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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정자가 있는 샘]]></title>
<description><![CDATA[jswoo3429의 블로그 입니다.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일들을 제가 출석하는 새누리 교회 오세준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description>
<link>http://kr.blog.yahoo.com/jswoo342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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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정자가 있는 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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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jswoo3429의 블로그 입니다.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일들을 제가 출석하는 새누리 교회 오세준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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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오세준 목사님 주일셜교 요약]]></title>
    <description>
        &lt;!--StartFragment--&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FONT-SIZE:14pt;FONT-WEIGHT:bold;&quot;&gt;작지만 작은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3장 31절~33절)&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FONT-SIZE:12pt;&quot;&gt;언제부터인지 작은 것 보다는 큰 것을 좋아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동차도 대형, 집도 큰 평수, 슈퍼마켓도 대형, 심지어 교회도 대형교회를 좋아합니다. 교인들도, 목회자도, 더 큰 축복, 큰 것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교회 세우는 것이 역사적 사명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어느 날 큰 것이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작은 것은 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커져야 복 받은 것으로 여깁니다. 작은 교회는 복을 못 받은 교회, 큰 교회는 복을 많이 받은 교회같이 되었습니다.&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FONT-SIZE:12pt;&quot;&gt;이뿐만이 아닙니다. 작은 교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에 빠져있습니다. 대형교회는 자기들만이 세계선교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오만(傲慢)함에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더 커져야 된다는 논리를 폅니다. 대형교회만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인가요? 과연 그런 것입니까? &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FONT-SIZE:12pt;&quot;&gt;오늘 말씀은 뭐라고 하십니까?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했습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지만 자란 후에는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인다고 말씀합니다. &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FONT-SIZE:12pt;&quot;&gt;그리고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했습니다. 작지만 작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이 작지만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작은 누룩이 별것이 아닌 것 같지만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FONT-SIZE:12pt;&quot;&gt;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것으로 시작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겨자씨 같고 누룩 같은 존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볼 때 작은 것이지 하나님이 보실 때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처음 교회를 작은 자들을 통해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은 그 시대에 누룩 같고 겨자씨 같았습니다. 세상에 주목받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권세가 주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통해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했습니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바람에 날려가는 겨자씨 같았습니다. 온갖 핍박과 고난, 가난, 생존의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크고 화려한 교회당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을 복음으로 무너뜨렸습니다. 작지만 작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작아도 큰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FONT-SIZE:12pt;&quot;&gt;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향력(影響力)이 있다면 작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규모가 커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이 없다면 큰 것이 아닙니다. 새누리 공동체는 작다면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작지만 영향력 있는 큰 교회가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한국교회의 역할 모델이 되는 교회,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FONT-SIZE:12pt;&quot;&gt;겨자씨는 매우 작은 씨입니다. 그런데 이 씨를 심으면 자라는데 약 3~4m 정도로 큰다고 합니다. 그런데 겨자씨가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정도가 되려면 그만큼 시간이 필요합니다. 심고 자랄 때 까지 기다려야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합니까?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자라기를 기다리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FONT-SIZE:12pt;&quot;&gt;한국교회 역할 모델이 되는 교회,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일은 다음 세대를 통해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는 우리의 헌신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헌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예수님은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헌신의 원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것은 누룩 같은 헌신입니다. 누룩 같은 헌신이란 무엇일까요?&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FONT-SIZE:12pt;&quot;&gt;첫째, 동화(同化)되는 헌신입니다. 누룩이 밀가루 반죽에 섞이는 것은 동화되는 겁니다. 동화작용(同化作用)에 의해 밀가루 반죽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교회에는 이런 헌신자가 필요합니다. 모든 신자와 동화되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대 간의 격차를 허물고 동화되는 노력이 있어야합니다. &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FONT-SIZE:12pt;&quot;&gt;둘째, 소리 없는 헌신입니다. 누룩은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면 아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변화를 일으킵니다. 교회에는 이런 헌신자가 필요합니다. 소리 내지 않고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 말입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말 없이 헌신해야합니다.&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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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3 Feb 2010 12:50:48 +0900</pubDate>
    <category><![CDATA[새누리교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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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다음 세대(世代) 모델이 되라 (데살로니가 1장 2절~10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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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 color=&quot;#3366ff&quot;&gt;&lt;strong&gt;오세준 목사님 주일설교 요약&lt;br&gt;&lt;/strong&gt;&lt;/font&gt;&lt;br&gt;&lt;!--StartFragment--&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어느 共同體나 役割 모델이 重要합니다. 敎會도 그렇습니다. 敎會에는 信仰生活의 役割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役割 모델이 누구냐에 따라서 敎會의 模樣이 달라집니다. 새누리共同體는 開拓 初期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初期 멤버가 그 敎會의 役割 모델이 됩니다. 우리는 이런 點에서 다음 世代의 役割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그러기 爲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데살로니가 敎會를 通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敎會는 메게도냐, 아가야 地方의 그리스도人들에게 모델이 되었습니다.(7절) 데살로니가 敎會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敎會의 모델이 되었다면 새누리敎會는 韓國 敎會의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韓國 敎會의 役割 모델이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습니다. 意慾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只今부터 準備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데살로니가 敎會는 어떻게 해서 모든 믿는 者의 모델이 될 수 있었을까요? 데살로니가 聖徒들에게는 역할 모델이 있었습니다. 처음 福音을 傳해준 使徒들과 主님이 役割 모델이었습니다(6절). 데살로니가 聖徒들이 믿는 者들의 모델이 된 것은 처음 役割 모델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 役割 모델을 通해 잘 배웠습니다. 좋은 모델이 있었고 좋은 모델을 잘 本받았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이런 點에서 우리는 信仰의 좋은 모델을 本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本받을 만한 靈的 모델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靈的 모델이 될 만한 분이 있다면 그것은 큰 福입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잘 本받을 必要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좋은 點만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人間은 아무리 좋은 모델이라고 해도 完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그런데 完全한 우리의 役割 모델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完全하고 欠 없는 우리의 모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窮極的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穩全히 본받을 수 있다면 다음 世代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데살로니가 敎會는 主님을 본받은 者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主님을 본받은 자가 되었다는 事實을 바울이 무엇을 通해 알았을까요? 主님을 닮은 모습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데살로니가 聖徒들에게 主님의 닮은 모습은 믿음, 사랑, 所望이었습니다(3절). 이 세 單語는 예수님의 人格을 나타내는 用語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본받아 그분을 닮은 사람은 믿음, 사랑, 所望이 그 人格에 담겨 있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0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다음 世代에 모델이 되어야할 部分을 이 세 가지로 要約할 수 있습니다.&amp;nbsp;&lt;/span&gt;&amp;nbsp;&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첫째,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lt;br&gt;&lt;/font&gt;&lt;/span&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0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믿음의 役事”라고 했습니다. “役事”란 “行함”으로 理解하면 됩니다.&lt;br&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眞正한 믿음은 行함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본이 되려면 行動으로 보여야 합니다.&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둘째, 사랑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lt;br&gt;&lt;/font&gt;&lt;/span&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0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사랑의 受苦”라고 했습니다. 受苦는 支拂해야할 代價입니다. &lt;br&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그러므로 사랑의 본이 되려면 犧牲하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lt;/span&gt;&amp;nbsp;&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셋째, 所望의 本이 되어야 합니다.&lt;br&gt;&lt;/font&gt;&lt;/span&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0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所望의 忍耐”라고 했습니다. 所望이 있다면 참아야 한다는 뜻입니다.&lt;br&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그러므로 所望의 本이 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울때 참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amp;nbsp;&lt;/span&gt;&amp;nbsp;&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只今 敎會마다 特定 몇몇 敎會 빼고는 젊은이들이 別로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敎會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런 現狀을 “소리 없는 退場(silent exodus)”라고 합니다. 靑少年, 젊은이들이 조용히 敎會를 떠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소리 없이 退場하는 理由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中에 한 가지가 敎會 안에 役割 모델이 없다는 겁니다. 旣成世代를 通해 배울만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FONT-SIZE:11pt;&quot;&gt;젊은이들은 旣成世代를 보며 失望을 합니다. 敎會에서의 모습과 家庭에서의 모습, 職場과 事業場에서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는 거지요.&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0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데살로니가 聖徒들에게 나타난 믿음의 役事, 사랑의 受苦, 所望의 忍耐를 높이 評價하는 理由가 무엇일까요? “役事” “受苦” “忍耐”라는 行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여주는 信仰生活이라는 것입니다.&lt;br&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다시 말해 二重性이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點에서 二重性은 僞善이요 假飾입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보는데서는 좋은 소리 다하고 뒤에서는 온갖 소리 다합니다. 眞實이 없습니다. 正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點에서 다음 世代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겉과 속이 똑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바탕체;&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그럴 때 다음 世代는 우리를 信賴하여 本받을 것입니다.&lt;br&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우리는 다음 世代 役割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이 또한 다음 世代 디딤돌이 되는 方法입니다. 그래서 다음 世代를 세워 가야합니다. 그러므로 새누리共同體가 韓國 敎會의 모델이 되기를 懇切히 바랍니다.&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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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5 Jan 2010 08:22:28 +0900</pubDate>
    <category><![CDATA[새누리교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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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정복할 것인가 정복당할 것인가?]]></title>
    <description>
        &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quot;#ff00ff&quot;&gt;오세준 목사님 설교 요약&lt;/font&gt; (창세기 1장 27절~31절)&lt;/strong&gt;&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지금 전 세계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간에 개인과 개인 사이에 생존을 위해 전쟁 중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전쟁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보이지 않는 싸움입니다. 어떤 전쟁이든지 전쟁에는 승패가 있습니다. 싸움에서 이긴 자는 정복자가 됩니다. 싸움에서 패배한 자는 정복당한 자가 됩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정복할 것인가?, 정복 당할 것인가?&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싸움의 승패에 따라 명암이 엇갈립니다. 어떤 싸움이든지 패배하여 정복 당하면 그 꼴은 매우 초라합니다. &lt;br&gt;그러므로 우리는 정복자로 살아야하지 않r겠습니까?&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하나님은 처음 사람인 아담과 하와에게 정복자로 살아야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amp;nbsp;&lt;/font&gt;&lt;/span&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amp;nbsp; &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본문 28절에 &amp;quot;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라&amp;quot;고 했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먼저, &amp;quot;땅을 정복하라&amp;quot;는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땅이란 넓은 의미에서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땅을 정복하는 것은 살아갈 이 세상을 정복하는 것입니다.&amp;nbsp;&lt;/font&gt;&lt;/span&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amp;nbsp;&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이 세상은 교회가 정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교회는 세상에게 정복 당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정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정복해 갈수 있을까요? 먼저, 양적으로 정복해야 합니다. &amp;quot;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amp;quot;고 했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이 말씀은 양적으로 정복해 가라는 뜻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 교회는 양적으로는 많은 성과를 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보기드문 양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회 곳곳에 기독교인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작금에 와서 기독교인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amp;nbsp;&lt;/font&gt;&lt;/span&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amp;nbsp;&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한동안 양적으로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여 세상을 정복해 가는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에 와서는 더이상 양적으로 정복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진정한 정복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lt;/font&gt;&lt;/span&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amp;nbsp;&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amp;quot;정복하라&amp;quot;는 말은 원어에서 &amp;quot;복종시키다&amp;quot;는 뜻이 있습니다. 복종시키는데 까지 가야 진정한 정복자가 됩니다.&lt;/font&gt;&lt;/span&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amp;nbsp;&lt;br&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그러면 복종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상대가 감동을 받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amp;nbsp;&lt;/font&gt;&lt;/span&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amp;nbsp; &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상대방을 믿고 존경할때 복종합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못했다는 말입니다. 언제 감동을 줄 수 있습니까? 묵묵히 희생하고 헌신할때 감동을 줍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하지만 그동안에 교회는 희생과 헌신보다는 힘을 과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칠수 없습니다. &lt;br&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정복에 있어서 또 하나의 의미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으로 세상을 바꿔 놓았듯이 말입니다. &lt;br&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우리는 다음 세대의 주역인 신세대를 통해 이 사회를 바꿔놓을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그러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다음 세대의 디딤돌이 되아야 합니다. 다음 세대로 하여금 복음의 정복자로 살도록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다음 세대를 세워야합니다. 어떻게 해야 진정한 정복자로 살게하는 것입니까?&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아담과 하와는 정복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왜 정복하는데 실패한 것일까요?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정복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은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lt;br&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다스리는 능력은 어디서 올까요?&amp;nbsp;&lt;/font&gt;&lt;/span&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amp;nbsp;&lt;br&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하나님은 아담에게 바다의 고기, 공중의 새,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하와를 유혹한 것은 뱀입니다. 바로 이 뱀이 다스려야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뱀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여 화근이 되었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왜 다스리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지고 말았을까요? 뱀의 배후에 사탄이 있음을 분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lt;br&gt;&lt;/font&gt;&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amp;quot;다스리다&amp;quot;는 원어의 뜻이 &amp;quot;긁어 벗기다&amp;quot; &amp;quot;문질러 깨끗이 하다&amp;quot;라는 의미입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이것은 속에 숨겨진 것을 알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아담, 하와가 뱀이 한 말을 듣고 그 말을 긁어서 벗겨봐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실체를 발견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실체를 벗기지 못하고 분별을 못했습니다. 분별을 못하니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lt;br&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결국 뱀을 다스리지 못하고 뱀에게 끌려갔습니다. 뱀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우리가 복음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려면 이런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분별력, 선악의 분별력, 거짓 복음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합니다.&lt;br&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분별을 못하면 지배를 받게 되고 끌려갑니다. 뱀에게 하와가 끌려가듯이 말입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끌려가는 사람은 정복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의해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끌고가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복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으로 끌고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땅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정복이라는 말에는 싸움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습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정복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정복할 것인까? 정복 당할 것인가? 둘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amp;nbsp;&lt;/font&gt;&lt;/span&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amp;nbsp;&lt;br&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FONT-SIZE:11pt;&quot;&gt;새해에는 복음의 정복자가 되어 살아 가기를 바랍니다&lt;/font&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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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9 Jan 2010 09:53:16 +0900</pubDate>
    <category><![CDATA[새누리교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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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문이 닫히기 전에]]></title>
    <description>
        &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lt;strong&gt;오세준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마태복음 25장 1절~13절)&lt;br&gt;&lt;/strong&gt;&lt;/font&gt;&lt;br&gt;&lt;!--StartFragment--&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맑은 고딕;FONT-SIZE:11pt;&quot;&gt;유대人들의 婚姻 風習은 特異합니다. 時間的으로는 밤에 합니다. 婚姻 날짜가 定해지면 新郞이 親舊들과 新婦 집에서 婚禮를 擧行합니다. 그리고 新婦와 新婦의 들러리 處女들을 데리고 新郞 집으로 가서 婚姻 잔치를 합니다. 本文은 이런 背景에서 주신 譬喩의 말씀입니다. 본문의 열 處女는 新婦의 들러리를 말합니다. 新婦 집에서 나오는 新郞 一行을 맞이하여 婚姻 잔치에 들어가기 爲해 기다리는 中입니다. 新郞은 저녁에 나오는데 때로는 한밤중, 또는 새벽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녁 무렵부터 燈을 들고 나가 新郞을 기다립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맑은 고딕;FONT-SIZE:11pt;&quot;&gt;本文에 보면 열 名의 處女들이 新郞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中에 다섯은 기름을 充分히 準備했습니다. 또 다른 다섯은 燈만 準備했습니다. 그런데 豫想보다 新郞이 늦게 왔습니다. 그러자 다들 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때 新郞이 온다는 寄別이 왔습니다. 하지만 問題가 發生했습니다.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다섯 名 때문입니다. 燈의 불이 꺼져가는 것입니다. 充分한 기름을 가지고 있는 다섯 名에게 나눠쓰자고 했으나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나눠 쓰면 서로 不足할 수 있으니 차라리 기름집에 가서 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름이 바닥난 다섯 名은 精神없이 기름을 사러 갔습니다. 기름을 사가지고 新郞 집에 온 힘을 다해 달려 왔으나 이미 門은 굳게 닫힌 뒤였습니다. 門을 열어 달라고 문을 두드리며 事情을 했지만 열어주지 아니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말만 들려왔습니다. 期會는 더 以上 주어지지 아니했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맑은 고딕;FONT-SIZE:11pt;&quot;&gt;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放心하고 懶怠했기 때문입니다. 新郞이 生覺보다 늦게 오므로 緊張이 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放心하고 懶怠했습니다. 더디 올수록 더욱 完璧하게 準備해야했습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準備하지 못한 다섯 處女들은 이 點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新郞이 더디 오므로 많은 時間이 있었습니다. 기름을 準備할 期會가 充分히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많은 時間이 주어져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時間 없는 것이 問題가 아니라 주어진 時間을 바르게 善用하지 못하는 것이 問題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時間이 있어도 期會를 놓칩니다. 新郞이 더디 왔다는 것은 무엇을 意味합니까? 主님은 準備하지 못한 人生을 爲해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審判의 主님이 至今 再臨하시지 않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靈的으로 準備하라는 期會를 주시는 겁니다. 準備하지 못한 다섯 處女가 新郞이 더디 오는 것을 期會로 自身의 燈을 살피고 準備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으면 이 같은 낭패를 當하지 아니했을 겁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맑은 고딕;FONT-SIZE:11pt;&quot;&gt;오늘 우리의 問題는 무엇이라고 生覺하십니까? 自身의 靈的 常態를 살피지 않는 無關心이 아닐까요? 信仰生活에는 恩惠의 때가 주어지고 悔改의 期會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미련한 處女들은 마지막 期會를 虛費했습니다. 졸면서 時間을 虛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期會를 놓치면 어느 날 갑자기 門이 닫히는 날이 온다는 事實을 알아야합니다. 어떤 門이 닫히는 날이 올까요?&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맑은 고딕;FONT-SIZE:11pt;&quot;&gt;첫째, 도움의 門이 닫힙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맑은 고딕;FONT-SIZE:11pt;&quot;&gt;기름을 充分히 準備하지 못한 處女들은 燈불이 꺼져가자 準備한 處女들에게 기름을 나눠달라고 했습니다. 도움을 要請한 것입니다. 하지만 拒絶 當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呼訴해도 도움의 門이 닫혀 있었습니다.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形便입니다. 도움을 받고 싶어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形便입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맑은 고딕;FONT-SIZE:11pt;&quot;&gt;둘째, 熱心의 門이 닫혔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맑은 고딕;FONT-SIZE:11pt;&quot;&gt;기름을 準備하지 못한 處女들이 기름이 있는 處女들에게 기름을 나눠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기름집 가서 사라는 말로 要求를 拒絶했습니다. 그러니 어찌합니까? 기름을 사러 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熱心히 뛰었겠습니까? 이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입니까? 진작 이런 熱心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맑은 고딕;FONT-SIZE:11pt;&quot;&gt;셋째, 祈禱의 門이 닫혔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맑은 고딕;FONT-SIZE:11pt;&quot;&gt;미련한 處女들은 기름을 사가지고 와서 잔칫집 門을 두드렸습니다. “主여 主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그런데 門은 열리지 않고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對答뿐이었습니다. 祈禱의 門이 닫힌 것입니다. 應答의 門이 닫혔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맑은 고딕;FONT-SIZE:11pt;&quot;&gt;그러므로 門이 닫히기 前에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門이 닫힐 날이 옵니다. 只今은 모든 門이 활짝 열려 있지만 닫힐 날이 옵니다. 그날이 오기 前에 그리스도人으로 準備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準備해야합니까? 기름을 準備해야합니다. 燈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름 없는 것이 問題입니다. 그러면 기름은 무엇입니까? 기름은 불을 밝히는 에너지입니다. 에너지를 準備해야합니다. 어떤 에너지입니까? 靈的인 에너지입니다. 靈的인 에너지는 聖靈이 臨해야 채워집니다. 聖靈이 臨해야 靈的인 에너지가 生成됩니다. 그런데 聖靈은 주로 祈禱할 때 臨합니다. 그러므로 힘써 祈禱해야합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맑은 고딕;FONT-SIZE:11pt;&quot;&gt;에너지가 準備되었으면 使用해야합니다. 準備한 기름으로 燈盞에 불을 밝혀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두운 世上에 불을 밝혀야합니다. 燈盞만 있지 불이 꺼져있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職分만 있지 불이 꺼져있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祈禱의 불, 獻身의 불, 奉事의 불, 傳導의 불, 사랑의 불이 붙어야합니다. 新郞 되신 主님을 기다리며 各自의 燈盞에 불을 밝히고 使命을 勘當하시기 바랍니다.&lt;/font&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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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9 Jan 2010 09:06:34 +0900</pubDate>
    <category><![CDATA[새누리교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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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올 한해 감사합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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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한해 저의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lt;br /&gt; &lt;br /&gt; 변변치못한 블로그지만 좋은글 올리려고 더욱 노력하겠습니다.&lt;br /&gt; &lt;br /&gt; 오세준 목사님 설교말씀 요약 등 유익한 자료들을 공유하도록 힘쓰겠으니 내년에도 많이 찾아주세요&lt;br /&gt; &lt;br /&gt;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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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9 Jan 2010 09:09:03 +0900</pubDate>
    <category><![CDATA[잡기장]]></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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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가다가 돌아온 사람]]></title>
    <description>
        &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오세준 목사님 설교 요약 (누가복음 17장 11절~19절)&lt;/fon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lt;br&gt;&lt;!--StartFragment--&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 color=&quot;#da6d25&quot;&gt;사람은 恩惠를 입었으면 感謝할 줄 알아야합니다. 누구의 恩惠를 입었든지 感謝할 줄 알아야합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 color=&quot;#da6d25&quot;&gt;이것이 사람의 道理입니다. 짐승과 다른 點입니다. 사람의 恩惠를 받았어도 그러하다면 하나님께 恩惠를 받은 者는 말할 必要 없습니다. 하나님께 恩惠를 받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感謝를 해야 합니다. 恩惠 받은 사람이 感謝하는 것은 當然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當然한 感謝조차도 못하고 사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겁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 color=&quot;#da6d25&quot;&gt;예수님이 어느 마을로 지나가시는데 癩病 患者 열 名이 멀리 서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칩니다. 가까이 오지 못하고 멀리 서서 소리를 지른 것은 律法에 癩病 患者는 不淨하다 하여 사람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서 祭司長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들의 몸이 나았다는 뜻입니다. 律法에 보면 癩病 患者가 나았다는 證明을 祭司長들이 해주거든요. 그래서 祭司長들에게 보이라고 하신 겁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 color=&quot;#da6d25&quot;&gt;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祭司長들에게 가는 途中입니다. 이들은 길을 가다가 病이 나은 것을 發見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感謝한 일입니까? 그야말로 값없이 恩惠로 病이 나았습니다. 그러면 가던 길을 돌이켜서 예수님께 달려와 感謝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하지만 아홉 名은 그냥 가버리고 한 사람만 예수님께 와서 感謝를 했습니다. 열 名 中의 한 사람만 感謝를 할 줄 알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當然히 해야 할 感謝도 못하고 사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當然히 해야 할 感謝도 하지 않고 사는 것일까요?&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 color=&quot;#da6d25&quot;&gt;하나는, 오랜 信仰生活을 하다 보면 恩惠를 當然한 것으로 生覺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홉 名은 유대人입니다. 유대人은 選民이라는 優越感이 大端합니다. 그러므로 救援 받는 것을 當然히 여기듯이 癩病에서 고침 받은 것도 當然하다고 生覺했을 겁니다. 當然한 것이 아닌데 當然히 여기는 것이 問題입니다. 信仰生活 오래하다 보면 모든 것을 當然하게 生覺하는 쪽으로 固着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初信者 때는 작은 配慮와 關心에도 무척이나 感激하고 感謝하게 生覺합니다. 그러다가 信仰 年輪이 쌓아지면서 自身도 모르게 모든 것이 當然한 것으로 굳어집니다. 敎會가 關心가져주고 牧會者가 神經 써 주는 것, 區域長이 챙겨 주는 것 等을 當然히 自身에게 해줘야 한다는 生覺으로 젖어듭니다. 이런 信者에게 感謝하는 마음이 있을까요?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 color=&quot;#da6d25&quot;&gt;또 하나는 좋은 結果에 對해 偶然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癩病 患者들이 祭司長들에게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깨끗이 나았다면 感謝하다고 엎드려 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다가 나았기에 예수님의 恩惠라는 믿음이 없습니다. 偶然한 일이라고 生覺한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잘 될 때 偶然한 일이라고 여깁니까? 財數가 좋았기 때문입니까? 이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感謝를 드리겠습니까? 하나님의 子女에게 偶然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恩惠일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恩惠로 사는 存在입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 color=&quot;#da6d25&quot;&gt;그리고 마음이 變했기 때문입니다. 癩病 患者들이 예수님을 向해 불쌍히 여겨달라고 할 때 얼마나 懇切했을까요? 이때는 낫기만 하면 주님께 무엇이든지 드리고 싶었겠지요. 가진 것 다 드려도 아깝지 않다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병이 낫고 나자 처음 마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感謝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찾고 부르던 그 마음이 變했습니다. 우리는 어려워서 懇切했을 때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病들고, 가난하고, 失敗했을 때, 하나님을 向해 懇切했던 그 初心으로 돌아가야 합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 color=&quot;#da6d25&quot;&gt;그러면 當然히 해야 할 感謝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 color=&quot;#da6d25&quot;&gt;첫째, 恩惠의 感動이 식기 前에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찾아와 感謝한 사람은 사마리아 人입니다. 이 사람은 祭司長들에게 가는 途中 병이 나은 것을 發見하고 곧바로 왔습니다. 가다가 돌아와서 하나님께 榮光을 돌리며 主님께 感謝했습니다. 病이 나았다는 感激과 기쁨이 있을 때 感謝를 했다는 말입니다. 나머지 아홉 名은 祭司長들에게 보인 後 다음에 感謝를 하자고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感謝라는 것은 恩惠의 感動이 있을 때 해야 합니다. 다음에 하겠다고 미루면 그 感動이 식어집니다. 그러면 感謝하는 마음도 사라집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 color=&quot;#da6d25&quot;&gt;둘째, 다른 사람 意識하지 말고 해야 합니다. 열 名이 祭司長들에게로 가는 途中 病이 모두 나았습니다. 사마리아 人이 아홉 名에게도 예수님께 같이 돌아가서 感謝를 하자고 했겠지요. 이때 이들은 어떤 反應을 보였을까요? 다음에 하자고 말했을 겁니다. 이런 때 혼자서만 離脫하여 예수님에게 돌아가기가 쉽겠습니까? 사마리아 人은 아홉이 反對하는 狀況에서 예수님께 感謝를 했습니다. 사람들 雰圍氣에 依해 흔들리지 아니한 겁니다. 사람들은 雰圍氣에 弱합니다. 우리는 사람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할 道理를 해야 합니다. 特定한 사람을 意識하지 말고 感動이 되는데로 하십시오.&lt;/font&gt;&lt;/span&gt;&lt;/p&gt;&lt;/font&gt;&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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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5 Nov 2009 19:53:08 +0900</pubDate>
    <category><![CDATA[새누리교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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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당신은 복 받은 사람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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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quot;#ff00ff&quot;&gt;오세준 목사님 설교 요약&lt;/font&gt; (에베소서 1장 3절~14절)&lt;br&gt;&lt;br&gt;&lt;!--StartFragment--&gt;&lt;/strong&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 color=&quot;#0000ff&quot;&gt;하나님의 子女인 우리가 해야 할 感謝의 水準은 무엇이라고 生覺합니까?&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 color=&quot;#0000ff&quot;&gt;어떤 形便에도 不拘하고 感謝해야합니다. 적어도 이렇게 感謝를 하며 살려면 우리가 받은 福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은 福은 무엇입니까? 3절에 “讚頌하리로다”라고 始作합니다. 이 讚頌은 單純한 讚頌이 아닙니다. 感謝와 感激이 있는 讚頌입니다. 이 讚頌은 하나님께 드리는 讚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기에 이처럼 感激하여 하나님을 讚頌하는 겁니까? “讚頌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屬한 모든 神靈한 福을 우리에게 주시되”라고 했습니다. 神靈한 福이란 靈的인 福입니다. 하늘의 모든 靈的인 福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주실 것이 아니라 이미 주셨다는 뜻입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 color=&quot;#0000ff&quot;&gt;우리는 이 엄청난 福을 이미 받은 存在입니다. 그런데 이 事實을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이 問題입니다. 이보다 더 큰 問題는 靈的인 福의 價値를 모르는데 있습니다. 世上的이고 物質에 屬한 것을 最高의 價値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 問題입니다. 靈的인 福이란 무엇이라고 生覺하십니까?&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 color=&quot;#0000ff&quot;&gt;本文 5절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子女가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子息으로 삼기 爲해 예수 그리스도를 十字架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우리의 罪 값을 支拂하시기 爲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罪를 赦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罪 赦함 받고 하나님의 子女가 되었습니다(7절). 이 보다 더 큰 福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과 결줄만한 福이 世上에 어디 있습니까? 이 福을 돈 주고 살 수 있습니까? 數百億, 數千億을 주고도 不可能합니다. 善行을 쌓는다고 얻을 수 있나요? 아무리 많은 善行을 쌓아도 不可能합니다. 그만큼 罪 赦함 받고 하나님의 子女가 되는 福은 世上 價値로 換算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돈으로 計算이 안 됩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 color=&quot;#0000ff&quot;&gt;이 福은 하나님의 恩惠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恩惠를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 恩惠가 너무 크기에 物質의 價値로 따질 수 없습니다. 萬若 獻金이나 物質的 價値로 하나님의 恩惠를 論한다면 하나님을 冒瀆하는 겁니다. 마치 父母의 사랑(恩惠)을 돈으로 計算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돈으로 父母님의 恩惠(사랑)를 計算하려는 子息이 있다면 그는 父母를 冒瀆하는 것이지요.&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 color=&quot;#0000ff&quot;&gt;罪 赦함 받고 하나님의 子女가 되는 이 福을 받았다면 모든 福을 다 받은 겁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自己 子息에게 주는 것을 아까워하고 吝嗇하게 주는 父母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必要를 따라 다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反問할 분이 있을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子女라는 確信이 있는데 願하는 대로 다 안 주시던데요?” 이런 분에게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當身은 子女가 달라는 대로 다 들어줍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왜 달라는 대로 다 들어주지 않습니까? 그것은 子息의 水準 때문입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 color=&quot;#0000ff&quot;&gt;하나님의 子女는 하나님의 모든 充滿한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눈이 닫혀 있습니다. 누릴 만한 成熟한 믿음이 없는 것이 問題입니다. 그래서 누리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누리는 問題를 지나치게 物質, 世上榮光, 名譽 이런 것에 制限하면 困難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떤 일을 爲해 使用하시는가에 따라 觀點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觀點에 따라 福을 누리는 次元이 또 다르게 나타납니다. 例를 들어 使徒 바울의 삶을 살펴보십시오. 바울은 福 받은 사람인가요? 지질이도 福을 못 받은 사람인가요? 世上 잣대로 보면 福을 못 받은 사람 아닌가요? 바울의 삶은 苦難의 連續이었습니다. 患難, 逼迫, 陰謀, 監獄生活 等 그러나 바울은 幸福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福을 누린 사람입니다. 福音을 爲해 苦難 받는 것을 榮光으로 알며 기뻐했습니다. 福으로 알았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 color=&quot;#0000ff&quot;&gt;여러분은 福을 받은 사람입니까? 다음 主日은 秋收 感謝主日로 지킵니다. 感謝主日에 무엇을 感謝하고 싶습니까? 物質을 주신 것, 健康을 주신 것, 事業이 잘되는 것, 子息이 工夫 잘하는 것, 感謝할 內容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根源的인 感謝는 靈的인 福을 받는데 있습니다. 이 恩惠를 잊지 말고 感謝해야 합니다. 이 恩惠에 對한 感謝 없이 世上的인 要所로 因한 感謝만 있다면 偶像 앞에 가서 고맙다고 하는 것과 무슨 差異가 있겠습니까?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 color=&quot;#0000ff&quot;&gt;秋收 感謝節이 되면 感謝節 獻金을 왜 하는 겁니까? 하나님께 잘 봐달라고 하는 겁니까? 이것은 賂物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子女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치고 안 바치고 行함이 있고 없고를 떠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子女이기에 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음이라는 그릇을 通해 받아 누리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할 것은 眞正한 感謝 밖에 없습니다. 秋收 感謝節에 眞正 하나님께 무엇을 感謝할 것인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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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9 Nov 2009 20:17:59 +0900</pubDate>
    <category><![CDATA[새누리교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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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신종플루 예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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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5 Nov 2009 15:33:1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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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오세준 목사님 설교 요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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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StartFragment--&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bold;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열린聖徒, 열린 敎會 &lt;/font&gt;&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행 2:43~47)&lt;br&gt;&lt;/font&gt;&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gt;우리가 사는 世上에는 假面을 쓰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自身의 眞實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것을 閉鎖性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열린 社會인것 같으면서도 實像은 닫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보기에는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實像은 門이 닫혀있습니다. 問題는 열려 있어야할 敎會까지 닫혀있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에 敎會는 大部分 열려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敎會만큼 閉鎖的인 共同體도 드뭅니다. 겉에서 보는 敎會 모습과 속으로 들어가서 보는 모습과는 너무 다른 境遇가 있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gt;敎會는 이 世上에 대해 열려있어야합니다. 열린 禮拜드린다고 열린 것은 아닙니다. 建物을 地域 社會에 開放한다고 하여 열린 敎會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眞情으로 열린 敎會란 어떤 敎會일까요?&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gt;眞情으로 열린 敎會가 되기를 바란다면 敎會 안에서부터 열려야합니다. 敎會 안에서부터 열려야 이 社會를 向해 열린 敎會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敎會 안에서부터 열려야할 것이 무엇일까요?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gt;본문 말씀은 예루살렘 敎會의 열린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敎會를 通해 敎會 안에서 무엇을 열어야할지 말씀하십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amp;nbsp; &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gt;첫째,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합니다. 예루살렘敎會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했습니다. 마음이 하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음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意味할까요? 서로의 마음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열리지 않고는 한 마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 마음을 열어야합니까? 敎會는 하나님의 家族 共同體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敎會는 사랑의 家族共同體를 이루었습니다. 모든 物件을 서로 通用하고 財産과 所有를 팔아 各 사람의 必要를 따라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家族間에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敎會는 하나님의 共同體입니다. 家族이라면 마음이 열려야합니다. 家族끼리 마음이 닫혀있다면 普通 深刻한 現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마음을 열어야합니다. 서로의 마음이 열리지 않고 열린 敎會가 될 수 있을까요? 敎會 안에 있는 聖徒들의 마음이 닫혀있는데 世上을 向해 열린 敎會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amp;nbsp; &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gt;둘째, 우리의 家庭을 열어야합니다. 예루살렘敎會 聖徒들은 집에서 떡을 떼며 純全한 마음으로 飮食을 먹었습니다. 家庭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精神的으로 靈的으로 健康하게 살려면 家庭을 열어야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家族과 마음을 열고 交際를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韓國敎會의 좋은 傳統이 區域 制度입니다. 그런데 敎會마다 漸次的으로 家庭別로 모이는 區域모임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忌避하는 雰圍氣입니다. 이것은 敎會의 赤信號입니다. 이제는 家庭을 열고 眞情한 家族 共同體를 만들어야합니다. 傳統的인 區域보다도 더 魅力 있는 小그룹 共同體를 세워야합니다. 家庭을 通해 살아있는 健康한 小그룹 共同體가 세워져야합니다. 그래야 眞情으로 世上을 向해 열린 敎會가 될 수 있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새굴림;&quot;&gt;&amp;nbsp; &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gt;셋째, 우리의 倉庫를 열어야합니다. 예루살렘敎會 聖徒들은 財産과 所有를 팔아 각 사람의 必要를 따라 나눠줬습니다. 좀 더 가진 者들이 自身의 所有를 가난한 兄弟들과 나눈 것입니다. 財物의 倉庫를 열었습니다. 財物을 숨겨놓고 門을 닫은 것이 아닙니다. 倉庫를 열어서 나누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自身들의 財産을 다 公開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高位 公職者들은 每年 財産을 公開합니다. 財産 形成科程이 透明하지 않으면 指彈의 對相이 됩니다. 참으로 좋은 制度라고 生覺합니다. 저는 個人的으로 韓國敎會도 이런 制度를 導入해야 된다고 生覺합니다. 敎壇 總會長이 되거나 擔任 牧師나 長老 程度 되면 財産公開를 義務化하는 制度입니다. 이런 運動이 일어난다면 이 社會에 新鮮한 衝擊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敎會 改革은 앞당겨질 것입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gt;예루살렘敎會 聖徒들이 倉庫의 門을 열 수 있었던 것은 財物觀의 變化에서 왔습니다. 제 財物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행4:32). 이런 變化가 올 때 倉庫의 門을 열 수 있습니다. 이런 聖徒들이 많아질 때 世上을 向해 敎會 倉庫를 열어 섬길 수 있습니다. 眞情으로 열린 敎會가 될 수 있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새굴림;&quot;&gt;여러분! 마음이 열리고, 家庭이 열리고, 倉庫가 열릴 때 비로소 世上을 向해 열린 共同體가 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敎會가 이렇게 열린 共同體가 될 때 어떤 結果가 왔습니까? “온 百姓에게 稱頌을 받으니 主께서 救援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절)”고했습니다. 온 百姓에게 稱頌을 받았다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好感을 샀다는 意味입니다. 그러므로 救援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지는 敎會가 되었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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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1 Oct 2009 15:51:14 +0900</pubDate>
    <category><![CDATA[새누리교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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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다시 그려야할 인생 청사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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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font style=&quot;FONT-SIZE:14pt;&quot;&gt;&lt;strong&gt;오세준 목사님 설교 요약 (눅 12 :13~21)&lt;br&gt;&lt;br&gt;&lt;!--StartFragment--&gt;&lt;/strong&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大部分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人生 靑寫眞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未來의 設計圖인 꿈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未來의 어떤 人生 靑寫眞을 그렸느냐가 重要합니다. 어떤 靑寫眞이냐에 따라 한 사람의 價値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成功과 失敗, 幸福과 不幸도 人生 設計圖에 依해서 決定되는지도 모릅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譬喩로한 어떤 富者의 이야기입니다. 이 內容에 보면 어느 富者의 人生 靑寫眞이 그려있습니다. 富者는 自身이 그려놓은 靑寫眞을 보면서 매우 滿足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富者의 人生 靑寫眞을 感想해 보십시오. 이 富者는 農事를 지었는데 所出이 豊盛하여 穀食을 쌓아둘 空間이 不足했습니다. 그래서 穀間을 더 擴張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財産을 쌓아놓고 쉬고 먹고 마시면서 人生을 즐기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富者를 向해 어리석다고 하셨습니다. 이 富者는 人生 靑寫眞을 잘못 그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人生 靑寫眞을 다시 그려야할 狀況이 벌어진 것입니다. 왜 人生 靑寫眞을 다시 그려야만 할까요?&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첫째, 自身밖에 모르는 人生 靑寫眞이기 때문입니다. &lt;br&gt;&lt;br&gt;富者인 이 사람은 한 해 農事가 잘 되어 所出이 豊盛했습니다. 富者는 “내가 穀食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라며 幸福한 苦悶에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生覺한 것이 倉庫를 增築하는 計劃이었습니다. 所出이 넘쳐서 倉庫를 擴張한다 하여 누가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무엇이 問題인가요? 이 富者는 自己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穀間” “내 모든 穀食” 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내 靈魂”이라고 합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이 사람의 靑寫眞 속에는 “自己” 밖에 없습니다. “우리” 라는 意識이 全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라는 共同體 意識이 없다는 것은 利己的인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이 富者집에 이 사람 혼자만 있었을까요? 富者이기에 많은 일꾼이 있었을 겁니다. 所出이 豊盛하기까지는 땀 흘려 受苦한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富者에게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하는 ”우리“ 라는 槪念은 存在하지 않습니다. 다만 自己 自身만 存在할 뿐입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둘째, 快樂 追求의 人生 靑寫眞이기 때문입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이 富者는 “靈魂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平安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했습니다. 靈魂의 存在는 分明히 認定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靈魂을 爲한 計劃은 全無합니다. 肉身을 爲한 靑寫眞만 있을 뿐입니다. 이 사람은 富者가 된 目的이 겨우 먹고 마시는데 있었습니다. 倉庫에 잔뜩 쌓아놓고 肉身의 慾望을 圖謀하며 살겠다고 計劃했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이 富者는 한 가지 크게 錯覺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現代人들의 錯覺인지도 모릅니다. 財物을 많이 쌓아 두었다고 平安히 쉴 수 있다고 生覺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면 즐거움이 있으리라고 生覺했습니다. 이것이 맞는 말입니까? 人間의 참 平安과 기쁨은 어디서 옵니까?&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靈魂(마음)의 平安 없이 眞正한 平安과 기쁨이 있을까요? 現代人들은 不安합니다. 平安을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物質이 없어서 그럴까요? 많이 못 배워서 그럴까요? 하나님과의 關係가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왜 망가졌을까요? 肉身만 爲할 줄 알지 自己 靈魂을 爲한 靑寫眞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關心이 肉身, 物質에 集中되어 있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셋째, 죽음에 對해 準備가 없는 靑寫眞이기 때문입니다.&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이 富者는 나름대로 人生 靑寫眞을 잘 그렸다고 生覺했습니다. 그런데 決定的으로 重要한 것을 靑寫眞에서 빠트렸습니다. 그것은 죽음에 對한 靑寫眞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밤에 네 靈魂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準備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富者는 언젠가 갑자기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밤이라도 靈魂을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富者가 죽음에 對해 靑寫眞을 그렸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自身만을 爲해 財物을 쌓아두고 살지는 아니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爲해 財物을 使用했을 것입니다. 죽음에 對한 人生 靑寫眞이 있는 사람은 自身만을 爲해 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爲해 어떤 靑寫眞을 그렸습니까? 終末에 對한 靑寫眞이 없는 그림이라면 다시 그려야합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p class=&quot;&amp;#x00bc14;&amp;#x00d0d5;&amp;#x00ae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바탕;&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quot;&gt;只今 여러분의 人生 靑寫眞을 하나님이 보신다면 뭐라고 評價하실까요? 정말 멋있는 靑寫眞이라고 하실까요? 아니면 어리석은 人生 靑寫眞이라고 評價 切下하실까요? 確信할 수 없다면 멋지고 근사한 靑寫眞을 다시 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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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9 Sep 2009 22:14:5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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