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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DATA[유머플러스]]></title>
<description><![CDATA[aohappy2의 블로그 입니다.= 제목 =유머플러스 소장  여성유머강사1호 02-8366-004]]></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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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유머플러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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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명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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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Apr 2008 03:02:29 +0900</pubDate>
    <category><![CDATA[기본폴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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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웃음이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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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웃음이론*&lt;br /&gt; &lt;br /&gt; &lt;br /&gt; 류 종 영 (목원대)&lt;br /&gt; &lt;br /&gt; &lt;br /&gt; Ⅰ. 들어가는 말&lt;br /&gt; &lt;br /&gt; 미학의 대상으로서 웃음과 희극적인 것과의 관련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논의되고 연구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웃음에는 희극적인 것에 대한 “대답의 성격 Antwortcharakter des Lachens”이 있다고 주장되어 왔지만, 이 성격도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인간들은 희극적인 것[혹은 즐거운 것]에 대한 대답[반응]으로서도 웃지만, 당혹감을 느끼거나 절망적인 순간에도 웃고, 간지럼과 같은 외부의 물리적인 자극에 의해서도 웃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mp;#985172;철학사전 Historisches W&amp;ouml;rterbuch der Philosophie&amp;#985173;에서는 “희극적인 것 Das Komische”과 “웃음 das Lachen”이 동일한 표제어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는 미학적인 의미에서 보아 ‘희극적인 것’과 ‘웃음’의 개념이 상호 결합되어 있고, 웃음의 현상과 원인 그리고 웃음의 심리적인 반응이 희극적인 것과 동일함을 의미한다. &lt;br /&gt;   고대 로마의 수사학자修辭學者인 퀸틸리안 M. F. Quintilian(us)(30～um 96 nach Chr.)에 의하면, “사람들은 웃음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판단한다. 왜냐하면 이 판단은 이성적인 성찰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언어적으로 전혀 정의내릴 수 없는 감정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웃음에는 주관적인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를 웃게 하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웃음의 원칙들을 우리는 ‘웃음이론’이라 한다.       &lt;br /&gt;   서양의 철학과 미학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그 근본토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웃음이론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그 근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와 관련하여 쥐스 W. S&amp;uuml;ss는 “웃음, 코믹 그리고 위트, 이러한 것들의 본질적인 특성들은 우리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이라 부르는 것에서 풍부하게 나타나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슈빈트 K. Schwind는 18세기까지 서양의 거의 모든 웃음이론들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웃음이론들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어떤 웃음이론들이 존재했으며, 이 이론들은 어떤 점에 있어서 현재까지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는가? &lt;br /&gt;   본 연구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Platon,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와 고대 로마의 키케로 Cicero의 웃음이론들을 고찰하고, 이 이론들이 어떤 의미에서 후세 서양의 웃음이론들에 그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에 대해 고찰하려고 한다.&lt;br /&gt; &lt;br /&gt; Ⅱ. 플라톤: 무지無知의 우스꽝스러움&lt;br /&gt; &lt;br /&gt;   플라톤 Platon(428/27～348/47 v. Chr.)은 웃음에 대해 대단히 유별난 견해를 갖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 자신은 한 번도 지나칠 정도로 웃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에서는 늘 웃음의 주제가 고려되어 있으며, 웃음이 행동태도의 한 방법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플라톤 역시 명랑하고, 기쁘고, 아무런 걱정이 없는 웃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나, 웃음을 일으키게 하는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존재의 가능성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드러내는 웃음을 문제 삼았다. &lt;br /&gt;   플라톤이 웃음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것은 그가 구상한 이상국가理想國家와 관련이 있다. 그는 시인들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그의 &amp;#985172;국가론 Politeia&amp;#985173; 제2, 3, 10권에서 발견된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들이 묘사한 대상들이나 내용들이 그의 이상국가의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 원칙들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시인들에 대한 플라톤의 혐오감은 첫째, 전통적인 문학 작품들이 “미덕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윤리적으로 타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들이 쓴 문학작품들의 내용들이 이성理性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성과 거리가 있다는 것은 문학이 그 자체 내에 진정한 인식의 요구에 대한 그 어떤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셋째, 시인들은 현실을 진실에 가깝게 재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보아 모방예술에 대한 플라톤의 철학적 견해이기도 하다. 현실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는 시인들, 특히 호머 Homer의 작품들을 전통적으로 교육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선(善)으로서 아름다움(美)보다 올바름(眞)을 지향하지 않는” 교육적인 도구는 정치적인 통치방법으로서 이상국가 실현에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문학작품들에 묘사된 것들이 “시적詩的이 아니고 민중에게 기분 좋게 들리기” 때문이 아니라, “묘사된 것이 시적이면 시적일수록 더욱 자유롭게 명상하고 죽음보다 노예로서 사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할 소년과 소녀들이 들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시인들의 작업은 검열을 받아야 한다. &lt;br /&gt;   플라톤의 우스꽝스러움에 대한 이론은 그의 노년의 작품인 &amp;#985172;필레보스 Philebos&amp;#985173;(360년 이후 v. Chr.) 대화에 기술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소크라테스 Sokrates와 프로타르코스 Protarchos의 대화는 “희극적인 것에 대한 이론들 중에서 지금까지 보존된 가장 오래된 이론의 한 본보기이다.” &lt;br /&gt; 소크라테스: 그러면 여기서 우스꽝스런 것의 성질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세.&lt;br /&gt; 프로타르코스: 말씀만 하세요.&lt;br /&gt; 소크라테스: 대체로 보아, 이건 일종의 나쁜 것이라네 [...] 모든 나쁜 것들 중에서 델피 신탁에 명기되어 있는 것과는 바로 상반되는 부분이라네.&lt;br /&gt; 프로타르코스: 소크라테스, 그러면 “너 자신을 알라”를 의미하는가요?&lt;br /&gt; 소크라테스: 그렇다네. 그 반대는 명확할 거야.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것이지.&lt;br /&gt; 프로타르코스: 그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lt;br /&gt; 소크라테스: 그러면 프로타르코스, 이걸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지 않겠나? /[...]&lt;br /&gt; 프로타르코스: 그 세 가지 부류란 어떤 것입니까?&lt;br /&gt; 소크라테스: 첫째 재산과 관련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에 걸맞지 않게 자신이 더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lt;br /&gt; 프로타르코스: 그건 그렇답니다. 이런 오류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많습니다.&lt;br /&gt; 소크라테스: 그렇지만 자신이 더 위대하고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신체와 관련해서 그렇다네. 이런 경우엔 진실에 상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탁월하다고 생각한다네.&lt;br /&gt; 프로타르코스: 예, 그건 확실합니다.&lt;br /&gt; 소크라테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말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것 같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의 영혼[성격]에 대해서 오류가 있다네. 이 사람들은 인간적인 유능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실제로는 그렇지 않는데 말일세.&lt;br /&gt; 프로타르코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답니다.&lt;br /&gt; 소크라테스: 그리고 유능함의 유형들에 현명함이 포함되지는 않겠지? 많은 것을 자신을 위해 이용이나 하고, 그 때문에 늘 다툼이 있는 그런 현명함이란 단지 사이비 현명함이 아닐까?&lt;br /&gt; 프로타르코스: 그건 전혀 의심할 바 없습니다.&lt;br /&gt; 소크라테스: 프로타르코스, 그러면 우리 이것을 다시 한 번 둘로 나누어 보세, [...]&lt;br /&gt; 프로타르코스: 어떻게 이것을 둘로 나누지요 -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lt;br /&gt; 소크라테스; 인식의 부족으로 인해 자신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 외의 사람들을 동일한 사람들로 간주해 보자는 것이라네. 즉, 이들 중에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한 부류로 보고, 나머지 사람들을 그 반대로 보아서 둘로 나누는 것이 필연적인 방법인가 하는 말이라네.&lt;br /&gt; 프로타르코스: 그야 필연적이지요.   &lt;br /&gt; 소크라테스: 그러면 이런 의미에서 분류해 보지, 모든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비웃을 때 앙갚음을 하기엔 너무 허약하고 앙갚음을 할 수도 없는 사람들로 나누어 보자는 말일세. 자네가 이 사람들을 우스꽝스럽다고 한다면, 그건 옳다네. 이와는 반대로 앙갚음을 할 수도 있고 강한 다른 사람들을 자네가 무시무시하고 혐오할 만하다고 한다면, 자넨 이들에 대해서 가장 올바르게 설명한 것이라네. 왜냐하면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지無知는 혐오할 만하고 비열한 것이라네 - 무지는 말하자면 이웃 사람들에게도 역시 손상을 끼친다네 [...] 그러나 무지가 허약하면, 이 무지는 우리에겐 우스꽝스런 것의 영역에 속하며 우스꽝스런 것의 성질에 속하기도 한다네. &lt;br /&gt; &lt;br /&gt; 여기서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우스꽝스러움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첫째,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이 우스꽝스럽다. 특히 재산(부유함), 아름다움 그리고 유능함(현명함)과 관련하여 자신을 알지 못할 경우 우스꽝스럽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무지나 모든 몰지각이 다 우스꽝스런 것은 아니다. 무지한 사람이나 몰지각한 사람도 단지 힘이 없을 때만 우스꽝스럽다. 왜냐하면 우리는 강한 사람을 비웃을 수 없기 때문이다.&lt;br /&gt;   그리고 &amp;#985172;필레보스&amp;#985173;에서 우스꽝스러움에는 즐거움과 즐겁지 않는 감정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도 플라톤은 밝히고 있다. 이 저서에서 소크라테스는 질투심을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하고 있다. 즉, 자신을 알지 못하는 친구들을 비웃는다면, 이 비웃음에는 즐거운 것과 즐겁지 않은 것이 혼재되어 있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은 악堊이고, 자신을 알지 못하는 허약한 사람들은 여전히 우스꽝스럽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비웃는 것에 대해 앙갚음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당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친구들의 불행에 대해서도 기뻐하기 때문에, 우리는 웃는다. 친구들의 불행에 대해 기뻐하는 것은 질투심에서 유발된 것이다. 질투심은 영혼을 즐겁지 않게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자신을 알지 못하는 친구에 대해서 웃는 것은 즐거움에 즐겁지 않는 것이 혼재된다. 이로써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정신적인 영역에서 즐거움에 즐겁지 않는 것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제시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비가悲歌들과 비극悲劇들에서, 그것도 무대 위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비극들과 희극들에서도 즐겁지 않는 것이 즐거운 것과 혼재되어 있으며, 이는 수 천 개의 다른 일들에서도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는 여기서 플라톤이 우스꽝스러움, 즉 희극적인 것을 연극과 관련하여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즐거움에 즐겁지 않는 것이 혼재된 감정이나 즐겁지 않는 것에 즐거움이 혼재된 감정을 쥐스는 비극이나 희극을 감상하는 관객들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혼합감정을 “기쁨의 한탄 cha&amp;iacute;ron kl&amp;aacute;ei”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현대의 ‘희비극’과 많은 점에서 관련이 있다.&lt;br /&gt;   플라톤이 “모든 삶의 비극들과 희극들”이라고 한 표현은 이 세계를 연극의 무대로 보는 ‘세계극’ 메타포이다. 전통적으로 세계극의 모범으로 간주되는 바로크 시대 스페인의 극작가 칼데론 Caldr&amp;oacute;n de la Barca(1600～1681)의 &amp;#985172;대 세계극 El gran teatro del mundo&amp;#985173;도 바로 플라톤의 이 세계극 메타포에 그 근원이 있다. ‘세계극’ 메타포는 셰익스피어의 &amp;#985172;뜻대로 하세요 As You Like It&amp;#985173; 제2막 7장에 “이 세상은 모두가 하나의 무대요, 남녀 모두는 한낱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제각각 무대에 등장했다간 퇴장해버리기도 하지”로 표현되어 있다.&lt;br /&gt;   앞에서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플라톤은 재산, 아름다움 그리고 유능함(현명함)과 관련하여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을 우스꽝스럽다고 보았다. 이 무지의 우스꽝스러움을 달리 표현하면 ‘바보들에 대한 우스꽝스러움’이 된다. 사람들이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설정하고 그들의 바보짓, 그것도 상식 이하의 비현실적인 바보짓에 [대해] 웃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거의 일치하고 있다. 세르반테스 S. Cervantes의 &amp;#985172;돈 키호테 Don Quijote&amp;#985173; 제8장에서 풍차와 거인도 구분 못하는 돈 키호테야 말로 바보들 중에 바보이다. 이 작품에서 우스꽝스러운 점은 돈 키호테가 자신의 의식 속의 인물[흉악한 거인: 주관적]과 실상[풍차: 객관적]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lt;br /&gt;   플라톤의 이 ‘무지의 우스꽝스러움’은 후에 서양의 웃음이론들 중에서 아주 중요한 웃음의 ‘우월이론 &amp;Uuml;berlegenheitstheorie’으로 발전된다. 토마스 홉스 Thomas Hobbes(1588～1679)의 저서 &amp;#985172;인간 천성 Human Nature&amp;#985173;에 표현된 ‘웃음의 열정’(이른바 ‘웃음의 우월이론’)은 “다른 사람”의 무지無知 혹은 어리석음을 보고 기뻐하는 비웃음에 다름 아니라는 의미에서 플라톤의 웃음의 정의와 관련이 있다. &lt;br /&gt;   &lt;br /&gt;    웃음의 열정은 갑작스런 영광에 다름 아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결함이나 우리 자신의 이전의 결함과 비교하여, 우리들 자신 내에서 그 어떤 우월함에 대한 그 어떤 갑작스런 착상에 의해서 일어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과거의 어리석은 행위들이 현재의 불명예를 안겨주지 않는 한, 이 어리석은 행위들이 갑자기 회상될 때 웃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Ⅲ. 아리스토텔레스: 무해無害한 실수의 우스꽝스러움&lt;br /&gt; &lt;br /&gt;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384～322 v. Chr.) 만큼 웃음을 높이 평가한 철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희극에서 우스꽝스러움만은 플라톤처럼 별로 대수롭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amp;#985172;시학 Poetik&amp;#985173;에서 우스꽝스런 것의 근거를 추醜함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희극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보통보다 더 비천한 것의 모방이다. 그러나 여기서 보통보다 더 비천한 것이란 모든 종류의 악堊과 관련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추함의 한 부분인 우스꽝스런 것일 때만 그러하다. 우스꽝스런 것은 말하자면 하나의 실수이자 하나의 결점이다. 그러나, 예컨대 하나의 우스꽝스런 마스크가 추하게 일그러져 있으나 고통이 없는 것과 같이, 고통을 주지도 않고 감정도 손상하지 않는 그러한 하나의 결점이다.&lt;br /&gt;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스꽝스런 것’에 대한 정의는 희극에 대한 설명 중에 나타난다. 여기서 “추함”이란 말은, 푸어만 M. Fuhrmann의 주석에 의하면, 육체적인 의미에서 추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악”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수 ham&amp;aacute;rtema”라는 말은 약점이나 부족함, 즉 상대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는 “단순한 실수”를 의미한다. 호른 A. Horn은 키케로 Cicero의 말을 인용하여, “‘이례적이고 야비한 것과 결부된 악에 대한 조롱’은 웃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부도덕한 인간들에게는 우스꽝스러움이라는 무기보다 더 날카로운 무기로써 상처를 주기 바라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우스꽝스런 것은 단순한 실수나 단순한 약점(결함)이기 때문에, 이는 “고통도 주지도 않고 감정도 손상하지 않아야” 한다. 이미 플라톤이 우스꽝스런 것과 관련하여 “허약한 무지無知”, 즉 힘이 없는 몰상식이라 한 것은 바로 이 무지의 무해성無害性을 암시한 것이다.  &lt;br /&gt;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스꽝스러움에 대한 정의에서 “무해성”이란 말은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서 웃고 있는 대상이나 실수로 인해 웃음의 대상이 된 사람이 전혀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무해성”과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스꽝스런 마스크”를 예로 들어 이를 일반화하고 있다. “하나의 우스꽝스런 마스크가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져 있으나 고통을 주지 않는다”고 한 말은 원칙적으로 제삼자[구경꾼]의 고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희극적인 대상이 된 사람의 어쩌면 있을 수도 있는 고통 자체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플라톤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lt;br /&gt;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스꽝스런 것’에 대한 정의에서 무해성의 개념은 일상적인 코믹과 문학 등 예술작품에 반영된 허구적인 코믹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무해성은 희극적인 것의 필수조건이다. 왜냐하면 희극적인 것에서 이 무해성이 사라지면 희극성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lt;br /&gt;   실수와 결점에 의한 우스꽝스러움의 논거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우스꽝스러움’에 대한 정의에서 비롯된다. 일상생활에서 무해한 실수로 빚은 우스꽝스러움의 예는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넘어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 때 넘어진 사람[단순한 실수를 범한 사람]은 신체적으로 어떠한 손상을 입지 않아야[무해성]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웃는다. 이와 같이 실수로 인한 우스꽝스러움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극 무대나 서커스에 등장하는 어릿광대도 이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채플린 Ch. Chaplin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주인공 채플린도 영상화된 어릿광대에 다름 아니다. 어릿광대나 채플린 혹은 TV의 개그맨은 무대에서나 영화에서 웃기는 사람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의도적인 실수는 일상생활에서 실수의 행위와 달리 항상 ‘무해성’을 담보하고 있다. &lt;br /&gt;   빈첸쪼 마기/마디우스 Vincenzo Maggi/Madius는 1550년에 집필한 &amp;#985172;시학&amp;#985173;의 주석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스꽝스러움에 대한 정의를 “고통이 없는 추함 turpitudo sine dolore”이라는 공식으로 표현했다. 여기에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추함을 ‘감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악’으로 해석한 푸어만의 주석과 결부시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우스꽝스러움이란 ‘고통이 없고 육감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추함’이 된다. 이러한 추함은 육체적인 결함, 영혼(혹은 성격)의 결함, 정신의 결함에서 유래한 것을 의미한다. 이를 다시 거칠게 단순화시켜 표현하면, 육체적인 추함, 비열함, 어리석음이 된다.&lt;br /&gt;   어리석음의 우스꽝스러움은 이미 플라톤의 무지의 우스꽝스러움에서 고찰했다. 육체적인 추함으로, 즉 불구로 인하여 생기는 우스꽝스러움은 오늘날 교육을 받은 성숙한 구경꾼이나 관찰자에게는 오히려 연민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들과 ‘고대 그리스의 신神들’만은 이러한 육체적인 결함을 보고 웃는다. 이와 관련하여 호머 Homer(gr. Homeros, lat. Homerus)의 &amp;#985172;일리아스 Ilias&amp;#985173;에서 절름발이 대장장이 신神 헤파이스토스 Hephaistos에 의해 야기된 그리스 신들의 웃음, 즉 “호머의 홍소 das Homerische Gel&amp;auml;chter”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말하자 흰 팔의 여신 헤레가 미소를 지었고&lt;br /&gt; 미소를 지으면서 아들에게서 잔을 받았다.&lt;br /&gt; 그래서 그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빙 돌아가며 술독에서&lt;br /&gt; 신주(神酒)를 떠서 다른 신들에게도 빠짐없이 권했다.&lt;br /&gt; 헤파이스토스가 궁전 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lt;br /&gt; 축복받은 신들 사이에서는 그칠 줄 모르는 웃음소리가 일었다.&lt;br /&gt; &lt;br /&gt;   &amp;#985172;일리아스&amp;#985173;에서 태어날 때부터 절름발이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신들의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 다리를 절면서 여러 신들에게 신주神酒를 따르는 모습이 너무나 우스워 “축복받은 신들 사이에서 그칠 줄 모르는 웃음”이 일어났다. 여기서 “그칠 줄 모르는” 웃음이란, 세계의 화재火災와 같이, “끌 수 없는 nicht zu l&amp;ouml;schen” 웃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웃음이 이른바 “호머의 홍소”이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고통의 도움으로써 표현된 희극적인 것에 대한 웃음에는 “희극적인 카타르시스인 해방의 행위”라는 미학적 기능이 없다. &lt;br /&gt;   인간의 비열함을 다룬 작품들은 어쩌면 거의 모든 나라에서 다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클라이스트 H. von Kleist의 희극 &amp;#985172;깨어진 항아리 Der zerbrochene Krug&amp;#985173;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이 심판하는 시골 재판소의 재판장 아담 Adam은 바로 이러한 비열함이 빚어낸 희극적인 인물이다. 재판 과정 중 궁지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아담의 비열한 모습은 웃음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리고 한국 근세의 소설로서 전광용의 &amp;#985172;꺼삐딴 리&amp;#985173;의 주인공 이인국에 대한 웃음 역시 성격의 결함인 비열함에 기인하고 있다. 일제시대에 제국대학 의학부 출신인 이인국은 왜정시대 때는 “잠꼬대까지 국어[일본어]로 할 정도가 아니면” 도저히 받을 수 없다는 “國語常用의 家”라는 액자를 식민지 당국으로부터 받을 정도로 철저하게 친일적으로 생활했고, 해방이 되고 국토가 분단되어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했을 때 그는 목숨을 걸고 소련군 소좌의 뺨에 있는 사마귀 제거수술을 하여 “꺼삐딴 리”라는 칭호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아들 원식을 모스크바에 유학을 보내기도 한다. 그 후 6ㆍ25전쟁이 터졌을 때 그는 청진기 하나만 달랑 들고 남하하여 딸  나미를 미국으로 보내기도 한다. 이인국의 기회주의적인 비열함은 아들 원식에게 노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야 원식아, 별수 없다. 왜정 때는 그래도 일본말이 출세를 하게 했고 이제는 노어가 또 판을 치지 않니.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바에야 그 물 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해야지. 아무튼 그 노서아말 꾸준히 해라.”&lt;br /&gt;   “인간은 웃을 수 있는 동물이다”라고 정의한 사람도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이 정의에 의하면 웃음은 인간 고유의 속성들 중에 하나며, 인간을 동물과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특징이 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웃을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웃는 것이 아니라, 상당기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미소를 지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미소야 말로 동물과 구분될 수 있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징표가 된다. 그러면 우리 인간의 신체의 기관들 중에서 어떤 기관에서 웃음이 생기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횡격막을 통해서 웃음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독일어에서 “횡격막을 뒤흔드는 웃음 das zwerchfellersch&amp;uuml;tternde Lachen”이란 말은 곧 “포복절도抱腹絶倒하는 웃음”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웃음이 바로 횡격막의 표현이라는 것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은 논거를 제시한다. 횡격막은, 순수하게 육체적으로 보아, 우리 몸의 상체 부분과 하체 부분을 연결하는 교량橋梁과도 같다. 따라서 웃음은 고상한 정신적인 영역[몸의 상체 부분]과 충동적이고 저급한 영역[몸의 하체 부분]에 그 근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위트와 같은 정신적인 동기들에 의해서도 웃지만, 간지럼이나 성적인 자극과 같이 물리적인 자극에 의해서도 웃는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간질일 때는 왜 웃지 않는가? 쥐스에 의하면 웃음은 “놀람 &amp;Uuml;berrachung”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간질일 때는 웃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자신을 놀라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놀람이 크면 클수록, 대립[반대]이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더욱더 인식의 증대가 분명해진다.” &lt;br /&gt;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을 수 있는 인간의 특징을 가장 적절하게 고찰한 점은 웃음이 나이와 관련이 있다고 본 것이다. 젊은이들은 “모든 것을 격렬하게 행동한다. 이들은 지나치게 사랑하고, 지나치게 미워하고, 그 외의 것들도 그러하다.” 그리고 이들은 웃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위트가 있다. “왜냐하면 위트는 길들여진 방자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에 대한 묘사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노인들은 미래가 거의 없으며 대단히 쉽게 슬퍼한다. “그래서 노인들은 위트가 없고 웃을 마음도 없다. 왜냐하면 슬픔은 웃음의 즐거움과 화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amp;#985172;수사학 Rhetorik&amp;#985173;에서 즐거움이 곧 선善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모든 기분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 역시 선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는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은 즐거운 것이거나 혹은 그 자체가 노력하여 얻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즐거움을 주는 웃음 역시 선이며 미덕과도 일치한다는 것이 그의 &amp;#985172;니코마코스 윤리학  Nikomakische Ethik&amp;#985173;에서 증명하고 있다.&lt;br /&gt;   이 외에도 &amp;#985172;니코마코스 윤리학&amp;#985173; 제8장에서 “인생에는 활동도 있지만 휴식도 있고, 또 휴식에는 한가로이 재미있게 지내는 일도 있으므로, 이런 때에는 재미있는 인간들과의 교제도 필요하다”며 사회생활에서 인간들과의 교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중용을 지키는 교양 있는 사람과 어릿광대의 웃음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웃음의] 즐거움의 한계를 넘는 사람은 어릿광대로 간주되고 조야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스꽝스런 것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이 사람에게는 고상한 형식으로 농담을 하고 웃음거리가 되는 사람이 가슴 아프게 느끼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보다 무턱대고 사람들을 자극하여 웃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와는 반대로 농담도 할 줄 모르고 위트를 할 때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 같이 통나무 같은 사람이나 감정이 없는 사람과는 달리 멋지게 위트를 하는 사람은 유연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수사학적인 유연성은 성격적으로 재치 있고 세련된 사람이다. “희극적인 것은 도처에서 만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심풀이의 우스개와 농담에서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 이는 착한 것보다 더 낫다 - 심지어 어릿광대조차 사회적으로 세련된 사람으로 표현된다. 즉, 사람들은 이 어릿광대를 바로 상냥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lt;br /&gt; &lt;br /&gt; Ⅳ. 키케로: 감각적인 저속함과 지나침의 코믹&lt;br /&gt; &lt;br /&gt;   몸젠 Th. Mommsen은 &amp;#985172;로마사 R&amp;ouml;mische Geschichte&amp;#985173;에서 키케로 Marcus Tullius Cicero(106～43 v. Chr.)를 아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식견도 견해도 목적도 없는 정치가로서 공화정 의원, 귀족, 세습 군주들의 도구 역할을 차례차례 했으며, 한 번도 근시안적인 이기주의자 이상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키케로의 연설 재능은 아주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는 실제로 말재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연설기술에 대한 저서인 &amp;#985172;웅변가론 De oratore&amp;#985173;도 아주 대가다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lt;br /&gt;   키케로의 &amp;#985172;웅변가론&amp;#985173;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과 웃음이 수사학적인 방법으로써 아주 탁월하며,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지속적으로 수사학적인 모범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키케로의 웃음이론의 토대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산을 거의 그대로 물러 받았으며, 그 역시 웃음을 수사학적인 도구로 생각했다. 키케로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우스꽝스러움의 원천은 추함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amp;#985172;웅변가론&amp;#985173; 제2권 236장에서 “우스꽝스런 것의 장소이자 영역은 [...] 본질적으로 추함과 기형적인 모습에 의하여 규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장에서 그는 연민과 미움의 분명한 한계들을 지적하고, 적대자에겐 비웃음도 허용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lt;br /&gt;   키케로의 &amp;#985172;웅변가론&amp;#985173; 제2권 255장에서는 “코믹의 가장 잘 알려진 형태는 우리가 기대한 것과 무언가 다른 것이 말하여질 때”라고 설명되어 있다. 여기서 ‘기대한 것과 무언가 다른 것’이란 바로 ‘기대규범의 일탈逸脫’을 의미하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놀람”과 서로 연계된다. 기대규범의 일탈 혹은 그 반응에서 웃음이 일어난다는 후세 학자들의 견해들은 상당히 많이 발견된다. 웃음은 “단지 위배된 기대규범의 반응에서” 일어나거나, “일정한 틀에서 벗어난 행동태도”가 웃게 하며, “우스꽝스런 것은 [...] 희망한 것과 기대한 것에 상반된다” 등이다. 이 기대규범의 일탈에서 생성되는 웃음이 후에 서양에서 웃음의 ‘대비 혹은 불일치이론 Kontrasto der Inkongruenztheorie’으로 발전된다. 그러면 쇼펜하우어 A. Schopenhauer가 &amp;#985172;의지와 상념으로서 세계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amp;#985173;에서 웃음의 ‘불일치이론’을 설명한 것에 대해서 알아보자.&lt;br /&gt;   &lt;br /&gt;   웃음은 매 번 하나의 개념과 실제적인 대상들 사이에서 갑자기 인지된 불일치에서 생성된다. 이 대상들은 이 개념에 의해서 그 어떤 관련에서 생각되어 왔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웃음 자체는 이 불일치의 표현일 뿐이다. [...] 말하자면 모든 웃음은 역설逆說적이고 그로 인해 기대하지 않은 포괄[개념]이 그 동기가 되어 생성된다. 이 포괄[개념]은 말에 의해서든 행위에 의해서든 동일하게 표현된다. 이것이 간략하게 표현한 우스꽝스러운 것의 올바른 설명이다.&lt;br /&gt; &lt;br /&gt;   &amp;#985172;웅변가론&amp;#985173;제2권 266장에서 키케로는 기대감의 일탈과 추함을 결부시킨 웃음의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사람들은 기형적인 모습이나 육체적인 결함이 묘사된 것에 대해서 그리고 무언가 추한 것을 모사模寫한 그림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웃는다. 그래서 나는 예컨대 헬비우스 만치아 Helvius Mancia에게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보여 주마’라고 말했다. ‘그래 보여 줘!’라고 그가 대답할 때, 나는 혀를 내밀고 늘어진 뺨을 가진 일그러진 얼굴 모습의 한 사나이를 그린 한 갈리아 사람의 그림을 [...]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홍소(哄笑)가 일어났고, [이때] 만치아의 이런 모습과 비슷한 모습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말을 할 때 턱이 비뚤어지곤 하는 티투스 피나리우스 Titus Pinarius에게도 ‘관절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날 때,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해라’라고 나는 말했다. &lt;br /&gt; &lt;br /&gt;  헬비우스 만치아에게 홍소를 터뜨리게 한 것은 경악시키는 동기[추하게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와 결부된 기대감의 환멸이다. 그리고 &amp;#985172;웅변가론&amp;#985173;의 제2권 289장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무언가 [보통보다] 더 추한 것과 이와 유사한 것을 통하여” 사람들은 웃는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는 퀸틸리안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무언가 저속하고 중요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 또는 이와 “유사한 것”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웃는다. &lt;br /&gt;   앞에서 인용한 키케로의 말을 일반화시켜 표현한다면, 기대감에 어긋나는 무해하고 저속한 모습이 희극적인 것의 원천이 된다는 뜻이다. 이를 더욱 간략하게 표현하면 무해한 저속함이 된다. 이 무해한 저속함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무해한 실수’와도 연관이 된다. 그리고 기대감의 환멸이란 의미에서 보아, 이 무해한 저속함은 무해한 규범의 일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저속함’은, 웃음이론과 관련하여 볼 때, 종교적ㆍ윤리적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저속함’이란 말에는 무언가 비윤리적이고 죄가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더라도. 왜냐하면 인류학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저속함, 저급함’이란 인간 종족이 다른 하등 동물들처럼 먹고, 마시고, 섹스를 한다는 의미이다. 이와는 반대로 ‘고상함’이란 말은 “이성, 문화, 공동체”, 즉 인간이 다른 생물체보다 우월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먹고, 마시고, 섹스를 한다는 의미에서 ‘저속함’이란 ‘감각적인 저속함’을 뜻한다. &lt;br /&gt;   슐레겔 A. W. Schlegel은 ‘감각적인 저속함’이 희극적인 것을 명확하게 나타내게 하는 원천으로 보았고, 이는 상당부분 “동물적인 요소들에 의존”되어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동물적인 요소들에 의존되어 있다’라는 말은 우리의 “이성과 오성이 자발적으로 감각들의 노예”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이성과 오성은 어떤 판단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자발적으로 감각의 노예상태로 빠져들기고 한다는 점에 있어서 역설逆說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슐레겔은 “고상한 요구들과는 모순이 되지만 억제할 수 없는 감각적인 자극들”은 “비겁함, 유아적인 허영심, 수다스러움, 맛있는 음식, 게으름 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것들이 “우스꽝스러움의 확실한 효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lt;br /&gt;   바흐친 M. Bachtin은 감각적인 저속함에는 상반된 가치가 있으며, 이 상반된 가치를 &amp;#985172;돈 키호테&amp;#985173;에 등장하는 산초 판사 Sancho Pansa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산초 판사는 아무리 먹고 마셔도 결코 물리지 않는 식욕과 갈증을 갖고 있고, 이 식욕과 갈증에 걸맞게 거대한 배(腹)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보아 감각적 저속함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저속함에서 유래한 우스꽝스러움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부정적이지만, 이와는 달리 일방적으로 진지한 돈 키호테를 응징한다는 의미에서 보아 긍정적인 면도 있다. &lt;br /&gt;   이러한 긍정적인 면을 야우스 H. R. Jauss는 “육감적인 것의 해방”과 “규범 세계의 힘들에 대한 승리”, 간략하게 표현하여, “즐거움의 원칙이 실현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라블레 Rabelais를 예로 들어 “팡타그뤼엘 Pantagruel과 가르강튀아 Gargantua의 거대한 갈증과 배고픔을 보고 웃는 웃음, 이들의 물리지 않는 성욕에 대한 웃음은 서사적인 이상세계理想世界에서 쫓겨난 인간 현존재의 육체를 다시 정당화 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lt;br /&gt;   키케로의 &amp;#985172;웅변가론&amp;#985173;의 제2권 251장에서는 “익살꾼”과 관련하여 “아주 특별히 웃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무엇이 익살꾼보다 더 희극적일 수 있는가? [...] 아주 특별히 웃음을 일으키게 하는 첫 번째 인간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즉, 성을 잘 내는 사람, 미신적인 사람, 의심이 많은 사람, 자만적인 사람, 우둔한 사람이 그러한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 본성 때문에 우스꽝스럽다.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혹평하곤 한다, [...]” &lt;br /&gt;   이 인용문에 나타난 우스꽝스런 사람들을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반적으로 인간적인 것보다 그 정도가 지나치거나, 사회적으로 보아 그 관대함의 정도가 정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사람. 둘째, 성격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면에서 보아 정상적인 상태를 초월하거나 이러한 지나친 성격이 지배적인 사람을 일컫는다.&lt;br /&gt;   몰리에르 Moli&amp;egrave;re의 &amp;#985172;수전노 L’Avare&amp;#985173;(1668년)에서 수전노 아르빠공Harpagon이 여기에 대한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이 드라마의 제목과 같이 지나치게 인색하다. 그의 인색함은 정상적인 것보다 그 강도가 심하다. 그는 돈을 감추어 두고 밤낮으로 지키고 있으며, 다른 사람이 그의 돈을 훔쳐갈까 두려워 떨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인색함은 딸의 혼담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에게는 딸의 행복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 이는 “지참금이 없어도 좋다”는 말이 제1막5장에서 그의 아들의 하인인 라 플레쉬 La Fl&amp;egrave;che와의 대화 시에 수차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데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아 그의 인색함은 일반적 인간적인 것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그는 성격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면에서 보아도 정상적인 상태를 초월하기 때문에 우스꽝스런 사람이 된다. &lt;br /&gt;   사회적인 관대함의 정도가 정상적인 상태를 초월하여 우스꽝스런 효과를 자아내게 하는 예로서 우리는 &amp;#985172;배비장전&amp;#985173;에서 애랑과 하직할 때의 정비장鄭裨將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정비장은 애랑에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많은 물품들을 이별의 선물로 준다. 그러나 애랑은 이 선물에 만족하지 않고 정비장에게 이빨 하나를 빼달라고 한다. “호치(晧齒) 하나 빼어 주면 손수건에 싸고 싸서 백옥함(白玉函)에 넣어두고 눈에 암암하고 귀에 쟁쟁한 님의 얼굴을 보고 싶은 생각이 나면 종종 내어서 슬픔을 풀고 소녀 죽은 후에라도 관 구석에 지녀 가면 합장일체(合葬一體)되지 않사옵니까. 근들 아니 다정하리오.”&lt;br /&gt;   여기서 다시 키케로에게 돌아가 보자. 그는 &amp;#985172;직무론職務論 De Officiis&amp;#985173;에서 위트 Witz에 대해서 언급하고, 위트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위트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천박하고 뻔뻔스럽고 비열하고 파렴치한 음담패설, 예의바르고 잘 선별되고 재기발랄하고 유머가 있는 착상이 그것이다. 이러한 착상은 플라우투스 Plautus에게서 그리고 아리스토파네스 Aristophanes의 고대 아테네의 희극에서 아주 빈번하게 접할 수 있으며, 또한 소크라테스 학파 철학자들의 저서들에서도 역시 접할 수 있으며, 어쩌면 카토 Cato와 같은 사람들의 재기발랄한 말들의 모음집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 후자들의 재담들 Bonmots을 그리스의 경구들 apophthemata이라 부른다. 이 두 가지 유형들은 쉽게 구분되어질 수 있다. 그 한 유형은 적절한 순간에, 예컨대 정신적인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시간에 하는 말로 사용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주 진지한 사람에게도 사용할 가치가 있다. 내용이 추하고 그 표현이 예의에 어긋나는 다른 유형은 교양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발설하기에는 전혀 충분하지 못하다. 유희 중에도 사람들은 절도를 지켜야 하며, 이 때도 행패를 부려 화풀이를 해서는 안 되고, 아주 자유 분망하게 예의바르지 못한 말로써 타락해서도 안 된다.&lt;br /&gt;   이 말은 &amp;#985172;웅변가론&amp;#985173;에서 모든 기회나 모든 대상이 농담을 하는 데 적합한 것이 아니며, 농담을 하는 사람들과 상황들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한 말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농담은 적敵[상대방]을 희생시켜 웃음을 유발하게 하는 하나의 목적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때 농담은 하나의 무기가 된다. 이러한 기능 외에도 농담은 판사나 청중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이들[판사나 청중]을 진지한 상황에서 끌어내어 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수사학적인 기능도 갖고 있다.    &lt;br /&gt;   &lt;br /&gt; Ⅴ. 맺는말&lt;br /&gt; &lt;br /&gt;   본 연구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웃음이론을 밝히기 위해서 플라톤의 &amp;#985172;필레보스&amp;#985173;, 아리스토텔레스의 &amp;#985172;시학&amp;#985173;, &amp;#985172;수사학&amp;#985173;, &amp;#985172;니코마코스 윤리학&amp;#985173; 그리고 키케로의 &amp;#985172;웅변가론&amp;#985173;등을 중심으로 이들의 웃음이론들과 웃음에 대한 견해나 관점들을 고찰했다.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들은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lt;br /&gt;   웃음이라는 주제를 처음으로 다룬 플라톤에게 있어서 우스꽝스런 것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데에 있다. 특히 부유함, 아름다움, 그리고 현명함과 관련하여 그러하다. 그러나 모든 무지나 몰지각이 다 우스꽝스런 것은 아니다. 무지한 사람이나 몰지각한 사람도 힘이 없을 때만 우스꽝스럽다. 플라톤은 웃음의 본질을 우스꽝스러움에서 도출하려고 했으나, 웃고 있는 자와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현 구조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lt;br /&gt;   웃음을 아주 높이 평가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amp;#985172;시학&amp;#985173;에서 우스꽝스러움을 하나의 실수나 하나의 결점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실수와 결점은 고통도 주지 않고 감정도 손상하지 않는 무해성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무해성은 희극적인 것에서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리고 “인간은 웃을 수 있는 동물이다”라는 유명한 정의도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유래한다. 이 정의에 의하면 웃음은 인간 고유의 속성들 중에 하나며, 인간을 동물과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특징이 된다. 그는 웃음을 생리학적인 관련에서도 밝히려고 했다. 즉, 그는 횡격막을 통해서 웃음이 일어난다고 보았으며, 웃음을 나이와도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amp;#985172;니코마코스 윤리학&amp;#985173;에서 그는 인간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교제의 필요성과 어릿광대[혹은 웃음]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lt;br /&gt;   키케로 역시 웃음을 수사학적인 관련에서 고찰했으며, 우스꽝스러움을 추하고 기형적인 것에 있다고 보았다. 키케로에게 있어서 웃음의 원천이 되는 무해하고 저속한 것은 감각적인 저속함을 뜻한다. 이 감각적 저속함을 보고 웃는 웃음은 서사적 이상세계에서 쫓겨난 인간 현존재로서의 육체를 정당화시킨다. 그에게 있어서 우스꽝스런 사람들이란 일반적 인간적인 면에서 그리고 사회적인 면에서 보아 정상적인 상태를 초월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는 위트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비열하고 파렴치한 음담패설이 한 유형이라면, 예의바르고 재기발랄하고 유머가 있는 착상에서 유래한 위트가 다른 한 유형이다. &lt;br /&gt;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키케로의 웃음에 대한 견해나 관점들은 이론적인 체계가 부족하고, 웃음 혹은 희극적인 것을 수사학이나 생리학적인 관련에서만 보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견해들은 서양의 웃음이론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웃음의 우월이론’과 ‘웃음의 대비 혹은 불일치이론’의 토대가 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lt;br /&gt; 류종영,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세계극 메타포, &amp;#985172;독일어문학&amp;#985173; 제13집, 8권 3호, 2000.&lt;br /&gt; 류종영, 웃음의 주관적 성격과 객관적 성격, &amp;#985172;뷔히너와 현대문학&amp;#985173; 제19호, 2002.&lt;br /&gt; &amp;#985172;몰리에르 戱曲集&amp;#985173;, 정병희, 김정옥 역, 서문당 1976년.&lt;br /&gt; 裵裨將傳, &amp;#985172;裵裨將傳, 雍固執傳&amp;#985173;, 韓國古典文學大係 4, 일신각, 1980.&lt;br /&gt; 세르반테스, &amp;#985172;돈 키호테&amp;#985173;, 제8장. 장선영 옮김. 世界文學大全集 3, 영신출판사, 1974.&lt;br /&gt; 셰익스피어, &amp;#985172;뜻대로 하세요&amp;#985173;, 신정옥 옮김,  셰익스피어 전집6, 도서출판 전예원, 1999.&lt;br /&gt; 이강엽, &amp;#985172;바보 이야기, 그 웃음의 참뜻&amp;#985173;, 평민사, 1998. &lt;br /&gt; 전광용, 꺼삐딴 리. &amp;#985172;한국 대표 단편 소설&amp;#985173;, 도서출판 빛샘, 2000.&lt;br /&gt; &amp;#985172;호메로스의 일리아스&amp;#985173;, 천병희 옮김, 종로서적, 1982.&lt;br /&gt; Aristoteles: Poetik. Hrsg. von Olof Gigon. Stuttgart 1961.&lt;br /&gt; Aristoteles - Werke: In deutscher &amp;Uuml;bersetzung. Hrsg. von Ernst Grumach, fortgef&amp;uuml;hrt von Hellmut Flaschar, Berlin 1956ff.&lt;br /&gt; Bachtin, Michael: Rabelais und seine Welt. Volkskultur als Gegenkultur. Aus dem Russischen von Gabriele Leupold. Hrsg. u. mit einem Vorwort versehen von Renate Lachmann. Frankfurt/M. 1987.&lt;br /&gt; Cicero, Marcus Tullius. Lateinisch-deutsch. Hrsg. von Karl Bayer, M&amp;uuml;nchen 1958ff.&lt;br /&gt; Cicero, Marcus Tullius: De oratore. &amp;Uuml;ber den Redner. Lateinisch/ Deutsch. &amp;Uuml;bersetzt und hrsg. von Harald Merklin, Stuttgart 2001,&lt;br /&gt; Diogenes La&amp;euml;rtius -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ed. by R. D. Hicks, 2 Vol., 8. Aufl., Cambridge(Mass.) a. London 1979, III.&lt;br /&gt; Eco, Umberto: Der Name der Rose. M&amp;uuml;nchen 1986.&lt;br /&gt; Fuhrmann, Manfred: Anmerkungen. In: Aristoteles: Poetik. Griechisch/ Deutsch. &amp;Uuml;bersetzt u. herausgegeben von M. Fuhrmann, Stuttgart 1994.&lt;br /&gt; Hager, Frithjof Hager: K&amp;ouml;nnen Tiere lachen? In: Lachen - Gel&amp;auml;chter - L&amp;auml;cheln. Refleionen in drei Spiegeln. Hrsg. von Dietmar Kamper und Christoph Wulf, Frankfurt/M. 1986.&lt;br /&gt; Hartmann, Walo Ernst: &amp;Uuml;ber das Lachen, Zur anthropologischen Bedeutung des Lachenk&amp;ouml;nnens und der Sinn des Lachens. Diss. der Universit&amp;auml;t Basel, Schaffhausen 1998.&lt;br /&gt; Heinrich, Klaus: “Theorie” des Lachens. In: Lachen - Gel&amp;auml;chter - L&amp;auml;cheln. Reflexionen in drei Spiegeln. Hrsg. von Dietmar Kamper und Christoph Wulf, Frankfurt/M. 1986.&lt;br /&gt; Herrick, Marvin T.: Comic Theory in the Sixteenth Century. Urbana 1950.&lt;br /&gt; Homer: Ilias. &amp;Uuml;bertragen von Hans Rup&amp;eacute;. Mit Urtext, Anhang und Registern, 8. Aufl., M&amp;uuml;nchen/Z&amp;uuml;rich 1983.&lt;br /&gt; Horn, Andr&amp;aacute;s: Das Komische im Spiegel der Literatur, Versuch einer systematischen Einf&amp;uuml;hrung. W&amp;uuml;rzwurg 1988&lt;br /&gt; Jauss, Hans Robert: &amp;Uuml;ber den Grund des Vergn&amp;uuml;gen am komischen Helden. In: Das Komische, Hrsg. von Wolfgang Preisendanz und Rainer Warning. M&amp;uuml;nchen 1976,&lt;br /&gt; Mader, Michael: Das Problem des Lachens und der Kom&amp;ouml;die bei Platon. Stuttgart/Berlin 1977.&lt;br /&gt; Maggi(Madius), Vincenzo: On the Ridiculous. In: Theories of Comedy. Hrsg. von Paul Lauter, New York 1964.&lt;br /&gt; Martin, J.: Antike Rhetorik - Technik und Methode. M&amp;uuml;nchen 1974.&lt;br /&gt; Mommsen, Theodor: R&amp;ouml;mische Geschichte. Bd. 3, (10. Aufl.), Berlin 1909.&lt;br /&gt; Platon: Werke in acht B&amp;auml;nden. Griechisch und deutsch. Hrsg. von Gunther Eigler, Bearbeitet von Heinz Hofmann(Bd. 1 u. 2), Dietrich Kurz(Bd. 3-5), Peter Staudacher(Bd. 6), Klaus Widdra(Bd.7), und Klaus Sch&amp;ouml;psdau(Bd. 8/1 u. 8/2). Darmstadt 1990.&lt;br /&gt; Preisendanz, Wolfgang: “Komisch (das), Lachen (das)”. In: Historisches W&amp;ouml;rterbuch der Philosophie. Bd. 4, Hrsg. von Joachim Ritter u. Karlfried Gr&amp;uuml;nder, Basel/Stuttgart 1976.&lt;br /&gt; Quintiian(us), Marcus Fabius: Intitutionis oratoriae libri XII. &amp;Uuml;bersetzt von H. Rahn. I. Teil, Darmstadt 1972.&lt;br /&gt; Ritter, Joachim: &amp;Uuml;ber das Lachen. In: J. R.: Subjektivit&amp;auml;t. Frankfurt/M. 1974.&lt;br /&gt; Schlegel, August Wilhelm: Vorlesungen &amp;uuml;ber dramatische Kunst und Literatur. 1. Teil, Stuttgart u. Berlin 1966&lt;br /&gt; Schmidt, Siegfried J.: Komik im Beschreibungsmodell kommunikativer Handlungsapiele. In: Das Komische, a.a.O.. &lt;br /&gt; Schopenhauer, Arthur: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2 Bde. Z&amp;uuml;rich 1977.&lt;br /&gt; Schwind, Klaus: Komisch. In: &amp;Auml;sthetische Grundbegriffe. Hrsg. von Karlheiz Barck, Martin Fontius, Dieter Schlenstedt, Burkhart Steinwachs, Friedrich Wolfzettel, Stuttgart und Weimar 2000, Bd. 3.&lt;br /&gt; Stierle, Karlheinz: Komik der Handlung, Komik der Sprachhandlung, Komik der Kom&amp;ouml;die. In: Das Komische, a.a.O..&lt;br /&gt; S&amp;uuml;ss, Wilhelm: Lachen, Komik und Witz in der Antike. Z&amp;uuml;rich u. Stuttgart 1969.&lt;br /&gt; Trautwein, Wolfgang: Kom&amp;ouml;dientheorie und Kom&amp;ouml;die. Ein Ordnungsversuch. In: Jahrbuch der Deutschen Schillergesellschaft 27(1983).&lt;br /&gt; Warning, Rainer: Elemente einer Pragmasemiotik der Kom&amp;ouml;die. In: Das Komische, a.a.O.. &lt;br /&gt; &lt;br /&gt; &lt;br /&gt; Zusammenfassung&lt;br /&gt; &lt;br /&gt; Die antiken Lachtheorien&lt;br /&gt; &lt;br /&gt; Ryu, Jong-Yung (Mokwon Univ.)&lt;br /&gt; &lt;br /&gt; In der vorliegenden Abhandlung wird versucht, antike Lachtheorien und deren Einfl&amp;uuml;sse auf die Nachwelt in Europa zu erhellen. Zu diesem Zweck werden Lachtheorien bzw. Aussagen &amp;uuml;ber das Lachen von Platon, Aristoteles und Cicero untersucht.&lt;br /&gt; Aus der Untersuchung ergeben sich folgende Aspekte:&lt;br /&gt; Platon, der das Lachen zum ersten Mal thematisiert hat, geht es weniger um das Lachen selbst als um die Herausarbeitung des Wesens des L&amp;auml;cherlichen. Nach ihm besteht das L&amp;auml;cherliche im Verkennen seiner selbst, und zwar in Bezug auf Reichtum, Sch&amp;ouml;nheit und T&amp;uuml;chtigkeit. Jedoch ist nicht jeder Unverstand, nicht jede Unwissenheit l&amp;auml;cherlich, nur die kraftlose, denn Starke wagen wir nicht auszulachen. Platon versucht das Wesen des Lachens aus dem L&amp;auml;cherlichen herzuleiten, aber die Daseinsstrukturen sowohl des Ausgelachten als auch des Lachenden stellen sich nicht gen&amp;uuml;gend heraus.&lt;br /&gt; Kein Philosoph hat je das Lachen h&amp;ouml;her bewertet als Aristoteles. In seiner Poetik hat Aristoteles das L&amp;auml;cherliche als einen mit H&amp;auml;sslichkeit verbundenen Fehler definiert, der indes keinen Schmerz und kein Verderben verursacht. Hier ist die Harmlosigkeit des Ausgelachten eine notwendige Bedingung des Komischen. Denn wenn der Eindruck von Harmlosigkeit schwindet, schwindet auch die Komik. Von Aristoteles stammt die ber&amp;uuml;hmteste Definition des Lachens: “Der Mensch ist das lachende Tier”. Nach dieser Definition fungiert das Lachenk&amp;ouml;nnen als ein ontologisches Merkmal. Insofern das Lachen als eine durch das Zwerchfell ausgel&amp;ouml;ste &amp;Auml;ußerung zu erkl&amp;auml;ren ist, ist das Lachen im physiologischen Sinne von Bedeutung. Und auch treffend ist die Kennzeichnung der Menschen, die lachen, hinsichtlich ihres Alters.&lt;br /&gt; Wie Aristoteles in der Poetik das H&amp;auml;ssliche an das L&amp;auml;cherliche als dessen Teil bindet, so geht auch Cicero in De Oratore, wo sich die eigentliche Theorie des L&amp;auml;cherlichen und des Lachens befindet, vom H&amp;auml;sslichen aus. Das Lachen ist bei ihm als Stilmittel im Sinne der Rhetorik betrachtet. Das harmlos Niedrige als die Quelle des L&amp;auml;cherlichen ist bei Cicero auf das sinnlich Niedrige zur&amp;uuml;ckzuf&amp;uuml;hren. Durch das Lachen &amp;uuml;ber das sinnlich Niedrige rechtfertigt sich die aus der epischen Idealit&amp;auml;t verdr&amp;auml;ngte K&amp;ouml;rperlichkeit des menschlichen Daseins. Nach Cicero halten wir jemanden f&amp;uuml;r l&amp;auml;cherlich, der &amp;uuml;berm&amp;auml;ßig prahlt. Die l&amp;auml;cherlichen Personen sind diejenigen, deren Prahlerei &amp;uuml;ber das allgemeinmenschliche oder das sozial tolerierte Maß hinausgeht. In De Officiis unterscheidet er zweierlei Arten des Witzes. W&amp;auml;hrend die gemeine, freche, schamlose Zote die eine Arte des Witzes ist, markiert der feine, geistreiche, humorvolle Einfall eine andere.   &lt;br /&gt; Es ist wahr, dass nach heutiger Auffassung an den antiken Lachtheorien das theoretische System fehlt. Trotzdem ist es auch wahr, dass die beiden gewichtigen Lachtheorien in Europa, die ‘&amp;Uuml;berlegenheitstheorie des Lachens’ und die ‘Kontrast- oder Inkongruenztheorie des Lachens’ auf die antiken Lachtheorien zur&amp;uuml;ckzuf&amp;uuml;hren sind. &lt;br /&gt; &lt;br /&gt; &lt;br /&gt; 키워드:&lt;br /&gt; &lt;br /&gt; 웃음, 웃음이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lt;br /&gt; Lachen, Lachtheorie, Platon, Aristoteles, Cicero&lt;br /&gt; &lt;br /&gt; ㆍ투고: 2003년 7월 12일&lt;br /&gt; ㆍ심사: 2003년 11월 11일/21일&lt;br /&gt; ㆍ게재확정: 2003년 11월 28일&lt;br /&gt; &lt;br /&gt; ㆍE-mail: jyryu@mok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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