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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자유]]></title>
<description><![CDATA[해탈은 치우침과 무지 편견 욕망 번뇌 깨우침으로 얻으지는 참 자유]]></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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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자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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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해탈은 치우침과 무지 편견 욕망 번뇌 깨우침으로 얻으지는 참 자유]]></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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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대통령 신년사를 보고/국군유해 발굴 사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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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신년사를 보고... &lt;br /&gt;  &lt;br /&gt; 북녘땅의  국군유해 발굴사업에 관하여,&lt;br /&gt; &lt;br /&gt; 경인년 새해가 밝았다.&lt;br /&gt; &lt;br /&gt; 2010년 1월4일 집권 3년차를 맞이하는 MB 정부의 국정 기조를 나타내는 신년사에서 &lt;br /&gt;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국정의지를 보여주었다.&lt;br /&gt; &lt;br /&gt; 그는 임기중에 지금보다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어 G20을 넘어 G5안에 진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비추었다.&lt;br /&gt; &lt;br /&gt; 취임직후 불어 닥친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극심한 세계적인 불경기중에서도 &lt;br /&gt; 우리 대한민국은 OECD국가중 가장 괄목한 경제 회복과 경제 성장을 기록을 하였고 &lt;br /&gt; 이는 국내뿐아니라 국제금융기관의 경제연구소와 IMF에서 조차 &lt;br /&gt; 올해의 우리나라 경제성장율을 3 %대 이상으로 내다 보았다. &lt;br /&gt; &lt;br /&gt; 이는 경제위기를 넘기고 있는 미국 일본 유럽선진국들에게 매우 주목할 일이다. &lt;br /&gt; 좋게 말해 MB 정부가 국정운영을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이명박대통령은 2008년 취임사에서 국민소득 20,000불로 정체된 국가의 경제성장과 상대적 빈곤과 혼란된 국가정체성으로 피곤한 국민의 행복을 위해 희망과 꿈으로 그려진 청사진을 보여주었다. &lt;br /&gt; 이를 위해 동시에 공무원, 기업그리고  국민들에게는 쓰라린 인내와 동참을 요구하였다.&lt;br /&gt; &lt;br /&gt; 최종 결실은  현재 진행중이기 때문에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그 청사진이 잘못되어 가고 있지 않다고 믿고 대다수 국민들은 높은 지지율로 그를 성원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작년연말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한 400억불상당의 아랍에미레이트에서의 원전발전소 수주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발군의 능력은 대기업 CEO 출신인 경제대통령CEO임을 OECD국가지도자들에게&lt;br /&gt; 귀감을 보여주고 있다.&lt;br /&gt; &lt;br /&gt; 올해는 경술국치의 100주년과 6.25전쟁이 난지 60주년이 된 해이다.&lt;br /&gt; &lt;br /&gt;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가?  &lt;br /&gt; &lt;br /&gt; 자랑스런 우리의 오늘을 위해 치열하게 희생한 각세대가 있다.&lt;br /&gt; &lt;br /&gt; 지난100년과 60년전을 돌이켜보면 세계의 정세변화를 대비못하여 억울하게 나라의 국권을 잃어 일제하에 신음하고 ,일부는 북간도로 중앙아시아로  뿔뿔히 흩어진 백성들,대동아전쟁당시 일제의 총알받이와 성놀이개로 지냈던 시절에 우리민족만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항일독립운동세대가 있었으며 ,남의 힘을 빌어 남북으로 갈라진 후 남한만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세대가 살아있으며, &lt;br /&gt; &lt;br /&gt; 북의 남한침공으로 공산치하가 되기 싫어 몸과 마음을 희생하며 자유를 지켜낸 6.25참전용사와 상이용사 그 유족, 미망인들이 지켜보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해방후 일본에 살고 있던 나이어린 10대의 제일하도 의용군들이 무명용사로서 조국의 산하에서 자유를 지키다 산화한 세대가 있다. &lt;br /&gt; &lt;br /&gt;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과 6.25를 통해 자유를 지켜낸 분들이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 세웠다는 역사인식을 하고 있다고 본다. &lt;br /&gt; &lt;br /&gt; 그들의 희생의 바탕위에서 우리는 세계속에서 오늘날 우뚝서고 있으며, 우리가 세계속에서 최빈국으로 남의나라 도움이 없이는 살수 없는 나라에서 이제를 남을 도와주는 나라로 변화하고 있으며&lt;br /&gt; 세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중심국가로 가고 있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이를 위해  나라의 국격을 올리는 일이 절실하다고 하였다.  &lt;br /&gt; 이는 나라의 품 위 올리고 존경받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lt;br /&gt; 졸부근성 아닌 정당하게 경쟁하고 정당하게 벌고 번 것을  사회약자를 위해 빈곤한 나라를 위해 &lt;br /&gt; 도울 줄 아는 나라를  데 초석을 닥겠다고 하는 출발을 그는 스스로 보이고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lt;br /&gt; &lt;br /&gt; 그는 취임사에서 북한과 대화를 통해서 북한에 묻혀있는 국군용사들의 유해발굴사업을 추진사업을 전개하겠다고 하였다. &lt;br /&gt; &lt;br /&gt; 이는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lt;br /&gt; &lt;br /&gt; 중공군의 개입으로 압록강까지 올라간 전세가 갑자기 불리해지고 장진호전투에서 개마고원전투에서 포위되어 산화한 국군및 UN군 유해와 흥남철수작전에서 양민들을 무사히 철수 시키는 과정에서 산화한 국군유해들을 그들의 가족으로 품으로 보내주어야 한다. &lt;br /&gt; &lt;br /&gt; 이산가족의 상봉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일이며 &lt;br /&gt;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는 희생한 분들의 넋이 우리자유 대한민국 국군임을 자랑스러울 것이다. &lt;br /&gt; &lt;br /&gt; 이는 국군의 사기 진작 뿐만 아니라 평화시 작전중에 나라를 지키다 희생하여 &lt;br /&gt; 국가유공자가 되는 것도 젊은 청년들의 나라사랑이 스포츠만 잘하는 것 많이 아닌 것을 일깨우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21세기 글로발,디지탈 시대의 애국심운동을 대한민국청소년들에게 사회인식변화를 위해 정부는 관심을 가져야한다.&lt;br /&gt; &lt;br /&gt; 애국심과 그 희생에 대하여 나라는 끝까지 그 보답을 해야하며 그것으로 바로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이고 국격을 바로 세우는 일의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그동안 이런 일들이 전 정권하에서 무시당한 것이 나라의 혼란을 야기 시켰던 것이다. &lt;br /&gt; &lt;br /&gt; 이것은 지극히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었다. &lt;br /&gt; &lt;br /&gt; 뿐만 아니라  상이군경회는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몸을 희생한 분들의 보훈단체이며 북녘의 6.25 참전 상이용사들을 남한에 초청하여 우리와 함께 치유와 요양을 시키려는 사업을 추진하려고 한다.&lt;br /&gt; &lt;br /&gt; 서로 총부리를 나눈 노년의 상이군인들이 서로 상처를 쓰담듬고 치유하는 길도 우리의 진정한 북과 화해의 하나이다.&lt;br /&gt; &lt;br /&gt; 20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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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2 Feb 2010 14:02:05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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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나노카본 튜브/원적외선  치료 -천연 광선 / 황토아궁이 굼불 효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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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ray- 원적외선] 원적외선과 인체.  G-ray  &lt;br /&gt; 2009/02/14 10:04&lt;br /&gt; &lt;br /&gt;  http://blog.naver.com/lyseye/150042610913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원적외선과 인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가시광선을 중심으로 보라색 바깥쪽의 파장을 자외선이라고 하고, &lt;br /&gt; 붉은색 바깥쪽의 파장을 적외선이라고 칭합니다. &lt;br /&gt; &lt;br /&gt; 적외선은 열이 발생하여 열선이라고도 합니다. &lt;br /&gt; &lt;br /&gt; 적외선은 파장의 길이에 따라서 근적외선, 중적외선, 원적외선으로 분류합니다. &lt;br /&gt; &lt;br /&gt; 파장대에 대한 그 분류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lt;br /&gt; &lt;br /&gt; 적외선 중 파장이 짧은 것은 근적외선이라하고, &lt;br /&gt; 중간대를 중적외선, &lt;br /&gt; 긴 것을 원적외선이라 말합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적외선중 우리 인체에 가장 유익한 파장대는 5~10 마이크론대 입니다. &lt;br /&gt; 이 파장대가 중적외선에 속하는지, 원적외선에 속하는지는 그 구분이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원적외선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lt;br /&gt; &lt;br /&gt; 이 파장대가 인체에 가장 유익한 이유는, &lt;br /&gt; 우리 몸에서 방사되는 원적외선의 파장이 이 파장대와 흡사하여, 외부로 부터 동일한 파장대의 원적외선이 인체에 조사되면 체내에서 공명작용이 일어나 &lt;br /&gt; &lt;br /&gt; 인체에 여러 유익한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lt;br /&gt; 그래서 원적외선을 생육적외선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lt;br /&gt; &lt;br /&gt; 빛은 일반적으로 파장이 짧으면 반사가 잘 되고, &lt;br /&gt; 파장이 길면 물체에 도달했을 때 잘 흡수되는 성질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원적외선은 파장이 길어서 물질에 잘 흡수됩니다. &lt;br /&gt; &lt;br /&gt; 특히 유기화합물 분자에 대한 공진(共振) 및 공명(共鳴) 작용이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lt;br /&gt; &lt;br /&gt; 침투력이 강하고 잘 흡수될 뿐만 아니라 &lt;br /&gt; &lt;br /&gt; 체내의 물과 체내세포에 공진 및 공명작용을 일으켜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lt;br /&gt; &lt;br /&gt; 예를 들어 30℃의 물속에서는 따뜻한 기운을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lt;br /&gt; &lt;br /&gt; 같은 온도의 햇볕을 쐬고 앉아 있으면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데, &lt;br /&gt; 그 이유는 햇볕 속에 포함되어 있는 원적외선이 피부 깊숙이 침투하여 열을 만들기 때문입니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열작용은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없애고, &lt;br /&gt; 모세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순환과 세포조직 생성 및 재생에 도움을 줍니다. &lt;br /&gt; &lt;br /&gt; 또 세포를 구성하는 수분과 단백질 분자에 닿으면 &lt;br /&gt; 세포를 1분에 2,000번 이상으로 미세하게 흔들어줌으로써 세포조직을 활성화하여 &lt;br /&gt; &lt;br /&gt; 노화방지, 신진대사 촉진, 만성피로 등 각종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으고, &lt;br /&gt; &lt;br /&gt; 피부상처의 회복, 피부나 세포내부의 염증의 치료, 알러지의 치료에도 효과가 좋다는 &lt;br /&gt; &lt;br /&gt; 여러 학자들의 보고들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이밖에도 발한작용 촉진, 통증완화, 중금속 제거, &lt;br /&gt; &lt;br /&gt; 숙면, 탈취, 방균, 곰팡이 번식방지, &lt;br /&gt; &lt;br /&gt; 제습, 공기정화 등의 효과가 있어 의학적으로 다양한 치료효과를 기대할수 있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렇게 인체에 이로운 원적외선의 발생은 &lt;br /&gt; &lt;br /&gt; 흙이나 돌, 유리등의 무기 세라믹 물질에 열을 가하게 되면 발생하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물론 표면온도가 절대영도 즉 영하 273℃이상이면 이론적으로는 원적외선이 방사 되어질 수 있으나 아주 미량이며, &lt;br /&gt; &lt;br /&gt; 상온에서는 이런 세라믹 물질들에서 원적외선이 일정량 방사되어집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방사되는 양은 온도의 4승에 비례하므로(스테판 볼츠만의 법칙) &lt;br /&gt; 표면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원적외선의 방사량은 늘어납니다. 따라서, &lt;br /&gt; &lt;br /&gt; 의학적인 효용을 높이려면 높은 표면온도가 필요합니다. &lt;br /&gt; &lt;br /&gt; 태양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광선을 지구로 조사합니다. &lt;br /&gt; &lt;br /&gt;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등이 있으며, 원적외선도 어느정도 함유하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원적외선은 유리나 옷 등을 통과하지 못하고 반사하게 되므로, &lt;br /&gt; &lt;br /&gt; 실내에서 주로 생활하는 현대인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원적외선의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 선조들이 황토로 집을 짓고, 온돌로 난방을 하고, 부뚜막에서 불을 떼고, &lt;br /&gt; 간장을 담글 때 숯을 넣고, 항아리에 김치를 넣어서 발효를 하고, 김장을 담아서 땅에 묻어두고, 흙과 더불어 농사를 짓고, 흙길을 밟고, 적조에 황토를 뿌리고, &lt;br /&gt; &lt;br /&gt; 소나무가 아프면 황토를 바르고 하는 등등의 모든 생활은 &lt;br /&gt; &lt;br /&gt; 원적외선의 효과를 부지불식간에 누려 왔던 소중한 우리의 문화였던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성경에도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지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병들어가는 인체는 흙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의 회복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lt;br /&gt; &lt;br /&gt;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로 인하여 비가오나 눈이오나 차가 다니기 편하고 걷기가 편하지만 &lt;br /&gt; 우리들은 흙을 밟고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 아이들만 보아도 학교 운동장에서 체육을 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놀이터에 나가서 놀 수 있는 시간도, 그리고 같이 놀아줄 친구도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어릴 때 밖에 나가서 딱지치기, 구슬치기, 자치기, 돌치기, 고무줄 놀이등을 하면서 &lt;br /&gt; 은연중에 태양과 흙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의 치료효과를 누렸다면 &lt;br /&gt;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기회마저도 철저히 배제되어지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풍부한 원적외선을 방사해주는 흙과 자연 대신에 &lt;br /&gt; &lt;br /&gt; 아파트나 빌딩의 실내에 갇혀서 &lt;br /&gt; 인체에 해로운 전자파가 풍부하게 흘러나오는 TV, 컴퓨터가 우리 아이들을 감싸안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지나친 업무 스트레스와 과로, 학습지와 영어공부가 성인들과 아이들이 병들기에 충분하고 &lt;br /&gt; 또한 넘치도록 제공되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났지만 &lt;br /&gt; &lt;br /&gt; 현대인들이 각종 암과 불면증,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아토피와 비염, ADHD, &lt;br /&gt; 각종 암등의 질환들에 노출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lt;br /&gt; &lt;br /&gt; 근래에 와서 &lt;br /&gt; &lt;br /&gt; 이런 생활 문화들이 원적외선의 효과를 볼 수 있는, &lt;br /&gt; 과학적 근거가 있는 웰빙 문화였다는 것을 깨달아서 이를 회복해 보려는 시도들이 활발합니다. &lt;br /&gt; &lt;br /&gt; 건설, 난방, 생활가전등 산업의 곳곳에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의 의식주 문화가운데 원적외선의 효과를 응용할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고 &lt;br /&gt; &lt;br /&gt; 한가지씩 개선을 해나간다면 우리의 건강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lt;br /&gt; &lt;br /&gt; 난임이나 산전후의 제반 부인과 질환등에 아궁이불을 피우는것이나, &lt;br /&gt; 뜸을 뜨거나, 기왓장이나 돌을 데워서 배위에 올려놓는것이 상당히 도움이 되어지리라 생각됩니다. &lt;br /&gt; &lt;br /&gt; 오늘은 왠지 저녁밥상을 돌솥으로 밥을 짓고, 돌솥에 눌러있는 누룽지에 물을 부어 따끈한 누룽지를 가족들과 함께 먹고 싶지 않습니까? &lt;br /&gt; &lt;br /&gt; &lt;br /&gt; 편집자 주:&lt;br /&gt; &lt;br /&gt; &lt;br /&gt; 이것을 5000년 농경문화에서 얻었던 우리 한 민족의 자연친화적인 생활 지혜가 &lt;br /&gt; &lt;br /&gt; 21세기 극초미세 분자 나노 기술의 개발과 숯의 대변신인  카본 섬유 기술의 성공으로&lt;br /&gt; 나노탄소튜브(NCT)가 이 엄청난  천연광선의 황토아궁이 굼불에서 방사되는 효과를 &lt;br /&gt; 재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lt;br /&gt; &lt;br /&gt; 이는 기존의 전열 히터를 만드는 니크롬, 할로겐에서 진화에 성공하여 &lt;br /&gt; &lt;br /&gt; NCT 기술의 응용은  상기 원적외선을 발생시키는  의료적 효과 뿐만 아니라,&lt;br /&gt; &lt;br /&gt; 농식물의  겨울 영농 ,화훼단지에  이기술을 적용하면&lt;br /&gt; 기존의 기름사용  발열에 비해  70% 이상의 에너지를 절약하고, ㅣ연소시 소요되는 산소를 사용치 안으며, 또한 이산화탄소도 배출시키지 않는다.  &lt;br /&gt; &lt;br /&gt; 뿐만 아니라 &lt;br /&gt; 같은 발열량을  생산할때&lt;br /&gt; &lt;br /&gt; 기존의 니크롬 전열히터에 비해 전력 소모량이 50%가 줄일수 있다.&lt;br /&gt; &lt;br /&gt; 바로 NCT 기술이야 말로 21세기가 요구하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술이다.&lt;br /&gt; &lt;br /&gt; 전기조명에서는 LED 기존 조명을 대체한다면&lt;br /&gt; &lt;br /&gt; 전기발열에서는  NCT가 기존 전열기술을 주도 할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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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8 Jan 2010 17:42:2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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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88 cc 민영화 문제 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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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골프장 민영화계획에 국가유공자들 강한 반발&lt;br /&gt; &lt;br /&gt;                   -국가유공자 사기 떨어뜨리는 정부-&lt;br /&gt; &lt;br /&gt;         88골프장은 년간 12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알짜&lt;br /&gt; &lt;br /&gt;   -국가유공자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88골프장은 공기업 민영화와 근본이 달라-&lt;br /&gt; &lt;br /&gt; 대한민국상이군경회 회원 등 “국가유공자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이 정한 국가유공자들이 국가보훈처가 보훈기금 증식사업의 일환으로 1988년도에 조성 완공하여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보훈기금증식에 기여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시 소재 88골프장을 민간에게 매각하려는 정부의 방침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국가보훈처가 건설한 88골프장은 조성당시 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유족의 정지된 보상금으로 조성된 보훈기금으로 보훈기금증식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건설당시 상이군경 등 부상을 입은 유공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재활을 위한 체육시설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보훈기금은 1962년도부터 시행된 군사원호보상법, 군사원호보상급여금법, 군사원호대상자취업보호법  및 군사원호대상자임용법 등에 근거하여 당시 원호처(현 국가보훈처)가 민간기업이나 국영기업체 또는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등에 취업을 시켜주는 대신 취업기간 동안 보상금(연금)을 정지하여 원호기금(현 보훈기금)을 조성하여 그 기금을 증시시켜 취업이 곤란한 상이군인이나 전몰군경유가족들에 대하여 생업자금이나 주택지원 대부를 실시하는 재원으로 사용되었다.&lt;br /&gt; &lt;br /&gt; 1970년대 및 전두환 정부 때 까지 원호기금(보훈기금)의 주요 재원은 국가유공자들의 정지된 연금(정지연금)과 민간 혹은 국영기업 및 국민들이 기탁한 원호성금(현 보훈성금) 이었다. 1984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수도권 골프장 허가를 전면 중지시켰음에도 소위 내인가라는 편법을 쓰면서 까지 국가유공자의 재활체육과 원호기금(보훈기금) 증식을 위하여 특별히 고려하여 허가한 것으로 이러한 88골프장 조성과 관련한 역사성과 명분 때문에 국가유공자들은 88골프장 민간 매각에 대하여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상이군경 등 국가유공자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정책은 정부가 공기업을 창설하면서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자되었고 민영화함으로써 효율성을 배가시킬 수 있을 때 하는 것으로 연간 120억 원이라는 기금 증식효과를 보고 있는 알짜 88골프장을 민간에게 매각하는 것은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과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더울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lt;br /&gt; &lt;br /&gt; 88골프장은 부지 약 80만평에 36홀 규모로 연습장과 드라이브 레인지 등 국제경기도 충분히 소화 할 수 있는 규격을 갖추고 있으며 경기도 용인시 구성리에 위치하고 있는 명문골프장 중에 하나로 회원권 시세는 약 3억원 정도 하고 있으며 회원 수는 2,000여명으로 조성당시 법정 회원수 보다 200여명 적게 모집하여 민영화 할 경우 추가로 회원을 모집하면 약 600여억 원의 특혜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또한 1989년 회원 모집시 당시 전두환 정부의 수도권의 골프장 건설 규제로 골프회원권 가격의 과열 현상 때문에 회원권 당 평균 6,000만원 이상의 보훈성금을 웃돈을 얹어 모집하였기 때문에 민간에게 매각할 경우 매각 대금 책정과 회원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해 줄 것인지도 관심거리이다.&lt;br /&gt; &lt;br /&gt; 만약 88골프장이 매각될 경우 88골프장을 이용하던 국가유공자들은 골프를 칠려면 물심 양면으로 상당한 불편을 겪을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점도 88골프장 매각을 적극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일부 국가유공자 들은 국방부 산하에는 있는 골프장은 민영화 하지 않으면서 신명을 바쳐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들의 신체적 재활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골프장을 매각하는데 대해 국가가 국가유공자들을 홀대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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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5 Oct 2009 20:57:29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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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바보 노무현]]></title>
    <description>
        바보... ,&lt;br /&gt; &lt;br /&gt; 바보는 자신이 바보인지를 모른다 &lt;br /&gt; &lt;br /&gt; 다만 그것이 자신이 바보 탓 인줄 알면 그는  천재이다. &lt;br /&gt; &lt;br /&gt; 그 천재는 자신만이 &lt;br /&gt; &lt;br /&gt; 항상 천재인지  알고 남을 바보로 안다. &lt;br /&gt; &lt;br /&gt; 그 바보천재는 그 천재를 보고 그저 내가 바보라고 말하면서 &lt;br /&gt; &lt;br /&gt; 속으로 나보다 바보라고 한다. &lt;br /&gt; &lt;br /&gt; 가짜 바보는 자신이 항상 남이 자신보다 바보라고 생각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진짜바보... ,&lt;br /&gt; &lt;br /&gt; 그는 자신이 바보인지를 모른다&lt;br /&gt; &lt;br /&gt; &lt;br /&gt; 다만 그것이 자신이 바보의 탓인줄 알면 그것은 천재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 천재는 자신이 천재인지  알고 남을 바보로 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 바보는 그 천재를 보고 그저 내가 바보라고 말하면서&lt;br /&gt; &lt;br /&gt; 속으로 나보다 바보라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바보는 자신이 항상 &lt;br /&gt; &lt;br /&gt; 남이 자신보다 바보라고 생각한다.&lt;br /&gt; &lt;br /&gt; 바보 정신&lt;br /&gt; &lt;br /&gt; 노무현 바보...바보.....&lt;br /&gt; &lt;br /&gt; 바보 노무현  &lt;br /&gt; &lt;br /&gt; 노루현 바보... 바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작자 후기 &lt;br /&gt; &lt;br /&gt; 탓은 후회&lt;br /&gt; &lt;br /&gt; 생각은 희망&lt;br /&gt; &lt;br /&gt; 바보 는 죽음&lt;br /&gt; &lt;br /&gt; 자신은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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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7 Oct 2009 18:41:59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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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김대중 전 대통령 과 북한 / 시국선언]]></title>
    <description>
        이 상훈전국방 장관은  &lt;br /&gt; &lt;br /&gt; 제2연평해전(서해교전) 7주년 기념식에서&lt;br /&gt; &lt;br /&gt;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북한 핵이 문제가 되었을 때 &lt;br /&gt; &lt;br /&gt;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책임지고 막겠다’고 했지만 지금 그가 책임을 지고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lt;br /&gt; &lt;br /&gt; “그는 평생을 거짓과 허위를 일삼은, 위선자 중에서도 위선자다.&lt;br /&gt; &lt;br /&gt;  지금이라도 김 전 대통령이 북한에 지원한 5억 달러의 내역을 조사해서 의법 처리해야 한다”고&lt;br /&gt; &lt;br /&gt;  강조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우리나라의 비극의 시작은 해방이후 북한에서 오는 것이 아주 많았고 지금도 그러하다.&lt;br /&gt; &lt;br /&gt; 6.25 이후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의 책동이 60년이지나고 그들 국가를 세운 쏘련이 망해도 &lt;br /&gt; 지금도 남한의 각 분야에서 혼란을 계속 만들고  있다.&lt;br /&gt; &lt;br /&gt; 우리 민족끼리 라는 허울 좋은 말장난에 우리사회는 깊히 농락 당하고 썩어있다.&lt;br /&gt; &lt;br /&gt; 현 북한정권은  시민자율적인 민주적인 집회나 단체 결성을 절대 용납치 않는다.&lt;br /&gt; &lt;br /&gt; 중국공산당 정부도&lt;br /&gt; 북한의 정책과 북한 인민들의 삶의 질 문제 ,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평을 하는 데&lt;br /&gt; &lt;br /&gt; 남한의 진보를 자칭하는 인사들은 &lt;br /&gt; 북한의 이 문제에 대해 함구하며&lt;br /&gt; 남한 정부비판에  대해서는  모진 비판을 가한다.&lt;br /&gt; &lt;br /&gt;  민주적 투표에 의해 결정된 &lt;br /&gt; 우리나라 정부를 독재정부라 하는 것일까 &lt;br /&gt; &lt;br /&gt; 미래를 판단치 못해 정치를 잘못하고 국민을 불안하게 한 정치인은 &lt;br /&gt; &lt;br /&gt; 누구인가는 국민들은 이미 잘알고 있다.&lt;br /&gt; &lt;br /&gt; 전세계 국민들에게 물어보아도&lt;br /&gt; &lt;br /&gt; 북한이  미얀마 보다  무시무시한 인권탄압, 오로지 김일성 일가의 권력세습을 위한 &lt;br /&gt; 국제여론무시의 강력한 독재국가이다.&lt;br /&gt; &lt;br /&gt; 진보라고 자칭 타칭 불리우는 사람들은 이것을 심각히 알아야  한다.&lt;br /&gt; &lt;br /&gt; 남조선 공산당을 창건한 박헌영씨는 일제때 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이지만 &lt;br /&gt; 전쟁후 쏘련의 지휘아래  30대의 김일성이 한테 &lt;br /&gt; 미제국주국의 앞재비로 모함을 받아 &lt;br /&gt; 서울 인민위원장 이승엽 등 비롯한 남로당 간부 전체가&lt;br /&gt;  625 이후 전쟁패전 이유로  모두 처형을 당하였다.&lt;br /&gt; &lt;br /&gt; 일제패망후 군정시절에는 공산당이 합법적 지위를 가졌다.&lt;br /&gt; &lt;br /&gt; 남조선 공산당의 총재는 박헌영이며 전국지구당 조직과 수십만명의 당원을 가지고 있었다.&lt;br /&gt; 남한의 정권을 잡으려는 시도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엘리트인 박정희과  김대중을 남로당 간부로 만들었다.&lt;br /&gt; &lt;br /&gt; 그 이후 그들은 모진 고초를 당하였지만 &lt;br /&gt; &lt;br /&gt;  결국&lt;br /&gt; &lt;br /&gt; 그들은 역사적으로 남한의 대통령 까지 한 사람이다.&lt;br /&gt; &lt;br /&gt; 인간적으로 보면 엄청난 인간 승리이요 &lt;br /&gt; &lt;br /&gt; 국가로 보면 500년 빈곤의 탈출과 경제발전과 민주화 발전에 기여한 영웅이다.&lt;br /&gt; &lt;br /&gt; 그러나 그들은 북한을  보는 시각은 달랐다.&lt;br /&gt; &lt;br /&gt; 북한은  순수 이상주의적 공산주의 사회주의도 아니다.&lt;br /&gt; 그들은 아무런 이상도 없는 국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집단이다.&lt;br /&gt; &lt;br /&gt; 유교사대주의 이조시대에도 문호와 언론이 개방되어 왕조차도  왕권을 함부로 행사하지 못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2009년 현재 시국선언을 하는 사람들은  MB 정부 이전과  지금을 비교분석하는 틀을 &lt;br /&gt; 국민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lt;br /&gt; &lt;br /&gt; 1945년 해방정국 후 좌우로 나뉜 극심한 혼란의 시기와 &lt;br /&gt; 1963년 한일 협정 &lt;br /&gt; 1987년민주화 선언과 &lt;br /&gt; 시민운동의 국민의와  정부 참여정부 시대와 &lt;br /&gt; &lt;br /&gt; 우리나라를 보는 흐름이 다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lt;br /&gt; &lt;br /&gt; ---냉담한 국민---&lt;br /&gt; &lt;br /&gt;  국민은 진보주의자 그들에게 냉담하고  지지하지 않고  있다.&lt;br /&gt; &lt;br /&gt; 그들의 박물관식 낡은 진보로 국민을 선동하는 것은 &lt;br /&gt; 이제는  어린아이 수준으로 밖에 않보인다.&lt;br /&gt; &lt;br /&gt; 이제 우라나라는 보리고개 한끼먹기위한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난 10 경제 강국이요.&lt;br /&gt; &lt;br /&gt; 세계는 우리나라를   첨단 기술를 보유한  IT강국임을 다안다 . &lt;br /&gt; &lt;br /&gt; 역효과는 민간 포탈 싸이트의 악플에 의한 인권적 침해가  최고수준의 나라이다.&lt;br /&gt; &lt;br /&gt;  (  미국 중국 일본  영국도 절대 용납이 않됨 ,,연예인의 자살사건도 한국에도 있지만 )&lt;br /&gt; &lt;br /&gt; 대한민국을 위한 진보주의자들 이여&lt;br /&gt; &lt;br /&gt; 이 시국선언이라는 것에 묻혀 자신들의 위선을 포장하려는 &lt;br /&gt; 자기모순을 버리리지 못한다면 &lt;br /&gt; &lt;br /&gt;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지성도 없으며   진정한 진보가 될 수 없다.&lt;br /&gt; &lt;br /&gt; 김대중 전대통령은 &lt;br /&gt; &lt;br /&gt; 과거 남한의 군사독재 정권을 타도를 위해 앞장서고 &lt;br /&gt; &lt;br /&gt; 그로 인한 독재정권의 테러로 희생한 진정한 민주화 투사였고 &lt;br /&gt; &lt;br /&gt; 국민의 투표에 의해 한국의 대통령도 역임하고 &lt;br /&gt; &lt;br /&gt;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면&lt;br /&gt; &lt;br /&gt; 북한에 대해서도 &lt;br /&gt; &lt;br /&gt; 남한정부에 시국선언등을 하는 등의 &lt;br /&gt; &lt;br /&gt; 비판하는 것과   대등하게  &lt;br /&gt; &lt;br /&gt; 3대 권력세습을 하는 것에 대해 시국선언과 비판과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먼저 21세기 글로발 시대가 요구하는  &lt;br /&gt; &lt;br /&gt; 참된  진보가 &lt;br /&gt; &lt;br /&gt; 무엇인지 &lt;br /&gt; &lt;br /&gt;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lt;br /&gt; &lt;br /&gt; 후기:&lt;br /&gt; &lt;br /&gt; &lt;br /&gt; 국민이 투표에 의해 그들의 생과 사를 책임지는 민주 정권의 탄생은   &lt;br /&gt; &lt;br /&gt; 영국의 왕정에서 민주정으로 ,  프랑스의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민주정으로  &lt;br /&gt; 미국 민주정권수립은 처음부터 민주 정이었다.&lt;br /&gt; 그 것은 수백년이 걸린 투쟁과 타협의 과정이었다.&lt;br /&gt; &lt;br /&gt; 절대 쉽게 오지 않은 선택의 자유, 선택을 한 것의  책임은 국민이다.&lt;br /&gt; &lt;br /&gt; 우리의 민주 정은 일제패망후 미국에 의해 갑자기 다가온 것이지만  &lt;br /&gt; &lt;br /&gt; 공산정권으로 하지 않은 것이  결국은 오늘의 번영과 강국으로 만든 것이다.&lt;br /&gt; &lt;br /&gt; 2차대전후 민주 정권을 최초로 선택한 국가들중에서 &lt;br /&gt; 가장 민주 적인 국가로&lt;br /&gt;  경제적 선진국가로&lt;br /&gt; 일류 기술적 강국 으로 인정받는 나라가 &lt;br /&gt; &lt;br /&gt; 우리 대한민국이다.&lt;br /&gt; &lt;br /&gt; 그래도 &lt;br /&gt; &lt;br /&gt; 이 사실은 남한에 태어난 우리 국민은 북한 보다 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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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4 Jul 2009 09:51:24 +0900</pubDate>
    <category><![CDATA[퍼온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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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UN 사무총장 반기문]]></title>
    <description>
        UN 사무총장  반기문&lt;br /&gt; &lt;br /&gt; 어디에도 없는 사람&lt;br /&gt; &lt;br /&gt; 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사람 인가/// 포린 폴리시 (잡지)&lt;br /&gt; &lt;br /&gt; &lt;br /&gt; Nowhere Man &lt;br /&gt; Why Ban Ki-moon is the world&amp;#39;s most dangerous Korean.&lt;br /&gt; &lt;br /&gt; BY JACOB HEILBRUNN | JUNE 22, 2009 &lt;br /&gt; &lt;br /&gt; Ban Ki-moon, a general nonentity as secretary-general&lt;br /&gt; For such a seemingly crucial position, the secretary-generalship of the United Nations has historically had a rather low bar for success. Kurt Waldheim? In his memoir, A Dangerous Place, Daniel Patrick Moynihan recounted that Waldheim functioned as &amp;quot;a post office, a somewhat antique but reasonably efficient public service run along Austro-Hungarian lines. As one　　　 sat down with him, he would be mentally sorting the mail while making small conversation.&amp;quot; Boutros Boutros-Ghali? His arrogance and fecklessness as the Serbs laid waste to Bosnia prompted the Clinton administration to veto a second term. Kofi Annan? Brought low by his son Kojo&amp;#39;s financial peculation in the Iraq oil-for-food scandal.&lt;br /&gt; &lt;br /&gt; COMMENTS (1)&lt;br /&gt;  SHARE: &lt;br /&gt; Digg &lt;br /&gt;  &lt;br /&gt; Facebook &lt;br /&gt;  &lt;br /&gt; Reddit &lt;br /&gt;  &lt;br /&gt;  More... Even in this unimpressive company, though, Ban Ki-moon appears to have set the standard for failure. It&amp;#39;s not that Ban has committed any particularly egregious mistakes in his 2½ years on the job. But at a time when global leadership is urgently needed, when climate change and international terrorism and the biggest financial crisis in 60 years might seem to require some—any!—response, the former South Korean foreign minister has instead been trotting the globe collecting honorary degrees, issuing utterly forgettable statements, and generally frittering away any influence he might command. He has become a kind of accidental tourist, a dilettante on the international stage.&lt;br /&gt; &lt;br /&gt; Not for him bold speeches or attempts to mobilize public opinion behind what could be an organization that helps tackle nuclear proliferation or reconstruct Afghanistan. Not for him championing human rights, or even rallying in defense of beleaguered civilians. Visiting Malta in April for yet another honorary degree, he was evasive when asked about the island&amp;#39;s penchant for sending illegal African immigrants packing off to Italy, saying, &amp;quot;I am not in a position to intervene.&amp;quot; As tens of thousands of Tamil refugees lingered under fire on a narrow strip of beach in Sri Lanka, Ban and his advisors did little more than huddle in New York and wring their hands, onl　　　y making a trip to the war zone after hostilities ended. Under his stewardship, the United Nations isn&amp;#39;t merely an unhelpful place—it&amp;#39;s a largely irrelevant one　　　.&lt;br /&gt; &lt;br /&gt; Ban&amp;#39;s flaws were obvious dating back to his decades toiling in the South Korean foreign ministry, where he earned a telling nickname, &amp;quot;The Bureaucrat.&amp;quot; Luckily for Ban, if not for the rest of the world, The Bureaucrat was exactly what the Bush administration was looking for after years of tussling with the assertively anti-American Annan. When it became Asia&amp;#39;s turn to nominate a secretary-general, Bush&amp;#39;s secretary of state, Condoleezza Rice, made Ban&amp;#39;s election her pet project. But Ban failed to charm outside observers. In his book The Best Intentions, James Traub recounts a speech at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during Ban&amp;#39;s campaign to become secretary: &amp;quot;[B]etween his anodyne oratory, and his unsteady grasp of English, I found that I had been lulled to sleep.&amp;quot;&lt;br /&gt; &lt;br /&gt; As secretary-general, Ban&amp;#39;s soporific effect has never left him. One　　　 U.N. watcher told me that Ban is like the proverbial tree falling in the forest with no one　　　 around to witness its crash—if you don&amp;#39;t hear him, does he really exist? Aside from his role as a subsidiary of South Korea, Inc.—lining his office walls with Samsung televisions and hiring his South Korean buddies as senior advisors—his imprint has been negligible. Even Ban seems aware of what a nonentity he is: Last August, speaking to senior U.N. officials in Turin, he described his management style as elevating teamwork over intellectual attainment. But he went on to bemoan his difficulty overcoming bureaucratic inertia, ending with a gnomic admission of general defeat: &amp;quot;I tried to lead by example. Nobody followed.&amp;quot;&lt;br /&gt; &lt;br /&gt; At their best, U.N. secretaries-general can serve as a goad to the world&amp;#39;s conscience and a genuine catalyst for change. Dag Hammarskjold, for example, sought to expand the United Nations&amp;#39; mandate by undertaking high-profile and frequently risky missions, from meeting with Chinese leaders under Mao to securing freedom for 15 American pilots captured during the Korean War to traveling several times to the Congo in hopes of averting warfare during decolonization. During the 1980s, the urbane Javier Pérez de Cuéllar earned high marks for conducting talks between Argentina and Britain after the Falklands War and for bringing about Namibian independence from South Africa.&lt;br /&gt; &lt;br /&gt; So far, Ban has no such successes to his credit. It&amp;#39;s not as if there aren&amp;#39;t enough crises around the globe for him to make his mark, whether in Sri Lanka or Sudan or the Middle East. But Ban hasn&amp;#39;t given any indication that he&amp;#39;s going to have an impact in any of these places—or even that he wants to.&lt;br /&gt; &lt;br /&gt; &lt;br /&gt; 문제가 된 뉴스위크 기사는 미국의 외교 전문잡지 포린 폴리시 7~8월호에 미국 싱크탱크 닉슨센터가 발행하는 잡지인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시니어 에디터인 제이콥 하일브룬이 실은 기사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편집자주:&lt;br /&gt; &lt;br /&gt; 반기문총장이 산적한 국제적 문제를 제켜놓고 북한 핵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의 의지를 나타내어도 그에 대한 비판은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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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5 Jun 2009 12:30:39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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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중국의 동북공정 문제 없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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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 없다 ?&lt;br /&gt; http://kr.blog.yahoo.com/hjk5607/1296 &lt;br /&gt; &lt;br /&gt;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 없다 ?&lt;br /&gt; &lt;br /&gt; &lt;br /&gt; 우리나라 상고사의 뿌리가 시간과 공간을 두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자료를 모으다가&lt;br /&gt; &lt;br /&gt; 중국이 왜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데 이르렀다.&lt;br /&gt; &lt;br /&gt;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다가 우리한반도의 조선시대&lt;br /&gt; &lt;br /&gt; 건국초기 북방의 상황에 대하여 관심을 두게 되었다.&lt;br /&gt; &lt;br /&gt;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등 상고시대에서 통일신라 ,고려를 지나 이성계의 조선시대까지 &lt;br /&gt; 역사적 시간이라는 큰 간격를 두고 &lt;br /&gt; &lt;br /&gt; 같은 장소 지역인 한반도와 주변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에서는 &lt;br /&gt; &lt;br /&gt; 어떤 왕조와 민족이 명멸하고 &lt;br /&gt; &lt;br /&gt; 어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는가를 찾아나서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왜 오늘의 21세기 중국이 엄청난 땅을 차지하게 되었은가에 대한 배경이다.&lt;br /&gt; &lt;br /&gt; 그것은 &lt;br /&gt; 오늘날 2008년 올림픽을 전후로 중국이 세계최고의 달라보유국 ,핵무기보유, 우주선자체발사등&lt;br /&gt; 경제적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입김이 강한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lt;br /&gt; &lt;br /&gt; 국가사회과학원에서 &lt;br /&gt; &lt;br /&gt; 동북공정이라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세웠다.&lt;br /&gt; &lt;br /&gt; 필자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학술적으로 논란이 있울 수 있지만 &lt;br /&gt; &lt;br /&gt; 현재 티벳트, 서장, 동북지역등 소수민족의 분쟁과 자주 독립, 국경문제해결을 뿐만 아니라 &lt;br /&gt; 중국내부의 특히 상해 광동지역 경제적 만족도가 올라감에 따라 자체 분열을 예방하는  &lt;br /&gt; 사전 포석이라고  본다.&lt;br /&gt; &lt;br /&gt; &lt;br /&gt; 동북공정은 &lt;br /&gt; &lt;br /&gt; 그것의 일환으로 그들 중심의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중국 공산당의 지도부는  중국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lt;br /&gt; 주변 경제상황 및 정세 변화에 예의 주시하면서 통치 안정을 구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그 전략중의 하나가 동북공정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lt;br /&gt; 우리가 북방영토에 우리 선대민족의 역사문화유적이 엄청나게 많다고 해서 &lt;br /&gt; &lt;br /&gt; 그것이 현재 와서 우리땅의 역사이라고 분란을 일으켜 중국지도부와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lt;br /&gt; 우리도 중국지도부도 유익한것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lt;br /&gt; &lt;br /&gt; 역사에서 그 당시의 땅의 주권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중요하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역사적문제를 현중국의 내치문제 해결방안으로 끌여들이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이는 도리어  적당시기가 되면 이것때문에  &lt;br /&gt; 중국 공산당의 역사공정이 도마위에 오를수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또한  과거사와 연계해서 현재 영토문제 관할 문제가 동시에 발생되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들은 역사적으로 중국 한족의 중심의 나라는 지금의 양자강 이남 하남성을 경계로 이루어져 왔다.&lt;br /&gt; &lt;br /&gt; 역사소설 삼국지에서 그러하듯 모두 그 지역을 찾기위한 싸움이었다.&lt;br /&gt; &lt;br /&gt; 그들은 대대로 중국 대륙을 도도히 흐르는 양자강을 장강이라 일컬으며 &lt;br /&gt; &lt;br /&gt; 이를 경계로 하남과 하북을 구분하고 하북의 나라들을 북방 오랑캐라고 불러왔다.&lt;br /&gt; &lt;br /&gt; 송나라까지 그 흐름을 유지 하였다가 &lt;br /&gt; &lt;br /&gt; 중국전역 분만 아니라 중아아시아 인도 동유럽 까지 몽골의 징기스칸에 의해 점령당한다.&lt;br /&gt; &lt;br /&gt; 징키스칸은 수도를 송의 수도인 개봉에서, 북경으로 중심으로  통치를 해왔다.&lt;br /&gt; &lt;br /&gt; 그들이 물러나자 남방의 한족 출신인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면서 &lt;br /&gt; &lt;br /&gt; 다시 남방인 남경을 도읍이라 정하였다.&lt;br /&gt; &lt;br /&gt; 원이 망하는 시기는 고려말이며,당시 북방은 원의 통치권이 약화되어 있어 &lt;br /&gt; 북방의 발해, 고구려 고조선의 고토 영역을 되찾자는 시대적 갈망이 있었다. &lt;br /&gt; 그 일환으로  고토수복을 위해 절호의 시기적 기회였다. &lt;br /&gt; &lt;br /&gt; 고려정권은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었다.&lt;br /&gt; &lt;br /&gt;  그 고토회복 책임장군이 이성계였다.&lt;br /&gt; &lt;br /&gt; 그는 이를 배반하고 도리어 고려 왕권을 쥐게된다( 위화도 회군).&lt;br /&gt; &lt;br /&gt; 위화도 회군이 이루어진 뒤 정치적 수순을 밟아 세워진 근세 조선은 &lt;br /&gt; &lt;br /&gt; 사대주의의 근본인 유교인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lt;br /&gt; &lt;br /&gt; 넓은 초원을 무대로 세계를 호령하던 흉노족의 호연지기와 기마민족 &lt;br /&gt; 고유의 진취성을 거세해갔고, &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amp;#39;작은 나라, 작은 역사&amp;#39;의 답답한 굴레가 한반도안에서 &lt;br /&gt; 500여 년 동안 우리를 짓눌러왔던 것이다. &lt;br /&gt; &lt;br /&gt; 사대주의의 시작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명나라가 1368년에 건국되었고 조선이 1392년에 건국되었으므로 &lt;br /&gt; &lt;br /&gt; 조선의 태종 이방원이 부친인 이성계와 황동을 하던 동시대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lt;br /&gt; &lt;br /&gt; 그러다 얼마않되어 명의 정권이 안정되자 주원장의 손자가 왕으로 책봉되자 &lt;br /&gt; 주원장과 함께 건국을 도모한 삼촌이 왕위를 찬탈하고 남경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었다.&lt;br /&gt; &lt;br /&gt; 그리고 명이 200년도 않되어 내분에 의해 망하면서 청나라가 들어 선다. &lt;br /&gt; &lt;br /&gt; 명나라의 국토는 과거 한족이 나라를 이끌던 &lt;br /&gt; 중원이라고 불리우는 남경을 기반으로 하였다&lt;br /&gt; &lt;br /&gt; 중국 한족은 양자강을 넘어가면 왕조가 망한다는 징크스가 항상 있어왔다.&lt;br /&gt; &lt;br /&gt; 그 징크스가 재차 실현되었다. &lt;br /&gt; &lt;br /&gt; 그들이 항상 염려하던 바로 북방민족 오랑캐의 침입이다.&lt;br /&gt; &lt;br /&gt; 오늘의 중국의 큰 대륙을 가지게 한 민족은 청나라 여진족이다. 즉 만주족이다.&lt;br /&gt; &lt;br /&gt; 그 여진족은 &lt;br /&gt; 우리가 잘아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구성하는 민족중 하나인 훙노족 숙신족 돌궐족 부여족 몽골족 거란족 선비족 말갈족 여진족중의 하나이다.&lt;br /&gt; &lt;br /&gt; 그들은 우리와 뿌리를 같이한다, 상고사 시절의 형제민족이다.&lt;br /&gt; &lt;br /&gt; 고구려가 망한후 뿔뿔히 헤어져 각자의 지역에서 북방에서 유목생활을 하여 왔다.&lt;br /&gt; &lt;br /&gt; 발해라는 나라도 고구려유민과 말갈족이 세워 번성하였다.&lt;br /&gt; &lt;br /&gt; 우리가 아는 고조선 ,고구려,발해를 구성하는 백성은 여러부족이 섞인 다민족국가이다.&lt;br /&gt; &lt;br /&gt; 그 장소에서 역사의 언덕을 넘어 최초로 중국 전체를 통일한 최대의 국가를 건설한다..&lt;br /&gt; &lt;br /&gt; 그 것이 청이다.&lt;br /&gt; &lt;br /&gt; 초기엔 그들의 나라이름을 &amp;quot;후금&amp;quot;이라고 하다 &amp;quot;청&amp;quot;으로 개칭한다.&lt;br /&gt; &lt;br /&gt; 첫도읍지는 지금의 요령성 심양이다.&lt;br /&gt; &lt;br /&gt; 여진족은 조선초 건국초기에 이성계를 도와준 건국공신 민족이다.&lt;br /&gt; 그를 도운 여진족은 이지란(李之蘭)이다 그의 본명은 쿠란투란티무르&amp;#39;다. &lt;br /&gt; &lt;br /&gt;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의 공을 세웠다. 이성계와 형제의 의를 맺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lt;br /&gt; (필자주 : 이성계도 여진족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논외)&lt;br /&gt; &lt;br /&gt; 건국후 얼마 않되어 조선의 사대부들은 그들을 무식하고 야만스럽다고 내쫒게 된다.&lt;br /&gt; &lt;br /&gt; 그 못난 여진이 조선중기에 강성하여 나라를 세우고 중국의 중원을 차지 하게 된다.&lt;br /&gt; &lt;br /&gt; 고구려 멸망이후 우리 선조 민족은 한번도 중국왕조를 상대로 싸워 이겨 본 적이 없다.&lt;br /&gt; &lt;br /&gt; 중국 중원을 차지 해본적도 없다.&lt;br /&gt; &lt;br /&gt; 조선중기 여진은 흩어져 있는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강성한 나라를 세우게 된다. &lt;br /&gt; &lt;br /&gt; 그 수장이 누루하치이다.&lt;br /&gt; &lt;br /&gt; 그들은 우리에게 같은 뿌리의 후손들이니 서로 화합하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lt;br /&gt; &lt;br /&gt; 유교로 무장한 지식인들이나 관료들이 무식한 오랑캐라고 멸시를 하였다.&lt;br /&gt; 그들이 보낸 사신을 체포하여 명나라로 보내버린 사건이 있었다.&lt;br /&gt; &lt;br /&gt; 이곳은 외교상 커다란 결례이다.&lt;br /&gt; &lt;br /&gt; 그 결과가 조선 정복이었다. 즉 1636년 일어난 병자호란이다.&lt;br /&gt; &lt;br /&gt; 여진족이 세운 후금 즉 청나라에 의해 조선은 임진왜란 후 얼마 안되어 &lt;br /&gt; 또 전국이 전란에 휩싸여 처절하게 당하게 된다.&lt;br /&gt; &lt;br /&gt; 조선임금이 엄동설한 대한추위의 겨울에 먹을 것이 없이 쫄졸 굶다가 남한 산성에서 내려와 &lt;br /&gt; &lt;br /&gt; 바람부는 한강변 삼전 나루터 모래밭에서 &lt;br /&gt; 왕과 왕비, 후궁 왕세자 뿐만아니라 영의정이하 모든 신하들이 추위에 &lt;br /&gt; 오금을 벌벌떨면서 몇시간에 걸쳐&lt;br /&gt; 여진족의 청나라 청태종과 그들의 장수에게 업드려 항복을 하고 신하의 예를 올렸다.&lt;br /&gt; &lt;br /&gt; 우리가 오랑캐라고 하는 무식한 놈들에게 처절하게 당하는 민족적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그 치욕은 말로 형언 할수 없었다고 한다.( 정비석의 소설 &amp;quot;통곡&amp;quot; 참조)&lt;br /&gt; &lt;br /&gt; 임금과 신하가 절을 하는 사이에 왕의 후궁과 공주, 고급관료들의 정경부인들이 발가벗기어 임금과 신하들이 다 보는 앞에서 능욕을 당하는 묘사가 나온다. &lt;br /&gt; &lt;br /&gt; 남편들이 보는 앞에서 부인과 딸이 오랑캐들에게 능욕 당하는 지켜보는 것은 &lt;br /&gt; &lt;br /&gt; 명성황후가 일본 야쿠사에게 당하는 것보다 더한 분노를 떨게 한다.&lt;br /&gt; &lt;br /&gt; 끔찍한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그 치욕을 기록하는 비가 바로 잠실의 롯데호텔 옆에 있는 삼전도 비이다.&lt;br /&gt; &lt;br /&gt; 잠시 그 여진족과 청에 대해서 정리 해보기로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퍼온 자료:&lt;br /&gt; &lt;br /&gt; 여진족(女眞族 중국어 간체: 女真, 정체: 女眞, 병음: nǚzhēn)은 만주 일부와 한반도 북부에서 거주했던 에벤키 계통 민족으로, 17세기에 만주족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금나라를 1115년과 1122년 사이에 세웠으며( 고려 중엽 ) 이 왕조는 1234년까지 건재하였다. 그 후 1586년 누르하치(조선중기)가 여진의 세 부족을 통합하고 연합된 부족의 이름을 만주족으로 바꾸었다. 누르하치는 유목 법령을 통합하여 강력한 제도를 만드는데, 이는 후금(後金)과 중국을 점령한 후의 청(淸)제국이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금나라&lt;br /&gt; &lt;br /&gt; 여진족이라는 표현은 10세기 여진족 언어의 &amp;quot;여진&amp;quot;이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lt;br /&gt; 이 단어의 기원은 현재 학계에서 합의되지 않은 상태이다. &lt;br /&gt; 북만주의 여진 부족들은 원래 거란의 신하들이였다. (요나라사 참고)&lt;br /&gt; &lt;br /&gt; 1115년 완안 아골타가 그들을 통일하여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고 (금나라, 김생 소설 영웅문 참조)&lt;br /&gt; 1126년 요나라의 수도 카이펑을 점령하자 이들은 권력을 잡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여진 군대는 양쯔 강까지 남하하였으나 회하 부근에서 저지되고 남송은 일단 국경을 방어하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여진족은 자신의 왕조를 고향에 있는 강의 이름을 따라 금(金)이라고 지었다. &lt;br /&gt; 여진 부족들은 전쟁에 뛰어났으나 정착하여 수십년을 지내게 되자 자신의 유목 정체성을 잃게 되었다.&lt;br /&gt; 결국 여진족은 점차 한족화 되어갔으며, 남송과의 평화를 공고히 하였다. &lt;br /&gt; 금나라의 지배자들은 유교를 따르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1189년 금나라는 몽골과 남송을 상대로 두개의 전선에서 싸우게 되었다. &lt;br /&gt; 1215년 몽골 군대의 압력 하에 이들은 수도를 베이징에서 카이펑으로 옮겼으나 &lt;br /&gt; 1234년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되었다( 원 오코타이 징기스칸의 3남)&lt;br /&gt; &lt;br /&gt; (편집자 주:중국은 징기스칸의 원나라로 명명된다. 한반도의 고려도 점령을 당하게 된다. 이때도 몽골은 형제국이라 하여 조공국으로 정하고 고려 국명은 그냥 두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문화, 언어 그리고 사회&lt;br /&gt; &lt;br /&gt; 여진족은 일반적으로 초기 조상들의 유목 전통을 따랐다. 거란과 몽골족들처럼 이들은 힘과 말을 다루는 기술 그리고 궁술과 사냥을 즐겼다. 그들은 샤먼 의식을 행하였으며 하늘 신 (abka-i enduri 또는 abka-i han)을 섬겼다.&lt;br /&gt; &lt;br /&gt; 초기 여진 문자는 1120년 완안 아골타 (完顏 阿骨打)의 명에 따른 Wanyan Xiyin에 의하여 발명되었다. &lt;br /&gt; &lt;br /&gt; 이것은 거란 문자에 기반하였는데 한편 거란 문자는 한자에 기반하였다. 그러나 중국어는 고립어이며 여진 및 거란의 언어는 교착어이기 때문에 이러한 표기 방식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여진 문자는 금나라가 멸망하자 급속히 사라졌으나 여진어는 부분적으로 살아남았다. 16세기 말까지 여진족은 몽골어와 중국어를 혼합한 언어를 이용하다가 이후 만주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여진 사회의 문화는 몽골족의 큰 영향을 받았다. 몽골족과 여진족 둘 다 정치적 지도자에게 &amp;quot;칸&amp;quot;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으며 이는 황제이든 부족장이든 가리지 않고 사용되었다. 아주 강력한 부족장은 &amp;quot;beile&amp;quot; (왕자, 귀족)이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몽골의 &amp;quot;beki&amp;quot;와 터키 민족의 &amp;quot;beg&amp;quot; 또는 &amp;quot;bey&amp;quot;에 해당한다. 또한 몽골족과 터키 민족처럼 여진족은 맏아들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능력이 있는 아들 또는 사촌은 누구든지 지도자로 선택받을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명나라 시대 동안 여진족은 고대적인 씨족(hala)의 소규모 씨족(mukun, 또는 hala mukun)적인 사회 단위에서 생활했다. 여진족 씨족의 일원들은 동일 조상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으며 단일한 장(mukunda)의 통치를 받아들였다. 모든 클랜들이 혈연으로 얽혀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는 자주 분쟁과 합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여진 가정 (boo)은 하나의 가족 (booigon)처럼 살았으며 일반적으로 혈연으로 맺은 다섯개에서 일곱개의 가족원들과 노예들이 살았다. 가정들은 소대 (tatan)을 형성하여 사냥을 하며 음식을 구하였다. 전쟁 등의 대규모 활동을 위하여는 기업 (niru)를 조직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명대의 여진족&lt;br /&gt; 명왕조의 역사가들은 여진족을 세 분파로 나누어 파악하였다: 만주 최북방의 야인 여진(野人女眞)과 현대 헤이룽장 성에 거주하던 해서 여진(海西女眞), 그리고 지린 성의 건주 여진(建洲女眞)이다. 이들은 유목과 농경을 병행했으며 사냥과 낚시 그리고 제한된 농업을 생업으로 삼았다. 1388년 홍무제는 오돌골과 훌리가이 그리고 퉁비족들과 조공 관계를 맺었으며 이리하여 여진족의 중화 과정이 시작되었다.&lt;br /&gt; &lt;br /&gt; 영락제는 북원과 대항하기 위해 여진 부족 중에서 동맹자를 찾았다. 영락제는 부족장에게 작위를 수여하거나 성을 하사하는 방법을 통하여 그들이 주기적으로 조공을 해 오기를 바랐다. 요동의 북변에서는 무역을 위한 말시장이 열리기도 했다. 여진족 중국화의 결과로[출처 필요] 여진족이 조직화된 정치구조를 갖추게 되고 영향력을 외부로 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뒤에 이일과 젊은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군은 여진족을 조선의 강역으로부터 몰아내게 된다.&lt;br /&gt; &lt;br /&gt; 30년이 지난 후인 1586년 건주 여진의 우두머리였던 누르하치가 여진의 세 부족을 통합하고 연합된 부족을 만주족으로 개명한다. 누르하치는 유목 법령을 통합하여 강력한 제도를 만드는데, 이는 후금과 중국을 점령한 후의 청(淸)의 기반이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여진족&lt;br /&gt; &lt;br /&gt; 야인여진의 4부족&lt;br /&gt; 파아손 (巴兒孫)&lt;br /&gt; 착화(著和)&lt;br /&gt; 홀라온 (忽剌溫) :1436년 (함경도)&lt;br /&gt; 호(胡),오랑캐 (瓦爾哈/兀良哈三卫(泰宁、朵颜、福余)) =올랑합 ;이인(夷人);돌궐;이족(夷族);동이(東夷傳);蠻夷;戎狄;夷狄;서융(西戎);이제(夷齊); 남만(南蠻): 매독(每毒) &lt;br /&gt; 1436년 함경도 &lt;br /&gt; 1460년 (세조)함경도 :북적(北狄) = 북쪽/북방 오랑캐 :낭패아한/낭발아한 (浪悖兒罕/浪孛兒罕); 동속로첩목아 (童速魯帖木兒) &lt;br /&gt; ca. 1583-7년 : 이탕개/니탕개(尼湯介)&amp; 번호(藩胡), 울지내(鬱只乃)&lt;br /&gt; &lt;br /&gt; 해서여진의 4부족&lt;br /&gt; 우라 (烏拉 &amp;gt; 1613년) &lt;br /&gt; 후이파 (輝發 &amp;gt; 1607년) &lt;br /&gt; 예허 (葉赫 &amp;gt; 1619년) : &lt;br /&gt; 星根達爾漢 (신게다루한); &lt;br /&gt; 席爾克明噶圖 (시르게민가도); &lt;br /&gt; 齊爾噶尼 (치르가니); &lt;br /&gt; 褚孔格 (추꾼게); &lt;br /&gt; Cinggiyanu (淸佳砮;†1584년 ) &lt;br /&gt; Yangginu (楊吉砮;†1584년 ); &lt;br /&gt; 金台石 (긴따이시); &lt;br /&gt; 德爾格勒(데르게르) ; &lt;br /&gt; 布寨 (부자이); &lt;br /&gt; 布揚古(부양구); &lt;br /&gt; 布爾杭古 (부르항구)&lt;br /&gt; 하다 (哈達 &amp;gt; 1601년) : &lt;br /&gt; Wang Tai (萬汗/王台: 1548-1582년 )&lt;br /&gt; &lt;br /&gt; 건주여진의 5부족&lt;br /&gt; 오도리/알도리 (지금 회령지방) = 斡都里; 斡朵里;吾都里;斡朵怜 :&lt;br /&gt; &lt;br /&gt; Möngke Temur (孟特穆 / 猛哥帖木耳;1405-1433), &lt;br /&gt; Cungšan (充善; (b.1419) 1433-1467년 ), &lt;br /&gt; 펀차(Fanca ,† 1458년 ); &lt;br /&gt; 교창가 (覺昌安,† 1583년 )&lt;br /&gt; 호리개로 (胡里改路) : &lt;br /&gt; 아하추( 阿哈出 ,Ahacu † 1409-1410년 ), &lt;br /&gt; 이만주 (李滿住;† 1467년 )&lt;br /&gt; 도은 (桃温/桃溫)&lt;br /&gt; 발고강(荸苦江) &lt;br /&gt; 탈알령(脱斡怜)&lt;br /&gt; 우디거/우디캐/우디하/ 올적합(兀狄哈:Wudige): (영고탑 지방)&lt;br /&gt; &lt;br /&gt; 왕고 (王杲;†1575년 ); &lt;br /&gt; Atai (阿台;† 1583년 ); &lt;br /&gt; Nikan Wailan (尼堪外兰;† 1586년 )&lt;br /&gt; &lt;br /&gt; 여진족은 한민족이라는 주장&lt;br /&gt; 몇몇 중국 사서에서는 여진족이 한민족이라는 주장이 있다. 아래는 그 예이다.&lt;br /&gt; &lt;br /&gt; 金之始祖諱函普. 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兄阿古好佛，留高麗不肯從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 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 -금사(金史) : 금나라의 역사서- &lt;br /&gt; &lt;br /&gt; 新羅王金姓則金之遠派出 신라왕의 김씨성이 나라 이름 금이 나온 먼 갈래이다. -흠정만주원류고 제7권 (청나라 시대에 저술한 만주족의 역사서)&lt;br /&gt; &lt;br /&gt; 두 번째 근거와 관련하여, 금나라 황족의 성씨인 애신각라(愛新覺羅)와 신라의 연관성을 찾는 사람도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청의 태종인 홍타이치를 선조의 아들 광해군은 북방의 정세변화 판세 대해서 잘 알고있었다.&lt;br /&gt; &lt;br /&gt; 그의 실리외교는 아주 현실적이고 주변 정세를 잘 읽고 있었으나, &lt;br /&gt; &lt;br /&gt; 광해군의 대청우호선린의 그 주장은  &lt;br /&gt; 명이 내분에 의해 망하고 있고 , 청은 군사력이 강력하여 이미 산해관(중국동쪽 경계출입관문)을 넘어 북경 가까이 진격을 하고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lt;br /&gt; &lt;br /&gt; 7년 전쟁의 임진왜란 당시 명의 큰 도움으로 나라를 구한 조선의 입장과 배치되어, 명을 손들어 주는 것이 의리이고 도리이다라는 명분론에서 밀리었다. &lt;br /&gt; &lt;br /&gt; 이는 시간을 뒤로 돌려 한국이 대만을 버리고 중국과 1992년 수교할때 &lt;br /&gt; &lt;br /&gt; 장개석주석이 상해임정당시 한국독립을 위해 &lt;br /&gt; 을 물심양면으로 헌신적 도움의 은혜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 즉 중국이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lt;br /&gt; &lt;br /&gt; 당시 명분만 내세운 인조정부와 &lt;br /&gt; 명분과 현실과 국가적 실익을 모두 고려한 김영삼정부의 판단이 서로 틀린것이다. &lt;br /&gt; &lt;br /&gt; 현 중국과 국교를 정상후 오늘까지 상호국익과 동북아 세력안정에 &lt;br /&gt; 얼마나 큰 이익을 만든 발판이 된 것에 대해서&lt;br /&gt; 현 국민들은 높히 평가 해야 한다.&lt;br /&gt; &lt;br /&gt; 그 이후 다시 선린을 할수 있는 기회를 찾아 우정을 되살리는 것이 국가 및 인간관계이다. &lt;br /&gt; &lt;br /&gt; 국제외교에는 명분과 실리를 다 필요하지만 국제사회의 냉엄한 변화를 모르면 &lt;br /&gt; 치욕의 역사가 반복된다&lt;br /&gt; &lt;br /&gt;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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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2 Jun 2009 22:01:28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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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노무현이 전두환보다 낫다]]></title>
    <description>
        우리는 어제 한 사람을 역사속으로 보내는 의식을 치루었습니다.&lt;br /&gt; &lt;br /&gt; 그는 이제 침묵으로 우리를 소리없이  말하고  있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퇴임후 님의 침묵은  무심한 세월과  답답함을 깨지 못하였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래도 님은  &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lt;br /&gt; &lt;br /&gt; 그 전 나의 자리에 있었던  분하고는 ,,, 하고 할말을 많이 하고 싶었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님의 침묵은 &lt;br /&gt; &lt;br /&gt; 더 이상 침묵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었습니다.&lt;br /&gt; &lt;br /&gt; 200년 역사로 일천한 미국이 &lt;br /&gt; &lt;br /&gt; 오늘날 전세계를 이끌어 갈수 있게 만든 것은  &lt;br /&gt; &lt;br /&gt; 남북전쟁  당시의 링컨이었습니다.&lt;br /&gt; &lt;br /&gt; 북측의 신기술, 신자본과 남측의 전통적 노동적 농업으로 갈라진 남북의 이해가 &lt;br /&gt; &lt;br /&gt; 정치적으로 분열될때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뉘어&lt;br /&gt; &lt;br /&gt; 미국은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큰 전쟁이 일어 났습니다.&lt;br /&gt; &lt;br /&gt; 돈으로 갈라진 기득권 이해와&lt;br /&gt; &lt;br /&gt; 흑인 인권으로 유린된 미국을  포용한 지도자였습니다.&lt;br /&gt; &lt;br /&gt; 그 역사의 이음이 오늘날 오바바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삶과 죽음을 초월할수 있는 진정한 용기가 &lt;br /&gt; &lt;br /&gt; 님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우리나라 더러운 지식인과 &lt;br /&gt; &lt;br /&gt; 완장찬  비굴한 법률인,&lt;br /&gt; &lt;br /&gt; 돈먹은 정치인들에게&lt;br /&gt; &lt;br /&gt; &lt;br /&gt; 무지 몽매한 국민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와 국민들앞에 &lt;br /&gt; &lt;br /&gt; 노무현 처럼  죽을 수 있나고 &lt;br /&gt; &lt;br /&gt; 물을 것입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제는 &lt;br /&gt; &lt;br /&gt; 노무현은 &lt;br /&gt; &lt;br /&gt; 남한이 두려워 오지도 못하는  김정일하고는 게임이 않되고&lt;br /&gt; &lt;br /&gt; 전두환보다 낫다고 말을 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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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31 May 2009 09:21:26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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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북의 핵 미사일 실험/ 극심한 안보 위험]]></title>
    <description>
        북한의 핵미사일&lt;br /&gt; &lt;br /&gt;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로 남쪽이 극심한 혼란한 시기에  &lt;br /&gt; 북한은 지하 핵폭발 실험을 하였고&lt;br /&gt; 동해상에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대는 실험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은 그동안 유보해핬던 PSI에 전격적으로 가입을 하였고 &lt;br /&gt; 북은 이에 남측이 북에 대한 전쟁선언이라고 공표하였다.&lt;br /&gt; &lt;br /&gt; 6.25 전쟁후 이렇게 상황이 너무나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던 적이 없다.&lt;br /&gt; &lt;br /&gt; 당사자인 한국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등, &lt;br /&gt; 유엔안보리에서도  만장일치로  북의 잘못된 불법 행동에 긴박하게 대응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북한은 이미 지하 핵폭발 실험을 성공리에 끝내고 &lt;br /&gt; 이를 발사체에 실어 쏘는 실험까지 성공했다고 볼수 있다.  &lt;br /&gt; &lt;br /&gt; 단거리 핵미사일을 이미 보유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lt;br /&gt; &lt;br /&gt; 한반도 전역이 그 핵미사일의 사정권에 있다고  판단 된다.&lt;br /&gt; &lt;br /&gt; 너무나 위험한 순간에 놓여 있다.&lt;br /&gt; &lt;br /&gt; 북은 남한의 혼란을 노리고 있다. &lt;br /&gt; &lt;br /&gt; 북은 이미 통제 불능의 미친 상태에 있다. &lt;br /&gt; &lt;br /&gt; 국제사회 룰이든 남북 약속이든 보이는 것이 없다.&lt;br /&gt; &lt;br /&gt; 북의 핵미사일이 남한의 주요한 1급 안보시설(발전설비, 통신설비, 상수원,가스공급설비, 국제공항)을 파괴하게 되면   한국은 바로 마비가 될 수 있는 지경이다.&lt;br /&gt; &lt;br /&gt; 만약 팔당 상수원을 공격하게 되면 수도권은 바로 엄청난 대혼란에  휩싸일수 있다&lt;br /&gt; &lt;br /&gt; 북이 핵미사일은 위력은 가공할만하다. &lt;br /&gt; &lt;br /&gt; 일본의 나가사키에 낙하된 것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남쪽 사람들이 죽고 난 다음에 북측보고  불법이니 위반이니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 예상지역이 어딜일까?   &lt;br /&gt; &lt;br /&gt; 한방으로 수도권 전역이 마비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서울은 너무 가깝다.&lt;br /&gt; &lt;br /&gt; 한방에 주변 15km 이내에 62만명이 즉사한다고 한다면 &lt;br /&gt; &lt;br /&gt; 북으로 볼때면  한방으로 가장 효율이 좋은 곳을 택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북의 공격이 예상되는 곳은  서해5도가 아니라 인천국제공항이 될 수도 있다.&lt;br /&gt; &lt;br /&gt; 관심을 서해5도로  쏠리게 하는 유인술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인천국제공항은 북한으로부터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있다.&lt;br /&gt; &lt;br /&gt; 모든 국제선이 마비가 된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떻게 될것인가&lt;br /&gt; &lt;br /&gt;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을 치루는 것보다  더욱 절박한  현실이다.&lt;br /&gt; &lt;br /&gt; 엄청난 혼란을 대비한 국민 행동 요령을 주요방송사을 통해 발표하고 &lt;br /&gt; &lt;br /&gt; 시급히 정부의 국방안전 대응태세를 보여야 한다 &lt;br /&gt; &lt;br /&gt;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노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정부의 책임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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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9 May 2009 23:57:35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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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노무현의 죽음 ,,,,,순교자인가]]></title>
    <description>
        필자가 인도에 출장와서  두가지 엄청난  일을 직접 보게 된 일이 있다.&lt;br /&gt; &lt;br /&gt; 하나는 인도의 2009년 총선이었으며  &lt;br /&gt; &lt;br /&gt; 또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suicide)사건이다.&lt;br /&gt; &lt;br /&gt; 11억 인구에서 7억명이 넘는 유권자가 직접 선거로 지역별로 순차적으로 시행하여 &lt;br /&gt; 평화적으로 5월13일 끝이 났다. &lt;br /&gt; &lt;br /&gt; 현 지구상에서 단일 국가에서 최대의  유권자의 직접선거이다.&lt;br /&gt; &lt;br /&gt; 모든 선거는 전자투표를  하였으며, 전자개표는 실시간으로 인도의 각개의 공용언어로  중개방송하였다. &lt;br /&gt; &lt;br /&gt; 7억명의 유권자 투표 결과가  자정쯤에  그 결과를 보여 주었다, 인도 IT 기술의 현주소를 말해준다.&lt;br /&gt; &lt;br /&gt; 지난  5월 16일 그 결과가 발표되었다.  &lt;br /&gt; &lt;br /&gt; 집권당으로는  &lt;br /&gt; &lt;br /&gt; 소니아 간디(여자)가 총재로 있는 CONGRESS 당이 있는 UPA 정당연합이 압승을 하였고 &lt;br /&gt; 그 이후 바로 차기정권의 조각이 그 정당연합에서 어떻게 내각을 구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정당연합당끼리  상호합의 하에 각자 국회의원 의석수에 따라  &lt;br /&gt; 장관등을 배분하는  행위 (PORTFOLIO)를 &lt;br /&gt; 콩그레스 당 총재인 소니아 간디와 만모한 싱 총리의 주도하였다. &lt;br /&gt; 이것을 인도의 주요방송인 NDTV등에서 연일 TOP NEWS 로 보도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집권당에서 선출된 만모한 싱( Manmohan singh)총리는 연임을 하게 되고 &lt;br /&gt; 그에 의해 추천된 임명돤 장관들은 장관직 선서를  &lt;br /&gt; 대통령궁에서 현직 대통령(여자)앞에서 선서(OATH)하는 장면을 &lt;br /&gt; 생중계하는 것을 흥미있게 보았다.&lt;br /&gt; &lt;br /&gt; 모든 권력이 대통령으로 부터 나오는  대통령제를 하는 &lt;br /&gt; 우리에겐 너무나 생소한 것을 보게 되어 아주 흥미 있게 지켜 보고 있다.&lt;br /&gt; &lt;br /&gt; 교과서에서만 보던 의원내각제의 선출 과정을 적나나하게 방송되는 것을 보고 적잖히 놀랐다.&lt;br /&gt; &lt;br /&gt; 인도의 민주주의는 오래되었다.&lt;br /&gt; 영국으로부터 1945년 독립후 초기부터 영국처럼 인도는 의원 내각제로 출발을 했다. &lt;br /&gt; 즉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다수가 있는 당이 정권을 갖는 것이고 &lt;br /&gt; 그 국회의원이 장관으로 구성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권력은 없지만 상징적인 대통령도 있다.&lt;br /&gt; &lt;br /&gt; 건국 초기 총리는 그 유명한 네루 수상이었다.&lt;br /&gt; 그는 무폭력 저항의 마라트마 간디와 달리 영국에 대하여 조직적으로 무장독립운동을 주장하고  &lt;br /&gt; 수차례 감옥에 투옥경험이 있는 인도 독립의 영웅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현 집권당 총재인 소니아 간디는 &lt;br /&gt; 이 당을  창당한 초대 총리인 네루 간디와 부인인 인디라 간디 사이에 태어나 딸이며&lt;br /&gt; &lt;br /&gt; 그녀의 남편도 인도의 집권당 총리엮던  라지브 간디였다. &lt;br /&gt; &lt;br /&gt; 그녀의 남편인 리지브 간디도 어머니, 인디라 간디처럼&lt;br /&gt;  남편을 티밀반군에 의해   암살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인도는 과거 미국소련의 냉전의 각축에서 &lt;br /&gt; 독자적 제 3세력의  독자노선을 주장한 국가들의 중심(반둥회의)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러던 인도가 변화를 시작하엿다.&lt;br /&gt; &lt;br /&gt; 그녀의 Congress party(국민의회당)은 지난 집권 5년동안 년 성장율 9%를 달성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당이 좌파(Left) 성향으로 ( 사회주의,공산주의) 인도를 이끌어 온것을 &lt;br /&gt; 우파(Right) 시정경제 글로발 경제의 중심으로&lt;br /&gt; 바꿔놓은 것이 재집권의 발판이다. &lt;br /&gt; &lt;br /&gt; (편집자주: 인도 콩그레스당은 과거 좌파 공산주의 당과 정당연합 정부를 구성)&lt;br /&gt; &lt;br /&gt; 그 이후 뚜렷한 경제 성장을 직접 피부로 국민들은 보았던 것이다.&lt;br /&gt; &lt;br /&gt; 국민이 원하는 것은 명분과 낡은 이념투쟁이 아니라 일자리와 빵의 해결과 오늘보다 낳은 삶이었다.&lt;br /&gt; &lt;br /&gt; 수도권  뉴델리에서 만나는 국민들 거의가  복잡다단한 인도를 이끌어 갈수 있는 &lt;br /&gt; &lt;br /&gt; 당과 지도자는 &lt;br /&gt; 인도의 진정한 경제발전과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콩그레스당과 &lt;br /&gt; 타협과 양보의 정치인 쏘니아 간디와 청렴하고 노련한 경제 전문가 만모한 싱 총리라고 한다.&lt;br /&gt; &lt;br /&gt; 그 모든 것이 평화적이고 민주주적인 절차에 의해 이루어 져 가고 있는 것에&lt;br /&gt; 필자는 인도의 민주주의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lt;br /&gt; &lt;br /&gt; 또한 필자는 &lt;br /&gt; &lt;br /&gt; 이것을 우리나라와 정치제도와 비교하면서 흥미와 주의 기울이면서 방송을 지켜 보고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 노무현 전 대통령 ********&lt;br /&gt; &lt;br /&gt; 인도에 오기전부터  한국의 주요한 언론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시 비리에 대해 &lt;br /&gt; &lt;br /&gt; 검찰은 스포츠 중개방송하듯이 수사결과 발표하고 &lt;br /&gt; &lt;br /&gt; 국민들은 솔직하지 못한 인간 노무현의 순수성에 대해 적젆은 배반감을 가지고 &lt;br /&gt; &lt;br /&gt; 그의 대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부 그의 반대자들은 그것을 내심 즐기고 있었다.&lt;br /&gt; &lt;br /&gt; 검찰과 언론, 국민 감정은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정신적 부담을 주었으며&lt;br /&gt; &lt;br /&gt; 그러던 그가 자택 뒷산 절벽에서  투신자살 했다는 미국 CNN, 영국의 BBC 헤드라인 뉴스를 보고 &lt;br /&gt; 너무나  놀랐지만&lt;br /&gt; &lt;br /&gt;  한편으로는 필자는 그 상황이라면 그가 자살밖에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았나 &lt;br /&gt; 하는 생각도 얼핏 지나갔다.&lt;br /&gt; &lt;br /&gt; 그가 파렴치한 정치인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을 바에는 그 자신이 죽음으로써 &lt;br /&gt; 그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민과 역사에 자신의  참을 보여주는  길을 택하였다.&lt;br /&gt; &lt;br /&gt; 전 정권 모든잘못이  그에게 짐을 지우진 그 상황에서 &lt;br /&gt; 탈출구는  오로지 육체적인 생명을 마감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끝는 &lt;br /&gt; 자살만이 최선의 최후의 선택이지  않았나 본다.&lt;br /&gt; &lt;br /&gt; 필자가 이런한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lt;br /&gt; &lt;br /&gt; 인도에와서 인도의 정권 구성과정을 보면서 의원내각제의  장점을  보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총선후 국가  권력의 생산과 분배 등을 보면서 &lt;br /&gt; &lt;br /&gt; 한사람에게 집중되어 비리와 부패의 악순환되는&lt;br /&gt; &lt;br /&gt; 우리나라의 대통령제에 문제가 많다고 행각을 하는 중이엇다.   &lt;br /&gt; &lt;br /&gt; 노무현 전 대통령 스스로  자살한 그의 죽음은  잘못되었다.&lt;br /&gt; &lt;br /&gt; 하지만  &lt;br /&gt;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즉  &lt;br /&gt; 사람을 살리고 죽일수 있는 생사 여탈권을 가질수 있는 국가 최고의 권력과 &lt;br /&gt; 또한 국가간 협력과 초 경쟁시대에  한 국가의 운명과 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lt;br /&gt;  대통령 혼자 책임지기에는 벅차다고 할수 있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우리는 역사에서 누누히 보아 왔듯이  일인에게 집중 권력은  필히 부패하게 되어 있다.&lt;br /&gt; &lt;br /&gt; 그것의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 사건이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lt;br /&gt; &lt;br /&gt; 정권이 바뀔때마다 그러하였다.&lt;br /&gt; &lt;br /&gt; 그는 집권 초기에 주장하기를 기존의 모든 잘못된 고리를 과감히 쇄신하는 것이 &lt;br /&gt; 그의  대통령 당선의 의미라고 하였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간 노무현의 정권과 그의 정당인 열린 우리당은 철저히 버림를 받았다.&lt;br /&gt; &lt;br /&gt; 그 가 실패한 이유는 정치라는 것과 권력이라는 것을 다룰 줄 모른 미숙아 였기 때문이었다고 &lt;br /&gt; 그의 정치적 동반자가  반성을 하였다.&lt;br /&gt; &lt;br /&gt; 그는 어쩌면 기존의 한국정치의 잘못된 프레임을 완전히 바꿀려고 한 정치적 반항아 였는 지 모른다.&lt;br /&gt; &lt;br /&gt; 수십년 감정의  골이 깊은 지역 선거판세, 학벌과 지연에 그리고 대기업, 국가조직에 의한 선거 개입&lt;br /&gt; &lt;br /&gt; 고질적 우편향 보수언론과  정치 검찰과의 전쟁에서 &lt;br /&gt; &lt;br /&gt; 그는 모든 것을 보통사람 서민의  입장에서  저항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또는 대통령제의 잘못돤 문제를 보여준  순교자일수도 있다.&lt;br /&gt; &lt;br /&gt; 그는 집권시 그러한 실험을 한것으로 보여질수 있다.&lt;br /&gt; &lt;br /&gt; 이해찬총리의 내치 와 정동영 장관 외교 안보통일의 권력 배분을 통해서 &lt;br /&gt; 그는 실험을 한 것으로 보여 진다.&lt;br /&gt; &lt;br /&gt; 그것이 엄청난 실패를 가져다 준것으로 정치인과 국민들은 알고 있다.&lt;br /&gt; &lt;br /&gt; 대통령제의 문제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lt;br /&gt; &lt;br /&gt; 오죽 하였으면  야당인 한나라 당과 연정(정당연합)을 하자고 하였을까, &lt;br /&gt; &lt;br /&gt; 그가 대통령을 해보니  대통령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것 자체가  &lt;br /&gt;  &lt;br /&gt; 의미없는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것도 잠재되어있다고 보여진다.&lt;br /&gt; &lt;br /&gt; 그것을 당시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서는 배척을 받았다.&lt;br /&gt; &lt;br /&gt; 그는 그것이 싫었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lt;br /&gt; &lt;br /&gt; 그 결과 가 그를 죽음으로 이르는 업보를 만들고 쌓여 온것이다.&lt;br /&gt; &lt;br /&gt; 이러한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lt;br /&gt; &lt;br /&gt; 미국의 상하원제나 인도,영국,&lt;br /&gt; 의원내각제를 적극 검토할 필요하다고  본다.&lt;br /&gt; &lt;br /&gt; 과거 군사독재시대와  달리  우리의 국민성의 역량도 &lt;br /&gt; 정부 주도적으로 일방적으로 매도에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시대가 아님을 &lt;br /&gt; 국민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lt;br /&gt; &lt;br /&gt; 10년에 걸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등의 좌파의 정권도 지내보니 &lt;br /&gt; 그것의 장점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된것이다.&lt;br /&gt; &lt;br /&gt; 나라을 사랑하는 스스로의 자발적인 참여가  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우리는 경험을 하였다.&lt;br /&gt; &lt;br /&gt; 의원 내각제의 정부의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국민과 정치권에서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렇다고  노무현 그를 죽음으로 이끈  것이  대통령제 하에서  다른 전직 대통령이나 수뢰 정치인의 수뢰금액에  비해서  죄가 가벼운 것이 아니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본다.&lt;br /&gt; &lt;br /&gt; 그가 죽음으로써 그가 재임중  저지른 범죄 에대해 공소권 중지가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그것과 별도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거 장례절차등을 정부는 추진할것으로 본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글을 마치면서......&lt;br /&gt; &lt;br /&gt; 그의 죽음에 대해서 조금도 폄하할 의사는 없으며 &lt;br /&gt; &lt;br /&gt; 그의 생전의 자유 분방한 생각이 &lt;br /&gt; &lt;br /&gt; 그 나름대로 애국의 방식과 우리국민을 사랑하는 면에서 &lt;br /&gt; &lt;br /&gt; 그의 정권하에서 국민들에게 가치관과 정체성의 혼란을 주기도 하였지만 &lt;br /&gt; &lt;br /&gt; 그의 개혁적 시도도 긍정적면이 있다고 볼 수있다.  &lt;br /&gt; &lt;br /&gt; 이는 우리사회가 편협하고 일방적인 북한보다 &lt;br /&gt; 민주화에 성숙하고 개방적으로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정치가 &lt;br /&gt; 더욱 나라를 강하게 한다는 장점이 더 크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좌우를 떠나 어느 한족으로 치우치지 않고 냉정히 우리사회를 돌이켜 보면&lt;br /&gt; &lt;br /&gt; 그의 삶의 가치관과 정치적 실험이 우리 사회에 많은 &lt;br /&gt; &lt;br /&gt; 교훈도 주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lt;br /&gt; &lt;br /&gt; 우리나라 역사의 한 인물로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대통령제의 잘못된 제도에 대한 첫 순교자라고 본다. &lt;br /&gt; &lt;br /&gt;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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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1 Jun 2009 23:17:5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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