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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테도리우스의 작은 별]]></title>
<description><![CDATA[공평한 세상을 위하여 ..... 그리고 나눌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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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테도리우스의 작은 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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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조·일전쟁 전역사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참혹한 복수전, 제2차 진주성 전투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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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embed src=&quot;http://kr.img.blog.yahoo.com/ybi/1/comm/yammy_player.swf?p=2&amp;vid=MAPy0KshFW_Jcra8GOvwFPhnTa85wMqaLQ--&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2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br&gt;&lt;p&gt;&lt;font style=&quot;FONT-SIZE:9pt;FONT-FAMILY:Verdana;&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Verdana;&quot; color=&quot;#0734e4&quot;&gt;&lt;strong&gt;&amp;nbsp; 일본의 명작 대하드라마 중 하나인 &amp;quot;도쿠가와 이에야스( &lt;font color=&quot;#c9180a&quot;&gt;德川家康&lt;/font&gt; )&amp;quot;의 나가시노 시다라가하라 전투 부분으로 당시 일본군의 복장 및 전투 방식에 대해 이해하기 좋은 영상 자료다.&lt;br&gt;&amp;nbsp; 우리 방송사들도 좀 본받으면 안되려나?&lt;br&gt;&lt;img height=&quot;472&quot; alt=&quot;&amp;#x00ae40;&amp;#x00c131;&amp;#x00d6c8; &amp;#x00c791;&amp;#x00ac00;&amp;#x00c758; &amp;#x00cf58;&amp;#x00d2f0;&quot; hspace=&quot;0&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2?1263220869.jpg&quot; width=&quot;840&quot; vspace=&quot;3&quot; border=&quot;6&quot;&gt;&lt;br&gt;&amp;nbsp; 영화 &amp;quot;태극기 휘날리며&amp;quot;, &amp;quot;태풍&amp;quot;, &amp;quot;기담&amp;quot; 등의 스토리 보드 작가로 유명한 김성훈씨의 작품( &lt;font color=&quot;#1e681a&quot;&gt;작가 블로그는 여기를&lt;/font&gt; &lt;/strong&gt;&lt;a href=&quot;http://blog.naver.com/tecrasone&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lt;strong&gt;클릭!&lt;/strong&gt;&lt;/font&gt;&lt;/a&gt;&lt;strong&gt; )&lt;br&gt;&amp;nbsp; 진주성과 고구려 성곽을 짬뽕시켜놓은 것은 좀 유감이지만 나름 당시 전황을 잘 묘사했다.&lt;br&gt;&amp;nbsp; 공성하는 일본군이 전부 고바야카와 다카가게군이라는 고증상 오류지만 아마 불멸의 이순신을 강하게 참고한 듯. 하긴 와키자카 야스하루군 일색으로 나오면 개그 수준이겠지만....&lt;br&gt;&lt;img height=&quot;1334&quot; alt=&quot;&amp;#x00c13c;&amp;#x00ace0;&amp;#x00cfe0;&amp;#x00c9c0;&amp;#x00b2e4;&amp;#x00c774;&quot; hspace=&quot;0&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0?1263220869.jpg&quot; width=&quot;840&quot; vspace=&quot;3&quot; border=&quot;6&quot;&gt;&lt;br&gt;&amp;nbsp; 제1, 2차 진주성 전투는 공성전의 귀신 일본군을 상대로 적잖은 피해를 입힌 몇 안되는 수성전이다.&lt;br&gt;&amp;nbsp; 잘 아시다시피 일본의 성은 조선의 읍성보다 견고한 요새였고 이런 성을 공격, 함락시키는 공방전을 숱하게 치러온 일본군에게 있어 담장 수준에 불과한 조선의 읍성은 손쉬운 먹잇감이었기 때문이다.&lt;br&gt;&lt;/strong&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Verdana;&quot; color=&quot;#0734e4&quot;&gt;&lt;strong&gt;&lt;table height=&quot;25&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707&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0&quot;&gt;&lt;tbody&gt;&lt;tr&gt;&lt;td width=&quot;705&quot; height=&quot;25&quot;&gt;&lt;p&gt;&lt;img height=&quot;1470&quot; alt=&quot;&amp;#x00d0b7;&amp;#x00ce74;&amp;#x00c640; &amp;#x00d788;&amp;#x00b85c;&amp;#x00c774;&amp;#x00c5d0;&amp;#x00ad70;&amp;#x00c758; &amp;#x00c544;&amp;#x00c2dc;&amp;#x00ac00;&amp;#x00b8e8;&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1?1263220869.jpg&quot; width=&quot;682&quot; vspace=&quot;3&quot; border=&quot;6&quot;&gt;&lt;br&gt;&amp;nbsp;&amp;nbsp; &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 color=&quot;#0734e4&quot;&gt;&lt;strong&gt;어지간해선 일본 서적이나 만화에는 잘 언급되어 있지만 국내에서는 잘 언급이 안되어 있기에 하는 수 없이 필자가 직접 그린 제2차 진주성 전투 당시 킷카와 히로이에군( &lt;font color=&quot;#c9180a&quot;&gt;모리 일족이기는 하지만 킷카와군은 본가와 달리 흰색 바탕에 검은색 문양을 사용&lt;/font&gt; )의 야리 아시가루.&lt;br&gt;&amp;nbsp;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조·일전쟁에 참전한 일본군의 주무장은 야리( &lt;font color=&quot;#c9180a&quot;&gt;槍&lt;/font&gt; )로 1개 아시가루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들은 그림과 같이 길이 3m 내외의 스야리를 주력으로 운용했다.&lt;/strong&gt;&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 &lt;a href=&quot;http://kr.blog.yahoo.com/pershing11111&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퍼싱의 전쟁영화 이야기&lt;/font&gt;&lt;/a&gt;&lt;/strong&gt;&lt;font color=&quot;#121212&quot;&gt;에서 집중적으로 연재 중인 조·일전쟁 전역사에 대한 방문자 및 구독자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이번에는 우리 역사 교과서에서 가급적이면 언급을 자제하는 제2차 진주성 전투를 다루고자 한다.&lt;br&gt;&amp;nbsp; &lt;strong&gt;&lt;font color=&quot;#1e681a&quot;&gt;《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분노, 제2차 진주성 전투 발발 》&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1592년의 말엽은 일본군에게 있어 그야말로 치욕의 한 해였다.&lt;br&gt;&amp;nbsp; 앞선 벽제관 참패 포스트에서 알 수 있듯 평양성을 조·밍 연합군에게 빼앗긴 후 벽제관에서 리루송의 요동 기병을 궤멸시키는 전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곧 이은 행주산성 공략에서 총사령관 우키다 히데이에( &lt;strong&gt;&lt;font color=&quot;#1e681a&quot;&gt;宇喜多秀家&lt;/font&gt;&lt;/strong&gt; )는 물론 이시다 미쓰나리( &lt;strong&gt;&lt;font color=&quot;#1e681a&quot;&gt;石田三成&lt;/font&gt;&lt;/strong&gt; ), 고니시 유키나가( &lt;strong&gt;&lt;font color=&quot;#1e681a&quot;&gt;小西行長&lt;/font&gt;&lt;/strong&gt; ), 고바야카와 다카가게, 모리 데루모토,&amp;nbsp;킷카와 히로이에, 오타니 요시쓰구, 구로다 나가마사군이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을 함락시키는데 실패한 것!&lt;br&gt;&amp;nbsp; 특히 총사령관 구로다 나가마사는 물론 히데요시의 측근인 이시다 미쓰나리까지 부상을 당한 것은 일본군에게 적잖은 타격을 주었다.&lt;br&gt;&amp;nbsp; 그러나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lt;br&gt;&amp;nbsp; 간신히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우키다 히데이에가 한양에 집결한 각 다이묘들의 가신들을 점호해보니 최초 상륙한 159,700명 중 겨우 58,000명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lt;br&gt;&amp;nbsp; 물론 이 수치는 함경도에 주둔하고 있던 가토 기요마사 제2군 22,800명 및 부산과 경상도, 충청도에 주둔한 다이묘들의 수치를 제외한 것이지만 그래도 상당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lt;br&gt;&amp;nbsp; 가장 혹심한 손실을 입은 고니시 유키나가 제1군만 봐도 18,700명 중 불과 6,629명만 남아 손실율이 64.5%에 달했으니 말이다.&lt;br&gt;&amp;nbsp; 우키다 히데이에 본인의 제8군 역시 10,000명 중 5,352명만 남아 손실율 46.5%로 2위를 차지했으니...&lt;br&gt;&amp;nbsp; 그야말로 1592년의 연말은 일본군에게 결코 좋은 시기&lt;img height=&quot;338&quot; alt=&quot;&amp;#x00c9c4;&amp;#x00c8fc;&amp;#x00c131; &amp;#x00b3d9;&amp;#x00bb38;&amp;#x00c778; &amp;#x00cd09;&amp;#x00c11d;&amp;#x00bb38;&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3?1263220869.jpg&quot; width=&quot;450&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가 아니었다.&lt;br&gt;&amp;nbsp; 해를 넘긴 1593년 3월 20일, 한양에 주둔한 일본군은 약 53,000명이었고 조선에 출병한 201,470명 중 손실한 병력이 총 75,613명에 달했다.&lt;br&gt;&amp;nbsp; 센고쿠지다이를 통해 단련된 정예병들이었기에(&amp;nbsp;&lt;strong&gt;&lt;font color=&quot;#1e681a&quot;&gt;조선군 손실은 이 수치의 2.5배 이상으로 최소 15만명 이상의 전사자를 기록했는데 상당수가&amp;nbsp;문신 출신들이 주류를 이룬 지휘관들의 무분별한 작전으로 인해&amp;nbsp;축차투입된 병력이 대부분이었다&lt;/font&gt;&lt;/strong&gt;&amp;nbsp;)&amp;nbsp;이 정도 손실로 그쳤지만 분명 적잖은 피해였다.&lt;br&gt;&amp;nbsp; 이 때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더 이상 한양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전세의 상황으로 볼 때 결코 좋지 않은 것임을 민감하게 간파하고( &lt;strong&gt;&lt;font color=&quot;#1e681a&quot;&gt;부상당한 몰골로 나타난 이시다 미쓰나리를 본 충격도 컸겠지만&lt;/font&gt;&lt;/strong&gt; ) 1593년 2월 27일, &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amp;quot;언제든지 한양을 포기한 후 남쪽 해안가로 철수해 성을 쌓고 주변 지역의 경계를 공고하게 하라. 단, 진주성은 반드시 함락시켜야 한다&amp;quot;&lt;/font&gt;&lt;/strong&gt;는 명령서를 조선으로 발송했다.&lt;br&gt;&amp;nbsp; 이러한 히데요시의 명령서를 수령한 각 다이묘들은 철수 준비를 하는 한편으로 진주성 공성 준비를 계획했다.&lt;br&gt;&lt;img height=&quot;630&quot; alt=&quot;&amp;#x00c9c4;&amp;#x00c8fc;&amp;#x00c131; &amp;#x00bd81;&amp;#x00bb38;&quot; hspace=&quot;0&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4?1263220869.jpg&quot; width=&quot;840&quot; vspace=&quot;4&quot; border=&quot;6&quot;&gt;&lt;br&gt;&lt;table height=&quot;25&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452&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0&quot;&gt;&lt;tbody&gt;&lt;tr&gt;&lt;td width=&quot;450&quot; height=&quot;25&quot;&gt;&lt;p&gt;&lt;img height=&quot;454&quot; alt=&quot;&amp;#x00c6b0;&amp;#x00d0a4;&amp;#x00b2e4; &amp;#x00d788;&amp;#x00b370;&amp;#x00c774;&amp;#x00c5d0;&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5?1263220869.jpg&quot; width=&quot;427&quot; border=&quot;6&quot;&gt;&lt;br&gt;&amp;nbsp;&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 color=&quot;#1e681a&quot;&gt;&lt;strong&gt; 조·일전쟁 당시 전 일본군의 총사령관인 우키다 히데이에&lt;br&gt;&amp;nbsp;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로 5명의 부교 중 한명이다.&lt;br&gt;&amp;nbsp; 훗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가담했다가 패전한 후 영지를 몰수당한 후 90세로 사망.&lt;/strong&gt;&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 &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오늘날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던 진주성 북문인 공북문. 현재의 성문은 2002년에 복원된 것이다.&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마침내 1593년 4월 19일, 한양 주둔 일본군 53,000명이 성문을 열고 퇴각하기 시작했다.&lt;br&gt;&amp;nbsp; 벽제관에서 리루송의 요동 기병들이 궤멸당한 덕분에 겁을 단단히 집어먹은 밍( &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明 &lt;/font&gt;&lt;/strong&gt;)군의 제지로 인해 조선군은 추격조차 할 수 없었고 일본군은 제대로 실력발휘한 덕분에 유유자적 남쪽으로 철수하는데 성공했다.&lt;br&gt;&amp;nbsp; 1593년 5월 중순에 이르면 사실상 일본군이 경상남도 일대로 철수를 완료해 개전 초의 상황으로 되돌아 갔다.&lt;br&gt;&amp;nbsp; 하지만 이것은 더 큰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것에 불과했다.&lt;br&gt;&amp;nbsp; 앞서 언급한대로 히데요시는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어 차후 전라도 진격을 위해서라도 진주성을 반드시 함락시켜야할 필요성을 통감했기 때문이다.&lt;br&gt;&amp;nbsp; 또한 호소카와 다다오키( &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細川中興&lt;/font&gt;&lt;/strong&gt; )를 비롯한 제1차 진주성 전투 참전 다이묘들의 손실을 설욕할 목적도 컸다.&lt;br&gt;&amp;nbsp; 문제는 제1차 진주성 전투 당시 담장에 불과한 읍성이라도 화포 등 중화기를 충분히 갖추고 농성하면 일본성과 큰 차이가 없다는 한계점을 간파한 히데요시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예 블록버스터급으로 스케일을 키워 공성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는 점.&lt;br&gt;&amp;nbsp; 지금까지의 전투는 한결같이 비밀리에 준비를 진행시켜 작전 개시일에 터뜨리는 방식이었지만 만약 이렇게 공개적으로 진행한다면 조·밍 연합군이 사전에 대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lt;br&gt;&amp;nbsp;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도박과도 같은 격이었다.&lt;br&gt;&amp;nbsp;&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 &amp;quot;하지만 가네가사키에서도 그러했고 빗추 다카마쓰성에서도 도박은 성공했다. 이번에도 분명 성공할 것이다. 그래! 반드시 먹힐 것이다. 미쓰나리!&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lt;strong&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amp;quot;예, 다이코 전하!&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lt;img height=&quot;279&quot; alt=&quot;&amp;#x00c774;&amp;#x00c2dc;&amp;#x00b2e4; &amp;#x00bbf8;&amp;#x00c4f0;&amp;#x00b098;&amp;#x00b9ac;&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6?1263220869.jpg&quot; width=&quot;281&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lt;img height=&quot;244&quot; alt=&quot;&amp;#x00b3c4;&amp;#x00c694;&amp;#x00d1a0;&amp;#x00bbf8; &amp;#x00d788;&amp;#x00b370;&amp;#x00c694;&amp;#x00c2dc;&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7?1263220869.jpg&quot; width=&quot;248&quot; align=&quot;right&quot; border=&quot;6&quot;&gt;&amp;nbsp;&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 &amp;quot;지금 즉시 조선의 각 다이묘들에게 명령서를 보내라. 진주성 공격 준비에 전 병력을 동원하고 아예 대대적으로 소문을 퍼뜨리도록 하라. 팻말을 곳곳에 박고 조선 백성들에게도 소문을 내도록 해. 서둘러!&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lt;strong&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 &amp;quot;예!&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기노시타 도키치로라 불리웠던 시절부터 숱한 위기를 도박을 감행해 성공했다.&lt;br&gt;&amp;nbsp; 아자이 나가마사의 배반으로 일대 위기에 몰렸던 주군 오다 노부나가를 안전하게 퇴각시키기 위해 아케치 미쓰히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더불어 후방을 사수했던 가네가사키 퇴각전을 시작으로 센고쿠지다이 3대 야마조( &lt;strong&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山城&lt;/font&gt;&lt;/strong&gt; )로 꼽히는 오타니성( &lt;strong&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小谷城 &lt;/font&gt;&lt;/strong&gt;)을 단신으로 함락시켜 성주가 됨은 물론 빗추 다카마쓰성 공략에서도 과감한 협상을 통해 전광석화와 같은 퇴각전을 감&lt;img height=&quot;375&quot; alt=&quot;&amp;#x00c81c;1&amp;#x00cc28; &amp;#x00c9c4;&amp;#x00c8fc;&amp;#x00c131; &amp;#x00c804;&amp;#x00d22c;&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8?1263220869.jpg&quot; width=&quot;500&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행, 야마자키 전투에서 배반자 아케치 미쓰히데군을 궤멸시킨 후 오다 가문의 실력자가 되어 이듬해 원로 시바타 가쓰이에군을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격파하는 등 그의 일생은 도박과 성공의 연속이었다.&lt;br&gt;&amp;nbsp; 이번 진주성 공략도 그에게는 적잖은 도박이었지만 분명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다.&lt;br&gt;&amp;nbsp; 그리고 조·밍 연합군은 히데요시의 의도대로 움직여주고 말았다.&lt;br&gt;&amp;nbsp; 1593년 5월 15일과 20일, 이시다 미쓰나리가 종합해 발송한 명령서를 보면 공성에 동원될 총 병력은 무려 121,600명으로 당시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125,857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lt;br&gt;&amp;nbsp; 더군다나 각 다이묘들의 가신들에 의해 퍼져나간 소문은 조선 백성들의 입을 타고 전달되어 조·밍 연합군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말았다.&lt;br&gt;&amp;nbsp;&lt;/font&gt;&lt;font color=&quot;#1e681a&quot;&gt;&lt;strong&gt; &amp;quot;그러한 대군이 쳐들어온다면 절대 막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진주성을 비우고 퇴각해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amp;quot;&lt;br&gt;&amp;nbsp; &lt;/strong&gt;&lt;/font&gt;&lt;font color=&quot;#121212&quot;&gt;이게 당시 조·밍 연합군의 분위기였고 용맹을 자랑하던 홍의장군 곽재우조차 겁을 집어먹고 일찌감치 발을 빼버렸다.&lt;br&gt;&amp;nbsp; 히데요시는 자신의 첫번째 도박이 성공했다는 &lt;table height=&quot;25&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464&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0&quot;&gt;&lt;tbody&gt;&lt;tr&gt;&lt;td width=&quot;462&quot; height=&quot;25&quot;&gt;&lt;p&gt;&lt;img height=&quot;457&quot; alt=&quot;&amp;#x00d638;&amp;#x00c18c;&amp;#x00ce74;&amp;#x00c640; &amp;#x00b2e4;&amp;#x00b2e4;&amp;#x00c624;&amp;#x00d0a4;&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9?1263220869.jpg&quot; width=&quot;439&quot; border=&quot;6&quot;&gt;&lt;br&gt;&amp;nbsp; &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 color=&quot;#0734e4&quot;&gt;&lt;strong&gt;제1차 진주성 전투 당시 총대장이었던 호소카와 다다오키&lt;br&gt;&amp;nbsp; 하지만 김시민을 중심으로 한 수성군의 결사항전과 의병들의 협공으로 인해 1만명의 사상자만 낸 채 공성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lt;/strong&gt;&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보고를 전해듣고 자신감을 회복했고 곧 차후 명령을 통해 상식적인 수준은 넘어서지만 최소한 부산 일대의 본영을 방어할 병력은 확보해 주요 요충지의 성채에 배치, 조·밍 연합군의 응원 출동 시 요격하도록 지시했다.&lt;br&gt;&amp;nbsp; 이러한 일본군의 공성 준비에 대한 밍군의 반격이라고는 기껏 부총병 유정이 가토 기요마사에게 서찰을 보내 &lt;strong&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amp;quot;만일 진주성을 공격한다면 100만 대군을 투입해 일본군을 전멸시키겠다&amp;quot;&lt;/font&gt;&lt;/strong&gt;는 유치한 협박에 불과했다.&lt;br&gt;&amp;nbsp; 당시 밍군의 총 병력이 80만명도 채 안되는데다 벽제관 전투를 통해 그 실체가 들통나버렸던 터라 가토 기요마사의 가신들은 오히려 크게 비웃어주기만 할 뿐이었다.&lt;br&gt;&amp;nbsp; 밍군 경략 송응창은 그나마 온건파였던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서찰을 보내 공성 중지를 요청했지만 &lt;strong&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amp;quot;임진년에 너무 많은 아군이 전사해 다이코 전하의 심기가 불편하시다. 저항하지 말고 성을 비워두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amp;quot;&lt;/font&gt;&lt;/strong&gt;는 답장을 받았을 뿐이다.&lt;br&gt;&amp;nbsp; 이렇게 밍군이 서찰로 협박할 동안 6월 초, 일본군은 마침내 진주성 공성 준비를 완료하고 진격을 시작했다.&lt;br&gt;&amp;nbsp; 병력 규모는 당시 상식을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였다.&lt;br&gt;&amp;nbsp; 주 공격군만 무려 92,983명! 수군 8,250명을 합치면 101,233명으로 개전 이래 국지전 동원 병력 중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lt;br&gt;&amp;nbsp; 일본에서도 규슈와 오다와라 정벌을 제외하면 이와 같은 대군이 동원된 예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lt;br&gt;&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amp;nbsp; 제1대 가토 기요마사/25,624명&lt;br&gt;&amp;nbsp; 제2대 고니시 유키나가/26,182명&lt;br&gt;&amp;nbsp; 제3대 우키다 히데이에/18,833명&lt;br&gt;&amp;nbsp; 제4대 모리 히데모토/13,600명&lt;br&gt;&amp;nbsp; 제5대 고바야카와 다카가게/8,744명&lt;br&gt;&lt;img height=&quot;619&quot; alt=&quot;&amp;#x00c9c4;&amp;#x00c8fc;&amp;#x00c131;&quot; hspace=&quot;0&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11?1263220869.jpg&quot; width=&quot;840&quot; vspace=&quot;3&quot; border=&quot;6&quot;&gt;&lt;br&gt;&lt;img height=&quot;338&quot; alt=&quot;&amp;#x00c9c4;&amp;#x00c8fc;&amp;#x00c131; &amp;#x00b3d9;&amp;#x00bcbd;&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10?1263220869.jpg&quot; width=&quot;450&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amp;nbsp; 진주성은 전형적인 평산성으로 성내에 아무런 방어시설이 없는 담장 형태에 불과한 수준이었다.&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각 다이묘들은 작전 회의를 통해 제1대가 진주성 북문을, 제2대가 서문, 제3대가 동문을 공략하고 모리 히데모토와 고바야카와 다카가게군은 예비대로서 우선 진주성 외곽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조·밍 연합군의 반격을 대비하기로 결정했다.&lt;br&gt;&amp;nbsp; 당시 모리 데루모토의 후계자인 히데모토가 너무 젊어 다이묘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기에 후견인인 고바야카와 다카가게가 사실상 제4대의 지휘도 도맡게 되었다.&lt;br&gt;&amp;nbsp; 고바야카와 다카가게는 킷카와 히로이에로 하여금 남강 일대를 경계하게 하는 한편 주변 고지군을 따라 병력을 조밀하게 배치시켜 조·밍 연합군이 어디에서도 포위망을 뚫을 수 없도록 조치했다.&lt;br&gt;&amp;nbsp; 이렇듯 10만명이 넘는 병력이 순식간에 진주성 공성을 위해 빠져나가자 부산 일대의 경비는 비상이 걸렸다.&lt;br&gt;&amp;nbsp; 당시 부산의 경비는 1592년 9월에 병사한 하시바 히데카쓰군 12,000명에게 일임되었는데 이 정도로는 구포왜성, 기장왜성, 부산왜성, 죽성리 왜성 등을 경계할 수 있&lt;img height=&quot;323&quot; alt=&quot;&amp;#x00c81c;1&amp;#x00cc28; &amp;#x00c9c4;&amp;#x00c8fc;&amp;#x00c131; &amp;#x00c804;&amp;#x00d22c;&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12?1263220869.jpg&quot; width=&quot;400&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을지는 몰라도 광대한 해역까지 방어하기에는 벅찬 수준이었다.&lt;br&gt;&amp;nbsp; 육로 상의 요충지인 상주 일대에는 미야베 나가히로군 6,000명이 경비를 맡았는데 아무리 정예화된 병력이라도 2만명 이상의 조·밍 연합군이 공격한다면 쉽게 방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lt;br&gt;&amp;nbsp; 사실상 부산 일대의 방어선이 구멍이 뚫려버렸지만 겁을 집어먹으신 조·밍 연합군은 인간꼬치, 이동표적이&amp;nbsp;되기 두려운 나머지 부산 본영 공격을 포기한 채 사태를 관망해버리고 말았다.&lt;br&gt;&amp;nbsp; &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 진주성 수비군, 옥쇄를 각오하다! 》&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일본군의 일사분란한 진주성 공성 준비 속에 진주성으로 집결한 의병과 관군은 옥쇄를 각오하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다.&lt;br&gt;&amp;nbsp; 진주성에는 목사 서예원( &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徐禮元&lt;/font&gt;&lt;/strong&gt; )을 비롯, 판관 성수경과 경상우병사 최경희, 충청병사 황진, 김해부사 이종인, 사천현감 장윤, 거제현령 김준민이 휘하 병사들을 이끌고 입성해 있었고 여기에 의병장 김천일과 고종후의 전라도 의병들이 합류했다.&lt;br&gt;&amp;nbsp; 하지만 이 정도로는 10만명 이상의 일본군에 맞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lt;br&gt;&amp;nbsp; 김천일 군 500명, 최경희 군&amp;nbsp;600명, 황진 군 700명, 장윤 군 300명, 고종후 군 400명 총 2,500명의 관군 및 의병에 기타 &lt;table height=&quot;25&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625&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0&quot;&gt;&lt;tbody&gt;&lt;tr&gt;&lt;td width=&quot;623&quot; height=&quot;25&quot;&gt;&lt;p&gt;&lt;img height=&quot;921&quot; alt=&quot;&amp;#x00ac00;&amp;#x00d1a0; &amp;#x00ae30;&amp;#x00c694;&amp;#x00b9c8;&amp;#x00c0ac;&amp;#x00ad70; &amp;#x00b383;&amp;#x00d3ec; &amp;#x00c544;&amp;#x00c2dc;&amp;#x00ac00;&amp;#x00b8e8;&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13?1263220869.jpg&quot; width=&quot;600&quot; vspace=&quot;2&quot; border=&quot;6&quot;&gt;&lt;br&gt;&amp;nbsp;&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 color=&quot;#0734e4&quot;&gt;&lt;strong&gt; 가토 기요마사군의 나가쓰쓰 아시가루를 그려본 것으로 일본군은 공성 전 진주성의 성벽과 여장을 파괴하기 위해 다수의 나가쓰쓰와 오쓰쓰를 동원했다.&lt;/strong&gt;&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소부대를 합쳐도 총 병력은 6,000명 내외에 불과했고 성내의 장정들을 다 합쳐야 1만명을 넘길까한 수준이었다.&lt;br&gt;&amp;nbsp; 보통 공성 시 수성군과 공성군의 비율이 1 : 3은 넘어야 함락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1: 10이 넘는 비율에서는 기본적으로 함락은 따먹고 들어간 셈이었다.&lt;br&gt;&amp;nbsp; 엎친데 덮친격으로 조선군의 주요 장수들은 성을 비우고 퇴각하라는 권고만이 들어오고 있는데다 진주성 그 자체도 일반 조선읍성과 큰 차이가 없는 담장에 불과해 10만 대군을 막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lt;br&gt;&amp;nbsp; 오사카성이나 에도성, 후시미성 정도라면 어느 정도 희망은 있겠지만 남쪽과 서쪽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평성에 불과한 진주성은 근본적으로 요새라 하기에는 2% 부족했다.&lt;br&gt;&amp;nbsp; &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 진주성 전투 개시, 일본군의 맹공 》&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1593년 6월 15일, 마침내 가토 기요마사군을 선두로 한 일본 제1대가 김해성을 출발했다.&lt;br&gt;&amp;nbsp; 제1대만 하더라도 제1차 진주성 전투 당시 동원된 일본군 병력에 준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사기는 충천했고 함안성에 주둔하고 있던 권율군을 가뿐하게 밀어내고 성을 함락시켰다.&lt;br&gt;&lt;strong&gt;&amp;nbsp; &lt;font color=&quot;#c9180a&quot;&gt;&amp;quot;이것이 의령성인가?&amp;nbsp;우리의 지성(&lt;/font&gt;&lt;/strong&gt; &lt;font color=&quot;#0734e4&quot;&gt;&lt;strong&gt;支城&lt;/strong&gt;&lt;/font&gt; &lt;strong&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만도 못한 수준이군. 이런 곳을 함락시키지 못했다니. 크윽!&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6월 18일에는 고바야카와 다카가게군을 애먹였던 정암진 나루도 장악하는데 성공, 가토 기요마사군의 뒤를 이은 고바야카와 다카가게군이 한맺힌 의령읍내로 진입했다.&lt;br&gt;&amp;nbsp; 조·밍 연합군이 뒤로 물러서서 그저 멍하니 먼산만 바라보고 있던 시각 마침내 6월 19일 가토 기요마사의 선봉대는 진주에 진입했다.&lt;br&gt;&amp;nbsp; 다음 날 기마대가 마현봉에 올라 진주성을 정찰하고 돌아왔다.&lt;br&gt;&amp;nbsp;&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 color=&quot;#0734e4&quot;&gt; &amp;quot;보고드립니다. 성 주변에 적의 움직임이 없고 오직 혼마루( &lt;font color=&quot;#c9180a&quot;&gt;本丸, 진주성&lt;/font&gt; )에만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보아 원군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lt;img height=&quot;441&quot; alt=&quot;&amp;#x00c9c4;&amp;#x00c8fc;&amp;#x00c131; &amp;#x00acf5;&amp;#x00c131;&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14?1263220869.jpg&quot; width=&quot;461&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다.&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lt;strong&gt;&lt;font color=&quot;#1e681a&quot;&gt;&amp;quot;수고했다. 다이코 전하의 작전은 정말 날카롭고 예리하구나. 후대가 도착하는대로 자리를 비워줘야 하니 서둘러 성을 포위한다!&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일본성은 전통적으로 산노마루, 니노마루, 혼마루 등 각 구루와(&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 曲輪 , 구획&lt;/font&gt;&lt;/strong&gt; )로 나뉘어 이를 하나하나 함락시켜야 하는 구조였던데 반해 진주성은 오직 혼마루 하나만이 존재했다.&lt;br&gt;&amp;nbsp; 이는 어느 한 구간만 뚫려도 바로 함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구조였지만 조선군은 그 때까지도 진주성에 니노마루와 혼마루를 구축하지 않은 상태였다.&lt;br&gt;&amp;nbsp; 진주성 주변에 원군이 없는 것을 확인한 가토 기요마사는 곧 가신들을 불러 북문을 공략할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lt;br&gt;&amp;nbsp; 6월 21일, 마침내 일본군의 전 부대가 도착해 진주성을 서, 북, 동에서 3겹으로 에워싸기 시작했다.&lt;br&gt;&amp;nbsp; 고바야카와 다카가게는 제4, 5대 병력을 주요 고지대에 전개시켜 경계하도록 하는 한편 남강 건너편에는 킷카와 히로이에군이 주요 길목마다 방책을 설치한 후 혹시 모를 조선군의 탈출을 저지할 준비를 갖추었다.&lt;br&gt;&amp;nbsp; 또한 고니시 유키나가군과 가토 기요마사군을 중심으로 진주성의 서북쪽 해자를 메우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lt;br&gt;&amp;nbsp;&lt;strong&gt;&lt;font color=&quot;#1e681a&quot;&gt; &amp;quot;서둘러라. 이것만 메워버리고 돌담( &lt;font color=&quot;#0734e4&quot;&gt;성벽&lt;/font&gt; )만 넘으면 된다! 어서 해자를 메워라!!&amp;quot;&lt;br&gt;&lt;img height=&quot;467&quot; alt=&quot;&amp;#x00ac00;&amp;#x00d1a0; &amp;#x00ae30;&amp;#x00c694;&amp;#x00b9c8;&amp;#x00c0ac;&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15?1263220869.jpg&quot; width=&quot;448&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lt;/font&gt;&lt;/strong&gt;&amp;nbsp; 고니시 유키나가의 가신들이 재촉하는 가운데 아시가루들은 등에 토사와 돌을 가득 짊어지고 해자를 향해 이동했다.&lt;br&gt;&amp;nbsp; 각 다이묘들은 조선에 출병한 전 병력을 동원한 이번 공성을 통해 진주성을 반드시 함락시킬 수 있다는 확신에 찼다.&lt;br&gt;&amp;nbsp; 이렇게 진주성 전투의 첫 날은 양측의 소리없는 대치전으로 끝났다.&lt;br&gt;&amp;nbsp; 1593년 6월 22일, 오전 10시를 기해 일본군은 본격적으로 진주성 공성을 시작했다.&lt;br&gt;&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amp;nbsp; &amp;quot;쳐라! 성벽을 넘어라!!&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lt;font color=&quot;#c9180a&quot;&gt;&lt;strong&gt;&amp;quot;오오오오오오오~!!&amp;quot;&lt;br&gt;&lt;/strong&gt;&lt;/font&gt;&amp;nbsp;&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 &amp;quot;하나테( &lt;font color=&quot;#1e681a&quot;&gt;放て, 발사&lt;/font&gt; )!&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lt;strong&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 &amp;quot;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진주성을 완전히 에워싼 대군의 공세는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lt;br&gt;&amp;nbsp; 각 군의 군기가 어지럽게 휘날리는 가운데 뎃포 아시가루들이 발사한 탄환이 성을 뒤덮어버렸고 불화살이 성벽 위의 조선군을 향해 날아들었다.&lt;br&gt;&amp;nbsp; 각 군의 돌격조가 해자에 달려들어 토사와 돌을 부워 메우는 사이, 성질 급한 아시가루들은 아예 해자의 물살을 헤치며 성벽으로 달라붙었다.&lt;br&gt;&amp;nbsp; 대응하는 조선군의 화살세례에 숱한 일본군이 쓰러져갔고 비격진천뢰가 날아들 때마다 수십명의 병력이 쓰러졌다.&lt;br&gt;&amp;nbsp; 하지만 일본군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lt;br&gt;&amp;nbsp; 오후까지 지속된 공세를 통해 일본군은 마침내 동문 해자를 메우고 성벽에 육박하는데 성공했다.&lt;br&gt;&lt;img height=&quot;431&quot; alt=&quot;&amp;#x00b383;&amp;#x00d3ec; &amp;#x00c544;&amp;#x00c2dc;&amp;#x00ac00;&amp;#x00b8e8;&quot; hspace=&quot;0&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17?1263220869.jpg&quot; width=&quot;840&quot; vspace=&quot;3&quot; border=&quot;6&quot;&gt;&lt;br&gt;&lt;img height=&quot;293&quot; alt=&quot;&amp;#x00c9c4;&amp;#x00c8fc;&amp;#x00c131; &amp;#x00c804;&amp;#x00d22c;&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16?1263220869.jpg&quot; width=&quot;459&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amp;nbsp; &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amp;quot;좋아! 사다리를 걸치고 돌담을 넘어라. 조선군은 얼마 안된다.&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각 부장들이 독전하는 가운데 스야리와 닛뽄도로 무장한 돌격조가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lt;br&gt;&amp;nbsp; 성안 주민들까지 동원한 조선군은 끓는 물과 돌을 던지며 응전했고 성 밑은 순식간에 일본군의 시체로 뒤덮여버렸다.&lt;br&gt;&amp;nbsp; 일본군은 희생이 큰 통에 잠시 퇴각해 전열을 정비한 후 자정을 기해 재차 공성을 감행했지만 성을 함락시키는데 실패했다.&lt;br&gt;&amp;nbsp; 6월 23일, 일본군은 전 병력을 동원해 진주성을 공격했지만 화포의 맹렬한 포격과 결사적인 조선군의 농성전으로 무수한 사상자만 낸 채 퇴각했다.&lt;br&gt;&amp;nbsp; 하지만 끊임없는 작업 끝에 일본군은 서북쪽 해자를 완전히 메우는데 성공했고 이제 이 쪽으로도 공성을 감행할 수 있게 되었다.&lt;br&gt;&amp;nbsp; 6월 24일은 그야말로 제2차 진주성 전투 기간 중 최&lt;img height=&quot;493&quot; alt=&quot;&amp;#x00acf5;&amp;#x00bd81;&amp;#x00bb38;&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18?1263220869.jpg&quot; width=&quot;670&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대 규모의 혈전이 전개되었다.&lt;br&gt;&amp;nbsp; 공성을 시작한 지 2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성과가 없이 사상자만 늘어나자 각 다이묘들이 사실상 절망 속에 공격을 감행한 것!&lt;br&gt;&amp;nbsp; 하지만 이것은 큰 실책이었고 비격 진천뢰와 화포 공격으로 인해 일본군의 사상자만 수천에 달했다.&lt;br&gt;&amp;nbsp; 각 다이묘들은 너무나도 엄청난 피해로 인해 심기가 적잖이 불편해졌고 곧 전술의 변경을 꾀했다.&lt;br&gt;&amp;nbsp;&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 &amp;quot;이렇게 공격하다가는 아군이 다 몰살당하겠습니다. 저 돌담만 무너뜨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데&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그 때 가토 기요마사가 묘안을 하나 제시했다.&lt;br&gt;&amp;nbsp; &lt;strong&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amp;quot;조선 땅의 모든 병력을 동원해 여기까지 &lt;table height=&quot;25&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655&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0&quot;&gt;&lt;tbody&gt;&lt;tr&gt;&lt;td width=&quot;655&quot; height=&quot;25&quot;&gt;&lt;p&gt;&lt;img height=&quot;420&quot; alt=&quot;&amp;#x00b2e4;&amp;#x00c774;&amp;#x00cf54;&amp;#x00ae30;&amp;#x00c5d0; &amp;#x00c218;&amp;#x00b85d;&amp;#x00b41c; &amp;#x00c9c4;&amp;#x00c8fc;&amp;#x00c131; &amp;#x00acf5;&amp;#x00b7b5;&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19?1263220869.jpg&quot; width=&quot;634&quot; border=&quot;6&quot;&gt;&lt;br&gt;&amp;nbsp;&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 color=&quot;#103ae7&quot;&gt;&lt;strong&gt; 제2차 진주성 전투 당시를 묘사한 기록화로 운제와 사다리 등 다양한 공성병기가 총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lt;/strong&gt;&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왔습니다. 만약 낙성[ &lt;font color=&quot;#0734e4&quot;&gt;落城&lt;/font&gt; ]에 실패하면 다이코 전하의 분노로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가 할복해야 할 겁니다. 결국 우리가 모두 죽느냐 저 진주성이 무너지느냐? 가 관건입니다. 다행히 조·밍 연합군은 우리를 공격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고 사상자가 엄청나니 모리군과 고바야카와군도 공성에 합류시켜 병력을 증강시킵시다. 그리고 성 밖에 토루를 쌓아 성벽 위의 적들을 뎃포와 활로 견제하면서 돌담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요컨대 저 돌담만 무너지면 성 내에 방어시설이 없으니 저절로 함락되지 않겠습니까?&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순간 각 다이묘들은 기요마사의 묘안에 적잖이 감격했고 곧 6월 24일 야음을 틈타 아시가루들을 재촉해가며 주요 지점마다 높은 &lt;img height=&quot;864&quot; alt=&quot;&amp;#x00cc9c;&amp;#x00c790;&amp;#x00cd1d;&amp;#x00d1b5;&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20?1263220869.jpg&quot; width=&quot;586&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토루를 쌓기 시작했다.&lt;br&gt;&amp;nbsp; 6월 25일, 마침내 밤잠을 설쳐가며 축조한 토루들이 서서히 완성되자 일본군은 곧바로 목재 전루( &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戰樓&lt;/font&gt;&lt;/strong&gt; )와 방책을 세운 후 일제히 화살과 뎃포를 발사했다.&lt;br&gt;&amp;nbsp; 콩볶는 듯한 총성과 함께 성벽을 지키던 조선군과 백성 수백명이 쓰러졌고 그 틈을 타 나가야리 아시가루의 엄호 속에 돌격조가 사다리를 걸치고 성벽을 기어올랐다.&lt;br&gt;&amp;nbsp; &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amp;quot;절대로 넘어오게 해서는 안된다. 녀석들이 성벽을 넘는 순간 우리 모두 끝장이다!&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김천일과 고종후는 병사들을 독려하며 전투를 지휘했고 곧 화포와 대장군전을 동원해 각 토루와 전루를 붕괴시키면서 졸지에 수백명의 뎃포 아시가루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lt;br&gt;&amp;nbsp; 그러자 일본군은 곧 귀갑차(&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 龜甲車&lt;/font&gt;&lt;/strong&gt; )를 동원해 성벽 붕괴를 시도했다.&lt;br&gt;&amp;nbsp; 이것은 목제 궤짝형태의 전투실에 수레바퀴를 부착한 것으로 전면의 쇠창살을 이용해 성벽의 돌을 빼내 붕괴시키는 공성병기였다.&lt;br&gt;&amp;nbsp; 궤짝의 상부에는 소가죽을 덮고 물을 끼얹어 화공에 당하지 않도록 조치했기 때문에 조선군은 화포를 조준해 직격해 파괴시켜야 했다.&lt;br&gt;&amp;nbsp; 새로운 전술을 적용시켰음에도 6월 25일의 공성 역시 참혹한 피해만 남긴 채 실패하고 말았다.&lt;br&gt;&amp;nbsp; 그러나 귀갑차와 토루 전술로 적잖은 성과를 본 다이묘들은 곧 전열을 재정비했고 6월 26일 대대적인 화공으로 성을 불태우는 공격을 감행했다.&lt;br&gt;&amp;nbsp; 귀갑차들이 떼를 지어 성벽으로 육박해 오자 조선군은 화포로 직격해 깨뜨리고 비격 진천뢰를 발사해 주변의 아시가루들을 쓸어버렸다.&lt;br&gt;&amp;nbsp; 하지만 귀갑차는 일본군 진영에서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는데다가 때마침 예비대였던 모리 히데모토군과 고바야카와 다카가게군이 공성에 합류했다.&lt;br&gt;&amp;nbsp; &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amp;quot;조선 놈들, 너희들은 무인으로서 기본 정신도 없다는 말인가?&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고바야카와 다카가게군의 가신들은 하나같이 진주성에 고립된 동료들&lt;img height=&quot;356&quot; alt=&quot;&amp;#x00b383;&amp;#x00d3ec; &amp;#x00c544;&amp;#x00c2dc;&amp;#x00ac00;&amp;#x00b8e8;&amp;#x00b4e4;&amp;#x00c758; &amp;#x00bc29;&amp;#x00c9c4;&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21?1263220869.jpg&quot; width=&quot;271&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을 버리고 제 살 궁리만 하는 조·밍 연합군을 경멸하며 진주성 공성에 가세했다.&lt;br&gt;&amp;nbsp; 2만명이 넘는 &amp;quot;쌩쌩한&amp;quot; 증원병력이 합류하자 공성은 더욱 거세졌고 마침내 서예원이 지키던 서북쪽 성벽이 일본군에게 돌파되기 시작했다.&lt;br&gt;&amp;nbsp;&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 &amp;quot;지금이다. 서둘러라!&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각 여력( &lt;font color=&quot;#c9180a&quot;&gt;&lt;strong&gt;100명의 병력을 지휘하는 중대장급 사무라이&lt;/strong&gt;&lt;/font&gt; )들이 선봉에 서 성벽을 넘자 곧 치열한 단병접전이 벌어졌다.&lt;br&gt;&amp;nbsp; 비록 지형상 나가야리를 쓸 수 없었지만 스야리와 닛뽄도만으로도 무시못할 전투력을 발휘하는 아시가루와 사무라이들의 공세 속에 조선군은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lt;br&gt;&amp;nbsp;&lt;strong&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 &amp;quot;덤벼라, 왜놈들아! 황진이 여기 있다!!&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그 때 충청병사 황진이 군사들을 이끌고 달려들었다.&lt;br&gt;&amp;nbsp; 황진은 전쟁 전 일본에서 구입한&amp;nbsp;닛뽄도를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아시가루들을 베어넘겼고 이에 용기를 얻은 조선군 병사들이 달려들어 간신히 성벽을 넘어온 일본군을 모두 제압하는데 성공했다.&lt;br&gt;&amp;nbsp; 하지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한 목사 서예원은 황진의 질책에 아무 대꾸도 못했으니 성의 지휘체계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lt;br&gt;&amp;nbsp;&amp;nbsp;그러나 진주성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lt;br&gt;&amp;nbsp;&amp;nbsp;6월 26일, 때마침 비가 내리면서&amp;nbsp; 화공으로 성내에 옮겨붙었던 불이 일시에 진화되었지만 그 대가로 성벽 일부가 붕괴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lt;br&gt;&amp;nbsp; 일본군이 붕괴지점으로 몰려들어 마침내 치열한 단병접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거제현령 김준민이 부하들을 이끌고 막아냈지만 그 대가로 나가야리에&amp;nbsp;찔려&amp;nbsp;전사했다.&lt;br&gt;&amp;nbsp; 사상자가 누적되면서 일본군은 극심하게 지쳐갔지만 그만큼 성내의 조선군 전력&lt;img height=&quot;377&quot; alt='&amp;quot;&amp;#x00cd1d; &amp;#x00acf5;&amp;#x00aca9;&amp;#x00d558;&amp;#x00b77c;~!!&amp;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22?1263220869.jpg&quot; width=&quot;509&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이 한없이 약화되어가는 것을 발견하면서 포위망을 풀지 않았다.&lt;br&gt;&amp;nbsp; 6월 27일, 마침내 일본군은 성 밖 5개 지점에 토루와 전루를 복구해 다시금 성을 향해 뎃포와 화살 세례를 퍼부었다.&lt;br&gt;&amp;nbsp; 이를 틈타 수백대의 귀갑차들이 일제히 성벽을 향해 육박해 들어왔고 화포로 포격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깝게 접근해 성벽의 돌을 빼내려 하자 조선군은 기름을 붓고 불붙은 짚단을 던져 귀갑차를 태워버렸다.&lt;br&gt;&amp;nbsp;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인 아시가루들이 귀갑차에서 탈출했지만 곧 화살과 진천뢰 공격으로 대부분 전사하고 말았다.&lt;br&gt;&amp;nbsp; 하지만 조선군도 순천 의병장 강희복, 강희열 형제가 전사하는 등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lt;br&gt;&amp;nbsp; 진주성은 이렇게 하루 하루를 견뎌내고 있었지만 성 밖에서는 그 어떤 구원의 손길이 없었다.&lt;br&gt;&amp;nbsp; 6월 28일, 치열한 공방전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lt;br&gt;&amp;nbsp; 고니시 유키나가 제2대가 절벽을 기어올라 서쪽 성벽과 서암문으로 돌격해 들어왔다.&lt;br&gt;&amp;nbsp; 서암문은 서예원이 지키던 구간이었지만 이 곳에서도 고니시 유카나가군은 순식간에 1,000 &lt;table height=&quot;504&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678&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0&quot;&gt;&lt;tbody&gt;&lt;tr&gt;&lt;td width=&quot;676&quot; height=&quot;502&quot;&gt;&lt;p&gt;&lt;img height=&quot;419&quot; alt=&quot;&amp;#x00adc0;&amp;#x00ac11;&amp;#x00cc28;&amp;#x00b85c; &amp;#x00c131;&amp;#x00bcbd;&amp;#x00c744; &amp;#x00bb34;&amp;#x00b108;&amp;#x00b728;&amp;#x00b9ac;&amp;#x00b294; &amp;#x00c77c;&amp;#x00bcf8;&amp;#x00ad70;&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23?1263220869.jpg&quot; width=&quot;6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6&quot;&gt;&lt;br&gt;&amp;nbsp; &lt;font style=&quot;FONT-SIZE:12pt;&quot; color=&quot;#1b46de&quot;&gt;&lt;strong&gt;마침내 6월 29일, 귀갑차가 성벽을 무너뜨리며 일본군이 성내로 난입하기 시작했다.&lt;br&gt;&amp;nbsp; 성벽 한 군데만 뚫려도 바로 함락으로 이어진 조선 읍성의 취약성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lt;/strong&gt;&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명이 넘는 전사자를 내며 퇴각해야 했고 충청병사 황진이 뎃포에 피격돼 전사했다.&lt;br&gt;&amp;nbsp; 진주성은 이제 몇 안되는 의병장과 수천의 병사들만으로 지켜야 했지만 이미 화약과 화살, 돌, 끓는 물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던 반면 일본군은 여전히 수만명이 넘는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lt;br&gt;&amp;nbsp; 6월 29일, 마침내 농성 10일 째. 진주성 최후의 날이 밝았다.&lt;br&gt;&amp;nbsp; 일본군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총공세를 감행했고 마침내 귀갑차들이 성벽의 큰 돌을 뽑아내자 그토록 무너지지 않았던 진주성의 성벽이 무너져내렸다.&lt;br&gt;&amp;nbsp;&lt;strong&gt;&lt;font color=&quot;#1e681a&quot;&gt; &amp;quot;돌담이 무너졌다. 모두 나를 따르라! 치고, 달리고, 포위한다!!&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lt;font color=&quot;#c9180a&quot;&gt;&lt;strong&gt; &amp;quot;도쓰게키(&lt;/strong&gt;&lt;/font&gt; &lt;strong&gt;&lt;font color=&quot;#0524d6&quot;&gt;突擊, 돌격하라&lt;/font&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 )&lt;/font&gt;&lt;/strong&gt;&lt;/font&gt;&lt;font color=&quot;#c9180a&quot;&gt;&lt;strong&gt;!&amp;quot;&lt;br&gt;&lt;/strong&gt;&amp;nbsp;&lt;/font&gt;&lt;font color=&quot;#121212&quot;&gt;&amp;nbsp;&lt;font style=&quot;FONT-SIZE:10pt;FONT-FAMILY:Verdana;&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Verdana;&quot;&gt;성벽이 무너지자 이&lt;img height=&quot;394&quot; alt=&quot;&amp;#x00ac8c;&amp;#x00c57c;&amp;#x00bb34;&amp;#x00b77c; &amp;#x00b85c;&amp;#x00cfe0;&amp;#x00c2a4;&amp;#x00cf00;&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24?1263220869.jpg&quot; width=&quot;235&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제 조선군을 보호해줄 그 무엇도 남지 않게 되었다.&lt;br&gt;&amp;nbsp; 그 동안 투입되지 못했던 나가야리 아시가루들이 드디어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사무라이들이 직접 닛뽄도와 스야리를 휘두르며 선두에 섰다.&lt;br&gt;&amp;nbsp; 가토 기요마사의 가신 게야무라 로쿠스케( &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毛谷村六助&lt;/font&gt;&lt;/strong&gt; )는 성벽에 오르기가 무섭게 닥치는 대로 조선군을 베어넘겼다.&lt;br&gt;&amp;nbsp; 일찍이 오랜 수행으로 검술의 달인이 된 그였기에 의병과 조선군으로서는 상대가 어려웠다.&lt;br&gt;&amp;nbsp;&lt;strong&gt;&lt;font color=&quot;#0734e4&quot;&gt; &amp;quot;너희들은 속히 성문을 열어! 어서!! 덤벼라! 한놈! 두놈! 세놈!! 왜 이리 시원치 않은 것이야?&amp;quo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 게야무라 로쿠스케와 직속 사무라이들이 조선군과 의병들을 막는 동안&amp;nbsp;아시가루들은 성문을 지키던 조선군을 모두&amp;nbsp;제압한 후 굳게 닫혀있던 북문을 활짝 열어 제꼈다.&lt;br&gt;&amp;nbsp; 그러자 성문 밖에서 숨죽이고 있던 가토 기요마사의 나가야리 아시가루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북문 안으로 뛰어들었다.&lt;br&gt;&amp;nbsp; 이제야 집단전을 통해 10여일간 당한 분풀이를 할 기회를 잡은 나가야리 아시가루들 앞에 조선군은 집단전에서 우위를 상실하며 서서히&amp;nbsp;촉석루 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lt;br&gt;&amp;nbsp; 곧 고바야카와 다카가게군과 모리 히데모토군도 성벽을 넘어 동문을 활짝 열어 제꼈고 때를 기다린 우키다 히데이에군이 일제히 성내로 진입해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lt;br&gt;&amp;nbsp; 압도적으로 많은 일본군이 성에 들어온 이상 니노마루가 없는 진주성은 그야말로 일반 가정집만도 못한 수준이 되어버렸고 곧 조선군과 의병들은 촉석루 일대로 밀려 이 곳에서 전멸당하고 말았다.&lt;br&gt;&amp;nbsp; 의병장 김천일과 최경희, 이종인, 고종후, 오유, 이체 등 조선군 장수와 의병장들이 모두 남강에 투신하거나 인간꼬치가 되어 최후를 맞이했다.&lt;br&gt;&amp;nbsp; 이제 남은 것은 성내의 주민 6만여명으로 원래 일본은 성을 함락시킬 때 희생자가 적으&lt;img height=&quot;286&quot; alt=&quot;&amp;#x00c77c;&amp;#x00bcf8; &amp;#x00acf5;&amp;#x00c131;&amp;#x00c804;&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25?1263220869.jpg&quot; width=&quot;513&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면 가급적 일반 백성들은 살려주는 것이 관례였고 실제 한양과&amp;nbsp;개성, 평양&amp;nbsp;함락 당시 성내에 남아있던 백성들 상당수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lt;br&gt;&amp;nbsp; 하지만 진주성 공성을 통해 일본군은 최소 2만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포함 수만명의 사상자를 내어 분기가 하늘을 찌르는 상태였고 안 그래도 히데요시는 성을 함락시키면 성 내에 그 어떠한 것도 살려둬선 안된다고 엄명을 내린 판이었다.&lt;br&gt;&amp;nbsp; 숱한 가신들을 잃은 다이묘와 사무라이들은 그 분풀이를 백성들에게 시행했고 단 하루만에 성내의 6만 백성들이 일본군의 창검에 목숨을 잃었다( &lt;font color=&quot;#0734e4&quot;&gt;&lt;strong&gt;일부 서적에는 창고에 몰아넣어 태워죽였다고 되어있지만 당시 수급의 수를 전공으로 삼는 일본군의 특성상, 특히 전공에 목이 메어있는 아시가루 및 하급 사무라이들에게 이런 기회를 놓치라고 불을 지를까?&lt;/strong&gt;&lt;/fon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gt;&lt;img height=&quot;471&quot; alt=&quot;&amp;#x00c81c;2&amp;#x00cc28; &amp;#x00c9c4;&amp;#x00c8fc;&amp;#x00c131; &amp;#x00c804;&amp;#x00d22c;&quot; hspace=&quot;0&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26?1263220869.jpg&quot; width=&quot;840&quot; vspace=&quot;3&quot; border=&quot;6&quot;&gt;&lt;br&gt;&lt;/font&gt;&lt;font color=&quot;#1b46de&quot;&gt;&lt;strong&gt;&amp;nbsp; 성벽이 돌파되자 이어진 단병접전에서 조선군과 의병은 완패하고 말았다.&lt;br&gt;&lt;/strong&gt;&lt;img height=&quot;284&quot; alt=&quot;&amp;#x00c81c;2&amp;#x00cc28; &amp;#x00c9c4;&amp;#x00c8fc;&amp;#x00c131; &amp;#x00c804;&amp;#x00d22c;&quot; hspace=&quot;4&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27?1263220869.jpg&quot; width=&quot;518&quot; align=&quot;left&quot; border=&quot;6&quot;&gt;&amp;nbsp;&amp;nbsp;&lt;/fon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t;FONT-FAMILY:Verdana;&quot; color=&quot;#000000&quot;&gt;제2차 진주성 전투가 종료된 후 다이묘들은 남강변에서 축하연을 벌이고 성벽을 파괴해 평지로 만드는 등 진주성 정화사업을 진행시켰다.&lt;br&gt;&amp;nbsp; 한편 본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신속한 상황 판단으로 7월 중순, 전군을 부산으로 철수시키는 한편 진주목사 서예원과 최경회의 수급을 교토에 효수해 승전을 대외적으로 선전했다.&lt;br&gt;&amp;nbsp; 조선과 밍은 치욕을 감내하며&amp;nbsp;와신상담해야 했고 유생들은 상소를 올리느라 정신없었다.&lt;br&gt;&amp;nbsp;&amp;nbsp;그러나 조선의 일본군은 10일간의 혈전으로 2만여명의 전사자라는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고 결국 전라도&amp;nbsp;진출에도 실패했다.&lt;br&gt;&amp;nbsp;&amp;nbsp;따라서 제2차 진주성 전투는 조선의 패전이지만 일본군에게 우리의 저항력을 보여준 자랑스러운 전투라 할 수 있다.&lt;br&gt;&lt;img height=&quot;471&quot; alt=&quot;&amp;#x00ae40;&amp;#x00c131;&amp;#x00d6c8; &amp;#x00c791;&amp;#x00ac00;&amp;#x00c758; &amp;#x00c9c4;&amp;#x00c8fc;&amp;#x00c131; &amp;#x00c804;&amp;#x00d22c; &amp;#x00cf58;&amp;#x00d2f0;&quot; hspace=&quot;0&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37177/img_37177_1383521_28?1263220869.jpg&quot; width=&quot;840&quot; vspace=&quot;4&quot; border=&quot;6&quo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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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3 Jan 2010 11:56:25 +0900</pubDate>
    <category><![CDATA[잡기다능한 방]]></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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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두뇌의 보조장치 개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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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이론은 이미 대중화 된 과학이다&lt;br&gt;&lt;br&gt;이 신경이론의 결정적은 변화가 나타났다.&lt;br&gt;&lt;br&gt;척추에 일반 칩을 이식하여 전기신호를 저장할 수 있는&lt;br&gt;&lt;br&gt;기계가 발명 되었다.&lt;br&gt;&lt;br&gt;두뇌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과 생각하지 않고 저장되어 있는 부분을 &lt;br&gt;&lt;br&gt;백업할 수 있는 장치가 개발 된 것이다.&lt;br&gt;&lt;br&gt;이 장치를 통해서 이전도 가능하다.&lt;br&gt;&lt;br&gt;아버지 뇌의 모든 자료를 백업받아 아들의 뇌에 이식할 수 있고,&lt;br&gt;&lt;br&gt;열심히 연구한 과학자의 뇌를 백업 받아&lt;br&gt;&lt;br&gt;일반인 뇌에 이식할 수 있게 되었다.&lt;br&gt;&lt;br&gt;이 장치의 개발로 인해 인류의 두뇌는 학습이라는 노력을&lt;br&gt;&lt;br&gt;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lt;br&gt;&lt;br&gt;현존하는 모든 수학공시과 지리 사회 인문 등 &lt;br&gt;&lt;br&gt;모두 백업이 가능하게 된것이다.&lt;br&gt;&lt;br&gt;이 장치의 개발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지게 되었지만&lt;br&gt;&lt;br&gt;걱정도 많이한다.&amp;nbsp; 학습의 노력을 잊어 버린다면&lt;br&gt;&lt;br&gt;앞으로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lt;br&gt;&lt;br&gt;하지만&lt;br&gt;&lt;br&gt;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amp;nbsp; 앞으로 무형의 자산을 연구하기 위해서&lt;br&gt;&lt;br&gt;더욱 노력 할 것이기 때문이다.&lt;br&gt;&lt;br&gt;우리 인류가 개발한 것을 계속 발전시켰지, 결코 퇴보 시킨것은 없기 때문이다.&lt;br&gt;&lt;br&gt;물론 필요가 없다는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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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7 Dec 2009 19:47:45 +0900</pubDate>
    <category><![CDATA[황당한 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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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원자 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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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2032년 1월 &lt;br&gt;&lt;br&gt;원자 이동의 비밀을 밝혔다.&lt;br&gt;&lt;br&gt;그토록 원하던 순간 이동의 비밀이 밝혀 졌다&lt;br&gt;&lt;br&gt;원자 이동 이론은 이렇다&lt;br&gt;&lt;br&gt;우선 모든 물체는 원자의 결합체로 보고&lt;br&gt;&lt;br&gt;원자 분리기를 실시한다.&amp;nbsp; 분리된 원자는 전파를 통해서&lt;br&gt;&lt;br&gt;수신기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lt;br&gt;&lt;br&gt;그리고 수신기를 통해서 이동한 원자는 다시 정확한 순서대로&lt;br&gt;&lt;br&gt;결합되는 것이다.&lt;br&gt;&lt;br&gt;이러한 내용은 이미 소설이나, 과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져 있었지만&lt;br&gt;&lt;br&gt;그 이론을 성립한 것이다.&lt;br&gt;&lt;br&gt;성립을 통해&lt;br&gt;&lt;br&gt;인류는 지구상에 원하는 곳으로 이동이 가능하게 되었다.&lt;br&gt;&lt;br&gt;아침에 일본에서 일보고&amp;nbsp;, 점심은 뉴욕에서 처럼 가능한 것이다.&lt;br&gt;&lt;br&gt;영화 점프 처럼 ....&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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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7 Dec 2009 19:38:33 +0900</pubDate>
    <category><![CDATA[황당한 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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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세기의 엽기적 범죄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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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img border=&quot;0&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37/8e/oksan1973kr/folder/254/img_254_21114_0?1260026997.png&quot;&gt;&lt;br&gt;&lt;br&gt;&lt;img border=&quot;0&quot; hspace=&quot;5&quot; vspace=&quot;5&quot;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37/8e/oksan1973kr/folder/254/img_254_21114_1?1260026997.jpg&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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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Dec 2009 10:35:43 +0900</pubDate>
    <category><![CDATA[잡기방 2]]></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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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당신이 금연에 실패하는 3가지 이유는…]]></title>
    <description>
        &lt;!-- news scrap start --&gt;    &lt;P&gt;&lt;BR&gt;        &lt;img src='http://img.yahoo.co.kr/blog/2006/05/dot_news.gif'&gt;&lt;b&gt;뉴스&lt;/b&gt; : &lt;span class='style1'&gt;												[동아일보] 						실패유형분석과 대처법 《금연 건물이 속속 등장하고 흡연자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늘면서 “치사�.&lt;/span&gt;     &lt;/P&gt; &lt;!-- news scrap end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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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0 Nov 2009 09:41:18 +0900</pubDate>
    <category><![CDATA[잡기방 2]]></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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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40년 동안 독감 한 번 걸리지 않은 비결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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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right;MARGIN-LEFT:10px;&quot;&gt;&lt;a href=&quot;http://cfs14.tistory.com/original/19/tistory/2009/11/24/04/41/4b0ae5685c845&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tyle=&quot;CURSOR:pointer;&quot; height=&quot;193&quot; alt=&quot;&amp;#x00c0ac;&amp;#x00c6a9;&amp;#x00c790; &amp;#x00c0bd;&amp;#x00c785; &amp;#x00c774;&amp;#x00bbf8;&amp;#x00c9c0;&quot; src=&quot;http://cfs14.tistory.com/image/19/tistory/2009/11/24/04/41/4b0ae5685c845&quot; width=&quot;290&quot;&gt;&lt;/a&gt;&lt;/div&gt;&lt;div&gt;겨울철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기나 독감. 이것으로부터 이것으로부터 어떤 사람들도 쉽게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우리 집만해도 일년이면 식구 모두가 두 서너번은 감기로 고생한다. 특히 요즈음은 세계가 독감전염으로 두려움에 살고 있다. &lt;font color=&quot;#8e8e8e&quot;&gt;(오른쪽 사진: 콧물, 오한, 기관지염, 폐렴 등에 좋은 요한초) &lt;/font&gt;&lt;br&gt;&lt;br&gt;최근 북동유럽 리투아니아는 전국에 걸쳐 독감전염병을 선포한 상태이다. 신종플루로 현재까지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와중에 집집마다 사람마다 개인위생과 독감예방에 주의를 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례투보스 리타스 11월 21일 기사 하나가 관심을 끌었다. 아내 이 기사를 오려서 보관하고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lt;br&gt;&lt;font color=&quot;#006699&quo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lt;br&gt;&lt;/font&gt;&lt;strong&gt;40년 동안 독감 한 번 걸리지 않았다&lt;/strong&gt;&lt;/font&gt;&lt;br&gt;&lt;br&gt;이 기사에 따르면 리투아니아 남부 알리투스 지방에 살고 있는 아사카비치에네 할머니는 올해 84세인데, 지난 40년 동안 한 번도 독감에 걸리지 않았다. 약초의 효능을 알게 된 후부터라고 한다. &lt;br&gt;&lt;br&gt;겨울철 내내 할머니 집은 꿀과 약초 냄새로 가득 차 있다. 독감 바이러스가 집안으로 퍼지지 않도록 할머니는 자주 양철통에 봉랍(蜂蠟)과 물 2리터를 넣고 물이 증발할 때까지 끓인다. &lt;br&gt;&lt;br&gt;&lt;strong&gt;&lt;font color=&quot;#006699&quot;&gt;마늘 입냄새는 우유로&lt;/font&gt;&lt;/strong&gt; &lt;br&gt;&lt;br&gt;할머니는 붉은 양파가 실내 공기를 소독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다. 붉은 양파를 짤게 썰어서 냉장고, 옷장, 식탁 등 집안 곳곳에 놓는다. 붉은 양파를 고기, 저린 청어 등과 먹는다, 여름에 수확한 마늘의 약효과도 아주 좋다. 매일 이 여름 마늘 두 서너 쪽을 먹는다. 할머니는 양파와 마늘 입냄새는 우유 한 잔, 박하자, 혹은 물과 반을 섞어 끓인 포도주로 제거한다. &lt;br&gt;&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CLEAR:both;TEXT-ALIGN:center;&quot;&gt;&lt;a href=&quot;http://cfs10.tistory.com/original/33/tistory/2009/11/24/04/35/4b0ae40cbc9e2&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tyle=&quot;CURSOR:pointer;&quot; height=&quot;184&quot; alt=&quot;&amp;#x00c0ac;&amp;#x00c6a9;&amp;#x00c790; &amp;#x00c0bd;&amp;#x00c785; &amp;#x00c774;&amp;#x00bbf8;&amp;#x00c9c0;&quot; src=&quot;http://cfs10.tistory.com/image/33/tistory/2009/11/24/04/35/4b0ae40cbc9e2&quot; width=&quot;560&quot;&gt;&lt;/a&gt;&lt;/div&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 할머니는 붉은 양파가 일반 양파보다도 더 약효가 높다고 말한다.&lt;br&gt;&lt;/font&gt;&lt;br&gt;&lt;font color=&quot;#177fcd&quot;&gt;&lt;strong&gt;고열에는 팔랑개비국화꽃 차가 최고&lt;/strong&gt;&lt;/font&gt; &lt;br&gt;&lt;br&gt;콧물감기엔 virzis(영어로 heather) 차를 마신다. 할머니는 급성고열에는 꿀과 함께 마시는 팔랑개비국화꽃 차가 최고라고 한다. 이때 꿀을 차에 넣어서 마시는 것이 아니고 숟가락으로 꿀을 떠먹으면서 차를 마신다. 할머니는 여러 종류의 차를 같이 섞지 않고, 한 종류만 마신다. 끓인 물에 차 한 숟가락을 넣고 30분을 기다렸다가 마신다. &lt;br&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CLEAR:both;TEXT-ALIGN:center;&quot;&gt;&lt;a href=&quot;http://cfs14.tistory.com/original/15/tistory/2009/11/24/04/20/4b0ae0985ae24&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height=&quot;373&quot; alt=&quot;&amp;#x00c0ac;&amp;#x00c6a9;&amp;#x00c790; &amp;#x00c0bd;&amp;#x00c785; &amp;#x00c774;&amp;#x00bbf8;&amp;#x00c9c0;&quot; src=&quot;http://cfs14.tistory.com/image/15/tistory/2009/11/24/04/20/4b0ae0985ae24&quot; width=&quot;560&quot;&gt;&lt;/a&gt;&lt;/div&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 고열에 좋은 팔랑개비국화&lt;br&gt;&lt;/font&gt;&lt;br&gt;콧물, 오한, 기관지염, 폐렴 등에는 요한초(세인트존스워트) 차, 레이디스맨틀 차, 감초 차, 딱총나무 차, 꿀과 함께 검정무 등을 할머니는 권한다.&lt;br&gt;&lt;br&gt;40년간 독감 한 번 걸리지 않고 있는 할머니 이야기를 읽은 후 평소에 사지 않는 붉은 양파를 어제 샀다. 집안 곳곳에 붉은 양파를 짤게 썰어서 접시 위에 담아 놓고 있다. 그 동안 감기가 들면 아내는 일반 양파를 썰어 침대 옆에 놓고 잤는데 이제부터는 붉은 양파가 이를 대신할 것 같다. 이렇게 리투아니아에도 민간요법에 따라 건강을 지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모두가 건강하길 바란다. &lt;br&gt;&lt;font color=&quot;#ff0000&quot;&gt;&lt;br&gt;&lt;/fon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strong&gt;&lt;font color=&quot;#ff0000&quot;&gt;* 최근글:&lt;/font&gt; &lt;/strong&gt;&lt;a href=&quot;http://v.daum.net/link/4889235&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0pt;&quot; color=&quot;#0000ff&quot;&gt;&lt;strong&gt;&lt;font style=&quot;FONT-SIZE:9pt;&quot;&gt;4년 전 이맘 때의 제주도 모습, 지금은?&lt;/font&gt;&lt;/strong&gt;&lt;/font&gt;&lt;/a&gt;&lt;/font&gt;&lt;br&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font&gt;&lt;a href=&quot;http://v.daum.net/link/4802085&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lt;/a&gt;&lt;font color=&quot;#009966&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a href=&quot;http://v.daum.net/link/4175419&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trong&gt;&lt;font color=&quot;#008000&quot;&gt;만화책 같은 초등학교 첫 영어책&lt;/font&gt;&lt;/strong&gt;&lt;/a&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a href=&quot;http://v.daum.net/link/4684323&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ff0000&quot;&gt;&lt;strong&gt;젖가슴 훤하게 노출하는 TV 프로그램&lt;/strong&gt;&lt;/font&gt;&lt;/a&gt;&lt;br&gt;&lt;/fon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a href=&quot;http://v.daum.net/link/3902545&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quot;#ff0000&quot;&gt;&lt;strong&gt;세계 男心 잡은 리투아니아 슈퍼모델들&lt;/strong&gt;&lt;/font&gt;&lt;/a&gt;&lt;br&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 &lt;/font&gt;&lt;a href=&quot;http://v.daum.net/link/4650665&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trong&gt;&lt;font color=&quot;#ff0000&quot;&gt;가장 아름다운 폴란드 여성 10인&lt;/font&gt;&lt;/strong&gt;&lt;/a&gt;&lt;br&gt;&lt;font color=&quot;#ff0000&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font&gt;&lt;a href=&quot;http://v.daum.net/link/4131567&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trong&gt;&lt;font color=&quot;#ff0000&quot;&gt;가장 아름다운 멕시코 여성 10인&lt;/font&gt;&lt;/strong&gt;&lt;/a&gt;&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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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5 Nov 2009 11:18:57 +0900</pubDate>
    <category><![CDATA[야생화 사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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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다른 생명체와의 접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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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2019년 1월 19일&lt;br&gt;&lt;br&gt;어느날 갑자기 지구에 해빛이 들지 않았다.&lt;br&gt;&lt;br&gt;아침이 오긴 왔는데, 태양은 없이 희미한 하늘만 보인다.&lt;br&gt;&lt;br&gt;시간은 분명이 오전 10시를 넘었는데도, 하늘에 구름이라곤 보이지도 않는다.&lt;br&gt;&lt;br&gt;세계 유명국가에서 위성과 허블을 통해 지구 주변을 보니, 태양을 가리고 있는 거대한 &lt;br&gt;&lt;br&gt;행성이 보인다.&lt;br&gt;&lt;br&gt;음파 망원경을 통해 관찰한 결과 ....&lt;br&gt;&lt;br&gt;거대한 우주선이다.&amp;nbsp; 타원형이고, 우리가 UFO 라고 불렀던 물체와 같다.&lt;br&gt;&lt;br&gt;크기가 지구의 4/1 수준이란다.&lt;br&gt;&lt;br&gt;모든 메스컴에서 난리가 났다.&amp;nbsp; 지구의 종말이라고 예기하는 프로도 있고&lt;br&gt;&lt;br&gt;새로운 문명에 대해서 경의를 해야한다는 프로도 있다.&lt;br&gt;&lt;br&gt;사람들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도저히 알수가 없다.&lt;br&gt;&lt;br&gt;슈퍼마켓에서는 절도가 바로 일어나고, 폭동도 바로 일어났다.&lt;br&gt;&lt;br&gt;국가의 힘으로는 걷잡을 수 없는 사항이 되었다.&amp;nbsp; 군인도 군에 없고, 경찰도 경찰서에 없다.&lt;br&gt;&lt;br&gt;모두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항이다.&lt;br&gt;&lt;br&gt;우주선을 뛰워서 접근해 보기로 하고 지구의 모든 문명을 축약한 데이타를 가지고&lt;br&gt;&lt;br&gt;출발을 바로 하기로 했다.&lt;br&gt;&lt;br&gt;하지만 그들은 아무른 반응이 없다.&lt;br&gt;&lt;br&gt;다른 태양만 가리고 있을 뿐이다.&lt;br&gt;&lt;br&gt;며칠 뒤에 우주선이 화성의 궤도 자리잡고 있는 미확인 비행물체에 접근해서&lt;br&gt;&lt;br&gt;신호르 보냈다.&lt;br&gt;&lt;br&gt;우선 불빛으로 수기 신호를 보내고, 모르스 부호를 보내고, 지구에서 사용하는 단전파&lt;br&gt;&lt;br&gt;자전파 통신을 시도해 보았지만, 도저히 반응이 없다.&amp;nbsp; &lt;br&gt;&lt;br&gt;그렇다고 죽은 것은 아니다.&amp;nbsp; 태양을 완전히 가리기 위해 지구의 공전축과 정확히&lt;br&gt;&lt;br&gt;일치한 간격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lt;br&gt;&lt;br&gt;상대가 반응이 없을 수록 지구는 더욱 긴장하게 된다.&lt;br&gt;&lt;br&gt;그 죽음을 기다리는 긴장감이란 ...&lt;br&gt;&lt;br&gt;지구 정상모임에서는 미확인 물체를 격파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lt;br&gt;&lt;br&gt;우선 현재의 최고 기술로 되어있는 핵을 모아서 우주에서 발사하여 빛을 막고 있는 &lt;br&gt;&lt;br&gt;물체를 분리하자는 의견이다.&amp;nbsp; 하지만 적을 모르는 상태에서 실행한다는 것은 &lt;br&gt;&lt;br&gt;너무 무모한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amp;nbsp; &lt;br&gt;&lt;br&gt;그들은 그냥 있는데, 우리가 공격한다면 그들도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고&lt;br&gt;&lt;br&gt;화성의 거리에 있지만, 그 파편중 일부가 분명히 지구 다가 온다면 지구의 피해도&lt;br&gt;&lt;br&gt;적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이다.&lt;br&gt;&lt;br&gt;얼마전 지각 변동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피해를 보았고, 아직까지 완전 복구가 되지 않은&lt;br&gt;&lt;br&gt;상태의 지구로서는 도저히 감당해낼 방법이 없다는 여론이 많다.&lt;br&gt;&lt;br&gt;하지만 지구의 정상들은 해빛이 차단되면 모두 죽는 것과 마찬가지 이므로,&lt;br&gt;&lt;br&gt;피해를 보더라도 실행하자는 다수결의 의견을 모았다.&amp;nbsp; 그리고는 우주비행선 9척에 핵탄두를 &lt;br&gt;&lt;br&gt;각기 2기씩 싣고는 발사를 실행하였다. &lt;br&gt;&lt;br&gt;우선 5기는 그대 비행물체를 공격하고, 나머지 4기는 지구 근처에서 2차 피해에 대비하는&lt;br&gt;&lt;br&gt;처방을 내렸다.&amp;nbsp; 같은날 같은 시각에 출발한 우주 비행선은 모두 자리를 잡고&lt;br&gt;&lt;br&gt;발사준를 하고 있었다.&amp;nbsp; 그리고 발사를 이행하려는 순간 미확인 비행물체는 상상할 수 없는 &lt;br&gt;&lt;br&gt;속도로 그곳을 떠나 버렸다.&amp;nbsp; 아무런 흔적이나, 방사능도 없었다.&amp;nbsp;&amp;nbsp; 어떤 연료를 사용하는지도&lt;br&gt;&lt;br&gt;모르게 그냥 소설속의 글처럼 휙하고 사라져 갔다.&lt;br&gt;&lt;br&gt;모든것이 녹화되어 있었지만, 분사장면도 이동하기 위해 날개로 기타 다른 기관장치를&lt;br&gt;&lt;br&gt;여는 장면도 아무것도 없이 있다가 사라져 가버린 것이다.&lt;br&gt;&lt;br&gt;지구는 다시 태양이 비쳤다.&amp;nbsp; &lt;br&gt;&lt;br&gt;하지만 의아해 한 것은 지구의 사람들이였다.&amp;nbsp; 왜 ?&lt;br&gt;&lt;br&gt;2019.1.16부터 19일간 지속된 이야기 ....&lt;br&gt;&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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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3 Nov 2009 13:52:07 +0900</pubDate>
    <category><![CDATA[황당한 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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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서부를 주름잡던 매력적인 카우걸들]]></title>
    <description>
        &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11?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p&gt;&lt;br&gt;카우보이라고 하면 미국 남성성을 상징하는 아이콘과도 같다. 대자연을 달리고 거칠게 말을 몰며 총을 쏘는 이미지들은 물론 영화를 통해 형성된 이미지가 대부분이지만...&lt;br&gt;&lt;br&gt;그런데 재미있게도 가장 남성적인 영역에 여자들이 발을 내딛었을 때 남성들은&amp;nbsp;성적 자극을 받는 듯 하다.&amp;nbsp;영화 플래시 댄스를 보더라도&amp;nbsp;일반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용접공에 여성을 대입시켜 놓은 것은 솔직히 성적&amp;nbsp;자극성을 노렸다고&amp;nbsp;보여진다.&lt;br&gt;&lt;br&gt;하여간 그런 매력 때문이라고만은 말하기 어렵지만 카우보이의 이미지를 여성에게 대입시켜 만든&amp;nbsp;카우걸들이 있다. 아, 물론 미국 내에서도&amp;nbsp;진짜 소몰이꾼 중에는 여성들도 있으니 이미지라고만 말하기 힘들지만&amp;nbsp;영화나 TV, 광고 등에서 나오는 카우걸의 이미지는 철저히 카우보이들에게서 따온 것들이다. 리볼버 권총, 가죽 부츠, 카우보이 모자와 같은 것들 말이다.&lt;br&gt;&lt;br&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5?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br&gt;물론 대놓고 성적요소로 드러낸다...&lt;/p&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14?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p&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4?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br&gt;페넬로페 크루즈 Bandidas&lt;/p&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7?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br&gt;카밀라 스파브, 맥켄나의 황금 촬영 당시.&lt;/p&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1?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br&gt;진 카르멘과 제인 폰다&lt;/p&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6?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p&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2?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p&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8?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13?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br&gt;제인 폰다, Cat ballou&lt;br&gt;&lt;/p&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0?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p&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9?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br&gt;데비 레이놀즈,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사랑은 비를 타고에 나오셨던 분&lt;/p&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12?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p&gt;&lt;br&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3?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p&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c/67/funnyblog/folder/42339/img_42339_1281753_10?1256802755.jpg&quot; border=&quot;0&quot;&gt;&lt;/p&gt;&lt;br&gt;하지만 아무리 카우보이가 멋있고, 카우걸이 매력적이라고 해도 역시 &lt;strong&gt;서부&lt;/strong&gt;라고 한다면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빠져서는 안될 듯 하다.&lt;br&gt;&lt;br&gt;&lt;p align=&quot;center&quot;&gt; &lt;embed allowscriptaccess=&quot;never&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pmSjbnbR_pQ&amp;hl=ko&amp;fs=1&amp;autoplay=1&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width=&quot;480&quot; height=&quot;385&quot;&gt;&lt;/embed&gt;&lt;/p&gt;&lt;br&gt;&lt;br&gt;reference&lt;br&gt;&lt;a href=&quot;http://www.darkroastedblend.com/2009/10/lovely-cowgirls-in-vintage-westerns.html&quot;&gt;http://www.darkroastedblend.com/2009/10/lovely-cowgirls-in-vintage-westerns.html&lt;/a&gt;&lt;br&gt;&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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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1 Nov 2009 12:04:11 +0900</pubDate>
    <category><![CDATA[잡기방 2]]></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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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감동적인 글이 있기에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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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img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a4/2e/h9255/folder/3489209/img_3489209_1315753_0?1255657557.jpg&quot; border=&quot;0&quot;&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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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6 Oct 2009 10:45:58 +0900</pubDate>
    <category><![CDATA[슬픈 공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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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총알 vs 벽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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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 align=&quot;center&quot;&gt; &lt;embed allowscriptaccess=&quot;never&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QfDoQwIAaXg&amp;hl=ko&amp;fs=1&amp;&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width=&quot;480&quot; height=&quot;385&quot;&gt;&lt;/embed&gt;&lt;br&gt;&lt;br&gt;&lt;/p&gt;&lt;p align=&quot;center&quot;&gt;철갑탄, 할로우 포인트탄 등 다양한 총알이 표적에 맞았을 경우&lt;br&gt;&lt;br&gt;어떻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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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5 Oct 2009 08:59:32 +0900</pubDate>
    <category><![CDATA[잡기방 2]]></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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