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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자유]]></title>
<description><![CDATA[해탈은 치우침과 무지 편견 욕망 번뇌 깨우침으로 얻으지는 참 자유]]></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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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자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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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해탈은 치우침과 무지 편견 욕망 번뇌 깨우침으로 얻으지는 참 자유]]></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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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88 cc 민영화 문제 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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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골프장 민영화계획에 국가유공자들 강한 반발&lt;br /&gt; &lt;br /&gt;                   -국가유공자 사기 떨어뜨리는 정부-&lt;br /&gt; &lt;br /&gt;         88골프장은 년간 12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알짜&lt;br /&gt; &lt;br /&gt;   -국가유공자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88골프장은 공기업 민영화와 근본이 달라-&lt;br /&gt; &lt;br /&gt; 대한민국상이군경회 회원 등 “국가유공자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이 정한 국가유공자들이 국가보훈처가 보훈기금 증식사업의 일환으로 1988년도에 조성 완공하여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보훈기금증식에 기여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시 소재 88골프장을 민간에게 매각하려는 정부의 방침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국가보훈처가 건설한 88골프장은 조성당시 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유족의 정지된 보상금으로 조성된 보훈기금으로 보훈기금증식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건설당시 상이군경 등 부상을 입은 유공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재활을 위한 체육시설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보훈기금은 1962년도부터 시행된 군사원호보상법, 군사원호보상급여금법, 군사원호대상자취업보호법  및 군사원호대상자임용법 등에 근거하여 당시 원호처(현 국가보훈처)가 민간기업이나 국영기업체 또는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등에 취업을 시켜주는 대신 취업기간 동안 보상금(연금)을 정지하여 원호기금(현 보훈기금)을 조성하여 그 기금을 증시시켜 취업이 곤란한 상이군인이나 전몰군경유가족들에 대하여 생업자금이나 주택지원 대부를 실시하는 재원으로 사용되었다.&lt;br /&gt; &lt;br /&gt; 1970년대 및 전두환 정부 때 까지 원호기금(보훈기금)의 주요 재원은 국가유공자들의 정지된 연금(정지연금)과 민간 혹은 국영기업 및 국민들이 기탁한 원호성금(현 보훈성금) 이었다. 1984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수도권 골프장 허가를 전면 중지시켰음에도 소위 내인가라는 편법을 쓰면서 까지 국가유공자의 재활체육과 원호기금(보훈기금) 증식을 위하여 특별히 고려하여 허가한 것으로 이러한 88골프장 조성과 관련한 역사성과 명분 때문에 국가유공자들은 88골프장 민간 매각에 대하여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상이군경 등 국가유공자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정책은 정부가 공기업을 창설하면서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자되었고 민영화함으로써 효율성을 배가시킬 수 있을 때 하는 것으로 연간 120억 원이라는 기금 증식효과를 보고 있는 알짜 88골프장을 민간에게 매각하는 것은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과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더울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lt;br /&gt; &lt;br /&gt; 88골프장은 부지 약 80만평에 36홀 규모로 연습장과 드라이브 레인지 등 국제경기도 충분히 소화 할 수 있는 규격을 갖추고 있으며 경기도 용인시 구성리에 위치하고 있는 명문골프장 중에 하나로 회원권 시세는 약 3억원 정도 하고 있으며 회원 수는 2,000여명으로 조성당시 법정 회원수 보다 200여명 적게 모집하여 민영화 할 경우 추가로 회원을 모집하면 약 600여억 원의 특혜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또한 1989년 회원 모집시 당시 전두환 정부의 수도권의 골프장 건설 규제로 골프회원권 가격의 과열 현상 때문에 회원권 당 평균 6,000만원 이상의 보훈성금을 웃돈을 얹어 모집하였기 때문에 민간에게 매각할 경우 매각 대금 책정과 회원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해 줄 것인지도 관심거리이다.&lt;br /&gt; &lt;br /&gt; 만약 88골프장이 매각될 경우 88골프장을 이용하던 국가유공자들은 골프를 칠려면 물심 양면으로 상당한 불편을 겪을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점도 88골프장 매각을 적극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일부 국가유공자 들은 국방부 산하에는 있는 골프장은 민영화 하지 않으면서 신명을 바쳐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들의 신체적 재활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골프장을 매각하는데 대해 국가가 국가유공자들을 홀대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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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5 Oct 2009 20:56:37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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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바보 노무현]]></title>
    <description>
        바보... ,&lt;br /&gt; &lt;br /&gt; 바보는 자신이 바보인지를 모른다 &lt;br /&gt; &lt;br /&gt; 다만 그것이 자신이 바보 탓 인줄 알면 그는  천재이다. &lt;br /&gt; &lt;br /&gt; 그 천재는 자신만이 &lt;br /&gt; &lt;br /&gt; 항상 천재인지  알고 남을 바보로 안다. &lt;br /&gt; &lt;br /&gt; 그 바보천재는 그 천재를 보고 그저 내가 바보라고 말하면서 &lt;br /&gt; &lt;br /&gt; 속으로 나보다 바보라고 한다. &lt;br /&gt; &lt;br /&gt; 가짜 바보는 자신이 항상 남이 자신보다 바보라고 생각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진짜바보... ,&lt;br /&gt; &lt;br /&gt; 그는 자신이 바보인지를 모른다&lt;br /&gt; &lt;br /&gt; &lt;br /&gt; 다만 그것이 자신이 바보의 탓인줄 알면 그것은 천재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 천재는 자신이 천재인지  알고 남을 바보로 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 바보는 그 천재를 보고 그저 내가 바보라고 말하면서&lt;br /&gt; &lt;br /&gt; 속으로 나보다 바보라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바보는 자신이 항상 &lt;br /&gt; &lt;br /&gt; 남이 자신보다 바보라고 생각한다.&lt;br /&gt; &lt;br /&gt; 바보 정신&lt;br /&gt; &lt;br /&gt; 노무현 바보...바보.....&lt;br /&gt; &lt;br /&gt; 바보 노무현  &lt;br /&gt; &lt;br /&gt; 노루현 바보... 바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작자 후기 &lt;br /&gt; &lt;br /&gt; 탓은 후회&lt;br /&gt; &lt;br /&gt; 생각은 희망&lt;br /&gt; &lt;br /&gt; 바보 는 죽음&lt;br /&gt; &lt;br /&gt; 자신은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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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7 Oct 2009 18:41:59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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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김대중 전 대통령 과 북한 / 시국선언]]></title>
    <description>
        이 상훈전국방 장관은  &lt;br /&gt; &lt;br /&gt; 제2연평해전(서해교전) 7주년 기념식에서&lt;br /&gt; &lt;br /&gt;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북한 핵이 문제가 되었을 때 &lt;br /&gt; &lt;br /&gt;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책임지고 막겠다’고 했지만 지금 그가 책임을 지고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lt;br /&gt; &lt;br /&gt; “그는 평생을 거짓과 허위를 일삼은, 위선자 중에서도 위선자다.&lt;br /&gt; &lt;br /&gt;  지금이라도 김 전 대통령이 북한에 지원한 5억 달러의 내역을 조사해서 의법 처리해야 한다”고&lt;br /&gt; &lt;br /&gt;  강조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우리나라의 비극의 시작은 해방이후 북한에서 오는 것이 아주 많았고 지금도 그러하다.&lt;br /&gt; &lt;br /&gt; 6.25 이후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의 책동이 60년이지나고 그들 국가를 세운 쏘련이 망해도 &lt;br /&gt; 지금도 남한의 각 분야에서 혼란을 계속 만들고  있다.&lt;br /&gt; &lt;br /&gt; 우리 민족끼리 라는 허울 좋은 말장난에 우리사회는 깊히 농락 당하고 썩어있다.&lt;br /&gt; &lt;br /&gt; 현 북한정권은  시민자율적인 민주적인 집회나 단체 결성을 절대 용납치 않는다.&lt;br /&gt; &lt;br /&gt; 중국공산당 정부도&lt;br /&gt; 북한의 정책과 북한 인민들의 삶의 질 문제 ,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평을 하는 데&lt;br /&gt; &lt;br /&gt; 남한의 진보를 자칭하는 인사들은 &lt;br /&gt; 북한의 이 문제에 대해 함구하며&lt;br /&gt; 남한 정부비판에  대해서는  모진 비판을 가한다.&lt;br /&gt; &lt;br /&gt;  민주적 투표에 의해 결정된 &lt;br /&gt; 우리나라 정부를 독재정부라 하는 것일까 &lt;br /&gt; &lt;br /&gt; 미래를 판단치 못해 정치를 잘못하고 국민을 불안하게 한 정치인은 &lt;br /&gt; &lt;br /&gt; 누구인가는 국민들은 이미 잘알고 있다.&lt;br /&gt; &lt;br /&gt; 전세계 국민들에게 물어보아도&lt;br /&gt; &lt;br /&gt; 북한이  미얀마 보다  무시무시한 인권탄압, 오로지 김일성 일가의 권력세습을 위한 &lt;br /&gt; 국제여론무시의 강력한 독재국가이다.&lt;br /&gt; &lt;br /&gt; 진보라고 자칭 타칭 불리우는 사람들은 이것을 심각히 알아야  한다.&lt;br /&gt; &lt;br /&gt; 남조선 공산당을 창건한 박헌영씨는 일제때 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이지만 &lt;br /&gt; 전쟁후 쏘련의 지휘아래  30대의 김일성이 한테 &lt;br /&gt; 미제국주국의 앞재비로 모함을 받아 &lt;br /&gt; 서울 인민위원장 이승엽 등 비롯한 남로당 간부 전체가&lt;br /&gt;  625 이후 전쟁패전 이유로  모두 처형을 당하였다.&lt;br /&gt; &lt;br /&gt; 일제패망후 군정시절에는 공산당이 합법적 지위를 가졌다.&lt;br /&gt; &lt;br /&gt; 남조선 공산당의 총재는 박헌영이며 전국지구당 조직과 수십만명의 당원을 가지고 있었다.&lt;br /&gt; 남한의 정권을 잡으려는 시도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엘리트인 박정희과  김대중을 남로당 간부로 만들었다.&lt;br /&gt; &lt;br /&gt; 그 이후 그들은 모진 고초를 당하였지만 &lt;br /&gt; &lt;br /&gt;  결국&lt;br /&gt; &lt;br /&gt; 그들은 역사적으로 남한의 대통령 까지 한 사람이다.&lt;br /&gt; &lt;br /&gt; 인간적으로 보면 엄청난 인간 승리이요 &lt;br /&gt; &lt;br /&gt; 국가로 보면 500년 빈곤의 탈출과 경제발전과 민주화 발전에 기여한 영웅이다.&lt;br /&gt; &lt;br /&gt; 그러나 그들은 북한을  보는 시각은 달랐다.&lt;br /&gt; &lt;br /&gt; 북한은  순수 이상주의적 공산주의 사회주의도 아니다.&lt;br /&gt; 그들은 아무런 이상도 없는 국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집단이다.&lt;br /&gt; &lt;br /&gt; 유교사대주의 이조시대에도 문호와 언론이 개방되어 왕조차도  왕권을 함부로 행사하지 못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2009년 현재 시국선언을 하는 사람들은  MB 정부 이전과  지금을 비교분석하는 틀을 &lt;br /&gt; 국민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lt;br /&gt; &lt;br /&gt; 1945년 해방정국 후 좌우로 나뉜 극심한 혼란의 시기와 &lt;br /&gt; 1963년 한일 협정 &lt;br /&gt; 1987년민주화 선언과 &lt;br /&gt; 시민운동의 국민의와  정부 참여정부 시대와 &lt;br /&gt; &lt;br /&gt; 우리나라를 보는 흐름이 다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lt;br /&gt; &lt;br /&gt; ---냉담한 국민---&lt;br /&gt; &lt;br /&gt;  국민은 진보주의자 그들에게 냉담하고  지지하지 않고  있다.&lt;br /&gt; &lt;br /&gt; 그들의 박물관식 낡은 진보로 국민을 선동하는 것은 &lt;br /&gt; 이제는  어린아이 수준으로 밖에 않보인다.&lt;br /&gt; &lt;br /&gt; 이제 우라나라는 보리고개 한끼먹기위한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난 10 경제 강국이요.&lt;br /&gt; &lt;br /&gt; 세계는 우리나라를   첨단 기술를 보유한  IT강국임을 다안다 . &lt;br /&gt; &lt;br /&gt; 역효과는 민간 포탈 싸이트의 악플에 의한 인권적 침해가  최고수준의 나라이다.&lt;br /&gt; &lt;br /&gt;  (  미국 중국 일본  영국도 절대 용납이 않됨 ,,연예인의 자살사건도 한국에도 있지만 )&lt;br /&gt; &lt;br /&gt; 대한민국을 위한 진보주의자들 이여&lt;br /&gt; &lt;br /&gt; 이 시국선언이라는 것에 묻혀 자신들의 위선을 포장하려는 &lt;br /&gt; 자기모순을 버리리지 못한다면 &lt;br /&gt; &lt;br /&gt;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지성도 없으며   진정한 진보가 될 수 없다.&lt;br /&gt; &lt;br /&gt; 김대중 전대통령은 &lt;br /&gt; &lt;br /&gt; 과거 남한의 군사독재 정권을 타도를 위해 앞장서고 &lt;br /&gt; &lt;br /&gt; 그로 인한 독재정권의 테러로 희생한 진정한 민주화 투사였고 &lt;br /&gt; &lt;br /&gt; 국민의 투표에 의해 한국의 대통령도 역임하고 &lt;br /&gt; &lt;br /&gt;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면&lt;br /&gt; &lt;br /&gt; 북한에 대해서도 &lt;br /&gt; &lt;br /&gt; 남한정부에 시국선언등을 하는 등의 &lt;br /&gt; &lt;br /&gt; 비판하는 것과   대등하게  &lt;br /&gt; &lt;br /&gt; 3대 권력세습을 하는 것에 대해 시국선언과 비판과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먼저 21세기 글로발 시대가 요구하는  &lt;br /&gt; &lt;br /&gt; 참된  진보가 &lt;br /&gt; &lt;br /&gt; 무엇인지 &lt;br /&gt; &lt;br /&gt;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lt;br /&gt; &lt;br /&gt; 후기:&lt;br /&gt; &lt;br /&gt; &lt;br /&gt; 국민이 투표에 의해 그들의 생과 사를 책임지는 민주 정권의 탄생은   &lt;br /&gt; &lt;br /&gt; 영국의 왕정에서 민주정으로 ,  프랑스의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민주정으로  &lt;br /&gt; 미국 민주정권수립은 처음부터 민주 정이었다.&lt;br /&gt; 그 것은 수백년이 걸린 투쟁과 타협의 과정이었다.&lt;br /&gt; &lt;br /&gt; 절대 쉽게 오지 않은 선택의 자유, 선택을 한 것의  책임은 국민이다.&lt;br /&gt; &lt;br /&gt; 우리의 민주 정은 일제패망후 미국에 의해 갑자기 다가온 것이지만  &lt;br /&gt; &lt;br /&gt; 공산정권으로 하지 않은 것이  결국은 오늘의 번영과 강국으로 만든 것이다.&lt;br /&gt; &lt;br /&gt; 2차대전후 민주 정권을 최초로 선택한 국가들중에서 &lt;br /&gt; 가장 민주 적인 국가로&lt;br /&gt;  경제적 선진국가로&lt;br /&gt; 일류 기술적 강국 으로 인정받는 나라가 &lt;br /&gt; &lt;br /&gt; 우리 대한민국이다.&lt;br /&gt; &lt;br /&gt; 그래도 &lt;br /&gt; &lt;br /&gt; 이 사실은 남한에 태어난 우리 국민은 북한 보다 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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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4 Jul 2009 09:51:24 +0900</pubDate>
    <category><![CDATA[퍼온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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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UN 사무총장 반기문]]></title>
    <description>
        UN 사무총장  반기문&lt;br /&gt; &lt;br /&gt; 어디에도 없는 사람&lt;br /&gt; &lt;br /&gt; 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사람 인가/// 포린 폴리시 (잡지)&lt;br /&gt; &lt;br /&gt; &lt;br /&gt; Nowhere Man &lt;br /&gt; Why Ban Ki-moon is the world&amp;#39;s most dangerous Korean.&lt;br /&gt; &lt;br /&gt; BY JACOB HEILBRUNN | JUNE 22, 2009 &lt;br /&gt; &lt;br /&gt; Ban Ki-moon, a general nonentity as secretary-general&lt;br /&gt; For such a seemingly crucial position, the secretary-generalship of the United Nations has historically had a rather low bar for success. Kurt Waldheim? In his memoir, A Dangerous Place, Daniel Patrick Moynihan recounted that Waldheim functioned as &amp;quot;a post office, a somewhat antique but reasonably efficient public service run along Austro-Hungarian lines. As one　　　 sat down with him, he would be mentally sorting the mail while making small conversation.&amp;quot; Boutros Boutros-Ghali? His arrogance and fecklessness as the Serbs laid waste to Bosnia prompted the Clinton administration to veto a second term. Kofi Annan? Brought low by his son Kojo&amp;#39;s financial peculation in the Iraq oil-for-food scandal.&lt;br /&gt; &lt;br /&gt; COMMENTS (1)&lt;br /&gt;  SHARE: &lt;br /&gt; Digg &lt;br /&gt;  &lt;br /&gt; Facebook &lt;br /&gt;  &lt;br /&gt; Reddit &lt;br /&gt;  &lt;br /&gt;  More... Even in this unimpressive company, though, Ban Ki-moon appears to have set the standard for failure. It&amp;#39;s not that Ban has committed any particularly egregious mistakes in his 2½ years on the job. But at a time when global leadership is urgently needed, when climate change and international terrorism and the biggest financial crisis in 60 years might seem to require some—any!—response, the former South Korean foreign minister has instead been trotting the globe collecting honorary degrees, issuing utterly forgettable statements, and generally frittering away any influence he might command. He has become a kind of accidental tourist, a dilettante on the international stage.&lt;br /&gt; &lt;br /&gt; Not for him bold speeches or attempts to mobilize public opinion behind what could be an organization that helps tackle nuclear proliferation or reconstruct Afghanistan. Not for him championing human rights, or even rallying in defense of beleaguered civilians. Visiting Malta in April for yet another honorary degree, he was evasive when asked about the island&amp;#39;s penchant for sending illegal African immigrants packing off to Italy, saying, &amp;quot;I am not in a position to intervene.&amp;quot; As tens of thousands of Tamil refugees lingered under fire on a narrow strip of beach in Sri Lanka, Ban and his advisors did little more than huddle in New York and wring their hands, onl　　　y making a trip to the war zone after hostilities ended. Under his stewardship, the United Nations isn&amp;#39;t merely an unhelpful place—it&amp;#39;s a largely irrelevant one　　　.&lt;br /&gt; &lt;br /&gt; Ban&amp;#39;s flaws were obvious dating back to his decades toiling in the South Korean foreign ministry, where he earned a telling nickname, &amp;quot;The Bureaucrat.&amp;quot; Luckily for Ban, if not for the rest of the world, The Bureaucrat was exactly what the Bush administration was looking for after years of tussling with the assertively anti-American Annan. When it became Asia&amp;#39;s turn to nominate a secretary-general, Bush&amp;#39;s secretary of state, Condoleezza Rice, made Ban&amp;#39;s election her pet project. But Ban failed to charm outside observers. In his book The Best Intentions, James Traub recounts a speech at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during Ban&amp;#39;s campaign to become secretary: &amp;quot;[B]etween his anodyne oratory, and his unsteady grasp of English, I found that I had been lulled to sleep.&amp;quot;&lt;br /&gt; &lt;br /&gt; As secretary-general, Ban&amp;#39;s soporific effect has never left him. One　　　 U.N. watcher told me that Ban is like the proverbial tree falling in the forest with no one　　　 around to witness its crash—if you don&amp;#39;t hear him, does he really exist? Aside from his role as a subsidiary of South Korea, Inc.—lining his office walls with Samsung televisions and hiring his South Korean buddies as senior advisors—his imprint has been negligible. Even Ban seems aware of what a nonentity he is: Last August, speaking to senior U.N. officials in Turin, he described his management style as elevating teamwork over intellectual attainment. But he went on to bemoan his difficulty overcoming bureaucratic inertia, ending with a gnomic admission of general defeat: &amp;quot;I tried to lead by example. Nobody followed.&amp;quot;&lt;br /&gt; &lt;br /&gt; At their best, U.N. secretaries-general can serve as a goad to the world&amp;#39;s conscience and a genuine catalyst for change. Dag Hammarskjold, for example, sought to expand the United Nations&amp;#39; mandate by undertaking high-profile and frequently risky missions, from meeting with Chinese leaders under Mao to securing freedom for 15 American pilots captured during the Korean War to traveling several times to the Congo in hopes of averting warfare during decolonization. During the 1980s, the urbane Javier Pérez de Cuéllar earned high marks for conducting talks between Argentina and Britain after the Falklands War and for bringing about Namibian independence from South Africa.&lt;br /&gt; &lt;br /&gt; So far, Ban has no such successes to his credit. It&amp;#39;s not as if there aren&amp;#39;t enough crises around the globe for him to make his mark, whether in Sri Lanka or Sudan or the Middle East. But Ban hasn&amp;#39;t given any indication that he&amp;#39;s going to have an impact in any of these places—or even that he wants to.&lt;br /&gt; &lt;br /&gt; &lt;br /&gt; 문제가 된 뉴스위크 기사는 미국의 외교 전문잡지 포린 폴리시 7~8월호에 미국 싱크탱크 닉슨센터가 발행하는 잡지인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시니어 에디터인 제이콥 하일브룬이 실은 기사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편집자주:&lt;br /&gt; &lt;br /&gt; 반기문총장이 산적한 국제적 문제를 제켜놓고 북한 핵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의 의지를 나타내어도 그에 대한 비판은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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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5 Jun 2009 12:30:39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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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중국의 동북공정 문제 없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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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 없다 ?&lt;br /&gt; http://kr.blog.yahoo.com/hjk5607/1296 &lt;br /&gt; &lt;br /&gt;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 없다 ?&lt;br /&gt; &lt;br /&gt; &lt;br /&gt; 우리나라 상고사의 뿌리가 시간과 공간을 두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자료를 모으다가&lt;br /&gt; &lt;br /&gt; 중국이 왜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데 이르렀다.&lt;br /&gt; &lt;br /&gt;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다가 우리한반도의 조선시대&lt;br /&gt; &lt;br /&gt; 건국초기 북방의 상황에 대하여 관심을 두게 되었다.&lt;br /&gt; &lt;br /&gt;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등 상고시대에서 통일신라 ,고려를 지나 이성계의 조선시대까지 &lt;br /&gt; 역사적 시간이라는 큰 간격를 두고 &lt;br /&gt; &lt;br /&gt; 같은 장소 지역인 한반도와 주변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에서는 &lt;br /&gt; &lt;br /&gt; 어떤 왕조와 민족이 명멸하고 &lt;br /&gt; &lt;br /&gt; 어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는가를 찾아나서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왜 오늘의 21세기 중국이 엄청난 땅을 차지하게 되었은가에 대한 배경이다.&lt;br /&gt; &lt;br /&gt; 그것은 &lt;br /&gt; 오늘날 2008년 올림픽을 전후로 중국이 세계최고의 달라보유국 ,핵무기보유, 우주선자체발사등&lt;br /&gt; 경제적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입김이 강한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lt;br /&gt; &lt;br /&gt; 국가사회과학원에서 &lt;br /&gt; &lt;br /&gt; 동북공정이라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세웠다.&lt;br /&gt; &lt;br /&gt; 필자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학술적으로 논란이 있울 수 있지만 &lt;br /&gt; &lt;br /&gt; 현재 티벳트, 서장, 동북지역등 소수민족의 분쟁과 자주 독립, 국경문제해결을 뿐만 아니라 &lt;br /&gt; 중국내부의 특히 상해 광동지역 경제적 만족도가 올라감에 따라 자체 분열을 예방하는  &lt;br /&gt; 사전 포석이라고  본다.&lt;br /&gt; &lt;br /&gt; &lt;br /&gt; 동북공정은 &lt;br /&gt; &lt;br /&gt; 그것의 일환으로 그들 중심의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이다.&lt;br /&gt; &lt;br /&gt; 중국 공산당의 지도부는  중국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lt;br /&gt; 주변 경제상황 및 정세 변화에 예의 주시하면서 통치 안정을 구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그 전략중의 하나가 동북공정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lt;br /&gt; 우리가 북방영토에 우리 선대민족의 역사문화유적이 엄청나게 많다고 해서 &lt;br /&gt; &lt;br /&gt; 그것이 현재 와서 우리땅의 역사이라고 분란을 일으켜 중국지도부와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lt;br /&gt; 우리도 중국지도부도 유익한것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lt;br /&gt; &lt;br /&gt; 역사에서 그 당시의 땅의 주권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중요하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역사적문제를 현중국의 내치문제 해결방안으로 끌여들이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이는 도리어  적당시기가 되면 이것때문에  &lt;br /&gt; 중국 공산당의 역사공정이 도마위에 오를수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또한  과거사와 연계해서 현재 영토문제 관할 문제가 동시에 발생되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들은 역사적으로 중국 한족의 중심의 나라는 지금의 양자강 이남 하남성을 경계로 이루어져 왔다.&lt;br /&gt; &lt;br /&gt; 역사소설 삼국지에서 그러하듯 모두 그 지역을 찾기위한 싸움이었다.&lt;br /&gt; &lt;br /&gt; 그들은 대대로 중국 대륙을 도도히 흐르는 양자강을 장강이라 일컬으며 &lt;br /&gt; &lt;br /&gt; 이를 경계로 하남과 하북을 구분하고 하북의 나라들을 북방 오랑캐라고 불러왔다.&lt;br /&gt; &lt;br /&gt; 송나라까지 그 흐름을 유지 하였다가 &lt;br /&gt; &lt;br /&gt; 중국전역 분만 아니라 중아아시아 인도 동유럽 까지 몽골의 징기스칸에 의해 점령당한다.&lt;br /&gt; &lt;br /&gt; 징키스칸은 수도를 송의 수도인 개봉에서, 북경으로 중심으로  통치를 해왔다.&lt;br /&gt; &lt;br /&gt; 그들이 물러나자 남방의 한족 출신인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면서 &lt;br /&gt; &lt;br /&gt; 다시 남방인 남경을 도읍이라 정하였다.&lt;br /&gt; &lt;br /&gt; 원이 망하는 시기는 고려말이며,당시 북방은 원의 통치권이 약화되어 있어 &lt;br /&gt; 북방의 발해, 고구려 고조선의 고토 영역을 되찾자는 시대적 갈망이 있었다. &lt;br /&gt; 그 일환으로  고토수복을 위해 절호의 시기적 기회였다. &lt;br /&gt; &lt;br /&gt; 고려정권은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었다.&lt;br /&gt; &lt;br /&gt;  그 고토회복 책임장군이 이성계였다.&lt;br /&gt; &lt;br /&gt; 그는 이를 배반하고 도리어 고려 왕권을 쥐게된다( 위화도 회군).&lt;br /&gt; &lt;br /&gt; 위화도 회군이 이루어진 뒤 정치적 수순을 밟아 세워진 근세 조선은 &lt;br /&gt; &lt;br /&gt; 사대주의의 근본인 유교인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lt;br /&gt; &lt;br /&gt; 넓은 초원을 무대로 세계를 호령하던 흉노족의 호연지기와 기마민족 &lt;br /&gt; 고유의 진취성을 거세해갔고, &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amp;#39;작은 나라, 작은 역사&amp;#39;의 답답한 굴레가 한반도안에서 &lt;br /&gt; 500여 년 동안 우리를 짓눌러왔던 것이다. &lt;br /&gt; &lt;br /&gt; 사대주의의 시작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명나라가 1368년에 건국되었고 조선이 1392년에 건국되었으므로 &lt;br /&gt; &lt;br /&gt; 조선의 태종 이방원이 부친인 이성계와 황동을 하던 동시대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lt;br /&gt; &lt;br /&gt; 그러다 얼마않되어 명의 정권이 안정되자 주원장의 손자가 왕으로 책봉되자 &lt;br /&gt; 주원장과 함께 건국을 도모한 삼촌이 왕위를 찬탈하고 남경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었다.&lt;br /&gt; &lt;br /&gt; 그리고 명이 200년도 않되어 내분에 의해 망하면서 청나라가 들어 선다. &lt;br /&gt; &lt;br /&gt; 명나라의 국토는 과거 한족이 나라를 이끌던 &lt;br /&gt; 중원이라고 불리우는 남경을 기반으로 하였다&lt;br /&gt; &lt;br /&gt; 중국 한족은 양자강을 넘어가면 왕조가 망한다는 징크스가 항상 있어왔다.&lt;br /&gt; &lt;br /&gt; 그 징크스가 재차 실현되었다. &lt;br /&gt; &lt;br /&gt; 그들이 항상 염려하던 바로 북방민족 오랑캐의 침입이다.&lt;br /&gt; &lt;br /&gt; 오늘의 중국의 큰 대륙을 가지게 한 민족은 청나라 여진족이다. 즉 만주족이다.&lt;br /&gt; &lt;br /&gt; 그 여진족은 &lt;br /&gt; 우리가 잘아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구성하는 민족중 하나인 훙노족 숙신족 돌궐족 부여족 몽골족 거란족 선비족 말갈족 여진족중의 하나이다.&lt;br /&gt; &lt;br /&gt; 그들은 우리와 뿌리를 같이한다, 상고사 시절의 형제민족이다.&lt;br /&gt; &lt;br /&gt; 고구려가 망한후 뿔뿔히 헤어져 각자의 지역에서 북방에서 유목생활을 하여 왔다.&lt;br /&gt; &lt;br /&gt; 발해라는 나라도 고구려유민과 말갈족이 세워 번성하였다.&lt;br /&gt; &lt;br /&gt; 우리가 아는 고조선 ,고구려,발해를 구성하는 백성은 여러부족이 섞인 다민족국가이다.&lt;br /&gt; &lt;br /&gt; 그 장소에서 역사의 언덕을 넘어 최초로 중국 전체를 통일한 최대의 국가를 건설한다..&lt;br /&gt; &lt;br /&gt; 그 것이 청이다.&lt;br /&gt; &lt;br /&gt; 초기엔 그들의 나라이름을 &amp;quot;후금&amp;quot;이라고 하다 &amp;quot;청&amp;quot;으로 개칭한다.&lt;br /&gt; &lt;br /&gt; 첫도읍지는 지금의 요령성 심양이다.&lt;br /&gt; &lt;br /&gt; 여진족은 조선초 건국초기에 이성계를 도와준 건국공신 민족이다.&lt;br /&gt; 그를 도운 여진족은 이지란(李之蘭)이다 그의 본명은 쿠란투란티무르&amp;#39;다. &lt;br /&gt; &lt;br /&gt;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의 공을 세웠다. 이성계와 형제의 의를 맺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lt;br /&gt; (필자주 : 이성계도 여진족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논외)&lt;br /&gt; &lt;br /&gt; 건국후 얼마 않되어 조선의 사대부들은 그들을 무식하고 야만스럽다고 내쫒게 된다.&lt;br /&gt; &lt;br /&gt; 그 못난 여진이 조선중기에 강성하여 나라를 세우고 중국의 중원을 차지 하게 된다.&lt;br /&gt; &lt;br /&gt; 고구려 멸망이후 우리 선조 민족은 한번도 중국왕조를 상대로 싸워 이겨 본 적이 없다.&lt;br /&gt; &lt;br /&gt; 중국 중원을 차지 해본적도 없다.&lt;br /&gt; &lt;br /&gt; 조선중기 여진은 흩어져 있는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강성한 나라를 세우게 된다. &lt;br /&gt; &lt;br /&gt; 그 수장이 누루하치이다.&lt;br /&gt; &lt;br /&gt; 그들은 우리에게 같은 뿌리의 후손들이니 서로 화합하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lt;br /&gt; &lt;br /&gt; 유교로 무장한 지식인들이나 관료들이 무식한 오랑캐라고 멸시를 하였다.&lt;br /&gt; 그들이 보낸 사신을 체포하여 명나라로 보내버린 사건이 있었다.&lt;br /&gt; &lt;br /&gt; 이곳은 외교상 커다란 결례이다.&lt;br /&gt; &lt;br /&gt; 그 결과가 조선 정복이었다. 즉 1636년 일어난 병자호란이다.&lt;br /&gt; &lt;br /&gt; 여진족이 세운 후금 즉 청나라에 의해 조선은 임진왜란 후 얼마 안되어 &lt;br /&gt; 또 전국이 전란에 휩싸여 처절하게 당하게 된다.&lt;br /&gt; &lt;br /&gt; 조선임금이 엄동설한 대한추위의 겨울에 먹을 것이 없이 쫄졸 굶다가 남한 산성에서 내려와 &lt;br /&gt; &lt;br /&gt; 바람부는 한강변 삼전 나루터 모래밭에서 &lt;br /&gt; 왕과 왕비, 후궁 왕세자 뿐만아니라 영의정이하 모든 신하들이 추위에 &lt;br /&gt; 오금을 벌벌떨면서 몇시간에 걸쳐&lt;br /&gt; 여진족의 청나라 청태종과 그들의 장수에게 업드려 항복을 하고 신하의 예를 올렸다.&lt;br /&gt; &lt;br /&gt; 우리가 오랑캐라고 하는 무식한 놈들에게 처절하게 당하는 민족적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그 치욕은 말로 형언 할수 없었다고 한다.( 정비석의 소설 &amp;quot;통곡&amp;quot; 참조)&lt;br /&gt; &lt;br /&gt; 임금과 신하가 절을 하는 사이에 왕의 후궁과 공주, 고급관료들의 정경부인들이 발가벗기어 임금과 신하들이 다 보는 앞에서 능욕을 당하는 묘사가 나온다. &lt;br /&gt; &lt;br /&gt; 남편들이 보는 앞에서 부인과 딸이 오랑캐들에게 능욕 당하는 지켜보는 것은 &lt;br /&gt; &lt;br /&gt; 명성황후가 일본 야쿠사에게 당하는 것보다 더한 분노를 떨게 한다.&lt;br /&gt; &lt;br /&gt; 끔찍한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그 치욕을 기록하는 비가 바로 잠실의 롯데호텔 옆에 있는 삼전도 비이다.&lt;br /&gt; &lt;br /&gt; 잠시 그 여진족과 청에 대해서 정리 해보기로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퍼온 자료:&lt;br /&gt; &lt;br /&gt; 여진족(女眞族 중국어 간체: 女真, 정체: 女眞, 병음: nǚzhēn)은 만주 일부와 한반도 북부에서 거주했던 에벤키 계통 민족으로, 17세기에 만주족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금나라를 1115년과 1122년 사이에 세웠으며( 고려 중엽 ) 이 왕조는 1234년까지 건재하였다. 그 후 1586년 누르하치(조선중기)가 여진의 세 부족을 통합하고 연합된 부족의 이름을 만주족으로 바꾸었다. 누르하치는 유목 법령을 통합하여 강력한 제도를 만드는데, 이는 후금(後金)과 중국을 점령한 후의 청(淸)제국이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금나라&lt;br /&gt; &lt;br /&gt; 여진족이라는 표현은 10세기 여진족 언어의 &amp;quot;여진&amp;quot;이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lt;br /&gt; 이 단어의 기원은 현재 학계에서 합의되지 않은 상태이다. &lt;br /&gt; 북만주의 여진 부족들은 원래 거란의 신하들이였다. (요나라사 참고)&lt;br /&gt; &lt;br /&gt; 1115년 완안 아골타가 그들을 통일하여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고 (금나라, 김생 소설 영웅문 참조)&lt;br /&gt; 1126년 요나라의 수도 카이펑을 점령하자 이들은 권력을 잡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여진 군대는 양쯔 강까지 남하하였으나 회하 부근에서 저지되고 남송은 일단 국경을 방어하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여진족은 자신의 왕조를 고향에 있는 강의 이름을 따라 금(金)이라고 지었다. &lt;br /&gt; 여진 부족들은 전쟁에 뛰어났으나 정착하여 수십년을 지내게 되자 자신의 유목 정체성을 잃게 되었다.&lt;br /&gt; 결국 여진족은 점차 한족화 되어갔으며, 남송과의 평화를 공고히 하였다. &lt;br /&gt; 금나라의 지배자들은 유교를 따르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1189년 금나라는 몽골과 남송을 상대로 두개의 전선에서 싸우게 되었다. &lt;br /&gt; 1215년 몽골 군대의 압력 하에 이들은 수도를 베이징에서 카이펑으로 옮겼으나 &lt;br /&gt; 1234년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되었다( 원 오코타이 징기스칸의 3남)&lt;br /&gt; &lt;br /&gt; (편집자 주:중국은 징기스칸의 원나라로 명명된다. 한반도의 고려도 점령을 당하게 된다. 이때도 몽골은 형제국이라 하여 조공국으로 정하고 고려 국명은 그냥 두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문화, 언어 그리고 사회&lt;br /&gt; &lt;br /&gt; 여진족은 일반적으로 초기 조상들의 유목 전통을 따랐다. 거란과 몽골족들처럼 이들은 힘과 말을 다루는 기술 그리고 궁술과 사냥을 즐겼다. 그들은 샤먼 의식을 행하였으며 하늘 신 (abka-i enduri 또는 abka-i han)을 섬겼다.&lt;br /&gt; &lt;br /&gt; 초기 여진 문자는 1120년 완안 아골타 (完顏 阿骨打)의 명에 따른 Wanyan Xiyin에 의하여 발명되었다. &lt;br /&gt; &lt;br /&gt; 이것은 거란 문자에 기반하였는데 한편 거란 문자는 한자에 기반하였다. 그러나 중국어는 고립어이며 여진 및 거란의 언어는 교착어이기 때문에 이러한 표기 방식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여진 문자는 금나라가 멸망하자 급속히 사라졌으나 여진어는 부분적으로 살아남았다. 16세기 말까지 여진족은 몽골어와 중국어를 혼합한 언어를 이용하다가 이후 만주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여진 사회의 문화는 몽골족의 큰 영향을 받았다. 몽골족과 여진족 둘 다 정치적 지도자에게 &amp;quot;칸&amp;quot;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으며 이는 황제이든 부족장이든 가리지 않고 사용되었다. 아주 강력한 부족장은 &amp;quot;beile&amp;quot; (왕자, 귀족)이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몽골의 &amp;quot;beki&amp;quot;와 터키 민족의 &amp;quot;beg&amp;quot; 또는 &amp;quot;bey&amp;quot;에 해당한다. 또한 몽골족과 터키 민족처럼 여진족은 맏아들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능력이 있는 아들 또는 사촌은 누구든지 지도자로 선택받을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명나라 시대 동안 여진족은 고대적인 씨족(hala)의 소규모 씨족(mukun, 또는 hala mukun)적인 사회 단위에서 생활했다. 여진족 씨족의 일원들은 동일 조상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으며 단일한 장(mukunda)의 통치를 받아들였다. 모든 클랜들이 혈연으로 얽혀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는 자주 분쟁과 합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여진 가정 (boo)은 하나의 가족 (booigon)처럼 살았으며 일반적으로 혈연으로 맺은 다섯개에서 일곱개의 가족원들과 노예들이 살았다. 가정들은 소대 (tatan)을 형성하여 사냥을 하며 음식을 구하였다. 전쟁 등의 대규모 활동을 위하여는 기업 (niru)를 조직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명대의 여진족&lt;br /&gt; 명왕조의 역사가들은 여진족을 세 분파로 나누어 파악하였다: 만주 최북방의 야인 여진(野人女眞)과 현대 헤이룽장 성에 거주하던 해서 여진(海西女眞), 그리고 지린 성의 건주 여진(建洲女眞)이다. 이들은 유목과 농경을 병행했으며 사냥과 낚시 그리고 제한된 농업을 생업으로 삼았다. 1388년 홍무제는 오돌골과 훌리가이 그리고 퉁비족들과 조공 관계를 맺었으며 이리하여 여진족의 중화 과정이 시작되었다.&lt;br /&gt; &lt;br /&gt; 영락제는 북원과 대항하기 위해 여진 부족 중에서 동맹자를 찾았다. 영락제는 부족장에게 작위를 수여하거나 성을 하사하는 방법을 통하여 그들이 주기적으로 조공을 해 오기를 바랐다. 요동의 북변에서는 무역을 위한 말시장이 열리기도 했다. 여진족 중국화의 결과로[출처 필요] 여진족이 조직화된 정치구조를 갖추게 되고 영향력을 외부로 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뒤에 이일과 젊은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군은 여진족을 조선의 강역으로부터 몰아내게 된다.&lt;br /&gt; &lt;br /&gt; 30년이 지난 후인 1586년 건주 여진의 우두머리였던 누르하치가 여진의 세 부족을 통합하고 연합된 부족을 만주족으로 개명한다. 누르하치는 유목 법령을 통합하여 강력한 제도를 만드는데, 이는 후금과 중국을 점령한 후의 청(淸)의 기반이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여진족&lt;br /&gt; &lt;br /&gt; 야인여진의 4부족&lt;br /&gt; 파아손 (巴兒孫)&lt;br /&gt; 착화(著和)&lt;br /&gt; 홀라온 (忽剌溫) :1436년 (함경도)&lt;br /&gt; 호(胡),오랑캐 (瓦爾哈/兀良哈三卫(泰宁、朵颜、福余)) =올랑합 ;이인(夷人);돌궐;이족(夷族);동이(東夷傳);蠻夷;戎狄;夷狄;서융(西戎);이제(夷齊); 남만(南蠻): 매독(每毒) &lt;br /&gt; 1436년 함경도 &lt;br /&gt; 1460년 (세조)함경도 :북적(北狄) = 북쪽/북방 오랑캐 :낭패아한/낭발아한 (浪悖兒罕/浪孛兒罕); 동속로첩목아 (童速魯帖木兒) &lt;br /&gt; ca. 1583-7년 : 이탕개/니탕개(尼湯介)&amp; 번호(藩胡), 울지내(鬱只乃)&lt;br /&gt; &lt;br /&gt; 해서여진의 4부족&lt;br /&gt; 우라 (烏拉 &amp;gt; 1613년) &lt;br /&gt; 후이파 (輝發 &amp;gt; 1607년) &lt;br /&gt; 예허 (葉赫 &amp;gt; 1619년) : &lt;br /&gt; 星根達爾漢 (신게다루한); &lt;br /&gt; 席爾克明噶圖 (시르게민가도); &lt;br /&gt; 齊爾噶尼 (치르가니); &lt;br /&gt; 褚孔格 (추꾼게); &lt;br /&gt; Cinggiyanu (淸佳砮;†1584년 ) &lt;br /&gt; Yangginu (楊吉砮;†1584년 ); &lt;br /&gt; 金台石 (긴따이시); &lt;br /&gt; 德爾格勒(데르게르) ; &lt;br /&gt; 布寨 (부자이); &lt;br /&gt; 布揚古(부양구); &lt;br /&gt; 布爾杭古 (부르항구)&lt;br /&gt; 하다 (哈達 &amp;gt; 1601년) : &lt;br /&gt; Wang Tai (萬汗/王台: 1548-1582년 )&lt;br /&gt; &lt;br /&gt; 건주여진의 5부족&lt;br /&gt; 오도리/알도리 (지금 회령지방) = 斡都里; 斡朵里;吾都里;斡朵怜 :&lt;br /&gt; &lt;br /&gt; Möngke Temur (孟特穆 / 猛哥帖木耳;1405-1433), &lt;br /&gt; Cungšan (充善; (b.1419) 1433-1467년 ), &lt;br /&gt; 펀차(Fanca ,† 1458년 ); &lt;br /&gt; 교창가 (覺昌安,† 1583년 )&lt;br /&gt; 호리개로 (胡里改路) : &lt;br /&gt; 아하추( 阿哈出 ,Ahacu † 1409-1410년 ), &lt;br /&gt; 이만주 (李滿住;† 1467년 )&lt;br /&gt; 도은 (桃温/桃溫)&lt;br /&gt; 발고강(荸苦江) &lt;br /&gt; 탈알령(脱斡怜)&lt;br /&gt; 우디거/우디캐/우디하/ 올적합(兀狄哈:Wudige): (영고탑 지방)&lt;br /&gt; &lt;br /&gt; 왕고 (王杲;†1575년 ); &lt;br /&gt; Atai (阿台;† 1583년 ); &lt;br /&gt; Nikan Wailan (尼堪外兰;† 1586년 )&lt;br /&gt; &lt;br /&gt; 여진족은 한민족이라는 주장&lt;br /&gt; 몇몇 중국 사서에서는 여진족이 한민족이라는 주장이 있다. 아래는 그 예이다.&lt;br /&gt; &lt;br /&gt; 金之始祖諱函普. 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兄阿古好佛，留高麗不肯從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 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 -금사(金史) : 금나라의 역사서- &lt;br /&gt; &lt;br /&gt; 新羅王金姓則金之遠派出 신라왕의 김씨성이 나라 이름 금이 나온 먼 갈래이다. -흠정만주원류고 제7권 (청나라 시대에 저술한 만주족의 역사서)&lt;br /&gt; &lt;br /&gt; 두 번째 근거와 관련하여, 금나라 황족의 성씨인 애신각라(愛新覺羅)와 신라의 연관성을 찾는 사람도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청의 태종인 홍타이치를 선조의 아들 광해군은 북방의 정세변화 판세 대해서 잘 알고있었다.&lt;br /&gt; &lt;br /&gt; 그의 실리외교는 아주 현실적이고 주변 정세를 잘 읽고 있었으나, &lt;br /&gt; &lt;br /&gt; 광해군의 대청우호선린의 그 주장은  &lt;br /&gt; 명이 내분에 의해 망하고 있고 , 청은 군사력이 강력하여 이미 산해관(중국동쪽 경계출입관문)을 넘어 북경 가까이 진격을 하고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lt;br /&gt; &lt;br /&gt; 7년 전쟁의 임진왜란 당시 명의 큰 도움으로 나라를 구한 조선의 입장과 배치되어, 명을 손들어 주는 것이 의리이고 도리이다라는 명분론에서 밀리었다. &lt;br /&gt; &lt;br /&gt; 이는 시간을 뒤로 돌려 한국이 대만을 버리고 중국과 1992년 수교할때 &lt;br /&gt; &lt;br /&gt; 장개석주석이 상해임정당시 한국독립을 위해 &lt;br /&gt; 을 물심양면으로 헌신적 도움의 은혜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 즉 중국이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lt;br /&gt; &lt;br /&gt; 당시 명분만 내세운 인조정부와 &lt;br /&gt; 명분과 현실과 국가적 실익을 모두 고려한 김영삼정부의 판단이 서로 틀린것이다. &lt;br /&gt; &lt;br /&gt; 현 중국과 국교를 정상후 오늘까지 상호국익과 동북아 세력안정에 &lt;br /&gt; 얼마나 큰 이익을 만든 발판이 된 것에 대해서&lt;br /&gt; 현 국민들은 높히 평가 해야 한다.&lt;br /&gt; &lt;br /&gt; 그 이후 다시 선린을 할수 있는 기회를 찾아 우정을 되살리는 것이 국가 및 인간관계이다. &lt;br /&gt; &lt;br /&gt; 국제외교에는 명분과 실리를 다 필요하지만 국제사회의 냉엄한 변화를 모르면 &lt;br /&gt; 치욕의 역사가 반복된다&lt;br /&gt; &lt;br /&gt;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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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2 Jun 2009 22:01:28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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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노무현이 전두환보다 낫다]]></title>
    <description>
        우리는 어제 한 사람을 역사속으로 보내는 의식을 치루었습니다.&lt;br /&gt; &lt;br /&gt; 그는 이제 침묵으로 우리를 소리없이  말하고  있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퇴임후 님의 침묵은  무심한 세월과  답답함을 깨지 못하였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래도 님은  &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lt;br /&gt; &lt;br /&gt; 그 전 나의 자리에 있었던  분하고는 ,,, 하고 할말을 많이 하고 싶었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님의 침묵은 &lt;br /&gt; &lt;br /&gt; 더 이상 침묵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었습니다.&lt;br /&gt; &lt;br /&gt; 200년 역사로 일천한 미국이 &lt;br /&gt; &lt;br /&gt; 오늘날 전세계를 이끌어 갈수 있게 만든 것은  &lt;br /&gt; &lt;br /&gt; 남북전쟁  당시의 링컨이었습니다.&lt;br /&gt; &lt;br /&gt; 북측의 신기술, 신자본과 남측의 전통적 노동적 농업으로 갈라진 남북의 이해가 &lt;br /&gt; &lt;br /&gt; 정치적으로 분열될때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뉘어&lt;br /&gt; &lt;br /&gt; 미국은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큰 전쟁이 일어 났습니다.&lt;br /&gt; &lt;br /&gt; 돈으로 갈라진 기득권 이해와&lt;br /&gt; &lt;br /&gt; 흑인 인권으로 유린된 미국을  포용한 지도자였습니다.&lt;br /&gt; &lt;br /&gt; 그 역사의 이음이 오늘날 오바바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삶과 죽음을 초월할수 있는 진정한 용기가 &lt;br /&gt; &lt;br /&gt; 님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우리나라 더러운 지식인과 &lt;br /&gt; &lt;br /&gt; 완장찬  비굴한 법률인,&lt;br /&gt; &lt;br /&gt; 돈먹은 정치인들에게&lt;br /&gt; &lt;br /&gt; &lt;br /&gt; 무지 몽매한 국민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와 국민들앞에 &lt;br /&gt; &lt;br /&gt; 노무현 처럼  죽을 수 있나고 &lt;br /&gt; &lt;br /&gt; 물을 것입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제는 &lt;br /&gt; &lt;br /&gt; 노무현은 &lt;br /&gt; &lt;br /&gt; 남한이 두려워 오지도 못하는  김정일하고는 게임이 않되고&lt;br /&gt; &lt;br /&gt; 전두환보다 낫다고 말을 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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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31 May 2009 09:21:26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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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CDATA[북의 핵 미사일 실험/ 극심한 안보 위험]]></title>
    <description>
        북한의 핵미사일&lt;br /&gt; &lt;br /&gt;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로 남쪽이 극심한 혼란한 시기에  &lt;br /&gt; 북한은 지하 핵폭발 실험을 하였고&lt;br /&gt; 동해상에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대는 실험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은 그동안 유보해핬던 PSI에 전격적으로 가입을 하였고 &lt;br /&gt; 북은 이에 남측이 북에 대한 전쟁선언이라고 공표하였다.&lt;br /&gt; &lt;br /&gt; 6.25 전쟁후 이렇게 상황이 너무나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던 적이 없다.&lt;br /&gt; &lt;br /&gt; 당사자인 한국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등, &lt;br /&gt; 유엔안보리에서도  만장일치로  북의 잘못된 불법 행동에 긴박하게 대응을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북한은 이미 지하 핵폭발 실험을 성공리에 끝내고 &lt;br /&gt; 이를 발사체에 실어 쏘는 실험까지 성공했다고 볼수 있다.  &lt;br /&gt; &lt;br /&gt; 단거리 핵미사일을 이미 보유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lt;br /&gt; &lt;br /&gt; 한반도 전역이 그 핵미사일의 사정권에 있다고  판단 된다.&lt;br /&gt; &lt;br /&gt; 너무나 위험한 순간에 놓여 있다.&lt;br /&gt; &lt;br /&gt; 북은 남한의 혼란을 노리고 있다. &lt;br /&gt; &lt;br /&gt; 북은 이미 통제 불능의 미친 상태에 있다. &lt;br /&gt; &lt;br /&gt; 국제사회 룰이든 남북 약속이든 보이는 것이 없다.&lt;br /&gt; &lt;br /&gt; 북의 핵미사일이 남한의 주요한 1급 안보시설(발전설비, 통신설비, 상수원,가스공급설비, 국제공항)을 파괴하게 되면   한국은 바로 마비가 될 수 있는 지경이다.&lt;br /&gt; &lt;br /&gt; 만약 팔당 상수원을 공격하게 되면 수도권은 바로 엄청난 대혼란에  휩싸일수 있다&lt;br /&gt; &lt;br /&gt; 북이 핵미사일은 위력은 가공할만하다. &lt;br /&gt; &lt;br /&gt; 일본의 나가사키에 낙하된 것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남쪽 사람들이 죽고 난 다음에 북측보고  불법이니 위반이니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 예상지역이 어딜일까?   &lt;br /&gt; &lt;br /&gt; 한방으로 수도권 전역이 마비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서울은 너무 가깝다.&lt;br /&gt; &lt;br /&gt; 한방에 주변 15km 이내에 62만명이 즉사한다고 한다면 &lt;br /&gt; &lt;br /&gt; 북으로 볼때면  한방으로 가장 효율이 좋은 곳을 택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북의 공격이 예상되는 곳은  서해5도가 아니라 인천국제공항이 될 수도 있다.&lt;br /&gt; &lt;br /&gt; 관심을 서해5도로  쏠리게 하는 유인술일 수 있다&lt;br /&gt; &lt;br /&gt; 인천국제공항은 북한으로부터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있다.&lt;br /&gt; &lt;br /&gt; 모든 국제선이 마비가 된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떻게 될것인가&lt;br /&gt; &lt;br /&gt;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을 치루는 것보다  더욱 절박한  현실이다.&lt;br /&gt; &lt;br /&gt; 엄청난 혼란을 대비한 국민 행동 요령을 주요방송사을 통해 발표하고 &lt;br /&gt; &lt;br /&gt; 시급히 정부의 국방안전 대응태세를 보여야 한다 &lt;br /&gt; &lt;br /&gt;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노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정부의 책임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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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9 May 2009 23:57:35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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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노무현의 죽음 ,,,,,순교자인가]]></title>
    <description>
        필자가 인도에 출장와서  두가지 엄청난  일을 직접 보게 된 일이 있다.&lt;br /&gt; &lt;br /&gt; 하나는 인도의 2009년 총선이었으며  &lt;br /&gt; &lt;br /&gt; 또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suicide)사건이다.&lt;br /&gt; &lt;br /&gt; 11억 인구에서 7억명이 넘는 유권자가 직접 선거로 지역별로 순차적으로 시행하여 &lt;br /&gt; 평화적으로 5월13일 끝이 났다. &lt;br /&gt; &lt;br /&gt; 현 지구상에서 단일 국가에서 최대의  유권자의 직접선거이다.&lt;br /&gt; &lt;br /&gt; 모든 선거는 전자투표를  하였으며, 전자개표는 실시간으로 인도의 각개의 공용언어로  중개방송하였다. &lt;br /&gt; &lt;br /&gt; 7억명의 유권자 투표 결과가  자정쯤에  그 결과를 보여 주었다, 인도 IT 기술의 현주소를 말해준다.&lt;br /&gt; &lt;br /&gt; 지난  5월 16일 그 결과가 발표되었다.  &lt;br /&gt; &lt;br /&gt; 집권당으로는  &lt;br /&gt; &lt;br /&gt; 소니아 간디(여자)가 총재로 있는 CONGRESS 당이 있는 UPA 정당연합이 압승을 하였고 &lt;br /&gt; 그 이후 바로 차기정권의 조각이 그 정당연합에서 어떻게 내각을 구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정당연합당끼리  상호합의 하에 각자 국회의원 의석수에 따라  &lt;br /&gt; 장관등을 배분하는  행위 (PORTFOLIO)를 &lt;br /&gt; 콩그레스 당 총재인 소니아 간디와 만모한 싱 총리의 주도하였다. &lt;br /&gt; 이것을 인도의 주요방송인 NDTV등에서 연일 TOP NEWS 로 보도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집권당에서 선출된 만모한 싱( Manmohan singh)총리는 연임을 하게 되고 &lt;br /&gt; 그에 의해 추천된 임명돤 장관들은 장관직 선서를  &lt;br /&gt; 대통령궁에서 현직 대통령(여자)앞에서 선서(OATH)하는 장면을 &lt;br /&gt; 생중계하는 것을 흥미있게 보았다.&lt;br /&gt; &lt;br /&gt; 모든 권력이 대통령으로 부터 나오는  대통령제를 하는 &lt;br /&gt; 우리에겐 너무나 생소한 것을 보게 되어 아주 흥미 있게 지켜 보고 있다.&lt;br /&gt; &lt;br /&gt; 교과서에서만 보던 의원내각제의 선출 과정을 적나나하게 방송되는 것을 보고 적잖히 놀랐다.&lt;br /&gt; &lt;br /&gt; 인도의 민주주의는 오래되었다.&lt;br /&gt; 영국으로부터 1945년 독립후 초기부터 영국처럼 인도는 의원 내각제로 출발을 했다. &lt;br /&gt; 즉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다수가 있는 당이 정권을 갖는 것이고 &lt;br /&gt; 그 국회의원이 장관으로 구성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권력은 없지만 상징적인 대통령도 있다.&lt;br /&gt; &lt;br /&gt; 건국 초기 총리는 그 유명한 네루 수상이었다.&lt;br /&gt; 그는 무폭력 저항의 마라트마 간디와 달리 영국에 대하여 조직적으로 무장독립운동을 주장하고  &lt;br /&gt; 수차례 감옥에 투옥경험이 있는 인도 독립의 영웅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현 집권당 총재인 소니아 간디는 &lt;br /&gt; 이 당을  창당한 초대 총리인 네루 간디와 부인인 인디라 간디 사이에 태어나 딸이며&lt;br /&gt; &lt;br /&gt; 그녀의 남편도 인도의 집권당 총리엮던  라지브 간디였다. &lt;br /&gt; &lt;br /&gt; 그녀의 남편인 리지브 간디도 어머니, 인디라 간디처럼&lt;br /&gt;  남편을 티밀반군에 의해   암살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인도는 과거 미국소련의 냉전의 각축에서 &lt;br /&gt; 독자적 제 3세력의  독자노선을 주장한 국가들의 중심(반둥회의)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러던 인도가 변화를 시작하엿다.&lt;br /&gt; &lt;br /&gt; 그녀의 Congress party(국민의회당)은 지난 집권 5년동안 년 성장율 9%를 달성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당이 좌파(Left) 성향으로 ( 사회주의,공산주의) 인도를 이끌어 온것을 &lt;br /&gt; 우파(Right) 시정경제 글로발 경제의 중심으로&lt;br /&gt; 바꿔놓은 것이 재집권의 발판이다. &lt;br /&gt; &lt;br /&gt; (편집자주: 인도 콩그레스당은 과거 좌파 공산주의 당과 정당연합 정부를 구성)&lt;br /&gt; &lt;br /&gt; 그 이후 뚜렷한 경제 성장을 직접 피부로 국민들은 보았던 것이다.&lt;br /&gt; &lt;br /&gt; 국민이 원하는 것은 명분과 낡은 이념투쟁이 아니라 일자리와 빵의 해결과 오늘보다 낳은 삶이었다.&lt;br /&gt; &lt;br /&gt; 수도권  뉴델리에서 만나는 국민들 거의가  복잡다단한 인도를 이끌어 갈수 있는 &lt;br /&gt; &lt;br /&gt; 당과 지도자는 &lt;br /&gt; 인도의 진정한 경제발전과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콩그레스당과 &lt;br /&gt; 타협과 양보의 정치인 쏘니아 간디와 청렴하고 노련한 경제 전문가 만모한 싱 총리라고 한다.&lt;br /&gt; &lt;br /&gt; 그 모든 것이 평화적이고 민주주적인 절차에 의해 이루어 져 가고 있는 것에&lt;br /&gt; 필자는 인도의 민주주의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lt;br /&gt; &lt;br /&gt; 또한 필자는 &lt;br /&gt; &lt;br /&gt; 이것을 우리나라와 정치제도와 비교하면서 흥미와 주의 기울이면서 방송을 지켜 보고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 노무현 전 대통령 ********&lt;br /&gt; &lt;br /&gt; 인도에 오기전부터  한국의 주요한 언론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시 비리에 대해 &lt;br /&gt; &lt;br /&gt; 검찰은 스포츠 중개방송하듯이 수사결과 발표하고 &lt;br /&gt; &lt;br /&gt; 국민들은 솔직하지 못한 인간 노무현의 순수성에 대해 적젆은 배반감을 가지고 &lt;br /&gt; &lt;br /&gt; 그의 대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부 그의 반대자들은 그것을 내심 즐기고 있었다.&lt;br /&gt; &lt;br /&gt; 검찰과 언론, 국민 감정은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정신적 부담을 주었으며&lt;br /&gt; &lt;br /&gt; 그러던 그가 자택 뒷산 절벽에서  투신자살 했다는 미국 CNN, 영국의 BBC 헤드라인 뉴스를 보고 &lt;br /&gt; 너무나  놀랐지만&lt;br /&gt; &lt;br /&gt;  한편으로는 필자는 그 상황이라면 그가 자살밖에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았나 &lt;br /&gt; 하는 생각도 얼핏 지나갔다.&lt;br /&gt; &lt;br /&gt; 그가 파렴치한 정치인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을 바에는 그 자신이 죽음으로써 &lt;br /&gt; 그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민과 역사에 자신의  참을 보여주는  길을 택하였다.&lt;br /&gt; &lt;br /&gt; 전 정권 모든잘못이  그에게 짐을 지우진 그 상황에서 &lt;br /&gt; 탈출구는  오로지 육체적인 생명을 마감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끝는 &lt;br /&gt; 자살만이 최선의 최후의 선택이지  않았나 본다.&lt;br /&gt; &lt;br /&gt; 필자가 이런한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lt;br /&gt; &lt;br /&gt; 인도에와서 인도의 정권 구성과정을 보면서 의원내각제의  장점을  보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총선후 국가  권력의 생산과 분배 등을 보면서 &lt;br /&gt; &lt;br /&gt; 한사람에게 집중되어 비리와 부패의 악순환되는&lt;br /&gt; &lt;br /&gt; 우리나라의 대통령제에 문제가 많다고 행각을 하는 중이엇다.   &lt;br /&gt; &lt;br /&gt; 노무현 전 대통령 스스로  자살한 그의 죽음은  잘못되었다.&lt;br /&gt; &lt;br /&gt; 하지만  &lt;br /&gt;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즉  &lt;br /&gt; 사람을 살리고 죽일수 있는 생사 여탈권을 가질수 있는 국가 최고의 권력과 &lt;br /&gt; 또한 국가간 협력과 초 경쟁시대에  한 국가의 운명과 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lt;br /&gt;  대통령 혼자 책임지기에는 벅차다고 할수 있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우리는 역사에서 누누히 보아 왔듯이  일인에게 집중 권력은  필히 부패하게 되어 있다.&lt;br /&gt; &lt;br /&gt; 그것의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 사건이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lt;br /&gt; &lt;br /&gt; 정권이 바뀔때마다 그러하였다.&lt;br /&gt; &lt;br /&gt; 그는 집권 초기에 주장하기를 기존의 모든 잘못된 고리를 과감히 쇄신하는 것이 &lt;br /&gt; 그의  대통령 당선의 의미라고 하였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간 노무현의 정권과 그의 정당인 열린 우리당은 철저히 버림를 받았다.&lt;br /&gt; &lt;br /&gt; 그 가 실패한 이유는 정치라는 것과 권력이라는 것을 다룰 줄 모른 미숙아 였기 때문이었다고 &lt;br /&gt; 그의 정치적 동반자가  반성을 하였다.&lt;br /&gt; &lt;br /&gt; 그는 어쩌면 기존의 한국정치의 잘못된 프레임을 완전히 바꿀려고 한 정치적 반항아 였는 지 모른다.&lt;br /&gt; &lt;br /&gt; 수십년 감정의  골이 깊은 지역 선거판세, 학벌과 지연에 그리고 대기업, 국가조직에 의한 선거 개입&lt;br /&gt; &lt;br /&gt; 고질적 우편향 보수언론과  정치 검찰과의 전쟁에서 &lt;br /&gt; &lt;br /&gt; 그는 모든 것을 보통사람 서민의  입장에서  저항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또는 대통령제의 잘못돤 문제를 보여준  순교자일수도 있다.&lt;br /&gt; &lt;br /&gt; 그는 집권시 그러한 실험을 한것으로 보여질수 있다.&lt;br /&gt; &lt;br /&gt; 이해찬총리의 내치 와 정동영 장관 외교 안보통일의 권력 배분을 통해서 &lt;br /&gt; 그는 실험을 한 것으로 보여 진다.&lt;br /&gt; &lt;br /&gt; 그것이 엄청난 실패를 가져다 준것으로 정치인과 국민들은 알고 있다.&lt;br /&gt; &lt;br /&gt; 대통령제의 문제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lt;br /&gt; &lt;br /&gt; 오죽 하였으면  야당인 한나라 당과 연정(정당연합)을 하자고 하였을까, &lt;br /&gt; &lt;br /&gt; 그가 대통령을 해보니  대통령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것 자체가  &lt;br /&gt;  &lt;br /&gt; 의미없는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것도 잠재되어있다고 보여진다.&lt;br /&gt; &lt;br /&gt; 그것을 당시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서는 배척을 받았다.&lt;br /&gt; &lt;br /&gt; 그는 그것이 싫었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lt;br /&gt; &lt;br /&gt; 그 결과 가 그를 죽음으로 이르는 업보를 만들고 쌓여 온것이다.&lt;br /&gt; &lt;br /&gt; 이러한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lt;br /&gt; &lt;br /&gt; 미국의 상하원제나 인도,영국,&lt;br /&gt; 의원내각제를 적극 검토할 필요하다고  본다.&lt;br /&gt; &lt;br /&gt; 과거 군사독재시대와  달리  우리의 국민성의 역량도 &lt;br /&gt; 정부 주도적으로 일방적으로 매도에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시대가 아님을 &lt;br /&gt; 국민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lt;br /&gt; &lt;br /&gt; 10년에 걸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등의 좌파의 정권도 지내보니 &lt;br /&gt; 그것의 장점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된것이다.&lt;br /&gt; &lt;br /&gt; 나라을 사랑하는 스스로의 자발적인 참여가  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우리는 경험을 하였다.&lt;br /&gt; &lt;br /&gt; 의원 내각제의 정부의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국민과 정치권에서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렇다고  노무현 그를 죽음으로 이끈  것이  대통령제 하에서  다른 전직 대통령이나 수뢰 정치인의 수뢰금액에  비해서  죄가 가벼운 것이 아니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본다.&lt;br /&gt; &lt;br /&gt; 그가 죽음으로써 그가 재임중  저지른 범죄 에대해 공소권 중지가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그것과 별도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거 장례절차등을 정부는 추진할것으로 본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글을 마치면서......&lt;br /&gt; &lt;br /&gt; 그의 죽음에 대해서 조금도 폄하할 의사는 없으며 &lt;br /&gt; &lt;br /&gt; 그의 생전의 자유 분방한 생각이 &lt;br /&gt; &lt;br /&gt; 그 나름대로 애국의 방식과 우리국민을 사랑하는 면에서 &lt;br /&gt; &lt;br /&gt; 그의 정권하에서 국민들에게 가치관과 정체성의 혼란을 주기도 하였지만 &lt;br /&gt; &lt;br /&gt; 그의 개혁적 시도도 긍정적면이 있다고 볼 수있다.  &lt;br /&gt; &lt;br /&gt; 이는 우리사회가 편협하고 일방적인 북한보다 &lt;br /&gt; 민주화에 성숙하고 개방적으로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정치가 &lt;br /&gt; 더욱 나라를 강하게 한다는 장점이 더 크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좌우를 떠나 어느 한족으로 치우치지 않고 냉정히 우리사회를 돌이켜 보면&lt;br /&gt; &lt;br /&gt; 그의 삶의 가치관과 정치적 실험이 우리 사회에 많은 &lt;br /&gt; &lt;br /&gt; 교훈도 주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lt;br /&gt; &lt;br /&gt; 우리나라 역사의 한 인물로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대통령제의 잘못된 제도에 대한 첫 순교자라고 본다. &lt;br /&gt; &lt;br /&gt;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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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1 Jun 2009 23:17:55 +0900</pubDate>
    <category><![CDATA[내가쓴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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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신라의 김씨 왕조는 흉노 후예인가]]></title>
    <description>
        필자는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다가 직접 그 자료들을 모으고 있다.&lt;br /&gt; &lt;br /&gt; 다음의 글도  그 일환에서 퍼온글이다.&lt;br /&gt; &lt;br /&gt; 저자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lt;br /&gt; &lt;br /&gt; 오래된 과거사라도  정확히 아는 것이 &lt;br /&gt; &lt;br /&gt; 오늘날 북한의 잘못 주장인 우리 한민족이  유일한 단군자손이라는 명분하에 &lt;br /&gt; &lt;br /&gt; 우리민족끼리라는 허울 좋은 말장난에 놀아나는 &lt;br /&gt; &lt;br /&gt; 남쪽의  분열을 막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알지·김수로는 북방기마민족 후예 &lt;br /&gt; &lt;br /&gt; &lt;br /&gt; 대릉원 고분군은 민족기원 증명해 줄 보물&lt;br /&gt; &lt;br /&gt; 벨기에의 작가 마테를링크(1862∼1949)가 쓴 동화극 『파랑새』는 가난한 나무꾼의 아이들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꾼 꿈을 극으로 엮어서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암시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남매는 옆집 마법사 할머니로부터 ‘병든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개·고양이·빛·물·빵·설탕 등의 님프(요정)를 데리고 추억의 나라와 미래의 나라 등을 방문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꿈을 깨고 보니 자기네가 기르고 있는 비둘기가 파랗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그 새가 파랑새임을 깨닫는 순간, 날아가 버린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파랑새처럼, 행복은 그 존재를 인식하기도 어렵지만 간직하기도 그에 못지 않게 어려운 것임을 알려준다. &lt;br /&gt; 『파랑새』는 1908년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연출로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상연되어 성공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이어 그 작가인 마테를링크가 1911년 노벨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그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그후 ‘파랑새’라는 말은 희망의 대명사로 지금도 ‘파랑새=희망’이란 등식이 성립되어있다. &lt;br /&gt; &lt;br /&gt;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외국의 유산에 대해서는 흥미를 느끼고 잘 이해하지만 우리나라 유산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식하다. &lt;br /&gt; &lt;br /&gt; 어떤 사람은 우리 것 즉 우리나라 유산 중에서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 정말로 있느냐고 반문한다. &lt;br /&gt; &lt;br /&gt;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바로 파랑새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주 황남동 대릉원 고분군.  &lt;br /&gt; &lt;br /&gt; 우리 유산 중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 바로 경주 대릉원의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는 대형 고분군이다. 이 고분군은 신라의 마립간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일명 적석목곽분이라고도 하는데 이 고분군이야말로 북방의 기마민족이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지역 맨 끝에 자리한 신라에 도착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lt;br /&gt; &lt;br /&gt; 〈신라와 가야의 시조는 천손의 자손〉 &lt;br /&gt; &lt;br /&gt;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건국되어 935년에 멸망할 때까지 무려 1000년을 이어 온 한국 역사상 최장수의 왕국이다. 따라서 경주 일원에는 신라인들이 남긴 무수한 고분을 비롯하여 유적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시내 중심부에 밀집되어 있는 원형 고분들이다. &lt;br /&gt; &lt;br /&gt; 이 원형 고분군은 기원전 3∼4세기 스키타이를 비롯하여 흉노 등 북방기마민족들이 사용한 스키타이-알타이 쿠르간과 동일한 구조와 형태를 갖고 있으므로 신라가 북방기마민족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중요한 증거로 제시되었다. &lt;br /&gt; &lt;br /&gt; 한데 신라가 북방기마민족과 연계된다는 설명을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lt;br /&gt; &lt;br /&gt; 북방기마민족이라면 일반적으로 현 몽골지방에서 강성했던 흉노 등 유목민을 의미하는데 &lt;br /&gt; &lt;br /&gt; 신라를 북방기마민족의 후예라니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이런 반발에는 한국인이 문화민족인데 오랑캐와 같이 말만 타고 다닌 유목민이라니 말도 안 된다는 거부감이 포함되어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신라가 북방기마민족의 후예라는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증명된다. &lt;br /&gt; &lt;br /&gt; 여기에서는 신라 김씨와 가야의 시조가 북방기마민족의 후예임을 알려주는 자료만 설명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적석목곽분 구조도(천마총). 지상이나 지하에 시신과 부장품을 넣은 목곽을 설치하고 그 위에 냇돌을 쌓은 다음 흙으로 봉분을 만들었다. 도굴이 어려워 신라의 부장품이 많이 발견된 이유다.  &lt;br /&gt; &lt;br /&gt;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김씨의 시조(始祖)인 김알지(金閼智)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삼국유사』〈김알지〉 부분은 다음과 같다. &lt;br /&gt; &lt;br /&gt; ‘영평(永平) 3년 경신(혹은 중원(中元) 6년이라고 하나 틀린 것이며, 중원은 2년에 끝났음) 8월 4일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지나다 큰 빛이 시림(始林 : 구림(鳩林)이라고도 함) 가운데서 빛나는 것을 보았다. 자색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드리워지고, 구름 가운데 황금 궤가 있어 나뭇가지에 걸려 궤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으며, 또 나무 밑에서는 흰 닭이 울고 있었으므로 왕에게 고하였다. 왕이 그 숲으로 행차하여 궤를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즉시 일어났다. &lt;br /&gt; &lt;br /&gt; 마치 혁거세의 고사(혁거세를 알지라고 했음)와 같았기 때문에 그 말로 인하여 알지(閼智)라고 이름 붙였다. 알지란 방언으로 어린아이란 뜻이다. &lt;br /&gt; &lt;br /&gt; 왕이 수레에 싣고 대궐로 돌아오는데,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라와 뛰놀고 춤추었다. &lt;br /&gt; &lt;br /&gt; 왕이 길일을 가려서 태자로 책봉했으나 뒤에 파사왕(破娑王)에게 사양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금궤에서 나왔다하여 이에 성을 김씨(金氏)로 하였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이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가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가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가 구도(俱道 또는 仇刀라고 함)를 낳고, 구도가 미추(味鄒)를 낳았는데, 미추가 왕위에 오르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되었다.’ &lt;br /&gt; &lt;br /&gt;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인 문무왕(文武王)의 능비문(陵碑文)을 보면 문무왕이 북방기마민족의 후예임을 보다 명백하게 알 수 있다. 「&lt;br /&gt; &lt;br /&gt; 문무대왕릉비」라고 불리는 이 비석은 1796년 정조 20년 경주에서 밭을 갈던 농부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당시 경주부윤이던 홍양호(洪良浩)가 그 비문을 탁본해 당시 지식인들에게 공개했다. &lt;br /&gt; &lt;br /&gt; 이 비의 건립연대는 대체로 문무왕이 사망한 서기 681년 또는 그 이듬해로 추정한다. 비문의 내용은 대체로 앞면에는 신라 예찬, 신라김씨의 내력,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의 치적, 백제 평정 등이 적혀있고 뒷면에는 문무왕의 유언, 장례, 비명 등이 적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무대왕 능비문. 글자가 새겨져 있는 부분은 사라지고 하부만 남아있지만 200년 전의 탁본이 남아 해득이 가능했다(『금문의 비밀』).  &lt;br /&gt; &lt;br /&gt; 그러나 이 비문은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빨래대로 사용되다가 두 조각이 되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글자가 새겨진 상부 쪽은 사라지고 글자가 새겨지지 않은 하부 쪽만 현재 경주박물관에 보관중인데 다행하게도 탁본이 지금까지 전해져 온 것이다. &lt;br /&gt; &lt;br /&gt; 이 비문에 적힌 부분 중 주목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lt;br /&gt; &lt;br /&gt; ‘신라 선조들의 신령스러운 영원(靈源, 김대성은 &amp;#39;신령스런 근원&amp;#39;으로 해석하기보다 투후가 된 김일제가 받은 땅이라고 해석)은 먼 곳으로부터 계승되어온 화관지후(火官之后)니 그 바탕을 창성하게 하여 높은 짜임이 융성하였다. 종(宗)과 지(枝)의 이어짐이 비로소 생겨 영이한 투후는 하늘에 제사지낼 아들로 태어났다. 7대를 전하니(거기서 출자(出自))한바다. &lt;br /&gt; 15대조 성한왕(星漢王, 김알지)은 하늘에서 바탕을 내렸고, 선악(仙岳)으로부터 신령이 비로소 탄생하여 금궁전(金宮殿)에 어림하고 옥란간(玉欄干)을 대하여 처음으로 조상의 복이 상서로운 수풀처럼 많아 석유산(石紐山)을 보는 것 같았다.’ &lt;br /&gt; &lt;br /&gt; 이 기록은 신라 왕이 된 신라김씨의 선조인 김알지가 어떻게 신라로 들어왔는지를 알려준다. &lt;br /&gt; &lt;br /&gt; 기원전 122년 한무제(漢武帝) 때에 곽거병은 감숙(甘肅)지방에 있던 흉노를 공격했다. &lt;br /&gt; &lt;br /&gt; 흉노의 계속되는 패전에 당시의 이치선우는 그 책임을 물어 휘하의 혼야왕과 휴도왕을 죽이려 했다. 이에 두 왕은 이치선우의 문책이 두려워 한(漢)나라에 항복하려 했는데, 도중에 휴도왕이 항복을 망설였기 때문에 혼야왕이 휴도왕을 죽였다. &lt;br /&gt; &lt;br /&gt; 휴도왕의 큰아들 일(日, 일제)과 동생 윤(倫)이 어머니와 함께 포로가 되어 한나라에 잡혀갔는데 두 왕자가 무제에게 발탁되어 제천금인(祭天金人 : 흉노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황금으로 된 옹건(神像))을 뜻하는 김(金)씨 성을 하사 받았다. &lt;br /&gt; &lt;br /&gt; 『한서』「흉노전」의 주석(註釋)을 보면 제천금인은 원래 흉노의 지성소(至聖所)인 운양현 감천산 아래에 있었는데 기원전 215년, 지성소를 진시황제에게 점령당하자 그 서북쪽에 자리잡은 휴도왕의 우측 땅으로 옮겨 휴도왕이 &amp;#39;제천금인상&amp;#39;을 모셨다고 적었다. 그러므로 무제가 휴도왕이 모셨던 &amp;#39;제천금인&amp;#39;을 상기시키는 김씨 성을 휴도왕의 아들인 김일제에게 준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lt;br /&gt; &lt;br /&gt; 그런데 김일제의 후손인 김알지의 경우 원래 김은 금(Gold)을 뜻하는데 이름인 알지(閼智)도 몽골-투르크어계에서 금을 의미한다. 즉 알타이 언어의 알트, 알튼, 알타이가 아르치, 알지로 변한 것으로 김알지는 금 금(Gold Gold)을 뜻한다. 김씨왕계가 수도를 금성(金城)이라고 한 것도 북방기마민족이라면 연상되는 제천금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lt;br /&gt; &lt;br /&gt; 주채혁 박사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시아 북방민족들의 경우에 징기스칸의 혈족을 일컫는 Altan(황금) Urug(씨족)처럼 &amp;#39;김씨(金氏)&amp;#39;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임금씨족 곧 천손족(天孫族)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라고 설명했다. 후금(後金)인 만주제국의 황족을 애신(愛新, 황금) 각라(覺羅, 겨레)라 부른 것과도 다름아니라는 뜻이다. &lt;br /&gt; &lt;br /&gt; 그 후 일제는 무제의 경호를 맡을 만큼 신임을 받던 중 무제의 침실에 숨어들어 온 자객과 현장에서 격투를 벌려 체포함으로써 더욱 더 무제의 신임을 받았다. 한무제는 자신의 딸을 김일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려 했으나 김일제는 이를 사양했다. 한무제는 임종시에 어린 소제(昭帝)를 보필하라는 유촉을 그에게 내렸다. 『한서』에 그 당시의 일이 적혀 있다. &lt;br /&gt; &lt;br /&gt; 무제가 죽기 전 김일제를 포로로 했던 곽거병의 동생 곽광과 김일제를 불렀다. 곽광이 물었다. &lt;br /&gt; &lt;br /&gt; “만약 폐하께서 세상을 버리시게 된다면 누가 후사가 되겠습니까?” &lt;br /&gt; “그대가 앞서 받은 그림의 뜻을 모른단 말인가. 막내아들을 세우고 그대는 주공(周公)의 일을 하라” &lt;br /&gt; &lt;br /&gt; 이에 곽광은 자신이 김일제 보다 못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사양했다. 김일제 또한 자신이 외국인이며 곽광보다 못하다고 말하자 무제는 곽광을 대사마대장군, 김일제를 거기장군(車騎將軍)에 임명하고 어린 황제를 보필하라는 유조(遺詔)를 남겼으며 다시 김일제를 제후국의 왕인 투후로 봉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신라김씨의 시조인 김알지 설화를 그린 그림.  &lt;br /&gt; &lt;br /&gt; 김일제의 후손들은 대대로 후(侯, 투후)를 계승했다. 김일제는 사망한 후 무제의 능인 무릉(茂陵)의 공신으로 배장(陪葬)되었는데 그의 묘는 현재 서안에서 서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진 섬서성 홍평현 남위향 도상촌(道常村)에 있다. &lt;br /&gt; 그러나 김일제의 후손은 왕망이 전한(前漢)을 멸하고 신(新, 8∼23)을 건설하는 와중에 대격변을 겪는다. &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김일제의 5대손인 성한왕(星漢王)이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되며 김일제의 동생인 윤(倫)의 5대손 탕(湯)이 가야로 들어와 김씨 시조인 김수로가 된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이와 같이 휴도국의 왕자인 김일제와 김윤의 후손이 신라와 가야로 들어오게 된 배경은 신(新)을 건설한 왕망(王莽)이 김일제의 증손자 당(當)의 이모부였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왕망이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을 건설할 때 북방기마민족의 천손임을 자부하는 김씨 일가가 한나라를 멸망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은 『한서』〈왕망전〉에도 나와있다. 그런데 한나라를 멸망시킨 왕망이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혁신적인 개혁조치를 추진하다가 단 15년 만에 후한 광무제 유수(光武帝 劉秀)에게 멸망한다(중국은 왕망이 한나라를 멸망시킨 것을 인정하지 않고 광무제가 한나라를 계승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lt;br /&gt; &lt;br /&gt; 후한을 세운 광무제는 한나라를 멸망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김일제의 후손들을 철저하게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원래 북방기마민족인 김일제의 후손들 대부분은 자신의 원래 본거지인 휴도국(休屠國)으로 도주하여 성을 왕(王)씨로 바꾸고 살았다. &lt;br /&gt; &lt;br /&gt; 그런데 광무제에게 쫓긴 김일제의 후손 모두 휴도국으로 간 것이 아니다. 그 중 한 갈래가 가야로 들어와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가 되고 신라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는 신라로 들어갔는데 추후 그의 후손인 미추가 신라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김씨의 내력을 적은 문무왕(文武王)의 능비(陵碑)는 신라김씨가 북방기마민족 즉 천손의 자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 한반도의 서북, 김해, 제주지방에서 왕망 시대의 화폐 오수전(五銖錢)이 많이 출토되는 것도 이들이 국외로 도피할 때 가져온 것이라는 해석이다. &lt;br /&gt; &lt;br /&gt; 물론 문무왕 비문에 등장하는 ‘투후의 후손이다’라는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많은 학자들이 모화(慕華) 사상에 젖은 문무왕이 자신의 뿌리를 중국에 갖다 댄 것이라고 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문무왕은 모화사상에 젖은 사람이 아니라 대당(大唐) 결전을 통해서 전성기의 세계제국 당을 한반도에서 물리친 왕이다. 더구나 조갑제는 그가 정말로 모화사상에 젖어 조상의 계보를 조작하려면 왜 하필 한족(漢族)이 싫어하는, 더구나 한을 멸망시키면서 신(新)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종국에는 후한 광무제에게 철저하게 패배하면서 배척 당하는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지칭했는가 하고 지적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중국 섬서성 홍평현 남위향 도상촌 무제의 무릉 옆에 있는 김일제의 릉과 비. 신라 김씨의 선조로 알려진 김일제는 흉노 휴도왕의 후손으로 무제로부터 직접 ‘김씨’를 사성받았다. 묘지는 1984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사진 김대성).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에 따르면 궤짝 안에 있던 김알지가 발견된 곳은 시림(始林)으로 다시 말하면 나무가 많은 곳이다. 북방지역에서는 흰색의 자작나무(白樺樹 : 백화수)를 생명(生命)을 의미하는 신수(神樹)로 숭상하는데 일본사람들이 신라를 시라기(白木)라고 부른 것도 이와 같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추정한다. &lt;br /&gt; &lt;br /&gt; 『삼국유사』에 석탈해(昔脫解)가 김알지를 안고 대궐로 가는 길에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라와 뛰놀고 춤추었다’고 쓰여 있는 것도 북방과의 연계를 의미한다. 북방 기마민족들은 새가 인간과 절대자를 연결하는 매개자(媒介者)라고 믿었고 조장(鳥葬)을 치르는 풍속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그들은 새가 죽은 사람을 하늘나라로 운반해 준다고 믿었다. &lt;br /&gt; &lt;br /&gt; 〈북방기마민족의 상징 적석목곽분〉 &lt;br /&gt; &lt;br /&gt; 신라김씨의 선조가 북방기마민족의 후예라는 것은 여러 사료에 의해 증명되지만 이를 보다 공고히 해주는 것은 경주 황남동 대릉원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다. &lt;br /&gt; &lt;br /&gt; 적석목곽분이란 땅을 파고 안에 나무로 통나무집을 만들고(지하로 6∼7미터의 땅을 파고 그 안에 대형 목곽을 설치한 쿠르간도 있음) 시체와 부장품들을 안치한 후에 위에는 상당히 많은 돌로 둘레를 쌓고(護石) 흙으로 커다란 봉분을 만드는 것을 말하며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중국, 일본에는 없는 무덤이다. &lt;br /&gt; &lt;br /&gt; 원래 북방 초원(스텝) 지역에서는 유력자가 죽으면 그가 생전에 살던 통나무집을 돌과 흙으로 그대로 덮어버린다. &lt;br /&gt; &lt;br /&gt; 그래서 스텝지역의 적석목곽분을 파보면 난방시설의 흔적도 남아 있고 심지어 창문도 발견된다. &lt;br /&gt; 신라 김(金)씨들은 그런 옛 전통에 따라 지상에 시신을 넣을 집을 일부러 짓고 그 위에다 냇돌을 쌓은 다음 흙으로 반구형(半球形) 봉분을 만들었다.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적석목곽분은 세월이 지나면 목곽 부분이 썩어 주저앉기 때문에 적석 중앙 부분이 함몰되어 낙타 등처럼 된다. 봉토는 거의 대부분 원형인데, 적석시설이 상당히 큰 규모이고 그것을 둘러싼 봉토 또한 대규모여서 신라의 고분이 고구려나 백제지역의 고분에 비해 상당히 대형화한 요인이다. 원래 적석목곽분은 평지에 조성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경주, 창녕, 동래 등지의 경우 구릉지에 조성된 것도 있으며 대체로 적석목곽분은 무덤의 구조상 도굴하기가 비교적 어려워 원형이 보존되는 경우가 많다. &lt;br /&gt; &lt;br /&gt; 적석목곽분은 4∼6세기 6대에 걸친 마립간 시대(내물-실성-눌지-자비-소비-지증마립간, 간이라는 칭호는 북방기마민족들이 주로 사용)에만 나타나는데 이를 만든 신라김(金)씨 왕족의 뿌리가 대초원지대의 기마민족이라는 기록을 증빙한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다. &lt;br /&gt; &lt;br /&gt; 적석목곽분이 아시아 최동단 중에서도 가장 남쪽인 신라 지역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세계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일반적으로 북방기마민족이라면 서쪽으로는 스키타이지역으로부터 동쪽으로는 몽골지역까지 초원을 근거로 하여 농경민과 수없이 혈투를 벌인 것으로 추정하는데 신라와 같이 전형적인 농경문화 지역에서 전형적인 북방기마민족의 무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적석목곽분의 원형 통나무집. 북방지역에서 흰자작나무로 지은 통나무집은 죽은 사람의 무덤을 만드는 기본구조이다. 이런 통나무집에 관(棺)과 부장품을 넣은 다음 그 위로 자갈돌을 쌓아 덮는 것이 적석목곽분이다(김정배 사진).  &lt;br /&gt; &lt;br /&gt; 여러 문헌의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들을 종합해 보면 신라인의 구성은 여러 민족이 여러 시기에 걸쳐 혼합되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한-신라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살면서 수많은 고인돌을 남겨 놓은 토착 농경인들, 기원전 3세기 중에 진(秦)나라의 학정을 피해 이민해 온 사람들, 기원전 2세기에 이주해 온 고조선의 유민들, 고구려에게 멸망당한 낙랑(樂浪)에서 내려온 사람들 등이다. &lt;br /&gt; &lt;br /&gt; 그런데 4세기 이후 한반도 남부의 사정은 급변하고 있다. 삼한(三韓)은 사라지고 백제와 신라, 가야연맹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신라는 356년 내물왕 즉위 이후 중국에 사신을 보내는 등 고대 국가의 모습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내물왕 26년(381) 신라는 북중국의 유목민족 국가 전진(前秦)에 사신을 보낸다. 삼국사기에는 이때 전진의 황제 부견(符堅)과 신라 사신 위두(衛頭) 간의 대화가 기록돼 있다. &lt;br /&gt; &lt;br /&gt; ‘부견이 위두에게 묻기를 “그대의 말에 해동(海東:신라)의 형편이 옛날과 같지 않다고 하니 무엇을 말함이냐”고 하니 위두가 답하기를 “이는 마치 중국의 시대변혁·명호개역과 같은 것이니 지금이 어찌 예와 같을 수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록에 대해 지금까지는 신라가 내물왕 시기에 들어 나라가 크게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답변이라고 풀이해 왔지만 일반적으로 시대변혁·명호 개역은 단순히 나라의 체제가 정비된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큰 격변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lt;br /&gt; &lt;br /&gt; 이는 이전까지의 석(昔)씨 임금 시대가 끝나고 외부세력이 정권을 장악해 모든 면에서 과거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됐음을 의미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사실 내물왕 이후 석(昔)씨는 신라 역사의 주류에서 사라진다. 왕은 물론 왕비나, 재상, 학자, 장군 가운데서 석씨는 찾아볼 수 없다. &lt;br /&gt; &lt;br /&gt; 신라 김씨보다 역사가 오래된 석씨지만 현대 한국사회에서 석씨는 대단한 희성인데 이는 내물왕 집권기에 석(昔)씨가 철저히 제거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lt;br /&gt; &lt;br /&gt; 학자들이 경주의 적석목곽분 출현을 마립간시대에 북방기마민족이 신라지역에 들어와 지배계급이 됐음을 입증하는 가장 결정적 증거로 제시하고 있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lt;br /&gt; &lt;br /&gt; &amp;lt;이종호 / 과학저술가&am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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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1 May 2009 08:31:2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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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우리민족은 과연 단일민족인가 (타밀어와 우리말의 관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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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우리한민족은 단일민족인가 하는 것에 평생을 두고 늘 궁금해 하다가 &lt;br /&gt; &lt;br /&gt; 시간날때마다 그것을 직접 공부를 하게 되었다.&lt;br /&gt; &lt;br /&gt; 또한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다가 직접 그 자료들을 모으고 있다.&lt;br /&gt; &lt;br /&gt; 다음의 글도 그 일환에서 퍼온글이다.&lt;br /&gt; &lt;br /&gt; 저자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lt;br /&gt; &lt;br /&gt; 오래된 과거사라도 정확히 아는 것이 &lt;br /&gt; &lt;br /&gt; 오늘날 북한의 잘못 주장인 우리 한민족이 유일한 단군자손이라는 명분하에 &lt;br /&gt; &lt;br /&gt; 우리민족끼리라는 허울 좋은 말장난에 놀아나는 &lt;br /&gt; &lt;br /&gt; 남쪽의 분열을 막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자료수집: 목적&lt;br /&gt; &lt;br /&gt; 1. 역사적으로 우리가 왜 한반도에 살게 되었는가, 당시의 외부 세계는 어떻게 되었나 &lt;br /&gt; 2. 우리의 상고사가 단제 신채호가 기술한 것처럼 과연 그러한가&lt;br /&gt; 3. 우리민족은 북방에서 왔는가 남방에서 왔는가&lt;br /&gt; 4. 고조선 시대는 어떤 것인가 실제로 존재한 유물이 있는가&lt;br /&gt; 5, 고구려와 신라, 백제, 가야, 왜는 서로 어떤 관계였는가,당시의 세계사는 어떤 상황이엇을 까&lt;br /&gt; 6. 나라이름을  왜 그렇게 명명하였을까&lt;br /&gt; 7. 우리가 상고사를 너무 견강부회 아전인수적으로 해석하여 그속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lt;br /&gt; 8. 남방계의 농경문화와 북방계의 유목문화가 한반도에 정착시기는 언제일까&lt;br /&gt; 9. 우리의 말과 글문화 풍습은  몽골, 터키  인도 타밀지역와 너무 유사한 이유는 무엇을 뜻하나&lt;br /&gt; 10 가야의 김수로왕은 남방계인가 북방계인가&lt;br /&gt; 11.김해 대성동고분의 철밥그릇의 철기문화는 어디서 왔는가 &lt;br /&gt; 12 가야가 왜 한반도에서 사라졌는가&lt;br /&gt; 13.신라의 태조 박혁거세, 이후의 왕들, 석탈해, 김알지는 누구인가 &lt;br /&gt; 14. 김알지는 북방 흉노족 출신인가 &lt;br /&gt; 15. 신라의 왕권이 석씨에서  왜 김씨로 바뀌는 사건은 무엇때문 이었을까, &lt;br /&gt; 16. 중앙 아시아에서 발견되는 스키타이 유물들이 신라왕능 고분에서 출토되는 이유는 무엇을 뜻하나&lt;br /&gt; &lt;br /&gt; 등등 우리고대사에 연구를 통대해서 차례로 모으고자 한다,&lt;br /&gt; &lt;br /&gt; 이것은 본 불로그가 계속 자료를 모을 것을 의미한다.&lt;br /&gt; &lt;br /&gt; 그러던 중 좋은 자료를 발견하여 시간나는 대로 글을 올린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반드시 역사적으로 사실을 증명하면서 알아야 하는 부분도 있어 &lt;br /&gt; 다음과 같이 참고 하기로 한다. &lt;br /&gt;  &lt;br /&gt; (마침 필자가 인도에 잠시,주재하는 기회에 스리랑카에서 분리독립을 위해 타밀반군의 지도자가 26년간 투쟁하다가 &lt;br /&gt; 스리랑카 정부군에 의해서 모두 살해되는 (2009년5월18일) 사건이 있었다.)&lt;br /&gt;  참고로 인도대륙 동남쪽에  타밀나두주가 있으며 그들의 언어는 타밀어이며 인도의 공식언어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더욱 타밀에 대해서 궁굼하던차에  좋은 자료를 발견하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자료의 출처는 인도의 타밀의 언어와 풍습에 대해서 오랜동안 연구 하신 &lt;br /&gt; 캐나다 터론토의 김정남 선생님의 자료이다. &lt;br /&gt; 그분의 노고에 높고 깊은  감사를 드린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저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동포신문 캐나다 경향신문의 편집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언론인 김정남 입니다.&lt;br /&gt;  &lt;br /&gt; 저는 토론토에서 동포 몇 사람들과 함께 한국타밀연구회(Korean Society of Tamil Studies)을 결성, 한국어와 타밀어간의 유사성과   해상교류를  연구하고 있습니다.&lt;br /&gt;  &lt;br /&gt; 제가 한국 언론매체에 발표한 연구조사를 보실려면 야후 코리아나 네이버등 아무 검색엔진에 들어가셔서 &amp;#39;토론토 김정남&amp;#39;을 입력하시면 됩니다.&lt;br /&gt;  &lt;br /&gt; 다음은 제가 그동안 서울의 언론매체와 캐나다 동포신문에 발표한 내용가운데 언어학적인 일면을 요약한 내용입니다.&lt;br /&gt; 아울러 우리말과 현대 타밀어간의 유사단어 5백여개를 첨부 파일로 보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물론  억지를 피워 견강부회한 일면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우리말과 그 발음과 뜻이 같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좋으신 충고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lt;br /&gt;  &lt;br /&gt;  늘 건강에 유의하시고 집안이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토론토에서  한국타밀연구회 회장 김정남  드림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우리 민족은 어디서 왔으며 우리 말은 어떻게 형성됐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우리말과 가장  가까운 언어는 어떤 언어인가?&lt;br /&gt;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등 소위  우랄 알타이어인가 아니면  타밀어등  인도 남부의 드라비다어인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까지 학계에선 우리 민족은 북방 유목민출신이며 언어도 거기서 온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하지만 지난 2004년 5월 단국대 생물학과 김욱 교수연구팀은  미토콘드리아 DNA형을 분석한 결과   60%가량이 북방의 몽골족등 북방 유목인의  유전자 형을 보였고  40%가량은 동남아시아등 남방 사람들의  것과 같은  유전자형을 지니고 있다고 밝혀냈다.&lt;br /&gt; &lt;br /&gt; 그렇다면 남방에선  언제, 어떻게 들어왔을까?&lt;br /&gt; &lt;br /&gt;   이미  &amp;#39;삼국유사&amp;#39;와 &amp;#39;삼국사기&amp;#39;에 가야의 초대왕비 허왕후(許王侯•서기 32~189년)가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기록에서 볼 때 2천년전에 이미 인도와의 해상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신라시대엔  인도보다 더 멀리 떨어진 아랍 상인들이 도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lt;br /&gt; &lt;br /&gt;   허황후가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설화가 사실일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제시됐다. &lt;br /&gt; &lt;br /&gt; 지난 2004년 8월 서울대 의대 서정선 교수와 한림대 의대 김종일 교수는 강원 춘천시에서 열린 한국유전체학회에서 &lt;br /&gt; &lt;br /&gt; “약 2,000년 전 가야시대 왕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분석한 결과 인도 등 남방계와 비슷한 유전정보를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lt;br /&gt; &lt;br /&gt; 이번 연구결과는 우리 민족의 기원이 북방단일설이 아니라 북방•남방계가 합쳐진 이중기원설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김교수는 학회 발표에서 “허황후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김해 예안리 고분 등의 왕족 유골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보니 인도인의 DNA 염기서열과 가까워 이들이 남방 쪽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유골 4구 가운데 1구에서 이같은 결과를 얻었으며 나머지 3구의 유골을 더 연구하면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토콘드리아는 모계로 유전되는 세포소기관으로 미토콘드리아 DNA는 가계도 조사와 진화 연구에 많이 활용된다. 한국인의 기원 연구 작업 중에 유골의 유전물질을 분석해 데이터를 낸 것은 처음이다.&lt;br /&gt; 서교수는 “유골에 있는 DNA가 문화인류학에서 규명하지 못했던 사실을 밝혀내는 유용한 연구수단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lt;br /&gt; &lt;br /&gt;    필자는 허왕후가  기원전 수천년전에 인더스문명을 일으킨 드라비다족의 최대 일파인 타밀족출신으로 보고 있다. 백인인 아리안족의 침략으로 인도 남부로 쫓겨 내려 온 드라비다족은  타밀어, 텔루구어, 칸나다어,  말라얄람어등  드라비다어를 구사한다. &lt;br /&gt; &lt;br /&gt;   남인도 동해안및 스리랑카 북부에 살고 있는 타밀인들이 동남아시아와 중국남부를 휘젓고 다니면서 마침내 한국 및 일본과도 교류했다는 증거는 한국어와 일본어 형성에 스며든 타밀어의 영향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조선 고종의 외교고문이자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는 1905년 ‘한국어와 인도 드라비다어의 비교 문법’이라는 저서에서 “두 언어가 유사한 것은 한반도에 정착한 선주민이 최소한 일부 지역이라도 남방에서부터 이주해왔음을 입증해주는 누적된 증거의 고리” 라고 주장했다. &lt;br /&gt; &lt;br /&gt;  강길운(姜吉云) 전 수원대교수도 &amp;#39;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amp;#39;(1990년)에서 드라비다어와 우리말이 무려 1천여개 어휘가 같다면서  드라비다족이 한반도에 이주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원로 언어학자 오노 수수무(大野晉, 86세) 학습원대학 교수는   ‘일본어와 타밀어’(2000년) ‘야요이 문명과 남인도’(2004년)등 일련의 역작을 통해 타밀인들이 기원전 수세기에 이미 일본열도에 집단 거주, 타밀어와 유사한 일본어 단어가 5백개가 넘는다고  강조했다.&lt;br /&gt; &lt;br /&gt;  필자는 이를 확인, 추적하기위해   30여만명으로 추산되는 토론토 거주  타밀인들가운데 교수, 교사, 힌두교 성직자, 타밀인 협회 간부, 여성단체 관계자등 전문가 수십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언어와 습관등에서 우리와 유사한 것이 적지않음을  발견했다.    &lt;br /&gt; &lt;br /&gt; 첫째, 현대 타밀어에서 우리말과 똑같은 말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lt;br /&gt; 1.&amp;quot;바나깜(반갑다)&amp;quot;  &amp;quot;아빠(아빠), 암마(엄마), 안니(언니)&amp;quot; 등 가족관계 명칭들&lt;br /&gt; 2. &amp;quot;빨(이빨)&amp;quot; ,&amp;quot; 무크(코)&amp;quot;, &amp;quot;깐(눈깔)&amp;quot;, &amp;quot;코풀(배꼽)&amp;quot;, &amp;quot;궁디(궁덩이의 경상도 사투리)&amp;quot; &amp;quot;찌찌 (자지)&amp;quot; &amp;quot;불(불알)&amp;quot; &amp;quot;보지( 고대 타밀어로 &amp;#39;보지&amp;#39;) &amp;quot;등 신체기관의 명칭들&lt;br /&gt; 3.&amp;quot;난(나), 니(니)&amp;quot; &amp;quot; 난, 우람(난, 우람하다)&amp;quot;&amp;quot;난, 닝갈비다 우람(난, 니보다 우람하다)&amp;quot;&amp;quot;난, 비루뿜(난, 빌다)&amp;quot;   &amp;quot; 난,서울꾸 완담(난, 서울로 왔다)&amp;quot; )&amp;quot;  &lt;br /&gt; &amp;quot;니, 인거 바!(니, 이거 봐!)&amp;quot;&amp;quot;니, 인거 와!(니, 이리 와!)&amp;quot; &amp;quot; 못땀(몽땅)&amp;quot; &amp;quot;니, 못땀 다!(니, 몽땅 다오!)&amp;quot;등 상호 호칭과 소통의 대화들 &lt;br /&gt; &lt;br /&gt; 둘째, 동물과 식물이름및  농경사회의  용어들이 우리말과 고대 타밀어가  너무나 똑같다.&lt;br /&gt; 우리말의 비단, 삼, 길쌈, 벼, 풀 등은 고대 타밀어와 그 발음과 뜻이 완전히 일치한다. &lt;br /&gt; &lt;br /&gt; &amp;lt;자연현상  명칭&amp;gt; &lt;br /&gt; English	 우리말Korean  Old, Written Tamil   고대 타밀어 (문어체) Modern Tamul 현대 타밀어&lt;br /&gt; (구어체)&lt;br /&gt; &lt;br /&gt; &lt;br /&gt; night 	밤 	         Pamn ,             Munnorkalam, Palean	Iravu&lt;br /&gt; day 	날 	            Nal	 Nal&lt;br /&gt; weather	날씨 	             Nalssi 	Kala Nilai&lt;br /&gt; worm 	따뜻한 	           Ttatta	Vakkai &lt;br /&gt; hot 	 더운 	           Beppam	Chudh&lt;br /&gt; cold 	차거운 	          Chui 	Kullier&lt;br /&gt; Spring	봄  	          Pom	Sino&lt;br /&gt; Summer 	여름 	          Nyorum	Godai&lt;br /&gt; Autumn	가을 	          Kaul	Middy, Ilaiuthir&lt;br /&gt; Winter 	겨울 	          Kyoul	Kuler&lt;br /&gt; Clouds	구름 	          Kurum	Mukil&lt;br /&gt; rain	비 	           Pi	                Malai&lt;br /&gt; shower rain소나기 	        Suram Sonagi	Thider Malai&lt;br /&gt; sky	하늘 	        Wannam	Ahayam&lt;br /&gt; wind	바람 	        Varam	Kad&lt;br /&gt; roof 	지붕 	        Chipum	Kurai&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 식물 명칭 &amp;gt;&lt;br /&gt; English 	우리말Korean 	고대 타밀어 (문어체)old, written Tamil 	modern Tamil&lt;br /&gt; &lt;br /&gt; &lt;br /&gt; paper mulberry) 	닥나무 	=Tak Tree?	                                              Kadathasi Maram = &lt;br /&gt; water melon	수박	Supak	                                             Vartha Kapallam&lt;br /&gt; Gourd	     	박Pak	수라이카이Suraikai &lt;br /&gt; Pumpkin		호박Hopak	 부사니카이Pusanikai &lt;br /&gt; unhulled &lt;br /&gt;  grain of rice, &lt;br /&gt;  or a rice plant 	벼 	 Pyo [Nellu]&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uncooked rice	쌀 	쏘르  [Sor]&lt;br /&gt; 	 &lt;br /&gt; leaf)	          나무잎( 닢 )	닢[ Nip]	엘라이(Elai)&lt;br /&gt; &lt;br /&gt; &lt;br /&gt; land, earth 	 땅	 땅 	닐람 [Nilam] 또는 &lt;br /&gt; 타라이 [Tarai]&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awn 	잔디 	chandi kadan&lt;br /&gt; &lt;br /&gt; &lt;br /&gt; grass	풀 	pul	pul&lt;br /&gt; &lt;br /&gt; mow	풀베다 	pulvettu 	pulvettu&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동물 명칭&amp;gt;&lt;br /&gt; English	        우리말Korean	고대 타밀어 (문어체)old, written Tamil 	modern Tamil현대 타밀어&lt;br /&gt; (회화체)&lt;br /&gt; rooster,hen, cock )	닭	닥[Tak]          	                          셔발[ Cheval　　　　　　　　]&lt;br /&gt; 			&lt;br /&gt;  egg	              달걀	 달걀 [Talgyal]	                          무따이[Muttai]&lt;br /&gt; (grasshopper)	메뚜기	 베뚜끼[Vettukki]	                          베뚜끼리[vettukkili]&lt;br /&gt;  (cow	                소  	소 [so = gaya =go]	                           파수 [Pasu]&lt;br /&gt; Tiger 	             호랑이 	Pum, Pom, Horangi	                           = Pule &lt;br /&gt; 			&lt;br /&gt; goose	               오리 	 Ori                                                     밧투( Vaththu) Kaththu &lt;br /&gt; wild goose	                기러기  	Kirogi 	Kattuvaththu&lt;br /&gt; horse	                말 	Ma, Mal 	                                           Kithippul&lt;br /&gt; elephant 	               코끼리	kiri	                                            yanai &lt;br /&gt; lion	               사자 	Saja                                                      Singam                                     &lt;br /&gt; &lt;br /&gt; Roe Deer)	                노루 	Noru	                                           Man&lt;br /&gt; horse)	                말 	 Mal, Ma	                                          구티라이 [Kuthirai]&lt;br /&gt; (thrush  )	               지빠귀	 Chippagyu	                          쿠일[Kuyil ]  &lt;br /&gt; eagle)	               독수리 	 Suri, Toksuri	                          칼루구[Kalugu]&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세째, 농경사회에서 발생한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의 형태와 명칭이 타밀의 그것과 일치한다. &lt;br /&gt; &lt;br /&gt; 새해 첫 날 우리들이 즐기는&lt;br /&gt; &lt;br /&gt;  윷놀이, 제기놀이(또는 제기차기), 쥐불놀이, 팽이놀이 등 민속놀이도 당시 타밀어로 각각 &amp;#39;&lt;br /&gt;  윷노리(Yuddh, Yuth Nori)&amp;#39; &amp;#39;제기노리(Jegi Nori)&amp;#39;, &amp;#39;추불 노리(Chupul Nori)&amp;#39; &amp;#39; 팡이 노리(Pamgi Nori)&amp;#39;로 불리며 &lt;br /&gt; 그 형태도 완전히 똑같다. &lt;br /&gt; &lt;br /&gt; &amp;#39;놀이&amp;#39;는 고대 타밀어로 &amp;#39;노리(Nori), 또는 노루(Noru)&amp;#39;로 불렸으며 현재 타밀어로는 &amp;#39;빌햐야들(Vilaiyattu)&amp;#39;로 불리고 있다. &lt;br /&gt; &lt;br /&gt; 우리말 명칭 	고대 타밀어 명칭 	현대 타밀어 &lt;br /&gt; 명칭&lt;br /&gt; &lt;br /&gt; 1.윷놀이&lt;br /&gt;  도, 개, 걸, 윷, 모         윷노리 =Yudh Noori  도[To] 개[Ke], 걸[Kol],윷[Yuth],  모[Mo]  윳담 바룸=Yuddham  Varum&lt;br /&gt; &lt;br /&gt; 2.제기 놀이 	제기노리=Jegi Noori	제기 = Jegi &lt;br /&gt; &lt;br /&gt; 3.쥐불 놀이 	주불 노리=Chupul  Noori*쥐=  Chu 불 = Pul&lt;br /&gt; &lt;br /&gt; *현재 힌디어로 &amp;#39;쥐&amp;#39;는 주하[Chuha] &lt;br /&gt; 	 티  보리 = Thi Pori&lt;br /&gt;  &lt;br /&gt; *쥐 (mouse)&lt;br /&gt;  =엘리[Eli]&lt;br /&gt; &lt;br /&gt; *불(fire) = &lt;br /&gt; 티=Thi, 또는  네루뿌 =Neruppu  &lt;br /&gt; &lt;br /&gt; 4.연놀이 	연노리 =Yon Noori	바땀 비드봄=Pattam  Vidyvome, 또는 코디 비두달 =Kodi  Viduthal&lt;br /&gt; 5.팽이 놀이 팽이 노리 =Pangi Noori	팜바람=Pambaram&lt;br /&gt; 6.딱지 치기 	따치 노리 =Ttachi Noori	따치 =Ttachi &lt;br /&gt; &lt;br /&gt; 7.자치기&lt;br /&gt;  *자=measuring stick	자노리= Cha  Noori&lt;br /&gt; *자=Cha=measuring stick	기띠불&lt;br /&gt; =Kittipul&lt;br /&gt; * 인도  주류사회의 힌디어로는  Gilli라고 부름 &lt;br /&gt; &lt;br /&gt; &amp;lt;전통풍습&amp;gt;&lt;br /&gt; 우리 전통관습에 어린이가 밤에 잠자다 오줌을 싸면 그 다음날 아침 키를 머리에 쓰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소금을 얻어 오는 관습이 있었다. 타밀도 똑같은 관습이 있습니다.&lt;br /&gt;  When a child passes  urine during  his or her sleeping at night , the next morning he or she should  put on  a  winnow on the head and  beg  salt from door to door of the  neighbours in the village.&lt;br /&gt; &lt;br /&gt; 그 키는 고대 타밀어로 Ki 또는 Chi라고 했으며 소금도 옛날  타밀어로 Sogum(&amp;#39;소금&amp;#39;, 또는 &amp;#39;소흠&amp;#39;으로 발음)이라고 했었다.&lt;br /&gt; 하지만 현대 타밀어에선 키(= winnow)는  &amp;quot; sulagu , muram, thada.&amp;quot;등으로, 소금(salt)은 &amp;quot; uppu&amp;quot;라고 불려진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째, 타밀인들이 수천년동안 믿어온 힌두교와 관련된 것들이 우리 역사서에 등장하는 것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lt;br /&gt; &lt;br /&gt;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崔致遠)의 &amp;lt;석리정전(釋利貞傳)&amp;gt;에서 &lt;br /&gt; &lt;br /&gt; “가야산신(伽倻山神) 정견모주(正見母主)는 곧 천신(天神) 이비가지(夷毗訶之)에 감응한 바 되어 &lt;br /&gt; &lt;br /&gt; 대가야왕(大伽倻王) 뇌질주일(惱窒朱日,이진아시왕의 별칭 )과 금관국왕(金官國王) 뇌질청예(惱窒靑裔, 김수로왕의 별칭) 두 사람을 낳았다.&lt;br /&gt; “라고 되어 있는 데 이들 모두 힌두교와 관련있다.&lt;br /&gt; &lt;br /&gt; 힌두교의 주요신 시바(Shiva),부인 파르바티(Parvati) , 두 아들 가네쉬(Ganesh)와 무루간(Murugan)을 &lt;br /&gt; 각각 고대 타밀어로 &amp;#39;이비가지(Ibigaji)&amp;#39;, &amp;#39;정견(Chongyon)&amp;#39;,&amp;#39;뇌질주일(Noejil Juil)&amp;#39;: , &amp;#39;뇌질청예(Nojil Chongye)&amp;#39;라고 불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편집자주; &lt;br /&gt; &lt;br /&gt;               시바          이비가지(夷毗訶之,,Ibigaji)&amp;#39;&lt;br /&gt;               파르비타    정견(正見母主,Chongyon)&amp;#39;&lt;br /&gt;               가네쉬       뇌질주일,(惱窒朱日,Noejil Juil,이진아시왕의 별칭 ) 코끼리머리 신상, 손이 4개, &lt;br /&gt;               무르간       뇌질청예(惱窒靑裔, Nojil Chongye,김수로왕의 별칭) 금관국왕(金官國王)&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 귀절은 조선 중종 25년(1530)에 펴낸 《동국여지승람》의 증보 개정판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가 최치원의 &amp;lt;석리정전&amp;gt;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타밀인들이 한반도까지 도달했던 또 다른 증거는 벼농사, 난생신화, 고인돌로 대표되는 거석문화(巨石文化)등이 말해주고 있다.&lt;br /&gt; &lt;br /&gt;  한국 고고학계의 원로이신 한양대의 김병모(金秉模) 교수에따르면 벼농사, 난생신화, 고인돌로 대표되는 거석문화(巨石文化)등의 지리적 분포가 인도-동남아시아-한반도 남동부 해안지역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인도 문화의 영향을 시사했다.&lt;br /&gt; &lt;br /&gt; 가야의 초대왕 김수로왕를 비롯하여 박혁거세와 석탈해등 신라 초기의 왕들의 난생설(卵生說)과 &lt;br /&gt; 남해안과 동해안 바닷가 부근에서 발견되는 고인돌등이 이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인도 남부및 스리랑카북부 해안지대에 거주하는 타밀인들은 &lt;br /&gt; &lt;br /&gt; 기원전 수세기부터 서쪽으론 로마제국까지,&lt;br /&gt; 동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중국남부까지 활발한 해양진출을 하다가 &lt;br /&gt; 대만 북쪽으로 흐르는 흑조(黑潮) 난류를 타고 북상, 급기야 한반도까지 도달한 것이다.  &lt;br /&gt; Ancient India and its influence in modern times, by Robert and Nancy Wirsing&lt;br /&gt; &lt;br /&gt; .이 책에선 인도 남부 타밀인들이 로마 제국가지 왕래하면서 &lt;br /&gt; 검투사 영화에 나오는 인도 호랑이및 코끼리를 수출하고 조련사까지 보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lt;br /&gt; &lt;br /&gt; 더구나 타밀왕은 로마제국의 군인들을 경호원으로 데리고 있었다는 설도  나옵니다. &lt;br /&gt; 이 책을 참고하시면 타밀인들이 기원전후  선박 건조술이 뛰어나고  &lt;br /&gt; 막강한  해상력으로 서쪽으론 로마제국까지, 동쪽으론 베트남과 중국 남부까지 활발하게 진출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lt;br /&gt;  &lt;br /&gt; 하지만 타밀인들이 베트남과 중국 남부를 거쳐 한반도와 일본까지 도착했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lt;br /&gt; 그 잃어버린 고리를 저의 한국 타밀연구회가 추적하고 있는 중입니다. &lt;br /&gt; &lt;br /&gt; 왜냐하면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인도 남부에서 서쪽 로마제국까지 배를 타고 가는 것보다 &lt;br /&gt; 동쪽으로 한반도까지 도달하는 것이  지리적으로 훨씬 쉽기때문입니다.&lt;br /&gt;  &lt;br /&gt; English 	Korean 	old Tamil 	modern Tamil &lt;br /&gt; &lt;br /&gt; Carved Black Stone	 돌 하르방 	 Tol  Harubang 	Tol Karungal (High Black  Stone)&lt;br /&gt; &lt;br /&gt; Wooden Puppet at the village 	 장승 	Changsung 	Kooburam, or Thubi&lt;br /&gt; &lt;br /&gt; Ring Dance, or Circle Dance 	강강수월래	Kangkang-suwole	Kolatam, or Vattam Nadhanam&lt;br /&gt; &lt;br /&gt; Wrestling      	씨름	Ssirum	Mal Yudham &lt;br /&gt; &lt;br /&gt; Throwing Arrow 	투호 	Tuho	Ampu Ari&lt;br /&gt; &lt;br /&gt; an A-frame carrier,&lt;br /&gt;  or a back rack	 지게 	Jige	Thuku&lt;br /&gt; &lt;br /&gt; a palankeen,&lt;br /&gt;  or a sedan chair &lt;br /&gt;  for a  bride &lt;br /&gt; and nobilities 	가마 	Kama	Pallaku &lt;br /&gt; &lt;br /&gt; a ja, &lt;br /&gt; or an earthenware pot, &lt;br /&gt; or a jug          	 독 	Tot(돗)	Kunda&lt;br /&gt; &lt;br /&gt; an iron pot, or an oven	솥	Sott	Aadupu&lt;br /&gt; &lt;br /&gt; rice cake   	떡 	Ttok	Aricy Poongal &lt;br /&gt; &lt;br /&gt; hammer for&lt;br /&gt;  making rice cake	떡매   	Ttok Mae	Sutti,  or  Suthil &lt;br /&gt; &lt;br /&gt; a light meal &lt;br /&gt; between regular meals&lt;br /&gt;  during the farmers&amp;#39; &lt;br /&gt; work in the field 	새참	Saicham(사이참)	Saapadu, or Unavu&lt;br /&gt; &lt;br /&gt; Alcohol 	                술 	Sul	Kallu = Cocunut Liquor &lt;br /&gt; &lt;br /&gt; Alcohol made &lt;br /&gt;  from crops or rice	막걸리 	Maggoli	Kallu = Cocunut Liquor &lt;br /&gt; &lt;br /&gt; a big bamboo&lt;br /&gt;  hat, or&lt;br /&gt; a big reed hat 	삿갓 	Sakat	 Periya Toppi &lt;br /&gt; &lt;br /&gt; a chignon 	쪽 	Chok 	Kudumbi&lt;br /&gt; &lt;br /&gt; a pigtail ribbon 	댕기	Daenggi	Pinnal &lt;br /&gt; &lt;br /&gt; a jacket, or a blouse	저고리 	Chogori  Kavasham 	Chori Kavasham &lt;br /&gt; &lt;br /&gt; a skirt	                치마 	Chima	Pavadai &lt;br /&gt; &lt;br /&gt;  the red spoton &lt;br /&gt; a bride´s&lt;br /&gt; cheek 	               연지 	Yonji 	Thirsde&lt;br /&gt; &lt;br /&gt; the red spot &lt;br /&gt; on a bride´s brow 	곤지 	Konji	Pottu&lt;br /&gt; &lt;br /&gt; love 	사랑 	Sarang 	Viruppum &lt;br /&gt;  &lt;br /&gt;  위의 제 질문에 대한  타밀 인류학자인 Ragupathy Ponnampalam 박사의 답변 내용 입니다.&lt;br /&gt;  &lt;br /&gt; 1. Changsung 장승  --   Chaakkai 장까 =  A ancient theatre performance&lt;br /&gt; &lt;br /&gt; 2. Kangkang  강강  --   Kangka&amp;#39;nam  강간암 = ring  ( in Tamil as well as Sanskrit)&lt;br /&gt; &lt;br /&gt; 3. Tot 독--  Thoddi  돗디 = water tub = 액체등을 담는 통&lt;br /&gt; 4. Sul 술  --   Chooru  수르 = toddy =야자주(酒)  , &lt;br /&gt; &lt;br /&gt; 5. Maggoli  막걸리  --  Maguli 마굴리 =   a tribal alcohol made of Magul flowers.&lt;br /&gt; &lt;br /&gt; 6. Sakat 사갓 -- Chaakku 사구=  gunny bag  [gunny = 굵은 삼베 =gunnusack , &lt;br /&gt;     bag = 자루, 봉지,  자루같이 생긴 것]&lt;br /&gt; &lt;br /&gt; 7. Konji  곤지--  Kunchi   군치 = hair on head.&lt;br /&gt; &lt;br /&gt; 8 .Sarang 사랑  --  Chaar  사르 =   coming together&lt;br /&gt; &lt;br /&gt;  9. Non 논  --  Nan 난 =Paddy fields&lt;br /&gt; &lt;br /&gt; 10. Pak 박  --  Paakal 박알 = Bitter  gourd &lt;br /&gt; &lt;br /&gt;  11. Pul 풀   --  Pul 풀 = Grass&lt;br /&gt; &lt;br /&gt; &lt;br /&gt; Ragupathy Ponnampalam 박사의 이메일 주소는   입니다. 이메일주소로 연락하시면 타밀역사및 언어등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Dr. Ragupathy was former Professor of South Asian Studies and Head of the Postgraduate Departments at Utkal University of Culture in Orissa, India. His research interests include South Asian History, Archaeology, Epigraphy, Culture, Religions, Tamil Studies, and Astrology. Since 1973, he has authored, edited and published 15 books and journals in English and Tamil, including Early Settlements in Jaffna: An Archaeological Survey (1987) and Inscriptions of Maldives (co-authored with Naseema Mohamed).&lt;br /&gt;  &lt;br /&gt; .................................................................................................................................................................................................&lt;br /&gt;  다음은  지난 몇달 동안  많은 타밀 전문가들과 인터뷰하여 추적  한 끝에 밝혀낸 새로운 사실입니다. &lt;br /&gt;  &lt;br /&gt; 1. 가야의 허왕후가 부모로부터 받은 파사석탑(婆娑石塔)의 파사석(婆娑石), 즉 파사돌은 당시 고대 타밀어로도  똑같이 Paasadol 이라고 불렸습니다.Paasadol은 &amp;#39;Paasa &amp;#39;(부모나 스승, 성직자등의 사랑, affection)에다  &amp;#39;dol&amp;#39; (고대타밀어로 &amp;#39;돌&amp;#39;, stone)이 합쳐진 합성어입니다.&amp;#39; 돌&amp;#39;은 우리말과  고대 타밀어가 그 발음과 뜻이  완전히 일치하는 데   현대 타밀어에선  칼(kal)로 바뀌었습니다,&lt;br /&gt; 그래서 현대 타밀어에선 Paasadol 은 Paasakkal로 말해지고 있습니다.&lt;br /&gt;  &lt;br /&gt; 즉, 타밀사회에선 자녀들이 멀리 곁을 떠날 때 부모나 성직자들이  자녀들의 평안과 신의 가호를  빌고 악을 물리치기위해 몸에 지니는 부적과 같은 Paasadol를 주었습니다. 현재는 &amp;#39;돌&amp;#39;대신에  &amp;#39;금(Gold)&amp;#39;으로 만든 목걸이등을 준다고 합니다.&lt;br /&gt;  &lt;br /&gt; 2. 파사석(婆娑石)에 대한 중국측기록에도 파사석(婆娑石)이 인도가 원산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lt;br /&gt;  婆娑石，一名 婆萨石。胡干堇，又称天竺干堇.其本为堇之一种，原产地为印度。它似董而小，呈黄色。其性辛温无毒． .... 文书中的婆诃口，我们疑为婆娑石之别称。婆娑石主要生于南海，色绿且无斑点， 其性甘淡寒无毒，主要功用可治瘴疫、头痛、烦闷、解一切药毒。&lt;br /&gt; &lt;br /&gt; 3.  허왕후의 남편 김수로왕이 시조인 김해 김씨  족보에도 허왕후가 남천축국(南天竺國 )출신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lt;br /&gt; 즉, 당시 남부 인도의 촐라 왕국(Cholla Kingdom)등 타밀지역출신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lt;br /&gt; &lt;br /&gt; 아울러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편찬된 &amp;lt;경상도지리지&amp;gt;(1524)에서도  허왕후 출신지를 남천축국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 다음의 비교표는   &amp;#39;돌&amp;#39;이 들어간 우리말 단어들 거의 전부가  놀랍게도 고대 타밀어와 똑같은 발음과 뜻을 보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lt;br /&gt; English 	korean  =	old Tamil 	modern Tamil &lt;br /&gt; stone for protection , or &lt;br /&gt; gift stone for good luck , given by father or mother, a priest	파사 돌	pasadol &lt;br /&gt; &lt;br /&gt; &lt;br /&gt; pasam = affection ,&lt;br /&gt;  dol= stone&lt;br /&gt;  &lt;br /&gt;  &lt;br /&gt;  	pasakkal &lt;br /&gt; &lt;br /&gt; pasam = affection ,&lt;br /&gt;  &lt;br /&gt; &lt;br /&gt; kal =stone&lt;br /&gt; dolmen = stone tomb :&lt;br /&gt; &lt;br /&gt; megalithic tomb: a prehistoric structure thought to have been used as a tomb that consists of a large horizontal slab of stone supported by two or more vertical slabs	고인돌	koindol	kattparai&lt;br /&gt; millstone :&lt;br /&gt; &lt;br /&gt; grain-grinding stone: either of two large circular stones used to grind grain in a mill	맷돌	maeddol	thirigaikkal&lt;br /&gt; whetstone, grindstone :&lt;br /&gt; &lt;br /&gt; stone for sharpening tool or weapon: a stone used to sharpen the cutting edge or blade of a tool or weapon by rubbing	숫돌	suttol	silavattam, ammi&lt;br /&gt; brick :&lt;br /&gt; &lt;br /&gt; &lt;br /&gt;  hard block used for construction: a rectangular block of clay or a similar material that is baked until it is hard and is used for building houses, walls, and other large permanent structures	벽돌	pyoktol	chengkal, pakkal&lt;br /&gt; gravel, pebble :&lt;br /&gt; &lt;br /&gt; small stones: small stones used for paths or for making concrete&lt;br /&gt; 	조약돌	choyaktol	kullangkal&lt;br /&gt; quartz : &lt;br /&gt; &lt;br /&gt; crystalline mineral: a common, hard, usually colorless, transparent crystalline mineral with colored varieties. Use: electronics, gems.&lt;br /&gt; &lt;br /&gt; 	차돌	chadol	venkal&lt;br /&gt; Cornerstone =&lt;br /&gt; quoin&lt;br /&gt; 	주춧돌	Chuchuddol	mulaikkal,&lt;br /&gt; kodikkal,&lt;br /&gt; semakkal&lt;br /&gt; 1&lt;br /&gt; a head like a stone,  stupid &amp; stubborn&lt;br /&gt; 	돌 머리	dolmori&lt;br /&gt; =dolthalai&lt;br /&gt;  &lt;br /&gt; *&amp;#39;머리&amp;#39;&lt;br /&gt; (head)의 &lt;br /&gt;  &lt;br /&gt; 고대 타밀어는 &amp;#39;mori&amp;#39;와 &amp;#39;thalai&amp;#39;등 2가지인데, 현재 &amp;#39;mori&amp;#39;는 사라지고 &amp;#39;thalai&amp;#39;만 사용됨 	kalthalai&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같은 저의 연구조사에 대해    경희대학교  용인캠퍼스에서 POST-DOC과정을 밟으면서 조교수로 일하고  있는  인도 타밀나주출신의 Dr.ANAND PRABU이 답변을  해왔습니다. 그는  비록 공학박사이지만 타밀어와 타밀역사에대해서  상당히 잘  알고 있습니다.Dr.ANAND의 답장내용에서 보다시피 &amp;#39;파사돌&amp;#39;과 &amp;#39;돌&amp;#39;은 우리말과 고대 타밀어가 똑같다고 밝히고 있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Anbulla Thiru Kim Avargale,&lt;br /&gt; I heard from SNU Professor that you are in Canada now...I suggest you to get some DNA samples from Srilankan Tamils living there and also talk to them more to know about the link between ancient tamils and Koreans...In my opinion, they speak much pure form of Tamil than Tamils from Indian mainland do....&lt;br /&gt; In the list of words,  I can say something about few words.&lt;br /&gt;  &lt;br /&gt; 1. Pasadol = Pasakal (pasi also refers to green algae that sometimes forms on the stone when exposed to water continously....&lt;br /&gt; 2. Koindol = Koburam&lt;br /&gt; 3. Suttol = Sutti.&lt;br /&gt; 4. dol = kal (stone), But Dolmori dont have similar meaning in tamil, i think. Usually, those persons are called as Mutal, Madayan (stupid person).&lt;br /&gt; 4. In Tamil, a person doing a particular profession can have the name ending with &amp;#39;ari&amp;#39; similar to &amp;#39;mori&amp;#39;. &lt;br /&gt; For example, (a) thalay-ari (village administrative head)&lt;br /&gt; (b) aach-ari (wood working person, person making wooden doors, windows etc).&lt;br /&gt;  &lt;br /&gt; recently, I saw the Tamil Movie &amp;quot;Muthu&amp;quot; from a Korean website with korean subtitles. I wish you can watch that and catch some similar words....&lt;br /&gt; Hope this help u in someway..&lt;br /&gt; endrum anbudan&lt;br /&gt; Anand&lt;br /&gt; ..................................................................................................................................................  &lt;br /&gt; Dr.ANAND 은 지난 몇달전 서울의대  서정선교수의 DNA 유전자 조사에도 기꺼이 응하는 등 적극적으로 고대 한국과 타밀간의 교류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차 있습니다. 서정선교수는  이미  가야왕릉에서 나온 유골에 대해  DNA 유전자 결과, 인도인의 염기서열과 거의 유사하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조만간 타밀인 Dr.ANAND 의 유전자 분석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lt;br /&gt;  &lt;br /&gt; Dr.ANAND 의 연락처 전화와 이메일은 아래와 같으며 서울에서 가까운   경희대학교의 경기도 용인분교에서 일하고 있으니  쉽게 많은 좋은 정보를 얻을 것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Dr.ANAND PRABU의 주소와 연락처 &lt;br /&gt; Associate Research Professor (KRF Fellow) Postdoc,&lt;br /&gt; Kyung Hee University, &lt;br /&gt; # 276, Polym. &amp; Fiber Chem. Lab,&lt;br /&gt; Dept. Adv. Polym. &amp; Fiber Materials College of Environ. &amp; Appl. Chemistry,&lt;br /&gt; Yongin, Gyeonggi-do, 446-701, SOUTH KOREA&lt;br /&gt; Tel: +(001)-82-(0)31-201- 2879, 2519, 5374.&lt;br /&gt; Mobile: +(001)-82-(0)10-2529-1974&lt;br /&gt; E-mail : aprabu21@yahoo.com&lt;br /&gt; Alternate email: anandprabu@khu.ac.kr&lt;br /&gt; ......................................................................................&lt;br /&gt;  &lt;br /&gt; 아울러 경상남도 거제도에 있는 한국해양연구소의 초빙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lt;br /&gt; Dr.Narayanan Kannan도 인도 남부 타밀출신이며 타밀역사연구회 이사장을 맡고 있어 타밀에대해 상당한 식견을 갖고 있는 분이라 이 분과도 연락하시면 더욱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Dr.Narayanan Kannan의 연락처.&lt;br /&gt; South Sea Institute&lt;br /&gt; Korea Ocean Research and Development Institute (KORDI)&lt;br /&gt; 391 Jungbuk-ri, Jangmok-myon&lt;br /&gt; Geoje 656830&lt;br /&gt; Republic of Korea (South)&lt;br /&gt; Tel. +82 55 639 8675 (office)&lt;br /&gt; +82 55 639 8822 (residence)&lt;br /&gt; +82 55 639 8689 (fax)&lt;br /&gt;  &lt;br /&gt;  &lt;br /&gt;     토론토에서   한국타밀연구회 회장 김정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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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31 May 2009 18:50:3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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