스] 2009년 06월 07일(일) 오전 01:07&lt;/span&gt;&amp;nbsp;&lt;br&gt; &lt;/div&gt;&lt;div id=&quot;content&quot; class=&quot;c&quot;&gt;&lt;center style=&quot;PADDING-BOTTOM:20px;&quot;&gt;&lt;img style=&quot;MARGIN:5px 0px;CURSOR:　hand;&quot; title=&quot;&amp;#x00d074;&amp;#x00b9ad;&amp;#x00d558;&amp;#x00c2dc;&amp;#x00ba74; &amp;#x00c6d0;&amp;#x00bcf8;&amp;#x00d06c;&amp;#x00ae30; &amp;#x00c774;&amp;#x00bbf8;&amp;#x00c9c0;&amp;#x00b97c; &amp;#x00bcf4;&amp;#x00c2e4; &amp;#x00c218; &amp;#x00c788;&amp;#x00c2b5;&amp;#x00b2c8;&amp;#x00b2e4;.&quot; hspace=&quot;10&quot; src=&quot;http://img.news.yahoo.co.kr/picture/2009/80/20090607/2009060701071711180_011641_0.jpg&quot; width=&quot;500&quot;&gt;&lt;/center&gt;【전주=뉴시스】6일 세상을 떠난 故 강희남 목사(89)의 짧은 유서 한장이 향후 우리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lt;br&gt;&lt;br&gt;강 목사는 이날 저녁 자신의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지기 전 &amp;#39;남기는 말&amp;#39;이라는 짤막한 한 장의 유서에서 &amp;quot;지금은 민중 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amp;quot;고 적어 놓았다.&lt;br&gt;&lt;br&gt;이 유서는 가족이나 친지 등 주변 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존 유서들과 달리 불특정 다수의 민중(民衆)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lt;br&gt;&lt;br&gt;유서는 민중들에게 마치 &amp;#39;행동강령&amp;#39;(?)을 내리기라도 하듯 특정 인물을 타깃으로 &amp;#39;내치자&amp;#39;고 촉구하는 등 그 대상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시선을 끌고 있다.&lt;br&gt;&lt;br&gt;이 같은 촉구성 유서는 특히 현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죽음이 결코 대통령과 무관하지 않음도 시사, 논란의 불씨를 남기고 있다.&lt;br&gt;&lt;br&gt;강 목사는 무엇보다 &amp;#39;민중주체&amp;#39;, &amp;#39;민중항쟁&amp;#39; 등의 단어를 써가며 &amp;#39;제2의 6월 민중항쟁&amp;#39;을 우회적으로 선동, 향후 야권과 시민·사회단체, 재야세력 결집의 분수령이 될지도 주목되고 있다.&lt;br&gt;&lt;br&gt;강 목사의 죽음은 특히 각계의 시국선언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인물에 대한 타도를 목적으로 한 소위 &amp;#39;의도된 죽음&amp;#39;(?), &amp;#39;목적을 가진 죽음&amp;#39;이라는 점에서도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lt;br&gt;&lt;br&gt;강 목사의 빈소를 찾은 한 재야 인사는 &amp;quot;누구나 알 수 있도록 분명히 유서는 특정인과 특정 세력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amp;quot;며 &amp;quot;유서에서 명시하고 있듯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직접 행동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amp;quot;고 말했다.&lt;br&gt;&lt;br&gt;한편 강 목사가 남긴 유서는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C0%FC%BA%CF%B4%EB%BA%B4%BF%F8&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전북대병원&lt;/font&gt;&lt;/a&gt;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한 켠에 붙혀져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lt;br&gt;&lt;br&gt;&amp;lt;관련사진 있음&amp;gt;&lt;br&gt;김민권기자 kmk@newsis.com&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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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7 Jun 2009 21:48:07 +0900</pubDate>
    <category><![CDATA[진실, 비극과 희극]]></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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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알고도 덮은`최후의 25분`진실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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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quot;d&quot;&gt;&lt;span class=&quot;d1&quot;&gt;[매일경제] 2009년 05월 27일(수) 오후 05:58&lt;/span&gt; &lt;br&gt;&lt;br&gt;&lt;img style=&quot;MARGIN:5px 0px;CURSOR:　hand;&quot; title=&quot;&amp;#x00d074;&amp;#x00b9ad;&amp;#x00d558;&amp;#x00c2dc;&amp;#x00ba74; &amp;#x00c6d0;&amp;#x00bcf8;&amp;#x00d06c;&amp;#x00ae30; &amp;#x00c774;&amp;#x00bbf8;&amp;#x00c9c0;&amp;#x00b97c; &amp;#x00bcf4;&amp;#x00c2e4; &amp;#x00c218; &amp;#x00c788;&amp;#x00c2b5;&amp;#x00b2c8;&amp;#x00b2e4;.&quot; border=&quot;0&quot; src=&quot;http://img.news.yahoo.co.kr/picture/2009/98/20090527/2009052717584255898_073605_0.jpg&quot;&gt;&lt;br&gt;&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3%EB%B9%AB%C7%F6+%C0%FC+%B4%EB%C5%EB%B7%C9&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노무현 전 대통령&lt;/font&gt;&lt;/a&gt;의 투신 당시 경호관인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C0%CC%BA%B4%C3%E1+%B0%E6%C8%A3%B0%FA%C0%E5&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이병춘 경호과장&lt;/font&gt;&lt;/a&gt;이 사건 다음날인 24일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3%EB+%C0%FC+%B4%EB%C5%EB%B7%C9&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노 전 대통령&lt;/font&gt;&lt;/a&gt;의 지인에게 괴로워하며 &amp;quot;대통령 곁을 지키지 못했다&amp;quot;는 내용의 &amp;#39;고백&amp;#39;을 했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지인은 이 같은 사실을 경찰에 알렸으나 경찰은 이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lt;br&gt;&lt;br&gt;선진규 정토원장(75)은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8%C5%C0%CF%B0%E6%C1%A6&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매일경제&lt;/font&gt;&lt;/a&gt; 기자와 만나 &amp;quot;사건 발생 다음날인 24일 이 경호관이 전화를 걸어와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amp;quot;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을 선 원장은 24일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A%C0%C7%CF%B8%B6%C0%BB&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봉하마을&lt;/font&gt;&lt;/a&gt;에서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C0%CC%BF%EE%BF%EC&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이운우&lt;/font&gt;&lt;/a&gt;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0%E6%B3%B2%C1%F6%B9%E6%B0%E6%C2%FB%C3%BB&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경남지방경찰청&lt;/font&gt;&lt;/a&gt;을 만나 이야기했다. 이는 지금까지 수사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다.&lt;br&gt;&lt;br&gt;선 원장에 따르면 사건 당시 부엉이바위에서 노 전 대통령이 &amp;quot;정토원장 계시는지 확인해 봐라&amp;quot;고 지시했고 이 경호관이 &amp;quot;모셔올까요&amp;quot;라고 묻자 &amp;quot;그건 됐고 그냥 확인만 해라&amp;quot;고 재차 지시해 이 경호관이 정토원으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 경호관은 이 같은 사실을 사건 다음날인 24일 선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고백했다.&lt;br&gt;&lt;br&gt;문제는 이런 사실을 선 원장이 바로 경찰에 알렸으나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당분간 숨겨줄 것을 요구했다는 점이다.&lt;br&gt;&lt;br&gt;선 원장은 &amp;quot;경찰에 &amp;#39;언론에 발표해야 한다&amp;#39;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종합수사 결과 발표 때까지 자제해 달라고 말했다&amp;quot;고 밝혔다. 이는 경호관의 진술 번복이 있기 전까지 노 전 대통령과 경호관이 함께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경찰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따라서 경찰이 선 원장의 제보를 받고도 왜 이 같은 사실을 숨겼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lt;br&gt;&lt;br&gt;한편 경찰은 이날 &amp;quot;이 경호관이 대통령 심부름을 받고 출발한 시간이 오전 6시 14분께부터 이 경호관이 사저에 있는 또 다른 경호관에게 노 전 대통령의 추락을 확인하고 차를 대기시키라고 전화한 시간이 6시 45분이므로 31분간 경호를 받지 않고 홀로 계셨던 것으로 확인됐다&amp;quot;고 밝혔다. &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B0%E6%B3%B2%B0%E6%C2%FB%C3%BB&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경남경찰청&lt;/font&gt;&lt;/a&gt;은 27일 2차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amp;quot;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6시 10분께 부엉이바위 정상에 도착해 노 전 대통령이 &amp;#39;부엉이바위에 부엉이가 사나&amp;#39; &amp;#39;담배 있느냐&amp;#39; 등을 묻고는 &amp;#39;정토사에 선법사가 있는지 보고 오지&amp;#39;라고 했고 &amp;#39;모셔올까요&amp;#39;라고 묻자 &amp;#39;아니, 그냥 확인만 해봐라&amp;#39;고 해 바로 정토원으로 뛰어갔다고 진술했다&amp;quot;고 밝혔다. 이 경호관이 정토원을 들러 부엉이바위로 돌아오니 노 전 대통령이 이미 뛰어내렸다는 것이다.&lt;br&gt;&lt;br&gt;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은 한동안 응급상태에서 혼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이 경호관이 진술을 번복하기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청 관계자는 &amp;quot;이운우 청장이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amp;quot;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제보까지 받고도 이처럼 중요한 사실을 숨기려 했는지에 대한 해명은 하지 못하고 있다.&lt;br&gt;&lt;br&gt;사고 발생 직후 경찰 태도도 의문스럽다. 경찰은 장례 이전에 이 경호관을 대동한 현장 검증을 전혀 하지 않았고 수사 결과 발표도 장례 이후로 미뤘다. 애초 유서 발견에 따라 &amp;#39;자살&amp;#39;로 결론 내리고도 굳이 일주일씩이나 끌며 현장 검증과 수사 결과 발표를 미룬 데는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다.&lt;br&gt;&lt;br&gt;&amp;quot;놓쳤다. 사라졌다&amp;quot; 등 사건 발생 직후 무전 기록 내용도 사건이 발생한 지 3일이 지난 이후에야 확보해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lt;br&gt;&lt;br&gt;&amp;quot;담배 있느냐&amp;quot; &amp;quot;가져올까요&amp;quot; 등 노 전 대통령과 이 경호관이 나눈 대화의 실제 유무도 의문투성이다. 고위직 경호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는 한 경호 관계자는 &amp;quot;경호원이 그런 상황에서 &amp;#39;가져올까요&amp;#39;라고 답할 가능성은 없다&amp;quot;며 &amp;quot;경호 업무자는 휴대폰처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어 상식적이라면 &amp;#39;가져오라고 할까요&amp;#39;라고 답해야 한다&amp;quot;고 지적했다.&lt;br&gt;&lt;br&gt;&lt;a class=&quot;lw&quot;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amp;cs=bz&amp;amp;p=%C3%BB%BF%CD%B4%EB&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청와대&lt;/font&gt;&lt;/a&gt;는 사건이 확산되자 &amp;quot;전직 대통령 경호팀은 형식과 직제상만 경호처에 속해 전혀 별개로 움직인다&amp;quot;고 밝혔다.&lt;br&gt;&lt;br&gt;[김해 = 이지용 기자 / 곽승규 기자]&lt;br&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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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7 Jun 2009 21:45: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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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盧전대통령 홀로 있다 투신..28분 이상 경호공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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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quot;d&quot;&gt;&lt;span class=&quot;d1&quot;&gt;[연합뉴스] 2009년 05월 27일(수) 오후 07:12&lt;br&gt;&lt;/span&gt; &lt;/div&gt;&lt;div id=&quot;content&quot; class=&quot;c&quot;&gt;&lt;center style=&quot;PADDING-BOTTOM:20px;&quot;&gt;&lt;img style=&quot;MARGIN:5px 0px;CURSOR:　hand;&quot; title=&quot;&amp;#x00d074;&amp;#x00b9ad;&amp;#x00d558;&amp;#x00c2dc;&amp;#x00ba74; &amp;#x00c6d0;&amp;#x00bcf8;&amp;#x00d06c;&amp;#x00ae30; &amp;#x00c774;&amp;#x00bbf8;&amp;#x00c9c0;&amp;#x00b97c; &amp;#x00bcf4;&amp;#x00c2e4; &amp;#x00c218; &amp;#x00c788;&amp;#x00c2b5;&amp;#x00b2c8;&amp;#x00b2e4;.&quot; hspace=&quot;10&quot; src=&quot;http://img.news.yahoo.co.kr/picture/2009/1/20090527/2009052719120324901_202111_0.jpg&quot; width=&quot;500&quot;&gt;&lt;/center&gt;경호관 정토원에 다녀온 오전 6시14~17분 사이 투신&lt;br&gt;&lt;br&gt;(창원=연합뉴스) 김영만 박창수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 당일 수행 경호관을 심부름 보낸 뒤 홀로 있다가 투신했으며 최소 28분 동안 `경호공백 상태&amp;#39;에 놓여 있었던 밝혀졌다.&lt;br&gt;노 전 대통령 서거경위를 수사하는 경남경찰청은 27일 수사결과 브리핑을 갖고 이같이 잠정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lt;br&gt;경찰조사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을 당시 수행했던 이 모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정토원 사찰을 다녀오느라 자리를 비웠다.&lt;br&gt;23일 오전 6시10분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4분 동안 대화를 나눈 뒤 이 경호관에게 정토원에 가서 선 법사(선재규 원장)가 있는 지 알아보도록 지시했다.&lt;br&gt;경호관은 정토원에 갔다가 6시17분께 돌아와 보니 노 전 대통령이 보이지 않아 경호동에 있던 신 모 경호관에게 연락, 수색에 나서 오전 6시45분께 부엉이바위 아래에 추락해 있던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다.&lt;br&gt;당시 노 전 대통령은 산 아래쪽을 보고 옆으로 누워 있었으며, 머리 등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이 경호관이 진술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lt;br&gt;경호관은 맥박과 호흡 등을 확인하고 인공호흡 등 응급 처치를 한 뒤 노 전 대통령을 어깨에 메고 마을쪽으로 내려가 차량에 태워 인근 김해 세영병원으로 옮겼다고 경찰은 밝혔다.&lt;br&gt;경찰은 &amp;quot;경호관은 전 대통령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충격 등으로 심리적 압박을 느꼈고, 신분상의 불이익을 우려해 허위진술을 했다가 사회적 비난이 일고 동료 경호관의 설득으로 심경변화를 일으켜 사실대로 진술하게 됐다&amp;quot;고 덧붙였다.&lt;br&gt;이 경호관은 91년 경호원 공채로 채용돼 노 전 대통령 취임 당시부터 경호했으며 2007년 서기관으로 승진해 퇴임과 함께 봉하마을에서 계속 경호 업무를 맡아왔다.&lt;br&gt;노 전 대통령의 유서와 관련해서는 경찰은 &amp;quot;추가 유서가 있거나 조작된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amp;quot;고 밝혔다.&lt;br&gt;한편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다음 날 공중전화로 정토원 원장에게 &amp;quot;경찰에서 대통령과 함께 정토원에 갔다는 진술을 했다. 원장님이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다&amp;quot;고 말했던 것으로 경찰수사에서 밝혀졌다.&lt;br&gt;이 경호관이 신 원장과의 말맞추기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실패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가는 대목이다. &lt;br&gt;경찰 관계자는 앞으로 조사 계획에 대해 &amp;quot;전 대통령은 오전 6시 14분부터 45분까지 경호를 받지 못한 채 혼자 있었고, 그동안 목격자가 없고 사고 현장에서 입증할 만한 다른 증거도 없어 이 경호관 등과 함께 현장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amp;quot;고 말했다.&lt;br&gt;그는 또 &amp;quot;영결식이 끝난 뒤 유족에 대해서도 서면 등으로 조사할 방침이다&amp;quot;고 덧붙였다.&lt;br&gt;pcs@yna.co.kr&lt;br&gt;ymkim@yna.co.kr&lt;br&gt;(끝) &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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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7 Jun 2009 21:44:4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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