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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선유도원(仙遊桃源)]]></title>
<description><![CDATA[급격히 변화 되어가는 시대상황과 가치관의 전도로 인해 우리사회는 조로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읍니다. 주전멤버에서 2군으로 밀려난 젊은 늙은이들 끼리 애환을 함께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며 대낮보다 더 밝은 마지막 석양을 꽃피우기 위해 우리 모두 선유도원에서  만납시다.....윤 호 정 배]]></description>
<link>http://kr.blog.yahoo.com/ddangbbi4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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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선유도원(仙遊桃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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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급격히 변화 되어가는 시대상황과 가치관의 전도로 인해 우리사회는 조로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읍니다. 주전멤버에서 2군으로 밀려난 젊은 늙은이들 끼리 애환을 함께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며 대낮보다 더 밝은 마지막 석양을 꽃피우기 위해 우리 모두 선유도원에서  만납시다.....윤 호 정 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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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데가키유젠]]></title>
    <description>
        나고야유젠&lt;br /&gt;  전통 공예품 지정연월일&lt;br /&gt; 1983년 4월 27일 &lt;br /&gt; 주요 제품&lt;br /&gt; 외출복, 후리소데, 옷감(着尺地), 기타 &lt;br /&gt; 산지조합명&lt;br /&gt; 나고야유젠구로몬쓰키조합연합회&lt;br /&gt; 전화: 052-981-0997&lt;br /&gt; 팩스: 052-981-0997 &lt;br /&gt; &lt;br /&gt; 산지의 역사&lt;br /&gt; 오와리(尾張) 번주(藩主)인 도쿠가와 무네하루(徳川宗春, 1730~1739년) 시절에 교토와 에도 등지에서 유젠(友禅) 장인이 내왕하여 그 기법을 전수한 것이 시초입니다.&lt;br /&gt; 그러나 무네하루의 실각 후 검약생활이 장려되어 문양 배색 및 색상 수를 가급적 제한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됩니다. &lt;br /&gt; 제품 특징&lt;br /&gt; 이 지방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단채 (単彩) 농담(濃淡)의 색상으로 유현(幽玄)한 그윽함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lt;br /&gt; 제조 방법&lt;br /&gt; 데가키유젠(手描友禅): 물들이지 않은 옷감에 청화액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힙니다. 입힌 색을 고정시키기 위해 증기를 쐰 후, 문양 부분에 풀을 바르고 바탕색을 염색하여 다시 증기를 쐬고 헹군 후 완성시킵니다.&lt;br /&gt; 가타유젠: 물들이지 않은 옷감에 이세형지(伊勢型紙) 등을 사용하여 문양을 그려 넣습니다. 그 다음 문양부분에 풀을 바른 후 바탕색을 염색하고 증기를 쐰 다음에 헹구어 완성시킵니다. &lt;br /&gt; &lt;br /&gt; 가나자와&lt;br /&gt; 가가유젠공방&lt;br /&gt; 나가마치유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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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kr.rd.yahoo.com/community/blog/myblog/rss/mesg20/*http://kr.blog.yahoo.com/ddangbbi42/1440976</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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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8 Feb 2010 17:23:31 +0900</pubDate>
    <category><![CDATA[초목염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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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바띡]]></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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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띡 BATIK&lt;br /&gt; 2007.05.07 19:35 | ♣ 인니 문화 | 인니문화원&lt;br /&gt;  &lt;br /&gt; http://kr.blog.yahoo.com/ugmbang/1166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도네시아 직물의 백미인 바띡에는 꽃이나 식물의 문양, 잎, 새싹, 새, 나비, 물고기, 곤충 그리고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바띡 문양의 종류만도 약 3,000가지에 이른다. &lt;br /&gt;   죡자까르따Yogyakarta, 수라까르따(솔로)와 같은 곳에는 바띡 공방이 많고, 그 중에는 여행자에게 바띡 제작을 가르쳐 주는 곳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명물 1위로 손꼽히는 바띡을 손수 만들어 선물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작은 즐거움을 만끽할 수가 있다. &lt;br /&gt;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거나 이곳에 머물면서 이 나라에서 최고로 발달된 예술 형태의 하나인 바띡에 대해 모르고 지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바띡 공장이나 취급 상점에 처음 들어가게 되면 그 다양한 색상과 문양, 그리고 바띡 고유의 향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사람들의 끊이지 않는 발길, 더 나아가 예술의 한 장르를 차지하고 있는 바띡에 대한 연구가 더해질수록 그 기원에 대한 관심과 다양한 디자인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lt;br /&gt;   바띡이란 단어는 ‘작은 점들이 찍힌 옷감’ 이라는 의미의 원어 ‘ambatik’에서 온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접미사인 ‘tik’은 원래 ‘작은 점’, ‘방울’, 또는 ‘점을 찍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바띡은 ‘옷감을 묶거나 옷감에 바느질을 함으로써 문양을 낸 부분을 제외한 부분을 염색하는 과정’이라는 의미의 자와어 ‘tritik’에서 유래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바띡은 납염의 일종인 납힐이다. 납염蠟染 paraffin dye은 납蠟이 갖는 방염작용을 이용하여 무늬를 염색하는 기술을 말한다. 납염의 수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본적인 것에는 바탕색을 납으로 덮고 홈을 만들어 여기에 染液이 침투하여 무늬가 나타나도록 하는 실루엣 염색, 무늬의 윤곽을 납으로 그어서 남기는 色差染色, 무늬를 납으로 덮어서 남기는 납묘蠟描 무늬염색 등의 세 가지가 있다. 이들 세 가지 수법을 자유로이 구사하여 납을 쓰는 방법과 염료를 쓰는 방법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복잡한 염색을 할 수 있다. 가정용품, 의류, 실내장식 등에 널리 응용된다. 납에는 목랍木蠟, 파라핀납, 백랍白蠟, 밀랍蜜蠟, 경화납硬化蠟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염색할 때의 기온, 직물의 종류, 염색방법 등에 따라서 쓰이는 납도 달라진다. 파라핀 납은 잘 녹고 또 잘 굳기 때문에 여름철 즉 열대지방에 쓰기 좋고, 백랍은 잘 녹지 않지만 일단 녹으면 잘 굳지 않기 때문에 겨울철에 쓰기 좋다. 백랍은 단독으로 쓰는 것보다 이것에 다른 납을 혼합하면 쓰기 좋다. 목랍은 그 성질이 까다로워서 미숙한 사람은 취급하기 힘들다. 염색하는 양이 적으면 가정용 초를 녹여서 사용하여도 된다. 홈, 줄, 무늬 등을 순백으로 하려면 납에 송진을 섞어서 사용한다. 납염은 양모, 아세테이트 외에는 모든 섬유품의 염색에 쓸 수 있는데, 이때 천에 묻은 때, 호제糊劑, 유질油質 등을 제거하기 위해 미리 천을 비눗물로 끓이고 잘 씻는 것이 중요하다. 염색할 때는 직물을 구성하고 있는 각개 섬유를 침염浸染할 때 쓰이는 염료와 助劑를 정해진 염색법으로 응용하되, 섬유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납염에 필요한 도구는 납으로 무늬를 그리는 데 쓰는 붓, 납을 담는 용기, 가열장치, 신문지 또는 포장지, 직물의 폭을 펴서 오그라들지 않게 하는 기구, 찜질하는 데 필요한 기구, 염료용기, 휘발유 등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찌레본 바띡              마두라 바띡                솔로 바띡&lt;br /&gt; &lt;br /&gt; 바띡의 정확한 근원지를 찾기는 힘들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그와 비슷한 염색 기술을 사용한 옷감의 흔적이 약 1,500년 전 이집트와 중동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또한 이는 후에 터키,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 그리고 아프리카 서부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위에 언급된 나라에서 바띡과 비슷한 염색 기술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섬유를 하나의 전문분야로 볼 때, 자와 섬에서의 바띡 기술만큼 그것을 하나의 예술 형태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다양한 기술로 발전시켜 온 나라는 없다. &lt;br /&gt; &lt;br /&gt;   바띡은 원래 자와 왕족들이 보존해온 하나의 예술형태로서 고대 인도네시아의 공주나 귀족 부인들의 선물을 싸는 보자기, 사룽 그리고 옷감에 전통적인 문양 디자인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감각 영역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릴린(Lilin; wax)을 입혀 염색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왁스를 바른 상태에서의 염색과정은 왕실 내에서 일하던 기능공들이 발달시켰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바띡은 모든 공정을 손으로 그려서 ①한 면에 염색한 것(바띡 뚤리스 batik tulis), ②양면에 염색한 것, ③일반문양은 프린팅을 하고 미세한 부분만 수공으로 한 것(콤비나시 kombinasi), ④모든 공정을 형틀로 찍은 것(짭 cap) 등 네 종류가 있으며, 이중 양면에 한 바띡 뚤리스가 가장 고급이라고 하겠다. &lt;br /&gt; &lt;br /&gt;   자와 지역에서의 바띡 생산은 죡자까르따, 수라까르따, 뻐깔롱안, 찌레본, 따식말라야, 뚤룽아궁, 뽀노로고, 자까르따, 떠갈, 인드라마유, 찌아미스, 가룻, 뿌르워끄르또, 끄부멘, 뿌르워레조, 끄라뗀, 보요랄리, 시도아르조, 모조끄르또, 그레식, 라섬, 꾸두스, 워노기리 등이다. &lt;br /&gt; &lt;br /&gt;   자와 왕족은 예술분야에 상당한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왕실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은 실제로 銀 장신구, 가죽 인형wayang kulit, 가멜란gamelan 같은 분야에 많은 투자를 했다. 특히 손가락 인형 예술가dalang는 그림자 인형극wayang puppets을 담당하였던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바띡 문양의 창조에 힘써야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인형wayang puppet은 염소 가죽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가죽에 바늘구멍을 뚫어 마치 위에 옷을 입힌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져 사용된 인형은 나중에 중고로 일반인에게 팔리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였는데, 이 인형에 입혀진 의상 문양은 일반 사람들이 만드는 바띡 문양의 본보기가 되었다고 한다. 바띡은 왕궁에서 이 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왕궁주변의 민가로 전해져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현재 저자와 죡자의 Hendri씨와 전통 천연염료 바띡을 연구하여 제품이 2004년부터 생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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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8 Feb 2010 11:41:44 +0900</pubDate>
    <category><![CDATA[초목염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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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천연염색산업의 진흥을 위해]]></title>
    <description>
        최근 천연염색이 각광을 받으면서 전국의 방방곡곡에 많은 염색장인과 동호인이 배출되고 다양한 체험학습이나 전시회와 함께 상업화제품이 시장에 진입되는 등 괄목할만한 저변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lt;br /&gt; 반면에 천연염색이 화학염색에 비해 색감이 미려하고 자연친화적이며 건강에 좋은 장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의미의 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호사가들의 취미나 영세한 장인들의 수공에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첫째, 색소추출의 효율성과 염료의 안정성이 낮고  둘째, 염색공정이 복잡하면서도 염착성이 불량하며 셋째, 염색물의 일광, 세탁견뢰도가 나쁘고 넷째, 염색의 재현성이 낮아 실용화가 어려우며 다섯째, 화학염색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 천연염색을 주도하고 있는 대학교수들의 대부분이 염색화학전공이 아닌 조형예술이나 의상디자인을 전공하분들로 전통적인 염료추출방법이나 염착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과학적인 접근에 한계가 있고 장인들 역시 이 분야의 전문지식이나 수대에 걸처 내려오는 노하우나 기록도 없이 손대중과 눈대중에만 의존하여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lt;br /&gt; 또한 대부분의 장인들이 전문화된 인력이나 시설도 없이 한, 두 사람의 보조인력에만 의존하여 염재구입에서 부터 염료추출, 염색전처리, 염색, 염색후처리, 제품판매에 이르기 까지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하다보니 생산원가가 상승되고 델리버리가 늦어 공정별로 분업화, 기계화 되어있는 화학염색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으며 만성적인 재산성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lt;br /&gt; 이러한 상황에서 다행히 최근에 대구경북천연염색조합이 설립되어 원, 부자재의 공동구매나 제품의 공동판매의 길이 열리게 되었고 인근의 영천시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공연구기관인 천연염색연구소가 설립될 예정으로 되어있어 전 공정의 과학화, 객관화, 표준화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염색의 재현성확립에도 한결음 다가서게 되었다.&lt;br /&gt; 대구경북의 천연염색이 영원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천년의 명성을 이어온 세계적인 명품인 일본의 니시진오리(西陣織)나 인도네시아의 바띡제품을 능가하는 명품을 만들어 내어야 하고 이를 위해 섬유, 화학, 염색, 디자인 등 관련분야의 전문가들이 자기영역에서 최고도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총체적인 협력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 중심에는 연구소가 있어 집중과 선택을 통해 이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lt;br /&gt; 연구소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법인격은 아니지만 돈 먹는 하마로 전락되어 애물단지가 되지 않으려면 시장원리에 의한 조직과 경영은 필수적이며 철저한 차별화를 통하여 지역연구소로 출발하되 전국연구소로 정착되어야 하고 고도로 안정되고 정제된 염료와 조제, 매염재 등의 공급과 각종 시험분석및 염색의 전, 후처리 공정을 수탁, 수행하여 하며 엽계에서 생산된 완제품을 국내외에 판매할 수  있는 온, 오프라인의 네트웤을 갖추어 빠른시일 안에 자립화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lt;br /&gt; 고감성과 환경친화적인 요구되는 국제적인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천연염색의 과확화와 산업화는 시급한 과제이며 염료의 안정화 기술 개발과 표준화 및 기계화를 통한 염색의 재현성 확립만이 우리의 전통염색이 화학염색의 일정부분을 대체하는 새로운 녹색성장산업으로 발전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며 나아가 지역경제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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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7 Feb 2010 16:31:37 +0900</pubDate>
    <category><![CDATA[오픈 다이어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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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화통도감]]></title>
    <description>
        고려시대 최무선 화통도감 되살아났다 &lt;br /&gt;  &lt;br /&gt; [ⓒ &amp;#39;글로벌 석간 종합일간지&amp;#39; 아시아투데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복원된 화통도감과 무기제조 모습. &lt;br /&gt; &lt;br /&gt; &lt;br /&gt; 고려시대 세계 최고(最古)의 로켓무기 ‘주화(走火)’와 ‘화약무기 10종’이 국내 최초로 3차원 디지털 기술로 복원됐다.&lt;br /&gt; &lt;br /&gt; 대전시는 고려 말 화약무기 제조기관 ‘화통도감’과 최무선 장군을 중심으로 개발된 당대 최고의 화약무기류 및 세계 최초의 화기전문부대 ‘화통방사군’에 대한 문화원형 디지털 콘텐츠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7일 밝혔다.&lt;br /&gt; &lt;br /&gt; 문화원형 사업은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디지털로 복원해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소설 등 다양한 창작소재로 활용하는 사업으로 대전시 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서 우수과제로 선정돼 국비 2억원 지원받아 추진한 사업이다.&lt;br /&gt; &lt;br /&gt; 이번에 복원된 최무선의 ‘화통도감’에서 개발한 화약무기류와 ‘화통방사군’은 로켓전문가인 前항공우주연구원장 채연석 박사, 동양 고대복식 전문가인 동덕여대 임명미 교수 등 국내 최고 전문가의 철저한 고증 아래 KAIST CT대학원 디지털복원 팀 등이 참가해서 학술적 가치는 물론, 창작소재를 활용한 유무형적 산업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lt;br /&gt; &lt;br /&gt; 이번 문화원형 사업을 통해 개발된 결과물은 2D,3D 그래픽, 발사실험 동영상, 팩션 시나리오 등이 있다. &lt;br /&gt; &lt;br /&gt; 특히, 이번 결과물은 대전문화산업진흥원에서 제작중인 최무선의 로켓무기 ‘주화’가 현대의 나로호 로켓으로 변화돼 우주로 날아간다는 내용의 ‘진포대첩 3D 애니메이션’ 작품에 KAIST CT대학원의 스토리텔링 기술이 접목돼 제작된다.&lt;br /&gt; &lt;br /&gt; 대전시 관계자는 “문화원형 결과물을 IAC와 전국체전 개막식에 선보일 계획”이라며 “특히, ‘진포대첩 3D 애니메이션’은 우리나라의 항공우주기술이 600년 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선조의 지혜임을 IAC를 통해 외국인에게 홍보해 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lt;br /&gt; &lt;br /&gt; 한편, 이번 결과물에 대해 현재 ‘최무선 과학관’을 건립 중인 경북 영천시와 매년 ‘최무선 진포해전 전승제’를 개최하고 있는 전북 군산시 등에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lt;br /&gt; &lt;br /&gt; 또 최무선과 세계 최초의 화기전문부대인 ‘화통방사군’에 대한 소설 출판이 진행 중에 있으며, 전문출판기업인 두산동아에서 교육관련 콘텐츠로 활용한다. /대전=이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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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2 Feb 2010 15:26:14 +0900</pubDate>
    <category><![CDATA[최무선 장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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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과학소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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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학을 좋아한 소년 &lt;br /&gt; 최무선장군은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 마단&lt;br /&gt; &lt;br /&gt; (永川郡琴湖邑五溪洞麻丹里―옛 이름은 창수리)에서 고려 충숙왕(忠肅王) 13년경(서기 1326년경에) 광흥창사(廣興倉使―벼슬 이름)를 지낸 최동순(崔東洵)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고려 연산부원군(燃山府院君) 최한(崔漢)의 6세손이다. &lt;br /&gt; &lt;br /&gt; 공은 태어나면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사리에&lt;br /&gt; &lt;br /&gt; 밝았으며,  소년 시절에 즐겨  읽은  책은 과학과 기술에 관계되는 각종 방서(方書)이었고, 남다른 생각을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그는 한문뿐만 아니라 중국어에도 능통하였고, 군사(軍事)와 병기(兵器) 등에도 많은 열의와 취미를 가져 당시, 유학(儒學) 또는 불교에 힘쓰던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lt;br /&gt; &lt;br /&gt; 자라서 벼슬자리에 나가서도 당시에 온 나라 안을 흉흉(匈匈)하게 만드는 왜구의 노략질을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던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2) 화약 제조법을 기어이 알아냄&lt;br /&gt; &lt;br /&gt; 그때의 왜구는 시일을 정해놓고 일시에 몰려드는 것이 아니고,  산발적으로  갑자기 각처에서 날뛰는 무리였으므로  비록  해안에 많은 군사를 배치해 둔다  해도 이를 무찔러 쳐부수기란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었다.  날마다  왜구 격퇴의  묘책을 짜내기에 골몰하던 공의 뇌리(腦裡)에 선뜻 떠오른 것은 화약의 사용이었다. 염초와 유황과 목탄을 섞어 만들어 폭발시키는 화약은 이미 중국대륙에서 인마(人馬)를 분살(焚殺)함에 이용되고 있었다.  고려에서도 그중 얼마를 얻어와  간단한 병기와 화희(火戱―불꽃놀이)의 설치(設置)에 쓰고 있었다.&lt;br /&gt; &lt;br /&gt; 그는 이 화약을 많이 만들어 배에 싣고 바다에 나아가 왜구가 우리 땅에 상륙하기전에 그 배를 불태워 섬멸하는 길이야말로 왜구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묘안임을 깨닫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화약의 제조법은 중국에서 비밀에 붙여 외국에 가르쳐 주지 않았다. &lt;br /&gt; &lt;br /&gt; 그후 공은 주야로 화약의 제조법을 연구하였으나 무엇보다도 진토(塵土:마루밑 같은 곳에 많은 먼지가 앉은 흙) 중에서 염초를 구워내는 기술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를 알아내기 위하여 염초 굽는 기술자를  백방으로   찾았다.  당시 고려의 수도 개성의 출입구인 예성강(禮成江)에는 중국 상선이 가끔   왕래했는데 공은 중국배가 닿기만 하면 빠짐없이 그들과 접촉하여 그속에 염초 기술자가 있지 않나 살펴보곤 했다.&lt;br /&gt; &lt;br /&gt; 우왕(禑王) 2년(서기 1376년) 경, 그 나이가 50세를 넘었던 어느 날  강남(江南)에서 도착한 배에 이원(李元)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염초 만드는 기술에 어느 정도 소양을 갖고 있었다.&lt;br /&gt; &lt;br /&gt; 이를 짐작한 공은 곧 여러모로 후한 대우를 베풀어 우선 같은 마을에  머물러  살게 하고, 끝내는 자기 집에서 숙식(宿食)을 제공하여 마음껏 후대하였다.   공의 후대와 성의에 감동한 이원은 수십 일만에 마침내 스스로 간직하고 있던  염초  제조술을 공에게 가르쳐 주고, 공은 가동(家동 : 집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를 실시(實施)케 하였던 바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때  공의  감격과 환희야 어찌 글이나 말로써 표현할 수 있으랴!  이러한  경로를  거쳐  우리 나라에서도 화약을 독자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3) 초연 속에 사라지는 왜구들&lt;br /&gt; &lt;br /&gt; 감격과 환희에 찬 공은 곧 이 사실을 도당(都堂   : 고려시대  최고관청)에  보고하고 아울러 화약을 대량으로 제조하기 위하여 화통도감(火통都監)이란 새로운 관청의 설치를 건의(建議)하였던 것이다. 당시 과학 기술에 무지한   위정자(爲政者)들은 공을 비웃고, 심지어 국가를 기만하는 자라고 비방까지 했다 그러나  국가와 민생을 걱정하는 공의 열의가 이것으로 식을 수는 없었다. 몇번이고 상주(上奏)하여 반대하면 할수록 더욱 더 열의와 결심이 굳어져 마침내 우왕 3년(1377년) 10월에 공의 열성에 감동된 왕과 대신들은 화통도감 설립을 명하였고 공에게 이의 운영권을 맡겨 제조직(提調職)을 줬다. 용기 백배한 공은 드디어  화통(火통) · 화전(火箭)·대장군(大將軍)·이장군(李將軍) 등 각종 화약병기를 만들어 성대한 시방식(試放式)을 거행하였다. 전일에 그토록 반대했던 사람들도 그 병기의 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약병기를 갖춘 공은 다시 중국인으로 전함(戰艦)제조에 능한 자를 모아드려 많은 배를 만들었다. 왜구 침법을  일격(一擊)에 분쇄할  준비는 다 갖춰졌다. 왜구를 상륙전에 해상에서 무찌를 계획으로 전함 건조에도  이처럼 힘썼던 것이다. &lt;br /&gt; &lt;br /&gt; 드디어 때는 왔다. 화통도감 설치 후 3년만인 우왕  6년(서기 1380년) 8월에 손시제(孫時制)를 괴수로 하는 왜구선 500여척이 전라·충청 양도 해안을 노략질하려고 먼저 진포(鎭浦 : 지금의 서천, 금강의 어귀)에 닻을 내렸다. &lt;br /&gt; &lt;br /&gt; 그들은 배의 안전을 기하기 위하여 큰 밧줄로 배들을 서로 묶어 마치 해상의 대요새(大要塞)와 같이 만들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는 몇만 남아 배를 지키고 나머지는 각기 상륙하여 각 주군(州郡)으로 흩어져 마음대로 노략질을 자행했던 것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심덕부(沈德符)를 도원수(都元帥), 나세(羅世)를  상원수(上元帥),  공을  부원수(副元帥)로   임명하고 이때야말로 화약을 실용할 기회라하여 백여 척(혹은 80여척이라고도 함)의  배에 화약병기를 가득 싣고 나가 싸우게 하였다. 진포에 이른 공은 50평생 쌓이고 쌓였던 염원(念願)을 마음속으로 되뇌이면서 적선을 향해 손수 만든 화포와 화통에 불을 질렀다. 순간, 하늘을 치솟는 붉은 연기와 함께 적선은 불붙기 시작하였다. &lt;br /&gt; &lt;br /&gt; 큰 밧줄로 튼튼히 묶인 배들은 흩어져 도망갈 수도 없고, 불길은 이 배에서 저배로 옮아가 순식간에 하나도 남기지 않고 집어 삼켜 버렸다. 이에 괴수 손시제를 비롯하여 배를 지키던 적도(賊徒)들은 거의 타죽거나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 얼마나 장하고 통쾌한 광경이었으랴! 육상 각지에서 노략질하던 잔당들도 동년 9월, 지리산 중턱 운봉(雲峰)에서  이성계 장군에게  섬멸되고, 우왕   9년, 남해의 관음포(觀音浦) 근방에 침입해 온 왜구 이천 사백여명도 공과  정지(鄭地)장군의 화약병기 공격으로 단숨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후 이성계 일파가 집권하자, 화약이 반대당에 이용될까 봐 두려워 창왕 원년에 화통도감을 폐지하고 말았다. 이에 뜻을 잃은 공은 화포섬적도(火砲殲賊圖)와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   및 화포법(火砲法) 등 책을 저술하여 10세 안팎의 아들에게 물려줄 것을 유언하고 일생을 마쳤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고려사, 고려사절요, 태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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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2 Feb 2010 14:46:13 +0900</pubDate>
    <category><![CDATA[최무선 장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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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최무선 장군]]></title>
    <description>
        최무선&amp;lt;화약발명&amp;gt; 장군, 고향&amp;lt;영천시 금호읍&amp;gt;서 부활한다 &lt;br /&gt;  &lt;br /&gt; 76억 들여 과학관 건립&lt;br /&gt;  고려시대 화약을 발명한 최무선 장군이 오늘에 이르러 다시 태어난다. &lt;br /&gt; 영천시는 최무선 장군의 위업과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는 뜻에서 &amp;#39;최무선 장군 과학관 건립&amp;#39; 계획을 추진하고 지난 4일 금호읍 원기리 구 창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기공식을 가졌다. &lt;br /&gt; 기공식에는 김영석 시장과, 김태옥 시의장, 이성환 최무선함 함장 및 대구 영천최씨 대종회와 영천최씨 화수회, 최삼환 최무선 추모사업회장 등과 주민 5백여명이 참석해 장군의 위업을 기렸다. &lt;br /&gt; &lt;br /&gt; 영천시는 76억원(공사비 35억, 내부전시 10억, 보상비 31억원)의 예산을 들여 구 창산초등학교내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500㎡ 규모로 과학관을 건립하며, 오는 12월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과학관에는 화약, 화포체험관, 생가복원, 산책로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관광 자원화를 계획하고 있다. &lt;br /&gt; 마을 주민들은 &amp;quot;늦은 감이 있으나 우리가 널리 알려 자랑으로 삼아야 할 위인이다.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자체가 자부심이 넘친다&amp;quot;면서 &amp;quot;관광객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 동네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amp;quot;고 했다. &lt;br /&gt; 김영석 시장은 &amp;quot;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재평가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과 관광산업의 초석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amp;quot;고 했다. &lt;br /&gt; &lt;br /&gt; 한편 최무선 과학관 건립은 지난 2007년부터 최무선 기념사업준비위원회(위원장 권호락)에서 움직이기 시작, 2007년에 예산을 확보했으나 부지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발생해 사업 자체가 추춤했으나 창산초등학교가 폐교 된다는 소식을 접한 기념사업준비위원회에서 학교 인근 주민들을 설득해 주민 동의를 받아 현 장소에 건립을 하게됐다. &lt;br /&gt; &lt;br /&gt; 최무선 장군은 1326년 금호읍 원기리 마단에서 태어났다. 1376년 염초의 제조법을 알고 원나라 사람으로부터 그 법을 배워 화약을 만들고 화기를 제조했다. &lt;br /&gt; 1380년 왜구가 침입하자 화통과 화포 등으로 왜구 선박 5백척을 전멸시켜, 공신으로 영성군에 봉해지고 삼중대광이 됐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기전 &amp;#39;화약수련법&amp;#39; &amp;#39;화포법&amp;#39; 저술했으며 조선에서도 관직에 있다 1395년에 세상을 떠났다. &lt;br /&gt; &lt;br /&gt; &amp;#39;고려의 이순신&amp;#39; 최무선 &lt;br /&gt; &lt;br /&gt; 화포 무장한 전함 개발 왜선 300척 섬멸시켜&lt;br /&gt; 화약제조 첫 건의 땐 사기꾼 취급받아&lt;br /&gt; 아들도 무기 전문가, 태종 때 대활약&lt;br /&gt; 최무선(崔茂宣·?~1395년)은 영주(永州·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사람으로 일찍부터 무관(武官)의 길을 걸었다. 그가 살았던 고려 말은 왜구의 노략질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무장으로서 그의 경력도 왜구 퇴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amp;#39;천성이 기술에 밝고 방략(方略)이 많으며 병법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던&amp;#39; 최무선은 일찍부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amp;quot;왜구를 제어하는 데는 화약만한 것이 없는데 국내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amp;quot;&lt;br /&gt; &lt;br /&gt; 그의 아버지 최동순은 광흥창사(廣興倉使)를 지냈다. 광흥창이란 관리들의 녹봉을 주관하는 기관이다. 전국에서 쌀 등을 운반해야 했기 때문에 왜구로부터 큰 피해를 입다 보니 최무선은 어려서부터 왜구 퇴치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최무선은 원나라에서 고려를 찾는 상인들 중에 화약을 아는 이를 찾아 동분서주했다. 이런 노력 끝에 그는 마침내 이원(李元)이라는 중국사람을 만나 화약 만드는 법을 알게 된다. 이원을 자기 집에 데려가 수십일 동안 극진히 대접한 끝에 얻어낸 성과였다.&lt;br /&gt; &lt;br /&gt; 이때가 우왕 2년(1376년)이었다. 그는 즉각 화약제조를 조정에 건의했지만 조정에서는 사기꾼 취급을 하였다. 그러나 조금도 굴하지 않는 최무선의 계속된 건의에 감동한 조정은 이듬해 화약 및 화기제작을 담당하는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최무선을 책임자인 제조(提調)로 임명했다. 이미 준비된 화포기술자였던 최무선은 얼마 안 가서 대장군포(大將軍砲) 이장군포(二將軍砲) 삼장군포(三將軍砲) 육화석포(六花石砲) 화포(火砲) 신포(信砲) 화통(火筒) 화전(火箭) 철령전(鐵翎箭) 피령전(皮翎箭) 질려포(�u藜砲) 철탄자(鐵彈子) 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 유화(流火) 주화(走火) 촉천화(觸天火) 등 다양한 포와 화약을 이용한 화살 등을 선보였다. 그 중 주화(走火·달리는 불)는 로켓포의 뿌리로 간주된다. &amp;quot;보는 사람들이 놀라고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amp;quot; 최무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각종 포를 배에 장착한 전함(戰艦)의 제도까지 만들어냈다.&lt;br /&gt; &lt;br /&gt; 우왕 6년(1380년) 가을 500여척을 동원한 왜구의 침략이 있었다. 조정에서는 심덕부를 도원수로 하고 최무선을 부원수로 임명해 직접 화포와 전함을 실험토록 했다. 전함 100여척의 고려수군은 금강 하구에 집결해 있던 왜선 300여척을 일거에 화포로 섬멸시켰다. 살아서 육지로 도망친 왜구들은 병마도원수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사들에게 지리산 자락 운봉에서 전멸당했다. 그것이 바로 이성계가 전라도 남원에서 거둔 황산대첩이다. 이후 왜구의 침략은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된다. 이때의 공으로 최무선은 영성군(永城君)에 봉해진다. 최무선은 &amp;#39;고려의 이순신&amp;#39;이었다.&lt;br /&gt; &lt;br /&gt; 여말선초의 혼란한 정치상황 속에서 최무선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개국공신에는 들지 못했지만 조선건국 후 태조 이성계가 그를 명예직 참찬(參贊·정2품)에 제수하고 1395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성계가 &amp;quot;깊이 슬퍼했다&amp;quot;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개국세력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나 보인다.&lt;br /&gt; &lt;br /&gt; 직접적인 기록은 없지만 당시 이성계세력과 최무선의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최무선이 공을 들였던 화통도감이 1389년(창왕원년) 이성계의 핵심측근인 대사헌 조준의 상소에 의해 폐지됐다는 것이다. 논리는 임시기구인 화통도감을 군기시(軍器寺)에 귀속시키자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 이때는 위화도 회군 직후 이성계가 전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조준의 상소는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도감 폐지로 인해 최무선의 실망감은 컸을 것이다. 그리고 관직에서 물러난 최무선은 초야에 묻혀 지내며 못다 한 화약 및 화기 연구에 전념했던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최무선은 죽으면서 부인에게 화약제조법을 기록한 책을 건네주며 &amp;quot;아이가 장성하거든 이 책을 주라&amp;quot;고 당부했다. 그의 아들 최해산(崔海山·1380년~1443년)은 실제로 화약과 화포에 관한 비법을 익혀 1400년 태종 즉위와 함께 군기시에 특채된다. 아버지를 닮았던지 최해산도 신무기 개발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태종은 또 최무선에게는 우의정 및 영성부원군으로 추증했다.&lt;br /&gt; &lt;br /&gt; 최해산이 군기시에 들어갔을 때 조선의 화약은 4근4냥, 화기 200여기에 불과했으나 태종이 물러나고 세종이 즉위한 세종 1년 화약 6900여근에 화기 1만3000여기로 늘어났다. 불과 2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최해산이 당대 실세 이숙번을 도와 이룩한 성과였다. 게다가 화기개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세종으로부터도 깊은 총애를 받아 그의 관직은 병조참판을 거쳐 중추부 동지사(종2품)에까지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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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2 Feb 2010 11:47:25 +0900</pubDate>
    <category><![CDATA[최무선 장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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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영천의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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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호강 원류지대인 이 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유적이 있음 &lt;br /&gt;  - 골벌소국(骨伐小國)이란 부족국가 형성 &lt;br /&gt;  - 서기 236년 아음부왕이 신라 조분이사금에게 항복하고 영천지방은 절야화군(切也火郡), 신녕지방은 사정화현(史丁火縣)이 되었다.&lt;br /&gt; - 경덕왕 16년(757년) 임고군으로 개칭하였으며, 다시 경애왕 2년(925년)에는 고울부로 개칭하였다가 후에 관하에 도동현과 임천현, 면백현, 이지현으로 칭하였다. &lt;br /&gt;  - 고려초에는 도동, 임천 두 현을 합하여 영주군(永州郡)이라 불렀으며, 성종 14년(995년)에는 수관으로 자사(刺史)를 두었고, 그 후 1383년에 지주사(知州事)를 두었으며, 공민왕때에는 신녕현이 복현 &lt;br /&gt;  - 태종 13년(1413년)에 영주군을 영천군(永川郡)으로 개칭하였고, 지군사를 두었으며 세조 12년(1467년)에 군수를 두었고, 연산군 3년에 신녕이 폐현되어 영천군에 귀속되었다가 연산군 9년에 다시 복현되었다.&lt;br /&gt; - 1522년 군관의 역모로 현으로 격하되었다가 1533년에 군으로 환원 &lt;br /&gt;  - 8도제 당시 경상도 영천군으로 호칭&lt;br /&gt; - 칙령(勅令) 제36호(1896.8.4 공포)로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 영천군이 됨. &lt;br /&gt;  - 부령(府令) 제111호(1913.12.29 공포)로 부, 군, 면 폐합에 따라 신녕군으로 통합. &lt;br /&gt; 신촌면, 지곡면, 화동면의 일부가 통합하여 화북면으로, 고촌면, 청경면이 통합되어 고경면으로 개칭. &lt;br /&gt;  - 영천면을 읍으로 승격 (1읍 10면) &lt;br /&gt;  - 군조례 제194호(1971.6.2 공포)로 화북면 삼창출장소 설치 &lt;br /&gt;  - 대통령령 제6543호(1973.3.12 공포)로 금호면이 읍으로 승격(2읍 9면) &lt;br /&gt;  - 군조례 제567호(1979.4.30 공포)로 영천읍 3개출장소 (동, 남, 북부) 설치 &lt;br /&gt;  - 법률 제3425호(1981.4.13 공포)로 영천읍이 시로 승격 (9개동) &lt;br /&gt;  - 대통령령 제11027호(1983.1.10 공포)로 금호읍 도남동, 청통면 오수, 쌍계동, 화산면 매산동이 영천시로 편입&lt;br /&gt; - 시조례 제197호(1983.2.8 공포)로 도남동을 봉작동에, 오수, 쌍계동을 교동에, 매산동을 명산동에 각각 통합, 행정동 관할구역 변경 &lt;br /&gt;  - 시조례 제281호(1984.8.30 공포)로 시청 소재지를 완산동 1056-3번지에서 문외동 24번지로 이전 &lt;br /&gt;  - 대통령령 제11874호(1986.3.27 공포)로 화북면 삼창출장소가 화산면 귀호동을 편입하여 화남면으로 승격 (1읍 10면) &lt;br /&gt;  - 대통령령 제12007호(1986.12.23 공포)로 임고면 언하, 신기동이 영천시에, 청통면 죽정동 일부가 경산시 와촌면에, 경산시 와촌면 계당동 일부가 금호읍에 각각 편입&lt;br /&gt; - 군조례 제959호(1986.12.31 공포)로 계당동 일부가 금호읍 덕성동에 통합&lt;br /&gt; - 시조례 제364호(1986.12.31 공포)로 언하동과 신기동이 동부동 관할구역으로 조정 &lt;br /&gt;  - 군조례 제1042호(1988.1.1 공포)로 금호읍 덕성동이 덕성1동, 덕성2동으로, 자양면 충효2동을 충효2동과 충효3동으로 행정동 분동 &lt;br /&gt;  - 군조례 제1046호(1988.5.3 공포)로 동이 리로 개칭 &lt;br /&gt;  - 시조례 제437호(1988.5.30 공포)로 시청소재지가 문외동 27번지로 변경 &lt;br /&gt;  - 대통령령 제12557호(1988.12.22 공포)로 청통면 서산리를 영천시에 편입&lt;br /&gt; - 시조례 제470호(1988.12.31 공포)로 서산리가 대전동 관할로 조정&lt;br /&gt; - 군조례 제1092호(1988.12.31 공포)로 화북면 용계, 월곡리가 화남면에 편입 &lt;br /&gt;  - 법률 제4774호(1994.8.4 공포)로 경기도남양주시등33개도농복합형태의시설치등에관한법률로 영천시와 영천군을 통합, 영천시 설치 (1읍 10면 9동)  &lt;br /&gt;  - 영천시조례 제211호(1998.10.2 공포)로 교동과 대전동의 대전 및 서산을 통합하여 서부동으로 하고, 명산동과 대전동의 오미를 중앙동으로 편입하며, 주남동, 봉작동, 영도동을 통합하여 남부동으로조정 (1읍 10면 5동)&lt;br /&gt; [출처] 영천의 역사 - 시청 홈피...|작성자 thalgu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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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2 Feb 2010 11:30:42 +0900</pubDate>
    <category><![CDATA[영천 향토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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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동성로 여왕벌***********윤 호 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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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琴川) 윤 호정의 신작소설 ‘동성로 여왕벌’을  월  일부터 연재합니다. &lt;br /&gt; 작가는 대구섬유산업의 창업 1세대들을 보필하면서 애환을 함께하고 흥망성쇠를 몸소 체험한 산 증인으로 80년대의 시대상황과 지역정서를 주종산업의 명멸과 접목시켜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이 융합된 특유의 유려한 필치로 독자들을 매료시켜 나갈 것입니다.&lt;br /&gt; &lt;br /&gt; 작가 프로필&lt;br /&gt; 금천(琴川)  윤 호정(尹 昊正)&lt;br /&gt; 1942년 경북 영천 출생&lt;br /&gt; 경북중, 고등학교 졸업&lt;br /&gt;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lt;br /&gt; 계명대학교 무역대학원   졸업  &lt;br /&gt;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 전무이사  역임&lt;br /&gt; 대구대학교, 경산대학 겸임교수  역임&lt;br /&gt; 문학예술지 추천 등단&lt;br /&gt; &lt;br /&gt; &lt;br /&gt; 1. 본향의 한 마담&lt;br /&gt;  &lt;br /&gt;  지난해에 일본과 함께 세계수출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한국의 합섬직물수출이 드디어 물량 면에서 일본을 앞지르고 기술수준도 80%까지 따라붙자 일본섬유업계가 비상이 걸려 금년연초부터 단체장들의 대구섬유산지방문이 부쩍 늘어나고 나를 일본의 섬유관련 세미나의 발표자나 산업시찰 명목으로 초청하겠다는 제의도 몇 건이나 들어와 있었다.&lt;br /&gt;  오늘도 세계제일의 합섬직물산지인 일본 후쿠이에서 일본직물조합의 가와이 이사장과 조합이사인 미야자키 사장, 후쿠이섬유협회 고야마 조사부장, 종합무역상사인 이토츄 상사의 다니구찌 전무와 이노우에 한국지사장이 대구섬유업계와 공존, 공영의 길을 모색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을 경유하여 오후 다섯 시 경에 금호호텔에 도착할 예정이고 저녁에는 본향에서 가와이 이사장이 개인적으로 내게 베푸는 연회가 예약되어 있었다. &lt;br /&gt;  금호호텔 인근에도 박정희 대통령이 출입했던 유명한 요정인 춘앵각이 있지만 내가 굳이 섬유회관 옆에 새로 생긴 조그마한 한정식 집을 택한 것은 술값이 요정보다 싼데다 그곳 주인인 한 마담이 나와 는 고향인 영천의 금호국민(초등)학교 동기생이며 철없던 중학교시절의 스쳐간 첫사랑인데다 가오(얼굴)마담인 바둑이가 일본술집의 여급출신으로 일본말을 꾀 잘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lt;br /&gt;  내가 경북견직물조합의 최 상무와 함께 일본사람 다섯을 대동하고 열려있는 대문 안으로 부산하게 들어서며, &lt;br /&gt;  “이리 오너라.” 하고 호기를 부리자 한 마담이 얼핏 내다보더니,&lt;br /&gt;  “아이고 야들아, 알라(애기) 아부지 오셨다, 얼른 안방으로 모셔라.” 하고 외쳤다.&lt;br /&gt;  바둑이와 홍 마담이 버선발로 뛰어내려와 내 팔에 매달리며 우리들을 안방으로 안내 하였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대기하고 있던 아가씨들이 일 열로 서서 살포시 큰절을 하며 기생점고를 마치자 한 마담이,&lt;br /&gt;  “한, 일을 다 통틀어가 봐도 우리 알라 아부지만한 인물이 없네, 보아하니 일본섬유업계의 거물인 것 같으니 일본말을 잘하는 바둑이 니가 알아서 잘 모셔라.” 하고는 산달이 가까워 오는 무거운 배를 안고 인사처럼 내 옆구리를 툭 치고 나갔으며 모처럼 현금계산에다 술값이나 팁을 아끼지 않는 일본손님이라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술상이 들어오기 전 개다리소반에 콩나물죽을 앞에 두고 가와이 이사장이 정색을 하며,&lt;br /&gt;  “권상, 그간 논의되어 왔던 ‘아시아직물회의’ 창설에 관한 협정문에 대구에서 서명을 해주면 바로 타이완과 홍콩으로 가서 서명을 받아 내년 사월 도쿄에서 창립총회를 갖도록 합시다.”라고 했다.&lt;br /&gt;  나는 협정문의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가와이 이사장이 이를 서두는 이유가 무엇인지 석연치 않은 점도 있어 일단 그의 일방적인 독주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우선 속도를 한 템포 늦추기로 작정했다.&lt;br /&gt;  “팩스로 보내주신 협정문을 보니 삼국을 대표하는 직물단체가 일본은 ‘후쿠이현조합’, 한국은 ‘경북조합’, 중국(타이완)은 ‘타이페이조합’, 홍콩은 ‘섬유수입협회’로 되어있던데 홍콩이야 생산을 하지 않으니 상관없지만 한, 중, 일 삼국은 이 지역단체들이 실질적으로 자국을 대표한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비록 상징적이기는 하나 각국의 수도에 ‘직물조합연합회’라는 상위단체가 있고 조직의 명칭에 아시아가 들어가는데 지방조합 이름으로 협정을 맺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양해각서(MOU)만 교환하고 내년에 상위단체명의의 정식협정문 조인과 함께 창립총회를 갖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lt;br /&gt;  가와이 이사장이 일행들과 숙의를 거듭하더니,&lt;br /&gt;  “좋습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권상이 지적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각국이 협정문에 필수적으로 담아야 할 추가적인 내용이 있으면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평소 하던 대로 술값계산을 알아서 하라면서 두툼한 돈지갑을 내게 맡겼다.                                                                &lt;br /&gt; &lt;br /&gt;  나는 이곳 본향에서 가와이 이사장과 이토츄상사 사람들을 단골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별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처음 들어온 기생환갑이 가까워 오는 아가씨들은 팁을 주어 모두 내보내고 바둑이 마담을 불렀다.&lt;br /&gt;  “바둑아, 여기 내 빼놓고는 다 내일모레가 환갑이다, 틀니 해 넣은 사람도 있고 이빨이 없어 잇몸으로 씹는 사람도 있는데 질긴 거는 통 못 자신다, 그러니 실크같이 연하고 보드라운 놈으로 골라서 올려라, 늙은 말이 연한 풀 찾는다는 소리도 못 들어봤나, 그리고 오늘은 꽃빤스 입은 애들은 아예 들이지 마래이.”&lt;br /&gt;  “예 예, 알아서 모시겠심더, 청송꼴짝에서 아침차로 올라온 노란 솜털이 뽀송뽀송한 영계백숙으로 올리겠심더.”&lt;br /&gt;  “진작 그럴 것이지.”&lt;br /&gt;  새로 들어온 아가씨들은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한 앳된 아이들로 풋 보리밭에서 먹는 수박냄새처럼 코끝을 스치는 향기가 달랐으며 하도 어려 보여 농 삼아 물어보았다.&lt;br /&gt;  “너희들 중에 금년에 중학교 졸업하고 여기 바로 온 사람 손들어봐라.”&lt;br /&gt; 일곱 명 중 여섯 명이 손을 들었다.&lt;br /&gt;  “손 안든 너는 뭐고, 작년에 졸업했나?” &lt;br /&gt;  “그게 아이고예, 저는 아직 중학교 재학중이라예.”&lt;br /&gt; 우리는 상을 치며 폭소를 터뜨렸고 나는 이 아가씨의 위트에 감탄하여 일금 만원을 하사하면서 윙크를 띄어 보냈다.&lt;br /&gt; &lt;br /&gt;  이어 임금님 수랏상보다도 더 잘 차린 요리상이 몇 개나 들어오고 그 비싼 양주병이 쉴 사이 없이 오가며 우리말과 일본말이 뒤섞여 시끌벅적한 가운데 누가 치마 밑에 손을 넣었는지 한 아가씨가 기겁을 하고 한걸음 물러앉았다.  &lt;br /&gt;  “쥐새끼가 감 씨를 물고 갈라고 들어 왔는갑다, 감 씨를 빼이면 시집 못간데이, 느그들 모두 조심 해래이.”하고 내가 사태수습을 하자 모두들 까르르 웃었고, &lt;br /&gt;  “고 쥐새끼가 현해탄을 건너온 쥔지 대구 본토박이 쥔지 알 수가 없네, 대구 쥐는 찍찍, 짹짹하고 우는데 일본 쥐는 찍이노, 짹이노 하며 운다며?” 하고 바둑이 마담이 한술 더 뜨자 다시 웃음소리가 온 방안을 들썩이게 했다.&lt;br /&gt;  “자, 자 일본 놈은 나가고 조선 놈만 들어오느라.”하니 모두들 무슨 뜻인지 몰라 나만 멀뚱멀뚱 쳐다봤다.&lt;br /&gt;  “소장님, 그게 무슨 말입니꺼?”&lt;br /&gt;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옛날에 색주가집 대문에 붙은 방인데 비록 몸을 팔더라도 일본 놈한테는 안 판다고 하는 줄 알고 가상히 여겼는데 내용을 알고 본즉 그게 아니고 일을 본 놈은 빨리 나가고 좆이 선 놈은 빨리 들어오라는 말이라나......”&lt;br /&gt;  모두들 손뼉을 치며 파안대소를 했다.&lt;br /&gt;  &lt;br /&gt;  3인조의 출장밴드가 들어오자 제일먼저 미야자키 사장이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멋 떨어지게 불렀고 가와이 이사장은 18번인 ‘대전블루스’를, 나는 가와이 이사장이 좋아하는 우리민요인 ‘한오백년’을 불렀으며 홍 마담은 ‘그 때 그 사람’을 가수 심 수봉이 보다 훨씬 더 잘 불렀다.&lt;br /&gt;  가와이 이사장이,                                                                  &lt;br /&gt;  “어제저녁 서울에서 섬유산업연합회가 주관한 환영회에서 인간문화재가 부르는 정통한국민요를 들어봤는데 권상의 민요솜씨와는 차원이 다르더라.”면서 진반농반을 했다.          &lt;br /&gt;  이 말을 들은 나는 벌컥 화를 내는 시늉을 하며 우리말로,&lt;br /&gt;  “그라면 내가 그 사람보다 못하다 이 말 이가, 지랄하고 자빠졌네, 좆도 모르는 게 불알보고 탱자, 탱자 한다더니 그 까짓게 인간문화재라면 나는 천연기념물이다.”라고 하니 마담과 아가씨들이 박수를 치며 배꼽을 잡았고 우리말을 잘하는 고야마 부장의 통역으로 일본사람들도 박장대소를 했다.               &lt;br /&gt;  밴드를 물리고 술판이 파장으로 넘어가자 또 바둑이가 와이담 한 자락을 내게 청했다.&lt;br /&gt;  “공납금도 안 받고 이런 거 자꾸 가르쳐 주면 안 되는데......”&lt;br /&gt;  “아따, 공납금 드리마 안되능교, 요즘 나도 밑천이 딸리는데 아다라시이(새로운 것)로 한 가지만 해주이소.”&lt;br /&gt;  “나는 가진 게 돈 뿐이니까 현금은 필요 없고 현물로 도고.”&lt;br /&gt;  “현물로요, 그라마 근사한 넥타이 하나 사드리면 되겠능교?”&lt;br /&gt;  “가시나 이거는 가오마담이라 카는기 우예 이래 말귀가 어둡노, 그래가 니 언제 이집 인수&lt;br /&gt;  하겠노, 연분홍 감 씨가 달려있는 조갑지 하나면 된다.” &lt;br /&gt;  “하이고 늙은 말만 연한 풀 즐기는 줄 알았더니 젊은 말도 연한 풀 찾는구나, 내 꺼는 시커멓고 찔겨서 못 먹겠다 이 말씀인데 내일 대구역에 한번 나가보고 시골서 금방 올라온 아주 새마을시러분(촌뜨기 같은) 가시나 하나 목욕재계시켜서 대령하께요.”&lt;br /&gt;  “오냐,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구나, ‘개 씹하는 것도 모르는 교장선생님’ 해주께.”&lt;br /&gt;  “그거는 지난번에 한번 했던 거 아잉교, 새걸로 하나 해 주소.”&lt;br /&gt;  “그랬던가, 오냐 알았다, 자 나가신다.”&lt;br /&gt; &lt;br /&gt;  “대구에서 섬유업을 하는 김 사장이 육십 평생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다.&lt;br /&gt;  일본의 후쿠이로 가기위해 김포공항에서 코마츠행 JAL기를 탔는데 일본입국가드를 기재하자니 전신만신 영어요 일어뿐이라 옆 사람에게 물어, 물어가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성명, 생년월일 등을 적어 넣다가 SEX 난이 나오자 김 사장은 기가 막혔다.       &lt;br /&gt;  일본이 좀 별난 나라라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도대체 일본정부는 뭣 때문에 남의나라 국민들의 부부간 잠자리 횟수까지 알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lt;br /&gt;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한 달에 두 번이라고 &amp;#39;2&amp;#39; 자를 써 넣었다.&lt;br /&gt;  실제로는 한 번도 잘 안되지만......,&lt;br /&gt;  그럭저럭 입국수속을 마치고 사쿠라바시 들머리에 있는 아케보노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나니 무사히 도착하여 긴장이 풀린 탓인지 배가 몹시 고파왔다.&lt;br /&gt;  눈치껏 이리저리 살펴가며 3층에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가긴 했는데 식사시간이 어중간 하여 손님이 한사람도 없었고 식사주문은 해야겠는데 영어고 일어고 간에 한마디도 할 줄 몰라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lt;br /&gt;  그런데 때마침 레슬링 선수처럼 우람한 체격의 서양남자 하나가 들어오더니 뭐라고 쉘라쉘&lt;br /&gt; 라 주문을 하는데 여자종업원이 잘 알아듣질 못하는 것 같았다.&lt;br /&gt;  아마 영어가 아닌 모양이었다.&lt;br /&gt;  그러자 이 서양남자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양손을 벌리면서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허리띠를 풀어 바지를 벌려 들여다보라고 손짓을 했으며 여자종업원이 들여다보고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 뭐라고 주문을 했는데 이윽고 나온 음식을 보니 팔뚝만한 소시지 하나에 큼직한 계란 두개가 나왔다.                                            &lt;br /&gt;  이를 본 김 사장은 무릎을 치면서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lt;br /&gt;  옳거니 나도 저렇게 하면 말이 안통해도 밥은 굶지 않겠구나, 역시 서양 놈은 조선 놈 보다 한수 위고, 일본여자도 한국여자 보다는 머리가 잘 돌아 간다고 생각하며 김 사장도 손짓으로 종업원을 불러 바지를 풀어 보여 주었다.&lt;br /&gt;  종업원이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서 가지고 온 음식을 보니 하느님 맙소사, 겨우 말라비틀어진 고추 하나에, 메추리알 두개만 달랑 있었다.” &lt;br /&gt;  &lt;br /&gt;  술자리가 파하자 우리들이 모두 비틀걸음으로 마루에 나와 구두를 신는데 보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신을 신겨주었고 나는 큰 인심이나 쓰듯이 만 원짜리 한 장을 빼주고는,&lt;br /&gt;  “바둑아, 나는 택시 한대 불러주고 룸넘버 적어준대로 애들 잘 챙겨 보내래이.” 하니 미야자키 사장이,&lt;br /&gt;  “권상, 바둑이가 무슨 의미노 말이무니까?”하고 물었다.&lt;br /&gt;  “고게 무슨 의미노 말인고 하면 박 마담의 입이 강아지 입을 닮아서 붙인 별명인데 즉 바둑이는 개라는 뜻으로 박 마담이 개라면 그 보지도 곧 개보지다 이 말씀이야, 바둑아 내말 틀렸나, 니가 한번 말해 봐라.”&lt;br /&gt;  그런데 일본에는 이런 농담이 없는지 일본손님들은 별 반응이 없었고 보이와 아가씨들만 키들거렸으며 인사를 하러 나온 한 마담이 이를 듣고는 신을 신고 있는 내 어께에 팔매질을 해대며 눈을 흘겼고 가와이 이사장 일행을 맞이한 대구의 첫날밤은 이처럼 질펀한 술판과 걸쭉한 육담으로 깊어갔다.&lt;br /&gt; &lt;br /&gt;  삼천궁의 윤 마담은 배가 불러오자 ‘본향’이라는 조그마한 한정식 집을 개업하여 ‘한 마담’으로 술집 성도 바꾸고 바둑이와 홍 양을 데리고 나와 가오마담으로 앉힌 후 뒷전으로 물러앉아 주방 일에만 관여했다.&lt;br /&gt;  가격이 싸고 음식이 정갈하여 점심시간에는 앉을자리가 없었고 저녁의 술자리도 전속밴드만 없을 뿐이지 예쁘고 교육이 잘된 아가씨들이 많아 항상 흥청거렸으며 동 업계에서는 이제 한 마담도 쥐구멍에 볕이 들었다고 모두들 부러워하는 처지가 되었고 나도 개업선물로 업소용 대형냉장고 두 대를 보냈다.&lt;br /&gt;  또 한 마담은 인건비도 아끼고 음식관리를 철저히 하기위해 주방장을 자청했고 식재료의 납품도 한사람으로 일원화 시켜 현금으로 결제하는 조건으로 사입가격을 대폭 인하시켰으며 원래 솜씨가 짭질밪고 맵질밪아 손님들의 칭찬이 자자한데다 옛날 삼천궁의 단골들도 많이 찾아오고 인도나 중동의 바이어들을 데리고 오면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까지 가능하다 보니 종업원들도 주인을 달리 보았으며 천하를 손안에 넣은 것처럼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요즘 같으면 정말 세상 살맛이 난다고 했다. &lt;br /&gt;  &lt;br /&gt;  한 마담이 밴 아이의 아버지가 섬유수출입조합의 권 소장 즉 ‘나’라는 소문이 몇 바퀴를 돌아 내 귀에 까지 들어온 것은 배가 제법 부르고 얼굴에 기미가 꽉 끼었을 때였다.&lt;br /&gt;  나는 정색을 하며 낮지만 엄한 목소리로 추궁을 했다.&lt;br /&gt;  “나는 당신 손목도 한번 제대로 못 잡아 봤는데 뭣 때문에 내가 아이 아버지란 소문을 내고 다니노, 날 우세시켜서 덕 볼 일이라도 있나?”                                   &lt;br /&gt;  “알라 아부지란 소문이 그렇게도 억울하든교, 진짜 알라 아부지는 대구바닥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섬유업계 회장인데 만약에 소문이 나서 알라를 낳기도 전에 지우라 카면 내 신세는 뭐가 되겠는교, 서울서 내려온 월급쟁이들이야 일, 이년 있다가 올라가버리면 그만인데 그까짓 누명 좀 쓰면 어떤교, 이십년 만에 만난 첫사랑한테 그만한 부주도 못해 주겠는교, 정말 너무합니더.”                                                             &lt;br /&gt;  이건 완전히 적반하장 격이었고 너무나 황당하고 기가 막혀,&lt;br /&gt;  “이것 봐 한 마담, 부주할게 따로 있지 그런 걸 어떻게 부주를 하나, 이 말이 돌아, 돌아 우리 집사람 귀에까지 들어간다면 어떻게 책임질 거야?”&lt;br /&gt;  “못질 것도 없지 뭐, 쫓겨나거든 우리 집으로 오소, 내가 먹여 살릴 테니.”&lt;br /&gt;  “오냐,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모양인데 니 좋을 대로 해라, 다른 거는 못해줘도 내가 작명을 좀 하니까 나중에 알라이름 하나만은 좋은 걸로 지어 주께.” 하고는 어이가 없어 허허 웃고 말았다.&lt;br /&gt;  그때서야 한 마담의 얼굴이 훤히 밝아지며 ‘아이고 우리 알라 아부지요’ 하고 내 목을 끌어안았으며 눈에는 감격의 눈물까지 글썽거렸다.&lt;br /&gt;  이래서 나는 팔자에도 없는 이 집의 알라 아부지가 되었고 마담들로부터는 형부라는 호칭까지 듣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어느 날 영천군청서기로 있는 고향친구가 찾아와 한 마담의 얼굴이나 한번 보겠다고 하여 멀리 있는 본향까지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바둑이가,&lt;br /&gt;  “언니는 몸이 무거워 오늘 못나왔는데 혹시 언니의 임신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느냐?”고 내게 바싹 다가앉아 제법 진지하게 물어왔다.&lt;br /&gt;  “느그들이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아노, 혹시 짐작 가는 영감이 없나?”&lt;br /&gt;  “내가 삼천궁에 처음 왔을 때만해도 점심시간에는 섬유업계 원로들이 자주 왔었는데 그때 특별히 언니와 가깝게 지낸 사람도 없었고 저녁에 아들들이 술 먹으로 오는 줄 알고부터는 발걸음을 끊어버려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lt;br /&gt;  “영감님들이 자주 가는 요정이 어딘데?”&lt;br /&gt;  “자식들은 하룻저녁에 수백만 원의 술값을 써도 영감들이야 돈이 아까워 요정 술을 먹을 수 있나요, 기껏해야 왜식집에나 가지, 점심 먹으로 와도 팁 한번 주는 걸 못 봤는데......”&lt;br /&gt;  “느그 언니 말대로 알라 아부지가 섬유업계 회장이라니 아이를 낳고나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이 친구도 알다시피 언니와 나는 국민학교때 한반에 있으면서 서로 좋아했던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이십년 만에 처음 만났을 뿐이며 내가 한 살 더 많으니까 오빠대접을 해주는 거겠지.” &lt;br /&gt;  “그 시절에 우리는 느그 두 사람을 참 많이도 부러워했지, 선례를 좋아했던 남학생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우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네만 좋아했는데 우리는 반장인 자네가 무서워 선례를 좋아한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질 못하고 속 앓이만 하고 있었지.”&lt;br /&gt; &lt;br /&gt;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네, 삼천궁 삼층에서 언니가 술이 취해 난리를 피우고 소장님이 거기서 주무시던 날 두분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능교?”&lt;br /&gt;  “야가 생사람 잡고 있네, 그날 만취한 언니를 느그들이 데리고 내려갔고 나는 통행금지에 걸려 폭탄주에 곤드레가 되어 옷을 입은 채 쓰러져 잤는데 그 난리 통에 일은 무슨 일.”&lt;br /&gt;  “거기까지는 맞는데 그날 저녁 삼층 안방에 술상을 마련하라 한 것도 언니고,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일어났더니 같이 자고 있던 언니가 보이지 않았고, 또 아침에 두 분이서 청도 집 해장국을 시켜다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우리들은 평소에는 아침밥을 먹지 않고 늦잠을 자거든요.”&lt;br /&gt;  “봐라, 서울서 혼자 내려와 사는 사람 아침밥 먹여가 보내는 것은 당연한일 아니가, 하여튼 나는 느그 언니가 울며불며 횡설수설하던 것 밖에는 기억이 없어, 그리고 내가 아무리 취했어도 통행금지만 없었더라면 나는 택시를 타고 집에 갔을 거야, 호텔도 여관도 아니고 술집에서 자다니 그건 말이 안 되지.”&lt;br /&gt;  “혹시 그날 폭탄주에 필름이 끊어진 거 아잉교, 술 잔뜩 먹고 집에 잘 들어와 놓고는 이튿날 아침에 간밤에 택시를 타고 왔는지, 차를 몰고 왔는지, 차는 어디다 두었는지 새까맣게 모르는 거 그런 경우 말입니더, 출산예정일로부터 거꾸로 계산하면 그때가 틀림없는데......”&lt;br /&gt;  “술이 취해가 주긴 줬는데 어느 놈한테 줬는지도 모르고 나중에 엉뚱한 사람한테 줬다고 자꾸 우겨대는 느그들하고 내가 똑 같은 줄 아나,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퍼떡 따라라, 느그 언니 얼굴한번 볼라고 불원천리 찾아온 손님 술 고프시겠다.”&lt;br /&gt; &lt;br /&gt; 2. 삼천궁의 윤 마담                                                   &lt;br /&gt;  &lt;br /&gt; 내가 서른셋의 나이로 상공부 산하의 한국수출입조합 대구합동사무소장으로 내려오자 대구무역업계가 잠시 술렁거렸다.&lt;br /&gt;  지역신문에 난 프로필을 보면 우선 나이가 만으로 따져 서른한 살에 불과했고 국회의원비서관 출신에다 아직 학위를 받지는 못 했으나 박사과정을 이수했으며 한국최대의 인맥집단인 KS마크(경북고, 서울대)이기 때문이었다. &lt;br /&gt;  수출입조합은 매 수출입건마다 승인서를 발급하고 일부품목은 수출검사까지 했으며 수출 질서유지 측면에서 독점수출권, 쿼터, 자율규제 등의 각종 법적제한조치를 관리하는 한편 주요 해외시장에 사무소를 두고 정보를 독점했기 때문에 초기 무역업체의 입장에서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무서운 존재였다.&lt;br /&gt;  사무실에는 난 화분이 수없이 들어오고 내가 인사를 나간 기관이나 업체에서는 나와 혈연, 지연, 학연을 따지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업체의 임직원들이 찾아와 저녁초대를 했으나 이를 정중히 거절하느라고 진땀을 빼기도 했다.&lt;br /&gt;  그러나 소그룹에서 상견례삼아 초대하는 저녁식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업계의 실상을 파악하고 정보를 얻는 대는 안성맞춤이었으나 섬유수출경기가 워낙 좋은 탓인지 모든 모임을 거의 요정에서 하고 있어 거북하고 씁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lt;br /&gt; &lt;br /&gt;  그날은 대구최대의 직물수출업체인 ‘영남무역’의 초대를 받아 대구종로에 있는 ‘삼천궁’이란 요정을 찾아갔는데 가오마담인 ‘윤 마담’과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동시에 얼어붙어 말문을 열지 못했다.&lt;br /&gt;  아무리 산천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철부지시절의 첫사랑을 몰라볼 리가 없었고 그 서글서글한 눈매하며 영화 자유부인에 나오는 여배우처럼 왼쪽입술아래에 있는 녹두알만한 붉은 점이 나에게 확신을 심어 주었으며 분명 윤  마담이 아닌 바로 ‘안 선례’였다.  &lt;br /&gt;  선례와 나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었으나 피차가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잘 몰랐으며 기껏해야,&lt;br /&gt;  “나는 경북중학에 갈 테니 니도 제일여중에 꼭 합격해야 한다.”는 말 밖에 못 했으나 이런 소망이 뜻대로 이루어지자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져 대구에서는 선례의 하숙 밥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빵집과 자장면 집을 드나들기도 했으며 대부분의 비용을 그녀가 부담했고 금호에서는 강 건너 과수원길이나 보리밭골에서 사과서리를 하며 서툰 스킨쉽으로 남몰래 풋사랑을 곱게 물들여갔다.&lt;br /&gt;  우리 집은 농촌에 있으면서도 한 뼘의 전답도 없이 찢어지게 가난했으나 선례네 집은 큰 과수원에 일본식 가옥이었고 그녀의 아버지가 도의원에 입후보했을 때는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문 윌리스 찝차를 타고 다녔으며 대구의 하숙집에서 우리의 밀회가 들킨 이후 선례는 본가에 들어가 한동안 기차통학을 했고 금호역이나 대구의 시내버스 안에서 더러 마주치기도 했으나 늘 나를 외면했으며 이런 날은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뿌리며 어금니를 깨물었다.&lt;br /&gt; &lt;br /&gt;  영남무역의 오 전무가 몇 번을 불렀으나 윤 마담이 나타나지 않자,&lt;br /&gt;  “윤 마담이 오늘 영천장에 콩팔러 갔나 아니면 달거리 하는 날이가, 서방님이 오셨는데도 와 코빼기도 안 보이노, 냄새나도 괜찮으니 그냥 깨끗하게만 씻고 빨리 들어오라고 해라.”하며 농을 걸었다.&lt;br /&gt;  바둑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이가 좀 든 아가씨가,                                      &lt;br /&gt;  “언니는 몸이 좀 아파서 오늘은 못 들어와예.”라고 했다.&lt;br /&gt;  “와, 어디가 아픈데, 보지 아프다 카더나, 그라마 내가 가죽 침 한대만 놔주면 대번 낫는데......”&lt;br /&gt;  “아이고 전무님도, 가죽침도 침 나름이고 병도 병 나름이지 여자 가슴아픈거를 누가 무슨 수로 낫수겠습니꺼?”&lt;br /&gt;  “야가 지금 무슨 소리 하고 있노, 그거는 더 쉽다, 여자 가슴아픈기사 그냥 손으로 가슴을 살살 만져주고 몇 번 빨아주면 대번 낫었뿐다”&lt;br /&gt;  “아이고 내가 못살아, 우리는 여자 아인교 남사시럽구로, 마 그만하고 술이나 잡수소.”&lt;br /&gt; &lt;br /&gt;  나는 선례를 만난 충격에 말을 잊고 주는 술만 꾸벅꾸벅 받아마셨다.&lt;br /&gt;  “권 소장, 내 막내 동생과 친구라니 하는 이야기인데 무역은 잘 아실 테고 대구산지에 온 김에 섬유를 원사에서부터 준비, 제직, 염색가공까지 철저히 배워가 가이소, 앞으로 세상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겁니다, 그리고 권 소장도 언젠가는 섬유공장을 가지고 직접 무역을 해야 안 되겠습니까, 가능하면 서울 올라가지 말고 대구서 제대를 하이소, 지금까지 대구섬유는 일본섬유를 모방만 해왔는데 이제 일본섬유를 질적으로 추월하고 능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lt;br /&gt;  이런 일은 권 소장과 같이 때가 묻지 않고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젊은 엘리트들이 해내야지 대구의 섬유관련기관이나 연구소에는 인재가 너무 없어요, 공무원 퇴물들이 앉아가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못하면서 일에는 등신이고 돈에는 귀신들이니......”&lt;br /&gt;  “저한테는 과분한 말씀입니다만 깊이 명심 하겠습니다.”&lt;br /&gt;  “그리고 우리 배 회장님을 자주 찾아뵙고 고견도 듣고 해외시장정보도 전해 드리고 하이소, 별명이 등소평인데 연세가 내일모레 팔십이라도 아직 정정하십니다, 대구에서 섬유 밥을 제대로 먹을라 카마 우리회장님 눈 밖에 나면 안 됩니다, 우리 회사는 직기가 만대에 하청공장만도 수백 개나 되고 연간수출이 섬유부분만 이억 불이 넘는 삼십대 재벌입니다, 즉 우리회장님이 대구섬유업계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무원이고 섬유업자고간에 우리회장님 앞에만 서면 숨도 재대로 못 쉬고 말을 더듬거리는데 권 소장은 인사를 하러 와서 눈 똑바로 뜨고 할 말 다하고 심지어 회장님의 의견에 ‘노’라고까지 하고 갔다고 칭찬이 대단했습니다.”&lt;br /&gt;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이쁘게 봐 주셨다니 황송할 따름입니다.”&lt;br /&gt;  “오늘저녁도 회장님께서 권 소장 밥 한번 사 드리라는 말씀이 있어서 마련한 자립니다만  부장들을 내 보낼까 하다가 회장님의 특별한 당부가 있어서 내가 나왔습니다, 일본은 종합상사를 통해 경쟁국의 생산이나 수출관련정보를 거울 보듯이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우리는 일본이나 중국(타이완)에 관해 까막눈이니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지요, 거기다가 우리들끼리의 경쟁은 좀 심합니까,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무슨 좋은 방안이 없겠습니까?”&lt;br /&gt;  “우선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하는데 현재 대구의 직기가 기종별로 몇 대인지 월간 품목별 생산량은 얼마인지 등을 파악한 후에 섬유정보센터를 설립해서 신문, 잡지, 전문서적 등의 인쇄정보부터 수집하는 한편 해외의 코트라나 상사주재원들에게 정보수집비용을 지불하고 시장정보를 입수하여 대구에서 재가공해서 업계에 공급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인건비나 유지비에 막대한 예산이 드니 그게 문젭니다.”&lt;br /&gt;  “그런 건 중앙정부나 경북도에서 부담해 줘야지......”&lt;br /&gt;  “그러시다면 정식으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상공부에 백억 정도의 예산신청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정부 돈 백억을 받으려면 우리도 백억을 내놔야만 가능하며 경제기획원과 국회에 로비가 필요합니다.”                                             &lt;br /&gt;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우리회장님과 잘 의논해서 권 소장이 한번 추진해 보이소, 그런 게 권 소장이 할 일이지 책상머리에 앉아 도장 찍는 거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 아인교,&lt;br /&gt; 중앙부처나 국회에 전신만신 대구사람들인데 로비야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앞장 설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lt;br /&gt;  “만약 대구섬유업계에서 백억을 목표로 모금을 한다면 얼마나 모을 수 있으며 영남무역에서는 어느 정도 부담할 수 있습니까?”&lt;br /&gt;  “잘해야 삼십억 정도 모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가 대구섬유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십퍼센트이니 그 정도 선에서 우리도 부담하겠습니다.”&lt;br /&gt;  “그러면 나머지는 전경련이나 화섬협회의 지원을 받아야겠군요.”&lt;br /&gt;  &lt;br /&gt;  “야 이거 우리이야기만 너무 많이 했네, 홍 양아 니는 성이 뭐고?”&lt;br /&gt;  “홍 양 성이 홍가지 양가겠습니꺼?”&lt;br /&gt;  “아따 고년 입 한번 야물구나, 그래 니는 화교학교 나와가 대만유학까지 했다면서 무슨 도화살이  끼어가 여기까지 왔노?”              &lt;br /&gt;  “그게 도화살인지 망신살인지는 몰라도 그 사연은 열권짜리 대하소설로 엮어도 한참 모자랍니더.”&lt;br /&gt;  “그래, 그 이야기는 다음에 듣기로 하고 오늘은 ‘나쁜년 시리즈’ 그거 한 번 더 해봐라, 안 들으니 자꾸 잊어버려서, 이 세상에서 가장 못됐고 나쁜 년은?” &lt;br /&gt;  “줄듯, 줄듯 하면서도 안 주는 년”&lt;br /&gt;  “그것보다 더 못됐고 나쁜 년은?”&lt;br /&gt;  “호텔까지 가서도 안 주는 년”&lt;br /&gt;  “그것보다 더, 더 못됐고 나쁜 년은?”&lt;br /&gt;  “자기도 안 주면서 남보고도 못 주게 하는 년”&lt;br /&gt;  “그것보다 더 못됐고 더 나쁜 당장 때려죽일 년은?”&lt;br /&gt;  “주지도 않고 줬다고 소문만내고 다니는 년”&lt;br /&gt;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쁘고 착한 년은?”&lt;br /&gt;  “밥도 사고 떡도 주는 년”&lt;br /&gt;  “고것보다 더 이쁘고 착한 년은?”&lt;br /&gt;  “호텔비도 내고 용돈까지 주는 년”&lt;br /&gt;  “고것보다 더, 더 이쁘고 착한 년은?”&lt;br /&gt;  “자기 것도 주고 친구 것도 맛보라고 하는 년”&lt;br /&gt;  “고것보다 더 이쁘고 더 착하고 표창 받아야 할 년은?”&lt;br /&gt;  “싫다할 때 깨끗이 물러나는 년”&lt;br /&gt;  “홍 양이 하는 ‘년 시리즈’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단 말씀이야, 오늘은 서울서 오신 총각선생님을 잘 모셔야 한다.”&lt;br /&gt;  “진짜로 총각이면 총각딱지는 내가 책임지고 떼 드리겠습니더.”&lt;br /&gt;  “총각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lt;br /&gt;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요, 소장님이 우리 집에서 연애하기는 ‘트’자에 리을을 한 것 같습니더, 아까 보니 윤 마담 언니의 눈치가 이상하던데 혹시 우리언니가 첫사랑 아잉교?” 하고 바둑이가 끼어들었다.&lt;br /&gt;  “첫사랑은 무슨 첫사랑, 전혀 예상치 못하고 고향사람을 만났으니 조금 당황했겠지요.”&lt;br /&gt;  &lt;br /&gt;  윤 마담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lt;br /&gt;  집안이 망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동안 어디서 무었을 하며 어떻게 살다가 술집마담이 되었을까, 남편이나 자식은 있을까, 현재의 삶도 많이 고단할 텐데, 첫사랑이 나보다 잘돼있으면 배가 아프고 못돼있으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던가, 하여튼 마음이 편치 않았다.&lt;br /&gt;  염색조합의 장 상무와 함께 두 번째 삼천궁을 찾았을 때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우리 방에도 들어왔지만 나에게 눈길을 주거나 말을 걸지 않았으며 세 번째는 내가 미리와 기다리다가 메리야스조합의 문 상무가 부친이 위급하여 못 온다는 전갈을 받은 후 커피한잔만 얻어 마시고 일어서니 바둑이가, &lt;br /&gt;  “삼층에 있는 안방에 간단히 술상을 마련했으니 그리로 가입시더”라고 했다.&lt;br /&gt;  나는 혼자서는 술을 먹지 않기 때문에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바둑이의 손에 이끌려 3층으로 올라가니 처음 보는 어린 아가씨가 조그마한 술상을 들고 들어왔으며 장롱과 화장대, 문갑 등이 있는 것을 보니 여자들의 숙소인 것 같았고 3층 전체가 아파트처럼 꾸며져 있었다.                                                                      &lt;br /&gt;  “오늘 처음 나온 아가씬데 잘 부탁하입시더”하며 바둑이는 내려가고 우리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아무 대화도 없이 술만 마셨으며 나는 평소의 배나 되는 팁을 아직 솜털이 송송한 이 아가씨에게 미리 주었다. &lt;br /&gt; &lt;br /&gt;  위스키 한 병이 거의 바닥을 보일 즈음 윤 마담이 나타나 혀 꼬부라진 소리로,&lt;br /&gt;  “야- 권 영환, 니가 그리 잘났나, 니가 뭔데 나를 이래 비참하게 만드노, 서울대학 나와서 출세해가 부잣집에 장가가서 잘묵고 잘사니 내같은 거는 눈에 보이지도 않제, 대구바닥에 깔린 기 술집인데 와 우리 집에 들락거리노, 옛날에 우리아버지한테 당한 거 내게 복수 할라고 오나, 아니면 내 꼬라지를 보는 게 고소하고 재미있어서 오나, 말 좀 해봐라 이 문둥아, 사람이 우예 수십 년 만에 만나가 그동안의 안부도 한번 안 물어 보노, 우리가 부모죽인 원수지간이가, 맞고소 질을 한 사이가, 바둑아 여기 맥주 한 병 갖고 온나 보자 속에 천불나 못살겠다.”&lt;br /&gt;  “아무래도 작정을 하고 나를 붙들어 놓은 것 같은데 속에 있는 이야기 다 꺼내놔 봐라, 나도 처음 보는 순간 무척 놀랐고 마음이 아팠으나 자네가 눈길 한번 안주고 아는 척도 안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노, 그러니 다른 말 하지 말고 오늘은 니캉내캉 술 한잔하면서 그간에 맺힌 거 있으면 훌훌 다 털어버리자.”   &lt;br /&gt;  그러자 윤 마담은 ‘앵-’하는 싸이랜 소리를 내며 참았던 울음보를 터뜨렸고 아가씨들이 몰려와,&lt;br /&gt;  “언니야 와이카노, 점잖은 손님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고, 술은 어데서 묵고 이방에 와가 술찌기 값을 하노, 야들아 이리 와서 언니 좀 데리고 가자.”&lt;br /&gt;  “그냥 두고 술상이나 새로 봐 주시요.”&lt;br /&gt; &lt;br /&gt;  아침에 눈을 뜨니 전혀 낯선 곳이었다.&lt;br /&gt;  간밤의 일을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윤 마담이 울고불고 난리를 친 것까지는 알겠으나 그다음부터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양복은 말짱하게 옷걸이에 걸려 있었으며 옆자리에 여자의 채취가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나 애써 이를 지워버렸다.&lt;br /&gt;  일어나 속옷 바람으로 앉아 담배부터 한대 물고는 어떻게 하면 이 집을 가장 품위 있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고 궁리중인데 윤 마담이 해장국을 겸상으로 차려왔다.&lt;br /&gt;  해장국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린 내가 간밤의 술값을 계산하겠다고 하니 정식으로 상을 차린 것도 아니니 계산할 필요가 없다면서 오늘은 현충일이라 요정도 일 년에 한번 쉬는 날이니까 교외로 바람이나 쏘이러 나가자고 했다.&lt;br /&gt;  그리고는,&lt;br /&gt;  “간밤에 내가 여기 와서 잠자리도 봐주고 옷도 벗겨주었는데 기억이 나요?” 하고 물었다.&lt;br /&gt;  “전혀 기억이 없는데......”하고 내가 고개를 저으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리며 야릇한 웃음을 흘려보냈다.                                                          &lt;br /&gt;  우리는 택시를 타고 팔공산을 한 바퀴 돌아 옛날 추억이 깃든 동촌의 출렁다리를 건너 유원지로 가서 어느 방갈로를 찾아들었다.&lt;br /&gt;  “아이들은 몇이나 두었어요?”&lt;br /&gt;  “아들만 둘인데 큰놈은 벌써 서울서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어.”&lt;br /&gt;  “욕심도 많으셔라, 이름은?”&lt;br /&gt;  “세빈이, 재빈이라고 하지”&lt;br /&gt;  윤 마담은 눈물을 찍어가며 구절양장같이 길고도 설운 지난날을 퍼 널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선례의 아버지는 도의원선거에서 떨어지자 홧병으로 돌아가셨고 과수원도 날아가 집안이 졸지에 풍지 박산이 되었으며 영어에 소질이 있어 이화여대 영문과에 입학은 했으나 일 년도 못 다니고 내려와 친정식구들을 살려보겠다고 스무 살 꽃띠에 서문시장에서 포목점을 하는 30대 후반의 돈 많은 홀아비에게 재취로 시집을 갔다고 한다.&lt;br /&gt;  처음에는 나이 많은 신랑으로부터 귀여움도 받고 친정에 도움을 주기도 했으나 날이 갈수록 친정으로 돈이 새나간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고 2년이 되도록 아이마저 생기지 않자 그나마 눈곱만큼 주던 친정식구들의 생활보조비도 끊어 버리고 쌀이나 반찬거리를 직접 사들고 들어오기에 이르러 더 이상 결혼생활을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lt;br /&gt;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이혼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친정으로 살림을 빼돌렸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쓰고 위자료 한 푼 없이 쫓겨나 당장의 호구지책이 막연했는데 때마침 요정 아가씨들을 상대로 일수놀이를 하는 친척 아주머니가 삼천궁에 주방장보조 일자리를 알선해 주어 숙식을 하며 주방 일을 돕고 청소와 빨래까지 하게 되었다.&lt;br /&gt;  서너 달이 지나 주방 일과 요정풍속도에 제법 익숙해졌을 때 어느 날 아가씨가 부족하여 주인마담에게 등이 떠밀려 손님방에 들어가 본 것이 계기가 되어 낮에는 주방일, 밤에는 접대부노릇을 하며 자장면 한 그릇 안 사먹고 팬티까지 기워 입어가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예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시원스럽게 잘난 인물에다 사교성과 카리스마 까지 갖춘 덕분에 주인의 눈에 들어 삼천궁에 발을 들여 놓은 지 5년 만에 주방과 아가씨들을 총괄하는 가오마담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lt;br /&gt;  그 모진 세월이 어느덧 10년, 그간 모은 피 같은 돈으로 곧 조그마한  밥집을 하나 내겠다며 긴 이야기를 마무리 했고 나는 마스카라로 얼룩진 그 입술에 처음으로 깊은 입맞춤을 했으며 독립을 하면 어떤 형태로든지 힘껏 돕겠노라며 등을 토닥거려 주었으나 윤 마담은 내 무릎에 엎드려 섧디섧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lt;br /&gt; &lt;br /&gt; 3. 금향각의 민 마담                                                    &lt;br /&gt;  &lt;br /&gt;  본향의 한 마담이 사내아이를 순산하고 한 달여의 산후조리를 마친 후 개선장군처럼 나타나자 나는 약속대로 그 아이에게 ‘형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포대기라도 하나 사라며 약간의 축하금도 주고 금호호텔의 중식당에서 근사하게 저녁도 샀다.&lt;br /&gt;  “이제 어떡할 건데, 일을 다시 시작할건가?”&lt;br /&gt;  “자식이 생겼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야 공부도 시키고 나중에 재산도 좀 물려줄 것 아이가.”&lt;br /&gt;  “알라 아부지도 좋아 하고 이름도 잘 지었다 카드나?”&lt;br /&gt;  “처음 알라를 가졌다고 했을 때는 믿지 않다가 배가 불러오니 의심을 하더니만 알라 얼굴을 보더니 지금은 입이 영천장 바소쿠리만해가 이름도 괜찮다 카고 큰집을 하나 사줄 테니 가게도 옮기라고 해서 지금 막 계약을 하고 오는 길이다.” 하고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lt;br /&gt;  “살판났구나, 이제 아이를 낳았으니 진짜 알라 아부지가 누군지 말해봐라.” &lt;br /&gt;  “아직은 말 못한다, 이야기 하면 당신은 기절했뿐다, 형빈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려면 출생신고를 해야 될 거 아이가, 그때 가서 이야기 해주께.”&lt;br /&gt;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lt;br /&gt;  “섬유업계 회장이라면 나이가 많을 텐데 건강은 어떻노?”&lt;br /&gt;  “나이는 아직 육십도 안됐는데 당뇨합병증으로 허구한 날 병원신세를 지고 술 몇 잔만 마셔도 인사불성이 됐뿐다.”&lt;br /&gt;  “그것참 안됐구나,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 할 텐데......”&lt;br /&gt;  “그건 그렇고 내가 지금 다른 사업을 한번 해볼라 카는데 오빠야 고등학교친구인 동성로파 오야붕(두목) 이 대환 사장 하고 우리고향의 선배라는 시경강력계 오 대환 계장을 소개 좀 해도.”&lt;br /&gt;  “무슨 사업인데 그런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노?”&lt;br /&gt;  “좋게 말하면 금융업이고 실제로는 일수놀이인데 술장사에 일수쟁이 까지 하자면 그런 사람들 협조 없이는 못해먹는다.”&lt;br /&gt;  “이제 먹고 사는 거는 다 잊어버렸는데 와 또 욕심을 내노?”&lt;br /&gt;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란다, 먼 훗날 알게 될 끼다.”&lt;br /&gt; &lt;br /&gt;  한 마담은 진짜 알라 아부지가 대구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래 등 같은 큰 한옥을 사주어 한정식 집인 본향과는 비교도 할 수없는 ‘금향각’이라는 버젓한 요정을 차려놓고 술집 성도 ‘민 마담’으로 바꾸고 본향의 모든 식구들을 그대로 데리고 갔다.&lt;br /&gt;  내가 작심을 하고 두 대환이를 금향각에 초대하자 민 마담은 이례적으로 아가씨들과 함께 큰절을 하며,   &lt;br /&gt;  “소첩 민 마담 문안인사 올립니다,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많이 사랑해 주세요.”하고 깍듯이 예를 갖추었다.&lt;br /&gt;  그러자 시경의 오 계장이,                                                          &lt;br /&gt;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문안은 무슨 문안, 고향 사람이라니 반갑습니다, 어릴 때 예쁘장했던 기억이 나내요.”하고 반절로 맞절을 했으며 동성로파 이 사장은, &lt;br /&gt;  “권 소장, 자네는 공부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연애도 박사구나, 언제 이런 미인을 낚아채가 술집까지 차려 줬노?”하고 느끼한 웃음을 보냈다.&lt;br /&gt;  “두 사람을 초대해 놓고 보니 정말 그림이 참 가관이네, 한사람은 주먹오야붕 이 대환, 또 한사람은 형사오야붕 오 대환, 우째가 이름마저 똑 같노, 느그 두 사람은 아마 전생에 부부였는갑다, 꼭 일제 강점기 때 종로 오야붕 김 두한과 종로경찰서 미와 경부의 만남 같네, 빨리 문 닫아라 기자들이 보면 가십거리가 되겠다, 오늘 두 분을 모신 것은 우리 민 마담을 잘 봐달라는 뜻이 아니고 대구섬유업계와 그 종업원들을 잘 보호해달라는 뜻이네, 무슨 말인고 하면 섬유공장이 부도가 나면 종업원들이 밀린 임금 을 해결하기 위해 재고 원단을 확보하는데 건달들이 트럭을 몰고 와서 대표이사의 직인이 찍힌 계약서를 내밀고는 원단은 물론 돈 될 만한 것은 다 실어 가므로 이 과정에서 쌍방 간에 폭력이 난무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일어나니 이걸 좀 막아달라는 부탁이야, 이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심각한 문제야.”     “나도 일선경찰서로부터 그런 보고를 받은 바는 있으나 정식계약서가 있는데다 워낙 신속하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일이라 손을 쓸 방법이 없네.”                             &lt;br /&gt;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고 우리 동성로에서는 그런 일에 개입한 적이 없는데 아마 그런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조직이거나 아니면 은퇴한 주먹들이 하는 짓일 거야.”&lt;br /&gt;  “하여튼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 주기 바라며 이집 금향각에는 내 지분도 있으니 접대할 일이 있거나 술 생각이 나면 언제든지 내 앞으로 달아놓고 맘껏 자시게.”&lt;br /&gt;  “햐- 간밤에 꿈이 좋더니 권 소장 덕분에 평생 공술을 먹게 되었네, 아마 멀지 않아 대구섬유업계에서 권 소장 공덕비를 세워줄 거야.”&lt;br /&gt; &lt;br /&gt;  두 오야붕이 돌아간 후 내가 마담들을 부르니 민 마담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lt;br /&gt;  “나는 우리 알라 아부지가 대구에서는 내가 내다 카는 그 두 사람을 한꺼번에 정낭(변소)에 앉아가 개 부르듯이 부를 줄은 몰랐네, 거기다가 ‘우리 민 마담 잘 봐 도고’ 할 줄 알았는데 불쌍한 섬유업계 종업원들을 깡패들로부터 보호해주고 술은 이집에 와가 내 앞으로 달아놓고 마음대로 먹으라고 했으니 그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노, 그 정도로 고단수면 대구에서 썩기가 아깝다 아까워, 빨리 서울 올라가야 되겠다.”&lt;br /&gt;  “언니야, 인자 알라도 낳았는데 소장님 보고 자꾸 알라 아부지라 카지마라, 다른 사람들이 들으마 참말인줄 알겠다, 소장님 장래가 만리 같은데 출세하는데 지장 있다.”&lt;br /&gt;  “그거는 바둑이 언니 말이 맞다, 촌시럽그로 알라 아부지가 뭐고, 소장님, 소장님 하고 부르마 얼마나 듣기가 좋노, 높으신 헌법재판소 소장도 되고 무서운 파출소 소장도 되고......”&lt;br /&gt;  “느그들 말도 듣고 보니 그럴 성 싶다, 앞으로는 내가 각별히 말조심을 하께.”&lt;br /&gt;  “자 자, 청바지 물 날아가는 소리는 그만하고 내말 정신 차려 잘 들어본 후 각자가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해 봐라, 지금 ‘룸살롱’이라는 형태의 고급 술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데 우리네 요정과 다른 점은 첫째는 아가씨들이 더 젊고 예쁘며 가벼운 양장을 했기 때문에 겹겹이 입은 한복보다 주물럭 하기가 쉽고, 둘째는 안주의 가지 수가 적은 대신 고급화, 서구화 되어있으며, 셋째는 실내장식이 고급스럽고 화려하다는 점이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 요정은 식상해서 앞으로 일이 년 이내에 모두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정도라도 될 때 장래에 대비 하지 않으면 큰 고생을 하게 된다.”&lt;br /&gt;  “지금이사 방이 없어 손님을 못 받을 지경이니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느그들은 룸살롱에 대해서 뭐 들은 이야기 없나?”                                              &lt;br /&gt;  “삼천궁의 어리고 반반한 애들이 모두 룸살롱으로 빠져가 장사가 안 된다는 소문은 들었다, 다른 집들은 벌써 영향을 받는 모양이드라.”&lt;br /&gt;  “팁도 방석집(요정) 보다는 세고 이차 비는 두 배나 된다 카드라.”&lt;br /&gt;  “뾰죽한 수가 없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한번 해 봐라, 술장사나 돈 장사가 별거냐, 돈만 안 떼이면 부자 되는 거 아니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첨단기업의 경영기법을 도입하여 다른 집들과 차별화를 해야 하는데 다행히 큰언니가 영어에 기본은 되어있고, 바둑이는 일어를 잘하고, 홍마담은 유학까지 했으니 금향각을 외국인 중심의 요정으로 키워나가자 이 말이다, 섬유바이어들을 위시하여 대구에 오는 외국인들은 영어, 일어, 중국어 삼개 국어면 다 통할 것이고 외국인을 상대하면 외상거래도 대폭 줄어들 것이며 팁은 배로 더 받을 수 있고 대외적으로 이미지도 좋아질 거야.”                                                     &lt;br /&gt;  “나는 영어문장은 좀 알지만 회화는 제대로 못하는데 어떡하지?”&lt;br /&gt;  “학원에 가서 더 배워야지, 한 일 년만 꾸준히 배우면 써먹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바둑이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데는 불편이 없겠지만 정치, 경제, 문화 등 좀 더 고급스러운 일어를 배울 필요가 있고 홍 마담은 대만에서 대학을 나왔다니 중국어는 그만하면 됐고 부족한 영어를 더 익혀야지, 그러니 민 마담이 학원비를 부담하여 보이나 아가씨들 중에서도 소질이 있는 사람들을 골라 외국어나 국악을 가르치고 실내 인테리어와 정원도 보다 한국적인 것으로 바꾸어서 분위기를 일신하여 새 출발을 하는 거야, 결심만 서면 국내외 홍보는 내가 책임 질 테니까.”&lt;br /&gt; &lt;br /&gt;  나는 제일먼저 간판부터 바꾸었다.&lt;br /&gt;  가운데 한자로 ‘琴香閣’이라 쓰고 왼쪽엔 영어, 오른쪽엔 일본어의 가타가나로 표기를 했으며 거금을 들여 조선식 가구와 병풍, 옛 그림의 모사품들을 구입하고 정원에 포석정을 닮은 연못도 만들었으며 밋밋한 기둥과 서까래에 단청도 입혔고 모든 비용을 내가 다 부담했다.&lt;br /&gt;  이와 같이 하드웨어의 개선작업이 완료되자 세 마담을 포함하여 십 여 명이 각자의 소질에 따라 일차적으로 외국어학원, 국악원, 예절학교 등에 등록하여 소위 전군의 간부화에 착수했으며 나는 지역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주간지에 수시로 광고도 해주고 해외바이어의 명단을 입수하여 외국어 팜플렛을 만들어 보내는 등 소프트부문의 개혁에도 착수했다.&lt;br /&gt;  또한 예약한 손님만 받도록 하고 현금으로 결제 할 시는 10%를 활인을 해주는 반면 1개월 이상 연체 시에는 과감히 거래를 중단 했으며 외국손님이 올 경우는 가야금병창이나 동래학춤공연을 하고 비용을 추가시키기로 했으며 서문시장, 칠성시장의 상인들과 유흥업소 종업원들을 상대로 일수놀이도 시작하고 건달이나 경찰들은 일체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lt;br /&gt; &lt;br /&gt;  이와 같은 금향각의 변신은 입소문을 타고 대구전역에 금방 알려졌고 서울의 섬유에이젼트 사무실과 해외의 바이어들도 하나 둘 찾아들기 시작했으며 특히 일본여행사를 상대로 한 집중적인 홍보로 일본 관광객들을 독점하게 되어 나의 구상이 이외로 빨리 적중되었음이 입증되자 민 마담을 위시하여 종업원들은 나를 사교집단의 교주처럼 떠받들었고 금향각에서 내 말은 곧 거역할 수 없는 법이 되었다.&lt;br /&gt;  이쯤 하여 나는 금향각의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일정한 거리를 두었으며 박사학위 논문작성에 매달리고 부터는 아예 전화마저 끊어버렸다.&lt;br /&gt;  살아오는 동안 늘 선례를 잊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술집에서 해후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며 그가 지나온 눈물자국마다 나에 대한 사랑과 원망이 고여 있었음을 알았을 때 어떤 형태로든지 도움을 주고 싶었다.                                                  &lt;br /&gt;  이제 선례의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었고 재벌인 기둥서방에다 그 자식까지 있는 여자의 주변에 내가 더 이상 머물 이유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두부모 자르듯이 잘라 새로운 원망을 잉태시킬 이유도 없어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lt;br /&gt;  &lt;br /&gt;  섬유수출규모의 급증에 따라 나는 30대중반의 나이에 상무이사로 진급을 했으며 경영학박사학위를 받아 겸임교수로 대학에 출강도 하고 외국을 내 집 드나들듯 했으며 금향각도 손님이 문전성시를 이루어 춘앵각을 따돌리고 대구를 대표하는 요정이 되었고 일수놀이로 시작한 돈 장사는 발전을 거듭하여 ‘대동금융’이라는 정식 사금융회사를 만들어 동성로파의 조직자금과 시경 오 계장의 개인 돈 까지 끌어들임으로써 채권확보를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여 민 마담은 대구 사채업계의 대모인 ‘동성로 여왕벌’로 군림하게 되었다.        &lt;br /&gt;  개인의 변화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충격적인 일이 연속되어 대통령이 암살되고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여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며 광주 민중 항쟁이 발생되어 수많은 사람이 죽는 등 엄청난 사회적인 변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지역섬유업계에서는 빅 쓰리중의 하나인 ‘대구실업’의 방회장이 오랜 병고 끝에 돌아가시자 금향각의 민 마담이 소복을 하고 다섯 살 난 아들과 함께 나타나 영정 앞에 엎드려 소리 없이 어께만 들먹이며 일어나질 않았다.   문상객들은 밀려드는데 애기를 데리고 온 낯선 여인이 일어나지 않아 상주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주변이 술렁거리자 먼발치에 앉아 이를 보고 있던 영남무역의 배 회장이 상제를 불러 여인을 데려오게 하니,&lt;br /&gt;  “아이고 배 회장님 유 회장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옛날 삼천궁에 마담으로 있었던 저를 알아보시겠는지요?”&lt;br /&gt;  “음 알만 허이, 그런데 이 아이는 누군고?”&lt;br /&gt;  “돌아가신 방 회장님의 아들입니다.”&lt;br /&gt;  “뭐라고, 상주들도 알고 있는가?”&lt;br /&gt;  “회장님이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 입을 다물었습니다만, 이 아이 얼굴과 영정사진을 비교해 보시면 모든 의문이 풀릴 것입니더.”&lt;br /&gt;  “허, 국화빵일세, 국화빵.”&lt;br /&gt; &lt;br /&gt;  장례를 치룬 며칠 후 맏상제인 방사장과 민 마담은 동인호텔 특실에서 마주했다.&lt;br /&gt;  “요구사항이 있을 텐데 말을 해보시요.”&lt;br /&gt;  “아이를 회장님 호적에 입적시켜주시고 우리 모자의 평생을 사장님과 같은 수준에서 보장을 해 주이소.”&lt;br /&gt;  “뭣이라고, 당신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해!” 하고 고함을 꽥 질렀다.&lt;br /&gt;  “뭐라꼬, 나는 네 어미뻘이야, 말버르장머리 하고는......, 내가 동성로 여왕벌이고 여기가 내 나와바리(관할구역)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더듬수 부리다가는 다리 하나는 병신이 돼가 나갈 테니......” 하고 노려보니,&lt;br /&gt;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보이소.” 하고 금방 말투가 공손해졌다.&lt;br /&gt;  “입적을 못시켜 주겠다면 회장님이 생전에 나한테서 사채 오십억 원을 빌려간 후 변제일이 삼년도 넘었으니 그간의 이자를 포함해서 육십억을 당장 갚아라 이거야, 입적을 안 시켜주는 보너스는 따로 챙겨주고, 이것마저 못하겠다면 내일 바로 친자확인 및 유산분할소송과 동시에 회장님 재산을 압류하고 대구재벌이 아이 양육비는 고사하고 빌려간 돈 마저 떼먹고 저승 가버렸다고 온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내 버리고 신군부에 이야기해서 바로 세무조사 들어갈 테니 알아서 하게, 기한은 일주일이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충고하겠는데 뭐 회장님 동상을 세운다고, 육갑들 떨고 있네, 니 애비가 독립운동을 했냐 민주화 투쟁을 했냐, 동상을 세우게, 앞산(정보부)에 끌려가 초죽음이 되기 전에 당장 그만둬, 돈 좀 벌었다고 외제차 타고 거들먹거리다가 붙들려가서 육군 일등병한테 카이젤수염을 다 뽑힌 황 회장 소문도 못 들어 봤나?” 하고는 입금계좌번호가 적힌 차용증과 공증서 사본을 던져주고 나와 버렸더니 일주일도 안 되어 70억 원이 입금되었다.&lt;br /&gt;                                   &lt;br /&gt;  이날 나는 정말 오랜만에 민 마담을 만나 점심을 같이 하면서 그간의 안부와 함께 방회장의 아들로부터 거금을 받게 된 경위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고 진짜 알라 아부지가 방회장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lt;br /&gt;  “진짜로 방 회장한테 오십억을 빌려주긴 했었나?”&lt;br /&gt;  “돈 오십억이 누구 집 강아지 이름인줄 아나, 그런 돈이 내게 어딧노, 형빈이를 자기 호적에 못 올려주니까 공장이라도 하나 물려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살아생전에는 아깝기도 하고 또 가족들이 알까봐 쉬쉬하며 자기가 죽은 후에 가져가라고 가짜차용증을 써 준거였지, 소문 들으니 고향에서 새마을 사업을 하는데 시멘트 몇 포대를 안 보태줘서 상여가 다리위로 못 지나가고 다리 아래로 갔다는 소문도 들리더라.”&lt;br /&gt;  “자식 앞에 장사 없구나, 핏줄이 뭔지, 그 자린고비가......, 아무리 차용증을 본인이 작성하고 공증까지 받았다 하드라도 가짜차용증으로 그렇게 큰돈을 받아낸 당신도 참 간이 배밖에 나왔고 무서운 사람이구나.”&lt;br /&gt;  “온갖 수모를 다 당하면서 당뇨병수발을 한 게 얼마며, 밤일도 못하는 주제에 동성로 여왕벌을 몇 년씩이나 갖고 놀았으면 공장하나쯤은 당연히 떼 줘야지, 어마어마한 공장이 국내외에 열 개도 넘는데 방 사장도 앞뒤 다 계산해보고 준거 아이겠나, 그까짓 성냥갑만한 공장하나 받은 샘밖에 안되는데 이런 건 나중에 염라대왕 앞에 가드라도 무죄다, 그런데 당신도 방 회장 문상을 갔었나?”&lt;br /&gt;  “갔었지, 왜?”&lt;br /&gt;  “영정사진하고 당신하고 닮았다는 생각 안 해봤나?”&lt;br /&gt;  “글쎄, 방 사장은 나하고 나이가 비슷하니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방 회장은 사진을 보니 돌아가신 우리아버지와 많이 닮았다는 느낌은 받았는데 왜?”&lt;br /&gt;  “그저 그냥, 혹시 신군부 실세 중에 잘 아는 사람 없나?” 하고 말을 바꾸어 버렸다.&lt;br /&gt;  “왜 없어, 보안사령관이 내 절친한 친구의 형님이고 영남무역의 오 전무 동생 아이가, 또 제 일인자인 정 도한이를 위시하여 전신만신 대구사람이고 경고출신들인데 와, 이제 서울로 올라가서 한바탕 저질러 볼라고?”&lt;br /&gt;  “그런 거는 아이고 세상이 바뀌었으니 이 기회에 당신도 인자 국회의원 한번 해야 안 되겠나, 선거비용은 내가 댈 테니 여당 공천 받을 궁리나 한번 해봐라, 내말 가볍게 듣지 말고, 나도 술집에서 가오마담이나 하던 옛날 안 선례가 아니고 지금은 대구에서 제일 큰손인 동성로 여왕벌 아이가.”&lt;br /&gt;  “동성로 이사장이나 시경의 오 계장을 끌어들인 것을 보니 당신의 능력은 인정하겠는데 국회의원이나 장관은 천운을 타고나야지 돈만 있다고 얻어지는 자리가 아니야.”&lt;br /&gt;  “쥐나 개나 다 국회의원 하고 육군소장이 대통령을 하는 판국에 국회의원 비서관 출신에다 박사고 교수잖아, 뭐가 부족해서 못 하겠노, 당신은 국민학교때 부터 장래희망이 국회의원 아이가, 그라고 나도 사채업계와 유흥업계의 여왕노릇을 계속하자면 국회의원 정도의 빽은 있어야 되고......”&lt;br /&gt;  “박사면 뭐하는데, 박사위에 육사 있고 육사위에 여사 있는데......”&lt;br /&gt; &lt;br /&gt; 4. 심전방의 심 마담                                                   &lt;br /&gt;  &lt;br /&gt; 나는 영남무역 배 회장의 부름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갔다.&lt;br /&gt;  “어서 오시게, 지금 일본에서는 ‘기모 조젯트’라는 획기적인 신제품이 곧 나온다는데 혹시 알고 있는가?”&lt;br /&gt;  “예, 준비과정에서 경사는 싸이징을 하고 위사는 씩엔씩사를 가연하여 인터레싱을 하며 제직한 후 생지상태에서 버핑기로 아주 미세한 솜털을 일으켜 염색가공하고 염색 후 한 번 더 버핑한 것으로 천연섬유와 같은 외관과 촉감을 가진 신합섬 제품이며 내년에 출시되면 수출가격이 기존제품의 다섯 배인 야드 당 육달러 정도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복숭아 껍질처럼 질감이 좋다고 하여 직물 이름을 ‘피치스킨’이라고 명명했습니다.”&lt;br /&gt;  “권 소장은 이러한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입수하며 매주 보내주는 &amp;#39;텍스타일익스프레스&amp;#39;라는 정보지에는 유익한 정보가 가득하던데 소스가 어디며 누가 만드는가?”&lt;br /&gt;  “금향각이라는 술집에 오는 에이젼트나 외국바이어들의 이야기와 홍콩과 일본의 섬유관련 신문잡지, 저희 수출입조합의 해외사무소, 해외의 개인적인 인맥 등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여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재가공한 후 천 부를 인쇄하여 업계에 공급하고 있습니다.”&lt;br /&gt;  “정말 장한지고, 비용도 수월치 않을 텐데 사무실에서 조달이 되나?”   &lt;br /&gt;  “월 삼백만 원 정도 드는데 연도 중간이라 예산을 마련할 길이 없어 부끄럽습니다만 유흥업을 하고 있는 친구한테 신세를 지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신문 값 정도로 유료화할 계획입니다.”&lt;br /&gt;  “대구에 크고 작은 섬유업체가 이천 개나 되는데 그럴 수는 없지, 그 비용은 내가 부담 할 테니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나한테 한번 보여주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자주 나누기로 하세.”&lt;br /&gt;  “예, 회장님 감사합니다.”&lt;br /&gt;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피치스킨 샘플을 입수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나, 샘플만 있으면 금방 비슷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데......”&lt;br /&gt;  “가뜩이나 우리 한국 사람들을 경계하고 의심과 비밀이 많은 일본 사람들인데 아직 출시도 하지 않은 신제품의 정보를 쉽게 노출시키겠습니까, 노력은 한번 해보겠습니다만......”&lt;br /&gt; &lt;br /&gt;  대구섬유업계 빅 쓰리중의 또 하나인 ‘경상물산’이 원사공장을 짓느라 무리를 한데다 그간의 방만한 경영으로 부도가 나 은행에 담보된 중구 삼덕동 유 회장의 집이 매물로 나오자 민 마담이 솔개가 병아리 채듯 낚아채버렸으며 나는 방 회장이 돌아가신 후 자연스럽게 민 마담과 만나는 횟수가 잦아졌다.&lt;br /&gt;  “그 큰집을 뭐 할라고 샀노?”&lt;br /&gt;  “대지가 천 평에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니 땅을 보고 싼 거지, 지금이야 주택지일 뿐이지만 앞산 밑 대명동에 고급주택지가 새로 형성되고 도심공동화가 진행되고 있으니 멀지 않아 문화가 있는 상가지역으로 재개발을 하게 될 거야, 그러면 거기에 쇼핑센터나 인텔리젼트빌딩을 지으면 고생 끝이지, 나중에 땅만 되팔아도 적지 않은 이익이 생길거야.”&lt;br /&gt;  “이제 완전히 사업가가 되었군, 가격이 오를 때까지 어떻게 활용할건데?”&lt;br /&gt;  “건평이 삼백 평이나 되니 리모델링을 해서 일층은 중식당과 일식당을 하고 이층은 룸살롱으로 하여 대구최고의 명소로 만들어 볼까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lt;br /&gt;  “나야 당신이 일을 떠벌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잖아, 대구에서 맘에 드는 전문경영인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lt;br /&gt;  “요정이야 인적자원이 많으니까 금향각은 새 사람을 구해 맡기면 되고 바둑이와 홍마담도 기생환갑, 진갑을 훌쩍 넘겼으니 식당하나는 차려줘야지, 일식당은 바둑이한테, 중식당은 홍 마담에게 줄 작정인데 식당경영도 쉽진 않겠지만 설마하니 가마니 짜던 년들인데 새끼 못 꼴라고, 그라고 룸살롱의 술안주가 국적도 없는 서양요리에다가 비싸기만 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는데 나는 우리 입에 익은 정통 중국요리와 일본 요리로 승부를 하고 싶어, 즉 내가 생각하고 있는 룸살롱은 멋진 아가씨가 있고 계절마다 특색 있는 중식과 일식코스요리가 나오는 최고급 술집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거야, 또 내가 아래층에 고급대중식당을 하려는 더 큰 이유는 당신 때문이야, 국회의원을 하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요정이나 룸살롱보다는 고급식당이 제격이지, 안 그래?”   &lt;br /&gt;  “당신 마음 씀이 고맙긴 한데 나는 아직 대구섬유업계에서 할일이 남아있어, 국회의원은 나중 이야기야, 당신은 물론 바둑이 마담과 홍 마담도 협조해주어야 가능한 일이야.”&lt;br /&gt;  “오늘날 내가 이정도로 큰 건 모두가 당신 덕인데 내가 무슨 일인들 못 하겠노, 그 애들도 당신 말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애들이잖아, 도대체 무슨 일인데?”&lt;br /&gt;  “지금까지 일본의 섬유업자나 해외바이어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해 주고 정보지 발행비용까지 부담해준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인데 쉽게 말하면 지금 보다 더 적극적으로 산업스파이 노릇을 좀 해 달라는 거야, 그것도 이중스파이로, 지금 대구섬유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일본 후쿠이의 신제품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여 유사품을 우리가 먼저 만들어 출시하는 것과 홍콩의 삼쉬포시장을 비릇한 해외바이어들의 담합정보를 미리 알아내 우리가 선수를 쳐 공급자가 주도하는 시장을 유지해 나가는 방법뿐이야.”            &lt;br /&gt;  “나는 섬유도 무역도 모르니 보다 구체적인 행동요령이나 실천방법을 예기해봐.”&lt;br /&gt;  “당신은 나의 제의에 동의를 해주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협조만 해주면 되고 바둑이와 홍마담은 일본의 가와이 이사장과 홍콩 리 카슝 회장의 한국 애인 또는 현지처가 돼 달라는 거야, 그리고 두 마담이 동의하면 나한테서 한 달가량 섬유와 무역에 관한 기초상식과 정보의 입수와 전수방법 등에 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후 깡패들이 하는 식으로 동성로파 이사장과 당신 및 내 앞에서 충성맹세의식을 갖도록 하고 일본과 홍콩에 넘겨줘도 괜찮은 정보는 내가 수시로 챙겨 줄 테니 적당히 흘려주면서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요령껏 입수해야하며 당신이 두 마담에게 식당을 물려주는 것을 이 일과 연계시켜 주면 고맙겠네, 이와 관련하여 모처에서 얼마간의 자금이 나올 거야, 모든 걸 극비로 해주기 바라네.” &lt;br /&gt; &lt;br /&gt;  식당건물 전체의 이름을 ‘심전방’이라 하고 이안에 이층에는 룸살롱 ‘무랑루즈를’, 일층에는 중식당 ‘만리장성’과 일식당 ‘아사쿠사’를 배치했으며 대구 최고의 요리사와 배태랑 지배인을 고용하고 종업원들도 항공사 슈튜어디스 못지않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채용하여 대폭적으로 개량된 중국과 일본의 전통의상을 입게 했으며 금향각의 민 마담은 또 심전방의 ‘심 마담’으로 택호가 바뀌었고 의상도 한복에서 최고급 양장으로 변했다.&lt;br /&gt;  “왜 번번이 술집 성을 바꾸는데?”&lt;br /&gt;  “나는 당신만 빼놓고는 지난 것은 다 잊고 싶어, 내 과거가 너무 암울했던 탓도 있지만 지금은 하는 일 마다 다 잘되니 다른 사람들에게 현재의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써온 윤, 한, 민, 심이란 성은 조선왕조 왕비들의 사대 성이야, 나는 어릴 때부터 왕비가 되는 꿈을 자주 꾸어왔어.”&lt;br /&gt;  “나름대로 이유와 뜻이 있었군, 그리고 동성로 이사장과 시경의 오 계장이 투자한 돈에 대해서는 이자를 꼬박 꼬박 잘 주고 있겠지, 지급액수와 일자, 시간까지 한 치 오차도 없도록 하게,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게 끝장이니까.”&lt;br /&gt;  “걱정할 것 없어, 지금까지 한 번도 날짜를 어긴 적도 없지만 그들이 나에게 등을 돌리기에는 내가 너무 커버렸고 또 그들의 비리를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지금은 오히려 안 회장, 안 회장 하면서 둘 다 내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고 있지.”&lt;br /&gt;  &lt;br /&gt;  영남무역 배 회장의 초청으로 홍콩섬유수입업계의 대부인 리 카슝 회장과 일본섬유업계의 선두주자인 가와이 직물조합 이사장이 대구를 방문했다.                  &lt;br /&gt;  배 회장과 가와이 이사장은 구면이나 배 회장과 리 카슝 회장, 리 카슝 회장과 가와이 이사장은 초면이었고 배 회장 옆에는 내가, 리 회장 옆에는 홍콩무역발전국 서울지국장이, 가와이 이사장 옆에는 이토츄상사 한국지사장이 각각 배석했으며 세 사람이 모두 일어에 능통하여 통역 없이 수출입질서유지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하기로 했으며 업계와 언론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몰려들었다.   &lt;br /&gt;  첫날 저녁에는 금향각에서 배 회장의 환영회가 있었으며 홍마담은 리 회장 옆에 바삭 다가앉아 유창한 중국어로 시중을 들었고 타이완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타이완출신인 리 회장이 적이 놀라는 기색이었으며 가와이 이사장과 바둑이는 이미 구면이라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다.&lt;br /&gt;  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한, 일간의 덤핑수출경쟁자제와 홍콩의 질서 있는 섬유수입을 요청했으며 가와이 이사장과 리 회장은 박수로 이에 동의를 했다.      &lt;br /&gt;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장원을 했다는 국악인의 공연이 끝나고 술이 몇 순배 돌자 배 회장이,&lt;br /&gt;  “홍 마담은 대만유학을 했다 카는데 바둑이 마담은 일본의 어느 대학을 나왔기에 일본말을 그렇게 잘하노?”하고 물었다.&lt;br /&gt;  “회장님, 저는요 일본에서 묵꼬노대학 농띠과를 나왔심더.”라고 대답하자, &lt;br /&gt;  “동경제대보다 더 유명한 명문대학을 나왔구나.”하여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lt;br /&gt;  심전방의 심 마담이 경고성 발언을 했다.&lt;br /&gt;  “너희들 손님 잘 모셔야 한다, 눈에 들기만 해봐라,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그까짓 중식당 일식당이 문제가, 당장 근사한 공장이 하나 떨어질 텐데, 내일은 경주관광이 있으니 너희들이 직접 모시고 가서 잘 안내를 하도록 해라, 오다가 온천에 들어가든지 말든지 그건 느그 자유다.”라고 하니 또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lt;br /&gt; &lt;br /&gt;  이튿날 경주관광과 온천욕까지 마치고 온 리 회장이 답례로 심전방의 무랑루즈에서 중국요리 중심의 연회를 주최했으며 인사말에서,&lt;br /&gt;  “서울에는 가끔 왔으나 대구방문은 처음인데 한국의 산천경계와 전통문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미처 몰랐으며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대구의 아가씨들로 동양최고의 미인들”이라고 추켜세우고 배 회장이 초청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평생 후회할 뻔 했다고 너스레를 떨어 많은 박수를 받았다.&lt;br /&gt;  3일째 되는 날 리 회장과 가와이 이사장은 섬유공장시찰을 가고 우리 실무자들은 하루 종일 공동성명서를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며 몇 번을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겨우 문안을 작성하였고 나는 홍콩이 반대하는 ‘체크프라이스제’ 실시를 관철시켰으며 그간 지지부진했던 ‘아시아 직물회의’ 창설도 합의되어 모든 것을 배 회장과 나의 의도대로 끌고 나갔다.&lt;br /&gt;  기자회견장에는 신문기자들뿐만 아니라 KBS와 MBC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유관기관의 직원들과 공무원, 업계사람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으며 배 회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간단한 인사를 하고 성명문을 읽어 나갔다.&lt;br /&gt;  &lt;br /&gt;   공동성명서&lt;br /&gt;   1. 한, 일 양국은 직물수출시장에서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각각 경쟁력이 있는 품목으로  수출을 특화하기 위해 생산, 수출정보를 공개하기로 한다.&lt;br /&gt;   &lt;br /&gt;   2. 홍콩은 계절에 관계없이 매 분기별로 일정량의 직물을 수입, 비축키로 하고 중국본토에 공장을 설립하여 직접 생산하는 것을 자제키로 한다.&lt;br /&gt; &lt;br /&gt;   3. 한, 일 양국은 신제품 개발 시 홍콩시장에 3개월 이상 우선적으로 공급해야하며 대홍콩자율규제쿼터를 보유한 업체가 이를 위반할 시는 이에 상응한 재제를 가한다.  &lt;br /&gt;  &lt;br /&gt;   4. 위 사항을 담보하기 위해 한, 중(타이완), 일, 홍콩 4국이 참여하는 아시아 직물회의를  창설하여 제반사항을 감시, 조정하고 직물수출가격이 20% 이상 하락하여 2개월 이상  장기화 될 경우 한, 일은 체크프라이스제를 실시하여 일정금액 이하의 수출은 불허한다.&lt;br /&gt;    &lt;br /&gt;   5. 본성명서는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의 3부를 작성하고 해석상의 이견이 있을 경우는 영문본의 해석을 기준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1985년 9월 28일                                              &lt;br /&gt;      &lt;br /&gt;      대구섬유협의회 회장         배 운규&lt;br /&gt;      홍콩섬유수입협회 회장      리 카슝&lt;br /&gt;      일본직물조합 이사장  가와이 히토시가 대한민국 대구에서 연장자순으로 서명하다.      &lt;br /&gt;  &lt;br /&gt; 어느 기자가 질문을 했다.&lt;br /&gt;  “우리나라와 같은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수출 체크프라이스제 실시가 법적으로 가능한지, GATT 규정에 위배되지는 않는지, 가능하다면 어느 기관에서 이를 담당을 하게 되는지?”&lt;br /&gt;  이에 대한 답변은 내가했다.&lt;br /&gt;  “중소기업계의 결의에 의한 자율적인 제한조치의 시행은 GATT규정이나 우리의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유권해석을 받았으며 수출입조합의 수출승인과정에서 수출가격을 체크하게 될 것입니다.”&lt;br /&gt; &lt;br /&gt;  이날 저녁에는 가와이 이사장이 무랑루주에서 일식으로 마지막 밤을 장식했다.&lt;br /&gt;  “오늘 공장을 둘러본 결과 그 엄청난 규모에 새삼 놀랐습니다, 중소기업 중심의 일본과 대기업 중심의 한국이 무모한 경쟁을 한다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한 일이므로 한국은 소품종 대량생산, 일본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한, 일간에 국제 분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으며 리 회장은,&lt;br /&gt;  “중국본토에 직물공장을 짓는다면 한국보다 몇 배로 크게 짓지 않으면 승산이 없고 임금의 단순비교만으로 경쟁력을 가늠하기는 어려우며 당분간은 한국의 독주가 예상된다.”고 소감을 말했다.  &lt;br /&gt;  이어 배 회장은,&lt;br /&gt;  “이번에 두 분을 모신 것은 서로를 정확히 알고 공생의 길을 모색하자는데 뜻이 있으므로 일본의 후쿠이에서도 대구섬유업자들에게 공장을 개방하여 우리 눈으로 직접보고 특화할 것은 특화하고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도록 해야 하며 홍콩의 리 회장도 생산과정을 직접 보셨으니 생산원가를 무시하고 시장상황에 따라 가격을 후리치는 일이 없도록 홍콩수입업계를 잘 이끌어 주시기 바라며 우리 모두 나를 희생하여 우리를 살리는 일에 앞장을 섭시다.” 하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며 건배제의를 하고 젊은 사람들을 위해 일찍 자리를 떴다.&lt;br /&gt;  심 마담이 어제와 오늘 요리가 어떠냐고 물으니 리 회장이,&lt;br /&gt;  “우리가 평소에 먹는 광동요리에서 변화한 홍콩요리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한국식 중국요리는 사천요리를 닮아 깔끔한 맛이 있었으며 특히 송이버섯이 들어간 전가복 요리가 좋았다.”고 했으며 가와이 이사장은,&lt;br /&gt;  “오사카나 도쿄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고 특히 살아있는 생선의 회를 뜨는 기술은 한국이 일본을 능가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lt;br /&gt;  기분이 째진 심 마담의 서비스가 계속 나오는 가운데 배 회장이 자리를 비켜주자 술자리가 흐트러지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중대발표가 나왔다.   &lt;br /&gt;  리 회장이 홍 마담을 홍콩으로 초청하겠다고 하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바둑이가 가와이 이사장에게 콧소리를 내며 매달리니 가와이 이사장은,                       &lt;br /&gt;  “후쿠이는 인구 이십오만 밖에 안 되는 시골이라 남의 이목 때문에 초청은 할 수 없고 오사카에 와서 연락을 하면 꼭 나가겠다고 했으며 그 대신 대구에 자주 오겠다.”고 하여 역시 큰 박수를 받았다.                                                                  &lt;br /&gt; &lt;br /&gt;  내가 심 마담을 데리고 영남무역의 배 회장을 방문하니 만면에 웃음을 띠고,&lt;br /&gt;  “어서들 오시게, 정말 수고들 했네, 특히 체크프라이스제를 실시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우리가 공식적으로 아시아직물업계를 리드해 나갈 수 있는 직물회의창설을 합의 했으니 큰 걱정거리들을 덜었네.” 하고 수표 한 장을 내 내놓았다.&lt;br /&gt;   “회장님 감사합니다,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고 우리섬유업계를 살리는 일에만 쓰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삼자회동에서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은 일본이 천연섬유와 화섬의 복합섬유에 흡한속건, 방오방염, 항균소취 등 십여 가지의 멀티기능을 부여한 슈퍼섬유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라고 하자 배 회장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면서,&lt;br /&gt;   “좀 더 구체적인 정보는 없는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두 문을 닫아야 해, 무슨 좋은 방도가 없겠는가?”&lt;br /&gt;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해 보면 아주 미세한 캡슐에 나노화된 기능성물질을 넣어 고품질의 바인더로 섬유에 부착시키면 옷을 입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캡슐이 터지면서 기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장님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비단옷을 입을 수 없듯이 그런 고기능 섬유는 일본기술력의 과시용일뿐 그 수요는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는 영남무역에서 피치스킨과 슈퍼섬유를 개발하여 곧 출시한다는 역정보를 흘리면 홍콩의 바이어들은 이것을 독점수입하기 위해 우리에게 코가 꾈 것이고 일본은 우리제품의 출시를 기다려 장단점을 파악한 후 자기네 제품을 보완하여 출시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년 정도의 시간을 벌수 있으니 그동안에 우리는 소련의 은퇴 과학자들을 헐값으로 초빙하여 캡슐대신에 나노물질에 직접 낚시 바늘과 같은 갈고리를 만들어 바인더 없이 섬유 속에 침투시키면 두 공정을 생략할 수 있으므로 개발비용과 시간을 대폭적으로 절약할 수 있어 일본과 한번 붙어볼만합니다.”&lt;br /&gt;  배 회장은 너무 감격하여 내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고는, &lt;br /&gt;  “내가 드디어 장자방을 얻었도다, 고맙네 고마워, 우리한번 해보세, 그리고 이번에 심 마담도 애 많이 썼네,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lt;br /&gt;  “저야 회장님 덕분에  장사 잘 하고 권 상무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수고랄 게 있습니까, 앞으로도 회장님과 상무님이 시키시는 일에는 몸을 아끼지 않겠습니다.”&lt;br /&gt;  우리는 곧 바로 무랑루즈의 밀실에서 바둑이와 홍 마담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고 일인당 천만 원씩을 나누어 주었으며 나머지는 비자금으로 예치시키기로 하자 바둑이와 홍 마담은 너무 흥분하여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내 볼에 마구 키스를 퍼부었다.&lt;br /&gt; &lt;br /&gt; 5. 내 사랑 여왕벌                                                   &lt;br /&gt; &lt;br /&gt;  내가 소련과학자 두 명을 데리고 심전방의 중식당 만리장성으로 들어서는데 정원 한구석에 처음 보는 닭장이 눈에 들어왔다.&lt;br /&gt;  “이집에 웬 닭장이 다 있노?” 하고 물었더니 홍 마담이,&lt;br /&gt;  “우리 집 도련님이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 와서 아파트에서 키우다가 너무 커서 이제 여기에 갖다 놨심더.”라고 했다.&lt;br /&gt;  “가가(그 아이가) 벌써 국민학교에 들어갔나?”&lt;br /&gt;  “하마요, 인물도 상무님처럼 준수하게 잘 생겼고 공부도 잘 해서 반장을 한다 캅디다.”&lt;br /&gt;  “자기 아버지가 너무 일찍 죽어서 안됐구나.”&lt;br /&gt;  “오히려 잘됐지요 뭐, 크게 한 살림 안 받았읍니꺼, 이년한테는 우예 그런 복도 없는지.”&lt;br /&gt;  “와, 홍콩의 리 회장이 한 살림 물려준다 안 카드나?”&lt;br /&gt;  “외국 사람한테서 뭘 기대하겠습니꺼.”&lt;br /&gt;  “그러면 내가 돈 많고 명 짧은 영감하나 소개해 주까?”&lt;br /&gt;  “간밤의 꿈에 해가 품안으로 들어오더니 나도 인자 언니처럼 팔자가 늘어질 모양이네.”&lt;br /&gt; &lt;br /&gt;  “나는 소련 사람들은 다 북극곰같이 생긴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은 체구도 작고 잘 생긴 동양인처럼 멋쟁이 들이네, 오빠야 우리도 남들처럼 여름휴가 한번 가보자, 나는 평생 휴가라는 걸 못 가봤다.” 하고 선례가 넋두리를 했다.&lt;br /&gt;  “그렇다면 소원 한번 풀어주지, 어디에 가고 싶노, 산이 좋겠나, 바다가 좋겠나?”&lt;br /&gt;  “오빠야 좋은 대로 해라, 산보다야 바다가 났겠지만 나이 사십에 비키니를 우예 입겠노?”&lt;br /&gt;  “그러면 이번 광복절이 연휴니까 이박삼일 예정으로 통영에서 여수까지 배를 타고 한려수도를 한 바퀴 돌아보자, 동해안은 아는 사람들을 만날까봐 못가겠다.”&lt;br /&gt;  “형빈이를 데리고 가도 괜찮겠제?”&lt;br /&gt;  “그럼, 애들은 여행을 자주해야 견문이 넓어지지, 공부를 어느 정도 잘하는지 내가 테스트도 한번 해보고......”&lt;br /&gt;  우리는 국민학교때 소풍을 가던 날처럼 들뜬 마음으로 내가 손수 운전을 하여 통영으로 향했으며 형빈이도 기분이 좋아보였고 나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잘 붙였으며 자세히 보니 이목구비가 반듯한 게 내 어릴 적 사진과 판박이여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lt;br /&gt;  충무비치호텔에 여장을 풀고 부둣가로 나와 중앙시장을 한 바퀴 돌아 해산물 전문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보니 정말 동양의 나폴리라고 할 만큼 야경이 아름다웠으며 문인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등을 낳은 예향답게 곳곳에서 예술의 향기가 묻어나왔다. &lt;br /&gt;  술기운도 어지간히 오른 데다 형빈이가 잠든 것이 확인되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폭풍우 같은 격정에 휩싸이게 되었으며 태풍이 지나가고 긴 항해가 끝난 다음 고요가 찾아왔을 때 선례가 먼저 입을 열었다.&lt;br /&gt;  “여기까지 오는데 십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네, 그 동안에 엄청난 변화도 있었고......”&lt;br /&gt;  “그게 무슨 말이야?”&lt;br /&gt;  “십년 전 당신을 삼천궁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던 혈혈단신의 고아였으나 지금은 천금 같은 자식도 있고 돈도 모을 만큼 모았으며 이런 고급호텔에서 당신과 같은 멋진 남자와 운우의 정까지 나누게 되었으니 보통행운이 아니지, 지나간 십년이 너무 아까워, 당신이 삼천궁에서 자던 날 밤에도 우리는 폭풍우 속을 헤맸지, 당신 정말로 그날밤의 일이 기억 안나나?”&lt;br /&gt;  “설마?”&lt;br /&gt;  “그때 나는 계획적으로 당신을 붙들어 놓았고 당신은 술이 너무 취해서 이튿날 기억을 못했을 뿐이야, 그리고 어렴풋한 기억이 있었다 하더라도 무의식중에 저지른 일이라 애써 부정하고 잊어버리려고 자기최면을 건거지.”&lt;br /&gt;  “소설을 쓰고 있군.”                                                              &lt;br /&gt;  “형빈이가 당신을 닮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나?”&lt;br /&gt;  “그야 나와 형빈이 아버지가 닮은꼴이니 나를 닮은 것은 당연하지,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lt;br /&gt;  “아빠는 미국에 유학을 갔는데 언젠가는 크리스마스 날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올 거라고 했  지, 그런데 당신 지금도 옛날처럼 날 좋아하고 사랑해?”&lt;br /&gt;  “글쎄, 항상 걱정되고 궁금하고 보고 싶긴 한데 그게 사랑일까?”&lt;br /&gt;  “나는 당신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당신은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야, 그래 오늘은 이쯤만 해두자, 분위기 망칠라.”&lt;br /&gt; &lt;br /&gt;   영남무역의 배 회장과 내가 의기투합하여 추진했던 일은 하나씩, 하나씩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lt;br /&gt;  수출입조합에서는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수출품목에 대해 체크프라이스제를 실시했고 바둑이와 홍 마담도 귀중한 정보들을 속속 물고 왔으며, 대구섬유업계에서 40억 원을 모금하고 전경련과 화섬협회로부터 60억 원을 지원받아 정부예산 100억 원을 따내어 ‘대구섬유협의회’라는 기존의 친목단체를 상공부산하의 ‘사단법인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로 확대 개편하여 배 회장은 회장에, 나는 전무이사에 취임하였으며 협회의 기금을 마련하고 ‘대구섬유정보센터’의 설립도 주도해나갔다.  &lt;br /&gt;  또한 영남무역은 내가 구해준 일본제 피치스킨 샘플을 분석하여 일본보다 한발 앞서 이미테이션 직물을 개발하여 돈방석위에 앉게 되었고 홍콩시장도 우리가 의도한대로 공급자위주의 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었으며 일본은 우리의 대량생산, 대량공급에 밀려 수출시장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에 산지에서는 하청공장들의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lt;br /&gt;  슈퍼섬유의 개발을 위한 소련 과학자들의 연구도 속도가 붙어 시험실에서의 연구와 시험을 모두 성공적으로 끝내고 8개 선진국과 5개 경쟁국에 특허출원을 했으며 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해 섬유기술진흥원에 있는 시험실과 소련과학자들의 숙소에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여 24시간 감시를 하도록 했고 미국으로부터 나노분쇄기를 도입하기 위해 조달청과 포항공대에 오퍼를 의뢰해 놓았다.&lt;br /&gt; &lt;br /&gt;  이와 같은 내용들이 섬유신문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자 전국의 섬유유관기관과 연구소들이 밴치마킹을 위해 몰려들었고 일본과 타이완의 섬유업계에서도 냄새를 맡고 견학요청이 쇄도했으며 특히 일본의 가와이 이사장은 똥 밟은 인상이 되어 찾아와서는 겨우 샘플 한 조각을 얻어 돌아갔고 정부에서는 제반 사실을 확인한 후 배 회장에게는 금탑산업훈장을, 나에게는 대통령표창장을 수여했다.&lt;br /&gt;  이즈음 선례는 먼 친척인 5공화국의 실력자와 선이 닿아 돈 보따리를 안겨주고 지난번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여 무주공산이 된 대구중구의 여당지구당위원장자리를 따내어 나를 앉혔으며 선거준비자금으로 거금을 내 놓았다. &lt;br /&gt;  선례의 사업도 순풍에 돛을 달아 식당과 술집들이 모두 대구에서 제일가는 명소로 자리 잡아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대동금융에서도 중견기업들의 어음할인과 월말결제급전, 부동산담보대출 등에 까지 손을 뻗혀 소리 소문 없이 부를 축적하고 있었으며, 선례는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가정교사 겸 가사도우미에게 오늘 할일을 일러주고는 헬스클럽으로 가 두 시간 가량 운동과 사우나를 하고나서 늘 만나는 여성경영인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며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단골인 석 미용실로 가서 대구에서 내로라하는 술집마담들의 모임인 &amp;#39;흑장미클럽&amp;#39; 맴버들의 아부를 받으며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진다.&lt;br /&gt;  오후 세시쯤 대동금융으로 출근하여 은행지점장출신의 상무로부터 보고를 받고 밀린 결재를 한 후 여기 저기 필요한 전화와 필요도 없는 전화질을 하다가 영업이 시작되기 전에 금향각을 거쳐 심전방에 이르러 어제의 매상과 오늘의 지출 등을 체크하다 보면 공무원들의 퇴근시간이 된다.                                                                    &lt;br /&gt;  “심전방인데 저녁은 어떡할 거야?”&lt;br /&gt;  “수성못 밑에 전라도 한정식집이 새로 생겼다는데 거기나 한번 가보자.”&lt;br /&gt;  “내가 차를 가지고 갈 테니 사무실 뒤쪽으로 나온나.”&lt;br /&gt;  늘 이런 식으로 시작되어 저녁을 먹으면서 가볍게 한잔 한 후 당연지사처럼 러브호텔로 직향했다.&lt;br /&gt;  처음이 어렵지 한번 봇물이 터지고 나면 걷잡을 수없이 흘러가는 것이 남녀 간의 이치인데 우리라고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수 십 년간 굶은 것을 벌충이라도 하듯이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서로를 탐하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선례가 나의 지구당위원장취임과 대통령표창을 축하하기위해 기어코 잔치를 하겠다고 나서 행사전문 기획사까지 불러 일을 맡기니 어쩔 수 없이 이에 응하게 되었다.&lt;br /&gt;  기왕에 시작한 거 야당출신 지역구 의원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 관현악단을 부르고 대구의 정, 관계와 재계는 물론 야당인사들에게까지 초청장을 보냈으며 심전방의 중식당과 일식당을 트고 정원에도 라운드테이블을 놓았으며 만약의 불상사에 대비하여 동성로 애들을 대거 2선에 배치했다.&lt;br /&gt;  나의 인사말과 축사, 건배사 등이 있은 다음 내가 테이블을 돌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과정에서 나보다 열댓 살이나 더 위며 지역의 현역 야당국회의원인 권 승환 의원과 마주쳐,&lt;br /&gt;  “반갑습니다, 국사에 바쁘실 텐데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선거는 대 권과 소 권의 싸움이 되겠군요.”하고 먼저 인사를 했다.&lt;br /&gt;  “큰놈과 작은놈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는 보나 마나지요.”하고 헛기침까지 하며 거만을 떨었다.&lt;br /&gt;  “역사는 소 권이 이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lt;br /&gt;  “역사는 역사일 뿐이고, 여당이라 역시 실탄이 풍부 하군요, 이렇게 거창한 잔치를 벌이는 것을 보니, 그런데 웬 깍두기들을 이렇게 많이 동원했어요, 아예 집총한 군인들을 배치하지.”라며 군사정권을 비꼬았다.&lt;br /&gt;  “누가 행패를 부리거나 각설이 부대들이 들이닥칠 가봐 행사를 준비한 업체에서 동원한 모양입니다, 깍두기 방어선이 무너지면 군인들이 탱크를 앞세우고 들어오겠지요, 자 많이 드십시오.”하고 나는 자리를 피해버렸다.&lt;br /&gt;  선례는 내 안사람이나 되는 것 같이 여왕처럼 꾸미고 바둑이와 홍 마담 두 시녀에게 이것저것 간섭을 하며 진두지휘를 하여 뭇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으며 나와의 관계에 대해 여기저기서 수근 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lt;br /&gt;  &lt;br /&gt;  섬유협회의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막 나서는데 바둑이한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lt;br /&gt;  “전무님, 언니가요 정신을 놓았뿌렀어요, 동산병원 응급실로 빨리 와보이소.”&lt;br /&gt;  택시를 타고 동산병원에 도착하는 데는 10분이 체 걸리지 않았다.&lt;br /&gt;  “우리는 언니가 축하잔치준비에 너무 신경을 써서 몸살이 난줄 알고 약국에서 몸살 약만 지어다 먹였는데 점심 챙겨주러 가봤더니 완전히 산송장이라 구급차로 여기 왔습니더.”&lt;br /&gt;  “평소에 어디 아프다거나 숨기고 있었던 병은 없나?”&lt;br /&gt;  “그런 거는 없고요 요즘 와서 피곤하고 소화가 잘 안되며 체중이 준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있었습니더.”&lt;br /&gt;  나는 친구인 내과과장을 찾아가 정밀검사를 부탁했다.&lt;br /&gt;  “누구인가, 부인인가?”                                                        &lt;br /&gt;  “아닐세, 동성로 여왕벌인데 나와 동성로의 대환이가 뒤를 봐주고 있지.”&lt;br /&gt;  “일단 입원을 시키고 삼, 사일이면 모든 결과가 다 나올 거야, 여자 몸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하느라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된 거겠지.”&lt;br /&gt; &lt;br /&gt;  문자 그대로 청천 벽력같은 소식이었다.&lt;br /&gt;  안 선례에게 췌장암 말기라는 선고가 내려졌다.&lt;br /&gt;  “수술을 하면 생존가능성은 있는가?”&lt;br /&gt;  “수술을 할 수 없는 부위야, 다른 장기에도 이미 전이가 되었고, 앞으로 육 개월을 더 버티기가 어려울 거야.”&lt;br /&gt;  나는 선례를 들쳐 업고 서울의 국립암센터로 갔으나 거기서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lt;br /&gt;  “일본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 가면 살릴 수 있을까요?”&lt;br /&gt;  “췌장암은 선진국에서도 고치기 어렵습니다, 수술 없이 항암치료만 하는 것은 서울이나 대구나 마찬가지이니 대구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lt;br /&gt;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이대로 죽게 할 수는 없었다. &lt;br /&gt;  나는 일본의 가와이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국립암센터중앙병원’에 예약을 부탁하고 섬유협회의 배 회장에게는 선거준비를 핑계로 사표를 내었으며 아내에게는 일본에 1년간 유학을 간다하고 선례와 함께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lt;br /&gt;  일본 암센터의 의견도 서울과 대동소이했으며 다만 치료 후 생존율이 한국의 배 정도 된다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lt;br /&gt;  우리는 병원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이마타데’라는 시골동네에 조그마한 집을 얻어 신접살림을 차렸으며 5일간 입원하여 집중적인 항암치료를 받고 10일간 집에서 원기를 회복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암에 좋다는 자연식품은 다 구해다 먹이고 식생활과 운동을 철저히 관리했다. &lt;br /&gt;  &lt;br /&gt;  나는 텃밭을 가꾸어 직접 채소를 길렀으며 우연히 올라가본 뒷산에서 지천으로 깔려있는 취나물, 머위, 더덕, 두릅 등의 산나물과 암에 좋다는 바위솔, 겨우살이 등을 채취하여 말리거나 냉동을 시키고 매일 낫토(일본식 청국장)를 사와 찌개를 끓이는 등 일벌이 여왕벌을 섬기고 봉양하듯이 병간호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이 지극정성을 다했다.&lt;br /&gt;  그리고 대구의 금향각, 심전방, 대동금융도 전화와 팩스로 내가 직접 관리했으며 사소한 잘못이라도 있으면 불호령을 내려 꼼짝달싹도 못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선례가,&lt;br /&gt;  “당신도 사업을 하면 잘할 것 같다.”며, &lt;br /&gt;  “어차피 섬유협회에 사표를 내었으니 대구에 돌아가면 모두 다 맡아 달라.”고 했다.&lt;br /&gt;  “나는 사업에는 자신이 없어, 내가 줄 돈은 무조건 안주고 내가 받을 돈은 악착같이 받아내며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이 해야 하는 게 사업인데 나는 그게 자신이 없어, 선례도 대구에 가면 모든 걸 정리하고 건강이나 돌보면서 조용히 살아야 해, 그리고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말고 마음을 비워야 돼.”&lt;br /&gt;  일본에서의 투병생활이 6개월로 접어들자 선례의 병세는 많이 회복되어 겉으로는 병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일상생활에도 거의 불편이 없었으며 하루하루를 행복에 겨워했고 형빈이와도 전화를 자주했으며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생의 참맛을 느낀다고 했다.&lt;br /&gt; &lt;br /&gt;  우리는 의사의 허락을 받아 귀국키로 했으며 저 남쪽의 나가사키에서부터 홋가이도의 삿뽀로까지 일본전역을 유람하고 대구에 오니 동성로 이 사장이 무사귀국을 축하한다며 저녁식사를 마련한 자리에서 요즈음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니 이제 보스자리를 내어줄 때가 되었다며 서글퍼했고 시경의 오 계장도 승진하여 시골의 경찰서장으로 나갔다고 했다.       &lt;br /&gt;  나는 이 사장이 건달세계에서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선례의 지분을 매입하는 조건으로 대동금융을 넘겨주기로 했으며 금향각과 무랑루즈는 월세를 놓고 만리장성은 홍 마담에게, 아사쿠사는 바둑이에게 비품대나 권리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경영권을 넘겨 집세만 내도록 교통정리를 했다.&lt;br /&gt;  선례는 팔공산 밑 백안동에 전원주택을 마련하여 이사를 했고 나는 심전방에 내가 거처할 방과 연락사무소를 꾸며 주민등록을 중구로 옮겼으며 다시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한편 만리장성과 아사쿠사에서 지역구 주민들을 만나며 서서히 선거준비를 해 나갔다. &lt;br /&gt;  또 선례와 의논하여 심전방의 담장을 허물고 정원을 대폭 개조하여 500여 평의 땅에 농구, 베트민턴, 족구장 등을 만들고 체력단련을 위한 각종 운동시설과 화장실, 벤치 등의 편의시설이 있는 소공원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개방하였으며 조그마한 준공비석에 ‘권 영환’이란 내 이름 석 자를 새겨 넣었다.&lt;br /&gt;  그리고 ‘금호강 풋사랑’, ‘아양교의 이별’, ‘추억의 금호역’이라는 대중가요를 직접 작사하고 테이프를 만들어 지역민들에게 배포하고 각종행사에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고 기부를 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내가하는 일은 차질 없이 잘 진행되어가고 있었으나 선례는 일본에서 귀국한지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동산병원에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으며 내과 과장은 내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일러 주었다.&lt;br /&gt;  아마 재산을 정리하고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무리를 한 것 같았으며 나는 눈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lt;br /&gt;  어떻게 해야 할까, 돈도 명예도 권력도 다 움켜잡았는데 여자 하나를 못 살려내다니......,    산삼을 먹이면 나을까, 용한 점쟁이를 한번 찾아가 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lt;br /&gt;  그러나 내가 선례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기껏해야 성당을 찾아가 기도하는 일 뿐이었다.&lt;br /&gt;  동산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여 만에 퇴원을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lt;br /&gt;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네만 더 이상 방법이 없네, 앞으로 일주일을 넘기기 어려울 거야, 준비를 하게, 참 안됐네.”&lt;br /&gt;  나는 멍하니 창 너머 먼 하늘만 바라다보았다.&lt;br /&gt;  “기사양반, 팔공산 백안동으로 갑시다.”&lt;br /&gt;  “아니야 금호로 가고 싶어, 옛날 우리가 뛰어놀던 금호강과 과수원길, 가슴 설레며 만나던 금호역이 보고 싶어, 지금도 기적을 울리며 통근차가 다닐까, 거기에는 당신이 작사한 노래비도 있다면서?”&lt;br /&gt;  “그래, 그럼 금호로 갑시다.”&lt;br /&gt;  우리는 눈에 익은 국도를 달려 금호강 제방과 과수원 길, 국민학교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 금호역으로 갔으며 거기에는 오늘을 예견한 듯한 노랫말이 적혀 있었다.&lt;br /&gt; &lt;br /&gt;         추억의 금호역&lt;br /&gt; 내고향 금호역에 진달래 붉게타면&lt;br /&gt; 몰래키운 어린순정 발갛게 물들었지&lt;br /&gt; 긴세월 가슴에묻은 댕기머리 내사랑   &lt;br /&gt; 통근차 차창넘어 그모습 아련한데&lt;br /&gt; 오늘도 금호역엔 기적이 울겠지.&lt;br /&gt; &lt;br /&gt; 해저문 금호역에 외로운 저나그네&lt;br /&gt; 무슨사연 그리많아 발길을 못돌리나&lt;br /&gt; 희미한 가로등아래 다홍치마 옛추억                         &lt;br /&gt; 막차도 떠나가고 조각달 외로운데&lt;br /&gt; 불꺼진 금호역에 실안개 내린다.&lt;br /&gt; &lt;br /&gt;  대구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선례는 조그마한 손가방 하나와 편지 한통을 주면서 내가 30년 만에 당신께 연애편지를 썼으니 집에 가서 읽어보라고 하며,&lt;br /&gt;  “당신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꼭 보고 싶었는데 못보고 가나봐.” 했다.&lt;br /&gt;  “무슨 소리, 내가 산삼을 구해 올 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당신이 없다면 국회의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lt;br /&gt;  “산삼 먹는다고 나을 병인가, 옛날가수 나 애심이가 부른 ‘미사의 종’이라는 노래가 듣고 싶어, 당신 노래 잘 하잖아, 이절은 방금 금호역에서 본 노랫말로 불러줘.”&lt;br /&gt;  나는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lt;br /&gt;  “......걸어오는 발자욱마다 눈물고인 내청춘, 죄많은 과거사를 뉘우쳐 울적에......” 할 때에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고 선례는 뼈만 남은 앙상한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으며 내가 노래를 다 마쳤을 때는 이미 눈을 감고 잠이 들었으며 그 잠은 다시 깨어나지 못한 체 내 사랑 여왕벌은 내 어깨에 기대어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올라갔다.&lt;br /&gt;  &lt;br /&gt;  나는 선례를 경대병원에 안치하고 난후 연애편지란 것이 유서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즉시 뜯어보았다.&lt;br /&gt;  “내 사랑 영환 씨 보세요.&lt;br /&gt;  내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다보니 무덤까지 갖고 가려했던 비밀을 당신께 털어놓지 않을 수 없군요.&lt;br /&gt;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면 형빈이는 당신의 아들입니다.&lt;br /&gt;  어려웠던 시절 방회장의 별장에서 가끔 술을 나누며 밤을 보낸 적이 있었으나 그 당시 이미 방 회장은 당뇨중증으로 심신이 온전하지 못했으며 이런 사람에게 자기자식이라고 착각을 하게 만든 것은 순전히 덕이나 좀 보려고 꾸며낸 나의 음모이고 연극이었습니다.&lt;br /&gt;  저승에서 만나면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지요.&lt;br /&gt;  지난 10년간 당신은 나의 애인이고 남편이었으며, 오빠고 아버지였습니다.&lt;br /&gt;  그간 내게 베풀어준 사랑과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겠으며 특히 일본에서 받은 당신의 헌신적인 사랑은 이 세상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고귀한 것으로 고 히 간직하여 저승까지 가져가겠습니다.&lt;br /&gt;  여기 국회의원선거를 두어 번 치룰 수 있는 예금과 몇 건의 부동산이 있으니 받아주시고 당신 부인에게는 면목이 없지만 형빈이를 친자식으로 입적시켜 주시면 여한이 없겠습니다.&lt;br /&gt;  형빈이는 우연히 얻은 자식이 아니고 당신과 나를 하나로 묶어주기 위해 하늘이 점지해 주신 신의 선물이니 부디 소중히 키워주소서. &lt;br /&gt;  당신은 이재에도 밝지 못하고 사업에는 관심도 없으니 아예 사업을 할 생각은 말고 수성에나 신경 쓰기 바라며 혹시 선거가 여의치 않아 현금을 다 없앤다 하드라도 부동산만은 처분하지 말고 그대로 갖고 계세요, 앞으로 부동산값은 엄청나게 오를 전망이니 소유 그 자체만으로도 당신과 형빈이의 평생을 보장해줄 것입니다.&lt;br /&gt;  가방 속에 명의이전에 필요한 모든 서류와 도장이 들어있습니다.&lt;br /&gt;  금호강과 과수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조그마한 무덤하나 만들어 주시고 해마다 진달래꽃이 필 무렵 당신과 형빈이가 함께 와서 술 한 잔만 올려주면 나도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다.&lt;br /&gt;  당신을 믿고 먼저 갑니다.&lt;br /&gt;  1986년 10월 9일    안 선례  올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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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5 Feb 2010 15:21: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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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마필산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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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다시 승마&lt;br /&gt; 이미 시행령이 입법 예고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과, 현재 물 밑에서 진행 중인 마사회법 개정으로, 마사회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하다. 경마는 이제 동네북이다. 길가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보면, 과연 경마가 도박이 아닌 &amp;#39;건전한 오락&amp;#39;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명이나 있을까? &lt;br /&gt; 경마 계는 경마가 산업이며, 85년 경마 역사를 이야기 하지만,  마필 산업 발전과, 경마를 진정한 국민의 오락으로 알리려는 노력은 미약했다. 이제 온 국민이 경마는 도박! 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국회의원들도 여론에 힘을 얻어, 경마를 없애자는 이야기를 한다. 마사회만 툭툭! 두드리면 &amp;#39;국민을 패가망신에서 구해내려는 기특한 국회의원&amp;#39;이 되는 것이다. &lt;br /&gt; 그러면 우리보다 선진국인 나라들은 경마가 없을까? 당연히 있다. 마필산업은 국민소득 2만 불 이상 국가에선 G.D.P.의 약 1%를 차지하는 당당한 산업이다. 미국에서는 영화산업, 의류산업과 비슷한 규모이며, 심지어 아일랜드는 G.D.P.의 3%에 이른다. 여기에는 말 생산농가, 건전한 레저 스포츠로써의 각종 승마 산업, 말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런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처럼 경마를 규제하고 없애려고만 할까? &lt;br /&gt; 세계적인 경마선진국들을 보면 경마시장과 승마 시장이 반반을 이루며, 서로 상호 보완 관계를 가지고 있다. 국민들이 대중적으로 승마를 즐기고 말을 평생의 반려 동물로 사랑한다. 순수한 열정으로 경마를 즐기고, 애정의 대상으로 말을 보는 국민이 많다는 것이다. &lt;br /&gt; 우리나라는 승마산업이 경마 산업의 1.5%가 채 되지 않는 심한 불균형을 겪고 있다. 문광부에 등록 된 정식 승마장은 전국에 26곳 밖에 없다. 여기에는 몇 년 새 문을 닫은 승마장도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는 20곳이 채 안될 것이다. 130여개로 추산 되는 사설 승마장은 평균적으로 년 간 2,400 여 만 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lt;br /&gt; 경마? 경마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2002년 7조 2천억부터 매년 매출이 줄어, 2005년에는 5조 까지 떨어졌다. 마필 관련 산업은 지금 끼리끼리 망해가는 집안이다. &lt;br /&gt; 이게 오천년 기마민족의 현실이다. 말이 대중화 되고 사람의 인성과 호연지기 함양. 청소년들의 건전한 레저 스포츠로 인정을 받게 하는 조금의 노력도 없이, 경마 = 도박 이라는 공식만 열심히 확대 재생산 해 온 것이다. 정말 굉장히 효율적으로! &lt;br /&gt; 국민들의 호응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업이, 일부 탁상공론이나 밀실행정으로만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리 없다. 그간 경마계가 간과한 승마 육성의 과제가 결국 칼날이 되어 경마계로 향했다. &lt;br /&gt; 이제 어떻게 할까? 늦어도 너무 많이 늦은 이 때. 과연 어떻게 해야 경마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lt;br /&gt; 당장 어려움에 처한 마필 축산 농가가 말떼를 이끌고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한다고? 그에 호응하는 국민은 아마 320명쯤 될 것이다. 확신한다. (마필 생산 농가 160 곳과 그 부인들!)나머지 모든 국민들의 불신과 무관심과 경마에 대한 염려는 더 커지기만 할 것이다. &lt;br /&gt; 하지만 말은 살아남아야 한다. 인간과 함께 신의 창조물로, 이 행성에서 건강하게 번성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말들을 지켜내고, 마필 축산 농가도 지켜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마필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말과 가까이 하게 만들 수 있을까? &lt;br /&gt; 방법은 있다. 결국 이 시대는 문화와 콘텐츠의 세상이다. 우리는 경마나 승마가 아닌 마 문화를 확산 시켜야 한다. 그리고 학교 승마 교육. 즉 말과 마 문화가 국민들의 대중적인 호응을 얻어야만, 마필 축산 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lt;br /&gt; 여기에 몇 가지 안을 생각해 본다. &lt;br /&gt; &lt;br /&gt; 1. 마조제 &lt;br /&gt; 우리는 먼저 마조제를 되살려야 한다. 우리 민족과 함께 오천년간이나 오랑캐의 침략을 막아 싸운 것은 말이다. 우리는 말과 훌륭한 장수 덕분에 여전히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국의 마필 관계자들 모두가 한양대의 마조단에 모여야 한다. &lt;br /&gt; 왜 말들의 조상에게 4번이나 절을 했을까?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임금이 주재하는 국가 중요제례였다. 이것을 현재에 되살려 말과 우리 민족의 진정한 관계를 알려야 한다. 국방, 정보통신, 교통, 청소년 교육, 생활수단 등 우리 민족의 생존과 일상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고마운 존재였음을 국민들이 마조제를 통해서 깨닫게 해야 한다. &lt;br /&gt; 또한 마조제를 무형 문화재로 복원하고, 매년 길일을 택하여 가능하면 옛날의 임금이 했던 것처럼, 대통령이 주재하는 성대한 제례 행사를 열어야 한다. 이때 TV 중계 등을 통해서 마필 산업의 중요성과 말산업계의 일치된 모습을 보여야한다. &lt;br /&gt; &lt;br /&gt; 2. 학교 승마 교육의 보급. &lt;br /&gt; 2만 불 시대 한국의 승마시장 발전 가능성은 약 4조원으로, 이는 국내 한우 산업과 맞먹는 규모다. F.T.A. 축산물 개방 등에는 전전긍긍하면서, 그저 마필 산업 선진국들처럼 경마, 승마가 균형발전만 해도, 당연히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을 완전히 손 놓고 있다. &lt;br /&gt; 이제 부터라도 승마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전국의 초등학교에 태권도, 농구, 배구, 수영처럼 언제나 승마교육이 가능한 [찾아가는 승마교실]을 열어야한다. 승마를 학교체육의 새 종목으로 채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말과 승마에 접할 수 있도록 제주도의 조랑말을 적극 활용하여 IT시대의 역기능을 막아야 한다. &lt;br /&gt; 이를 위해서 농림부, 교육부, 문광부가 M.O.U.를 채택하여 학교 체육으로써의 적극적인 승마 보급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야만 한다. 우리 건국대학교 한국 마필산업연구소도 그 소임에 소극적이지 않을 것이다. &lt;br /&gt; 또한 안전 승마교육시설의 각급학교 보급, 학사 학위를 가진 정식 승마 지도자의 양성, 우수한 승용 마필의 육종 개발이 함께 진행 되어야 한다. 여기에 골프의 박세리 같은 걸출한 스타가 승마에서 배출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lt;br /&gt; 마필 축산 농가의 입장에서도 한정된 경마 시장보다, 성장 가능성이 무한정인 대중화된 승마시장이 훨씬 더 매력적일 것이다. &lt;br /&gt; &lt;br /&gt; 3. 경마 존립의 논리 세우기. &lt;br /&gt; 경마가 왜 도박이 되었는가? 이는 말을 타본 적도 없고, 말을 모르는 사람들이 확률과 사행심으로 돈을 걸고 요행을 바라기 때문이다. 늘 말을 타고, 말과 함께 생활하며, 말을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좋은 마필을 생산보급하기 위한 자금마련. 어려운 축산 농민을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의 비용마련을 위한 제도라고 한다면, 절대로 지금처럼 욕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lt;br /&gt; 어차피 도박도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고 하면, 이를 제도권 내에서 수용하여 피해를 최소화 하고, 일부 중독자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선도하는 역할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만약 현재의 경마 규모를 축소하거나 없앤다면, 풍선효과에 의해 국내 사행산업은 깊숙이 잠수하여, 제도권 밖의 암흑 속에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대한 화투연맹, 대한 포커회, 대한 골프 도박회가 있는가? 이들의 도박 규모는 파악도 되지 않으며, 제도적인 대책도 전무하다.) &lt;br /&gt; 제도권 내의 양성적 경마에서 축소된 경마 수익은, 현재 성행하고 있는 음성적인 사설경마로 몰릴 것이고(이미 사설경마는 정상 경마 이상의 매출 규모를 가진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러한 돈들은 각종 음성조직으로 흘러 들어가 2차적인 사회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크다. &lt;br /&gt; 그러므로 시급히 세계적인 경마 선진국의 경마문화와 마필 산업을 면밀하게 연구하여, 경마의 역기능을 능가할 각종 순기능을 찾아야 한다. 어렵지만, 경마산업 존재이유를 찾아 논리적으로 정리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결론 : &lt;br /&gt; 금부터라도 이러한 마 문화 보급 사업을 마사회가 주관하여 추진하고, 마사회가 도박을 하는 곳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대중적인 오락거리를 제공하며, 더불어 주요 무형 문화재 복원, 건전한 승마 문화의 보급, 승마 대중화와, IT시대의 역기능을 순화시킬 학교 승마교육에 앞장서는 마필산업계의 맏형, 국내 축산 발전의 주요 성장 축임을 널리 알려야 한다. &lt;br /&gt; 즉 경마에 돈을 쓴다고 해도 국민전체의 입장에서는 손해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어두운 곳으로 빨려 들어갈 막대한 금액이 양성화 되어, 마 문화 확산, F.T.A. 시대 축산 경제의 성장 동력, 국민 건강 향상, 미래 지도자 양성 등에 가치 있게 사용된다는, 범국민적인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 져야만 하는 것이다.  &lt;br /&gt; 자, 이제 모두들 다시 승마를 이야기 한다. &lt;br /&gt; 물론 늦었다. 하지만 모두들 알고 있지 않은가? &lt;br /&gt; &amp;quot;가장 늦은 때가...&amp;quot; &lt;br /&gt; &lt;br /&gt; 건국대학교 한국마필산업연구소 사무국장 김명기 (010-3181-4446) &lt;br /&gt; [출처] 이제 다시 승마?|작성자 김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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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1 Jan 2010 16:30:36 +0900</pubDate>
    <category><![CDATA[자료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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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지방정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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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경스런 여성 구의원은 결국 &amp;#39;물 먹었다&amp;#39;&lt;br /&gt; [오마이뉴스] 2010년 01월 11일(월) 오전 09:25 가  가| 이메일| 프린트  [오마이뉴스 하승수 기자] &lt;br /&gt; ▲ 국회의원들이 왜 기초지방의원 공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지는 기득권 정당에 소속된 기초지방의원들의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진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모습.(자료사진)  &lt;br /&gt; ⓒ 권우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에서 시민운동하는 사람이나 학자들을 만나면 이분들은 &amp;#39;큰 정치&amp;#39;만 이야기한다. 입을 열면 여의도 정치에 관한 이야기이고, 올해 지방선거 관련해서도 서울시장 같은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주된 관심사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들을 보면,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작은 활동에라도 참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기 지역의 기초의회(구의회나 시·군의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활동하고 있으며, 자기 지역의 정치지형이 어떤지도 잘 모를 것이다. &lt;br /&gt; 이렇게 바닥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정치이야기는 늘 &amp;#39;붕 뜨기&amp;#39; 마련이다. 현실과 밀착되어 있지 못하고 정치를 진짜 변화시킬 수 있는 비전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lt;br /&gt; 매번 &amp;#39;붕 뜨는&amp;#39; 정치이야기 &lt;br /&gt; 그러나 바닥을 모르고서는 우리나라 정치를 진짜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진짜 정치를 보려면 기초지방의회(시·군·구의회)를 보아야 한다. &amp;#39;정치의 막장을 보여주는 곳&amp;#39;이고, 왜 &amp;#39;한국 정치가 기득권정치인지를 보여주는 곳&amp;#39;이기 때문이다. &lt;br /&gt; 국회의원들이 왜 기초지방의원 공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지는 기득권 정당에 소속된 기초지방의원들의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초지방의원들은 선거 때면 선거운동의 일선에 선다. 평소에 중앙정치인들을 위해 지역구 관리를 한다. 그래서 한국 정치가 &amp;#39;지금 이대로&amp;#39; 가도록 하는 밑바탕이 된다. &lt;br /&gt; 그 대가로 지방의원이라는 자리를 얻는다. 그리고 그 자리가 주는 여러 혜택을 누린다. 공식적으로는 의정비를 받고 목에 힘을 줄 수 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여러 이권에 개입할 수 있다. 건설업 같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왜 기초지방의원이 되려고 할까? 그 이유는 답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역의 어려운 아동이나 청소년에게 관심이 있을까? 지역 환경이 가진 가치를 존중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려 할까? 지역주민들의 복지정책을 위해 연구하고 대안을 개발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이 보여준다. &lt;br /&gt; 한국 정치가 왜 바뀌지 않고 희망이 없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정치의 밑바닥이 이 모양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치의 밑바닥이 &amp;#39;보수 기득권 일색&amp;#39;인데 정치의 위가 바뀌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lt;br /&gt; 지난 정권 때에 소위 개혁적이라고 하는 386 국회의원에게 관변단체에 대한 특혜를 없애라고 했더니, 그러면 &amp;#39;다음번 선거 때 힘들다&amp;#39;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정치의 밑바닥이 &amp;#39;보수 기득권&amp;#39;이다 보니,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는 정치인도 유권자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amp;#39;보수 기득권&amp;#39; 세력 눈치를 보는 것이다. 선거 때면 여당·야당을 불문하고 난개발 공약을 내세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lt;br /&gt; 진정한 희망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썩은 곳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정치변화의 새로운 힘도 기초지역정치부터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그리고 전국의 지역 곳곳에서 그런 희망을 가지고 풀뿌리에서부터, 기초지역정치부터 정치를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lt;br /&gt; &amp;#39;풀뿌리 좋은 정치네트워크&amp;#39;가 만들어진 이유 &lt;br /&gt; &lt;br /&gt;  &lt;br /&gt; ▲ 2006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한 선거후보자의 연설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lt;br /&gt; ⓒ 이종호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작년 12월 여러 지역 사람들이 모여서 &amp;#39;풀뿌리 좋은 정치 네트워크&amp;#39;라는 모임을 꾸렸다. 지역에서 풀뿌리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amp;#39;밑바닥 정치&amp;#39;부터 바꿔보자고 만든 모임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세금부터 제대로 써서 시민들의 &amp;#39;삶의 질&amp;#39;을 높여 보자고, 지역의 환경을 지키고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를 만들어 보자고, 가난하거나 어려운 아동과 청소년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자는 생각을 가진 모임이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 지역의 정치부터 바꿔보자는 것이다. &lt;br /&gt; 지금 강원도 속초, 서울의 마포구·도봉구·노원구·관악구·동작구, 경기도 부천·군포·과천, 대구, 경북 구미, 대전, 광주, 전남 여수 등에 있는 모임이나 개인이 참여하고 있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움직임들이 연결된 것이다. 그냥 모임이나 개인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역에서 풀뿌리운동·시민운동을 하며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lt;br /&gt; 주로 기초지방의원선거에서 &amp;#39;풀뿌리 좋은 후보&amp;#39;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 지역 중에서는 당장 올해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기 어려운 지역도 있다. 그런 지역은 다음번 지방선거에라도 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역들에서 나갈 후보는 지역정치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내는 &amp;#39;풀뿌리 좋은 후보&amp;#39;이다. &lt;br /&gt; 소위 중앙의 명망가들은 기초지방의원 선거를 준비한다고 하면 &amp;#39;그렇게 해서 뭐가 바뀌겠냐&amp;#39;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초지방의원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나라 정치는 기득권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기초지역정치가 잘 되면, 정치를 통해 &amp;#39;삶의 질&amp;#39;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유권자들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lt;br /&gt; 형식적인 복지정책을 내실있게 바꾸고, 환경을 위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실천부터 해 나가고, 지역에서부터 아동·청소년의 인권이 실현되고, 시민들과 함께 &amp;#39;더불어 사는 사회&amp;#39;를 만들어나가는 경험을 하려면 기초지역정치부터 바꿔야 한다. 그 경험은 유권자들이 &amp;#39;정치 변화의 필요성&amp;#39;을 절감하고 더 큰 변화의 주체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lt;br /&gt; 기득권 정치에 파열구를 내자 &lt;br /&gt; 얼마 전 서울의 어느 단독주택가에 있는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했다. 2006년 지방선거때까지 구의원으로 활동하던 분이 지역의 뜻있는 분들과 함께 설립하고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였다. 저녁 8시인데, 몇 분의 여성이 모여 미술 치료하는 아이들 사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토론을 하면 2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가난 때문에 또는 가족의 상황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들 한명 한명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그만큼 걸리는 것이다. &lt;br /&gt; 이 지역아동센터의 설립·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분(여성 구의원 출신)은 지역토호들 중심의 남성의원들 사이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2006년 지방선거 때 기초의원 선거까지 정당공천제가 도입되면서 낙선했다. 무소속 후보였기 때문이다. &lt;br /&gt; 의정 활동도 열심히 하고 선거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기득권 정당의 벽을 넘을 수 없었노라고 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 지역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참 존경스러운 분이다. 다시 구의원 해 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보면, 지금 아이들 만나는 일이 더 좋다고 한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고 말한다. 지방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데, 그 일들을 다 못해 본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지역의 아동·청소년들에 대해 구청이나 구의회에서 관심이 많으냐고 물어보니까,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lt;br /&gt; 나는 이런 분들이 대표자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분노스럽다. 우리나라의 지역정치는 보수-진보도 아니고 기득권세력-시민의 구도이다. 여의도 정치에서는 보수-진보가 있을지 몰라도 지역에서는 대다수의 기득권 세력과 소수의 좋은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지역주민들의 생활의 문제를 정치를 통해 풀고 싶고,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 사람들은 기득권 정당들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lt;br /&gt;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이런 기득권 정치의 벽에 파열구를 내 보자. 기초지방의원 선거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보자. &lt;br /&gt; &amp;#39;풀뿌리 좋은 후보&amp;#39; 선거운동을 돕겠다 &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전국 각지의 뜻있는 유권자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수동적으로 투표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amp;#39;풀뿌리 좋은 후보&amp;#39;를 발굴하고 이들을 의회로 보내는 운동을 하자. 기득권 정당들이 지금 지역정치에서 하고 있는 행태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새로운 대안을 스스로 만들어 보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lt;br /&gt; 정치 변화를 바란다면 중요한 것은 &amp;#39;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amp;#39;이다. 나는 올해 지방선거 때에 기초지역정치의 변화를 위해 신나게 발품을 팔 생각이다. 내가 가진 역량이야 보잘것없지만, 나는 발품을 팔아 &amp;#39;풀뿌리 좋은 후보&amp;#39;들의 선거운동을 도울 것이다. 소위 명망가라는 사람들이 발품을 팔지 않고 점잖은 척하면서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위선이다. &lt;br /&gt; 나는 내 발바닥과 내가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지역의 풀뿌리활동가와 건강한 유권자들을 믿는다. 자신이 꿈꾸는 변화를 위해, 그리고 자신이 믿는 사람들과 함께 발로 뛰며 거리를 누비는 것이야말로 신나는 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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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1 Jan 2010 12:07:3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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